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숲의 미녀』
대학살 탈출극 이후 반년, 나는 교외에 아지트를 보유한 용병단 안에 몸을 맡겨두고 있었다.
아무런 지식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싸우는 것뿐이었다.
심지어 그 누구보다도 신분이 불분명한 신세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병사나 호위병이 될 수는 없었다.
결국 비슷한 녀석들이 모인 용병단 겸 도적단에 가입해서 날뛰는 것 외엔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두목, 그럼 그 행상인 놈들을 쫓는 검까?”
방금 그 질문은 제미라 불리는 동료가 꺼낸 말로, 몸놀림이 빠른 가벼운 놈이다.
“그래, 그 정도 되는 규모의 행상인들은 이 언저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냐. 게다가 놈들은 바로 근처 도시에서 호위병을 두고 왔다더구만. 이놈들을 붙잡기만 하면 크게 한탕, 여자도 술도 우리들 맘대로라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이 남자는 용병단의 두목, 로바노라는 이름이었던가?
산적 나부랭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 이 단체 자체가 실제 산적 같은 느낌이다.
다시 말해 산적 두목이라는 뜻이다.
놈들은 다른 동료들과 떠들고 있지만, 나한테 말을 걸어오는 놈은 없다.
내가 도박이나 여자 얘기에 별다른 흥미를 내비치지 않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돈이나 여자에도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한편, 내 싸움 실력은 로바노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힘쓸 일이 있으면 날 믿어주는 편이다.
이번에도 대규모 대상단을 습격한다 했으니, 호위병이 없다고는 해도 분명 개중에 좀 치는 녀석도 있을 거고, 상인들 숫자만 생각해봐도 상당할 것이다.
전투를 피할 수 없으리란 건 누가 봐도 분명했다.
“그치만 말입니다 두목~, 그 대상단이란 놈들은 이미 산맥 안쪽까지 들어갔을 텐데 지금부터 쫓아가도 조금 힘든 거 아님까?”
대상단이라는 이름 때문에 속도가 느릴 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마차를 여러 대 끌고 다니는 대상단은 가난한 행상인과 달리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동이 가능하다.
이건 물품을 노리는 도적단을 경계함과 동시에 조금이라도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만큼 회전율이 빨라져서 수익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딴 건 나도 알아, 그래서 도로를 따라가지 않을 거야. 에르그 숲을 돌파한 다음 빠르게 달라붙을 생각이다.”
로바노가 그렇게 말한 순간, 주변에 한 순간 정적이 드리워졌다.
“대장……거긴 위험한뎁쇼.”
제미가 머뭇머뭇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소문으로는 숲 안에 악마 소굴이 있다던데.”
“나는 악령이 솟아나오는 늪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
“아냐 다 틀렸어, 언데드 놈들이 숲 안에 바글바글하다더구만.”
동료들은 제각각 자신이 알고 있는 소문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기를 갈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나는 적이 나오면 싸우는 수밖에 없다.
살아남을 생각이긴 하지만, 죽을 경우엔 어쩔 수 없는 일.
“병신 새끼들! 시덥잖은 소문을 곧이 곧대로 믿고 앉았냐? 애초에 지금 니네들이 말한 것만 봐도 죄다 제각각, 그냥 사람들이 무섭게 이야기한 것뿐이잖아.”
로바노는 소문을 전혀 믿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동료 중 한 명이 곧바로 반론에 나섰다.
“근데요 두목, 확실히 소문이 엉망이긴 합죠. 그래도 실제로 들어갔다가 못 나온 놈이 많은 건 사실이라니까요? 저 숲은 진짜로 뭔가 위험하다니깐요.”
계속해서 달라붙는 부하를 보고 로바노가 일갈했다.
“시끄러! 나는 이미 결심했어!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놈은 고기 경단으로 만들어서 악마라는 놈한테 먹이로 줘버릴 테다!”
결국 이 말을 끝으로 용병단 인원 스무 명은 에르그 숲으로 들어가기로 결정, 이동을 시작했다.
“완전 쾌적한데?”
