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왕의 온정』
왕도 고르도니아
“라드할데 경, 하드릿 경, 이번에도 이번에도 정말로 수고가 많았노라. 지금은 공적인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니 딱딱하게 굴 것 없느니라.”
개선식 이후 중앙군은 주둔지로 돌아오게 되었고 나라는 다시 평시 상태로 전환되었다.
그 후, 에이리히와 나는 왕의 「개인적인 식사 자리」에 초대되어 함께 앉아있는 중이었다.
왕의 입장에서 지위가 낮은 준귀족과 공적인 자리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리라.
“알노드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부 지역뿐만 아니라 임시 세금을 껄끄럽게 여기던 여타 전 지역의 귀족 놈들도 한꺼번에 허겁지겁 달려오더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왕은 우리에게 엄청난 양의 세금 항목이 적혀 있는 표를 던져 주었다.
원래는 재무관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어선 안 될 물건이다.
왕도 승리했다는 기쁨에 한껏 도취해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놈들은 겁만 잔뜩 먹은 기회주의자 놈들일 뿐, 실력 행사에 나서면 바로 꼬리를 내리는 놈들이노라.”
왕은 껄걸 웃음을 터트리다 이내 멈추더니, 하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자리를 비키라고 신호를 준 것인지 다른 하인들이 전부 자리를 비운 덕에 방 안에는 우리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내가 듣기로는 롤랑 백작이 알노드 밑을 빠져나왔다 들었다만.”
“그 말씀이 맞습니다만 놈이 숲을 빠져나가던 도중 도적한테 습격을 당해 현재는 아들과 함께 행방 불명 상태라 하옵니다……아마 살아있지는 않으리라 생각되옵니다.”
“그러한가, 그거면 충분하노라.”
암살까지 깔끔하게 처리한 덕분에 왕은 한층 더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경들이 보여준 충성심에 대한 보답은 더욱 높은 작위로 보여줄 것이야. 두 사람 모두 고르도니아의 귀족 된 몸으로 앞으로도 계속 힘써주게.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정식적인 통보가 있을 때까진 결코 이야기가 새어나가선 아니 되네. 이번 자리는 어디까지나 나의 저녁 만찬에 불과하단 걸 잊지 말도록.”
“성은이 망극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충실히 따르겠나이다.”
이제 정말 세습 귀족 지위까지도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논나가 펄쩍 뛸 정도로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새 드레스는 사게 놔둘 수 없다.
“본디 영지도 내주고 싶은 마음이다만 현재 남아있는 토지는 국유화시킨 남부 지역뿐……그대들을 그런 곳으로 좌천시킬 정도로 내가 그리 매정한 사람은 아니노라.”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던 남부 귀족들 입장에서도 바로 이웃 귀족을 죽인 사람이 그 자리를 꿰찼다간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닐 것이다.
포상이 아니라 벌을 받는 심정으로 영지를 다스려야 하게 될 게 뻔하다.
“걱정 말거라, 언젠가 제대로 된 땅이 손에 들어올 터이니. 그때까지 천천히 기다리도록.”
왕은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다시 하인들을 불러모으지 않고 자신의 손을 이용해 직접 유리잔에 술을 따랐다.
왕이 이 정도로 기분이 좋은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든 일이다.
이야기를 꺼낼 거라면 지금 이 순간 말고 달리 없을 게 분명하다.
“폐하, 실은 상담할 게 하나 있사옵니다.”
에이리히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최소한 자기가 없는 장소에서 얘기를 꺼내줬으면 하던 심정이었을 테지만 그럴 수는 없다.
“무엇인가? 말해보라.”
“체포한 반란 귀족들의 처우에 대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사옵니다만, 당연히 대역죄로 처벌되는 것이옵니까?”
왕은 한 순간 넋나간 듯한 표정을 짓다가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하하하! 무엇을 그리 새삼스레. 이보다 더 알기 쉬운 대역죄도 없을진대. 경은 전장에선 그 누구와도 견줄 자가 없으나 법에는 무지하구나. 열심히 공부해 두어라. 이 정도쯤은 빈민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라 한들 다 알고 있는 법이니.”
