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1『숲의 이변』
아침해가 느릿느릿 떠오르기 시작했을 즈음 우리는 제각각 손에 무기를 쥐고서 마을 밖에 모였다.
세리아와 밀레는 무난한 한손검을, 기드와 크리스토프도 호위대가 지급받은 평범한 검이다.
기드만 혼자서 따로 자기가 쓸 활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니까……밀레 넌 여관에 남아있어도 돼.”
애첩으로 데려온 건데 싸우게 놔두는 게 마음에 걸린다.
“기왕 이렇게 된 거잖아. 전부 맡겨두고 여관에서 자고 있는 건 내 성미에 안 맞아. 반대로 진정이 안 된다고.”
뭐 오랜만에 밀레랑 같이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정말 위험한 순간이 닥쳐도 크리스토프가 있으니까 한 번은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으리라.
불만스러워보이는 남자를 무시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맥과 크롤의 무기는 별나군.
근육 거인인 맥이 들고 있는 건 양손 메이스로 1m 정도 되는 봉 끝에 둥그런 철 덩어리가 붙어있다.
투박한 무기지만 금속 부분엔 가시 같은 게 우둘투둘 튀어나와 있고 딱 보기에도 무거워보여서 한 대라도 얻어맞으면 그냥 끝나진 않을 듯하다.
이 녀석이 손에 쥐면 엄청나게 커다란 메이스도 한손 무기처럼 보인다.
“한 번 빌려줘 봐.”
흥미가 생겨서 시험 삼아 손에 쥐어보니 상당한 무게다.
나조차 한손으로 휘두르면 균형이 무너질 정도다.
“저도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꺄악! 사, 살려주세요.”
셀리아도 관심을 보이길래 넘겨줬더니 아래 깔리고 말았다.
밀레와 기드가 둘이서 달라붙어 메이스를 들어올렸다.
힘이 장사인 맥이 쓸법한 무기다.
“그건 그렇고, 크롤……너 말이야.”
“죄송합니다…….”
크롤은 이번에 동행 하인 취급이었다보니 무기를 갖고 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허둥지둥 갖고 온 게 여관에서 빌려온 몽둥이와 솥뚜껑이었다.
검 정도는 허리에 차고 다녀라.
“그게, 저까지 싸울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아얏!”
“여자의 부탁이잖냐. 밀레도 싸우는데 남자인 네가 안 가서 어쩌려고.”
세리아, 한 번 깔봐줘라.
“…….”
세리아의 차가운 시선 아래 크롤은 잠자코 곤봉과 솥뚜껑을 손에 다시 쥐었다.
그거면 됐다.
“그나저나 마치 이야기에 나올법한 용사님 일행 같단 말이지.”
크리스토프의 농담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그런 느낌일지도 모르겠군.
“맥은 힘 센 괴력 전사 느낌인가?”
“…….”
맥은 흡! 하고 근육에 힘을 주어 폼을 잡았다.
확실히 이 녀석은 말주변은 없어도 믿음직한 남자다.
공병대 지휘관으로 무기를 휘두르는 것보다 진지 구축처럼 건설과 관련된 일을 맡는 경우가 더 많지만 5인 분량의 짐을 혼자서 너끈히 들어내는 괴력은 보통이 아니다.
라펜 창부의 정보에 따르면 성기도 괴물급이라고 한다.
남근이 커다란 남성은 역시 강한 것이다.
“기드는 백발백중 궁수고 말이야.”
“하하……뭔가 쑥스럽네요.”
쓴웃음을 짓는 기드. 이 녀석의 활 솜씨는 산의 민족들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기에 우리랑 비교하면 달인급이다.
과녁을 맞추는 건 피피가 더 잘 하는 모양인데 이 녀석은 당기는 힘이 더 세서 대부분의 갑옷을 뚫을 수 있다.
근접전에서도 검술 실력까지 일급품이다.
아직 16살이지만 믿을만한 실력에 머리도 좋기 때문에 호위대 소대장으로 임명해 두었다,
진지한 성격인 이 녀석은 도시 여자들한테도 상당히 인기가 있는 듯하다.
얼굴도 제법 잘생긴 데다가 살짝 남아있는 어린 티가 끝내주는 모양이다.
