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여명의 날개③ 반란』
신생 돌격대는 개인 기량은 우수할지언정 개인주의자가 많았기 때문에 한동안 충돌이 잦았으나, 간신히 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돌격대가 다른 부대와 달리 30명 정도 되는 소수 정예다 보니 따로 부대장을 임명하는 일 없이 내가 직접 전원을 통솔하는 방식을 취한 게 좋게 작용한 것이리라.
처음에 반항적이었던 몇 명을,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굴복시킨 뒤엔 간단한 일이었다.
돌격대는 적의 중요 장소에 돌파구를 뚫는 역할을 전담했고, 여명의 날개 안에서도 개성적인, 용맹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부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돌격대가 용병단 안에서 지위를 확고히 다지기 시작했을 때 즈음, 드디어 그 사건이 일어났다.
"국왕 휴벨 2세 폐하께서 서거하셨다!!”
야영지 천막 안에서 나와 에이리히를 포함하여 용병단의 중요 멤버들이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던 와중, 왕도 쪽에서 사자가 날아온 것이다.
다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왔나!”
“전원 부대로 돌아간 다음 임전 태세를 갖춰라!”
“치중 부대는 화살과 볼트를 각 부대에 분배하라, 식량은 필요없다!”
에이리히가 지시를 내릴 때마다 브루노와 각 부대장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내 부대는 30명밖에 안 되는 데다가 장비도 개인이 따로 구비해 온 물건이 많기 때문에 다른 부대와 달리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에이리히도 자신이 직접 지휘하는 제1대의 준비를 재빠르게 끝마친 후 다른 부대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그는 다른 지휘관보다 한층 더 우수한 듯하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에이길, 자네인가……우리는 지금처럼 준비만 한 다음 대기한다. 행동을 하려면 그 분의 명령이 필요해.”
그 분이란 건 그때 말했던 제2황태자를 말하는 건가.
“그 분은 이미 이쪽으로 오고 계신다. 현 재상인 왕의 동생은 나이가 많은만큼 머리 회전이 빨라. 아마 이쪽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할 거다. 왕자 입장에선 얼른 이쪽에 합류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테니까 서두르고 있겠지.”
“왕자가 도착하면 그대로 왕도로 쳐들어갑니까?”
에이리히는 모르겠다고 말하며 두 손을 벌렸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쳐들어갔다간 반란군이다. 아무리 고르도니아의 상비군 숫자가 적다고는 해도 정면에서 맞붙었다간 상대도 안 되지. 어디까지나 이번 건은 가주 상속 소동 정도로 끝마쳐야 해.”
“결국엔 왕자님 대기조란 얘기군요.”
“그래, 우리는 그 분의 검이니까 말이야. 책략을 떠올리는 건 우리 전문 영역 밖이라는 소리지.”
“그럼 왕도를 불태울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왕도에는 여자들도 있다. 만에 하나 불바다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먼저 탈출시켜놔야 한다.
“잘 되면 그럴 거다. 결국엔 그 분의 방향성에 따라 달라지겠지.”
대화를 가로막듯이 여러 마리의 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도착하신 모양이군. 이 다음 이야기는 본인한테서 직접 물어봐라.”
바깥으로 나가자 이 장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말 여섯 필이 끄는 대형 마차가 기사 몇 명의 호위를 받으며 도착해 있었다.
에이리히를 포함하여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마차와 마찬가지로 저녁 만찬에나 입고 나올 법한 옷차림을 한 사내 하나가 마차 밖으로 내려왔다.
그 남자는 화려한 복장과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을 주변에 쏘아붙이면서 가볍게 손을 들었다.
여명의 날개 창설자, 엘디오 제2황태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검과 합류한 것이다.
“오랜만이로구나, 에이리히.”
“그렇사옵니다, 전하.”
에이리히는 땅바닥에 무릎을 붙인 채 얼굴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여기서 쓸데없는 예의작법은 필요치 않노라. 고개를 들라, 다른 이들도.”
다시 한번 황태자를 관찰해 보니, 나이는 30정도, 당당한 이목구비에서 왕족의 긍지와 오만함이 느껴지지만 역시 야심이 깃든 날카로운 눈동자가 특징적이었다.
