제220화『몰트 방어 전쟁⑤ 업화의 야전』
반드레아 몰트 침공 제2군단
“베이첵 동지 사령관, 우선 무사히 귀환한 걸 축하한다고 해둬야겠소?”
“……배려 감사하오. 불자크 동지 사령관.”
베이첵은 고개를 축 늘어트린 채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음색, 표정, 분위기. 모든 것이 그를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야, 침공군 중 절반이 넘게 사라진 상황에서 멀쩡히 귀환하다니 대단한 무용이오! ……아하, 적에게 항복하셨다는 걸 잊고 있었소.”
“거기서 더 싸워봤자 섬멸당하는 게 고작이었소! 알테일과의 전투도 있지 않소! 한 명이라도 더 많이 귀환시키는 게…….”
“정확하군! 몰트 왕국 공략은 부가적인 작전에 불과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중한 장병들을 수없이 많이 잃고 패주한 끝에 우리 제3군단을 투입시키다니……부끄러운 줄 아시게!”
반드레아에는 1부터 3까지 되는 군단이 존재한다.
그 외에도 몰트 침공군처럼 임시로 편성되는 부대가 있긴 하지만 주력은 총 3군단이었다.
그런 3개밖에 없는 주력 부대 중 하나를, 몰트 침공군의 패배 소식을 듣고 가용할 수밖에 없었다.
알테일과 대치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북쪽 국경에서 역침공을 당할 위험성을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상을 내리치며 호통을 치는 불자크를 보고 베이첵도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정보가 달랐단 말이오! 몰트의 병력은 예정대로 손쉽게 격파할 수 있었소. 고르도니아가……하드릿이 군대를 내보냈단 말이오!! 이건 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요!”
“변경지에 있는 일개 영주가 참가했을 뿐 아닌가! ……이제 그만. 네놈의을 심문하는 건 내 역할이 아니다. 인민회의에서 마음껏 연변을 토하시게. 동지 베이첵을 수도행 마차에 올려태워 보내드려라. 감시……아니, 호위역을 확실히 붙여두도록.”
불자크의 부하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으면서 베이첵은 그 자리를 뒤로 했다.
“흥, 무능한 놈이. 교수형이나 당하라지.”
“대표님께서도 이번 패배에는 크게 분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놈이 다시 겉으로 나올 일은 없을 겁니다.”
불자크는 그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는 부관을 보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젊은 여자 부관도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었으나 곧장 표정을 굳혔다.
“눈앞에 있는 적은 베이첵이 말했던 가짜 의용병……고르도니아 군으로 보입나다만.”
불자크와 다른 참모들도 마찬가지로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틀림없을 거다. 의용병으로 위장한 타국군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니지. ……하지만 놈들은 위장할 생각이 있긴 한 건가? 통일된 무장과 깔끔한 대열을 선보이는 의용병이라니, 본 적이 없군.”
부하들 사이에서도 가볍게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숫자는 대략 1만 정도, 기병의 비율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조금씩 후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하 참모가 척후병으로부터 얻어낸 정보를 불자크한테 알렸다.
국경 지대는 모든 곳이 평원으로 병력을 감추는 건 불가능,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게 아닌 이상 모든 병력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를 평원으로 유도하고 있는 건가. 기병이 많은 이상 당연한 선택지로군.”
“전장을 이동시켜 습지대 혹은 삼림지대로 끌어내시겠습니까?”
부관의 말에 불자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시간은 들이고 싶지 않다. 우리는 여기 오래 머무를 순 없는 상황이니까 말이야. 단숨에 결판을 내고 몰트 왕국한테 항복을 받아낸 뒤 바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렇군요. 섣불리 공격하기 힘든 상황을 만든 탓에 병력을 남겨둔 채 후퇴하게 놔두면 귀찮아질 수 있겠습니다.”
그래, 하고 불자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더욱 놈들한테 유리한 지형은 평원에서 결전을 꾀한 다음 이걸 박살내고 혼쭐을 내주는 게 더 좋겠지. 그것도 되도록 빠르게 말이다.”
부관이 다시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럼 바로 전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준비는…….”
그녀가 시선을 보내자 지휘관 중 한 명이 등을 쭉 펴고 걸어나왔다.
“전투 준비는 끝났습니다. 언제든지 문제없습니다!”
“……흠. 아니, 역시 내일로 미뤄야겠군. 이미 오후를 크게 지난 상황이다. 2시간 정도 지나면 어두워질 거다. 밤이 되면 역시 도망칠 가능성이 커지니 말이야.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시간을 들여 철저하게 박살을 낸다. 이견은 없겠지!?”
“““예!”””
모든 이들이 깔끔한 경례를 선보이며 해산했다.