“송구하옵나이다. 대역죄라 하면 직계 자손은 아무리 어리다 한들 전부 몰살하는 것이 도리이옵니다만…….”
“그리 정해져 있노라.”
“실은 알노드 변경백의 차녀, 카트린느의 딸을 자르에서 체포해 두었사옵니다.”
방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에이리히는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
“아버지인 베를리드 자작은 결투 끝에 제가 베었고, 어머니인 카트린느 또한 체포당할 때 저항하다 사망하였사옵니다. 하오나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어린 영유아한테까지 손을 대는 것은 악마의 소행이라는 판단이 들어 망설이는 중이옵니다.”
처음엔 분노한 듯한 기색을 내비친 왕이었으나 내 변명을 듣고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흠……채찍만 가지고서 나라는 굴러가지 않는다고들 하지. 게다가 나는 민중들한테서도 가혹한 왕이라는 평가가 나돌고 있으니.”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이옵니다. 살려둔다 한들 훗날 화근이 될 일은 없으리라 생각되옵니다.”
곧장 에이리히가 나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하나, 대역죄의 규율을 어겼다간 다른 자들에게 필요치 아니한 오해를 부를지도 모르는 일…….”
“소인은 귀족 사회에 대해서는 무지하나, 시민들은 어린 아이의 목숨을 가여이 여긴 폐하를 반드시 지지할 것이옵니다.”
여기서 말싸움을 벌여봤자 인상만 나빠질 뿐이다.
어디까지나 왕의 자비심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100년도 넘게 전에 지어진 규율에 내가 목매여 있을 필요도 없을 터……좋다, 그 아기의 목숨은 살려주마. 단, 아기를 제외한 나머지 족속들의 말살령은 변함없노라. 그 여자아이도 훗날 귀족이 되는 것, 귀족과 혼인하는 것 어느 쪽도 인정하지 않느니라. 평민으로 살게 하라.”
좋아, 만점이군.
하지만 만약 카트리느의 정체가 들통 났다간 나도 끝장일지 모르겠어.
“실은 나도 조금 고민하고 있었느니라. 대역죄가 방계 및 혼약을 맺은 다른 가문에도 불명예 낙인을 찍는 형태로 영향을 준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예, 알고 있사옵니다.””
“알노드는 남부 귀족의 중심 인물. 놈의 가문과 혼약으로 맺어져 있던 가문의 수가 워낙 많고 중앙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고위 귀족의 이름까지도 붙어 있던 것이니라.”
변경백의 지위와 기름진 영지에 눈독을 들여 혼담을 맺은 귀족은 지금쯤 부들부들 떨고 있을 게 분명하다.
“이러한 가문을 전부 불명예 낙인 취급했다간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지는 내란의 불씨가 될지도 모르노라. 이번 기회에 영유아의 무죄 방면 및 반역 가문과 연을 끊는다는 것을 확약(確約)한 귀족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무죄 방면 처분을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구나.”
“그에 맞춰 방면 수수료 같은 것을 지불하도록 하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사옵니다.”
“명안이로고. 라드할데 경에겐 정무의 자질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목적은 이미 이뤄졌기에 내가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얼른 돌아가서 카트린느의 몸을 맛보고 싶을 뿐이다.
고작 열흘만에 그녀의 몸은 내게 적응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입맞춤 한 번만에 저항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에게 물건을 박아넣으면 아이를 가진 유부녀를 빼앗았다는 배덕적인 성욕도 느낄 수 있다.
“방금 전에 했던 이야기는 조만간 정식적으로 발표하게 될 것이니라.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라.”
우리는 한 차례 크게 절을 하고서 궁전을 빠져나왔다.
“네놈하고 같이 있으면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군.”
작위를 받고 나서부턴 나를 줄곧 경이라 부르던 에이리히의 말투가 용병 시절 때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아이의 화제가 너무나 민감해서 엄청나게 긴장했던 모양이다.
“언젠가 네가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는 건 아닐지 걱정돼서 잠도 안 온다.”
카트린느를 감추고 있다는 걸 여기서 밝혔다간 졸도할지도 모르겠군.
