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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295화『연방 원군⑫ 혼신의 투척』

295화『연방 원군⑫ 혼신의 투척』

 

전투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쳐들어오는 제국 전노병을 쓰러트리면서 우리는 정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아군들의 노성이 터져나왔다.

 

놈들의 무기는 별볼일 없다! 방패로 막아내면 문제없어!”

어쨌거나 숫자는 많으니 지쳐서 움직이지 못하겠으면 뒤쪽이랑 바꿔라!”

측면에서 공격당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대비를 철저히 해라.”

 

적의 호통소리도 들렸다.

 

닥치고 앞으로 나가라. 상대가 무너질 때까지 공격만이 살길이다!”

전방위 포위를 시도해서 밀어버려라!”

괴물이 있다고? 알 바냐, 숫자로 밀어붙여!”

 

난전은 한층 더 질서를 잃기 시작했다. 야코프의 얼굴에서도 초조감이 띄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 싸워봤자 우리가 먼저 지칠 겁니다.”

 

야코프가 말한대로다. 적의 진형에 낭비가 많은 탓에 병력 차이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어떻게든 호각으로 싸우고 있기는 하다. 물론 아군의 장비와 기량이 적의 숙련도보다 높은 것도 한 몫 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적과 달리 우리 쪽 병력은 대부분이 정면으로 나서고 있기에 휴식할 여유가 거의 없다.

적보다 5배 강한 병사라 해도 5배 오래 싸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내구전으로 끌고 가는 건 안 되지……지휘관을 노려야겠어.”

그것밖에 없을 듯 합니다.”

 

동서고금, 지휘관이 당하면 부대는 무너진다.

특히 전노병들은 단순한 명령과 함께 밀어붙이고 있는 게 고작이다. 머리가 당하면 단숨에 무너지리라.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난 안 죽어.”

 

나는 난전에서 잠깐 자리를 빠져나와 나티아를 끌어안았다.

 

, 뭐하는 거냐! 갑자기 전장에서 시작할 셈이냐!? 좀 더 장소와 시간을 고려――어라?”

네 아름다운 허리를 내 걸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지금은 지휘관을 좀 찾아줘.”

 

내가 나티아를 끌어안고서 어깨 위에 올려태우자 그녀는 몇 초 동안 입을 다문 뒤, 툭 하고 내 머리를 때렸다.

 

, 오해하게 만들지 마라. 으음……저 화려해 보이는 놈이 그건가?”

 

전노들은 투박한 갈색 방어구를 장비 중이다.

그 중에서 화려한 갑옷을 입은 지휘관은 한층 더 눈에 띈다.

눈이 좋은 나티아와 피피라면 쉽사리 판별할 수 있다.

 

저건가, 좋았어.”

 

나는 다시 난전 속으로 뛰어들어 지휘관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마치 고기벽 같은 전노병 무리들을 흐트러트리고 창과 칼 때문에 찰과상을 입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다가갔다.

 

뭘 허우적대고 있는 거냐. 아무튼 숫자로 밀어붙……어이! 저건 적이지 않나!? 누가 나를 지켜――.”

 

지휘관이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이미 고함소리를 내지르면서 돌진 중이었다.

 

끄아아아악!”

으그악!”

 

장검을 내지르고 방패를 손에 쥔 채 돌격. 진로를 가로막으려던 적 병사를 마치 폭주마차처럼 튕겨 날리면서 지휘관한테 달려들었다.

 

, 이놈이!”

 

허둥지둥 검을 뽑아든 지휘관을 방패로 튕겨날린 나는 엉덩방아를 찧은 사내에게 호탕하게 장검을 내리쳤다.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찢겨나가고, 땅을 깨부순 감촉까지 느껴졌다.

 

우왓!” “, 끔찍해…….”

 

비명은 없었다.

한 박자 늦게 지휘관 남자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좌우로 갈라져 쓰러졌다.

당연히 피와 내용물도 미친듯이 쏟아져내렸고 주변 적병이 뒷걸음질을 쳤다.

 

, 지휘관님께서 당하셨다…….”

, 우리는 어찌 해야……일단 명령이 나올 때까지 도망친다!”

 

단숨에 주변에 있던 적 병사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노들을 감시하던 병사도 지휘관이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퇴를 시작했다. 여기서 마냥 버틸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기세로 다른 데도 해치운다! 지휘관만 철저하게 노려!”

