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화『무너지는 도시』
몰트 왕국 왕도 비아드
“하드릿 경 만세!” “강하구나 의용병!”
우리는 전쟁에서 이긴 뒤 반드레아의 또다른 부대가 오지 않는 걸 확인한 뒤에 일단 비아드까지 물러났다.
예상 이상의 대승이었으나 반드레아의 영지를 빼앗는 게 목적이 아닐뿐더러 그 준비도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국 영토를 침범하면 놈들도 그에 걸맞은 대응을 취할 겁니다. 전면 충돌을 바라지 않는다면 지금은 자중해야 할 때입니다. 필요하다면 언젠가 치밀하게 준비한 뒤에 시작하시지요.”
레오폴트도 이렇게 말하는 중이다.
“이보다 더했다간 저 사람들도 난처해할 걸요.”
마이라가 기뻐하는 비아드 시민들과는 다른, 허탈한 표정을 지은 집단에게 시선을 보냈다.
저 사람들은 리버티스 민주국에서 보낸 사자라고 한다.
듣기로는 이번 반드레아의 몰트 침공에 대한 대항책……구체적으로는 리버티스의 존재감을 드러냄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교섭을 시행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반드레아가 격렬하게 다툴수록 알테일 신국에는 여유가 생긴다.
그러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 되도록 싸우지 않고 놈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전부 박살 났지만 말이죠. 반드레아 침공군의 절반, 그리고 증원도 상당한 피해를 받고서 패주했습니다. 총 병력 12만 정도인 놈들 입장에선 뼈아픈 손실이겠죠.”
“먼저 공격해 온 건 저쪽이라고. 우리가 리버티스를 위해 저자세로 나갈 필요는 없지.”
일단 우호 관계를 맺긴 했으니 협력은 해 줄 테지만 그것 때문에 내 영지나 몰트를 희생시켰다간 의미가 없다.
“이제 한동안 재침공은 불가능할 테지?”
혹시 몰라 레오폴트한테 물어보았다.
“전술적으로 재침공 가능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익 계산을 배제한 침공이 있을지 어떨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더 이상 공격할 여력은 없을 테지만 “화가 나니까 공격해 주마.” 라는 논리로 올 경우엔 어쩔 수 없다는 뜻인 모양이다.
“덤비면 그때 가서 또 생각해야겠군.”
일단 이번 전쟁은 끝이다.
“에이길 님, 시민들이 환영 중입니다. 손을 흔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
사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비아드 중앙 대로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손을 흔드는 중이다.
몰트와 의용군……몰트 병사는 산더미 같은 전리품을 갖고 돌아온 게 끝이지만 원래 사람을 쓰는 건 적재적소, 불평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후 궁전에서 셀레스티나가 직접 병사들한테 전쟁에서 이긴 감사의 말이 있을 예정이다.
걱정되는 건 병사들이 포상을 기대하고 있다는 건데, 그 포상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끝났다간 불만스러운 분위기가 생기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 말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쓰다듬게 놔둘 수도 없고.
으음…….
“반드레아 군은 3만명이나 있다고 들었는데……모병으로 저렇게 순식간에 격파할 줄이야.”
“우리 군은 약하다고 들었는데 사실 꽤 잘 싸우는 거 아냐?”
“하드릿 경이 있다는 소문이 돌더라구. 그 사람은 정말 강하니까.”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얼굴은 투구로 잘 감춰뒀으니 괜찮을 것이다.
“내 여동생이 도시 바깥쪽에서 농장일을 하는 중인데……하드릿 경이 밤에 몰래 숨어들어와서 자기를 안고 갔대! 무조건 왔을 거야!!”
큭, 그러고 보니 야영지 주변 농장에서 가슴이 큰 여자를 따먹으러 간 적이 있긴 한데.
여자를 안을 땐 투구를 쓸 수 없으니 얼굴은 계속 드러내고 있었다.
내 얼굴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만.
“에이길 님…….”
