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여명의 날개④ 새로운 질서로』
여명의 날개 궁전 방면 주력
기병대
중장기병 80기
경기병 20기
유격기병 40기
돌격대 30기
보병대
경보병 20명
정예보병(보우건 장비) 60명
장창병 180명
궁병 14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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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병단
근위기사단 300기
궁전 경비병 2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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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은 붉은색과 은색으로 치장된 화려한 집단, 반대쪽은 검은색과 갈색이 드문드문 섞여있는 칙칙한 집단.
고르도니아 왕국 근위 기사단과 여명의 날개 경비병대는 궁전 앞에서, 평소 같으면 사람들이 왕래하는 도시 중심에서 충돌했다.
선두를 내달리는 난 덮쳐드는 파도를 갈라내듯이 기사를 베어내면서 돌격해 나간다.
기사 하나가 세리아를 향해 다가가길래 걱정이 되었으나 그녀는 깔끔하게 검을 피하더니 놈의 손목을 잘라냈다.
뒤쪽에서도 돌격대 부원들이 선전하는 중이다.
근위 기사는 중장비를 입고 있지만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단독으로 달려 나가 검을 휘두르는 연습 정도는 했을 테지만 집단전에선 서로의 거리감을 제대로 재질 못하는 모양이다.
대열을 짜서 행군을 해 본 적은 있어도 그대로 전력 충돌전을 벌이거나 전투를 일으켰던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그래도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는 기사는 처치하기 어려운 법이라, 일대일 상황에선 돌격대 인원들도 한 수 뒤쳐지고 있었다.
살짝 겁을 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날개에 깃털이 박힌, 조금 화려한 복장을 입은 대장처럼 보이는 기사 하나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러나라 천박한 것! 나는 그 유명한 백작 가문과 이어진 “시끄러워!”
장황한 자기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창을 내리쳤으나, 대장인만큼 실력이 꽤 되는지 멋지게 내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막았다고 해서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어지는 연격, 3번째 일격을 막아낸 창이 결국 부러지고 말았다.
“기다려라! 무기가…….”
도중까지 말한 찰나, 대장의 목이 날아갔다.
전장에서 무기 교환을 어떻게 하려던 건지. 주변 근위 기사단에선 술렁거리는 소리가, 돌격대에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겁니다 대장!” “뒤를 따라라! 다 죽여버려!”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근위 기사단이 무너져내렸고, 차례차례 목숨을 잃으며 점차 돌파구가 뚫리기 시작했다.
얼추 상황이 정리된 덕에 시야가 트여서 다른 동료 쪽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별로 상황은 좋지 못한 듯했다.
장창대가 수비 중인 본진 쪽에는 크게 손을 쓰지 못한 모양이지만, 기병은 숫자로만 보면 거의 호각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열세. 사실상 이미 붕괴 중이다.
그들을 지원해야 할 보병도 제대로 진입하지 못하는 중이다.
“저거……위험한 것 같은뎁쇼.”
물론 위험하다.
위험하긴 하지만 우리가 도우러 가봤자 전황을 뒤집을 순 없다.
어차피 돌격대는 30명 정도 되는 소수 부대, 돌파 전문 부대인 것이다.
“본진이 무사하다면 문제없다. 이대로 근위 기사단을 돌파한 다음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돼.”
세리아와 맥은 아무 말없이 내 말을 따랐고, 다른 병사들도 이 혼란 속에 있는 것보단 나을 거라 생각했는지 내 뒤를 따랐다.
“여기서 다같이 대열을 짜서 궁전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무장한 놈과 좋은 옷을 입은 할아범, 아저씨들은 베어버리든지 포박해라! 여자는 죽이지 마라! 약탈도 하지마라, 나중에 포상이 나올 거다. 알아들었나!”
네! 하고 다같이 소리치고서 돌격을 재개했다.
그 이후엔 처음부터 끝까지 대혼란. 세리아 말고 다른 아군에 신경을 쓸 새도 없이 그저 눈앞에 있는 적을 베어나가면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누구” 라며 이름을 대는 놈들이 많았는데, 전부 다 무시하고 베어버렸던 게 살짝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베어낸 숫자가 10명을 넘었을 즈음, 드디어 궁전 대문이 시야 안에 들어왔다.
“어이! 문이 열려있는데!”
기사단을 돌파했다 한들 궁전 안에도 경비병이 있는지라 당연히 문을 닫아두고 굳게 방어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문은 활짝 열린 상태, 경비병은 일렬로 서 있을 뿐이었다.