그것이 에르그 숲에 들어오고 나서 용병단 인원 전원이 느낀 공통된 감상이었다.
이미 숲에 들어온 지 꼬박 하루. 악마는커녕 어디에서나 들끓을 법한 고블린 같은 약한 마물은 물론, 늑대나 곰조차 전혀 나오질 않았다.
그러면서 과일이나 토끼처럼 식재료로 사용 가능한 생물들은 상당히 풍부했다.
“이게 진짜 악마의 숲이라면, 우리들이 쓰고 있던 아지트는 지옥 낭떠러지겠구만.”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아지트를 이쪽으로 옮기는 것도 괜찮겠는데?”
“그러게 말이야. 진짜 그러자고.”
천박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지던 중, 앞을 나아가던 제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두목, 앞쪽에 그……민가가 있슴다.”
용병단에 경계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꼬박 이틀이나 떨어진 이런 장소에 민가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게다가 마을이 아니라 있는 건 단 한 척의 집.
평범한 오두막이라 하더라도 너무 이상하다. 이 숲은 저주밭은 숲, 사냥꾼조차 들어오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경비대의 거점이거나, 또다른 도적의 아지트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제미의 다음 발언으로 분위기는 또다시 급변했다.
“집 안쪽도 들여다봤는데, 말도 안 되는 미인이 살고 있습디다.”
갑자기 당혹스러워하던 목소리가 비웃는 소리로 바뀌었다.
민가가 있는 건 확실히 이상하지만, 그곳에 미녀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황당함을 넘어서 망상 수준에 가까웠다.
여자에 굶주린 녀석이 나무 옹이구멍이라도 잘못 본 것이리라고 다들 비웃었다.
그런데도 계속 필사적으로 정찰 인원이 호소하자 로바노는 비웃음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놈의 뒤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별로 멀리 돌아가는 것도 아니니,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한 다음 비웃을 게 분명하다.
덤으로 놈한테 잘못 본 벌로 짐을 하나 더 들게 하는 것도 좋다.
주변 도적들도 로바노의 그런 생각을 눈치 챈 건지, 히죽대면서 아무 불평 없이 따라가기 시작했다.
일행은 있을 리가 없는 집을 향해 나아갔고……그리고……
도착했다.
숲 안, 탁 트인 장소에 그것이 있었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 안, 원형으로 된 초원이 펼쳐진 공간 한 가운데 세워져 있는 집 하나.
목제로 된 예쁜 집은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으나, 그럼에도 사람이 사는 걸 연상케할 정도의 크기는 되었다.
집 주변에 있는 우물과 작은 밭이 주변 풍경과 완전히 녹아들어 목가적인 농촌의 분위기를 풍기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악마의 숲, 있어서는 안 될 광경이었다.
“아니, 진짜라고……?”
로바노가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렸고, 다른 산적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여기서 멍하니 서 있었을 놈들이라면 애초에 용병도 도적도 되지 못하는 머저리들이다.
곧장 모든 인원이 검을 뽑아들고, 개중 몇 명이 집 쪽으로 달라붙은 다음 나무창을 살짝 열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머, 웬일이람. 손님이신가요?”
종이 울리는 듯한 아름다은 목소리.
눈처럼 새하얀 피부.
그리고 미인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조차 모독이라 느껴질만큼 확연한 이목구비.
미의 여신을 방불케하는 여성이 창문을 들여다보던 남성에게 말을 건넸다.
하얀, 너무나도 하얀 피부에 선명하게 강조되는 새빨간 입술, 거기서 연주되는 음색.
여러 명의 사내가 무장 중이라는 이상 사태를 앞에 두고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천천히 기품 있는 말투로 말을 거는 여성.
오히려 예상 밖의 사태를 마주한 건 남자들이었다.
만약 여기서 노파가 튀어나왔다면 그들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테지만, 나타난 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준의 미녀.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자를 앞에 두고 남자들은 제대로 된 의미가 없는 소리를 신음하는 수밖에 없었다.
“후후, 방문하신 건 그쪽 분들이시면서. 뭘 그리 놀라고 계신 건가요?”
