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화『광신자들의 방식』
“하드릿 님, 괜찮으십니까? 눈 아래 눈그늘이 생겼습니다만.”
말에 올라타 도로를 내려가는 나와 솔라나, 그녀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문제없어. 그냥 좀 잠을 잘 못 잤을 뿐이야.”
사실은 어젯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여자들이 또다시 놔두고 갈 셈이냐며 난리를 피우더니 저녁부터 아침까지 계속 엉겨붙었던 것이다.
바람 못 피게 쥐어짜내겠다며 침대에 묶어두고는 안대까지 채우고서 하룻밤 내내 육봉을 괴롭혀댔다.
어쨌거나 나는 한 명이지만 상대방은 총 열넷, 모든 여자들의 체력이 다 떨어졌을 땐 이미 해가 하늘 높이 떠 있는 상태여서 잘 수 있는 시간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솔직히 하드릿 님의 소문은 다양하게 들었습니다만 동행은 남성 종자 한 명이군요.”
어차피 제대로 된 소문은 아닐 테지만 그 말대로다.
이번에 동행하고 있는 건 크롤 한 명뿐, 세리아와 피피는 따라오려 했으나 다른 여자들이 가로막았다.
이제 새치기는 안 된다며 관전만 할 테니 위험 요소는 없지 않냐고 따라가지 못하게 막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여자를 데리고 가면 솔라나를 노리기가 힘들기 때문에 크게 나쁜 상황은 아니다.
그건 그렇고…….
“색즉시공……공즉시색…….”
크롤이 이상하군. 이런 이 녀석은 보고 싶지 않다.
여자의 가슴골이나 슬쩍 보인 속옷에 정신이 팔려서 득달같이 달려들던 옛 모습으로 돌려놔야겠군.
“아무튼 국경까진 말을 타고 가면 그렇게 시간은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 그리고 길도 안전한 모양이고 말이야.”
알테일 신국 국경으로 향하는 길은 경비 태세가 엄중해서 짧은 구간마다 경비병이 배치되어 있다.
이 정도라면 도적이나 마물도 나오기 쉽지 않겠군.
“물론입니다! 우리 리버티스 군대가 지키고 있는 이상 치안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랑스럽다는 듯이 가슴을 펴는 솔라나. 오는 도중 적잖이 말을 나눠봤는데 그녀는 성실하고 순수한 여성이었다.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굳이 불만사항을 따지자면 너무 순수하단 점일까?
맨 처음에 느낀대로 남녀 사정에는 완전히 무지한지 은근슬쩍 어깨를 주무르거나 숨을 불어넣는 둥 유혹을 해봐도 전혀 눈치를 못 챈다.
다 알면서 거절하는 거라면 밀당을 하거나 해서 침대로 데려가는 방법도 있을 텐데 눈치를 못 챈 거라면 방법이 없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서두르자고.”
“예, 그건 그렇고……대단한 말이군요. 크기도 대단하고 방금 전부터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중인데 숨 한 번 헐떡이고 있질 않아요. 이쪽은 말을 두 번이나 바꿨는데…….”
그야 이런 변태 말, 체력이랑 크기가 평균이었으면 당장에라도 말고기로 바꿔버렸을걸.
마음을 읽은 건지 슈바르츠가 몸을 흔들어 나를 위협했다.
“근데 기분 탓인지 눈에 피곤이 찌든 듯한…….”
“…….”
나는 알고 있다.
이 녀석은 어젯밤 돌보미 여자를 실신할 때까지 따먹은 후 옆에 있던 암말도 계속해서 따먹었다.
그런 체력이 있으면 좀 더 빠르게 달려라, 이 색정광 놈아.
푸르르, 하고 불만스러운 소리를 내뱉는 변태말의 귀를 잡아당겨 주었다.
……요즘 털 때깔도 좋고 귀지랑 진드기도 없군.
