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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25화『여명의 날개① 서장』

25화『여명의 날개①           서장』



“너였나……브루노.”
 
내가 소속된 제2대로 인사를 하러 가자 예전 연방으로 떠나는 길 도중 함께 이민족을 격퇴했던 전우, 브루노가 대장 자리에 앉아있었다.
 
“실력 좋은 놈이 온다고 들었는데 너였던 건가, 에이길.”
 
인상은 부드러운 편이지만 검술 실력은 대단했던 걸로 기억한다.
설마 대장이 되어있을 줄은 몰랐는데.
 
“난 너랑 헤어지고 나서 여기로 바로 왔지. 이 1년 사이 여러모로 고생 많이 했다고.”
 
잘 부탁한다, 라는 말과 함께 악수를 나누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 이 용병단이 평범한 곳이 아니란 사실은 들었겠지? 앞으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나를 대장으로 대하도록. 예의범절에 크게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질서는 필요하니까.”
“이견 없습니다, 대장님.”
“좋아, 자네가 쓰는 말과 무기를 생각해 보면 집단전 때 연계 활동을 하긴 힘들 것 같으니 유격 역할을 맡겨야겠어. 쉽게 말해 내가 지시한 장소나 부대를 따라간 다음, 마음껏 싸우면 된다는 거지. 지난번에 네가 싸웠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마음껏 날뛰어대는 게 가장 강력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나는 그런 광전사 같은 모습으로 싸웠던 기억은 없는데 말이지.
 
“무기……는 필요 없을 테지만 방어구는 필요하다면 지급해 주마. 유격이라곤 해도 둘만 다니기는 좀 힘들겠지. 실력이 보증된 사람을 한 명을 더 붙여주겠다.”
 
그때 슬쩍 등장한 사람이 바로 과거, 브루노와 함께 길을 떠났던 맥이었다.
내 버디슈와 별반 차이가 없을만큼 거대하고 묵직한 전투 망치를 짊어지고 있다.
 
“…….”
“여전히 말수 없는 놈이구만. 오랜만이네, 잘 부탁한다.”
“그래, 부탁한다.”
“그리고 세리아 말이다만 일단 내 종자 취급으로 다니는 중이니 남자로 취급해 달라고.”
“전장까지 여자를 데려오다니 정말 여자에 죽고 사는 녀석이로군……뭐 좋아, 문제만 안 일으키도록 조심해라. ……맞아, 물어보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너랑 그 아이는 몇 살이지?”
“나는 19, 이 녀석은 14이다.”
 
실제로는 나랑 세리아 모두 자기가 몇 살인지 알지 못했으나 논나와 상담한 결과 이렇게 정해졌다.
 
“제가 올해로 18살이 되니까 한 살 더 높은 걸로 치죠.”
 
라는, 생각보다 별거 아닌 이유로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세리아는 귀여우니까 14살이라는 걸로 해 두었다.
15살은 여자라고 불러도 될만한 나이니까 말이지.
실제 나이는 전혀 모른다.
 
“그래? 생각보다 젊군.”
 
대장 공인으로 여자를 들여오는 데에도 성공했다.
사슬 방어구를 지급받고, 세리아가 사용할 말을 골랐다.
사용 기간이 짧은 말은 인간과 신뢰 관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사용하기 힘들지만 세리아는 뭐든지 능숙하게 해내는 편이니까 괜찮을 것이다.
 
“여어, 신입 형씨. 방어구 같은 것보다 우리한테 먼저 인사를 하러 와야 하는 거 아냐?”
 
다섯 명끼리 몰려다니는 남자들이 방어구를 입어보고 있던 우리 둘을 에워쌌다.
무뢰한, 무법자. 이런 단어가 잘 어울리는 남자들. 원래는 이런 놈들끼리 구성되는 게 용병단이다.
 
“그래, 잘 부탁한다.”
 