◇◇◇◇◇◇◇◇◇◇◇◇◇◇◇◇◇◇◇◇◇◇◇◇
“그렇게 됐다. 정식 포고는 아직이지만 목숨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카트린느와 로즈는 일단 내 집 안에 불러들였다.
화재 속에서 구출해 낸 창부라 설명한 다음 이대로 애첩으로 삼겠다 설명하니 부대 안에선 아무도 수상쩍게 여기지 않았다.
부대 내에선 내가 마음에 든 여자는 몽땅 다 자기 것으로 삼는다는 소문이 돈다고 한다.
소파에 앉아있는 카트린느한테 왕이 아기의 목숨을 살려줄 것을 약속했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습니까…….”
“단, 당연히 가문은 이을 수 없고 귀족으로 재기하는 것도 불가능해. 평민의 몸으로 살아가게 될 거다.”
카트린느는 머리를 숙인 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더.”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소식이 정식적으로 포고되는 건 언제인가요?”
“폐하께서 어찌 하시느냐에 따라 달렸지만 아마 2~3일 내에 될 거다.”
“앞으로 사흘……그거면……어떻게든.”
“자, 해도 저물었겠다. 들어가볼까?”
카트린느를 끌어안고서 침실로 향했다.
옷 위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단단하게 솟아오른 그녀의 젖꼭지가 그녀가 얼마나 정사를 기대하고 있는지 확연히 알려주었다.
나도 남근이 바지를 뚫을 기세로 솟아올라 있을만큼 흥분한 상태다.
침대로 끌고 가면 순식간에 헐떡대는 음란녀란 어지간해서는 질리지 않는 법이다.
나는 남자의 품에 안겨 침실로 끌려가는 중이다.
당연하지만 이 다음엔 몇 번이고 범해지게 될 것이다.
오늘은 어쩌면 자궁 쪽까지 깊숙이 박히게 되는 걸까?
아니면 남자 위에 올라타서 내가 허리를 흔들게 되는 신세가 되는 걸까?
되도록이면 그 사람의 커다란 남근을 핥는 행위가 하고 싶다.
남자가 내 입으로 기분 좋게 정액을 토해내는 순간이 기분 좋으니까………….
아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제정신을 차렸다.
대체 왜 그 남자한테 봉사하고 싶어한단 말인가?
큰일났다, 이미 마음까지 함락당하기 직전이다.
각오를 굳게 다져야지.
“앗!”
“…….”
가슴이 엄청나게 커다란 여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 남자는 천박하게도 애첩을 5명이나 데리고 다니는 중이다.
아니, 이 성욕의 화신 같은 남자는 분명 하인 아이들까지도 능욕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어린 남자아이도 있긴 했지만 소년의 엉덩이를 가지고 즐기는 남자도 있다는 사실을 친구한테 들었던 적이 있다.
나는 남자에 안긴 채 눈을 내리깔았다.
애첩의 질투를 받는 건 별로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 여자를 안으실 생각이신가요……?”
하지만 그녀가 비난하는 대상은 내가 아닌 남자 쪽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 나를 경멸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생각하는데……아버지도 오빠도 애첩을 데리고 있었던만큼 여자들끼리 싸우는 모습도 몇 번 정도 봤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주인한테 화를 내는 것보단 눈엣가시인 여자를 괴롭히는 게 더 나을 텐데.
상관없다. 어차피 내 목숨은 사흘 뒤에 끝이니까.
나는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논나의 시선이 따갑군.
이 정도로 따가운 시선이 날아오는 건 그녀의 정체를 밝혀내면서 벌어졌던 그 소동 이후 처음이다.
마리아와 멜리사가 내게 보내는 시선도 얼음장처럼 차갑다. 이것도 전부 카트린느의 오해와 세리아의 말주변이 부족한 탓이다.
왕도로 돌아온 나는 개선식 준비도 해야 하다보니 세리아한테 카트린느를 맡기고서 먼저 집으로 보내 두었다.
또 여자가 늘었구나 하고서 여자들이 카트린느에게 질문을 던졌다.