돌보미 여자가 하루 온종일 달라붙어서 손질해 주고 있어서 그런 건가, 사치스러운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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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일/리버티스 국경지대
“흐음.”
“이건…….”
국경지대에 펼쳐져있던 광경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솔직히 이미 피 튀기는 분쟁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각오하고 있었다만.
“기묘하군.”
국경지대에 몰려있는 건 알테일 신국의 군대가 아니라 아무리 봐도 단순한 농민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백, 이백 수준이 아니라 얼추 봐도 천 명은 되어보였다.
리버티스 쪽 국경 경비대가 100명 정도……상대방한테 포위당하는 듯 보이면서도 국경을 넘으려 하는 사람들을 억눌러 막는 중이다.
“너희는 누구냐!”
기묘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 리버티스 군대의 병사가 달려왔다.
부탁하마, 솔라나.
“나는 제1병단 소속 100인대장 솔라나 에스트리아다. 이쪽은 하드릿 공으로 외무 차관님으로부터 관전 무관 허가를 받아두셨다.”
그녀는 깔끔한 경례 동작과 함께 품 속에서 편지를 내밀었다.
“100인대장!? 시, 실례했습니다! 그건 그렇소 수도 병단에서……? 관전이라 말씀하셔도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하드릿 공은 고르도니아에서 온 장군이시니 장래를 위해서 알테일을 직접 확인하시겠다 하셨다.”
내가 진짜로 보고 싶은 건 솔라나의 알몸이지만 지금은 마음에 묻어둬야겠군.
“그런 거라면……보고 계신대로입니다. 저게 요즘 놈들의 방식이죠.”
병사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저건 그냥 농민 아닌가?”
“그냥 농민이 맞습니다. 하지만 알테일 놈들은 농민부터 노예까지 전부 정신이 나갔습니다. 온정을 베풀어 받아들여도 신의 말씀이라는 말 한 마디에 우리 영지에서 반란을 일으킬 게 뻔합니다. 놈들이 이쪽에 쳐들어온 것도 알테일 신이라는 녀석의 지시겠지요.”
흐음, 민중이 전부 간첩이라 생각하니 골 치아프긴 하군.
“하지만 그러면 바로 내쫓으면 되는 거잖아.”
지금 보기에 농민들은 무장하고 있지 않았다.
완전 무장한 리버티스 군이 공격을 시작하면 금방 후퇴할 것이다.
“상대방이 직접 공격을 시작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만……현 상황에선 침입을 저지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중앙 쪽 지시를 기다리고 있으니 명령이 떨어지면 그에 맞는 대응을 할 겁니다.”
역시 리버티스 쪽 방식은 귀찮고 시간이 걸린다.
내 영지였으면 바로 그냥 “처리해라.” 한 마디로 끝낼 수 있을 텐데. 물론 좋은 여자는 죽이게 놔두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거대한 창이군요. 그런 물건을 참 그렇게 쉽게 드시다니 대단합니다.”
“그래? 이야, 쑥스러운걸.”
바지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크단 말이지.
하지만 고민거리도 있지.
제대로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여자들이 괴로워한다.
특히 처음으로 손을 대는 하인 같은 경우엔 비명을 내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 게다가 본 적 없는 광채를 띄고 있습니다만……어떤 재질인 겁니까?”
뭐야, 무기 얘기였잖아. 시시하긴.
민중들이 제각각 무어라 소리치면서 국경을 넘으려 할 때마다 리버티스 군이 그걸 막아낸다.
그런 놀이 같은 방식이 되풀이됐다.
“솔라나, 오늘 묵을 숙소로 안내해 줄 수 있겠어? 이런 걸 봐도 별로 의미가 없거든.”
“……그런 것 같군요. 그럼 조금 이르긴 합니다만 이쪽에 국경 경비 요새가…….”
솔라나의 목소리가 멈췄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그녀의 시선을 쫓아가보니 분쟁이 일어나는 곳의 한층 안쪽, 알테일 신국 영지에서 다시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오고 있었다.
