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3
“깨어났나?”
“큭!?”
일어나자마자 날뛰려하는 라미아를 맥이 뒤에서 졸랐고 나는 미소 지으며 달래는 척 은근슬쩍 아름다운 가슴을 매만졌다.
“진정해, 우리는 너를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야.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거지.”
물론 가능하다면 구멍도 쓰고 싶고 키스할 때 느꼈던 뱀 특유의 가늘고 긴 혀로 물건을 빨게 시키고도 싶지만 처음부터 그런 말을 했다간 다툴 테니 참는다.
“얘기라니, 뭔데…그보다 왜 가슴 만지는 거야?”
역시 이 라미아는 민감하다. 슬쩍 주무르고 있던 사실을 눈치 채다니.
얼렁뚱땅 넘기고 본제로 들어가야지.
“예쁜 가슴이군. 그건 그렇고 우리는 사람을 찾으러 왔거든. 어제 숲을 헤매다 사라진 아가씨가 있는데 뭔가 아는 거 없나?”
라미아는 거북하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모, 몰라. 전혀, 하나도.”
““알고 있군. 대답해 줘야겠어.””
나와 밀레의 목소리가 겹쳤다.
얼버무릴 순 없지.
젖꼭지를 꼬집어 주마.
“꺄악! 왜 끝부분 꼬집는 거야……알겠다구.”
내 손을 떨쳐내고 맥한테도 이거 놓으라며 신음하는 라미아, 아무래도 마물이긴 해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인 모양이다.
맥한테 손을 놓으라고 말했다.
아쉽다는 듯이 손을 떼어놓는 근육남……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사실은 상당한 호색한이었지.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을 즐기고 있던 모양이다.
“자, 얘기해 봐. 뭘 알고 있지?”
“……나 있지, 고블린 같은 건 냄새가 나서 싫어하니까 못 먹거든. 다른 동료들이랑 다르게 말이야.”
식사 얘기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동료라는 얘기는 흘려들을 수 없지만.
“그래서 맨날 과일 같은 걸 찾아서 먹고 있었는데……찾기가 쉽질 않아서 숲 바깥쪽까지 갔었거든. 그랬더니 인간 여자애가 있더라구, 고블린한테 쫓기던 애가.”
고블린이 밖을 돌아다니던 건 아까 봤다.
애초에 놈들이 밖으로 나온 건 라미아가 안에 쳐들어와서 그런 거 아닌가?
지금 들은 얘기로는 고블린을 붙잡아서 잡아먹은 것 같으니 말이야.
“그래서 슬쩍 뒤를 밟아서……인간 여자애를 붙잡아서…….”
“설마!”
세리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치만, 인간 여자애는 쉽게 잡을 수 있는 게 아니구, 부드럽고 냄새도 안 나구……맛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구!”
“먹은 건가…….”
안 좋은 방향으로 결말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 라미아를 책망해 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렇군……이미 늦었으니 어쩔 수 없지. 가능하다면 그 여자가 갖고 있던 물건을 아무거나 돌려줄 수 있겠나? 어머니한테 설명해 줘야 하거든.”
나 말고 다른 이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진 사실에 겁을 먹으면서도 라미아는 이쪽이라며 손을 잡아당겼다.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는데? 인간만 안 잡아먹었으면 좀 더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안내받은 곳은 커다란 나무의 구멍을 가공한 집이었다.
동료가 있다고 말하길래 걱정했었는데 아무래도 혼자서 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라미아는 스륵스륵 재주 좋게 몸을 굽혀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그 애가 입고 있던 옷이야.”
“으읍? 읍―!?”
라미아가 건넨 옷에는 찢어진 곳도, 핏빛 자국도 없이 깨끗했다.
이걸 모친한테 돌려주면 그녀도 포기할 수 있으리라.
딸이 잡아먹힌 이상 그 여자를 안을 수는 없을 테지만……어쩔 수 없지.