그날밤 반드레아 야영지
반드레아는 다음날 합전에 대비해 야영지를 구축했다.
시야가 탁 트인 농경지에 있는 건 수확이 끝난 뒤 남은 짚 정도로 3만명의 병력이라고 해도 진을 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물론 적 바로 앞에서 야영을 하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야습 대책은 짜두었다.
야영지 밖에는 정찰탑과 함께 정찰병을 세워두는 중이고 다가오는 걸 재빠르게 감지할 수 있게끔 진지에서 살짝 떨어진 위치에 모닥불을 피우는 둥, 일반적인 야영지를 구축해 두었다.
“우와앗, 화살이! 적습! 적습입니다!”
반드레아 진지를 향해 화살이 후두둑 쏟아져내리자 당황한 젊은 정찰병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나타난 30대 숙련병이 웃으면서 그 병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신병, 잘 봐. 화살 숫자도 적은 데다가 전혀 닿지 않았잖아. 저건 적이 너 같은 햇병아리를 겁먹게 만들려고 적당히 쏜 거라고. 쫓아가도 도망칠 뿐이니까 내버려둬도 돼.”
“그, 그런 건가…….”
“알겠냐? 우리가 경계용으로 놔둔 모닥불. 그건 아군 진영에서 활 사정거리와 얼추 같은 거리에 놔둔 거야. 다시 말해 저기까지 다가가지만 않으면 네가 화살을 맞을 일은 없다는 뜻이지.”
적이 쏜 화살은 모닥불 주변에 떨어져 있었다.
다시 말해 적과 아군 사이의 거리는 활 사정거리의 두 배는 된다는 뜻이었다.
“뭐, 졸지 말고 열심히 보고 있으라고.”
그 말만 남기고서 숙련병은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
젊은 병사는 당황한 일을 부끄러워하듯이 헛기침을 한 번 내뱉었다.
“또 불이 붙었네. 이렇게 보니 예쁜걸.”
병사의 모습이 아주 잠깐 희미하게 비쳤다가 일제히 불화살이 날아오고……또다시 닿지 않는다.
이쯤 되니 익숙해진 병사였으나 살짝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전보다 가까워진 거 아닌가……?”
맨 처음엔 꽤 멀리서 보였던 적의 궁병이 살짝 커다래진 듯했다.
“아니, 화살은 같은 데에 떨어져 있잖아……기분 탓이겠지.”
모닥불 주변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주변에 떨어진 수많은 화살이 불타고 있는 것도 변함없다.
“기분 탓인지 모닥불까지 가까이 보이네. 내 눈이 피곤한 건지, 북쪽으로 오니 추워서 체력을 더 많이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병사는 눈을 뻑뻑 문질렀다.
내일은 전투를 벌인다고 들었으니 어서 야간 근무를 교대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한숨을 내쉬고는 같은 고통을 맛보고 있을 놈을 보면서 기분이라도 풀려고 옆쪽 정찰탑으로 시선을 돌렸다.
“없네……이게 맞나? 정찰 임무를 빼먹는 건 군 규칙 위반으로 처형감인데?”
반대편 정찰탑으로도 시선을 돌렸으나 그곳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군대라는 건 생각보다 물러터진 곳이었나……?”
열심히 임무를 하고 있는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싶어 한숨을 내쉰 순간, 다시 어둠 속에 불이 일렁였다.
“오……이번엔 숫자가 많은데. 조금만 더 이쪽으로 날려주면 약간은 더 따뜻…….”
방금 전보다 더 많은 불화살이 병사의 머리를 가볍게 뛰어넘고 야영지 안쪽으로 날아갔다.
“엉?”
순식간에 야영지에서 수많은 비명소리와 노성소리가 터져나오더니 천막이 하나둘씩 불타기 시작했다.
“어엉?”
머리 위에서 수없이 많은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실제로는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는 평범한 활이 불화살의 몇 배를 넘게 날아가는 중인 것이다.
“뭐, 뭐지? 모닥불 쪽에 적은 없는데…….”
그렇게 말하고서 불타고 있는 모닥불을 확인한다.
동시에 아군 진지가 불타기 시작하면서 정확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저녁에 준비했던 위치보다 훨씬 가깝다.
“대, 대체 언제……어떻게!”
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탁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정찰탑 위로 올라왔다.
지상에서 열심히 사다리를 타고 올라올 수밖에 없는 탑 위로 올라온 것이다.
“무, 무, 저, 적…….”
소리치기도 전에 병사의 목이 데굴, 하고 떨어졌다.
몸통에서 떨어진 귀에 느껴지는 아름다운 목소리.
“어찌 이 몸이 잡졸 같은 짓을 해야만 하는 것이냐. 누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서……에잇, 지크프리트! 이놈이 끝이다! 다음은 뭘 하라 하였느냐!?”