“인원이 추가된 모양이군.”
“이곳 대장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일단 저는 연락을 취하러, 아니 하드릿 공!?”
나는 창을 손에 쥐고 슈바르츠 위에 올라탔다.
“잘 봐라, 새로 온 놈들은 그냥 밀어붙이러 온 게 아닌 것 같거든.”
새로 나온 놈들은 손에 망치와 괭이, 도끼 같은 걸 쥐고 있었다.
갑옷은 없지만 인원수를 보아 국경 경비대만 가지고는 상대하기 힘들 수도 있다.
“!? 대, 대장한테 전하고 오겠습니다.”
허둥지둥 달려나가는 솔라나의 뒤를 쫓는다.
솔라나는 되도록 지켜주고 싶으니까 말이야.
“함께하겠습니다.”
크롤이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들고 솥뚜껑을 손에 쥐었다.
두려워하는 분위기는 보이지 않고 그저 차분했다.
라미랑 만났을 때하고는 차이가 심하군.
고자가 된 기간이 길어진 탓에 무슨 경지에 도달해 버린 모양이다.
“새로운 놈들이 온다!” “무장한 상태다, 주의해라!”
자, 한바탕 시작이다.
하지만 이제야 리버티스 군의 진짜 능력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놈들이 국경을 넘고 있습니다!”
“경고 무시를 확인. 농민……아니, 적을 격파한다. 궁병대, 발사!”
귀찮은 수순을 밟은 뒤 리버티스 군대가 활을 쏘기 시작했다.
숫자 자체는 적지만 정확하고 차분한 사격이다.
숙련도는 상당히 뛰어난 걸로 보인다.
“신을 두려워 않는 어리석은 놈들에게 죽음을!!”
화살에 맞은 집단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것을 신호로 지금까진 그냥 밀기만 하던 농민들이 단번에 확 하고 고개를 들었다.
“배교자에게 죽음을!” “알테일의 축복을!”
“이놈들……맨손으로 달려드는 중이잖아!”
“해치워라! 제기랄, 숫자가 많아!”
“최근에 이걸 본 기억이 있는데.”
“네……라펜 묘지 때 좀비 소동이네요.”
나와 크롤은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그 광경을 보았다.
리버티스 군은 생각보다 숙련도, 사기 모두 높았다.
갑자기 주변에 적이 우글우글 나타났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질서를 유지 중이다.
하지만 인원 수 차이가 워낙 심한지라 난전을 벌이면서 요새 쪽으로 점차 후퇴하는 중이었다.
나도 저 안으로 뛰어들어 백마 탄 기사를 연기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내 목적은 알테일의 방식과 리버티스 군대를 시찰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달성한 상황, 이제 남은 건 안전한 요새 쪽으로 도망친 다음 추이를 지켜보는 게 가장 올바른 방식이리라.
“돌아가시겠습니까?”
“아니, 안 돌아가.”
난전 중에 솔라나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안내해 준 여자를 놔두고서 안전한 곳으로 도망칠 순 없다.
게다가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있으면서 안 게 있다.
그녀는 이런 전장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군대 쪽 계급 자체는 제법 높은 편인 걸로 보이지만 아마 형식적인 직책이었던 것이리라.
“따라와라 크롤.”
슈바르츠의 배를 발로 걷어차 속도를 높였다.
이 녀석도 여자를 구하러 간다는 걸 알고 있는 건지 기분 나쁜 표정은 짓지 않았다.
“솔라나! 어딨나!?”
소리치면서 찾아보았지만 여기저기서 노성과 매도 소리가 울려퍼지는 탓에 대답이 없다.
어쩔 수 없지. 난전 속 한복판까지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어.
“알테일의 은혜 아래에서…….”
“시끄러워!”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면서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남자를 말 위에서 발로 걷어찼다.
머리가 옴폭 패이고 말았지만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다.