“왜 그래? 궁전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
가성으로 그렇게 답하자 세리아가 크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궁전
“다들 수고 많았느니라! 몰트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그대들을 나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활짝 웃으며 셀레스티나가 병사들의 노력을 치하했다.
정말로 웃기는 얘기지만 형식상으로는 의용병이 셀레스티나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가 직접 제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포상을 주기로 하였느니라.”
병사들의 눈이 반짝인다. 자, 지금부터가 걱정거리다.
“다같이 사이 좋게 식사회 시간을 가질 것이노라―.”
딱딱하게 굳는 병사들. 나는 골머리를 싸맸다.
“야……이거……뭐냐?”
“나한테 물어봐도……이게 뭐야.”
궁전 밖 광장에는 양탄자가 깔렸고 궁전에서 일하는 하인과 도시 처녀 같은 사람들이 병사들 사이에 섞여 사이 좋게 식사와 담소를 즐기는 중이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영 시원찮았다.
기뻐보이는 비아드 시민과 대조적으로 병사들이 별로 기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실 겁니까, 하드릿 경. 병사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만.”
마이라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포상이 사이 좋게 밥을 먹는 거라니……작위를 마구 퍼주는 것보단 나을 수도 있겠다만.
허를 찔려 어이없어하고 있는 병사들도 냉정을 되찾으면 불만스러워할 게 분명하다.
화풀이로 비아드에서 약탈이라도 했다간 상황이 곤란해진다.
“역시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군.”
병사가 승리 보수로 원하는 것쯤이야 뻔하지.
돈과 술, 그리고……후후후.
“좋아 모니카, 가볼까!”
잔치 도중 셀레스티나 근처에 있던 나는 병사들한테 다 들릴만한 목소리로 크게 외치고서 모니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네, 네에?”
“지금은 내 말에 맞춰 줘. 몰트랑 셀레스티나를 위해서.”
억지로 모니카를 납득시킨 뒤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렸다.
“어? 어어?”
그렇게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식사를 하던 병사들 쪽을 돌아보고 한 마디.
“너희도 여자들 한 번 잘 꼬셔보라고. 억지로 했다간 처벌인 거 잊지 말고.”
그 말만 남기고서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모니카를 끌어안은 채 건물 뒷편으로 들어갔다.
“잠깐만요! 지금 그렇게 말하면!!”
“그거면 돼. 꼬맹이도 아니고 사이 좋게 밥만 먹고 끝내면 병사들이 셀레스티나한테 화낼 거 아니냐.”
“애초에 하드릿 경이 잘못한 거잖아요. 폐하께 “남자가 가장 기뻐하는 순간은 여자랑 같이 있을 때.” 라는 말씀을 하셔서! 그래서 폐하는 여자들을 불러모아 병사들을 치하하려고…….”
그러고 보니 그렇게 말한 기억이 있군.
순수한 셀레스티나는 같이 밥을 먹는다는 부분을 받아들인 걸 테지만……남자는 신체 일부를 여자 안에 집어넣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거든.
“뭐, 일단은 큰 소리로 외치라고. 최대한 기분 좋아 보이게 말이야.”
“그런 걸 어떻게 해요! 몇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고 있다구요! 그런 부끄러운, 아앗! 잠깐만 거기는……!?”
이렇게 된 이상 진짜 신음소리를 내지르게 만드는 수밖에 없겠군.
기분 좋게 해 줄 테니 잠자코 있으라고.
“히이이이이이익――대, 대단해애애애!”
둘이서 사라진 우리들, 그리고 모니카의 신음소리를 듣고서 잔치 분위기는 점차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아하, 그런 거였나?”
“누님, 저랑 같이 술 한 잔 어떠십니까!? 물론 딴 맘은 없구요, 진짜로요.”
“끝부분만! 끝부분만!!!”
“으음, 좀 더 재밌는 얘기를 해 주면…….”
“나 좀 더 잘생긴 사람이 취향이긴 한데, 축하하는 자리니까 타협할까?”