병사의 의식은 조용히 어둠 속으로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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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도니아 본진
“선두 부대 기습 성공, 적은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등불 하나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분명 옆에 있는 세리아의 얼굴도 보이지 않지만 이 귀여운 목소리는 틀림없이 세리아다.
만약 레오폴트가 성대모사를 한 거라면 이곳에서 아군 오사가 시작되리라.
“정면에서 다가갔는데 이렇게 잘 굴러갈 줄이야. 야습은 당연히 경계하고 있었을 텐데.”
“놈들의 진은 일반적인 야영지였습니다. 정석은 가장 빈틈이 없는 뛰어난 성능을 자랑합니다만 이미 연구가 될대로 된만큼 반드시 완벽해야만 합니다……놈들의 경계망에는 몇 가지 구멍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취한 전략은……사실상 잔꾀나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불화살을 쏘면서 궁병대가 앞으로 나아간 게 끝. 사격 거리도 그만큼 줄여서 박히는 장소를 똑같이 만들었을 뿐이다.
암흑 속에서 보이는 빛은 눈이 착각하기 쉬운 편이다.
떨어지는 장소가 매번 똑같다면 거리가 좁혀졌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힘들다.
놈들이 피운 화염은 암흑 속에서 아주 잘 보이는 표식이 되기 때문에 훈련을 거듭한 궁병의 경우 맞추는 건 어렵지 않다.
“원래는 경계용으로 놔둔 모닥불 주변에도 정찰병을 배치해 뒀어야 합니다. 정찰병은 화살을 맞고 죽을지도 모릅니다만 본대가 기습당하는 건 막을 수 있었겠지요.”
그렇군. 다음부터 내가 야영을 할 땐 그렇게 해야겠어.
하지만 이번엔 그런 짓을 해도 똑같았겠지만 말이야.
“또한 주변에 번진 불화살의 빛으로 원래 있던 모닥불 위치를 오인할 가능성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만……적의 정찰병이 거의 아무 소리도 안 했던 건 예상 이상의 결과죠.”
그건 나한테도 조금 비밀이 있긴 하지.
정찰병이 불화살을 눈으로 쫓은 덕분에 더 속이기 쉬웠던 것 같기도 하고.
“어젯밤 도착한 창문이 달린 새까만 마차와 무슨 관계가……?”
세리아는 예리한걸, 머리를 쓰다듬어 줘야지.
“가정 설명은 여기까지 하시지요. 실제로 야습은 성공했습니다. 다음 수를 둬야 할 때입니다.”
레오폴트는 사소한 부분까지 들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잔꾀와 약간의 도움 덕분에 적을 혼란시키는 데엔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적을 격파할 수 있을 리는 없다.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야습의 시작이다.
“루나, 마이라, 이리지나. 계획대로 간다. 그 물건이 멀쩡하다면 우선적으로 노리도록, 처분당했을 경우엔 무리하지 말고 가볍게 대응한 뒤 끝내라.”
““네!””
“피피도 있다!”
궁기병은 루나, 창기병은 이리지나, 그리고 기병대 전체를 마이라가 총괄하여 돌격한다.
처음에 날린 불화살로 인해 대규모 화재가 벌어진 덕분에 시야는 트인 상황이다.
“잘 굴러가면 좋겠군.”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첫 기습에 성공했습니다. 잘 굴러갈 겁니다.”
“기병으로 야습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속도를 살려 돌진하는 기병은 원래 야습과 잘 맞지 않는 병과다.
자칫 잘못하여 아군과 충돌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속도는 내기 힘들고 방해물에 발이 걸리는 사태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 쓴 불화살이라…….”
적당히 날린 것처럼 보인 불화살은 적진의 경계선 바깥에 떨어져 부라는 중이다.
저 선 바깥쪽은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는 표식이다.
“우선 서쪽부터 기병대가 돌진합니다!”
적진의 북쪽……다시 말해 우리 쪽 정면에는 무언가 대비를 해 두었을 것이다.
그걸 우회해서 먼저 서쪽부터 돌진한다.
야습에 말발굽 소리가 울려퍼지지만 그래도 모든 상황을 파악하긴 힘들다.
하지만 화재에 당혹스러워하는 적진에서 한층 더 커다란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뒤이어 노성과 절규, 그리고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돌입에 성공한 모양입니다!”
이제 책략의 절반은 성공했군.
적진은 한층 더 격렬하게 불타올랐고 거리가 떨어진 이곳에서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날뛰어대는 중이군.”
적진을 돌아다니는 기병이 보인다.
어두운 밤 속에서 날뛰어대는 말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병기라 할 수 있다.
