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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296화『연방 원군⑬ 사랑하는 딸』

296화『연방 원군⑬ 사랑하는 딸』

 

백도 총사령부

 

월나스키 이 멍청한 자식!”

 

마틴은 사령부 안에서 육방군이 보내온 보고를 듣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령관실 안으로 들어가 문이 닫히는 순간 노성을 내질렀다.

 

상륙군 고작 10만명으로 침공을 시도하다니, 놈은 제정신인가!?”

 

, 하고 책상을 내리치는 마틴.

그가 사령관실 안으로 들어간 것은 자신의 노성이 다른 부하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걸 피하기 위함이었다.

사령관실에는 지금 심복인 니콜라이밖에 없다.

 

주변 적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남하 중입니다. 당장 자브레라로 돌아가 철수하도록 답장하긴 했습니다만……시간이 걸릴 겁니다.”

안개 때문에 전령을 태운 배도 빠르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지!”

 

마틴은 그렇게 말하고서 책상 위에 있던 물을 병째로 단숨에 삼키고 냉정한 목소리를 되찾았다.

 

――흉한 모습을 보였군. 놈이 이 정도의 두뇌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내 불찰이건만.”

 

쓴웃음을 짓는 마틴을 보고 니콜라이도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당연한 일이야. 내가 사령관이었으면 분명 책상을 박살냈을걸.”

 

작은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두 사람은 상관과 부하 관계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절친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로 대책을 강구해야 해. 자브레라에서 무작정 남하했다 치면 조만간 적의 주력 부대랑 마주치게 될 거다. 경장비 상륙 군단만 가지고는 불리해. 패주해 올 가능성도 상주해 둬야겠어.”

 

니콜라이도 동의했다.

 

월나스키는 가능하다면 원군을 바란다 말하고 있습니다만 논외입니다. 제국 함대가 건재한 이상, 몇십만을 보내도 안개가 걷히면 고립되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마틴은 책장에서 명령서를 끄집어내면서 말했다.

 

동부의 하천 함대와 이반나의 함대 잔존선을 모아둬라. ……그 배도 완성됐지. 쓸 수 있는 수단은 전부 동원하겠지만――.”

 

마틴은 분노와 초조감이 글에 묻어나지 않게끔 조심스레 명령서를 작성한 다음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상륙부대 정예병 10만은 소멸한 걸 전제로 다시 전략을 짜주도록.”

알겠습니다.”

 

니콜라이는 깔끔한 경례로 답했다.

 

그건 그렇고 월나스키가 이 정도로 무능할 줄이야……내 안목도 아직 멀은 건가.”

 

마틴은 월나스키의 경력서를 흘끗 쳐다보면서 탄식하다가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분하다는 듯이 눈을 감은 뒤, 유리잔을 책상 위에 내던졌다.

 

왜 그러십니까? 놈이 또 무슨 짓을 저질렀습니까?”

아니, 이 분노는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 거다. 어째서 놓친 거지?”

 

마틴은 니콜라이에게 경력서를 건넸다.

 

놈의 가족을 살펴봐라. 외동딸 [소피아]가 칼리신의 셈블레이 경 가문에 시집을 갔더군. 남편은 전사, 외동딸도 도시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고서 행방 불명이라 적혀 있다. 놈은 칼리신까지 쳐들어갈 생각이었던 거지.”

 

군을 사적인 일에 쓰려 하다니, 역시 구제불능의 멍청이입니다. 이건 놈 자신의 자질 문제입니다.”

 

마틴은 자료를 덮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지. 하지만 눈치 챘더라면 어떤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이제 와서 떠들어 봤자 별 수 없지만.”

 

마틴은 기지개를 한 번 펴고 말을 이었다.

 

그 고르도니아 놈도 어떻게 됐을는지. 기대한 거랑은 좀 달랐지만 재밌는 남자였는데.”

전장에선 늘 있는 일입니다. 무운이 있으면 살아남을 테지요.”

 

그것도 그렇지.”

 

마틴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확인하고서 분노와 초조감이 전혀 번져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방을 빠져나와 참모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

상륙 군단  자브레라로 후퇴 중

 

방위 총사령부에서 온 명령서입니다.

…….”

 

월나스키 앞에는 병단장들이 나란히 서 있었고, 월나스키는 푹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가 들릴만한 정도의 거리에 있던 의자에 걸터앉아 옆에서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세리아의 엉덩이를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흐응! 크윽…….”