나는 한손을 들어 그렇게 말했으나, 그들은 납득하지 못한 듯했다.
 
“야, 신입이 인사를 할 땐 좀 더 고개를 숙이고 해야 하는 거 모르냐?”
“유격인지 뭔지 모르겠다만, 용병한테는 용병의 규칙이 있단 걸 알려줘야겠군.”
“종자까지 데리고 다니는 게 아주 대단한 분 납셨어.”
 
나한테 다가오는 남자들. 맥이 눈짓으로 ‘이 녀석들 어떻게 할까?’ 라고 물어봤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가만히 있으라고 신호를 주었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란 거지?”
“용병이란 건 결국 힘이 전부다. 너한테 실력이 있다면야 봐주지 못할 것도 없지.”
 
천박한 눈길로 세리아를 핥듯이 바라보는 남자.
남자로 변장해 있다고는 해도 세리아의 정갈한 용모와 사슬 사이로 엿보이는 다리는 욕망이 잔뜩 쌓인 남자들한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별볼일 없는 놈이었을 경우엔 거기 있는 귀여운 형씨의 엉덩이를 잠시 빌려주는 걸로 봐 주지. 내 자지는 크니까 엉덩이가 허벌창이 되어버릴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세리아가 손을 검 쪽으로 가져다 댔다.
발끈하는 성격은 여전하구나. 나는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툭 하고 올려두면서 동작을 제지했다.
 
“과녁 맞추기든, 검무든 뭐 원하는 걸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찔끔찔끔 점수 같은 걸로 사람 재가면서 평가할 생각이냐? 좀 더 알기 쉬운 방법이 있을 텐데.”
 
나는 땅바닥에 굴러다니던 양손검을 손에 쥔 뒤 공터를 가리켰다.
 
“직접 맞붙으면 알게 될 거 아니겠나? 둘이서 동시에 와도 상관없다만.”
“쳇, 후회하지 마라!”
 
나도 생각보다 발끈하는 성격일지도 모르겠다.
 
 
 
상황은 1:2, 어디까지나 모의전이라고는 해도 이곳에 칼날 없는 검 따위 없기 때문에 사용하는 무기는 진검이다.
맥이 이것저것 설명하기 시작했으나, 이 녀석들의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그런 세세한 규칙은 필요없을 것이다.
 
“시합 개시!”
 
신호와 동시에 나는 검을 치켜들고서 한 사람한테 달려들었다.
남자는 검으로 공격을 막아냈으나, 검과 함께 땅바닥에 처박혔다.
어깨가 빠져서 꼴사나운 비명을 내지르는 남자는 내버려두고 다음 남자를 향해 다가간다.
허둥지둥 다른 한 명이 검을 들고 자세를 취하긴 했으나, 무슨 장난 치는 자세인 줄 알았다.
 
살짝 지옥을 맛보여 줘야겠군.
검을 밑에서 쳐올린 다음, 칼날이 없는 측면 부분으로 남자의 가랑이를 강타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전투 종료. 그 직후, 남자는 거품을 물면서 자기 가랑이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다른 놈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남자들의 나머지 동료들은 순식간에 도망쳐버렸다.
이거면 된다. 저런 놈들한테는 예의범절이나 대화로 얘기할 게 아니라, 힘으로 교훈을 알려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
여명의 날개가 제아무리 정규군에 가까운 집단이라곤 해도, 그런 사람들만 모아서 인원을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런「전통적인 용병」같은 사람들도 많을 테니, 이번 교훈은 앞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쾌적한 직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
 
“역시 강하군.”
“나는 네가 테이블 말고 다른 무기를 쓰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말이지.”
“조만간 출격할 거다, 그때.”
 
