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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224화『반드레아 전쟁② 십중 함정』

224화『반드레아 전쟁② 십중 함정』

 

고르도니아/반드레아 국경 요새

 

베이첵이 이끄는 반드레아 군은 숫자 우위를 살려 밀어붙였고 해자를 뛰어넘어 울타리를 베어넘기고 요새의 빈틈을 찌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낙하 함정이 온갖 곳에 다 있다! 발밑을 조심해라!”

멍청아! 구멍을 두려워해서 너무 많이 모여있지 마라, 적이 쏘기 좋은 위치에……으악――!!”

 

반드레아 군이 요새의 약점이라 판단한 함몰 지역은 확실히 겉으로 보기엔 가장 방어가 취약했다.

하지만 실제로 공격해 보니 함몰 지역에서 전투를 하는 건 훨씬 더 난이고다 높았다.

 

함몰지 정면에는 방어 진지가 있고 거기서 고르도니아 병사가 공격을 퍼붓고 있기 때문에 반대로 떠밀린 반드레아 병사는 저지대에서 집중 공격을 맞는다.

 

지휘관이 어떻게든 넓게 전개시키려 해도 양옆에는 추락 함정이 깔려있다.

추락 높이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았으나 바닥에는 메마른 장작이 깔려 있었고 고르도니아 병사는 그 안을 향해 곧바로 불화살을 쏴 불을 지른다.

 

불에 쫓기던 반드레아의 진형은 갈수록 밀집되기 시작했고 고르도니아의 궁병 입장에선 오히려 더 빗맞추기 힘든 형태가 되고 말았다.

 

 

쏴라――!!”

 

, 하고 고르도니아의 궁병이 화살을 퍼붓는다.

화살 숫자 자체는 얼마 안 되지만 밀집해 있는 탓에 반드레아 병사는 화살 숫자만 들었을 땐 상상하기도 힘든 수준의 인원이 후두둑 쓰러지기 시작했다.

방패로 막으려 해도 각 병과가 섞여있는 상태에선 제대로 된 방어 자세를 취할 수 없었다.

 

이 무슨 처참한 결과가……일단 화살 사정거리 밖으로 나간다! 한 번 정비를 해야겠다!”

 

베이첵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시간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으나 이대로 계속 밀어붙인다 한들 무언가 가능할 것 같진 않았다.

여기서 더 혼란에 빠진 채 싸워봤자 반대로 공성전 시간이 길어질 뿐이다.

 

 

일단 화살 사정거리 밖으로 빠져나온 베이첵과 카사노는 공격을 통해 알게 된 적의 방어 설비를 분석하면서 재편성을 시작했다.

 

적은 우리를 뒤쫓지 않았다……커다란 요새에 비해 병사 숫자는 적을 수도 있겠군. 화살 숫자도 한 번에 300은 넘지 않았지. 평범한 편성일 경우 적의 숫자는 1천 정도 되는 게 정석이겠군.”

불필요한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원군을 기다릴 심산일 것입니다. 하드릿의 본대로부터 병사가 5000명이라도 도착하면 요새를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해질 겁니다.”

 

병사들의 보고를 들어보건대 약점으로 보이는 지점의 방어진은 확실히 빈약했다.

사람의 키보다 살짝 높은 수준의 해자가 몇 개나 있긴 하지만 나머진 나무로 된 울타리와 말뚝을 박은 대기병용 방어진뿐이다.

돌로 된 성벽에 비하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역시 건설 시간이 부족했나 보군. 잔머리를 굴려서 설치한 탓에 당황했지만 다음엔 다를 거다. 우리도 정보를 파악한 상황이니.”

진지 때문에 저 지점은 상상 이상으로 더 비좁습니다. 한 번에 밀어붙이면 길이 막혀서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적도 분명 그런 상황을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따라서 다음엔 분대를 몇쳔명씩 나눠서 1, 2, 이런 식으로 공격을 실행하시죠. 피해가 발생하긴 할 겁니다만 순식간에 뚫을 수 있을 겁니다.”

