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중앙군 결성』
궁전 앞 광장. 반란 진압 시에 격전의 무대로 쓰였던 그곳에 3000명에 달하는 숫자의 병사가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오늘은 새 국왕의 권력으로 창설된 중앙군 결성식이 거행되는 중이었다.
“제군들, 나는 이 용감한 모습에…….”
국왕 알렉산드로 1세의 연설이 이어진다.
중앙군은 최종적으로 현재 규모의 3배가 넘는 숫자가 될 예정이다.
한 시라도 빨리 기동시키기 위해 당장 마련된 전력으로 일단 편성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제1기병 중대는 거의 정원이 다 갖춰졌습니다만.”
내 옆에는 세리아, 반대쪽에는 아고르가 말에 올라탄 채 서 있었다.
아고르는 정식으로 내 부관으로서 배치해 두었다.
세리아는 불만족스러운 듯했으나 그녀한테 지휘 관련 조언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군단장님이 우선적으로 기병을 배치해 준 덕분이지.”
아직까지 병사 인원이 제대로 모이지 않은 군단 안에서 200기의 기병을 보유 중인 내 중대는 틀림없이 주력 부대다.
게다가 기사단과 같은 장비를 갖고 있는 중기병 180기에 정찰용 경비병 20. 기병만으로 이루어진 이 편성은 몬스터나 도적 떼를 잡는 데에 쓰일 일이 없으리란 건 너무나 명백했다.
“숫자는 갖춰졌습니다만 숙련도에는 아직 문제가 있습니다. 한동안은 계속 훈련을 해야 할 겁니다.”
연방의 완성된 군대를 지켜봐 왔던 아고르 입장에선 아직 부대의 숙련도는 미숙한 듯했다.
보병과 기병은 상황이 전혀 다를 테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는 초보자보단 훨씬 낫다.
아고르도 원래 성실한 성격이다 보니 부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굴러들어온 돌을 정말 운 좋게 주웠군.
“우리의 첫 번째 역할은 적의 진지를 돌파하는 것. 일단은 돌격 및 돌파 훈련을 우선시해라.”
“예!”
국왕의 연설이 끝나자 군단은 광장을 나와 왕도를 천천히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행군이 귀족 저택이 모여있는 구획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걸로 보아 중앙군의 위용을 외적 이외의 다른 자들에게도 과시하려는 게 뻔히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그 중에서도 기병 200기 쪽에서 울려퍼지는 어마어마한 말발굽 소리는 압권. 아무것도 모르는 채 손을 흔드는 아이와 대조적으로 귀족들 중에선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을 짓는 자들까지 있었다.
중앙군 창설 소식은 왕국 전역에 퍼졌으며 군단장 에이리히 라드할데 준남작 아래, 국왕 직속 병력으로써 고르도니아 주력 부대 지위를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으아, 피곤해! 정말 장비 하나는 장난없는 부대라니깐~.”
“입 조심해라! 너는 일반병이란 말이다!”
행사가 끝나고 가벼운 말투로 내게 말을 건 크리스토프를 아고르가 제지했다.
세리아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는 중이다.
“미, 미안하다고……팍 식네…….”
크리스토프는 정말 일반병으로 배치해 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량이 지휘관 급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말이지.
오히려 일반병 중에서도 평균 이하 수준일 것이다. 그냥 머릿수 채우기지.
“너도 정말 바보 같은 자식이구만.”
전 [여명의 날개] 인원 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칼도 자기는 군대 체질이라 여기 말고 갈 데가 없다며 부대 안에 남은 것이다.
건방지면서도 경박한 성격인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은 덕분인지 종종 같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둘의 차이점은 실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나뿐이다.
“생각 좀 해보라고 칼. 지금까지 평범한 말투로 대화하던 사람 상대로 경례하는 게 그리 쉽진 않잖냐.”
“용병이란 건 돈만 주면 경례하는 법이거든……너는 일반인이었나?”
“그나저나 대장님도 사람이 참 짖궂어.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소대장 정도 맡겨주면 좋았을걸.”
병사들한테 그런 끔찍한 만행은 저지를 수 없다.
크리스토프가 맡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부대 마스코트 정도다.
“그런 건 최소한 네 소대 안에서 제일 강해진 다음에 얘기해라.”
중대장급 이상은 개인의 무용보다 지휘 능력이 중요시되는 국면도 많지만 소대장은 그 소대 안에서 가장 강한 놈이 되는 게 일반적이다.
허풍쟁이 경박남 밑에 붙을 부하는 없다.
아고르는 부대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곧바로 훈련을 시작한다고 했다.