 

주변 아군에서 또다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어이쿠.”

꺄악, 살려줘!”

 

아군 사이에 섞여 도망치려던 전노 여자를 붙잡았다.

 

도망쳐도 또 싸우게 강요받을 거다. 얌전히 이쪽으로 와.”

, 싫어! 그러면서 죽일 거잖아! 이거 놔―!!”

 

얘기를 듣지 않고 날뛰는 여자의 손을 붙잡아 내 가랑이를 매만지게 만들었다. 상냥하게 설득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앗……뭐야 이거 엄청 커……대단해…….”

진정 됐겠지? , 포로가 돼라.”

 

이미 전투 도중 고양감 때문에 단단해져 있던 게 다행이군.

 

……알겠습니다. 포로가 될게요.”

 

그거면 돼.

 

 

그 후, 야코프를 중심으로 적 지휘관을 중점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고 지휘관 몇 사람을 처치하는 데에 성공했다.

세리아도 내 의도를 눈치 챈 건지 진형을 바꾸고 적의 돌출부를 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지휘관을 잃은 전노병 집단은 결국 질서를 잃고 말았다.

 

 

적이 우왕좌왕 하는 중입니다! 지금이라면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본진으로 돌아온 내 앞에서 세리아가 흥분한 듯이 얘기했다.

확실히 적은 숫자 자체는 별로 줄지 않았지만 제각각 행동하는 중이다.

쓸데없는 이동을 반복하거나 같은 부대 안에서 후퇴와 공격 명령이 뒤섞이는 탓에 이미 군대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총공격을 가하면 무너트릴 수 있기야 하겠지만…….

 

 

전령――!! 군 사령부로부터 긴급 명령. 105병단은 지금 당장 후퇴하라, 복창하겠음, 당장 후퇴하라.”

 

갑작스러운 후퇴 명령에 아군 측에서 경악과 불평하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고생해서 겨우 유리한 입지를 차지했건만.

 

말도 안 됩니다! 조금만 더하면 놈들을 도륙낼 수 있는데 후퇴라니!”

 

세리아도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전령은 말을 덧붙였다.

 

본진 위급 상황! 105병단은 우익을 포기하고 중앙을 원호하길 바람. 복창하겠음―.”

 

허둥지둥 본진 쪽을 바라봤다. 어느새 아군은 크게 밀려 있었고 대열도 엉망이 되어 있었다.

격렬하게 서로 쏴대고 있던 대포와 거대 석궁도 지금은 제국 쪽이 일방적으로 마구 쏴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적은 본진 근처까지 쳐들어온 상황이라 이대로 가만 두면…….”

 

우익에서 아무리 적을 처리해도 본진이 함락당하면 끝장이다.

 

세리아, 안타깝지만 네 첫 승리는 포기해야 할 것 같구나. 바로 가자.”

,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전노병은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 후퇴한다면 추격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야코프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오른쪽 옆구리에 끌어안고 있는 여자 포로 때문에 폼이 안 사는군.

 

저질…….”

정말로 말이다. 이 색정광 자식.”

 

세리아가 욕에 맞장구를 치니 나티아가 날 어이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왜 그러지? 설마 내가 왼쪽 옆구리에 여자 포로를 끌어안고 있어서 그런 건가?

 

 

 

급히 달려간 본진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끔찍했다.

아군 측 중심지임에도 여기저기서 적의 보병과 기병이 쳐들어와 난전을 펼치고 있었다.

 

어떻게든 전선을 복구해라!”

이제 틀렸습니다! 이미 수많은 곳에 구멍이 뚫려서 적이 대규모 침투 중입니다!”

 

양익 쪽 원군은 아직인가!?”

우익은 적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고 좌익은 적에게 밀려 크게 후퇴했습니다. 원군은 불가능합니다!”

 

월나스키 각하께선 아직 사령부에 계신 건가? 이미 안전하지 않다. 후방으로 후퇴하라 말씀 드려라!”

그것이 각하께서는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지라…….”

 

아군 부대는 아직 붕괴하지 않았으나 불리한 건 명백했다.

사령관 온나스키가 도망치지 않은 덕에 병사들이 간신히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

 

전선이 여러 부분에서 망가졌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머잖아 완전히 붕괴할 겁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어떻게든 해야지.”