 

사령관 인원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부관인 세리아가 목소리를 낼 수는 없기에 눈으로 필사적으로 호소하는 중이다.

하지만 너무 귀여워서 좀 더 쓰다듬고 싶……눈물을 글썽이는군. 너무 심했나, 미안하다.

 

우리는 간신히 제국 군단을 격퇴했다.

장군으로 보이는 사람을 쓰러트린 덕에 적이 후퇴했으니 일단은 승리했다고 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손해를 따져보면 도저히 그런 말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전투에서 상륙 군단은 총 병력의 약 절반과 대포, 거대 석궁 등 강력한 무기도 수많이 잃었기 때문이다.

 

적의 손해도 비슷한 수준이긴 하지만 애초에 병력에 두 배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태세를 가다듬고 다시 공격을 시작하면 이번엔 전혀 버텨낼 재간이 없다.

 

세리아와 야코프, 그리고 다른 병단장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거의 모든 이들의 의견 일치로 자브레라로 후퇴하자는 진언이 나왔다.

 

그럼에도 월나스키 사령관은 적의 군단도 철수한 지금 어떻게든 칼리신까지 진전할 수 없겠느냐고 주장하기 시작한 그때, 총사령부에서 명령이 도착한 것이다.

 

총사령부에서 보내온 그 서문의 내용에선 이번 남하 명령을 곡해한 사실에 대해 격렬하게 규탄하고 있었다. 또한 즉시 무조건적인 철수 및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엔 사령관을 해임시키고 서열에 따라 군단 안에서 대리인을 내세울 것, 이라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군단장은 명령서를 근거로 아직까지 진군을 주장하던 월나스키를 모든 이들의 동의와 함께 해임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 군단은 천천히 철수를 시작했다.

적의 주력 부대도 후퇴한 상황이기에 당장 추격당할 위험은 없었으나 병사들은 상처 입고 피로에 찌든 상황이라 몰골은 패잔병 그 자체였다.

 

미안하네. 뒷일은 맡기겠네…….”

 

어깨를 축 늘어트린 월나스키가 군단장 지팡이와 망토를 의자에 걸치고서 일어났다.

군단장 중 한 명이 슬픈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각하, 어째서 이렇게 무모한 남하를 시도하신 겁니까? 각하는 결단코 막무가내로 나가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부하인가?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지. 칼리신에는 말일세, 딸이 시집을 갔었네.”

 

그는 반쯤 포기한 것처럼 얘기하기 시작했다.

 

칼리신에 있던 외동딸이 제국의 급습에서 제때 도망치지 못한 이후 행방불명이 됐다는 것.

제국에게 점령당한 도시 주민과 영주 일가는 참혹한 운명을 맞이했다는 것.

어렸을 적부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딸아이를 어떻게든 구해내고 싶었다는 것.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사령부에는 분노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근원은 다른 병단장들……당연한 얘긴가.

 

딸을 위해 적과 싸우는 아버지, 아름다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군단을 동원하다니 자기 사욕을 위해 이용했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상륙 군단은 정예 병력을 최대한 모아 선정한 부대, 전멸이라도 했다간 전쟁 전체에도 영향이 생긴다.

 

각하――아니, 너 이 자식――!”

 

한 병단장이 검을 뽑을 기세로 월나스키한테 달려들었다.

반면 월나스키는 이미 모든 걸 포기한 건지 저항하지 않았다.

 

, 기다리시죠. 각하께선 이미 해임되셨습니다. 더 이상 따지고 드는 건 의미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떼어놓았다.

그의 옆구리를 붙잡고 있던 병사한테도 내가 데려가겠다며 놓으라고 명령했다.

 

일단 월나스키는 근처 마차 안에서 연금 같은 형태로 갇히게 되는 모양이다.

 

경도 상당히 화가 났을 테지.”

아뇨, 딱히.”

 

딸을 위해서 자기 부대와 조국까지 위기에 내몰았다.

군인으로 보면 실격일 테지만 나는 딱히 죄악감도 분노도 느끼지 않았다.

 

나도 잘 모르는 10만 병력보다 친한 한 사람을 우선시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게 딸이라고는 해도 여자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군……마지막으로 딸 이야기라도 들어주겠는가?”

원하시는대로 하시죠.”