 
그 말대로, 내가 입단한 다음날 내가 있는 제2대에 출격 명령이 내려왔다.
도적들의 아지트를 찾아냈다고 한다.
원래는 왕국군 병사가 대응할 문제인데, 명목상 도로의 안전을 유지하는 부대인 우리가 출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부대 전체가 얼마나 강한지, 또 브루노가 어떻게 지휘하는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잔뜩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사람을 상대로 하는 전투이니만큼 내 감이 얼마나 무뎌졌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세리아,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라. 내 지시에는 불평불만 말고 따르도록, 알겠지?”
“넵!”
 
세리아는 뛰어난 전투 감각을 가졌다.
하지만 그녀의 가냘픈 신체로는 단 한 번의 실수가 치명상이 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다.
내가 철저히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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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날개 제2대  편성
기병대
중장기병(기사단에 필적함)1부대  20기
경기병            2부대  40기
유격기병(병사 무장 편차 심함) 개인 단위  20기
 
보병대
경보병         4부대  80명
정예보병(보우건 장비)   2부대  20명
장창병         3부대  60명
궁병          2부대  40명
 
치중부대(보급부대)  짐마차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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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 부대까지 합쳐서 총합 300명 정도 되는 부대가 느릿느릿한 속도로 왕도에서 남동쪽으로 향한다.
일반적으론 도적단을 상대로 이런 대규모 토벌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대장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용병이었던 놈들이라 도적 놈들의 장비가 좋기도 하고, 아크랜드에서 유입된 굶주린 농민들까지 포함되어 놈들의 숫자가 상당하다는 게 표면상의 이유였다.
물론 실제 이유는 제2대 하나만이라도 총력 출격 경험을 쌓음으로써, 진짜 목적에 대비한 군사적 훈련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정도 규모로 출정이라니, 도적 퇴치라기보단 사실상 전쟁이군.”
“네. 이런 행군에 참가하는 건 처음입니다.”
 
세리아는 슈바르츠보다 2할 정도 작은 말 위에 타서 내 옆을 따라오는 중이다.
맥은 상당히 커다란 말을 타고 있지만 본인의 몸집이 큰만큼 계속 뒤쳐졌다.
 
나는 창과 듀얼 크레이터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검을 짊어지고 창을 슈바르츠 위에 실어둔 이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통일된 장비를 입고 있는 경기병 부대와 비교하면 우리 유격 기병은 확실히 이질적이다.
 
슈바르츠가 울부짖는다. 맨 처음엔 오랜만에 느끼는 전투 분위기에 흥분하고 있었으나,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행군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기병인 우리가 보기엔 보병 부대, 특히 장창병 부대는 마치 멈춘 모양새 그대로 꿈틀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슬슬 답답해진 기병 부대장이 방금 전에 기병만이라도 먼저 나가면 안 되겠느냐고 브루노한테 진언했다가 각하당한 모양이다.
 
하지만 만약 도적 놈들이 먼저 눈치라도 챘다간 일이 복잡해질 거라는 명목 아래 방금 전, 정찰 기병이 다섯 기 정도 달려나가긴 했다.
거리를 생각해 보면 이제 슬슬 돌아올 때가 됐는데.
 
“맥, 이 정도 규모의 임무는 예전에도 있었나?”
“있었다. 남쪽에선 아크랜드 군이 도적으로 위장해서 약탈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군, 아크랜드 상황이 그 정도로 악화했다라…….
 
“이쪽에선 모든 병력 총동원, 그때는 500명 정도였다. 적도 비슷한 수준이라 격전이 벌어졌지만 이겼다. 많이 죽었지만, 경험도 많았다.”
 
오호라, 적군은 위장해 있었다 했으니 중장비 부대는 없었다 가정해야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숫자의 정규군을 쓰러트릴 정도면 근위군 상대로도 제법 잘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브루노 대장님은 우수하다. 문제없다.”
 