“죄송하지만, 당신은 에이길 님과 어떻게 알게 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저 남자는……제 남편을 죽이고 아기의 목숨을 대가로 저를 능욕했습니다!”
여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부디 저를 불쌍히 여겨 저와 로즈를 가만히 놔주세요. 저는 저 남자를 거부할 수는 없을지언정 여러분처럼 저 사람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카트린느는 벽에 기댄 채 아이를 품에 안고 흐느껴 울었다.
당연히 다른 여자들은 깜짝 놀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리아한테 물어보았는데, 대답이 이런 느낌이었다고 한다.
“저 여자는 반역자의 딸로 남편도 그 일당, 에이길 님께서 남편을 베고 아버지도 왕도에서 교수형당할 예정입니다.”
“원래는 저 여자도 처형되어야 하지만 살려주었습니다. 아마 전투 이후 피가 들끓어 여자가 고프셨던 게 아닌지…….”
“아이 쪽에 관해선 아는 게 거의 없지만 몸을 내어주는 걸 조건으로 폐하께 아이의 목숨을 건져달라고 부탁하시려는 모양입니다.”
특히 세 번째 답변이 문제다.
세리아도 아이의 목숨에 관해선 제대로 아는 게 없다 보니 설명이 어중간하게 끝났는데 그 얘기만 들었다간 아이를 지키려는 어머니를 억지로 범한 극악무도한 악당 같잖아.
게다가 카트린느가 방구석에서 울면서 아기한테 남편과 있었던 추억을 이야기해주던 것 때문에 카라를 제외한 다른 여자들은 완전히 오해해 버린 모양이다.
카라는 혼자서 “수컷이 마음에 든 암컷을 손에 넣기 위해 원래 있던 짝을 죽이는 건 당연한 일.” 이라며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지만.
3:6의 따가운 시선을 버티게 된 지 어느새 며칠, 드디어 왕이 광장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직접 포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남부 지역에서 발생한 반란이 완전히 종식되었음을 선언하노라. 이번의 불행한 사태는 모두 권력의 망자인 알노드 변경백과 놈에게 붙어있던 자들의 소행이니라.”
귀족들의 반응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과 더더욱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알노드와 무언가 연줄이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리라.
“나는 이 비겁한 배신자에게 대역죄를 물을 것을 고하노라. 모든 작위와 영지 및 재산을 몰수하고 직계 일족은 모두 극형에 처한다.”
광장에 놓여있는 불길한 토대, 수많은 밧줄이 묶인 그것의 위로 죄수 몇 사람이 끌려왔다.
제일 앞에는 알노드도 보였지만 누더기를 입고서 더러워진 그 모습에는 예전의 위용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집행하라!”
남자, 여자, 노인, 차례차례 불길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나도 이 광경을 지켜보는 건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눈을 돌린 다음 근처에 있는 미녀의 엉덩이와 가슴을 바라보기로 결정했다.
시민한테서 터져나오는 비명, 웅성거림.
토대와 시체가 정리되기 시작하자 비명소리는 잦아들었지만 평민, 귀족 구분없이 왕을 보는 눈에는 공포심이 깃들어 있었다.
“악은 처벌되었노라! 너희는 나를 무자비한 왕이라 하여 두려워할 터. 하나 나 또한 사람, 대역죄인의 자손이라 한들 무구한 생명까지 빼앗을 마음은 없느니라.”
왕의 곁에 어린 아이 몇 명이 놓였다.
로즈와 비슷한 나이의 아기부터 다섯 살 정도 되는 아이까지 있는 듯했다.
“이 아이들은 대역죄의 친족! 하나 아무것도 모르는 유아까지 처벌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닐지니. 나는 태곳적 법에 목매여 무의미한 살생을 벌이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느니라.”
“나의 이름 아래 이 아이들의 죄를 경감하여 무죄 방면하노라.”
“자비심 넘치는 왕이시여! 만세!” “우리들의 진정한 왕, 알렉산드로 폐하 만세!” “시민을 사랑하는 폐하시여, 영원하라!”