“미안해, 그래도 나도 살아가는 이상 고기를 먹어야 하거든.”
“읍――! 으읍—―!!”
“알고 있어. 하지만 나도 일단 인간이니까 말해두지. 앞으로는 되도록 사람은 먹지 말았으면 해. 만약 먹을 거라면 여자가 아니라 못생긴 남자를 졸라 죽인 다음 맛보도록 하고.”
“응……생각해 둘게.”
“으극―――! 으읍―――!!”
아까 전부터 안쪽이 소란스럽군.
일부러 라미아를 설교하는 중인데 말이야.
한 마디 불평을 해주려고 안을 들여다보니 옷이 전부 다 벗겨진 소녀가 재갈이 물린 채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
“으읍.”
“응? 왜 그래?”
소녀는 내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필사적으로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작은 가슴과 이제 막 털이 자라기 시작한 가랑이도 숨길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여자애는?”
“방금 말한 애, 지금부터 먹을 거야.”
“읍―――!!”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있으면 그렇다고 말을 해!”
“으엑―!”
라미아의 뺨을 잡아당기고 있는 힘껏 좌우로 늘려주었다.
“으으……내 저녁 식사.”
추욱 어깨를 늘어트리는 라미아, 옷을 입은 소녀는 내 등 뒤에 숨어 그녀를 위협하는 중이다.
“여자는 먹지 마, 그 대신 크리스토프를 줄 테니까.”
“너무하구만!”
그때 숲이 뭔가 시끌벅적해졌다.
짐승 같은 신음소리와 풀을 가르는 여러 개의 발소리……그리고 가끔씩 단말마가 들린다.
“뭐지!? 잠깐 보고…….”
밖으로 나가려 한 밀레를 라미아가 끌어안았다.
“지금 나가면 안 돼! 동료들이 사냥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들키면 분명 잡아먹으러 올 거야.”
“아, 알겠으니까 옥죄진 마. 생각보다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단 말이야.”
라미아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장소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동료가 있다고 했었지.”
“응, 나는 조금 사정이 있어서 살짝 떨어진 데에 살고 있지만 동료들은 같이 모여서 생활 중이야. 아마 고블린 무리를 찾아낸 것 같아.”
상대방이 고블린이라면 아무것도 뭐라고 할 필요는 없다.
거유의 라미아 집단이 젖을 흔들면서 고블린을 쫓아가고 있는 건가……비켜라 크롤, 내가 먼저 볼 거다.
밖에선 고블린이 손에 쥔 몽둥이나 창을 던지면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중이다.
그 등 뒤를 쫓아가는 라미아 집단이……라미아……라미아?
“어이, 저건 뭐냐.”
“보면 알잖아? 내 동료야.”
“아뇨, 모르겠는데요.” “뭐야 저게…….” “이거 끔찍하구만.” “저런 괴물, 본 적도 없어.”
다들 똑같이 넋이 나간 듯했다.
“뭐가 어때서. 절반 인간, 절반 뱀이잖아.”
부위가 문제라고.
눈앞에서 고블린을 쫓아가고 있는 집단은 두 다리로 땅을 밟으며 달려가는 중이다.
문제는 가슴께부터 2m 이상은 되어보이는 기다란 뱀의 머리가 돋아나 있는 것이다.
키익, 하고 뱀의 울음소리와 함께 목이 뻗어나가더니 고블린한테 달라붙어 통째로 집어삼켰다.
여러 개의 대가리가 꿈틀꿈틀 움직이는 모양새가 끝내주게 기분이 나쁘다.
심지어 암컷과 수컷이 섞여있는 건지 가슴을 흔들면서 달리고 있는 개체도 있고 남성기를 덜렁거리며 달려가는 개체도 있다.
개중에는 뒤룩뒤룩 살이 찐 개체나 이상하게 근육이 잘 붙은 개체도 섞여 있었다.
엄청나게 끔찍한 광경이군.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나 혼자만 있지……이상해. 다들 멀쩡하게 상반신이 뱀인데 나 혼자서만 하반신이 뱀인 거 있지……저주받은 걸지도 몰라.”