 

만약 무사히 백도로 돌아간다 한들 이 사람은 큰 벌을 받을 게 분명하다. 그도 그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딱히 친하지도 않은 사이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정도라면 별로 어렵지 않다.

 

딸은 말일세…….”

 

내 옆에서 아버지는 사랑하는 외동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추억을 더듬어가듯이 조금씩 얘기하는 월나스키, 그에 비해 나는 내 표정이 점차 바뀌어가는 걸 느꼈다.

 

마지막으로 봤던 딸아이는 배에 살이 쪘다며 중얼거렸네. 애초부터 가슴이 큰 편이기도 해서 살이 찐 것처럼 보이기 쉬운 아이였지.”

통통한 체형에 거유란 말입니까…….”

 

잘 웃는 천진난만한 딸이였네. 분명 가혹한 환경에선 버텨내지 못할 게야. 게다가 부모가 보기에도 아름다웠지. 여자 몸으로 끔찍한 꼴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견딜 수가 없었네.”

심지어 미인이란 말입니까…….”

 

금세 남자한테 반해버리는 탓에 혼약 시기를 놓쳐 올해 24, 슬슬 손자라도 볼 수 있을까 싶었건만…….”

“24살에 남자한테 잘 반하는 미녀라……심지어 통통하고 거유……그렇군요.”

 

결심은 끝났다.

 

각하, 만약 따님을 구해내는 남자가 있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가정으로 얘기해 봤자 허무해질 뿐일세. 하지만 그런 사내가 있다면……나는 뭐든지 내어줄 게야.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네만 난 못 말리는 팔불출이라네.”

 

……그럼 따님을 원한다고 말할 경우엔 어쩌실 겁니까?”

고민되긴 할 테지만 원체 잘 반하는 딸아이일세. 그런 남자가 있으면 부모가 허락하기도 전에 따라갈 것 같군 그래.”

 

결정이다.

 

당신을 구해내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따님을 만나게는 해드리지요.”

 

그가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날밤

 

으응, 에이길 님……너무 커요.”

흠냐흠냐……무우…….”

 

세리아와 피피를 침대에 남겨두고 나는 준비를 시작했다.

상당히 격렬하게 움직인 탓에 그리 쉽사리 눈을 뜨진 못할 것이다.

 

미안하다. 그래도 가야하거든.”

 

두 사람의 키스를 해주니 표정이 헤벌죽 풀어졌다.

 

나는 지금부터 칼리신으로 향한다.

다행히 큰 손해를 입은 상륙 군단의 이동 속도는 느리기에 도시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말을 타고 가면 순식간에 도착한다.

 

내 마음대로 부대를 이탈하는 건 안 좋을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자브레라에 도착하기 전까지 할 일도 없다.

들킬 것 같을 경우까지 상정해서 이미 편지를 남겨뒀으니 말이야.

저걸 보면 잘 해주겠지. 후후후, 나도 책략이란 걸 쓸 수 있게 됐다니까.

 

문제는 칼리신 주변의 경계 태세인데, 우리 쪽이 철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적도 알고 있을 테니 경계망은 그리 삼엄하지 않을 것이다. 한 명 정도라면 슬쩍 들어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 혼자 가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으음.”

 

은근슬쩍 밖으로 나오던 그때 브륜힐데가 내게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

그녀 입장에서 밤은 곧 활동기, 그 눈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혼자 보낼 것 같으냐. 이 몸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네가 죽고 맛있는 피가 땅바닥에서 싸라져 간다 생각하니 불쾌하기 짝이 없구나!”

 

여기서 대꾸를 했다간 다른 여자들이 일어나 버린다.

사실은 혼자서 정리해야 할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알겠어, 브륜힐데. 또 도와주려는 거지?”

, 착각하지 말거라! 이 몸은 그대의 피가 아까울 뿐이니라! 네가 죽으면 어쩌나 싶어 낮에도 제대로 잠을 못 자겠지 않느냐!”

 

소리가 커져버린 브륜힐데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서 슈바르츠를 끌고 나왔다.

상처는……일단 약은 발랐지만 멀쩡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나도 조금 다치긴 했지만.

 

여자를 구하러 간다. 가슴이 크다더군. 갈 수 있겠냐?”

 

슈바르츠는 히힝거리고 얼른 타라는 듯이 재촉했다. 역시 변태 말이군.

 

무거운 장비는 놔두고 가자. 갑주에 장검까지 짊어진 모습으로 도시 안에 들어갈 순 없어.”