 

세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순간 적 기사가 달려들었다.

 

적진 한복판까지 쳐들어왔다! 놈들을 전부 다 쓸어버리고 연방군을 붕괴――.”

 

말을 끝마치기 전에 몸을 회전시켜 말 위에 있던 기사의 몸통을 두 동강 냈다.

 

전원 따라와라. 본진 내부에 침입한 적을 전부 쓸어버린다. 아군은 죽이지 마라.”

“““!!”””

 

나와 105병단이 난입하면서 본진 내부의 전투는 한층 더 혼란스러워졌다.

 

아군 측 방어를 뚫은 적이 본진 내부의 기사와 사령부 요원을 습격했다.

그 적의 옆구리에 105병단 병사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역으로 달려들었다.

검으로 베고, 창으로 찌르고, 개중에는 맨손으로 주먹다짐을 하거나 돌을 쥐어 때리는 자들까지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우리가 가장 잘하는 난전 상황으로 끌고 갔다고 볼 수도 있으리라.

 

아무튼 눈앞에 있는 적을 베어라!”

 

이러한 대난전 상황에선 대열도 짤 수 없다. 그저 개인의 역량에 맡기고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아무튼 본진 안에서 적을 내쫓아야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싸우고 검으로 아군을 북돋으며 적을 제압하는 것뿐이다.

 

나는 적 보병을 베어넘기고 말을 타고 있는 적을 손으로 붙잡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등 뒤에서 맨손으로 날 붙잡은 적을 반대로 땅바닥에 넘어트리고 얼굴이 박살날 때까지 때려주었다.

적의 검을 장검으로 막아내고 서로 힘을 겨루는 사이 왼손을 뻗어 상대방의 머리를 붙잡아 목을 꺾어버렸다.

 

이런 혼란스러운 난전 속에서 세리아가 무심코 소리쳤다.

 

에이길 님, 말에 타십시오. 말 위에서 싸우시는 게 더 나을 겁니다!”

변태 말이 다친 것 때문에 탈 수 있는 말이 없어.”

 

지금 슈바르츠는 피피와 나티아를 태우고 다니는 중이다.

완전 무장을 한 내가 타는 것보다 그 두 사람이 타는 게 훨씬 가볍기도 하고 활을 주로 다루며 싸우기에 격렬하게 움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슈바르츠 말고 다른 말을 탔다간 내가 위에서 장검이나 방패를 휘둘렀을 때 중심이 무너져 쓰러질 게 분명하다.

 

그때 적병이 세리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말을 타고 있는 여자, 적의 귀족 아닌가!? 해치워라!”

 

세리아한테 적의 보병이 달려들었다.

 

그렇게 순순히 당하진 않습니다!”

 

적이 내지르는 창 날끝을 검으로 비껴낸 세리아가 적의 손목을 베어냈다.

 

으그악!!”

 

적은 손의 동맥이 베인 탓에 피를 철철 흘렸고 저도 모르게 창을 떨어트렸다.

곧장 세리아의 찌르기가 날아가 남자의 눈알에 검이 꽂혔다.

눈부터 머리까지 관통당한 남자는 움찔, 하고 경련한 뒤 목숨을 잃었다.

 

이년이!”

끌어내려!”

 

이번엔 적 세 사람이 동시에 달려가는 걸 보고 세리아가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 세 사람이 그녀한테 닿을 일은 없었다.

 

내 세리아한테 무슨 짓을 하느냐!”

 

나는 남자들을 향해 달려나갔고, 그 도중에 장검을 치켜들어 휘둘렀다.

 

뭐야 이놈은!”

이 여자의 호위인가――끄엑!”

, 뭐야 이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검――호곡.”

 

둔탁하고 축축한 소리와 함께 두 남자가 두 동강났다.

 

너도다.”

 

그 기세 그대로 마지막 남은 한 놈을 전력으로 걷어찼다.

남자는 눈 코 입, 덤으로 귀에서도 피를 토하면서 땅을 구르더니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무사하냐, 세리아.”

, 네에…….”

 

그러자 세리아 주변에 본진을 지키던 아군 병사가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신이 원군의 사령관님이십니까! 살았습니다!”

저희는 난전 속에서 부대와 분단된 탓에……긴급 상황인만큼 당신의 지휘 하에 들어가겠습니다. 지시를 내려주시길.”