이 녀석이 이미 유부남이라는 소식을 듣고서 침울해하는 여자가 꽤 많지만 반대로 듬직하다며 인기를 끄는 중이다.
참고로 호위대에서 밥을 지어주는 여자가 단순히 안고 버릴 불장난 상대로도 좋으니까 기드한테 들이대고 있다고 한다.
“세리아 짱은 몸놀림이 민첩한 경전사 정도 되려나?”
“이쪽 보지 마세요.”
표정을 전혀 바꾸지 않는 세리아.
상대방의 관절이나 갑옷 빈틈을 깔끔하게 노려 베어내는 기술은 나나 맥은 할 수 없는 짓이고 단도 같은 투척 기술도 틀림없이 달인급이다.
몸놀림 또한 굉장히 민첩하여 뒤쪽이든 앞쪽이든 빙글빙글 공중제비를 돌 수 있다.
흉내를 낸 이리지나가 가구를 파괴해서 논나한테 혼난 전적이 있는 건 여담이다.
심지어 세리아는 감각이 굉장히 날카로워 대부분의 경우 제일 먼저 위험 요소를 발견해 낸다.
이런 예민한 감각은 젖꼭지나 콩알이 느끼기 쉬운 것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밀레는 여전사겠네. 누님이라 부르고 싶구만.”
“뭐야 그게.”
밀레가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일반적인 스타일의 전사다.
여자 치고는 근육질에 체격도 좋은 그녀는 전 용병으로 평범한 남성보다 훨씬 강하다.
이리지나가 있는 탓에 눈에 띄질 않지만 주변 환경도 잘 관찰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취하는 경우도 없다.
거친 말투와는 반대로 사람을 잘 돌보고 모성애가 풍부한 그녀는 여자로서도 매력적이다.
참고로 논나와 카트린느는 어떻게든 그 거친 말투를 고치려고 필사적인 모양이다.
“크롤은……견습이려나.”
“그렇죠……서지 않는 저 같은 건……결국 무쓸모하단 거죠.”
크롤은 축 고개를 떨어트렸다.
하인이 되어 힘을 쓰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그럭저럭 근력도 상당하고 이리지나하고 가끔씩 수련도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일상적으로 훈련을 반복 중인 기드나 세리아에 비하면 전투는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다.
이 녀석이 데리고 다니는 로라미라 모녀에게 물어보니 물건은 작지만 나이 치고는 끈덕진 허리 놀림을 쓴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하고 말을 얼버무렸었단 말이지.
이 녀석의 성격이 어둡고 자학적으로 변한 거랑 관련이 있는 건가?
“그리고 나! 이 크리스토프야말로 용사로서 세계를 구할…….”
“잠깐만.” “뭐라는 거예요! 크리스토프 주제에!”
나랑 세리아가 동시에 딴죽을 걸었다.
“용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에이길 님이잖아요! 그 부분은 쏙 빼두고 당신 같은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아니, 저렇게 커다란 창을 짊어지고 있는 저 녀석은 아무리 생각해도 괴력 전사 2호잖아! 차림새만 보면 나라니까!”
크리스토프가 가슴을 폈다.
영웅 이야기를 참고로 한다면야 그럴 수도 있겠군.
이 녀석은 나랑 거의 키도 비슷하고 체격도 다부져서 상당히 강하게 보인다.
하지만 전부 다 허세, 이 녀석이 바로 호위대 최약의 남자라 할 수 있다.
팔씨름을 하면 밀레한테도 지고 이리지나한테는 팔이 부러질 뻔했다.
내 군대 안에서도 최고참,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역전의 군인임에도 아직까지 전과는 없다.
맥이 200명 규모의 공병대, 기드가 10명 정도 되는 작은 부대를 이끌고 있는 것에 비해 아직까지 일개 졸병.
승진시켜주려고 해도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승진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원체 밝은 성격 덕분에 부대 안에선 인기도 많고 무엇보다 그 불사성을 평가받아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는 연이 있는 동료들이 머리를 매만진다는 모양이다.
“당신 같은 건 그냥 고기 방패죠. 장비품이라구요.”
“너무하구만!!”
시끌벅적한 크리스프와 세리아, 다들 웃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숲은 마을 아가씨가 산나물을 따러 간만큼 코앞에 바로 있었다.