“아니, 저주받은 건 저놈들이야. 틀림없어.”
만약 처음에 만난 그녀가 저런 모습이었더라면 나는 가차없이 칼을 휘둘렀을 것이다.
라미아는 마물이지만 저놈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다.
“그러니까 다른 동료들하고도 같이 있기 힘든 거 있지.”
자신감 가져, 잘못된 건 저놈들 쪽이니까.
라미아로서 너는 한없이 올바르다고.
“저기……빨리 집으로…….”
내 소매를 잡아당기는 소녀, 그녀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모양이다……하긴 그렇지.
하지만 나는 아직 라미아의 가슴도 제대로 만지지 못했고 구멍도 맛보지 못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으려나?
“저기……내 저녁밥 가져갈 거라면 부탁 좀 들어줘.”
“응? 부탁?”
라미아가 입을 떼자 소녀와 밀레가 동시에 내 등 뒤로 숨었다.
“원래 우리는 숲 저 깊은 곳, 그러니까 중심이랑 가까운 곳에 있었거든. 그곳엔 과일도 잔뜩 있었구 계란도 많아서 먹을 게 많았단 말이야.”
흐음, 좋은 곳이잖아.
인간도 숲 깊숙한 곳까진 안 들어가니까 서로 간섭할 일도 없을 거고 말이야.
“그치만……그게 나타난 뒤에 전부 바뀌어버렸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숲 바깥쪽까지 나와서 여기 있는 고블린을 잡아먹는 수밖에 없는 거야.”
그렇군, 무언가가 라미아를 밖으로 내보내고 라미아가 이번엔 고블린을 한층 더 밖으로 밀어내서 마을 근처까지 놈들이 왔다는 뜻이다.
“너는 엄청나게 강해보이니까 그걸 쓰러트려줄 수 없으려나? 그렇게 하면 우리도 숲 안쪽으로 돌아갈 테니까 인간이랑 엮일 일도 없을 것 같아.”
“흐음…….”
잠시 생각해 봤지만 우리가 이 마을의 안전을 지켜줘야 할 필요는 없다.
소녀를 구해준다는 목적을 달성한 이상, 여기서 더 관여할 필요는 없다.
“보답은 제대로 해줄 테니까.”
“보답이라고?”
움찔, 하고 반응해버렸다.
“아아, 또 이건가…….”
“숲 안쪽이랬죠……준비하죠.”
밀레와 세리아가 포기한 것처럼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가겠다고 정하진 않았다고.
라미아는 팔을 벌렸다.
물론 상반신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그녀의 가슴은 훤히 다 드러났다.
“뭐든 좋다구? 이곳에 인간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있지, 있고 말고.
아름다운 여자의 몸이 있지.
“출발 준비를 해야겠네요.” “이거 괜찮은 거냐고…….” “나무 몽둥이 주웠다……몽둥이랑 솥뚜껑이 내 무기…….”
남자들까지 출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을 퇴치하면……네 가슴을 마음대로 다뤄도 되나?”
“가슴? 뭐, 닳는 것도 아니니까 상관없는데.”
좋았어, 하지만 교섭을 할 땐 탐욕적으로 해야 한다고 클레어가 말했었다.
“가슴 말고도 몸을 전부 핥거나……내 성기를 문지르는 것도 가능한가?”
“이, 이상한 말 하지 마……딱히 상관없는데.”
훌륭해!
하지만 나는 아직 배고프다.
“그 구멍에 남근을 박아넣고 휘저어도 되나?”
“그건 안 돼.”
“큭! 역시 나는 교섭에 재능이 없는 건가…….”
뭐, 좋아.
은근슬쩍 행위 도중에 집어넣어주지.
“알았어. 장소는 알고 있겠지?”
“응, 원래 우리가 살고 있던 곳이니까. 잘못 갈 리가 없지.”