귀족 신분 중대장은 가끔씩 상황을 보러 오는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한다.
확실히 대장이 매번 시끄럽게 얼굴을 내비쳤다간 훈련도 제대로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럼 훈련은 아고르 너한테 맡겨두지.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알리러 와라.”
말이 다그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경례를 받으면서 나는 훈련장을 빠져나왔다.
“야……저게 귀족 대장님이냐? 대낮부터 창관이라도 가는 건가.”
“새꺄! 다 들린다고.”
“헹, 들으라고 하지, 어차피 달려들 배짱도 없을걸.”
“너 아무것도 모르냐? 저 대장님은 위험하다고! 지난번 반란 때 근위병 20명을 베어넘긴 다음 신귀족이 된 맹장이란 말이야!”
“게다가 근위 대장을 두 동강 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소문으로는 죽인 사람을 꼬챙이처럼 꿴 다음 뜨끈한 피로 목욕하는 게 취미라던데.”
“저택에 여자를 잔뜩 모아두고서 하루 종일 박아댄다는 소문도 들었어.”
“손에 마구 잡히는대로 처녀를 따먹어서 자지가 늘 피투성이라는 얘기도 있었지.”
“저택에 침입한 도둑을 죽인 다음 내장을 뜯어먹었다는 이야기도…….”
대체 난 무슨 괴물이 되어있는 거냐.
그래도 얕보이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서 방치하기로 했다.
설마 병사들도 저걸 전부 진심으로 믿고 있을 리도 없고.
그리고 시덥잖은 일에 시간을 쓰고 싶진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귀가하던 도중, 상점에 들러서 주문해 둔 물건을 받았다.
“그것은……무엇입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따라 훈련장을 빠져나온 세리아가 흥미롭다는 듯이 물건을 들여다보았다.
사실 너를 위해 산 물건이지만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비밀로 해야겠다.
“카라, 멜리사. 시간 좀 비나?”
“응? 아기 만들기 할래?”
“네―. 괜찮아요.”
꽤 커다란 저택을 산 덕분에 가족들이 쓸 개인실과 하인방을 내주었는데도 아직 빈 방이 있었다.
그 방 중 하나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들고 온 다음 내가 사온 물건……몇 권의 책을 펼쳐두었다.
“이건……무엇입니까?”
“나 글자 못 읽어. 읽어줘―.”
“이건……글자 연습용 책입니까?”
세리아가 추측한대로다.
우리 중에서 글자를 못 읽는 건 세리아와 카라뿐이다.
세리아는 글자를 못 읽는 걸 신경 쓰기도 했고 앞으로 글자를 써야 할 일도 생길 것이다.
카라는 딱히 상관없을 것 같긴 하지만 아기 만들기만 하고 있으면 너무 짐승 같으니까 지식도 새겨줄 생각이었다.
“그래. 세리아, 카라, 너희 둘도 읽고 쓸 수 있도록 공부해라. 멜리사한테는 선생님 역할을 부탁하지.”
멜리사는 읽고 쓰기뿐 아니라 계산까지 할 수 있다.
논나도 읽고 쓰기는 아주 잘 하지만 카라랑 워낙 상성이 나쁘고 세리아도 성격이 잘 안 맞는 것 같으니까.
“나라도 괜찮다면 얼마든지, 두 사람 다 열심히 해보자?”
“에이길 님……감사합니다…….”
“엥―귀찮은데.”
세리아는 감동한 건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지만 카라는 아니나 다를까 별 생각 없는 듯했다.
어떻게든 지식을 흡수하려고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세리아의 모습이 흐뭇하긴 했으나 과자나 침대 위에서 맛볼 보상에 낚여 마지못해 공부하는 카라의 모습이 내겐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
◇◇◇◇◇◇◇◇◇◇◇◇◇◇◇◇◇◇◇◇◇◇◇◇
옛날 숲 안에서
“봐요, 또 틀렸네요.”
“애초에 이런 걸 외워서 뭐에 써.”
“정말……. 알겠어요. 다음에 받아쓰기에 틀린 부분이 없으면 우리 꼬마의 자지에 아주 굉장한 걸 해줄게요.”
“굉장한 거?”
“네. 제 혀, 제법 길잖아요? 이게 어떻게 되려나요~.”
“………….”
“3번 연속으로 만점 받으면 하루 동안 꼬마의 노예가 되어줄게요.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서……굴욕적인 것도 아픈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구요.”
“………….”