리버티스 군인들한테 한 마디 일러두고 나왔을 뿐이니 되도록이면 오늘 안에 돌아가고 싶다.
얼른 찾아내야지.
숲으로 들어간 순간, 금세 세리아와 기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숲 바깥 부분엔 딱히 위험한 장소가 없다고 말했었지? 딸은 안쪽으로 들어간 뒤에 행방불명됐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여기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아마 있을 거예요.”
“시야가 어두워 잘 보이진 않습니다만 방금 전부터 부자연스럽게 풀이 흔들리는 중이군요. 여기저기 숨어 있는 걸로 보입니다.”
세리아는 무언가를 느꼈고 기드도 눈을 게슴츠레 뜨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자가 한 얘기하고는 다른 모양이다. 경계해 두는 편이 낫겠어.
한동안 안쪽으로 나아가니 내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오겠군…….” “예,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긴장이 고조된 순간이었다.
“우와아아아악!!”
크리스토프가 돌을 밟고서 뒤집어져버렸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놈에게 박힌 그 순간, 주변 풀밭에서 일제히 무언가가 뛰쳐나왔다.
“나왔다!”
나타난 것은 늑대 여러 마리, 놈들은 일직선으로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기드!”
“네!”
기드는 재빠르게 활시위를 겨눴다.
당황하는 일 없이 내 군대의 궁병들이 좀 본받았으면 하는 속도로 2번 빠르게 쏘았다.
화살 두 발은 정확하게 우리를 향해 다가오던 늑대의 미간에 꽂혔다.
깨갱, 하는 커다란 비명소리가 터져나오더니 바닥을 구르는 두 마리, 그 사이를 빠져나오듯이 또 한 마리가 달려들었으나 기드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천천히 손목에 힘을 주어 늑대가 목덜미를 노리고 달려든 순간에 화살을 날렸다.
기드가 갖고 있는 건 강력한 군용 합성궁과 갑주를 꿰뚫을 수 있는 강철 화살촉이다.
코앞에서 발사된 화살은 깃 부분까지 머리에 박힐 정도였고 불쌍한 짐승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즉사했다.
“주변에서 더 온다.”
정면에서 달려든 세 마리는 처리했으나 아직 더 오려는 모양이다.
“늑대쯤은!”
세리아가 뛰쳐나가더니 스쳐지나가는 모양새로 늑대의 목덜미를 깔끔하게 베어냈다.
몸을 뒤로 젖혀 우리 쪽으로 달려오던 나머지 한 마리의 송곳니를 피하고는 반대로 놈의 부드러운 복부를 찢어버리곤 발로 걷어찼다.
세리아도 짐승한테 당할 리가 없지.
“뜨앗!”
세리아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더니 옆에서 늑대가 날아왔다.
곧바로 도와주려 했으나 이미 머리가 박살나 있었다.
“……미안하다.”
맥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서 다시 메이스를 휘둘러 또 한 마리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아하, 이 녀석이 날린 건가?
크롤은 한 마리와 사투를 펼치는 중이다.
“이게! 받아라!”
늑대의 공격을 솥뚜껑으로 막아내면서 열심히 몽둥이로 때리고 있지만 어쨌거나 단순한 나무 막대기이다 보니 제대로 쓰러트리질 못하는 중이다.
기량도 중요하지만 그와 비슷할 정도로 무기 질도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 주는 전투로군.
“강한걸……늑대는 상대도 안 될만큼.”
밀레와 나는 싸울 필요조차 없었다.
일단 위험해진 사람이 있으면 바로 도우러 갈 수 있도록 준비는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쓸모없을 듯하다.
“전투에는 익숙하니까 말이야.”
떼지어 몰려오는 중무장 군대에 비하면 늑대쯤이야 귀여운 것들이지.
“정말 맨 처음에 만났던 시절하고는 모든 게 다…….”
말을 이어가던 밀레가 무언가를 깨닫고서 큰 소리로 외쳤다.
“다들 조심해라! 이놈들 목줄이 달려있어. 사육주가 있다는 뜻이다!”
“뭐라고!?”
잘 보니 늑대들에겐 확실히 너덜너덜한 목줄이 달려 있었다.