맥은 브루노를 높게 사고 있는 모양이다.
저 멀리서 흙먼지가 보이더니, 기병이 전력으로 달려왔다.
탐색 결과가 나온 모양이다.
우리는 브루노 근처에 있었으니 보고 내용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적은 개척촌을 거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적 숫자, 야외에 수십 이상, 최대 백 명의 보병을 확인하였으나 상세한 내용은 파악 불가능! 약간의 군마가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상당한 규모다. 기병을 가진 도적이라면 최소한 용병단에서 변질된 놈들이다.
일방적인 전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전군, 행군 속도를 높여라! 저녁까지 현장에 도착한다. 유격 기병은 전방으로 산개하여 진형을 전개하라! 적 정찰병을 발견하면 살려서 돌려보내지 마라!”
 
병사들은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속도를 높였고, 우리도 함께 속도를 높여 2~3명의 기병들끼리 산개하여 진형을 넓혔다.
 
타당한 판단이다. 여기서 적한테 들켰다간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없는 평원에서 적의 시선을 피하는 건 어렵지만, 반대로 정찰병의 위치도 바로 알 수 있다.
말을 타고 달려가면 정찰병이 무언가 행동을 취하기 전에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 많이 지난 게 신경 쓰이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야영을 하는 게 더 위험 부담이 크다.
서둘러서 가는 수밖에 없으리라.
 
“정찰병이다!”
 
유격 기병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동시에 풀밭에서 뛰쳐나온 남자―아직 소년이라 부르는 게 더 어울릴 나이로 보이긴 하지만―는 쏜살같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맡겨 두십시오!”
 
내가 그를 쫓아가려고 한 순간, 세리아가 그렇게 소리치더니 갑작스레 속도를 높였다.
세리아의 말은 준마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말과 사람의 속도 차이는 절대적이다.
순식간에 놈을 쫓아간 세리아가 검을 치켜들더니, 놈을 지나치는 순간 그 목덜미에 검격을 먹였다.
피 분수가 터져나오며 소년은 목숨을 구걸할 새도 없이 땅바닥에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세리아는 뭘 하든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는 편이지만, 특히 검과 승마 쪽 재능은 상당한 수준이다.
머리 회전도 빠르다 보니 공부를 시켜도 대성할 가능성이 느껴진다.
어쩌면 나보다 더 출세할 가능성까지 있을지도 모르겠군.
나는 검을 집어넣고, 내게 칭찬을 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세리아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 후에도 정찰병 몇 명을 정리한 유격 기병을 선두로 한동안 행군을 이어나갔으나, 제일 앞서 나가고 있던 기병이 손을 높게 치켜세우더니 말을 세웠다.
적이 아지트로 쓰고 있는 개척촌을 찾아낸 모양이다.
더 이상 나아가면 적들한테 들킬 테니 기병대는 여기서 대기, 보병대와 합류한 뒤 공격을 개시하게 될 것이다.
 
“보병이 도착하면 일제 공격입니까?”
“그래, 활을 쏘고 나서 보병대 부대가 총공격, 기병대는 후방을 차단해라. 도망치는 놈들은 말살하도록.”
 
유격 기병 한 사람의 질문에 브루노가 대답했다.
도적은 말살이 철칙으로 포로 따위 필요없다.
설령 포박한다 한들 그들에게 기다리는 건 교수형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뒤쳐져있던 보병 부대가 차례차례 따라붙었다.
원래 같으면 체력 회복을 기다리는 게 가장 좋을 테지만 이미 해가 저물기 시작한 상황이다.
밤이 됐다간 도적들을 놓칠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질 것이다.
 
“전 부대, 자기 위치로! 궁병은 조용히 전방으로, 발사와 동시에 유격 기병은 각자 판단으로 놈들의 취약한 곳을 통해 마을로 침입해라! 보병 부대가 공격하는 걸 돕도록!”
 
“세리아, 맥. 내 뒤쪽을 따라와라. 내가 놓친 놈이 나오면 너희가 마무리를 지어.”
“예!” “음.”
 
나를 선두로 삼각형 모양의 진을 친 뒤, 궁병이 공격하길 기다린다.
이쪽이 보기엔 마을에 있는 놈들은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걸로 보인다.
 