 

베이첵은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서 덧붙였다.

 

기병이 500명 정도 있으니 울타리와 말뚝을 치운 뒤 돌격시키겠다. 요새 뒤쪽까지 뚫고 지나가면 요새에 있는 병사들은 단숨에 포위당한 꼴이 될 테지.”

명안입니다.”

 

베이첵과 카사노는 곧장 부대 재편성을 위해 지휘관들한테 소리치기 시작했다.

 

죄수 부대는 전혀 쓸 구석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네는 꽤 믿음직하군.”

저야말로 처음엔 패장이라 생각하며 멍청이 취급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웃음을 터트리며 악수를 했다.

다음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있었다.

 

◇◇◇◇◇◇◇◇◇◇◇◇◇◇◇◇◇◇◇◇◇◇◇◇◇◇◇◇◇◇◇◇◇◇◇◇◇

고르도니아 쪽

 

적이 어지간히 멍청한 게 아니라면 다음부턴 공격을 나눠서 올 거야.”

공격을 나눠서 온단 말입니까?”

, 적은 이미 한번 우리 쪽 방어 수준을 보고 갔어. 그 정도라면 전력을 크게 쏟아붓지 않더라도 돌파할 수 있지. 그것보단 오히려 정체되는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할 거야. 2번 지점이랑 3번 지점에 있는 병사도 이쪽으로 모으자.”

괜찮겠습니까?”

 

국경에 설치된 가짜 요새의 약점은 방금 전에 공격당한 분지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외에도 지형 문제 때문에 벽이 세워지지 않은 장소가 두 군데 정도 있었다.

그 부분을 공략당하면 순식간에 뚫릴 게 뻔하기 때문에 일단 병사 몇백명 정도를 배치해 수비하자고 주장한 게 트리스탄이었다. 만약 적이 다가오면 결함품 대포를 마구 쏴대서 위협하는 계획까지 세우면서.

 

적은 적지 않은 희생을 내면서까지 이곳의 방어 수준을 보고 간 거야. 이제 와서 다른 장소를 공격할 이유가 없어. 놈들의 전력을 고려해 보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였을 테고 말이야.”

그럼 바로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그런데 갑옷 정도는 입으시는 게 어떠십니까? 만에 하나라도 적과 대치하게 되면…….”

 

병사는 갑옷도 입지 않고 쿠키를 우물거리면서 명령을 내리는 트리스탄의 모습에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의미없어. 양이 갑옷을 입어봤자 별반 차이 없잖아.”

 

트리스탄은 병사한테 놀리듯이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보다 변경백님은 언제 오시려나? 먼저 기병이라도 보내주시면 결판이 날 텐데 말이야.”

라펜에서 아비드까지 급사를 방사형으로 뿌리긴 했습니다만…….”

 

라펜을 향해 돌아오고 있을 본대.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이상 조금이라도 빠르게 정보를 전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급사를 보내라고 트리스탄이 명령한 일이었다.

 

기병만 먼저 오고 있는 것 같진 않네. 하여간 대체 얼마나 부려먹을 심산인 건지.”

 

트리스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으나 목소리에 초조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 병사들도 트리스탄의 한숨과 부정적인 말투는 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딱히 비관하진 않았다.

 

우선 준비해 둔 작전 몇 개를 써서 반격해 볼까? 다들 계획대로 부탁할게, 그렇게 하면 아마 아군은 별로 안 죽을 거야.”

 

 

 

정찰병으로부터 적이 습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적은 약 2000명씩 7개로 나뉘어 1번 지점에 집중 중입니다! 공격을 나눠서 실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우리 쪽 속도를 고려해 보면 최적의 숫자는 3000명씩 오는 거지만 뭐 급제점 수준이겠네. 맨 처음에 발이 엉켜서 진 걸 상당히 신경 쓰고 있나 봐.”

방어 준비! 계획대로 움직여라!”