“제군들! 경애하는 국왕 폐하께서 서거하셨다!”
그곳에는 이미 이 용병단의 진정한 목적을 아는 사람들 말고 다른 사람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왕의 서거는 이미 전달받은 정보라 딱히 동요하거나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제군들이여, 그리고 나의 형님인 베르톨리우스 제1황태자도 또한 세상을 떠났다!”
이건 처음 듣는다. 이쯤 되니 다른 사람들도 다같이 수근대기 시작한다. 설마 부자 모두 한꺼번에 병사했을 리도 없을 텐데.
에이리히가 나를 보고선 가볍게 눈을 감았다.
오호라, 여기서부턴 책략이란 뜻이군.
“물론 병사한 것은 아니다! 국왕께서 서거한 틈을 노려, 야심으로 물든 재상 아렌스 공작이 손을 쓴 것이다! 놈은 오만불손하게도 왕위 계승권을 약탈할 공작을 꾸몄고, 조카인 나의 형님을 살해하고, 이제는 나조차 살해하려 시도 중이다!”
어느새 황태자 주변에는 단원들이 원을 그리며 연설을 듣는 중이었다.
태생적인 카리스마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나, 나는 용감한 기사들과 함께 그 마수에서 벗어났다. 비겁한 재상의 마수는 나를 명계로 보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필연, 왕권을 올바른 길로 돌려놓기 위한 신, 요정들의 가호인 것이노라!”
점차 연설은 열띈 것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죽은 자를 모독하는 것조차 거리끼지 않는 재상이 나를 놓쳤단 사실을 깨닫고 직접 자신이 살해한, 형님의 이름을 가장한 가짜 대역을 내세워 근위군을 지배하고 나를 배신자로 단정지어 처단하려 하고 있다. 이 신조차 두려워 않는 거대한 악을 처벌하기엔 제군들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다들 연설에는 흥미가 있는 듯 보였으나 어차피 용병 중에 국군과 같은 애국심을 갖고 있는 자는 얼마 없다.
정통성과 의리만으로 모든 이들을 장악하긴 어렵다.
이들을 장악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하나 필요했다.
“제군들이 나에게 왕위를, 고르도니아에 정의를 돌려놓는다면 막대한 명성뿐 아니라, 그에 걸맞은 수많은 금은보화, 그리고 뛰어난 무공을 올린 자에게는 작위까지 내리겠노라!”
가장 중요한 보상 이야기를 듣게 된 여명의 날개 용병단은 커다란 함성과 함께 엘디오 제2황태자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황태자님 만세, 반역자들에게 죽음을!
이러한 함성 속에서 그는 손을 들면서 회의용 대형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 있는 건 나와 단장과 대장, 그리고 치중 부대와 각 부문의 중요 인물 몇 명뿐이다.
“……이곳은 다들 아는 자만 있는가?”
황태자는 방금 전 노기와 열광 탓에 부들부들 떨리던 목소리와 정반대로, 냉정하고 담담한 말투로 바꿔 이야기했다.
“예! 이미 여기 있는 모두가 목적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가. 이미 국군 쪽에 방금 전과 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사자를 보내 두었노라. 국왕 폐하께서 서거하셨다는 전갈과 동시에 나왔으니, 재상과 형님이 나의 반란을 알아채기 전에 도착할 게야.”
확실히 국군 사령관 입장에선 재상이 제1황태자를 살해하고 그 대역을 세웠다는 보고를 받고 나서 바로 그 장본인인 재상, 그리고 아마도 제1황태자의 이름 아래 엘디오 황태자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연락을 받게 될 것이다.
엘디오 쪽을 완전히 신뢰할 수도 없을 테지만, 어느 쪽이 진실인지 파악하지 못한 이상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진실을 확인하는 사이 이쪽은 신속하게 사태를 마무리 짓는다.
처음부터 그런 계획이었던 것이리라.
“이미 출격 준비는 끝마쳤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언제든지 출격할 수 있습니다.”
“용병단은 무리지어 왕도 부근으로 접근하는 게 금지되어 있사옵니다만.”