 

? !?”

 

허둥대는 세리아. 하지만 주변에 몰려드는 아군의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갔다.

부대와 이탈하게 된 병사가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종자 분도 훌륭한 활약이더군요. 주인을 멋지게 지켜내시던데요!”

 

말에 올라타 호령하는 세리아와 내 다리로 걸어 장검을 휘두르는 나.

누가 상관으로 보일지는 명백했다.

딱히 상관없긴 하지만 말이야. 세리아한테 명령받는 거라면야 레오폴트보다 100배는 기분 좋다.

 

정정하고 있을 시간도 아깝구나. 네가 지시를 내려라.”

 

그렇게 말하자 세리아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계속해서 아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검과 단창을 갖고 있는 분은 다섯 명이 1조가 되어서 본진 내의 적을 소탕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아리따운 여성에게 명령받는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일 줄이야…….”

 

활과 크로스보우를 갖고 계신 분은 제 곳으로 모여 주십시오. 수를 정리한 다음에 지원하러 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아아……예뻐라.”

 

우익은 한동안은 괜찮습니다. 좌익 방향은 제 부대가 막아낼 테니 정면에 있는 적에 집중하십시오. 척후병은 후방에 있는 기병이 움직이면 바로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밟히고 싶네…….”

 

세리아가 계속해서 명령을 내리는 와중 나와 야코프는 손에 닥치는 대로 적을 베어넘겼다.

뭔가 잘못된 듯한 느낌도 들지만 불쾌하진 않으니 괜찮은 거겠지 뭐.

 

 

105병단의 분투와 세리아의 지휘 덕분인지 본진에 침입한 적은 점점 소탕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국 아군의 각 병단들도 어떻게든 질서를 되찾았고 전선을 재구축하는 데에 성공했다.

 

어떻게든 버틴 것 같네요.”

 

세리아는 휘유, 하고 한숨을 내쉬며 땀을 닦았다.

그건 그렇고 지휘 훌륭하던데. 나보다 훨씬 더 잘하잖아.

 

그럴 리가……에이길 님을 놔두고 제가 지휘를 맡다니요…….”

아뇨, 세리아 공의 지휘는 훌륭했습니다. 저도 보고 있으니 반할 것만――.”

 

닥쳐라, 강간마.”

 

야코프는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침울해했다.

세리아는 나랑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최근엔 레아나 다른 여자들하고도 사이 좋게 지내는 편이긴 하지만 야코프는 세리아 안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105병단 놈들은 더 이상 못 싸울 거다. 휴식시켜야겠어.”

 

우익에서 전노병을 끊임없이 상대한 뒤에 쉴틈없이 본진에서 싸우기까지 했다.

더 이상 싸우는 건 무리다. 실제로 다들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다음 적이 올 때까지――.”

 

세리아가 입을 뗀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포격이다――!!”

난전이 끝나니까 포를 쏴대기 시작하는군!”

 

아군의 고함소리로 이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쯧……대포인가?”

 

맨 첫 발 이후 곧바로 쾅, , 하고 포탄이 떨어졌다.

상당수의 대포로 쏴대는 게 분명했다.

 

우리 쪽도 대포를 세워라! 반격이다!”

 

아군 쪽 지휘관이 소리치더니 우리 쪽도 포격을 시작했다.

 

이게 대국들의 전쟁이군요……적과 아군을 합치면 대체 포가 몇 문이나 있는 건지.”

 

제국의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와 아군 측 포가 불을 뿜는 소리가 뒤섞여 방금 전 난전보다도 귀가 아팠다.

 

하지만 우리 쪽 보는 딱 보기에도 숫자가 적어서……포격전으로 끌고 가면 불리합니다.”

 

야코프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렇겠지. 우리 쪽 대포가 한 번 불을 뿜을 때 적의 포탄은 이미 5,6발이 떨어지고 있으니까.

잘 보니 주변에 부서진 대포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첫 대포전 때 상당히 당했던 건가?

 

으갹!”

, 두목, 어떻게 하면 됩니까?”

 

105병단 놈들도 도망치는 중이다.

머리 위에서 철구가 떨어지는 중이니 어쩔 수 없긴 하지.