야습에 대비 중이었던 병사들도 불을 끄느라, 혹은 기병의 습격 때문에 혼란에 빠졌고 잠에 들었던 자들은 천막을 뛰쳐나오다 그대로 말에 부딪치는 사람도 많았다.
기병대한테는 서쪽으로 진입한 뒤 일직선으로, 방어가 가장 취약한 남쪽으로 빠져나가듯이 진로를 정하라고 말해 두었다.
난전 상황에서 섣부르게 멈추거나 진로를 바꾸기라도 했다간 아군도 혼란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와하하하핫! 받아라!!”
이리지나가 말 위에서 창을 휘두르고 있는 게 보인다.
정확히는 들린다.
“이 난전 상황에서도 들리다니……엄청난 목소리군요.”
“커다란 목소리도 군인한테는 필요한 법이지……저 녀석은 저택 안에서도 똑같지만 말이야.”
물론 소리만 큰 건 아니다.
위급 상황을 위해 대기해 있던 걸로 보이는 완전 무장 병사들을 일방적으로 쓰러트리고 있었다.
허둥지둥 밖으로 나오는 적들을 말발굽으로 짓뭉개고 난전 속에서 뒤쪽과 앞쪽을 마구 찌른다.
대충 셌는데도 10명은 넘게 해치운 게 눈에 보였다.
다른 병사들도 혼란에 빠진 적 병사들을 처리하고 아직 불타지 않은 천막에 불이 붙은 기름통을 던진다.
밤길을 환히 밝히는 그 장소는 마치 이야기 속에 튀어나오는 신들의 도시처럼 보여서 아름다웠다.
“기병대가 남쪽으로 빠져나간 걸로 보입니다.”
“좋아, 다음 작전이 잘 굴러가면 우리도 출격이다. 준비해 둬라.”
내 주위에 모여있는 보병 약 6000명도 마냥 놀게 놔두고 있는 건 아니다.
다음 작전이 잘 굴러가면 이들이 나설 차례다.
적진의 서쪽에서 들어가 남쪽으로 빠져나간 기병대 3000명은 불타는 적진을 목적지 삼아 진로를 바꾸고 이후엔 동쪽에서 돌격을 시도했다.
훈련의 성과 덕분인지 그들의 행동 속도는 굉장히 빨랐고 적에게 준 여유 시간도 5분이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충분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적이 동쪽에 방어진을 구축했습니다! 또한 우리 쪽……북쪽에도 방어진이 생겼습니다! 혼란 사태는 급속도로 수습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흐음, 지난번 몰트 침공군보다 훨씬 숙련도가 높군.”
“네, 훈련이 덜 된 병사의 경우엔 기병한테 짓밟힌 뒤엔 혼란에 빠지기 마련입니다만, 실상 저 짧은 시간 사이에 쓰러진 적은 1천 될까 말까한 수준……심지어 행동에 제약이 생기는 야전의 경우엔 숫자는 더욱 줄어듭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 쪽 병력은 최대가 1만, 그렇다면 절반의 병력을 동원해 불을 끈다 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다.
한 번만 상황을 정리하면 언제든지 반격할 수 있다.
하급 지휘관들까지 냉정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다.
서쪽에 만들어진 방어진은 급조됐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튼튼한 편으로 그리 쉽사리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좋건 싫건 주변에 크게 불타고 있는 천막들이 있기 때문에 시야는 썩 나쁘지 않다.
이제 기습이라는 이점은 사라졌다 봐도 무방했다.
“기병 부대, 돌격을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마이라는 방어진을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
그렇다면 확실히 있다는 뜻이겠군.
“레오폴트, 우리 쪽도 돌격 준비를 시작해라.”
“예. 전 부대 돌격. 목표는 적의 정면이다.”
보병들이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미 준비를 끝마친 적을 상대로 들이받아도 괜찮냐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군.
“문제없다. 적의 진형은 지금부터 무너질 테니까.”
장창을 내세워 대기병진을 짜는 적을 보고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궁기병과 창기병. 적은 잘 정돈된 방어책을 보고 우리가 다시 공격하지 않을 줄 알았는지 한 순간 동요하는 듯 보였으나 금세 다들 단단히 자리에 서서 수비를 굳혔다.
이대로 부딪혀도 절대로 돌파할 수 없을뿐더러 큰 손실이 발생할 게 분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비장의 수가 있다.
“잘 노리고……쏴라!”
100개 정도의 불화살을 활시위에 올린 궁기병이 선두에 서서 일제히 활을 쏘았다.
사격술로 대기병진을 무너트리는 건 우리 군대의 기본 전술이지만 이번엔 그게 목적이 아니다.
날아간 화살은 방어를 굳힌 적 병사가 아니라 적진 주변, 혹은 그 주변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짚단 덩어리에 맞았다.