 

남몰래 훔쳐들어갈 걸 생각해 보면 무거운 방패나 장검을 들고 가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가벼운 듀얼 크레이터뿐이라면 슈바르츠의 부담도 적을 것이다.

 

인간이랑 말이 똑같이 여자를 밝히는군. 정말로 못 말리는 남동생이로고……언젠가 따끔히 버릇을 고쳐놔야 할 테지. 거유가 대체 뭐가 좋다는 것이냐, 납작해도 좋지 않느냐.”

 

나는 슈바르츠 위에 올라타 자기 가슴을 매만지고 있는 브륜힐데한테 손을 뻗었다.

 

그럼 가자. 브륜힐데는 뒤쪽에 타 줘.”

필요없다. 이 몸이 더 빠르니.”

 

그렇게 말하고서 달려나간 브륜힐데는 정말로 슈바르츠보다 빨랐다.

말의 자존심 때문인지 슈바르츠도 속도를 높였으나 땅을 박차면서 마치 날아가듯이 달려가는 그녀는 가끔씩 이쪽을 돌아보며 배려하는 듯한 동작까지 비쳤다.

 

이렇게 바람 같은 속도로 달려나간 우리는 동이 트기 직전, 끝내주는 타이밍에 칼리신 도시벽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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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트리스탄 도망기④  상실

 

으음, 부당 노동이야……흠냐.”

……왜 이렇게 되는 건데.”

 

에스텔은 침대에 팔꿈치를 괴고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결말은 이상했다.

 

트리스탄을 도망치게 하기 위해 안으로 쳐들어온 치안대 병사한테 달라붙었던 에스텔.

끝내 병사가 검을 뽑아들고――.

 

내가 칼에 베여서 침대에 누워있는 거라면 이해가 가는데 말이야.”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검을 뽑아든 병사를 보고 트리스탄이 허둥지둥 달려온 것이다.

 

힘없는 트리스탄이 날 지켜준다는 생각에 몸이 뜨거워졌었는데…….”

 

트리스탄은 에스텔 앞을 가로막기 전에 발밑에 있던 책에 걸려 바닥을 구르고는 의식을 잃었다.

 

실내에서 굴러서 기절하다니, 무슨 할머니야? 대체 얼마나 둔한 거냐구!”

 

에스텔은 잠에 든 트리스탄의 뺨을 꼬집었다. 가녀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건 그렇고……이 녀석이 영주님의 참모라니 믿기질 않아. 단순히 일하기 싫어서 도망쳐 왔다니, 그게 뭐야.”

 

트리스탄이 실신하자 병사들이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에스텔은 뭔가 이상하다 싶어 질문을 던졌고 그렇게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한바탕 소동을 눈치 챈 마이라가 찾아와서 기절한 트리스탄을 휴식시킨다는 명목 하에 추가로 하룻밤의 체류를 인정받은 것이다.

 

뭔가 여러모로 지쳤어.”

 

에스텔은 트리스탄이 자고 있는 침대 위에 머리를 올려두었다.

 

지금 이런 시간,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내일이면 끝이구나.”

 

트리스탄이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심하긴 했다.

하지만 반대로 영주님의 참모인 트리스탄과 일개 대여점 주인인 에스텔이 이후로도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외롭네.”

 

에스텔은 평소 마시지 않는 술을 잔에 담고서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술은 한 방울도 못 마신다고 했던가? 컵 한 잔 마시면 양동이 한 통 분량은 토한다면서.”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이상한 남자. 여자한테도 술한테도 관심 없으면서 일도 싫어하다니. 인생에서 뭘 하고 싶은 거야……뭐, 책이랑 차겠지. 정말 아빠 같네.”

 

에스텔은 몸을 일으켜 트리스탄의 얼굴을 코앞에서 들여다보았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가슴과 살짝 벌어진 입, 나른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이목구비는 충분히 뚜렷했다.

술기운 덕분인지 그녀의 몸은 점점 달아올랐다.

 

마지막이기도 하니까 최대한 유혹을……아마 힘들겠지. 절대로 반응 안 할 거야.”

 

술은 확실히 그녀의 사고를 잠식 중이었다.

 

유혹해도 안 된다면 저지르는 수밖에 없어. 이 녀석은 힘도 없으니까, 나라도 억지로…….”

 

천천히 에스텔의 입꼬리가 치켜올라갔다.