 

적당히 움푹 패인 곳에 숨어 있어라. 그 다음엔 살려달라고 기도해.”

 

나도 아군 포병을 도와주고 싶긴 하지만 2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포전을 돕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도 기분이 상하기에 부서진 대포 옆을 굴러다니던 탄환을 움켜쥐었다.

 

!”

 

기합을 넣고서 던져보긴 했으나 탄환은 적과 아군 중심 부근에 낙하했다.

 

역시 안 되는군. 이 거리에선 안 닿아.”

아뇨……100m 이상은 날아갔습니다만……괴물이십니까?”

 

좋은 생각이 났다. 혹시 브륜힐데라면 닿지 않을까?

 

브륜힐데.”

그대. 지금 괴물이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린 건 아닐 테지?”

 

어느새 브륜힐데는 내 바로 옆에 와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계속 근처에 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럴 리가 없잖아. 부탁이야……이대로 놈들 마음대로 하게 놔두면 큰일난다고.”

수상쩍구나. , 됐다. 그래서 뭘 시킬 셈이냐?”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서 박살난 대포와 그 주변에 흩어진 포탄을 가리켰다.

 

저걸 적의 대포를 향해 있는 힘껏 날려줬으면 해. 네 힘이라면 닿을지도 몰라.”

……하여간 여자한테 저런 무거운 걸 들게 시키다니……하아, 나중에 이 빚은 받아가도록 하마.”

 

브륜힐데는 그렇게 말하면서 부서진 대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래, 그 탄환을――아니, 그게 아니라.”

이걸 던지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브륜힐데는 그것을 적진을 향해 내던졌다.

커다랗게 포물선을 그린 그것은 멋지게 적 포병 위에 떨어졌고……대포 세 문을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말도 안 돼.”

!? 에엥!? 꿈……은 아니지?”

 

맹렬한 포격 속에서 우리 쪽을 지켜보고 있던 아군은 많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지켜보고 있던 병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문질렀다. 적 진영에서도 경악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미 파괴된 포는 물론이고 그 주변에 있던 대포도 발사를 멈추고 있었다.

 

브륜힐데가 『부서진 대포』를 움켜쥐고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근육질의 거구 사내가 날린 거라면 영웅의 탄생이라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텐데, 겉으로 보기엔 체구가 작은 소녀가 저지른 짓이기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하나 더 간다.”

 

그녀는 다시 땅바닥에 버려진 대포를 쥐어들더니 투척했다.

이번엔 살짝 표적이 빗나가 적진 코앞에 떨어졌으나 엄청난 속도로 내던져진 대포는 땅을 구르더니 거대한 철덩어리가 되어 적 병사를 으깨버렸다.

 

어깨가 아프구나. 이걸로 끝이다.”

 

마지막이라는 듯이 브륜힐데가 손에 쥐어든 건 보급용 마차였다.

다행히 사람은 타고 있지 않은 듯 한데, 물통이 가득 든 마차가 회전하면서 날아갔다.

실로 기묘한 광경이다.

 

마차는 적의 포병보다 살짝 뒤쪽에 떨어지더니 엄청난 파괴음과 함께 박살났다.

어느새 적의 포격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피해 수준은 별볼일 없지만 대포와 마차가 하늘에서 떨어지면 동요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쳤구나. 햇빛도 쐬었고. 이만 자마.”

 

그렇게 말하고서 브륜힐데는 뒤쪽으로 빠져버렸다.

오늘밤엔 브륜힐데를 잔뜩 신경 써 줘야지.

 

적의 포격이 멈췄습니다!”

좋아, 이 틈에 적의 포를 부숴라!”

 

아군 쪽 포격이 격렬해졌다.

하지만 슬프게도 포문 자체가 적기 때문에 유효타로 보기엔 힘들었다.

우리 쪽이 불리한 건 변함없다.

 

 

족장님, 새빨간 놈들이 앞으로 나왔다!”

 

그때, 슈바르츠 위에 타 있던 피피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새빨간 놈……적의 군장, 특히 고위 간부는 붉은색을 쓴다 들었습니다만…….”

 

피피는 한층 더 눈에 힘을 주었다.

 

새빨간 기병이 잔뜩에 한가운데에 화려한 장식을 단 남자가 한 명 있다. 대포? 뒤쪽에서 호통을 치고 있다.”