“어이, 너. 솔라나가 어딨는지 모르나?”
“모,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주변이 온통 적인지라……우왓!”
병사한테 물어보았지만 모르는 모양이다.
그 녀석한테 떼지어 있는 적병을 세 명 정도 베어낸 다음 찾아내면 요새까지 데려다 두라고 말해두었다.
“천벌을 받아라!”
“그 정도로 내 파트너를 깨부술 순 없다.”
크롤이 솥뚜껑으로 망치를 막아내고서 반격으로 상대방을 베어넘겼다.
기분 탓인지 동작 자체가 굉장히 매끄러웠다.
그건 그렇고 아직도 안 부서지다니 튼튼한 뚜껑이군.
“어이. 너는 솔라나가 어딨는지 알고 있나?”
“알테일이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어깨를 붙잡은 상대는 적병이었다.
“헷갈리는 자식, 이렇게 해주마!”
목덜미를 붙잡아 홱 하고 뒤쪽으로 돌리니 무언가가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바들바들 경련하는 남자를 던져버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설마 벌써 죽은 건 아니겠지?
“싫어어어어어!! 이거 놔!”
들은 기억이 있는 날카로운 비명소리, 틀림없이 솔라나다.
“저쪽이다. 크롤, 따라와라.”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슈바르츠가 비명이 들린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난전 속 한가운데는 안 보이지만 눈앞에 있는 적은 전부 발굽으로 밟아버려라.
“저기입니다.”
크롤이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는 장소에선 솔라나가 여러 명의 적한테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이미 손에 검도 없고 두 손은 붙들린 채 끌려가는 중이다.
알테일 영지 내로 끌고 가려는 모양이다.
“구하러 가자.”
하지만 리버티스의 지휘관처럼 보이던 남자는 영 시원찮았다.
“잠깐! 이미 놈들은 국경을 넘어갔다. 국경을 넘은 공격은 사령관의 승인이 나온 뒤에 하지 않으면…….”
아직도 지껄이는 거냐.
“내 마음대로 할 거다. 창을 이리 내놔.”
“기다리십시오! 당신은 관전 무관이기 때문에 전투에 참가할 수는!”
나는 지휘관의 창을 빼앗고 내 창과 함께 두 손에 쥐고 돌격했다.
물론 국경은 그냥 넘어간다. 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더 여자를 우선시해야하니까 말이야.
“내 여자를 돌려줘라!”
단독으로 쳐들어간 나를 처리하려고 도끼와 조잡한 창을 손에 쥔 놈들이 무리지어 달려들었다.
숫자는 20명 정도, 다들 신은 어떠니 알테일이 어떠니 중얼거리고 있지만 내 알 바는 아니다.
내 여자를 빼앗고서 살아돌아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오오오오오!”
놈들은 몇 명이 한꺼번에 허리를 낮추고서 무기를 앞으로 내질렀다.
기병을 상대할 때 쓰는 창진을 만들려는 모양인데 너무 허접한 진형이다.
“그 정도로 막아낼 수 있을 줄 알았나?”
두 손에 쥔 창을 번갈아 마구 휘둘렀다.
날끝이 몸에 닿은 자는 피분수를 터트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고 무기에 닿은 자는 수중의 도구를 잃고서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왓! 이 말!” “끄아아악!”
맨손이 된 남자를 노리고서 슈바르츠가 짓밟기 시작했다.
평범한 말의 2배 정도 되는 무게가 있는 이 녀석한테 짓밟히면 사람은 원형을 유지할 수 없다.
나도 질 수 없지.
옆에서 무기를 내지르려고 하는 남자의 복부에 드워프의 창을 꽂고서 다른 적을 향해 내던졌다.
왼손에 쥔 평범한 창은 세 번째 인원을 쓰러트린 순간 부러졌기 때문에 적한테서 도끼를 빼앗아 이번엔 그쪽으로 휘둘렀다.
“괴, 괴물이다!” “악마다! 알테일이여, 지켜주소서!”