“괜찮다, 비상 사태 아니더냐. 나의 명으로 반역자 처단과 질서 회복을 위해 왕도로 진군하는 것을 허락하겠노라.”
엘디오의 호령과 함께 여명의 날개는 철과 말발굽 소리를 주변에 퍼트리면서 왕도 쪽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
나와 돌격대는 왕도까지 가는 데 필요한 잠깐의 시간 동안, 평소처럼 전 부대의 선두 쪽에 서서 진군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에이리히가 나를 끌고 중심부, 에이리히와 엘디오가 있는 곳까지 데려갔다.
엘디오는 아무리 그래도 아까 그 화려한 마차를 타고 전장에 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평범한 말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대가 에이길이더냐?”
갑작스러운 부름에 일단 짧게 대답을 하자,
“그대의 이야기는 이미 들었노라. 혼자서 아크랜드 철창기병대의 얼굴에 먹칠을 해줬다고.”
“그저 길을 막아섰기 때문에 지나갔을 뿐이옵니다.”
엘디오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지나가는 김에라, 좋구나. 우리나라가 도대체 몇 번이나 고배를 들이켰던지.”
미소는 점차 냉담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크랜드 같은 빈소국에 휘둘리던 것도 다 아버지의 유약한 성격 탓이니라. 원래는 그까짓 잡것들은 상대도 안 될 터인데……형님도 지금의 고르도니아를 유지하는 것 외에 달리 흥미는 없노라. 철창에 묶인 안뜰을 세계의 하늘이라 여기고 있는 불쌍한 새라 할 수 있지.”
그것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여기까지라는 것마냥 입을 다문 엘디오는 아무 말없이 앞으로 나아갔고, 나와 에이리히도 좌우를 지키듯이 속도를 높였다.
이미 왕도의 성벽은 눈앞까지 닥쳐 있었다.
“네, 네놈들! 대체 무슨 짓이냐! 용병단의 왕도 침입은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문을 지키던 병사가 소리쳤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중이었다.
이미 여명의 날개는 전 부대의 인원을 합치면 1000명이 넘는다. 전투가 일어나면 뼈도 못 추릴 것이다.
뒤쪽에선 곧바로 문을 닫을 수 있도록 병사들이 모여드는 게 보였다.
“내가 허가했다.”
엘디오가 앞으로 나와 병사한테 말을 걸었으나, 대부분의 병사는 여전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르도니아 정도 되는 나라일 경우, 일반 병사 중에선 왕족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국왕이나 왕위 계승권자가 아닌 엘디오의 얼굴은 민중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대장급 인물――아마도 귀족――이 나타나더니 허둥지둥 무릎을 꿇었다.
“아, 아니 전하! 대체 무슨 일이옵니까!?”
“다 알려두지 않았더냐. 형님을 살해하고 왕위 찬탈을 노린 재상을 베어낼 뿐이노라.”
“하오나! 저희 쪽에는 전하께서 국왕 폐하 서거 이후 곧바로 사라졌다는 보고가…….”
“누구의 이름으로 말이냐?”
“……베르톨리우스 황태자 전하이옵니다.”
“형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노라. 그놈은 재상이 세운 대역에 불과하다! 더 이상 나의 발을 세울 셈이라면 그대들도 재상의 하수인이라 판단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대장과 병사들이 얼굴을 마주보았다.
대역죄는 공범이라 한들 평민의 경우엔 일족 전원이 사형, 귀족이라도 직계 가족은 사형, 가문은 몰락, 또한 혈연이 이어진 가문에도 불명예 낙인이 찍히는 중죄다.
“그대들에게 합류하라고 명령하진 않겠노라. 그저 나를 들여보내주기만 하여도 충분하느니라. 그 후엔 평소처럼 근무에 힘쓰도록.”
“예!”
대장은 병사들한테 지시를 내리고서 각 장소로 파견을 보냈다.
성벽 수비 부대한테 우리를 무시하라는 내용의 전갈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역시 엘디오의 카리스마와 허풍 실력은 대단한 수준이 맞다고 감탄하면서 우리들을 병풍마냥 바라보는 병사들 사이를 지나쳐 행군하기 시작했다.