궁병이 마을 근처까지 접근, 이미 화살까지 활시위에 올려둔 상태다.
일부 적이 눈치를 챈 건지 이쪽을 가리키며 소동을 피우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남은 건 오로지 명령 하나.
 
“발사!”
 
40개의 활에서 발사된 화살은 일제히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적지 않은 숫자의 인원이 쓰러지고 마을 안에 종소리 경보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자, 집들 안쪽에 있던 도적들이 뛰쳐나왔다.
 
“돌격하라!”
 
20명의 유격 기병이 달려나간다.
마을까지 가는 거리를 시간으로 표현하면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태세를 갖추기 전에 돌진해 버리면 혼란은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어디로 갈까요!?”
 
마을에는 원래 짐승 및 몬스터 퇴치용 간이 *해자와 *목책이 설치되어 있는 법이다.
(*해자: 동물이나 외부인, 특히 외적으로부터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파둔 구덩이를 가리킴)
(*목책: 나무 울타리)
시간을 들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돌파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말로 돌격할 땐 꽤 성가신 것들이다.
그렇다면 울타리도 구덩이도 없는 공간, 정면 문을 통해 돌격하면 될 뿐이다.
 
정면 입구로 가보니 경계를 서고 있던 도적들의 모습이 보이긴 했으나, 아직까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제때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너, 너희들은 “도적 사냥꾼이다.”
 
문앞을 가로막는 한 사람의 목을 날려버리고, 또 한 사람을 말발굽으로 짓밟는다.
감시탑 위에서 활을 겨누고 있던 남자의 이마에 단도가 박혔다.
세리아가 투척으로 처치한 듯하다.
 
입구를 돌파하여 마을 안쪽으로 침입하자, 가시 모양의 나무가 앞길을 가로막듯이 생긴 방호책이 설치되어 있었다.
울타리 뒤쪽에선 활을 손에 쥔 남자들이 몇 사람 대기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기병이 저 가시처럼 생긴 울타리에 충돌한 순간, 빈틈을 노려 숨통을 끊을 심산인 것이리라.
 
하지만 슈바르츠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저런 울타리 따위 문제없다는 듯이 달려가는 걸 봐서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도 질 수 없지, 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창을 쥐고서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한 순간 느껴지는 부유감. 슈바르츠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착지하더니 궁병 한 사람을 짓뭉개진 개구리마냥 짓밟아버렸다.
코앞에 있는 궁병 따위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허둥지둥 거리를 벌리려고 하는 그들한테 창을 휘둘렀고, 동시에 세 명이 신체 일부를 잃으며 쓰러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노리고 있던 남자한테는 창을 던져서 마무리 지었다.
 
내가 무기를 던진 걸 절호의 기회라 판단한 두 사람이 활을 버리고 검을 든 채 달려들었다.
나는 등 뒤에 찬 듀얼 크레이터를 뽑아들고서 한 사람을 어깻죽지부터 두 동강 내버렸고, 나머지 한 사람의 목을 날릴 생각으로 그 기세를 그대로 이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마냥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실수했나?
그런 생각이 한 순간 스쳐지나갔으나, 세리아가 그 남자를 마무리 지으려고 검을 겨눈 순간, 사내의 어깨에서 목이 툭 하고 떨어졌다.
적뿐만 아니라 세리아와 맥,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듀얼 크레이터의 도를 넘은 예리함에 경악했다.
 
마을 입구가 틀어막힌 도적들은 차례차례 후퇴하기 시작했고, 반대로 입구를 찾아다니고 있던 유격 기병은 끊임없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 도적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마을 안쪽을 돌아다니는 기병들 탓에 도적들은 완전히 통솔력을 상실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추가로 밀려오는 보병대와 맞붙는 건 자살행위, 몸을 지키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끝났군요.”
 
세리아가 내 옆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래.”
 