“알몸으로 하루 온종일 개처럼 기어다니게 되는 걸까요? 아니면 침대 위에 가랑이를 크게 벌린 채 묶어둘래요? 아, 흰무가 있네요, 게다가 흙까지 잔뜩 묻어있고……설마 이런 걸 그곳에 박는 저질 놀이는 하지 않겠죠? 우후후.”
“집중하고 싶으니까 조용히 해 줘.”
“어머나, 귀여워라~♪”
◇◇◇◇◇◇◇◇◇◇◇◇◇◇◇◇◇◇◇◇◇◇◇
“그때는 멋지게 단숨에 머릿속에 때려박고 달콤한 연인 놀이를 했었는데 말이지.”
그 다음부터 공부 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 에이길 님, 이 부분을 모르겠습니다만…….”
“세리아, 거긴 이렇게 적는 거다.”
“가, 감사합니다!”
공부 시간은 우리가 엉겨붙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러 훔쳐보러 온 논나가 카라와 말싸움을 시작할 때까지 계속됐다.
“에이길 씨. 만약에 시간이 나면 말이야.”
“애들한테 글자를 가르쳐 주고 싶다는 얘기겠지?”
“아……응.”
“집안일이랑 목욕탕 쪽 일을 다 끝내고 난 다음에 하도록 해. 마리아한테는 일이 다 끝나기 전까진 안 된다고 말해두지. 그 녀석은 성격이 착하니까 계속 응석을 받아줄 것 같거든.”
“응!”
나는 책을 별로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장이라도 사서 이것저것 모아볼까?
카라와 논나가 말싸움을 하는 동안에도 개의치 않고 묵묵히 받아쓰기를 계속하는 세리아를 보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
한 달 후.
“중대――정렬!!”
금속음과 함께 180기의 중장기병이 사각형 모양으로 열을 맞추기 시작했다.
기병이 열을 맞추는 난이도는 보병보다 훨씬 더 높다.
따라서 이것을 얼마나 빠르게 해낼 수 있느냐가 전장에서의 진형 변경 속도 및 이동 속도를 가늠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우리 제1기병 중대는 완벽한 모양의 진영을 순식간에 완성했다.
신생 중앙군 중에선 틀림없이 가장 빠른 부대일 것이다.
“훌륭하군. 한달만에 여기까지 훈련시키다니 아주 잘 했어.”
“아뇨,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보다 2배는 더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고르는 연방군의 기준에 맞춰 정예 부대를 목표 삼고 있다.
오르가 연방군의 숙련도는 중앙 평원 소국들과는 당연히 비교조차 되지 않고 제국과 비교해도 뛰어다나는 게 상식이다.
“집단 돌격 훈련도 숙련도가 아주 훌륭하군. 이 다음엔 활을 막아내면서 시행하는 실전 지향 중심의 돌격 훈련을 시켜보는 것도 좋겠어.”
중장비 기병대는 보병 입장에선 악몽에 가깝다.
당연히 활 같은 원거리 무기를 이용해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것을 막아내면서 상대한테 돌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전장에서의 활용도를 완전히 가른다.
“예. 돌격 연습 중에 방패를 들고서 하는 게 있긴 합니다만…….”
“끝부분에 천을 감싼 화살을 실제로 쏘게 만들어라. 궁병 부대 쪽에 미리 이야기해두지. 튼튼한 방어구를 입고 있는만큼 맞아봤자 별로 아프지도 않을 거다.”
“그럼 그 부분에 염료를 발라서 머리와 가슴 부분에 공격을 맞은 사람한텐 추가 훈련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군.”
중앙군 쪽 예산은 비교적 높게 책정되어 있다.
훈련에 사용할 물자 정도는 충분히 조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아직 완성했다 말하기엔 이릅니다만, 부대의 숙련도만 따져봤을 땐 상당한 수준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겠지. 저 녀석들은 이미 실전 투입이 가능한가?”
“모르겠습니다.”
미덥지 못한 대답에 내가 아고르를 노려보자 그는 곧장 말을 이었다.
“중앙군 내부에서 보면 우수한 부대입니다만 전장에서 써먹을 수 있을지는 전장 안에서밖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실전 경험이 없는 부대는 아무리 훈련을 거듭해도 반푼이에 불과합니다.”
역전의 용병들이 모였던 여명의 날개는 최강의 숙련도를 자랑하던 근위대를 격파했다.
아고르의 의견은 아주 타당하지만 이것만큼은 나와 에이리히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설마 부대를 키우고 싶으니 전쟁을 벌이자, 라는 의견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얘기로군. 방금 전에 얘기한 화살을 날리는 훈련 준비는 예정대로 진행하지. 계속해서 열심히 훈련하도록.”
“예!”