밀의 빈 껍질로 만들어진 그것은 현 시기에 모든 농지에 굴러다니는 흔한 물건이다.
건조한 짚단은 불화살을 맞고서 당연하다는 듯이 빠르게 불타기 시작했다.
물론 큰 위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금세 불타올라 재로 변해버리라.
적 병사도 치솟은 불길에 살짝 시선이 끌리긴 했으나 방어진을 무너트릴 정도는 아니었다.
“평범한 밀짚이라면 말이지.”
여전히 무표정인 레오폴트의 입가가 살짝 치켜올라간 듯이 보였다.
섬광이 터져나왔다.
살짝 뒤늦게 들리는 굉음과 복부를 뒤흔드는 충격.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까, 깜짝 놀랐습니다. ……다행이다, 안 지렸어.”
세리아뿐 아니라 아군 보병들도 살짝 비명을 터트렸고 말들도 가볍게 동요하는 중이었다.
슈바르츠는 홀로 흥 하고 가볍게 콧방귀를 뀔 뿐이었지만.
폭발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몇 번이나 계속해서……화약을 잔뜩 담은 밀짚 숫자만큼 계속해서 터져나간다.
“적이 있던 곳에는 진을 쳐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엔 땅바닥을 다 뒤집어엎을 정도로 조사를 했어야겠지요.”
그것도 기억해 둬야겠군.
레오폴트의 목소리도 뒤따르는 폭발 소리에 가로막혔다.
“적이 크게 혼란스러워하는 중입니다! 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운 나쁘게 폭발 근처에 있던 자들은 전부 다 터져나갔고 직접 폭발에 피해를 입지 않은 자도 바로 적을 상대할 상황이 아니다.
무기를 떨어트리고 허리 힘이 풀린 자세로 뒷걸음질을 친다.
“자, 적진은 무너졌다.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나. 돌격이다!!”
“““오오오오――!!!”””
대폭발에 동요한 병사들도 레오폴트의 책략이란 걸 깨닫고 사기를 되찾은 뒤 소리치면서 적진으로 달려들었다.
반면 북쪽을 지키고 있던 적 병사는 완전히 동요한 나머지 붕 뜬 상황이었다.
“놈들을 쓸어버려라! 전과를 올린 자에겐 특별한 상을 주마!”
그렇게 말하면서 선두를 내달리는 건 바로 나다.
뒤쪽에서 기드와 세리아가 소리치면서 따라오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슈바르츠가 크기도 크고 빠르기 때문이다.
“뒤, 뒤쪽은 그만 걱정해도 된다! 우선 이놈들을 막아라!”
동요하면서도 적의 지휘관이 어떻게든 사기를 북돋으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어중간하게 흐트러진 장창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간다.
슈바르츠가 돌격하기 직전에 펄쩍 뛰어 대열 한복판에 착지했고 두 사람을 짓뭉개고서 세 사람을 거구로 튕겨날렸다.
나를 보고 다음엔 네 차례라는 듯이 숨을 토해내는 슈바르츠.
“네가 말할 필요도 없어!”
창을 두 손으로 쥐고 몸을 비틀어 한 박자 쉰 다음 단숨에 회전시켰다.
“끄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전력이 담긴 일격으로 전방에 있는 적 병사들한테 반원 형태의 공격을 날렸다.
팔과 목이 후두둑 날아가더니 장창부대 안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하나……둘……7명인가. 이겼군.
슈바르츠는 관심 없다는 듯이 다시 날리기 시작했으나 억지로 진로를 비틀면서까지 적 두 놈을 짓뭉갰다.
속 좁은 놈.
내가 뚫은 구멍을 아군 보병이 더 넓히는 걸 보고 난 뒤 발길을 멈추고 주변 적들을 하나둘씩 찔러 죽이기 시작했다.
처음과는 다르게 이건 결판을 내기 위한 공격이니 빠르게 달려나갈 필요는 없다.
“내가 대장이다. 한 번 죽여봐라!”
“아무나 저놈을 죽여라! 놈을 쓰러트리면 사령관도, 흐그억!”
소리치는 지휘관의 얼굴에 재빠르게 창을 찔러넣고 주변에 있던 부하처럼 보이던 병사를 베어냈다.
두 사람의 목이 공중을 맴돌고 바닥을 구른 마지막 한 사람에겐 슈바르츠의 말발굽이 마무리를 지었다.
“거리를 벌리고 찔러라! 동시에 여러 방향에서 가면 돼!”
좋은 생각이지만 나한테 다 들려주면 어쩌려고.
전방과 좌우에서 동시에 들이닥치는 찌르기, 슈바르츠가 먼저 앞에 있는 한 놈에게 몸통박치기를 먹여 쓰러트렸다.