“연봉은? 집은 있어?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
단숨에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병사들도 불만을 토로할 시간은 없겠군.
강간이 아니라고는 해도 여자가 안기는 이상, 원래는 몰트의 남자들이 반발심을 가지게 되리라.
하지만 내 군대는 조금 특수하다. 궁기병, 그러니까 신의 민족은 남녀 구분 없이 전사가 되어 싸우는 중이다.
그리고 전투가 끝난 이후 찾아오는 고양감은 남자와 여자 모두 똑같은 법이다.
“누, 누님, 이건…….”
“나도 슬슬 아기를 갖고 싶었거든. 족장님 눈에 들기 위해서라도 애 한 명 정도는 낳아야 하지 않겠어? 자, 한 발 진하게 싸주라구.”
“벌써 그렇게 약한 소리해서 되겠어? 몰트의 남자는 연약한걸.”
“아, 아직이거든! 허리가 빠질 때까지 계속 해주마!”
“셋이서 달려들면 날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나 보지? 좋아, 덤벼!”
무슨 일인가 하고 보러 온 남자들을 계속해서 따먹는 중이다.
이래야 진짜 대등한 관계라 할 수 있으리라.
“으히이이잇…….”
나도 눈앞에 있는 모니카를 잔뜩 따먹어야겠군.
◇◇◇◇◇◇◇◇◇◇◇◇◇◇◇◇◇◇◇◇◇◇◇◇◇◇◇◇◇◇◇◇◇◇◇◇◇◇◇◇◇◇◇◇◇
다음날
병사들은 개운한 표정으로, 잔치에 참가했던 여자들은 탱글탱글한 피부를 자랑하는 와중 나는 딱딱한 표정으로 세리아, 레오폴트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원인은 라펜에서 급사가 전달해 준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이건 클라라가 보낸 편지였는데 연방과 제국의 전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원이다. 하지만 이번엔 평상시와 조금 달랐다.
“제국 함대가 노스테리에스 강에 침입……연방 하천에 있던 함대를 격파……했다는 거군요.”
“동시에 상륙 쪽에서도 대규모 요새가 돌파당했다는군…….”
“제국병이 알벤스 서쪽에 나타났다는 정보도 있지 않나!”
클라라는 말로도르 후작한테서 엿들은 정보를 필사적으로 모아 적어준 모양이다.
“레오폴트, 어떻게 생각하지?”
“이 편지만으로는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습니다만.”
“정확하지 않아도 돼. 네 사견을 묻는 거다.”
“남부에서 돌파당한 뒤 강을 잃었다. 서쪽에 나타난 부대는 아마도 함대가 상륙한 것으로 보입니다. 알벤스는 이미 위기 상황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겠군요. 며칠 안에 함락당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
편지는 긴급으로 도착한 물건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3주 전에는 출발했을 게 분명하다.
다시 말해 이미 결판이 났다는 얘기다.
“서쪽 최대 도시 알벤스의 함락은 그 주변 일대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강의 통제권도 상실한 이상 사실상 백도까지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순식간에 연방이 당하다니……쉽사리 믿기진 않네요.”
마이라가 눈을 감고서 신음했다.
나도 동감이다. 제국은 몇 번이나 연방한테 시비를 걸고 다시 내쫓겼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이번엔 전혀 양상이 다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백도의 삼중 성벽을 봤을 땐 저걸 넘을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내가 진짜로 걱정되는 건 연방이 아니다.
“클라라랑 클라우디아……무사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클라라는 나를 잘 따라주는 여자고 클라우디아는 심지어 내 아이를 낳아 주었다.
“너무 멀어서 도울 수 없는 게 안타깝군.”
만약 이게 마그라드 정도 되는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도우러 갈 텐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연방의 열세로 인한 상황 변화는 분석해 둘 테니 지금은 남부 국가 문제 쪽에 집중해 주십시오.”
레오폴트의 음색은 변함이 없다.
너는 남의 마음을 너무 헤아리지 못한단 말이지.