방침은 정해졌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못 들었잖아.
라미아라는 건 이름이 아닐 테니까 말이야.
“이름? △■○◎☆인데.”
뱀이 내는 소리……내 입장에선 발음처럼 들리질 않는다.
하긴 그렇지, 이름을 부르는 놈들은 방금 본 뱀 인간들이니까 말이야.
“지금부터 넌 라미라고 불러야겠어.”
어이 세리아, 대충 지었다는 표정 짓지 마.
“으으으……라미아랑 같이 가는 거야?”
구해낸 소녀는 겁을 먹고 움츠러들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하마터면 잡아먹힐 뻔했으니까.
“괜찮아, 내 뒤에 붙어 있어. 지켜줄 테니까.”
소녀를 끌어안고 귓가에서 속삭였다.
곧바로 소녀의 굳어있던 몸에서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네……부탁드릴게요.”
붉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미소 짓는 소녀, 이상하게 태도가 부드럽군.
고작 30분 정도 전에 만난 사이인데.
“죽음의 공포 때문에 떨고 있는 틈을 타 끌어안는다……흠.”
“여자 마음을 함락시키는 데엔 제격이죠. 노린 게 아니라면 대단한 겁니다.”
시끄러워, 출발하자.
우리가 가는 곳은 지금보다 한층 더 깊고 어두운 숲이었으나 라미가 이끌어 준 덕분에 헤메는 일 없이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에 성공했다.
“저건……커다란 꽃이군요.”
그곳은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 사이 속에서 마치 광장처럼 탁 트인 공간이었다.
중심에는 살짝 크기가 큰 풀이 있고 한가운데에 예쁘고 커다란 꽃이 한 송이 피어있었다.
“아니, 너무 크잖아. 저 꽃 2m는 된다고.”
“저게……우리가 여기서 살 수 없게 된 원인이야.”
신기하다는 듯이 꽃을 바라보는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라미의 얼굴은 증오와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저걸 짓밟으면 되는 건가?”
그런 걸로 몸을 내어준다니 생각보다 편한 일이잖아.
도시에서 사람을 구하면 모든 남자가 다 떼지어 몰려들겠어.
이상할 정도로 몸을 감추고 있는 라미를 놔두고서 자리에 일어나 광장 중심으로 향하려던 그때였다.
“에이길 님! 무언가 옵니다!”
세리아의 목소리에 일단 고개를 숙였다.
키익, 하고 더러운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고블린 여러 마리. 중심에 있는 개체는 상당히 크다.
홉고블린인 게 분명해 보였다.
“어서 처리하자. 방해될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뭔가 상태가 이상합니다!”
자세히 보니 놈들은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광장 중심으로 가는 중이다.
마치 무언가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고블린들이 광장 중심으로 다가가자 풀덩어리에 움직임이 보였다.
커다랗게 피어난 꽃 중심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꽃이……움직였어!?”
“저게 우리를 내쫓은 녀석의 정체야……무시무시한 괴물이지.”
꽃 중심에 올라온 무언가는 꿈틀꿈틀 움직이며 여자의 형태를 취했다.
피부는 녹색, 머리카락은 덩굴 같은 식물로 되어 있어서 살짝 인간의 형태와는 느낌이 다르지만 어쨌든 알몸의 여자를 연상시키는 조형이다.
“여자……으읍!”
내 움직임을 예상하고 있던 밀레와 세리아가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덕분에 고블린과 꽃 모두 우리를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다.
“저건 유혹하고 있는 거야……잘 보고 있어.”
라미가 말한대로 몸을 감추고 시선을 집중했다.
고블린들은 휘청거리면서 녹색 여자 근처로 다가갔다.
성욕을 자극당한 건지 다들 그 더러운 성기를 발기시킨 상황이다.
놈들이 충분히 다가가자 녹색 여자의 발밑에서 촉수 같은 무언가가 스르륵 하고 뻗어나왔다.