 

나와 야코프, 세리아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기사를 잔뜩 데리고 화려한 장식……적의 사령관급 인물이 동요 중인 포병을 북돋으러 나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옆에 있던 거대 석궁의 화살을 손에 쥔 채 달려나갔다.

난전을 벌일 생각은 없기에 장검은 바닥에 떨어트렸다.

이게 승리를 얻기 위할 마지막 기회라고, 내 감이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아군 전선을 뛰쳐나가 달려나갔다.

다행히 적과 아군이 포격전을 벌이고 있던 덕에 그 사이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리는 대략 200m, 나 혼자서 달려간다면 순식간이다.

대포는 재빠르게 표적을 바꿀 수 없기도 하고 나 하나를 향해 포를 쏜다 해도 절대 맞을 일은 없다.

 

, 뭐냐!? 혼자서 돌격 중이잖아.”

화살을 퍼부어라!”

 

그럼에도 적의 반응은 재빨랐다. 나를 향해 화살이 날아온 것이다.

나는 방패를 앞으로 내민 자세 그대로 달려나갔다.

 

다리와 몸통은 방패로 막고, 얼굴에 날아오는 화살은 듀얼 크레이터로 떨쳐낸다.

삐져나온 부분에 박히는 화살은 어쩔 수 없다. 치명상은 아닐 것이다.

 

오른쪽 옆구리에 한 방, 제대로 떨어트리지 못한 화살 한 방이 왼쪽 어깨에 꽂혔다.

격통이 느껴졌지만 문제는 없다. 다리와 오른손만 멀쩡하면 승부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는 대략 50m, 슬슬 되겠다 싶어 오른손에 쥔 듀얼 크레이터를 떨어트리고 커다란 화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포병진 뒤쪽에 있는 화려한 장식의 남자를 찾았다.

이 거리라면 나라도 보일――그럴 거리였건만.

 

, 막고 있잖아!”

 

남자는 주변 기사가 세우고 있는 방패 뒤에 있는 건지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혼자서 달려들면 일부러 방어까진 하지 않을 거라 예상한 거였는데, 대체 왜 제국 기사 놈들은 직무에 이렇게 열심인 거냐.

 

위험하군. 여기서 돌아갔다간 고슴도치행이라고.”

 

이제 감으로 노리는 수밖에 없나 하고 손을 치켜든 그때, 뒤쪽에서 두꺼운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두목! 우리한테 맡겨 주십쇼!”

가자, 얘들아!”

 

내 돌진을 보고서 105병단 병사들이 따라온 것이다.

적은 후속 부대의 출현에 황급히 방어 자세를 굳히기 시작했다.

 

좋아, 너희들 발판이 돼라!”

 

내가 보기에도 참 너무한 명령이지만 병사들은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챈 듯했다.

가장 밑에 있던 남자가 절을 하듯이 땅바닥에 엎어졌고 그 위에 다음 남자가 올라탔다.

 

, 뭐냐 저놈들!”

불길하군! 쏴라, 쏴죽여라!”

 

화살이 날아오더니 무방비하게 몸을 숙인 병사들한테 박혔다.

 

끄악……장딴지에 박혔어…….”

팔에……조금만 더, 버티라고.”

똥구멍에 푹 하고……아, 안 돼, 가버려!”

 

신음소리와 비명이 새어나왔지만 그럼에도 105병단 병사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남자들로 구성된 『투척대』의 완성이다.

 

간다. 버텨라.”

 

나는 사정없이 그 발판을 짓밟으며 올라갔다.

화살이 박혔을 때보다 더한 고통의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더니 뼈가 부러진 듯한 소리까지 들렸다.

미안하다. 이기고 나면 여자랑 돈으로 보상해 주마.

 

가장 위에 있는 남자를 있는 힘껏 밟고서 도약, 하늘 높이 몸을 나부꼈다.

 

공중을 맴돌면서 적을 내려다보았다.

땅바닥에선 방패 때문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았던 화려한 갑옷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펄럭이는 망토와 높으신 분 특유의 턱수염……틀림없군. 저놈은 사령관이다.

떡하니 입을 벌린 적의 장군과 시선이 마주쳤다.

 

!”

 

혼신의 투척, 던진 뒤에 부탁이니 제발 빗나가지 말라고 화살에게 빌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빗나가기라도 했다간 너무 꼴사납잖아.