하아, 말한대로 움직여주는 병사는 참 편하다니까……레오폴트 씨가 잘 훈련시켜 둔 덕분이지.”

상황이 긴박하니 어서 정찰탑 위로 올라가 주십시오! 이번엔 정말 전장을 지켜봐 주셔야 합니다.”

 

병사가 자기를 끌어당기자 트리스탄은 떨떠름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획대로만 움직이면 괜찮다니까 그러네……아아, 아직 차를 전부 다 못 마셨는데.”

 

 

반드레아 군은 처음과 달리 방패를 머리 위에 내건 방어 자세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활이 닿는 사정거리 안까지 들어가자 동시에 고르도니아 진에서 일제히 화살이 날아왔으나 방패만 잘 들고 있으면 크게 타격을 입진 않는다.

 

반드레아 쪽은 대응 사격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비좁은 공간 안에서 궁병대가 발걸음을 멈추고 쏘고 있다간 오히려 전체 공격 양상에 혼란을 주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싸워라. 적의 방어는 그리 튼튼하지 않다. 접근전으로 들어가면 충분히 뚫을 수 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이 그렇게 소리쳤고 병사들도 흐트러짐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이야……썩 훈련을 잘 받은 것 같은데?”

반드레아 병사의 질은 낮지 않다는 얘기를 듣긴 했습니다만.”

 

시시하다는 듯이 정찰탑 위에서 광경을 바라보던 트리스탄의 눈에 살짝 빛이 돌아왔다.

 

병사가 두 종류 있어. 아주 잘 훈련받은 병사랑 영 시원찮은 병사……임시 혼성이려나?”

 

트리스탄은 입이 심심한 건지 주머니를 뒤졌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해 살짝 입술을 삐죽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문제없지.”

 

 

분지의 출구, 오르막길처럼 되어 있는 위치에 설치된 울타리와 말뚝들, 화살을 막아내면서 반드레아의 군대는 그 부분까지 도착해 있었다.

 

가라! 울타리를 해체해라!”

 

지휘관의 고함소리와 동시에 커다란 도끼와 망치를 손에 쥔 병사가 달려나가 울타리와 말뚝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에 대응하듯이 화살이 날아오더니 몇 사람이 쓰러졌으나 그럼에도 순식간에 방어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후퇴! 후퇴해라!”

 

방어진 뒤에서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던 고르도니아 병사가 쫓기듯이 뒤로 후퇴했다.

적군의 후퇴만큼 병사의 사기를 북돋는 것은 없다.

 

적이 도망쳤다! 더 나아가라!”

 

후퇴하면서 활과 장창으로 응전하는 고르도니아 병사와 달리 공격 측은 일방적으로 손해가 발생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돌파 = 승리이기 때문에 손해를 신경 쓸 틈은 없었다.

 

 

기병이 옵니다!”

 

정찰병의 초조해하는 목소리.

 

그거 큰일이네.”

 

트리스탄은 보지도 않고 말했다.

 

반드레아 본진에서 피어오르는 흙먼지, 장해물이 사라지면서 기병이 튀어나온 것이다.

 

아군은 분지 방어를 포기하고 해자 안쪽으로 후퇴 중입니다.”

 

오르막길에 설치된 방어진, 그 뒤에는 옆으로 기다랗게 판 해자가 있다.

수비대는 해자에 몇 군데 설치된 갑판 위를 지나 안쪽으로 후퇴했다.

그리고 갑판이 놓인 위치 주변에는 울타리와 함께 장창 부대가 대기 중이다.

당연히 전진하던 반드레아 기병도 단숨에 진지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조심해라, 해자가 있다!”

 

, 우리가 멍청이처럼 장창을 상대로 정면 돌파할 줄 안 건가? 해자의 폭은 그리 크지 않다. 전력질주로 달려가면 어디서든 넘어갈 수 있을 거다!”

우리의 말을 얕봤구나!”

 

반드레아 기병은 해자의 길이처럼 넓게 퍼졌고 단숨에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전원, 도약해라!”