단순한 덩굴이라기엔 두껍고 끝부분에 기묘한 덩어리가 붙어 있었다.
“우왓!” “끔찍하네…….”
기드와 밀레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촉수가 고블린들의 발기한 성기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놈들은 소리를 내지르며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이……왜 고블린들이 허리를 흔드는 걸 봐야 하는 거지?”
“쉿! 곧 알게 될 테니까.”
라미가 이렇게 말하길래 어쩔 수 없이 다음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랑이 사이에 쾌감을 느끼던 고블린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을 때 촉수 하나가 더 뻗어나왔다.
이번엔 두께감이 상당한데 딱 보기에도 무언가 들어 있는 듯했다.
촉수 하나가 고블린 위에서 입을 벌리더니 끈적한 액체를 머리 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순간, 달군 철에 물을 뿌린 듯한 엄청난 소리와 함께 고블린이 녹기 시작했다.
“우왓!” “저건 소화핵인 건가……?”
온몸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더니 증기와 함께 몸의 형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살짝 거리가 있는 이곳까지 엄청난 악취가 풍겼다.
신기한 건 주변 고블린들은 물론이고 소화액이 닿은 고블린조차 저항 한 번 없이 비명조차 내지르지 않는다.
미친듯이 가랑이 사이에 달라붙은 촉수를 붙잡고 허리를 흔들다 끝내 완전히 녹아내려 사라지고 말았다.
끈적하게 녹은 고블린은 땅에 흘러내려 꽃의 양분이 될 것이다.
“저렇게 먹잇감을 끌어들인 다음……녹여버리는 거야. 내 동료도 몇 명이나 당했어.”
“알라우네……보는 건 처음이야.”
밀레는 이름은 알고 있던 모양인데 자세한 건 모르는 듯하다.
지켜보는 와중에도 알라우네는 차례차례 고블린을 녹여버리더니 끝내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되었다.
“저런 걸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돌아가시죠.”
“너무해, 약속이 다르잖아! 그럴 거라면 내 저녁밥 돌려줘!”
“싫어어엇!”
세리아와 라미가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저 이상한 거에 물건만 안 박으면 되는 거잖아.
소화액을 내뿜는 촉수의 움직임은 둔한 편이니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맞지 않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손에 쥐고 정면으로 알라우네한테 다가갔다.
“앗! 아, 안 돼!”
라미가 무언가 소리치고 있지만 문제없다.
금방 정리하고 돌아올게.
일단 여자의 형태를 띄고 있긴 하지만 저건 식물이잖아.
좀 더 가슴 형태가 분명했으면 망설였을 텐데 말이야.
내가 다가온 걸 눈치 챈 알라우네가 내 쪽을 향해 촉수를 뻗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곳에서 흥분할만큼 어리석진 않아.”
창을 휘둘러 촉수를 가볍게 베어냈다.
본체를 베어버리면 되는 건가?
그러자 놈은 갑자기 노란색 꽃 무리를 움직여 파닥파닥 흔들기 시작했다.
백기라도 흔들 셈인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여기서 봐줄 수는 없지…….
“끄응…….”
갑자기 사고가 일그러진다.
순간 환각 마법인가 싶었으나 의식 자체는 분명했다.
그저 참을 수 없는 성욕에 휩싸였다.
뭐든 좋아, 동물이든 땅바닥 구멍이든 좋으니까 남근을 집어넣고 싶어. 정액을 배출하고 싶어.
물건이 닿지도 않았는데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지가 찢어져 물건이 튀어나온 것이다.
눈앞에는 살랑살랑 흔들리는 촉수가 있다.
육감적인 게 부드러워 보인다……이 안에 박아넣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으려나?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잊은 듯한 기분이 들지만 자연스럽게 손이 뻗어나와 촉수를 움켜쥐고 가랑이 사이로 이끌었다.
“안 돼! 그 안에 넣었다간 돌이킬 수 없게 돼 버려!”
“에이길 님, 지금 갑니다!”