“저 녀석들, 기사단이 뚫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나 보군. 공적이 전부 그쪽으로 돌아가는 걸 막기 위해 언제든지 출격 상태로 대기 중이었다 이건가.”
“그거 끝내주네요.”
살아남은 돌격대는 20명 정도.
궁전 경비대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동을 피우며 허둥지둥 문을 닫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일렬 종대로 궁전 부지 내로 밀려들어가 혼란에 빠진 경비병들을 단숨에 베어버린다.
뒤이어 맥이 거대한 해머처럼 생긴 전투 망치를 이용해 한쪽 철제문을 지나가는 모양새로 파괴해 버렸다.
애초에 궁전 문은 요새 역할로서 기능할 것을 상정하지 않고 만들었기 때문에 강도는 조금 튼튼한 울타리 수준밖에 되질 않는다.
이제 뒤따라 들어오는 부대 인원들도 궁정 안으로 간단히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순식간에 안뜰을 지나쳐 말을 탄 채 궁전 안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우리들. 도중에 차례차례 경비병이 길을 막아섰지만 진형도 짜지 않은 보병들이 20기의 기병을 막아낼 수도 없는 노릇. 그저 짓밟혀 곤죽이 되는 신세였다.
아무리 그래도 궁전 건물 안에서 말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슈바르츠 위에서 내려와 적당히 주변에서 놀고 있으라며 놈의 엉덩이를 찰싹 때려주었다.
제아무리 궁전이 넓다고 해도 벽이나 기둥까지 있는 건물 안에선 특제 버디슈도 쓰기 힘들기 때문에 이것도 슈바르츠 위에 실어두었다. 그리고 나는 등에 차고 있던 논나 가문의 보검, 듀얼 크레이터를 뽑아들었다.
이 은빛 광채는 무척이나 눈에 띄지만 어차피 궁전 안에서 갑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시점에서 그런 걸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세리아와 맥, 칼도 마찬가지로 말에서 내려와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좋아, 이쪽은 이 네 명이면 되겠군. 나머지 놈들은 4~5명씩 뭉쳐서 찾아다녀라!”
지시를 끝마치는 사이 경비병이 내게 달려들었으나 세리아가 놈의 옆구리 쪽 빈틈을 찔러 단숨에 숨통을 끊어버렸다.
“세리아 아가씨도 제법인걸.”
“시끄럽다, 어서 앞으로 가라!”
사실 세리아는 지난번 원정 때 등목을 하던 걸 칼한테 들켜서 부대 내에선 여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상태다.
실력도 상당하고, 무엇보다 남자들만 잔뜩 있는 부대에서 한 줄기 희망 같은 존재로 인정받은 상황이다.
단, 세리아는 나체를 본 칼을 용서하지 않았고 사실상 죽은 사람 취급을 하는 중이다.
“흐읍!”
맥이 방 문을 박살낸 다음 안쪽을 확인하는 중이다.
“칼은 앞, 세리아는 뒤쪽을 경계해라. 맥은 수상쩍은 방문을 박살 내놓도록.”
맥이 박살내려고 했던 문에서 병사 두 사람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나는 닥치는대로 적을 베어주지!”
불쌍한 병사들을 버터처럼 두 동강 낸 다음, 궁정 복도를 피로 물들인다.
“비싼 양탄자가 엉망이 됐군요.”
세리아도 이 분위기에 적응해버린 모양이다.
그 자리에 있던 시녀가 병사의 참혹한 최후를 목격한 나머지 그대로 실신해 버렸다.
“좀 지나치게 넓구만요. 하나부터 열까지 방을 전부 다 확인할 수도 없고 말이죠.”
칼이 전방에서 고개를 내민 병사 한 명을 베어버리며 그렇게 말했다.
칼이 말한 대로다.
하지만 황태자가 있는 곳은 궁전의 중심부라 쳐도 재상은 어떤 방 한 곳에 틀어박혀 은닉해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허투루 무시할 순 없었다.
“후속 부대도 언젠가 올 거다. 지금은 수상쩍은 방 안을 조사하면서 궁전 중심부로 가자고.”
탈출하게 놔둬선 안 된다.
특히 황태자가 탈출하는 데 성공해서 이쪽의 거짓말을 밝혀내면 우리는 정규군한테 섬멸당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결국 귀찮기 짝이 없는 임무잖아!”