입가에 손을 댄 채 미녀가 미소 짓는다.
“보자하니 달리 손님 분들이 상당히 많으신 것 같은데요. 그런데 살림살이가 변변찮아서 대접하기도 힘들고, 원래는 제가 바깥까지 나가서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일 테지요. 하지만 워낙 몸이 약한지라 햇빛 아래로 나가기는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그……그러십니까!”
“무, 물론 용서합지……니……하옵니다……였던가?”
마치 종을 치듯이 매끄러운 음색에 도적들도 대답했지만, 살면서 존댓말과는 연이 전혀 없는 사내들이었기에 제대로 된 대답도 못하고 우스꽝스럽게 허둥대는 모양새였다.
그걸 들은 미녀가 또다시 입가에 손을 댄 채 쿡쿡 웃음을 터트리고, 도적들은 헤벌쭉하는 광경. 더 이상 대화는 성립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이 정체된 분위기를 깨부순 것이 부하들의 모습에 실증이 난 나머지 들이닥친 로바노였다.
창문에 달라붙은 부하들을 걷어찬 다음 창 안쪽을 강제로 들여다본다.
“네놈들 뭘 그리 꾸물대고 앉았냐! 얼른 뭐가 있는지 말 안……해…….”
로바노도 그의 부하와 마찬가지로 한동안 넋이 나갔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금세 불이 붙었다.
이거 쩌는데……본 적도 없는 엄청난 여자잖아! 게다가 몸매까지 최고라니.
창문 너머에서 로바노 일행한테 미소 짓고 있는 그 미녀는 전신에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고, 어깨에는 마찬가지로 검은색 숄, 그리고 발목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롱스커트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노출이라곤 찾아보기도 힘든 복장. 얼굴 외에 피부가 보이는 부분은 손 하나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솟아오른 가슴 부분은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부드럽게 움직인다. 팽팽하게 당겨진 롱스커트의 안쪽에는 육감적인 고깃덩어리인 엉덩이와 허벅지가 있으리란 건 누가 봐도 명백했다.
이거랑 비교하면 대상단 같은 거 쥐뿔도 안 되지! 이런 미친 여자를 내 걸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굴러들어오다니!
로바노는 허가를 받지도 않고서 문을 열어젖히고,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세 사람이 방 안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채 앉고, 나는 문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실내는 생각보다 어두웠다.
얇은 나무와 통나무로 지어진 외견만 봐선 틈새 사이로 햇빛이 새어들 것처럼 보였으나, 안쪽에 재를 섞은 밀랍이나 나무 수액 같은 게 꼼꼼하게 발라져 있어서 벽은 완전히 새까만 모양새였다.
테이블 위에는 등불이나 촛불도 보이지 않았다. 이 여자, 우리들이 오기 전까진 분명 창문도 열어두지 않았을 텐데. 새까만 공간 속에서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나는 형용하기 힘든 오한을 느꼈으나, 무언가 사건이 일어나면 그때 생각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미녀는 내 쪽을 흘끔 쳐다보았지만, 억지로 방 안에 들이닥친 남자들한테도 방금 전과 동일한 태도를 내비쳤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다 보니 대접도 제대로 못해드려서 죄송하네요.”
“아니, 필요없어. 당신처럼 엄청난 여자를 바라보는 게 최고의 대접이라 할 수 있지.”
로바노는 여성의 전신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집 주변에는 자신의 부하들이 있고 상대는 여자 하나, 더 이상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딱히 눈치 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인 것이리라.
“어머, 듣기에도 기쁜 말씀이네요.”
여자는 시선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가볍게 미소를 짓고, 부드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런 구석진 곳엔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곳에 온 이유는 쬐끔 길을 서두르고 싶어서였는데 말이야. 그랬더니 이런 숲 속에 떡하니 집이 한 채 세워져 있지 뭐야. 이런 걸 어떻게 가만 두고 갈 수 있겠냐 이 말이야.”
로바노가 몸을 앞으로 내세우며 미녀한테 다가갔다.