분명 어렸을 적부터 짜증 나는 꼬맹이였을 게 분명해.
어린아이 몸뚱어리에 이 녀석의 무표정한 얼굴이 달라붙어 있는 걸 상상하니 살짝 웃음이 터져나왔다.
“도움을 요청하면 전력으로 도우러 가야지. 그 전까진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제발 무사히 있어달라며 점차 어두워지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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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낸 직후, 알벤스
“도시 서쪽을 수비해라! 사병과 기사단을 파견 보내!”
“성문은 이미 파괴되었다! 시내에서 싸우란 말이다.”
“원군이 없다고!? 그럴 수가, 약속이……배까지 통째로 침몰했단 말인가.”
알벤스 영주, 말로도르 후작의 저택은 극심한 혼란 상황에 빠져 있었다.
얼마 전부터 연방은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제국의 해양 함대는 노스테리에스 강에 침입하여 연방의 하천 함대를 격파하였고 혼란에 빠진 그때, 그 정보가 전달되기도 전에 상륙한 제국의 별동대가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인해 알벤스 바깥에서 재편성 중이었던 예비 부대는 괴멸, 심지어 요새까지 밀린 이후에도 열심히 싸우며 시간을 벌고 있던 연방군 본대가 아이러니하게도 포위당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로 인해 알벤스를 지키는 건 말로도르 후작의 사병과 기사단만 남게 되었다.
후작은 연방에서 손에 꼽히는 강력한 귀족이지만 사병은 2만 정도……사실상 알벤스의 함락은 누가 보기에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후작님……서쪽과 남쪽 모두 침공당했고 항구에선 제국 함대가 거센 포격으로 공격하는 중입니다. 이제 알벤스는 끝장입니다. 영주님만이라도 홀로 도망치십시오. 동쪽이라면 아직 혈로는 열려 있습니다.”
무릎을 꿇은 기사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로도르 후작에게 호소했다.
전투의 영향으로 대규모 화재가 벌어진 도시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후작은 조용히 말했다.
“너희도 나도……서로의 조부, 아니, 조부의 조부 대부터 당주와 기사가 되어 도시를, 영토를 지켜온 사람들이다.”
크윽, 하고 모든 이들이 울음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이미 영지의 태반은 유린당했고 민중들은 희롱당하거나 죽어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알벤스도 머지 않아 그리 될 것이다.
“우리는 선조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이런 상황에서 어찌 도시를 버리고 도망칠 수 있겠느냐?”
후작은 검을 뽑아들고 칼집을 버렸다.
“이곳은 우리의 도시, 우리는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죽을 뿐이다.”
기사들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중들은 되도록 도망칠 수 있게 하라. 대표를 정해 전쟁이 끝나면 항복시키도록. 제국이라 한들 황무지를 지배하고 싶어하진 않을 터. 항복한 민중들을 전부 죽이진 않을 테지.”
점령지의 민중은 가혹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리라.
“하지만 민중에게 토지를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 굴욕적인 삶을 선택한다면 그것 또한 옳은 법.”
하지만……하고 후작은 기사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귀족에게 그러한 길은 없다. 전원, 싸울 수 있는 자는 전부 다 무기를 손에 쥐어라! 싸우지 못하는 병자, 아이는 자살하라.”
““옛!””
기사들의 눈에 망설임은 없다.
이들은 귀족, 영지와 민중을 지키는 것이 사명이다. 그것을 해낼 수 없는 이상 일족에게 남겨진 길은 파멸뿐이었다.
“끝까지 당하기만 할 순 없지. 준비가 끝나는대로 우리도 총공격에 나선다. 연방 귀족의 긍지를 보여주자꾸나!”
옛, 하고 모든 이들이 소리치고 준비를 시작했다.
죽음을 각오했다고는 해도 아직 할일이 많이 남은 상황이다.
“여보…….”
“클라우디아……너도 그대로 백도에 있었더라면…….”