나는 세 명의 병사를 두 동강 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뛰쳐나오는 병사를 베어내고, 겁을 먹은 하인들을 흘끗 쳐다본 다음 차례차례 방을 확인하고 떠난다.
혹시 도망친 건가?
그런 나쁜 예감이 들기 시작한 그 순간, 수상한 집단 하나를 발견했다.
강인한 병사 몇 사람이 호위 중인 노인, 붉은 망토에 화려한 복장. 상당히 지위가 높은 인물인 건 틀림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호위 임무를 맡고 있는 병사의 복장이 근위병의 그것이 아니었다.
만약 궁전 내에 자신의 사병을 데려온 것이라면, 그 정도 권한을 지닌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묻겠다!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도망치려고 하는 인물의 등 뒤에서 커다랗게 소리치며 질문을 던졌다.
“천박한 것! 죽여버려라!” “적군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경계해라.”
병사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려 하지만, 이건 당연한 일이다.
“재상 각하! 어서 가시지요!”
드디어 결정타가 나왔다.
우리 네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상 아렌스 공작! 제2왕자 전하의 명으로, 그 목숨을 받아가겠다!”
나를 선두로 재상 쪽 집단한테 달려들었다.
역시 재상의 사병인만큼 기술도 속도도 뛰어난 편인지 내 참격을 완전히 간파하고서 막아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당연히 그렇게 막아내겠지. 하지만 그 행위가 네 목숨을 앗아갈 거다.
병사의 검은 가벼운 소리를 내며 잘려나갔고, 오른손과 함께 공중을 맴돌았다.
듀얼 크레이터는 평범한 강철 정도라면 간단히 두 동강 낼 수 있는 것이다.
이어서 한 발 자국 더 파고들어 날린 횡베기, 갑옷과 함께 병사의 가슴을 썰어버렸다.
“쩐다……무슨 버터인 줄 알았네.”
칼이 경악스럽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칼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사람씩 쓰러지자, 동요한 병사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나머지 세 사람도 단숨에 달려들었다.
한 번 도주하기 시작한 병사의 사기를 고무시키려면 뛰어난 지휘 능력이 필요한 법인데, 안타깝게도 재상 각하께선 그쪽 방면에 재주는 없는 듯했다.
병사들이 쓰러지고, 나머지는 도망치기 시작하자 복도에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 주저앉은 재상 하나만이 남게 되었다.
“제1황태자는 어디 있지?”
“너희는 엘디오의 수하더냐……이런 일이.”
“질문에 대답해라. 그러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황태자는 스스로 즉위를 선언하고 어전 안에 있다! 그것보다 네놈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히 끝날 줄!”
내가 눈으로 신호를 보내자, 칼이 검을 휘둘러 목을 날려버렸다.
어서 주워담은 다음 황태자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야 한다.
“다음은 어전이다! 얼른 가자.”
난 그렇게 말했으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러지?”
“……어전이 어딥니까요?” “나도 모른다.” “저도요.”
그러고 보니 그렇군. 우리 같은 평민이 궁전의 지리를 파악하고 있을 리도 없다.
어쩔 수 없지.
시야에 들어온 문을 걷어차 안으로 들어간 다음 침대 옆에서 떨고 있는 메이드를 붙잡았다.
“넌 어전이 어디있는지 아나?”
“주, 죽이지 마!! 싫어! 살려줘어! 죽기 싫어! 제발!!”
우리 네 사람은 현재 무기를 뽑아들고 있고, 온몸은 피투성이, 칼날에선 피가 뚝뚝 떨어지는 데다가 칼은 허리춤에 잘린 목까지 달아둔 상태다.
평화로운 인생을 살아온 아가씨한테는 조금 무시무시한 광경일지도 모르겠군.
“싫어어어어어어어…….”
메이드는 허리 힘이 쭉 풀려 주저앉더니 바닥에 물웅덩이를 만들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얘기도 못하겠군.
“으읍!”
혀까지 집어넣은 진한 키스를 하고서 10초 정도 혀를 데굴데굴 굴렸다.
“이제 좀 진정이 됐나? 너를 죽일 생각은 없다, 이름은?”
“히익!”
한 번 더 키스.
“이름은?”
“프란체스카……예요.”
메이드는 약간 진정이 된 건지 겁먹은 채로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아래쪽에서 아직까지 게속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긴 하지만 문제없을 것이다.