시내로 들어서자 처음엔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왔던 시민들이, 우리가 정규군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자마자 비명을 내지르며 집 안으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엘디오가 연설을 하면서 길을 지나고 있으니 시내에 용병단이 나타났다는 공포와 왕족의 연설을 저울질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듯했다.
“전하, 시민들은 우리의 모습에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사옵니다.”
“지금은 겁먹고 소동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상관없다. 어차피 재상과 형님을 처리하면 왕족은 나밖에 남질 않으니.”
제3대는 도중에 부대 일부를 나눠 재상 사택과 황태자 사택으로 보냈고, 돌격대를 포함한 제1대, 2대는 그대로 궁전을 향해 행군했다.
“지금은 병사 한 명이 아까운 상황이지만, 형님도 재상도 적지 않은 사병을 갖고 있노라. 옆구리를 찌르는 전략이 좀 더 치명적으로 느껴질 게야.”
“궁전 소속 근위병은 예상대로 500명 정도이옵니까?”
“그래. 왕궁 경비병이 200, 근위 기사가 300, 대대로 섬기던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보니 그리 간단히 숫자를 늘릴 순 없는 법이니라.”
“제3대 병력의 절반을 나누었으니 우리는 대략 1000, 기습 공격에 성공하여 난전까지 이끈다면 호각으로 싸울 수 있을 거라 판단되옵니다.”
“좋다. 어차피 근위대를 괴멸시킬 필요도 없노라. 두 사람의 목을 베어내면 될 뿐……근위대도 대대손손, 이라는 말로 하면 듣기엔 좋지만 결국엔 썩어빠진 보수주의자 놈들뿐이니라. 이번 기회에 뿌리째로 뽑아내는 것도 방법일지 모르겠구나.”
“결국, 궁정을 요새로 활용하여 내구전으로 끌고 가면 굉장히 성가셔질 것이옵니다. 일단은 문을 돌파하여 신속하게 내부로 침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모여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걸 위해 내가 있는 것이고, 그걸 위해 돌격대가 있는 것이니.
“부대로 돌아가겠습니다.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신호를.”
“에이길, 이름은 기억했노라. 믿고 기다리겠네.”
나는 엘디오에게 한 차례 절을 한 다음 부대로 돌아갔고, 궁정으로 돌격한다고 선언했다.
“진짜냐고…….” “근위대랑 싸운다니…….”
“뭐, 고르도니아는 요 30년 간 제대로 된 전쟁 한 번 없다고. 검술 훈련밖에 해 본 적 없는 애송이 기사들을 무서워할 거 없다 이 말이야.”
술렁이는 대원들을 일갈한 것은 칼이라는 이름의 젊은이……라기엔 나보다 몇 살 더 많다고 들었지만.
“우리 쪽엔 오크랑 일대일로 싸워서 이기는 괴물이 있다고. 놈들한테 뜨거운 맛 한 번 쬐끔 보여주면 질질 지리면서 엄마 침대로 기어들어갈걸! 그렇죠, 대장님?”
괴물이라는 게 날 말하는 거였냐, 라면서 가볍게 박치기를 날렸다.
“저도 검술에는 조금 자신이 있걸랑요! 그렇게 고귀하다는 근위 기사 놈들이 진짜 살육전에서 얼마나 강할지 확인해 보자구요!”
고르도니아의 빈민층 출신인 칼은 말이 많긴 하지만 검 실력은 진짜라 그 부분을 높게 사서 돌격대에 배치되었다.
원래부터 권위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용병단 안에서도 더욱 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 모인 돌격대다 보니, 금세 다른 사람들도 애송이 기사들과 실력을 견주어 보겠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 안에는 종자 역할로 별다른 검증 없이 한 자리를 따낸 세리아와 진짜 실력을 높게 사서 들어오게 된 맥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가지의 큰 도로를 지나 도착한 왕궁 앞 광장에는 이미 근위대가 완전 무장 상태로 대기 중이었다.
그 숫자는 대략 300 정도. 그 모두가 말에 올라탄 근위 기사단 전 병력이었다.
“아마 재상의 계략이 틀림없으렸다. 내가 아버지의 유해 앞에서 떠났다는 이야기를 뜰었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나 보군.”