“다들 도우러 가자!”
우리 쪽 일행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가가면 안 돼! 저 꽃가루를 맡았다간 우리도 똑같은 처지가 된다구!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하면……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큭! 활만 부서지지 않았더라면…….”
미안하다, 근데 지금은 기분 좋아지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이 안 나거든.
두 손으로 촉수를 움켜쥐고 물건에 맞붙였다.
“어라……비좁은데……안 들어가.”
평소보다 커져있는 물건에 이 촉수는 너무 비좁다.
알라우네는 잠시 생각한 뒤에 3배는 더 커다란 촉수를 꺼내주었다.
고맙다, 이 정도라면 어떻게든 들어갈 것 같네.
드디어 기분 좋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그 순간, 등 뒤에 충격이 느껴졌다.
“정신 차리세요!! 뭐하고 계신 겁니까!”
내게 몸통 박치기를 날린 건 크롤이었다. 방해하지 마.
“안 되나……에잇, 죄송합니다!”
크롤은 무려 옆에서 내 물건을 발로 차버린 것이다.
“끄아아아아악!! 뭐하는 거냐!”
“아파――앗! 왜 이렇게 딱딱한 거야!!”
그리고 크롤은 다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프긴 했지만 덕분에 눈은 뜨였다.
찰싹 하고 뺨을 때린 뒤에 창을 고쳐쥐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네가 열심히 준비해 준 건 고맙다만 쓸 수는 없겠어!”
방금 전까지 뻗어나와 있던 소화액 촉수를 베어내니 뭐라 형용하기 힘든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곧바로 안으로 더 파고들어 놈의 본체를 노렸다.
놈은 곧바로 노란색 꽃……아를 이상하게 만든 꽃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똑같은 수법에 두 번이나 당할쏘냐!”
소매로 코를 틀어막으면서 창으로 날린 횡베기, 노란색 꽃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또다시 울려퍼지는 비명소리.
이겼다.
그런 생각과 함께 창을 치켜올린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들어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간, 방금 전까지 있던 장소가 튕겨 날아갔다.
나무 뿌리가 튀어나온 모양인데 끝부분이 예리한 칼날처럼 생겼다.
땅바닥 아래쪽까지 조심해야 한다는 건가.
“에이길 님을 구해야겠어요!”
일행들도 꽃이 사라진 걸 보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러고 보니 크롤은 어떻게 그 꽃가루를 맡고도 멀쩡했던 거지?
“에잇!”
세리아의 나이프가 계속해서 알라우네의 본체를 노리고 날아왔다.
놈은 촉수를 뻗어 그걸 막아냈지만 나이프가 촉수를 베어내기만 해도 통증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효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군.
꽃은 세리아를 노리고 머리 위에서 촉수를 뻗었으나 그녀는 연속으로 뒤쪽으로 공중제비를 굴러 피한 다음 땅바닥에 꽂힌 그 촉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대단한 녀석이라니까.
“크리스토프! 오른쪽으로 굴러!”
“뜨악!”
크리스토프가 바닥을 구르자 동시에 땅바닥에 소화액이 떨어졌다.
“크리스토프, 고개 숙여!”
“우와악!”
촉수가 놈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크리스토프, 소리쳐!”
“우오오오오오오! 야, 이거 의미 있는 거냐?”
유인 작전이지.
이 녀석한테 일방적으로 공격이 날아가는 동안 그만큼 다른 사람한테 날아가는 공격이 줄어든다.
“흡! 흐읍!”
맥은 땅바닥에서 날아오는 뿌리를 메이스로 때려잡는 중이다.
괴력 덕분에 뿌리는 하나둘씩 꺾여 나갔고 점점 날아오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야! 왼쪽이다!”
“오른쪽에서 두 개 옵니다!”
활을 잃은 기드와 밀레가 등을 맞댄 채 촉수 공격을 막아내고 검을 휘둘렀다.
촉수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히 있진 않을 것이다.