처음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던 적들도 슬슬 허리 힘이 풀리기 시작했군.
마무리로 한 놈을 더 꼬챙이로 만들어버린 뒤 공중으로 휙 날려버리고는 두 동강으로 쪼개버렸다.
쏟아져내리는 대량의 피를 보고 내 앞에 서 있는 자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체 뭐가 관전이냐! 싸울 마음 가득이잖아!” “고르도니아에는 저런 괴물이 있단 말인가…….”
“이, 이 책임은 누가 지는 거지?”
리버티스 병사까지 날 보기 시작했다.
그쪽은 그쪽대로 열심히 남은 놈들을 처리해 달라고.
거의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나는 질질 끌려나가는 솔라나 뒤를 따라붙고선 말에서 뛰어내려왔다.
어느새 크롤도 옆에 와 있었다.
“솔라나를 돌려줘라, 안 그러면 전부 다 죽는다.”
그러자 한 노인이 두 손을 벌리고 내 앞에 섰다. 무슨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얌전히 돌려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우리는 신의 의지 아래 적에게 벌을 줄 것이다. 거스르면 지옥……어라?”
말을 끝내기 전에 내 창이 움직였다.
그래, 신의 가호가 있는 모양이구나.
왜냐하면 어깨부터 머리통까지만 남았는데도 계속 말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끄헉.”
기분 나쁜 외견이 된 노인을 짓밟고서 또다시 누군가가 앞으로 나왔다.
고함을 내지르면서 달려드는 사람이 두 명.
한 명은 공격을 피하고 나서 정수리에 도끼를 때려박았다.
나머지 한 놈은 손을 붙잡아 뒤쪽으로 내던졌다.
“제기랄……아직이다……으, 으아아아악!”
바닥을 구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 남자의 머리를 슈바르츠가 짓밟았다.
“자, 잠깐! 우리한테 손을 대면 이 여자를……어라? 여자는 어딨나!?”
한 사람이 솔라나한테 검을 들이대려고 하다 이미 그곳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잘 했다, 크롤.”
크롤이 슬쩍 뒤로 돌아가 솔라나를 녀석들한테서 구출해 낸 것이다.
허둥지둥 되찾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돌진과 동시에 내질러진 날끝이 순식간에 두 사람의 두개골을 꿰뚫었고 그 기세 그대로 목과 함께 찢어버리곤 주변의 네 명을 베어냈다.
허둥지둥 반격하는 남자들, 하지만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않은 놈들의 공격쯤이야 멈춰있는 것처럼 보인다.
첫 번째 놈을 상대할 땐 도끼를 피하고서 얼굴에 주먹을 갈겼고 두 번째 놈은 창을 붙잡아 내던졌다. 세 번째 놈은 팔을 부러트리고 나서 목덜미를 붙잡아 꺾어버렸다.
이제 얼추 다 정리됐나?
크롤 쪽도 두 명을 더 쓰러트렸다.
한 명은 크롤이, 나머지 한 명은 솔라나가 해치운 모양이다.
“아……아으…….”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검을 손에 쥐고서 동요하는 중이었다.
실전 경험이 없는 건 확정이군.
“이제 괜찮아. 무서웠지?”
솔라나를 끌어안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군인이니 세상 물정 모르는 처녀처럼 대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두 어깨를 바들바들 떨면서 그런 소리를 해도 설득력이 없는데.
이대로 알테일 영지 내로 끌려갔으면 어떻게 됐을는지.
나는 딱히 리버티스를 도울 생각은 없다.
외무 대신하고도 죽이 잘 맞는다고 말하긴 힘들다.
하지만 알테일 신국 놈들이 민중까지 정신이 나간 상태라는 건 확실히 알았다.
최소한 놈들보다는 리버티스 놈들 쪽이 더 얘기가 통할 느낌이다.
“저는 대장과 얘기를 해야 할 게 있으니 먼저 요새로 돌아가 주십시오.”