물론 평범한 인간이 늑대를 기를 것 같진 않으니, 그렇다면 이건…….
“나무 위, 고블린 놈들이다!”
들켰다는 걸 깨달은 건지 나무 위에 있던 고블린이 추잡한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동시에 조잡한 창과 돌멩이가 날아왔다.
그렇군. 늑대로 사냥감을 혼란시킨 뒤에 일제 공격을 가할 생각이었던 건가?
하지만 그것 치고는 타이밍이 너무 느렸는데. 이미 늑대는 섬멸당하기 직전이다.
동시 공격을 시도할 기회는 사라졌다.
“맥이랑 밀레는 지상 위에 있는 적을 상대해라. 세리아랑 기드는 물러나서 고블린을 처리하고 나무 위에 있는 걸 우선적으로 상대해. 크롤이랑 크리스토프는 세리아랑 기드를 지켜라.”
““네!””
내 지시를 따라 모든 이들이 움직인다.
세리아는 검을 집어넣고 나이프를 투척, 기드는 활로 나무 위의 고블린들을 계속해서 쏴죽였다.
놈들도 반격하려는 듯이 목제로 된 창을 던졌으나 느릿느릿 날아오는 그 공격은 피하기 어렵지 않다.
지상에서도 맥과 밀레가 늑대를 섬멸하고 놈들을 길들인 걸로 보이는 고블린놈들도 죽이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오!!”
특히 호쾌한 건 맥, 커다란 메이스로 고블린을 말 그대로 짓뭉개는 중이다.
하긴, 저 녀석이 쓰는 메이스는 고블린하고 크기가 똑같은 수준이다. 방어해봤자 아무 소용없으리라.
“나도 가만 있을 수 없겠어.”
창을 짊어지고서 앞으로 나섰다.
우선 크롤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늑대를 발로 걷어차 죽인 뒤 앞으로 돌진했다.
“이얍!”
늑대를 앞발 언저리부터 깔끔하게 두 동강 내주었다.
뒤이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고블린의 목을 날려버리고 남은 몸통을 꼬챙이처럼 꿰어 나무 위에 자리잡고 있던 놈을 향해 던져 떨어트렸다.
“어이쿠, 위험해라.”
다른 고블린이 던진 커다란 돌멩이를 한손으로 붙잡고서 보답으로 전력으로 다시 던져주니 깔끔하게 놈에게 명중해서 머리 절반을 날려버렸다.
“키이이이!!”
좌우에서 몽둥이를 손에 쥔 고블린 두 마리가 다가왔다.
협공하는 건 좋다만 무기 사정거리가 다르니까 좀 더 딱 붙어서 왔어야지.
뒤쪽까지 치켜든 창을 한 번 회전시키니 두 마리 동시에 목이 날아갔다.
“으윽! 더러운 즙을 안 튀기면서 죽을 순 없는 건가?”
더러운 피가 묻고 말았다.
고블린은 피까지 냄새가 난다.
“목을 날려버리고서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토프는 자신만만하게 고블린 앞에서 검을 손에 쥐었다.
1m 정도 되는 마물은 건장한 체격의 크리스토프와 마주보고서 싸우기 전부터 겁먹고 있었다.
“후후후, 내 앞에 서게 된 그 인생을 저주해라!”
검을 휘두르는 크리스토프, 고블린은 그걸 간신히 몽둥이로 막아내면서 뒤로 물러났다.
“하하하, 계속 수비만 해선 못 이길 텐데!? 애초에 네놈이 내게 이기는 건 불가능하지만 말이야!”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일방적으로 고블린을 상대하는 크리스토프.
근데 고블린을 상대로 왜 그렇게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거지?
완전 무장한 남자의 경우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게 당연한 상대잖냐.
“슬슬 끝이냐!? 이 허접한 놈!”
크리스토프가 고블린을 발로 걷어차고 숨통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시간을 너무 들인 탓에 비명소리를 듣고 동료가 모인 모양이다.
눈앞에는 고블린 세 마리가 모여 있었다.
“뭐, 뭐라고!”
형세는 완전히 역전, 네 마리로 늘어난 적을 앞에 두고 크리스토프는 도망치려 했으나 도망칠 수 없었다.
방어전을 펼치던 도중 몽둥이와 부딪친 검이 튕겨날아가고 말았다.