“좋아, 프란체스카. 어전이 있는 곳을 가르쳐 줘. 너한테는 아무 짓도 하지 않으마.”
“어전은……동쪽의…….”
“고맙다.”
나는 어전의 위치를 물어낸 다음 한 번 더 키스를 하고나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프란체스카는 자기 입술을 매만지면서 멍하니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 문제 있냐?”
“아뇨, 대장의 여색이 정말 장난없는 수준이라 존경심까지 생겼걸랑요.”
“정말 진한 키스였습니다. 그 여자까지 베어 죽여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일그러진 존경심과 질투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나는 어전 앞에 도착했다.
“처음 상황이랑 달리 적이 전혀 없구만요.”
아마 돌격대 외에 다른 부대가 기사단의 수비를 돌파하고서 돌입한 것이리라.
궁전 곳곳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오오! 너희도 무사했나.”
어전에 언제 들어갈지 타이밍을 재고 있던 사이, 브루노와 부하 몇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은…….
“전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의 명령으로 형님을 해하는 것이니라. 내가 직접 오는 것이 도리인 법.”
배짱 하나는 두둑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하여, 재상은 어찌 되었나? 분명 놈은 도망칠 심산이었을 테지.”
나는 칼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머리를 꺼내 보여 주었다.
“방금 전, 궁전 복도에서 처리했습니다.”
엘디오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하, 하오나 베르톨리우스 전하를 놓치게 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옵니다.”
브루노가 다시 분위기를 다잡았고 엘디오도 그 말이 맞노라, 라 답하며 표정을 바꾸었다.
“형님은 여기 있는가, 따라오라.”
모든 이들이 막으려 했지만 엘디오는 대열 제일 앞에 서서 문을 활짝 열고 당당하게 어전으로 들어갔다.
어전에는 약 20명 정도의 근위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그 가운데엔 왕관을 쓰고 지팡이를 쥔 베르톨리우스 황태자가 생각보다 냉정한 표정을 지으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왔느냐, 반역자여. 선조들께서 대대로 지켜낸 이 장소에 뻔뻔하게도 그 얼굴을 내밀 수 있더냐.”
“조국의 역사는 고작해야 100여년, 선조님들의 가호도 별거 아닌 것 같소.”
두 사람이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는 사이, 우리도 앞으로 나와 근위대와 대치하기 시작했다.
“형님께선 스스로 즉위하셨다 들었소, 20명의 기사를 이끄는 옥좌의 기분은 어떠하오?”
“왕이란 서민들에게 질서와 안정을 가져다 줘야하는 법, 세상을 어지럽히는 네놈한테 왕이 될 자격 따위 없느니라!”
“질서? 안정? 그렇지 않소, 왕이 서민들에게 가져다 줘야할 것은 번영, 그리고 미래요.”
“번영은 평화와 안정 없이는 이룩해 낼 수 없는 것이니라! 아버지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을 잊었느냐!”
“번영이란 변치 않는 일상을 유지하겠다는 뜻이 아니오. 어제보다도 나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말하는 것이오. 선왕께선 일을 그르칠 것을 두려워하여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추구한 것에 불과하오.”
“네 이놈……아버지의 이념을 모욕할 셈이더냐!”
“애초부터 그런 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소. 내게는 커다란 발전과 미래가 눈앞에 보이오. 이런 사소한 싸움을 질질 끌 시간 따위 없단 말이오!”
“듣기 싫다! 우선 저 반역자의 목을 베어낸 다음 국가의 안녕을 되찾겠노라!”
베르톨리우스는 근위 총감을 맡고 있던만큼 무투파 쪽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스스로 검을 뽑아들고서 엘디오한테 달려들려고 하는 중이다.
하지만 엘디오는 검을 뽑지도 않고 뒤로 물러났다.
“왜 그러느냐! 겁먹은 것이더냐!”
“나의 검은 이 부대, 형님과는 다르오.”
자, 무대는 갖춰졌다.
이제부터 베르톨리우스를 필두로 한 근위기사들과 우리들의 살육전이 시작될 것이다.
“대장, 여기서 실력 한 번 뽐내면 작위까지 받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싸우던 도중, 칼이 농담을 던졌다.
그래, 한 번 해보는 것도 좋겠어. 생각해 보니 이 검을 들고서 미친듯이 날뛰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세리아, 맥. 뒤로 물러나라.”