오른쪽에 있던 적은 창이 닿기 전에 내 창이 머리를 날려버렸다.
왼쪽의 적이 내지르는 날끝을 장갑으로 튕긴 뒤 단단히 붙잡았다.
나도 모르게 씨익, 하는 미소가 번져나왔다.
“히이익!”
창을 손에서 놓은 적병. 하지만 놓치지 않는다.
놈의 창을 휘둘러 등 뒤에서 찌른 뒤 창과 함께 불타는 천막 속으로 내던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어이쿠, 슈바르츠의 몸통 박치기로 쓰러졌던 남자는 살아있던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 하는 남자를 마찬가지로 등 뒤에서 찔러 천막 속으로 내던졌다.
사이 좋게 둘이서 저세상길로 가라고.
“다음은 누구냐?”
내 주변에 있던 적들이 휙 물러나더니 아군이 단숨에 그 자리를 가득 채웠다.
지금은 우세해졌지만 전체 전황이 완전히 기울어진 건 아니다.
다른 곳으로 가볼까?
“각오해라――!”
내가 등을 내비치자 동시에 기사 하나가 내게 달려들었다.
올 거였으면 빨리 와주지 그랬어.
남자가 돌진하면서 내지르는 창을, 몸을 비틀어 피한 뒤 몸통 한가운데에 창을 찔러넣어 꼬챙이처럼 만들었다.
놈이 돌격해 온 덕분에 속도가 붙어있어서 쉽게 꽂혔군.
남자가 꽂혀있는 창을 그대로 크게 위로 치켜들자 그대로 쑥 빠져 날아가버렸다.
피를 흩뿌리면서 날아가는 남자라, 화염 덕분에 빛나서 생각보다 아름다운걸?
“아직 더 있나?”
아군과 맞붙으면서 적 병사가 휙휙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럼 됐어.
한동안 난전이 이어지는 걸 보고 나는 일단 전선에서 빠져나와 레오폴트와 함께 전황을 둘러보았다.
맨 처음 폭발의 성과 덕분인지 우리는 유리하게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확실히 3배의 숫자라는 적은 단숨에 괴멸시키기 힘든 병력이다.
이윽고 적이 질서를 되찾기 시작하자 난전은 점점 길항 상태를 유지하게끔 바뀌었다.
“별로 좋지 않군.”
첫 공세로 적에겐 상당한 피해를 줬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2만명을 넘게 쓰러트렸다고 보긴 힘들다.
“생각보다 적이 태세를 가다듬는 게 빠르군요. 놈들은 상당히 익숙한 모양입니다.”
레오폴트가 한 말이 정확할 것이다.
이놈들은 우리 군대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어려운 전장을 여러 번 헤쳐나온 듯하다.
혼란에 빠지는 게 가장 죽음과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트릴 수는 있어도 태세를 정비하는 속도가 빠르다.
“여기서 물러난다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이만큼 손실을 입힌만큼 이 군단은 우리를 쫓아 몰트에 침공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후퇴해도 승리입니다.”
“하지만 병력을 보충하고서 또 올지도 모르지.”
알테일을 정면으로 상대 중인 반드레아가 몰트에서 그리 오래 싸우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 모든 병력을 계속 몰트에 놔둘 수는 없다.
놈들이 다시는 침공을 고려하지 못할만큼 뼈아픈 피해를 입혀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머리를 노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겠지.”
아무리 강직한 군단이라 한들 사령관을 무너트리면 단숨에 붕괴한다.
하지만 야습에서 대난전이 벌어진 지금,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어이.”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금발……브륜힐데가 불쾌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 몸의 역할은 이제 끝이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지저분한 곳에 있고 싶지 않구나. 나머지 인원을 데리고 이만 자러 가겠다!”
“그래, 고맙다. 편히 쉬어도 돼.”
브륜힐데한테는 억지를 부려서 야습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큰 난전 상황이 벌어진 지금, 이보다 더한 걸 부탁할 수는 없다.
“흥, 약속대로……그것을 잔뜩 받아가도록 하마.”
세리아와 레오폴트가 있기 때문에 피라고 말하지 않고 얼버무려 주었다.
브륜힐데는 내 입장까지 고려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방금 그 얘기 말이다만, 남동쪽에 있던 커다란 천막 근처에 화려한 장식을 한 병력이 있더군. 전혀 움직이지 않고 그저 지키기만 했지.”
“놈들이다!”
브륜힐데를 끌어안고 키스를 한 뒤 슈바르츠 위에 올라탔다.
“하윽! 남들 앞에서 무얼 하는 것이냐! 그대는 좀 더 때와 장소를……벌써 가버렸구나. 지크프리트, 놈이 만약 죽을 것 같으면 도와주도록 하거라. 치명상을 입을 경우엔 질질 끌고 와서라도 데려와라. ……놈은 죽게 놔둘 수 없다.”