후작은 어린아이를 끌어안은 클라우디아를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는 아직 죽을 수 없어요. 이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살아가겠습니다!”
당주의 정실과 그녀의 아들, 적에게 욕보이기 전에 자살시키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 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지 못하리라.
하지만 살고 싶다고 호소하는 아내와 아직 어린 아들……대체 그 누가 죽으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후작은 천천히 부인과 아이의 뺨을 쓰다듬고서 가볍게 키스를 해주었다.
그리고 홱 눈을 치켜 뜬 뒤 소리쳤다.
“백도에서 보인 방탕하기 그지없는 생활, 네놈은 더 이상 내 아내가 아니다! 아이도 어느 핏줄인지 알 수 없는 잡것의 씨일 테지! 오늘 이후로 너와 이혼, 가문에서 파문하겠다! 위로금으로 저택에 남긴 재산을 얼마든지 줄 테니 어서 떠나도록!”
휙 뒤를 돌아본 후작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진짜 비싼 것들은 지하에 모아 두었다. 제국 놈들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불태울 예정이니 서두르거라.”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클라우디아는 치맛자락을 붙잡고서 정중하게 절을 했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늙고 체형도 무너진 그녀.
하지만 후작의 뇌리에는 신혼 당시, 여행을 떠났던 엘렉트라에서 배를 보며 미소 짓고 있던 그녀가 떠올랐다.
“사랑했다.”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후작에게서 등을 돌리고 클라우디아는 떠났다.
마찬가지로 클라라도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서 부인의 뒤를 따랐다.
“이제 미련은 없어졌구나. 내 마지막 화염으로 제국 야만인 놈들을 불살라주리라.”
후작의 손에선 결혼 이후 한 번도 뺀 적이 없는 결혼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마지막 반격이 시작된다.
압도적으로 숫자가 작은 병력이 갑자기 공격에 나서면서 제국의 포위망에 아주 약간의 흐트러짐이 발생했다.
그 틈을 비집고 나가듯이 작은 여자와 둥근 여자가 달려간다.
“후우! 후우!”
“사모님, 너무 많이 갖고 가십니다! 이래서는 도망칠 수 없습니다! 버리시죠!”
클라우디아는 코트 밑에 넘칠 정도로 장식품을 두르고 보석 같은 건 천으로 몸에 에두르면서 갖고 왔다.
하지만 제국의 유격병한테 들킨 나머지 마차를 잃었고 걸어서 떠나기 시작한 뒤 그 무게는 그녀의 체력을 크게 깎아먹고 있었다.
아기를 끌어안고 달리는 작은 체구의 클라라조차 점차 따라잡지 못할 지경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무일푼으로 도망치면 나랑 이 아이를 대체 누가 받아들여준다는 건가요!?”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여기서 붙잡혔다간 아이도 재산도 남는 게 없습니다.”
“저기 있다, 저놈들이다!”
“여자는 붙잡아서 즐기자고! 둥근 쪽은 맛있어 보이는군!”
마차를 망가트린 제국의 유격 부대가 쫓아왔다.
다행히 기병은 없지만 병사와 여자 두 사람의 속도 차이는 확연해서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보석을 뿌리면 잠깐 동안 시간 벌이는…….”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계속해서 갖고 도망치겠다며 억지를 부렸다.
두 사람이 숨을 헐떡이면서 살짝 높은 언덕을 올랐을 땐 이미 제국병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클라라는 허둥지둥 언덕 주변을 둘러봤으나 몸을 감출 수 있을만한 숲도 풀밭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시야가 탁 트인, 아래쪽으로 쭉 뻗은 기다란 경사면이 동쪽으로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여기까지인가 하고 클라라는 땅바닥에 아기를 놔두고서 자기 옷 가슴께 쪽으로 손을 갖다 댔다.
희망은 별로 없지만 자기가 먼저 나서서 몸을 내어주면 추격대가 부인을 방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비장한 각오와 정반대로 클라우디아는 기쁜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해냈어! 클라라, 붙잡으세요.”