내 얼굴을 보고 두 사람이 허둥지둥 뒤로 물러난다.
아마 나는 웃고 있었을 것이다.
칼과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 갑옷 사이로 검이 박힌 남자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진다.
그런 전장 속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상반신만 덜렁 남은 남자가 손으로 기어가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흰자위를 드러내며 걸어가던 사내가 세 발 자국 걸어간 다음 세로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
“다음은 누구냐!”
세 번째 사람의 두 손을 날려버린 내가 그렇게 소리치자, 근위 기사들이 뒤쪽으로 물러났다.
근위 기사들의 값비싼 갑옷도 이 검이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만만하게 내게 달려든 남자의 가슴에 검을 꽂아넣고, 가랑이 끝까지 주욱 내려버린다.
남자의 몸속에 있던 모든 내장이 발밑으로 떨어지더니, 신체가 절반으로 썰려 쓰러지기 시작한다.
다음 남자의 발을 베어내고, 땅바닥을 기어가던 남자의 머리를 군화로 짓뭉개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나는 진심으로 이런 싸움을 즐기는 성격일지도 모른다.
다른 자들은 나를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근위 대장……특별한 갑옷을 입은 중년 남성이 병사를 뒤로 물렸다.
“내가 하겠다! 거기 너! 이름을 대라.”
“에이길이다. 성씨는 없다.”
“출신이 천한만큼 싸우는 방식도 더럽기 짝이없군.”
대장이 ~가문 어쩌구저쩌구 이름을 대기 시작했지만 관심없다.
목을 노리고서 날린 횡베기. 대장님께선 곧바로 그 공격을 막아내려 했으나, 정작 그게 불가능하다.
듀얼 크레이터의 예리함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검으로 내 참격을 막아낼 수 있는 놈은 그리 많지 않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이 두 동강 나자 대장님께선 허둥지둥 허리춤에 찬 검을 뽑으려 했으나 속도가 늦어 끝내 손이 땅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움직임도 느리군, 무기를 잃으면 후퇴하는 게 철칙이란 걸 모르나?
이래서야 실전 한 번 경험 못해본 깡통 기사라 불려도 어쩔 수 없는 수준이군.
세 번째 참격이 놈의 목을 찢어버렸고, 그는 절규도 내지르지 못한 채 피웅덩이 속에 파묻혔다.
“생각보다 약하군 그래.”
대장님의 원수를 갚겠다며 뛰어들어온 두 사람을 절반으로 갈라버린 뒤 베르톨리우스 쪽을 바라보았다.
최강의 부하였던 대장은 죽었고, 다른 부하도 이미 몇 사람 남지 않았다.
승산은 이제 0, 항복 혹은 죽음 외에 다른 판결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항복한다 한들 예전처럼 왕족 취급을 받을 수 있을 리 없다.
눈앞에 있는 엘디오는 지금까지 있었던 전통적인 왕과는 사고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오는 답은 단 하나.
“엘디오! 고르도니아 가문의 인간으로서 네놈을 멸하겠노라!”
베르톨리우스가 검을 쥐고서 돌진해 온다.
나와 브루노는 눈짓으로 엘디오 쪽을 확인했으나, 그는 시시하다는 듯이 가볍게 턱으로 신호를 보낼 뿐이었다.
나의 검이 베르톨리우스한테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수많은 창과 검이 그의 몸뚱아리에 꽂혀들었고, 고르도니아의 제1황태자는 그런 식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고르도니아 왕가 선왕 휴벨 2세, 유일한 적자가 된 왕자 엘디오는 이날을 기점으로 과거를 버리겠다며 자신의 이름을 알렉산드로 1세라 개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부하 병력들 사이에서 피투성이가 된 옥좌에 앉은 뒤, 자신을 알렉산드로 1세라 칭하며 왕위에 즉위했음을 선언했다.
◇◇◇◇◇◇◇◇◇◇◇◇◇◇◇◇◇◇◇◇◇◇
이름: 에이길
지위: 여명의 날개 제2대 소속 유격 기병 봉급 은화 8닢/일급
재산: 금화 80닢(은화 이하 제외)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대형 버디슈(창)
방어구: 철 투구, 사슬 갑옷, 강철 부츠 검은 망토 (저주받음)
동료: 슈바르츠(말) 세리아(종자) 맥(마초)
여관 대기조: 논나 엘렉트라 멜리사 마리아 카라(변태)
경험 인수: 2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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