공동 훈련 관련 이야기는 에이리히……라드할데 경한테 이야기를 미리 해둬야만 한다.
“그래서,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그래, 기병이 궁병의 표적이 되는 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지. 필요한 훈련이야, 허가하마.”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실전 경험이라……역시 내 의견만 가지고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지……중앙군은 이미 왕도 안에서 정예 부대라고 소문이 난 상태니까 시덥잖은 도적 퇴치나 마물 퇴치에 동원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말이다.”
“당분간은 훈련하는 수밖에 없는 겁니까?”
“그래. 병사 숫자는 착실히 늘어나는 중이다. 이대로만 가면…….”
그때 갑작스러운 방문자가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흠, 그 부분은 나도 생각하였느니라.”
“폐하!”
에이리히를 포함하여 모든 지휘관이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들라, 훈련을 방해할 생각은 없노라.”
“전원 차렷! 계속해라!”
병사들은 한층 더 열심히 훈련을 재개했다.
“나도 실전 경험이 없는 군대가 얼마나 연약한지는 잘 이해하고 있느니라. 따라서 미리 손을 써 두었지.”
“황송합니다만 여쭈어 봐도 괜찮겠사옵니까?”
왕은 나와 에이리히 말고 다른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 입을 열었다.
“나는 대관식에서 선언한대로 군대 증강에 필요한 비용을 각 영지 귀족들한테 임시 징세로 해결한 상황이나,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귀족들도 많을 것이야.”
당연한 이야기다. 갑작스러운 임시 징세 이야기에 불만없이 받아들이는 귀족은 없을 것이다.
“특히 알노드 변경백과 그 주변 귀족들은 성명을 작성하여 나에게 항서를 보내왔느니라.”
변경백이란 국경 주변에 광활환 영지를 갖고 있는 귀족으로, 그 지위는 후작과 동등한 것으로 취급된다.
국경에 위치해 있는 그 특성상 독자적으로 거대한 병력을 지닐 수 있고 지위도 높은 덕에 주변 귀족들의 중심 인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3배에 달하는 임시 징세를 부과하고 이번달 안에 세금이 체불될 경우엔 영지 내의 철광산을 국유화하겠다고 통보하였노라.
엉망진창이다.
3배나 되는 징세는 물론이고 철광산은 금, 은 광산과 버금갈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권리다.
이것을 국유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영지를 국유화한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폐하……그리 하여서는.”
새로운 왕의 말도 안 되는 요구. 주변에는 아군 귀족들과 독자적인 병력도 있다.
그렇다면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몇 되지 않는다.
“세금이든 철광산이든 어느 쪽을 내놓든 이득. 만약 어리석은 생각을 떠올린다면 중앙군에겐 실전 경험을, 나에겐 광활한 국유지를 넘겨줄 뿐이니라.”
왕은 전부터 고참 귀족들의 힘을 꺾어두고 싶어했다.
분명 이번 일을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아마 조만간 제군들에게 활약할 무대가 갖춰질 것이노라.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라.”
왕이 떠나간 후 나와 에이리히는 실전 중심 훈련 계획을 일정에 넣을 것을 결정했다.
◇◇◇◇◇◇◇◇◇◇◇◇◇◇◇◇◇◇◇◇◇◇◇◇
고르도니아 남부 알노드 변경백 영지 변경백 저택
“무엇이냐 이것은!! 어리석은 왕 같으니!”
남자는 왕가의 인장이 박힌 편지를 찢어버리고서 책상에 내던졌다.
“주인님, 왕가의 인장을 그런 식으로 다루시면…….”
“시끄럽다! 그딴 애송이를 왕으로 인정한 기억은 없단 말이다.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그깟 놈따위!”
호통을 치는 중년 남성이 바로 알노드 변경백, 고르도니아 남부 아크랜드 국경 쪽에 영지를 갖고 있는 고참 귀족이다.
“롤랑 백작은 계시오!”
“어찌 이리 큰 소리를, 무슨 일이십니까?”
롤랑 백작은 알노드 변경백과 인접한 영지를 가진 귀족으로 두 가문은 대대손손 친밀한 관계를 유지 중이었다.
이미 55살이 넘은 고령의 인물이지만 과거엔 궁정에서 솜씨를 뽐냈던 책사로 유명했다.
“무슨 일이냐니! 백작의 조언에 따라 항의서를 보내봤으나 돌아온 대답이 이것이란 말이오!”
알노드 변경백은 찢어진 편지를 찌를 듯한 기세로 롤랑 백작한테 보여주었다.