내 품 속에서 솔라나가 말했다.
“음……그런데 손이 안 떨어지는데.”
솔라나의 손은 내 팔을 붙잡고서 놔주지 않았다.
“어, 어라? 에잇! 어라라?”
첫 전투와 죽음의 공포는 생각보다 더 크게 다가와 있는 모양이다.
한동안 꼭 끌어안아줘야겠군.
크롤, 어쩌면 오늘밤은 둘이서 자게 될지도 모르니까 침대 준비를 부탁하마.
“색즉시공…….”
하지만 결국 대장한테서 관전 목적으로 온 내가 날뛰었다는 것과 멋대로 국경을 넘어 공격했단 사실의 뒷처리 때문에 바빠진 탓에 솔라나의 위에 올라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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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트엔트
“부.” “부―.” “부부.”
떠나버린 남자한테 여자들이 불평을 내뱉었다.
“에이길도 너무해. 또 우리를 두고 가다니.”
“이번엔 저도 두고 가버리셨습니다…….”
“피피도다! 피피도 내가 어디 있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하지만 이번엔 크롤밖에 안 데려갔으니까 여자랑 엮일 여지는 없지 않은지…….”
“어설퍼! 군인 중에 여자가 같이 있었잖아. 지금쯤 에이길의 거근을 맛보면서 히익거리고 있을걸!”
“에이길 님이 곁에 있는 여자한테 손을 안 댈 리가 없습니다……적당한 데에서 그치면 좋겠습니다만.”
시끄러운 여자들을 달래듯이 논나가 손뼉을 쳤다.
“어쩔 수 없죠. 에이길 님한테도 일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뒤이어 논나는 묵직해 보이는 소리와 함께 모든 이들의 눈앞에 주머니를 놔두었다.
“뭐야, 그 주머니는?”
“에이길 님이 마음대로 써도 좋다며 내가 없는 동안에도 즐겨 달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주머니 안을 열어보니 금화가 가득 들어있었다.
“몇 닢이나 있는 거야?”
“500닢 정도 되지 않을까요? 이걸로 잔뜩 놀고먹으라는 얘기겠죠.”
여자들이 얼굴을 마주보았다.
“아, 암만 그래도 다 쓰는 건 좀 아니지…….”
밀레는 본 적도 없는 산더미 같은 금화에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마, 맞아요. 역시 다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정도로 그쳐야 한다구요!”
미티와 마리아가 함께 소리쳤다.
이 둘도 원체 소시민이다보니 사치를 부린다 하면 비싼 가게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 정도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새로운 드레스 같은 거, 엄마한테 사가지 않을래?”
“옷은 비싸다구, 언니.”
시끄러운 여자들을 논나가 제지했다.
“에헴, 우리는 하드릿 가문의 여자니까 그런 쪼잔한 사치를 부렸다간 에이길 님의 명성이 울 거예요.”
“맞아요. 조금 가난한 티가 느껴질 수도.”
카트린느도 작은 목소리로 동의했다.
“그럼 어쩔 거야?”
“저한테는 안 좋은 예감밖에 안 듭니다.”
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세리아가 골머리를 싸맸다.
“저를 따라오세요! 귀족의 쇼핑이라는 걸 가르쳐 드리겠어요!!”
활기찬 모습으로 여관을 뛰쳐나가는 논나, 호위역인 기드와 맥도 허둥지둥 뒤를 따랐고 그 분위기에 휩쓸린 여자들도 우르르 뒤를 따랐다.
옷가게
“이 아름다운 드레스……사버릴까……?”
“루우, 뭘 망설이고 있는 건가요? 점주, 옷을 맞춰 주세요. 13……아니, 14명 분량이네요. 가을이랑 겨울에 맞춰서 세 벌씩.”
“가, 감사합니다! 얘들아, 전부 다 나와!”
레스토랑
“저기……이 비싼 고기를…….”