도적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제 시간벌이, 혹은 도주. 두 가지뿐이다.
시간을 벌어봤자 아무 소용없으니 현실적으로는 어떻게든 도망치려 할 테지만…….
 
“경기병입니다.”
 
도적들, 그 중에서도 여자나 전투력이 낮은 자들인가?
제일 먼저 마을 밖으로 도망쳤던 일당의 측면에 경기병 40기가 습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100 정도 되는 어중이떠중이들을 섬멸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리라.
 
“저쪽은 끝났군. 우리는 마을 안에서 저항하고 있는 놈들을 처리한다.”
 
걸레짝이 된 시체에서 창을 뽑아든 다음, 피투성이 물건을 어깨 위에 짊어졌다.
이미 보병대는 곳곳에서 울타리를 뛰어넘고 마을 안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살짝 지형이 높은 곳에 진을 친 도적 몇 명이 창을 휘두르며 보병과 맞붙고 있는 모습이 보이길래 우리 셋은 그곳을 향해 돌격하여 진형을 무너트렸다. 맥의 전투망치가 집에 숨어있는 적을 벽째로 파괴하고, 밭 안으로 도망치는 적들은 세리아와 내가 차례차례 꼬챙이로 만들어버렸다.
 
이미 대세가 결정된 전투에서 패잔병들을 쫓아다니는 건 기분이 썩 좋진 않군.
하지만 명령은 이미 내려졌다.
그저 기계적인 살육을 반복한 끝에, 해가 저물 즈음엔 마을 안과 밖 어느 곳에도 살아있는 도적단은 남아있지 않았다.
 
“좋아, 전투 종료다! 시체는 구멍을 판 뒤 적당히 던져둬라, 늑대나 몬스터가 올 테니 되도록 방치는 하지 마라. 잔당 세력을 경계하면서 이곳에서 야영을 하겠다.”
 
브루노가 전투 종료를 알리자, 아군들의 관심사는 살육에서 밥과 보수 쪽으로 옮겨졌다.
 
“제일 공이 큰 사람인 에이길, 자네로군! 돌파구를 뚫었다던데.”
“그래. 도적 치고는 꽤 잘 준비된 놈들이던데, 그래봤자 그렇게 금세 혼란에 빠진 걸 봐선 아크랜드 끄나풀일 가능성은 없겠지.”
“좋아. 시체를 살펴보니 어린 아이와 여자까지 있더군. 용병단이 난민을 끌어들여 거대화했다, 이쪽으로 확정지어도 되겠어.”
“여자까지 전부 다 죽이다니, 별로 기분이 좋진 않은데.”
“우리는 정규군과 비슷한 행동 규칙을 따르는 중이다. 여자를 팔아서 돈으로 바꾸는 짓도 해선 안 돼.”
 
그래서 결론이 몰살이라니, 참 팍팍하구만.
하지만 개척촌의 원래 주민들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단 걸 생각해 보면 이것도 인과응보인가?
 
“에이길, 역시 전투력만 따져봤을 땐 너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나도 윗선을 통해 너에게 포상을 내리도록 진언해 두지. 앞으로도 기대하겠다고.”
 
이리하여 여명의 날개에서 맞이한 첫 번째 전투가 끝을 맞이했다.
귀환 후, 특별 포상금으로 금화10닢, 다른 용병단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사치스러운 보상을 받고서 한동안 휴가까지 받게 되었던 것이다.
세리아도 자기가 받은 은화 5닢을 내게 건네주었으나 용돈으로 쓰라고 가슴팍에 넣어주었다.
하지만 동전은 차르륵 소리를 내며 금세 배 쪽으로 빠져나왔고, 세리아는 슬픈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바라볼 뿐이었다.
 
 ◇◇◇◇◇◇◇◇◇◇◇◇◇◇◇◇◇◇◇◇◇◇◇◇
여담  여자의 싸움
 
하드 보일드 여관
 
“아야!” “어머, 죄송해요.”
 