 

 

 

으음……대체 무슨……에스텔? 어어, 그 다음에 어떻게 된 거지?”

 

눈을 뜬 트리스탄을 보며 에스텔이 미소 지었다.

 

너는 나를 지키려다 바닥을 굴러서 정신을 잃었어. 정말로 둔해 빠졌다니까.”

 

트리스탄은 아주 약간 얼굴을 붉혔다.

 

하하, 익숙한 일은 하는 게 아니라니까. 나는 힘 쓰는 일엔 완전 젬병이거든.”

, 끝내주게 꼴사나웠어. 이야기는 마이라 님한테서 전부 들었고.”

 

트리스탄은 다 들켰네,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기뻤어 트리스탄.”

 

서로 마주보며 미소 짓는 두 사람, 하지만 트리스탄은 갑자기 무표정이 되었다.

 

그래서, 뭐야 이거.”

뭐냐니?”

 

트리스탄은 두 손을 움직이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당연한 얘기다. 그의 두 손은 머리 위에서 침대에 묶여 있었으니까.

 

왜 나는 묶여있는 거지?”

우후후, 듣고 싶어?”

 

에스텔은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 위에 올라탔다.

 

뭐하는 거야. 무거우니까 비켜줬으면 하는데…….”

후후, 안―돼.”

 

트리스탄은 에스텔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에 무언가를 눈치 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술을 마신 거야? ……정말 뭐하는 거야! 아주 제대로 취했잖아!?”

아무리 유혹해도 봐주질 않는 트리스탄한테는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어. 동정 떼어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

 

이건 그냥 강간이잖아.”

여자가 남자를 따먹는 건 강간이 아니야! 나약한 소리 말고 가만히 있으라니까, 얌전히만 있으면 금방 끝나니까!”

 

아아……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그냥 느긋하게 책을――.”

저항해도 소용없어! 내가 더 힘이 세단 말이야. 천장 얼룩이라도 세고 있으라구.”

 

두 사람의 형체는 하나가 되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이게 무슨……더럽혀졌어……빼앗겼어…….”

 

침울해하는 트리스탄이 병사에게 끌려 저택으로 돌아갔다.

에스텔은 시트만 몸에 걸친 모습으로 그를 배웅했다.

 

저택 주변에 있었잖아? 왜 안 도와준 거야…….”

 

트리스탄이 병사를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노려봤지만 병사들은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저런 미인한테 따먹히고 있었는데……도와줄 필요가 있던 건가?”

그러게. 그런 놀이인 줄 알았지.”

그보다 싫었으면 떨쳐내면 되잖아. 여자 힘 정도는.”

 

병사들이 소근대는 목소리에 트리스탄은 『내가 더 힘이 없다구』, 라며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말했다.

 

마지막엔 끔찍했지만……신세 졌네.”

 

한숨과 함께 트리스탄은 에스텔에게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작별을 받아들이는 내용이 아니었다.

 

. 잔뜩 신세 졌네.”

 

에스텔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트로 감추고 있기만 한 자기의 아랫배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싫어하던 것 치고는 의외로 잔뜩……후후, 어쩌면 사고 칠지도. 그렇게 되면 잘 부탁해.”

 

상냥한 표정으로 배를 계속 쓰다듬는 에스텔을 보고 트리스탄은 허파 속 공기가 전부 빠져나가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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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VS 제국 전쟁 병력 비교(현재+손해 = 동원 한계치입니다. 부족한 경우엔 아직 여력이 있는 겁니다)

 

오르가 연방「남부 연안 전투 중」

병사 숫자: 현재 114  동원 한계치: 255  기존 손해: 141  민간 희생: 97

가랜드 제국

병사 숫자: 현재 142(그 중 전노 46)  동원 한계치: 310  기존 손해: 214(전노병은 포함 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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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4살 초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아레스 왕의 친구 용살의 영웅

엘프의 중개자

 

휘하군 : 105 임시 편성 병단: 5500

 

 

동행 세리아(호위/보좌) 마타(시종/밤시중) 나티아(종자 임시) 레아(대기)

피피(사수) 메서 슈미트(똥개) 브륜힐데(주인공 감시중) 슈바르츠() 미루미(잠수 중)

야코프(부관)

 

에스텔(가해자) 트리스탄(피해자)(

재산: 금화 13000

경험인수: 450명 자식: 55 +555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