“미티, 가난한 티 좀 내지 마요. 메뉴에 있는 걸 전부 주시죠. 다 못 먹는 건 여러분이 드셔도 상관없구요.”
“알겠습니다, 사모님.”
과자 가게
“맛있다……설탕을 이렇게나 많이 쓰다니!”
“세리아 짱, 이쪽 크림도 엄청나게 달콤해.”
“가게에 있는 과자를 전부 사겠어요. 나중에 여관으로 보내주세요.”
노점상
“이, 이건 좋은 물건이네요.”
“안목이 뛰어나시군요! 이 항아리는 금화 10닢 아래로는 결코 안 떨어질…….”
“……논나 씨, 짝퉁인 게 들통나면 에이길 님한테 일러바칠 줄 아세요.”
이상한 노점
“이건 약……?”
“노잣돈이 다 떨어졌거든. 금전 감각은 좀 떨어지지만 은화 2닢 정도면 손해는 안 볼 테지.”
후드를 뒤집어쓴, 딱 보기에도 수상쩍인 여자가 눈앞에 약병을 하나 놔두고 있었다.
확실히 수상쩍다고 느낀 건지 논나는 망설였고 맥이 그녀를 지키듯이 앞으로 나섰다.
“흐음……그래서 어떤 효과인지요?”
“정력 증강이다.”
논나는 사랑하는 남편에게 격렬하게 안기는 광경을 상상하고 미소 지었으나 금세 표정을 다잡았다.
“……사겠어요. 어머, 은화가 없네요. 금화로도 괜찮으신지?”
“미안하다만 잔돈이 없거든.”
잠깐 망설이는 논나, 이게 상습 사기 수법이라는 건 그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약은 수상쩍긴 해도 확실히 효과가 있어 보였다.
남편한테 쓰기 전에 크롤이나 크리스토프한테 먹이면 효과도 알 수 있겠거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효과는 확실한 거겠죠?”
“보장하지.”
“그럼……금화 한 닢에 사겠어요.”
여자의 눈은 후드에 가려져 있어 알 수 없었으나 한 순간 확실히 깜짝 놀란 기척이 느껴졌다.
“괜찮겠나?”
“빚으로 해두죠. 마음이 내키면 갚으러 오세요.”
물론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는 걸 논나는 알고 있다.
여자는 고개를 들고서 논나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이름을 물어보도록 하지.”
논나는 약병을 보고서 한동안 망설였다.
정력제는 그렇게까지 당당하게 이름을 밝히고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카라라고 합니다. 이곳은 여행을 하러 왔죠.”
“여행자 카라……좋아, 고맙다. 빚은 언젠가 갚도록 하지.”
논나가 그 자리를 떠나고서 여자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량과 물, 그리고 낡은 신발을 갈아신고 조용히 토르트엔트를 뒤로 했다.
“이 내가 인간 따위한테 빚을 지게 될 줄이야.”
여자가 후드를 벗었다.
투명하게 보일 지경인 하얀 피부와 조각처럼 새겨진 듯한 용모,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인간에겐 결코 있을 수 없는 기다란 귀였다.
그녀는 가볍게 미소 짓고서 서쪽을 향해 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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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3살 가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아레스 왕의 친구
영주민 162000 중심 도시 라펜 24000 린트브룸 4000
리버티스 민주국 동행
논나(orz) 세리아(orz) 카라(orz) 미티(orz) 마리아(orz) 카트린느(orz)
쿠우(orz) 루우(orz) 밀레(orz) 레아(orz) 요구리(orz) 케이시(유령) 피피(애첩)
앨리스(마법 소녀) 안토니오(아들) 로즈(의붓딸)
기드(호위) 크롤(잡무) 슈바르츠(호색마) 맥(호위) 크리스토프(기진맥진)
라미(두고 온 물건!)
재산: 금화 10620닢 호쾌하게 낭비(500)
경험 인수: 226명 자식: 4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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