“살려줘어어어어!!”
“뭐하고 있는 겁니까, 이 바보는!”
한심한 비명 소리에 기드가 표적을 바꿔 곧바로 두 마리를 쏴죽였으나 나머지 두 마리는 일단 이 터무니없이 약한 남자를 처리하기로 한 건지 몽둥이를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하여간.”
나는 앞으로 나와 첫 번째 놈의 몽둥이를 창으로 튕겨내고 나머지 한 놈은 장갑으로 막아냈다.
힘없는 고블린이 갖고 있는 몽둥이가 뭐가 무섭단 건지.
“흡!”
이번엔 피를 뒤집어쓰지 않도록 왼손으로 얼굴을 때려 뭉갠 뒤 나머지 한 놈은 발로 걷어차고서 머리를 짓밟았다.
“후우……위험한 전투였어.”
“고블린 같은 잡것들 상대로 뭐하는 거냐. 그냥 너는 뒤에서 구경이나 해라…….”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던 그때, 머리에 툭 하고 무언가가 날아왔다.
“크윽!”
뒤를 돌아보니 근처 나무 위에 고블린들이 숨어있던 게 보였다.
돌을 던진 모양이다.
크기도 별 거 없고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으나 크리스토프한테 잘난듯이 말한 순간 한 대 맞은 이상 폼이 안 산다.
살짝 웃고 있잖아, 이 자식.
꼴사나움과 분노 때문에 이성이 날아갔다.
결코 분풀이는 아니다.
“……감히 날 맞췄겠다.”
전부 저놈이 잘못한 거다.
나무 위에 있는 고블린을 노려보았다.
돌을 맞추고서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던 마물이 눈에 띄게 겁을 먹기 시작했으나 봐줄 생각은 없다.
“죽여주마……내려와.”
창을 쥐고서 달려들었으나 고블린들이 나뭇가지를 바꿔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지 말고 싸워라!”
나는 한층 더 속도를 높여 놈들을 따라갔고 끝내 나뭇가지에서 튕겨날아간 한 놈을 사정거리 안으로 들였다.
“거기냐?”
공중에서 고블린을 두 동강 낸 뒤 박살냈다.
온몸에 더러운 피가 묻었으나 이제 내 알 바 아니다.
“네놈들도 마찬가지다. 전부 죽여주마.”
어차피 고블린은 구별할 수 없다.
전부 다 죽여주마.
이제 일일이 쫓아다니는 건 귀찮기만 하다.
주변 나무를 창으로 전부 다 베어버리기로 했다.
다행히 숲 바깥 부분에 커다란 나무는 없다.
전부 꺾어버리면 내려올 수밖에 없으리라.
비교적 두꺼운 나무 위쪽을 향해 고블린 세 마리가 도망쳤다……날 얕보지 마라.
“흡!”
있는 힘껏 창을 때려박으니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가 쓰러졌고 고블린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밑으로 떨어졌다.
한 마리는 그대로 땅바닥과 격돌하여 목이 부러졌고 나머지 하나는 다리가 부러져 움직일 수 없는 모양이다.
버둥대는 그 녀석의 얼굴을 짓밟으니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놈이 튕겨 날아가듯이 도망쳤다.
“안 놓친다.”
나도 똑같이 달려가 쫓아갔다.
고블린은 다리가 빠른 편도 아니고 나 또한 다리가 느리지 않다.
곧장 따라잡아 뒤쪽에서 창을 찌르자 놈은 비명을 터트렸다.
“다음은 누구냐아!”
그러자 지금까지 맥과 밀레를 향해 울부짖고 있던 고블린들까지 사방팔방으로 도망쳐버렸다.
“기다려, 도망치지 마라!”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는 고블린을 쫓아 섬멸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고블린 같은 잡것을 상대로 왜 화를 내고 있는 거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고함소리까지 내지르고 여기서 창을 집어넣는 건 더 꼴사납다.
일단 손에 닥치는대로 다 죽여버려야지.
나무를 옆으로 쓰러트려 놈들을 짓뭉갰다.
“흐아아아아아앗!!”
“……누가 마물인지 모르겠구만.”
“돌멩이 한 번 잘못 던져서…….”
크리스토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워, 전부 네가 나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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