말도 안 되는 내용에 늙은 백작도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윽!? 이것은……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내용이군요. 폐하께서도 진심으로 이 요구를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실 리 없습니다. 아마 임시 징세를 어떻게든 받아들이게 만들기 위해 겁을 주고 계신 게 아닐지요?”
알노드는 잠시 냉정함을 되찾았으나 곧장 고개를 저었다.
“놈은 베르톨리우스 전하와 알렌스 공작을 살해한 남자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까지 죽일 심산일지도 모르겠소.”
지난번 반란이 왕위 투쟁 책략의 결과라는 것은 고위 귀족들 사이에선 다들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확실히 그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겠군요……우리가 이 내용에 관해 진의를 파악하려 왕도로 몰려간 순간 일망타진하려는 심산일 수도…….”
“그 말대로요! 그렇다면 이대로 계속 무시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군.”
“아니, 좀 더 좋은 수가 있습니다. 변경백의 슬하에 있는 병사를 집켤시키는 겁니다.”
알노드도 이 얘기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왕은 왕, 대대로 왕을 섬긴 고참 귀족한테 있어서 반역이란 그 무엇보다 무거운 죄였다.
“백작……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알고 있는 것이오?”
하지만 롤랑 백작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왕가의 변혁을 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뜻을 보여주고 왕이 먼저 물러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변경백 영지의 주변 귀족들은 다들 대대로 긴밀한 관계, 협력하면 상당수의 병력을 모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왕이 가만 보고 있진 않을 거요. 우리한테 병력을 보낼 가능성이 있지 않겠소?”
“왕국 쪽 군대는 1만 정도입니다만 각각 지방 쪽 경계 임무를 맡느라 우리한테 병력을 보낼 여유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변경백과 우리 주변 귀족들이 농민들을 그러모으면 5천에서 6천 정도는 모을 수 있을 테지요.”
“듣고 보니……하나 내 병력은 주로 아크랜드 국경에 배치되어 있소. 그 병력을 불러들였다간 국경이 텅 비게 될 것이오.”
“그것도 계획의 일부입니다. 혼란이 길어지면 아크랜드 쪽 국경이 위험해질 것은 왕도 아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전황을 질질 끌면 왕 쪽이 먼저 뜻을 굽힐 테지요. 왕이 물러나면 반역죄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왕도에는 분명 중앙군이라는 이름의 새 군단이 창설된 걸로 기억하고 있소. 그 수가 5천 정도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소만.”
“알노드 변경백, 냉정히 생각하십시오. 그러한 신참내기들이 제대로 된 전투 따위 벌일 수 있겠습니까? 그래봐야 왕의 장난감, 지형도 우리 쪽이 더 유리하니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으음.”
알노드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만약 일이 잘못 굴러갔다간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걸 떠올리고서 결단을 망설이고 있었다.
“이번 건은 우리 쪽에서 먼저 뜻을 굽혀도 왕가의 감시가 더 심해질 것입니다. 영지 내에서 얻은 수입 중, 왕가한테 정당히 보고할 수 있는 것들만 남아있다면 크게 상관은 없겠습니다만…….”
변경백 영지는 국경 쪽에 있으며 왕도와 거리가 멀다.
따라서 영지를 감시하기도 힘들기에 비합법적인 노예 매매, 관세를 뗀 무역 등등 여러 불법적인 행위를 벌이기 쉬웠고, 알노드 가문이 부를 축적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음날, 알노드 변경백 가문을 대표로 일부 가족들이 왕의 권력 남용에 항의를 표명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충언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왕권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선언하고 변경백 영지 안에 병력을 집결시키기에 이르렀다.
◇◇◇◇◇◇◇◇◇◇◇◇◇◇◇◇◇◇◇◇◇◇◇◇
이름: 에이길 하드릿 19살 초여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기사작 왕국군 제1기병 중대장
연봉 금화 80닢
재산: 금화 245닢(은화 이하 제외)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대형 버디슈(창)
방어구: 고품질 강철 플레이트 아머 검은 망토 (저주받음)
동료: 세리아 논나 엘렉트라 멜리사 마리아 카라
하인: 미티 알마 크롤
부하: 아고르(부관) 크리스토프 칼 슈바르츠(말)
경험 인수: 28명
'왕국에 이르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국에 이르는 길 제35화『종언』 (2) | 2024.04.06 |
---|---|
왕국에 이르는 길 제34화『남부 출격』 (0) | 2024.04.05 |
왕국에 이르는 길 제32화『새 집』 (0) | 2024.04.03 |
왕국에 이르는 길 제31화『다시 만난 얼굴』 (1) | 2024.04.02 |
왕국에 이르는 길 제30화『집 찾기』 (1) | 2024.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