그가 욕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나조차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고, 미녀가 도망칠 수 없으리란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네 이름은 뭐냐? 꼭 들려줬으면 좋겠는데.”
여자는 또다시 놀랐다는 듯이, 아마 연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긴 했으나 대답하기 시작했다.
“어머, 이름을 대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죄송합니다. 저는 루시 유크트바니아라고 해요.”
한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가문명이 있다는 소리는 이 여자가 귀족, 혹은 그에 근접한 존재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도시에선 상당한 힘을 지닌 귀족의 이름도 이런 곳에선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로바노 자신도 도로에서 귀족 일행을 습격한 다음, 재산과 그 가문의 딸을 약탈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왜 성씨까지 있는 여자가 이런 곳에서 혼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여러 사정이 있어서 거창한 이름을 대긴 했습니다만, 그냥 루시라고 불러주세요.”
여자는 이름에 대해 괜한 사정을 이야기할 심산은 없는 건지, 화제를 바꿨다.
“그래서, 루시 짱은 이런 곳에서 혼자 뭘 하고 있는 거지? 여기엔 상점은커녕 사람도 오질 않는 곳인데 말야. 도저히 여자 혼자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여자 혼자 살면 식사량도 별로 많지 않으니까요. 주변에 있는 밭을 일구거나, 숲에 나가서 동물을 잡는 경우도 있죠. 그런 걸로 어떻게든 이 집을 지켜내는 중이랍니다.”
“호오, 그럭저럭 사냥도 할 수 있단 소리구만! 생긴 거랑 다르게 꽤 듬직한 아가씨인가 봐!”
로바노가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루시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일부러 그녀의 커다란 가슴도 매만졌다.
그럼에도 루시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한층 더 강렬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여자니 귀족이니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사냥을 하기 위해 필요한 활이나 화살도 이 집엔 없다. 게다가 부엌 쪽에 있는 거미줄은 열흘은 훌쩍 넘어 보였다.
틀림없다. 이 여자는 이 집에서 아무것도 먹질 않은 것이다.
오한이 점점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로바노를 노려본 다음 경계하라고 신호를 줬지만, 미녀의 외모에 흠뻑 빠진 그한테는 전해지지 않았다.
“좋아, 루시 짱. 너는 지금부터 내 여자다.”
로바노는 루시의 손을 붙잡고 끌어안았다.
옷 위에서 엉덩이를 매만지자 탱글탱글함이 느껴지는 극상의 감촉이 전해졌다.
“어머,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이 집을 지켜야만 하는데요.”
아직까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는 루시를 보고 다른 도적 두 명도 위화감을 느낀 모양이다.
도적 사이에 둘러싸인 여자가 취하는 행동은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저항하거나, 울면서 애원하든가,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육감적이고 풍만한 여자의 육체에 흠뻑 빠져있는 로바노는 눈치 채지 못했다.
“알 바 아닌데. 너는 어차피 이제 도망 못 가거든. 정말 싫다면 이 집을 불태우고 네 년을 데리고 가면 그만이니까 말이야.”
“그건 좀 곤란한데요, 여긴 소중한 장소거든요.”
처음으로 루시가 아주 약간 미간을 찌푸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로바노는 루시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애초에 너 같은 여자가 이런 곳에서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니, 그거야말로 세상 입장에서 큰 손해라 할 수 있지. 좋은 여자란 자고로 남자한테 안겨야 하는 법이라고.”
로바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가슴 쪽에도 손을 뻗었다.
옷을 찢으려고 힘을 준 순간, 루시가 살짝 손을 겹쳤다.
“……난폭하게 옷을 찢는 것도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저를 안고 싶으시다면 상대해 드릴 테니, 최소한 한 분씩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루시는 드디어 각오를 다진 건지, 로바노의 목에 손을 두르며 그렇게 애원했다.
“얌전히만 상대해 준다면 난폭하게 나설 이유는 전혀 없지. 아름다운 보석에 상처를 입히고 싶어하는 놈은 없다 이거야……어이! 네놈들 잠깐 바깥에 나가 있어라!”