 

 

그게 안 된단 말이지.”

 

트리스탄이 조용히 그렇게 말하자 동시에 기병대에서 절규소리가 터져나왔다.

해자 바로 직전에 아주 얕은 함정이 파져 있던 것이다.

깊이는 사람의 무릎 높이 정도. 어린애 장난 수준이다.

 

발이 걸렸다!”

으아아아아악!”

 

하지만 당장이라도 도약하려고 전력으로 달리던 말 입장에선 치명적인 깊이다.

다리가 걸려 하나둘씩 뒤집어지거나 앞을 향해 한 바퀴 데굴데굴 구르는 자까지 발생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다리가 부러진 말은 비통한 비명소리를 내질렀고 자기가 타던 말에 깔린 병사는 피거품을 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이, 대체 뭐냐고!”

, 멈추질 않아!”

 

구멍에 걸려 쓰러진 건 선두를 달리던 한 줄뿐이지만 후속 부대는 쓰러진 아군의 발에 걸려 마찬가지로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살아남아있던 병사가 아군에게 깔려 곤죽이 되어가는 광경.

뒤따르던 기병도 또다시 뒤집어져 땅바닥에 엎어졌고 또다시 뒤에 오던 말발굽에 찍힌다.

기병대는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지금이다, 쳐라!!”

 

수비대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해자를 뛰어넘어 다가간 뒤 쓰러진 기병의 숨통을 끊거나 당황한 적을 말에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함정 안에는 한 명밖에 못 떨어트리지만 이렇게 하면 잔뜩 해치울 수 있단 말이지.”

…….”

 

주머니 속에서 찾아낸 레몬 껍질 설탕절임을 씹으면서 말하는 트리스탄의 모습에 병사들은 존경심과 어이없음, 둘 중 어떤 시선을 보내면 좋을지 고민했다.

 

적 기병대가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후속 보병 부대가 나왔습니다. 해자를 우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겁먹을 필요 없는데. 어차피 이후엔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이야.”

 

 

반드레아 병사가 돌아간 장소는 평지로 언뜻 보기엔 방어하기에 불리한 지형이다.

하지만 트리스탄은 일부러 수비대를 그쪽으로 내보냈다.

 

끝이군! 평지에선 잔꾀를 부릴래야 부릴 수 없지. 단숨에 쳐들어간다!”

후속 부대도 불러모아라. 여기선 숫자로 밀어붙일 수 있을 거다.”

 

유일한 것처럼 보이는 돌파구에 순식간에 증원이 추가된다.

그에 비해 수비대는 확실히 수적으로 열세였다.

 

하하하! 저놈들 궁병대와 보우건을 앞으로 내세운 꼴 좀 보게.”

맨 처음에 한 번쯤은 맞겠지만 거리만 좁히면 별거 없는 놈들이다!”

 

진지가 있을 때라면 모를까 평지에서 궁병대가 정면에서 보병과 맞서디나 자살 행위와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돌격해라!” “놈들을 짓뭉개라!”

 

일제히 정면으로 돌격하는 반드레아 군, 수비병은 사격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야 이길 수 있겠다며 공격 측이 생각한 바로 그때였다.

 

 

호잇.”

 

맥빠지는 트리스탄의 호령과 함께 고르도니아 병사가 움직였다.

몇 사람이 달라붙어 무거운 바위를 우물처럼 패인 구멍 안으로 밀어 떨어트렸다.

동시에 쩔그렁쩔그렁 하는 쇠사슬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뭐지!?”

말도 안 돼…….”

 

당장이라도 돌격하려던 공격 측의 정면에 수십개나 되는 울타리가 솟아올랐다.

고작 30초만에 일어난 사태에 반드레아 병사는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하고 울타리를 올려다보는 자세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보우건 볼트와 화살이 그들 위로 쏟아져내렸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다니 대단하십니다.”

아하하.”

 

장치 자체는 단순하다.