그 할아범은 쓸데없이 직감이 날카롭다며 엘디오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완전 기습 상태로 쳐들어가는 데엔 실패했다.
이젠 저 놈들을 돌파하고서 궁정에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엘디오가 근위대한테 병사를 끌고 온 정당성을 호소했으나, 그들은 임전 태세를 무너트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 입장에선 직속 상사인 황태자한테서 명령을 받고 출동한 것이니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보던 황태자가 대역이 아니란 사실쯤은 금방 알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늘어놓으시는군요! 황태자 전하와 재상님께서 이미 엘디오 전하를 반역자, 체포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명령을 내렸사옵니다. 용병 같은 천박한 집단을 끌고 오신 것이야말로 그 결정적인 증거, 이미 변명은 통하지 않사옵니다!”
대장으로 보이는 그 사내의 최후통첩을 끝으로 엘디오는 뒤로 물러났고 에이리히와 내가 앞으로 나왔다.
연설은 끝났다. 다음은 전투의 시간이다.
“궁병, 앞으로!”
근위대에는 궁병이 없다.
원래부터 궁정 경비 및 왕족 호위가 주요 임무이기 때문에 그리 필요치 않았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구성원 대부분이 귀족 관계자인 근위대에서 활은 천박한 무기라 생각하여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투 상황에서 그런 겉치레는 필요없다.
신분이 높건 천하건 화살을 맞으면 사람은 죽는다.
“발사아!”
100발 이상의 화살이 일제히 근위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둔중한 갑옷과 방패로 수비 중인 근위 기사는 그리 쉽게 쓰러트릴 수 없지만 그래도 운 나쁜 병사가 차례차례 쓰러졌다.
마구잡이로 쏟아져내리는 화살비에 버티기 힘들어진 건지, 근위대는 이쪽의 궁병 부대를 격파하기 위해 돌격해오기 시작했다.
자, 지금부터가 우리들의 역할이다.
“전원 돌격! 적을 돌파하고 그대로 궁정 내로 침입한다. 그 후엔 각자 판단으로 수상쩍은 자를 전부 베어내라!”
나를 포함하여 돌격대 쪽 인원은 어차피 황태자와 재상, 둘 중 어떤 얼굴을 봐도 알아보지 못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수상쩍은 놈은 전부 베어버리는 게 정답이다.
엘디오가 말하길 궁정에 남아있는 고지식한 놈들은 사라지는 게 더 낫다고 하여 허가도 받은 상태다.
단지 궁정에는 궁녀와 시녀들도 여럿 있기 때문에 이들을 베어선 안 된다고 단단히 일러 두었다.
말을 타고 소리치면서 돌격하는 우리의 뒤를 따라 중장 기병과 경보병들도 광장을 가득 채우려는 기세로 돌진을 개시했다.
숫자만 보면 우세하지만 장비로는 이쪽이 불리하다. 일부 병사를 제외하면 검술 실력도 저쪽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궁정 안쪽은 저들의 영역이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각자 계속해서 이동까지 하면서 싸워야한다.
긴 싸움이 될 것 같군.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창을 끌어안았다.
세리아와 맥을 데리고서 모든 부대의 선두에 서서 돌진한다.
뭘 이 정도쯤이야.
아크랜드에서 기병대를 상대했을 땐 내 옆과 뒤쪽을 지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뒤쪽에는 아군이 있고 옆에는 동료가 있다. 적은 오로지 앞에 하나뿐, 이 정도면 간단한 싸움이다.
◇◇◇◇◇◇◇◇◇◇◇◇◇◇◇◇◇◇◇◇◇◇
이름: 에이길
지위: 여명의 날개 제2대 소속 유격 기병 봉급 은화 8닢/일급
재산: 금화 80닢(은화 이하 제외)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대형 버디슈(창)
방어구: 철 투구, 사슬 갑옷, 강철 부츠 검은 망토 (저주받음)
동료: 슈바르츠(말) 세리아(종자) 맥(마초)
여관 대기조: 논나 엘렉트라 멜리사 마리아 카라(변태)
경험 인수: 2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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