더 이상 못참겠다는 듯이 로바노는 하프 플레이트 아머를 벗어던지면서 세 사람한테 방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고참 두 사람은 웃으면서 밖으로 나갔지만, 나는 살짝 망설였다.
이 여자는 뭔가 이상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 너무나. 여기서 로바노랑 둘만 남겨두면 뭐가 일어날지 몰라.
하지만 끝끝내 욕정이 최고조에 달한 로바노가 고함을 내질렀다.
“에이길, 네놈도 나가라고! 나중에 먹게 해 줄 테니까 얼른 나가! 밖에 나가면 다른 개놈들이 훔쳐보나 안 훔쳐보나 잘 지켜보고 있어!”
본인이 선택한 일이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안 들을 게 뻔해.
나는 생각을 정한 다음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
로바노가 바지에서 꺼낸 더러운 그것을 보는 취미는 내게 없었다.
“자, 이제 방해꾼도 없겠다. 한 번 즐겨보자고!”
이미 전라가 된 로바노가 루시를 끌어안으려고 가슴께에 손을 들이댔지만, 옷에 딱 달라붙어 있는 옷은 생각보다 단단한 건지 늘어나지도, 주름도 하나 지지 않았다.
일단 웃옷은 내버려두고 롱스커트를 들춰 올리자 예술품처럼 생긴, 비단으로 된 속옷이 드러났다.
풍만한 허벅지에 딱 달라붙은 속옷. 손으로 만져보니 아주 잘 달라붙는 극상의 피부다.
잡티 하나 없는 피부는 병적일 정도로 하얗다.
그가 냉정한 상태였더라면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피부가 아름다울뿐 아니라, 체온의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기랄, 개쩌는 몸이군……. 이런 엄청난 여자, 본 적도 없어!”
로바노는 강간, 화간 상관없이 상당한 숫자의 여자를 안아보았지만 외모와 육체 그 어느 쪽이든 루시에 필적하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자의 나체를 처음 본 동정 소년처럼 소리가 날 정도로 발기한 그것을, 무의식 중에 문지르고 있었다.
“몸 뒤로 돌려!”
로바노는 루시의 뒤쪽에 몸을 딱 붙이고, 속옷을 슬쩍 옆으로 밀어서 물건을 들이밀었다.
겉으로 드러난 그녀의 그곳은 남자를 유혹하듯이 살짝 벌어져 있었지만, 처녀라 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깨끗하고 가녀린 색깔을 유지 중이었다.
그런 예술품과 다를 바 없는 여자의 구멍에 새까맣고 더러운 종기투성이인 로바노의 물건이 침입하려 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행위에도 순서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루시는 몸을 비틀어 억지로 당한 포옹에서 벗어난 다음,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로 로바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정면으로 마주보니, 결코 작지는 않은 루시와 비교해 봐도 거대하게 느껴지는 로바노의 거구가 눈에 띈다.
“일단은 입맞춤부터. 즐거움은 잠시 미뤄두고, 이쪽부터 시작하죠.”
달콤하게 속삭이는 로바노가 루시의 입술을 빼앗으려고 억지로 얼굴을 들이밀었으나, 그녀는 한손으로 그걸 저지한 다음 남자의 목덜미 부근에 입을 가져다 댔다.
음욕으로 가득찬 상황 속에서 로바노는 당혹스러워했다.
‘목덜미 쪽 키스도 나쁘지 않아……그런데 대체 왜……왜 이 녀석의 왼손 하나 얹어졌을 뿐인데 내 머리가 움직이질 않는 거냐?’
루시의 기다란 혀가 목덜미를 핥기 시작하고, 농염한 입이 벌어진다.
그리고 로바노의 목덜미에 어금니를 들이밀었다.
그저 물린 느낌이라 하기엔 무언가 이상했다.
엄청난 격통과 함께 들이닥친 강렬한 쾌감. 극한까지 치솟아있던 로바노의 물건에서 분수처럼 정액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목덜미에 달라붙은 미녀의 감촉을 느끼면서, 로바노의 의식은 영원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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