미리 울타리를 땅바닥에 옆으로 눕혀둔 뒤 적이 있는 쪽 위쪽 부분에 사슬을 묶어둔다.

그 사슬을 묶은 커다란 돌을 깊은 구멍 안에 떨어트리면 반동으로 울타리는 단숨에 튀어오른다.

나머진 울타리가 아군 쪽으로 쓰러지지 않게끔 울타리가 설 위치에 지지대라도 꽂아두면 순식간에 울타리가 땅바닥에서 솟구치는 것처럼 보인다.

 

강도는 상당히 낮긴 하지만 이런 건 처음 볼 때 충격이 중요하니까 말이야. ……나중에 단단히 고정해 달라고.”

 

역시나 적 병사는 갑자기 튀어나온 울타리의 모습에 당황하여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궁병대와 보우건 부대의 독무대다.

 

정확하게 날아간 사격이 반드레아 병사를 쓰러트리기 시작한다.

당연히 울타리 반대편에 있는 수비병한테 공격은 통하지 않으니 일방적인 전개다.

 

울타리를 부숴야……파괴 부대는 어딨지? 도끼랑 망치는…….”

당연히 뒤쪽에 있지! 정면에서 싸울 생각이었단 걸 잊었나!?”

후속 부대, 후퇴해라! 에잇, 후퇴하지 못하면 옆으로…….”

 

다시 사슬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좌우 측면에도 울타리가 나타났다.

 

, 끝장이다.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어!”

파괴 부대를 부르기로 한 거 아니었나!? 이미 이쪽으로 오는 중이다, 지금 후퇴했다간 움직일 수가…….”

 

울타리를 공격하기 전부터 혼란에 빠진 반드레아 군을 보고 트리스탄은 손을 들었다.

 

적은 이제 앞을 못 보는 상황이야. 슬슬 시작해도 될까?”

 

사슬이 끊어지더니 수백개의 울타리가 앞으로 쓰러졌다.

그 이후 1000명에 가까운 수비병이 달려나가 혼란에 빠진 적에게 검을 휘둘렀다.

 

후퇴! 후퇴……도망쳐라! 도망쳐라――!!”

 

혼란 한복판에서 제대로 된 교전도 못한 반드레아 병사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자 과연 다음은 어떻게 나오려나? 이런 식으로 약간 머리를 쓸 줄 아는 수준의 상대는 간파하기가 쉽네. 힘으로 밀어붙이는 어디 사는 누구랑은 차이가 심해.”

 

 

 

그 이후에도 반드레아 군은 몇 번이나 쳐들어왔으나 그때마다 지독하게 당하며 철저하게 당할 뿐이었다.

베이첵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공성전은 전혀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며칠이나 계속됐다.

 

이건 함정이다……다가가지 말고 우회해라…….”

구태여 방어가 탄탄한 곳에 공격을 가하는 셈이 됩니다만…….”

어쩔 수 없지. 불에 타는 것보단 낫지 않나!”

 

적셔둔 짚단을 놔두기만 했을 뿐인데 우회해 주다니 참 편해서 좋네.”

 

적은 경보병밖에 없다, 쫓아가라!”

적 병사의 뒤를 쫓아가면 추락할 일도 없을 테지! 단숨에……우와아아아악, 대체 어째서―!”

 

있단 말이지, 그게. 경보병은 100명까지, 중보병은 70명 정도 버틸 수 있는 지지대가 부러져서 떨어지는 거라구.”

 

 

 

공방전의 끝을 알린 건 적이 분풀이로 날린 불화살 한 발이었다.

원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장소……돌로 된 벽의 중심에 꽂힌 불화살은 순식간에 벽을 불태웠다.

 

아이쿠, 당해버렸네.”

……그렇군요.”

 

얇은 나무판으로 이루어진 벽은 순식간에 불타올랐고 요새 전체가 큰 불에 휩싸였다.

 

정찰병들은 다들 잘 도망쳤네. 대포는……뭐, 상관없지. 어차피 못 쓰는 거니까 말이야. 결함품 때문에 화상이라도 입었다간 불쌍하잖아.”