복도에서 서로 지나치던 논나가 카라의 발을 짓밟았다.
 
“잠깐만! 일부러 그런 거지!?”
“아니에요.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카라가 따지기 시작했으나 논나는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그런 커다란 왕가슴을 달고 다니니까 발밑을 못 보고 다니는 거 아냐!”
“그러게요, 좀처럼 발밑이 보이질 않아서……가슴이 큰 것도 일장일단이 있나봐요.”
 
엄청난 크기의 가슴을 확 드러내며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논나.
여행하는 도중 사랑하는 사람이 푹 빠져들었던 이 가슴에 아무런 수치심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한 모양새였다.
 
“큭! 이 가슴 괴물! 젖소!”
“아무렇게나 부르셔도 상관없어요. 에이길 님께서 좋아하는 제 가슴이니까요. 당신 같은 사람한테 무슨 소리를 듣건 별 신경도 쓰이지 않아요.”
“젖꼭지도 까만색이면서.”
 
논나의 움직임이 멎었다.
 
“너, 18살이랬나? 그 나이에 그렇게 까매서야 앞으로 몇 년 더 지나면 새까매지겠네. 으, 더러워.”
“안 그래도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을! 살짝 색깔이 진할 뿐이에요! 크기가 크면 어쩔 수 없이 쓸리니까 그래서!”
“그런 거 에이길이 알 바 아니거든. 새까맣게 변해버리면 버림받는 거 아냐? 아―그래도 젖은 잔뜩 나올 것 같으니까 모유계 스타일로 남겨두려나?”
“에이길 님은 그런 짓 안 하세요! 게다가 당신이야말로 에이길 님보다 5살이나 더 나이가 많다면서요. 이제 슬슬 피부가 처질 나이 아니신지?”
“뭐어! 아직 탱글탱글하거든! 보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어머, 침대에서 손으로 만져봤을 뿐이긴 하지만 확실히 수분이 적었던 느낌이…….”
 
격분한 카라가 옷을 걷어올렸다.
 
“한 번 봐봐! 이 매끈매끈한 피부를! 네가 암만 트집 잡아봤자…….”
 
머리에 피가 치솟은 카라는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큰 목소리로 말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 때문에 방 밖으로 나온 사람들 앞에서 카라의 상반신이 전부 드러나게 되었다.
출렁, 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 가슴에 남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오―아가씨, 대낮부터 좋은데!” “기왕 보여줄 거면 아래쪽도 보여달라고.” “은화 1닢 줄 테니까 상대해주면 안 되나?”
 
카라한테서 어느새 거리를 두고 있던 논나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나체를 노출하다니…… 이래서야 언제 다른 남성한테 안길지 모르는 일이겠네요. 에이길 님의 여자로서 확실히 보고해야겠어요.”
 
가슴을 가린 카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잠깐만! 에이길한테는 말하면 안 돼!”
“어머나, 허둥대는 걸 보아하니 뭔가 켕기는 게 있으신가봐요?”
 
그러고는 논나가 카라의 귓가에 대고,
 
“그게 싫으면 앞으로 말투에는 조심 좀 해주세요. 안 그러면 에이길 님 앞에서 저도 모르게 실언할지도 모르죠.”
 
카라는 호호호, 하고 웃으며 우아하게 걸어가는 논나를 지켜보면서도 끝끝내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일단 1라운드는 논나의 승리구나.”
 
멜리사는 구운 과자를 먹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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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에이길
지위: 여명의 날개  제2대 소속 유격 기병
재산: 금화 30닢(은화 이하 제외)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대형 버디슈(창) 
방어구: 사슬 갑옷, 가죽 부츠, 검은 망토 (저주받음)
동료: 슈바르츠(말)  세리아(종자) 맥
여관 대기조:  논나 엘렉트라  멜리사  마리아  카라(개변태)
경험 인수: 28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