 

내 소원이 먹힌 건지 투척한 거대 화살은 정확하게 적장을 향해 날아갔다.

 

군단장 각하를 지켜라!”

 

기사 중 한 명이 방패를 손에 쥐고 적장 앞에 튀어나왔다.

대단한 각오군. 이게 평범한 투척이었으면 그는 몸을 날려 장군을 지켜낸 영웅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내가 날린 거대 화살에는 완벽하게 힘이 실려 있었다.

 

바람을 비틀며 날아간 거대 화살은 기사가 내민 방패를 종잇장처럼 뚫어버리고 기사의 몸도 뚫어버렸다.

기사의 등 뒤로 튀어나온 화살은 적장의 가슴팍에 깊숙이 꽂혔다.

덥수룩한 턱수염이 입 밖에서 터져나온 피 때문에 새빨갛게 물드는 걸 확인하고서 나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끄윽! 크헉!”

 

세리아처럼 깔끔하게 낙법을 취할 생각이었으나 실패해서 배쪽부터 떨어졌다. 무게 차이가 너무 심했던 것이다.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가더니 크게 기침이 터져나왔다.

 

커헉, 콜록!”

 

적의 대열 앞에서 넘어지다니, 말도 안 돼.

알고는 있긴 하지만 숨이 막혀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이제 죽었구나 싶었건만…….

 

, 군단장님께서 당하셨다!”

어쩌면 좋지!? 후퇴냐? 전선 유지인가?”

아무튼 일단 후퇴한다. 부대장님의 지시를 기다린다!”

 

적은 바닥을 굴러다니는 날 내버려두고 천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목숨을 건진 모양이다.

 

으음, 괜찮은 것 같구나.”

 

숨을 고르면서 아군 진지를 바라보니 브륜힐데가 커다란 바위를 짊어든 채 멈춰서 있었다.

, 하고 그걸 던지자 커다란 소리가 터져나왔다.

내가 정말로 위험해지면 그걸 던질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너무 무리를 많이 시켰군. 침대 위에서 빚을 잔뜩 갚아줘야지.

 

대장님을 지켜라! 방어 태세!”

 

몇 초 뒤에 105병단 병사들이 나를 방패로 감쌌다.

 

우리도 일단 후퇴하죠. 방패 뒤로 오십시오.”

 

손을 뻗는 야코프에게 필요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깊은 부상도 아니고, 땀이 잔뜩 난 남자한테 달라붙고 싶진 않다.

 

에이길, 괜찮아? 약 필요해?”

 

오오, 나티아까지 와줬구나.

 

아니……못 일어서겠어……네 어깨 좀 빌려줘.”

알겠다! 붙잡아.”

 

나는 나티아의 어깨에 기대 몸을 맡겼다.

어깨를 딱 달라붙이니 그녀의 얌전하면서도 확실한 봉오리가 가슴팍에 닿았다.

잔뜩 흘린 땀냄새도 어째서인지 불쾌하진 않다.

 

저도 부축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게 달려온 세리아의 허리춤에 손을 두르고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두 사람 모두 나를 걱정하고 있기에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후후후, 이거 좋군.

 

그 후, 제국군 군단은 한동안 정지한 채 우리 쪽과 대치했으나 결국 천천히 남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시기에 백도 총사령부에서 사자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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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VS 제국 전쟁 병력 비교(현재+손해 = 동원 한계치입니다. 부족한 경우엔 아직 여력이 있는 겁니다)

 

오르가 연방「역상륙 작전 개」

병사 숫자: 현재 114  동원 한계치: 255  기존 손해: 141  민간 희생: 97

가랜드 제국

병사 숫자: 현재 142(그 중 전노 46)  동원 한계치: 310  기존 손해: 214(전노병은 포함 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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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4살 초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아레스 왕의 친구 용살의 영웅

엘프의 중개자

 

휘하군 : 105 임시 편성 병단: 5500

 

 

동행 세리아(호위/보좌) 마타(시종/밤시중) 나티아(종자 임시) 레아(대기)

피피(사수) 메서 슈미트(똥개) 브륜힐데(주인공 감시중) 슈바르츠() 미루미(잠수 중)

야코프(부관)

 

트리스탄(포박)

재산: 금화 13000

경험인수: 450명 자식: 55+555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