“……알겠습니다.”
호위대를 데리고서 남동쪽에 있는 커다란 천막 근처로 다가가니 적의 밀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거 당첨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쪽이 정확하게 달려가고 있는 사실에 동요를 금치 못하면서도 적의 방어는 튼튼했다.
“끈질긴 놈들이군……슈바르츠, 그냥 뚫고 지나간다.”
여기서 찔끔찔끔 싸우고 있다간 적장이 도망칠 게 뻔하다.
필요한 건 속도와 파괴력이다.
“돌진해!”
쾅, 하고 땅을 구르면서 슈바르츠가 내달렸다.
몸이 뒤로 떠밀리는 듯한 엄청난 가속도. 갑주를 입은 나와 슈바르츠한테도 방어구가 장비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전혀 신경도 쓰이지 않는 느낌이다.
“빠른 놈이다, 진로를 막아!”
옆에서 달려드는 적병은 내가 베어넘기고 진로를 가로막는 보병은 펄쩍 뛰어 넘어간다.
그러자 정면에서 적의 기병이 두 명 창을 앞으로 내밀면서 달려들었다.
“놈을 막아라!”
적은 전속력으로 달려들었고 슈바르츠도 마찬가지로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거리가 0이 되었다.
이대로 부딪칠 줄 알았던 그때, 슈바르츠가 고개를 들고서 상대방의 말을 노려보았다.
“우왓!” “뜨아앗!!”
정말 마지막 순간에 적의 말이 회피 행동을 취했고 위에 타 있던 남자들을 바닥에 떨어트린 채 크게 넘어졌다.
하여간 배짱만큼은 두둑한 녀석이라니까.
적의 무리를 돌파하자 복장이 다른 일당들, 어깨에 늘어트린 금빛 장식은 싸우기 위해 필요한 장비가 아니다.
틀림없군. 이놈들은 사령부다.
“너희가 대장이냐!?”
큰 소리로 외치면서 슈바르츠 위에서 뛰어내렸다.
“큭……아군은 뭘 하고 있단 말이냐. 사령부를 후퇴시켜라, 시간을 벌어!”
한 남자의 명령에 모든 이들이 움직였다.
저놈이 대장이군. 알아보기 쉽게 해줘서 고맙다.
앞으로 걸어나온 10명 정도 되는 중장비 남자들. 딱 보기에도 잡졸과는 차원이 다르다.
방심할 수 없겠군.
“에이길 님! 저희도 싸우겠습니다!” “저도!” “나, 나도!?” “바라 마지않던 일.”
다른 일행들도 내 뒤를 따라 뚫고 온 모양이다.
그렇게 결투가 시작됐다.
“흐아아압!”
방패 위에서 남자에게 먹인 일격, 막히긴 했으나 방패는 찌그러졌고 남자는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발을 걷어차 땅바닥을 구르게 만든 뒤 목덜미에 창날을 찔러넣었다.
옆에서 들이닥친 대검을 보고 피하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투구에 맞닿아 머리가 흔들렸다.
기세를 틈타 두 번째 일격을 먹이려고 치켜든 팔에 빠르게 일격, 두 손을 잃은 남자는 절규하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생각보다 힘들군.”
다른 일행들도 제각각 한 명씩 맡아 싸우는 중이다.
세리아는 적의 검을 막아내지 않고 피하면서 빈틈을 노리는 중이지만 상대방도 그 사실을 깨닫고 크게 뒤로 물러나 대치하는 중이다.
기드는 정면으로 싸우는 중이군.
힘으로는 살짝 불리하지만 속도와 기술로 메꾸는 중이다.
하지만 쉽사리 결판이 날 것 같진 않다.
크롤은…….
“너, 넌 어째서 자세를 안 취하는 거냐! 날 얕보고 있는 건가!?”
“자세는 필요치 않다. 원하는 때 오도록!”
“이것이 자연체 자세……이, 이럴 수가. 나는 엄청난 상대를 맞닥뜨리고 만 건가!”
상대도 어지간히 멍청이군. 크롤은 괜찮겠어.
어디, 크리스토프는…….
“우와아아악!!”
“아앗! 크리스토프가 당했다!”
내가 본 순간엔 크리스토프가 어깻죽지에 검을 얻어맞고 실신해 있었다.
다행히 갑주는 관통당하지 않은 데다가 적도 사령부의 위기이다 보니 마무리를 지을만한 여유는 없는 듯했다.
시간을 너무 쓸 순 없겠군.
내가 뚫어야겠어.
“비켜라!”