 

일방적인 승리가 계속되면서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보이던 아군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짜라는 걸 알고는 있긴 했지만 자기들이 열심히 만들어 낸 구조물이 잿더미로 바뀌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충격을 받은 건 반드레아 쪽이었다.

 

……뭐야, 저게.”

요새가, 그것 자체가 불타는 중인 건가?”

, 무너졌잖아. 돌이……아니야?”

 

마지막으로 불탄 벽이 풀썩 앞으로 고꾸라져 쓰러진 걸 보고 공격 측은 지금까지 벌어진 사기극과 지금까지 실행한 공격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지……?”

저런 벽은 10명이서 때리기만 했어도 부술 수 있었는데 몇 천명이나 손실을…….”

 

이윽고 탈력감은 강력한 살의로 바뀐다.

 

고르도니아 놈들을 살려두지 마라!”

벽이 사라지면 고작 2천밖에 안 되는 병력이다, 전부 다 죽여버려라!”

 

엄청난 욕설과 함께 공격 준비를 시작하는 적. 하지만 고르도니아의 수비병은 두려워하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그저 태연하게 서 있었다.

 

이틀 전이었으면 허둥지둥 도망쳤을 텐데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트리스탄도 부하 병사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더 이상 초조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총공격 개시다! 고르도니아 놈들을…….”

 

반드레아 군의 소리를 뒤엎듯이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여간 늦다니까. 덕분에 평생 일할만큼 일한 기분이야.”

 

 

 

 

전 부대 돌격! 협공을 시작한다.”

 

수비대 뒤쪽에서 피어오르는 흙먼지, 3천명의 기병이 북쪽에서 쳐들어왔다.

드디어 본대가 도착해 기병대가 수비병을 구출해내기 위해 반대로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미 한 번 정면에서 싸워 박살이 난 전적이 있는 전 몰트 침공군 병사는 궁기병과 창기병을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두려워 마라! 적의 기병은 3000, 우리 쪽은 아직 1만이 한참 넘게…….”

 

 

그때 동쪽 언덕에서도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본대와 합류하기 위해 최단 경로를 뚫고 지나온 산의 민족, 다시 말해 궁기병 증원 2000이었다.

 

두 방향에서…….”

요새 수비병이 서쪽으로 우회하는 중입니다! 세 방향에서 포위를…….”

 

한 번 싸워 패배한 전적이 있는 상대방과 다시 대치, 심지어 포위당하는 중이다.

결코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숙련도가 낮은 죄수병은 곧바로 무너졌고 그 뒤를 잇듯이 전 몰트 침공군 부대도 순식간에 붕괴 후 패주를 시작했다. 이리하여 국경 공방전은 끝을 맞이했다.

 

이제 나도 할일 없겠네. 라펜으로 돌아가서…….”

영주님께서 이대로 따라오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아흐윽…….”

 

◇◇◇◇◇◇◇◇◇◇◇◇◇◇◇◇◇◇◇◇◇◇◇◇◇◇◇◇◇◇◇◇◇◇◇◇◇

하드릿 군  본대

 

마이라 씨가 적을 처리했습니다. 증원을 온 궁기병하고도 합류했군요. 우리 쪽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추격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겠죠?”

우리 쪽도 반드레아 영지 내에서는 아는 게 없습니다. 섣불리 쫓아가는 건 좋지 않습니다. 우선 수비병, 궁기병과 합류하는 게 중요합니다.”

 

나 대신 레오폴트가 대답했다.

듣기로는 10배 정도 되는 적을 상대로 상당히 극렬하게 맞붙었다던 수비병은 그렇게 피로가 쌓인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사상자도 1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역시 트리스탄의 재능은 대단하군. 훨씬 더 많은 일을 시켜야겠어.

아돌프처럼.

 

그래서 그게…….”

 

세리아와 이리지나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왜 그러지?”

, 이런 굴욕을…….”