이미 10개 넘게 베어냈으니 조만간 다 떨어질 것이다.
“인간처럼 생긴 부분을 노려! 거기가 약점이라고 동료가 말했었어!”
라미는 땅을 기어다니다 보니 뿌리나 촉수가 난무하는 전장에선 상성이 좋지 않다.
따라서 소녀의 호위 및 조언 역을 맡고 있었다.
“그렇군.”
다들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사이에 처리를 해야겠군.
다가오는 내 모습을 보고 허둥지둥 촉수를 뻗었으나 이미 움직임은 다 간파했다.
창을 휘둘러 전부 다 베어낸 다음 좀 더 안으로 돌진했다.
알라우네한테서 생물이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드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자 놈의 두 팔 부분이 변화하더니 다른 곳보다 한층 더 두꺼운 덩굴이 되어 날 덮쳤다.
이제 아무리 봐도 인간처럼 안 보이는군.
안심하고서 베어낼 수 있겠어.
우선 두 팔을 베어낸 다음 안으로 파고들 생각이었는데 엄청난 충격 때문에 그 생각은 전부 사라졌다.
“큭, 빠른데.”
보인 순간에 이미 창과 맞닿아 있던 것이다.
분명 재질은 나무일 텐데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창을 들고 있는 손이 엄청나게 저린다.
엄청난 속도, 보우건 볼트보다 몇 배는 빠르다.
정면에서도 막아낼 수 있을지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칠 순 없지.”
고함소리와 함께 또다시 두 팔에 공격이 날아왔다.
덩굴 하나는 진로를 예측해서 튕겨냈고 나머지 하나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하지만 분명 피했던 팔쪽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쯧.”
팔에 흐르는 피를 핥고서 알라우네를 노려보았다.
다음번에 끝장을 내주마.
세 번 날아오는 채찍같은 촉수, 방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튕겨내는 게 아니라 창에 둘둘 감아서 막아냈다.
원래 같으면 채찍을 무기에 감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지만 내게는 힘겨루기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끄오오오오오오오!”
무기에 감은 덩굴을 붙잡아 있는 힘껏 잡아당기자 알라우네의 본체가 흔들렸다. 한번 더 힘을 주니 끝내 놈의 팔이 찢겨나갔다.
“이겼다!”
덩굴을 내던지고 돌진한다.
촉수도 뿌리도 다른 사람들이 막아주는 중이다.
나를 가로막는 건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분명 표정도 없는 괴물이 동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놈이 다시 소리치고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소화액을 흩뿌렸다.
고블린들을 떠올려 보건대 한 방울이라도 맞으면 큰일이 날 테지만 나는 걸음을 멈출 생각은 없다.
녀석의 몸……그곳에 자라있던 커다란 잎을 찢어 소화액을 막아냈다.
역시나 잎은 소화액에 맞아도 멀쩡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촉수도 녹아버릴 테니까 말이야.
“끝이다!”
나는 펄쩍 날아 놈의 본체……꽃 위에 달려있는 인간 형태의 그것을 발밑부터 베어냈다.
순간 모든 촉수와 뿌리가 날뛰다가 점차 힘을 잃고서 시들기 시작했다.
전투는 끝난 것이다.
“쓰, 쓰러트렸어……대단해……인간인데…….”
라미와 옆에 있는 소녀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친 덴 없는지 서로가 무사한지 물어보고 있다.
크리스토프만 혼자서 마지막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실신해버렸으나 큰 문제는 아니리라.
“마지막까지 버텨내다니……넌 내 파트너다!”
크롤의 솥뚜껑은 결국 마지막까지 부서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부상자는 없고 라미의 적도 쓰러트렸으며 소녀도 구출해냈다.
최고의 결과, 만점이군.
그리고 이제 하나만 더.
“라미, 약속대로 보답을 받아가마.”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붉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라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든지 해줄게. 당신은 대단한 남자야. 강한 남자라니, 멋져…….”
후후후, 즐거워질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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