일직선으로 대장을 향해 달려나가면서 적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첫 번째 적이 날린 횡베기를 몸을 굽혀 피한 뒤 다리를 베어냈다.
다음 적의 내리치기는 창으로 막아낸 뒤 얼굴에 정권을 먹이곤 휘청거리는 순간 목을 날려주었다.
3, 4번째 적은 동시에 내게 검을 휘둘렀다.
두 자루의 검을 가로로 쥔 창으로 막아낸 뒤 재빠르게 무기를 그대로 떨어트리고 놈들이 검을 쥐고 있는 팔을 한손으로 각각 움켜쥐었다.
“흐읍!”
힘을 주어 두 사람을 한꺼번에 바로 위로 내던졌다.
저 멀리 날아간 사내들은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땅바닥에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퍼졌다.
한 사람은 목이, 또 한 사람은 등이 기묘한 방향으로 꺾여 부러진 것이다.
“오래 기다리게 만들었군.”
창을 바닥에서 주은 뒤 대장과 마주보았다.
더 이상 나를 가로막는 자는 없다.
“……괴물 자식. 이름은?”
대장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 판단한 건지 검을 뽑아들었다.
“……에이길……하드릿이다.”
“베이첵이 말했던 놈인가. 내 이름은 불자크……긍지 높은 반드레아 제3군단 사령관이다!”
남자가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1합, 2합, 합을 주고받는다.
깔끔하긴 하지만 압도적인 기량은 아니다.
게다가 불자크는 이미 중년, 어쩔 수 없이 방금 전 사내들보다 힘은 떨어진다.
나와 둘이서 대치한 시점에서 이 녀석의 운명은 끝난 것과 마찬가지다.
그건 놈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일 테지만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계속 싸우는 것이 긍지 높은 반드레아 군인의 의지인 것이리라.
“어중간하게 싸우면 실례가 되겠군.”
세 번째 합을 받아낸 뒤 거리를 벌리고 창을 위로 치켜들었다.
다음이 끝이다.
“와라앗!”
기합과 함께 찌르기 자세를 취한 채 달려드는 불자크.
나도 마찬가지로 놈에게 달려들고서 힘조절을 전혀 하지 않은 전력의 찌르기를 날렸다.
불자크의 검은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내 창은 불자크의 턱부터 그 위쪽 부분을 날려버렸다.
승부가 났다.
“아아!! 동지 각하……네이놈……네이노옴!!”
뒤쪽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잘 보니 방금 전 단칼에 크리스토프를 쓰러트린 적 병사다.
여자였던 건가? 투구를 쓰고 있어서 몰랐군.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군. 상대한 게 크리스토프라 다행이야.
“각하의 원수! 각오해라!”
내게 검을 휘두르는 여자의 공격을 피한다.
일격은 가벼워 보이지만 재빠르군. 살짝 무게가 늘어난 세리아 정도 되는 느낌이라 할 수 있겠어.
“계속 피하기만 하면……아윽!”
움직임을 확실히 파악한 뒤에 검을 튕겨날리고 목덜미로 손을 뻗었다.
“큭……아흑……으윽…….”
목을 붙잡아 힘을 주니 여자는 버둥거리며 저항하기 시작했으나 결국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물론 목을 부러트릴 생각은 없다.
내 쪽으로 끌어당겨 숨을 쉬고 있는 걸 확인한 뒤에 어깨 위에 짊어지고 크게 소리쳤다.
“이겼다!! 승전고를 울려라―――!!”
“오오오―――!!”
다른 일행과 맞붙었던 적 병사들도 불자크의 죽음을 보고 포기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끈질기게 싸웠던 반드레아 군들도 대장의 전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순식간에 붕괴했고 아침해가 떠오르기 시작했을 즈음엔 일방적인 추격전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그래서……그 여자는 포로로 삼으실 건가요? 아니면 위안용으로 쓰실 겁니까?”
마이라의 시선이 따갑다.
“포로를 범하는 건 안 될 일이다! 전사에겐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지!”
이리지나까지 그런 소리 하지 마.
이 여자는 사령부 측 인간인 것 같기도 하니까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대충 다 끝내고 나면 풀어줄 거야.
“그럼 여자로서 다루진 않으시겠단 겁니까?”
“아니, 꼬셔보긴 해야지.”
가능성은 낮지만 어쩌면 그 위에 올라탈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든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법이니까.
“““그렇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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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3살 가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아레스 왕의 친구
영주민 163000명 중요 도시 라펜 24000명 린트브룸 4500명
군대: 10950명 (영지 내 대기 보병 2000)
보병: 5300 기병: 800 궁병: 1000 궁기병: 1850
대포: 30문 대형포: 10문
재산: 금화 1070닢
경험 인수: 228명 자식: 48명+555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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