 

이 둘의 불만은 아마 내 옆에 서 있는 여자……반드레아와 전투를 벌이던 도중 붙잡았던 적의 부관에 대한 것이리라.

반드레아의 정보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쉽사리 입을 떼지 않길래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런 여자를 곁에 놔두다가 주무시는 중에 목이라도 달아나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세리아의 불만사항은 그녀가 위험하다는 것.

 

포로를 능욕하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리지나의 불만사항은 내가 끊임없이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다는 점인 듯하다.

생각보다 감촉이 좋길래 그런 거니까 이 정도는 봐 줘.

게다가 따먹지만 않으면 능욕한 건 아니니까 문제없어.

 

그나저나 이제 슬슬 털어놓는 게 낫지 않겠나? 나는 여자를 아프게 할 생각도 없지만 아무런 얘기도 안 하는 이상…….”

 

레오폴트는 자신한테 맡기면 금방 정보를 불게 만들 수 있다며 말했으나 무조건 험하게 다룰 게 뻔하니 허락하지 않았다.

 

어찌 조국을 배신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런 것 치고는 탈주는 안 한단 말이지.”

 

그렇게 깐깐하게 감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심으로 도망칠 생각이라면 진작에 도망칠 수 있었으리라.

 

……포로로 잡힌 군인이 꼴사나운 줄 모르고 돌아가봤자 조국이 용서할 리가 없다……내가 죽은 걸로 취급을 받는 게 가족들한테도 더 나을 테지. 그렇다면 이대로 붙잡히는 게 더…….”

사망한 취급을 받으면 너랑 가족의 명예는 지켜진다는 얘기인가?”

 

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돌아온 여자를 책망하는 그런 나라는 잊어버리라고.

 

그럼 아예 내 여자가 되면 문제 해결이잖아. 허투루 대하진 않을 테니까.”

왜 그렇게 되는 거냐! 경애하는 동지 사령관님을 죽인 네까짓 것의 소유가 될 것 같으냐!”

 

그거 아쉽군.

느긋하게 꼬셔보기로 할까?

 

 

그건 그렇고 물이 많군.”

으으으으으으……이런 굴욕을…….”

 

그녀의 엉덩이를 계속 쓰다듬고 있는 내 손은 푹 젖어 있었다.

잘 보니 가랑이를 지나쳐 즙이 발밑까지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심하게 희롱한 것도 아닌데 엄청나게 젖은 모양이다.

 

육봉이 들어가면 더 기분이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런 짓을 했다간 혀를 깨물고 죽어주마!”

 

날카로운 말투로 쏘아붙이는 여자. 하지만 내 눈에는 내 밑에서 앙앙대는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분명 머지않아 내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그게…….”

 

아차, 또 잊어버렸군.

 

“[다샤]입니다. 에이길 님.”

 

세리아의 차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그녀를 부르려고 했으나.

 

!”

 

다샤가 내 손을 뿌리치고 엉덩이에서 떼어놔 버렸다.

으음, 여자 이름은 확실히 기억해 둬야겠어.

 

 

그때 무언가 몸이 흔들린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 뭔가 이상한 바람이라도 분 건가?”

나는 못 느꼈다!”

 

이리지나는 대개 아무것도 못 느끼니까 믿을 게 못 된다.

 

땅이 흔들린 것 같은데요…….”

 

민감한 세리아가 재빠르게 땅바닥에 손을 짚었으나 이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느껴지는지 안 느껴지는지도 구분이 안 갈 정도면 문제없지. , 진군 준비를 시작해라.”

!”

 

우리는 후퇴하고 있는 반드레아 군을 뒤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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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3  가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아레스 왕의 친구

영주민: 163000  중요 도시 라펜: 24000명 린트브룸 4500

 

군대: 13200(영지 내 대기 보병 1960)

보병: 7450 기병: 850 궁병: 1000 궁기병: 3900

대포: 30  대형포: 10

 

재산: 금화 570  전쟁 지속(5500)

경험 인수: 230  자식: 48+555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