포기하려던 클라라와 아기를 끌어안고 클라우디아는 경사면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안 됩니다. 이제 절대로 도망칠 수가, 어엇!?”
처음엔 느릿느릿한 속도였으나 부인이 내리막길에 발을 디딜 때마다 점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헤헤헤, 이제 못 도망……미친 빠르잖아!”
“놈들을 쫓아! 이런……대체 얼마나 빠른 거냐!”
코앞까지 다가와 있던 제국병의 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지기 시작했다.
“사, 사모님!? 이건!”
“저는 내리막길에선 말과 비슷한 속도를 낼 수 있어요. 이 애를 단단히 껴안고 있으세요!”
더욱 더 가속하는 클라우디아, 끝내 두 다리를 땅바닥에서 떼어놓고 크게 뛰었다.
“말도 안 돼, 저 여자 구르는 중이잖아!”
“마치 말이 달리는 듯한 속도로군…….”
“고, 고기 구슬…….”
한참 멀리 떨어진 제국병은 추격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클라우디아의 신변과 몸에 두른 보석의 존재를 모르는 그들 입장에서 도망치는 여자 두 사람은 그렇게까지 끈질기게 추격할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 사모님……엄청납니다!”
“하아하아……땀이……땀이 안 멈춰요……으으응, 더워라!”
이틀 동안 이어진 반격 끝에 알벤스는 함락, 말로도르 후작과 그와 관련된 일족이 전부 목숨을 잃었다.
후작의 저택은 그가 직접 지른 불로 인해 오랫동안 불타올랐고 막대한 재산은 전부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중요한 보급 거점을 잃고서 전력의 대부분을 상실한 연방군은 강가 북쪽 기슭까지 후퇴했다.
끝내 백도 주변에서 공방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남편은 잊지 않겠어요……자, 하드릿 님이 계신 곳으로 떠나죠! 그분의 아이를 안고서!”
“후작님은 모르는 게 더 행복하셨을 수도 있겠어요. 정말 너무한 여자……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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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VS 제국 전쟁 병력 비교 (병사 숫자는 징용에 따라 점차 늘어납니다)
오르가 연방
병사 숫자 현재 30만 동원 한계치 255만 기존 손실 105만 민간 희생 70만
가랜드 제국
병사 숫자 현재 230만 동원 한계치 310만 기존 손실 80만(전노병은 포함 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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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3살 가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아레스 왕의 친구
영주민 162000 중심 도시 라펜 24000 린트브룸 4000
가족
논나(정실) 카라(측실) 멜(측실) 쿠우(애첩) 루우(애첩) 밀레(애첩) 레아(애첩) 미티(혼약) 마리아(혼약) 카트린느(혼약) 케이시(요괴) 리타(메이드장) 요구리(극작가) 피피(애첩) 앨리스(마법 소녀)
말스린느(애첩) 딸 스테파니(애첩) 브리짓(애첩) 펠리시(애첩)
세바스찬(집사) 도로테아(애첩, 왕도) 멜리사(애첩 왕도) 알마(왕도)
아이
스우 미우 예카테리나 아마타 아나스타샤(딸) 안토니오 클로드 길버트 라이너 바르톨로메이(아들) 로즈(의붓딸)
인외
라미(애인 뱀) 미루미(인어)
부하
세리아(부관) 기드(호위대) 크롤(허무 승려) 이리지나(지휘관) 루나(지휘관) 루비
마이라(치안관) 포르테(연수 감독) 그레텔(내정 연수)
레오폴트(참모) 아돌프(평화로운 날들) 트리스탄(장기 출장)
클레어&롤리(전용 상인) 슈바르츠(말) 릴리안느(여배우)
군: 10950명 (영지 내 대기 보병 2000)
보병: 5300 기병:800 궁병: 1000 궁기병: 1850
대포: 30문 대형포 10문
재산: 금화 1070닢
경험 인수: 229명 자식: 48명+555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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