제일 먼저 소리 지른 놈들은 에이리히의 텐트에서 봤던 것 같은데.
분명 에이리히가 놈들한테 돈을 쥐어줬던 걸 본 것 같기도 하지만 못 봤던 걸로 하자.
아이들의 목숨을 살려준 것에 시민들이 환호하는 도중, 왕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제일 중요한 내용을 포고했다.
“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역적 놈들과 혈연이 있는 가문에 관해서도 반란에 가담할 의지가 있었다고는 보기 힘드노라. 따라서 그 가문과 연을 끊고 충성의 증거로 약간의 세금을 지불하면 불명예 낙인 형벌은 무효, 그 가문의 귀족들이 내게 보인 충성심은 의심치 않겠느니라.”
주변에 있던 귀족들 중 하나가 크게 안도의 한숨을 토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불명예 낙인이 찍히면 출세와 혼약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귀족 가문에 있어선 사실상 사형 선고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 후에도 왕의 연설은 계속되었고 중앙군을 한층 더 강화하고 여러 개의 군단을 조직할 것, 전공을 세운 자에겐 포상과 작위를 수여하겠다 선언하고서야 그 자리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귀족들 입장에선 불명예 낙인의 무효와 그에 필요한 세금 제출 방법, 알노드 일당의 죽음으로 인해 공석이 된 지위를 두고 벌일 약탈 전쟁 쪽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언을 주고, 견제하면서 그들은 점차 자리를 비워나갔다.
나도 카트린느한테 모든 게 정리됐다고 설명하러 가야 한다.
“포고는 예정대로 됐나요?”
“그래, 이제 로즈의 목숨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나는 로즈를 카트린느에게 건네 주었다.
평소엔 억지로 빼내듯이 데려간 다음 두 번 다시 품에서 놓으려 하질 않았는데 오늘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소파 위에 아기를 올려둔 다음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각오하세요!”
카트린느는 책상에 있던 과도를 손에 쥐고 나를 향해 휘둘렀다.
모든 여자들이 그 광경에 비명을 내지르고 세리아가 허리춤에 감춰두고 있던 나이프를 뽑아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내 가슴에 나이프가 박히자 옷에 피가 번졌다.
“남편의 원수! 아버지의 원수! 에잇! 어떠냐!!”
필사적으로 나이프를 내리찍으며 나를 비난하는 카트린느.
하지만 나이프에 찔린 나는 쓰러지지도, 죽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힘이 없는 카트린느인데 나이프 크기도 작다 보니 옷가지와 내 근육을 뚫고서 나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만히 내버려 두면 몸도 아플뿐더러 무엇보다 세리아가 그녀를 찔러 죽이기 직전이다 보니 어깨를 가볍게 눌러 옆으로 내던졌다.
힘조절을 할 생각이긴 했으나 그래도 카트린느한테는 좀 강한 힘이었는지 그녀는 뒤집어듯이 바닥을 굴렀다.
“……당연히, 안 되겠죠. 아아……알고 있었던 일입니다.”
그녀는 나이프를 역수로 쥐더니 자기 목을 향해 들이댔다.
“로즈, 어리석은 어머니를 용서해 주세요. 저승에서 당신이 자라는 걸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멜리사가 어머니의 최후를 아이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는 듯이 로즈를 끌어안았고, 다른 여자들은 처참한 상황 속에서 다들 얼어붙어 있었다.
세리아는 카트린느한테는 전혀 흥미없다는 듯이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선혈이 공중을 맴돌았다.
◇◇◇◇◇◇◇◇◇◇◇◇◇◇◇◇◇◇◇◇◇◇◇◇
이름: 에이길 하드릿 19살 초여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기사작 왕국군 제1기병 중대장
연봉 금화 80닢
재산: 금화 257닢(은화 이하 제외)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대형 버디슈(창)
방어구: 고품질 강철 플레이트 아머 검은 망토 (저주받음)
동료: 논나 엘렉트라 멜리사 마리아 카라
카트린느 로즈
하인: 미티 알마 크롤
부하: 세리아 아고르(부관) 크리스토프 칼 슈바르츠(말)
경험 인수: 2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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