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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294화『연방 원군⑪ 수적 열세 전투』

294화『연방 원군⑪  수적 열세 전투』

 

적군의 습격으로부터 자브레라를 방어한 상륙군은 뒷처리를 끝마치자마자 남쪽으로 진군을 개시했다.

 

그렇게 격렬한 전투 이후 고작 하루만에 진군 태세를 끝마치다니……깜짝 놀랐습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역시 숙련도가 높군.”

 

규칙적인 발소리와 함께 행군하는 아군의 대열에선 조금도 혼란이 느껴지지 않았다.

105병단도 약간의 손해가 발생하긴 했지만 거의 문제는 없었다.

 

헤헤헤, 적의 갑옷 중에서 어깨 보호구를 뽀려왔지.”

좋은데. 나는 부러진 검을 대신할 게 없길래 공병용 도끼를 갖고 왔거든.”

나는 창이 머리에 스쳐지나갔는데 말이야. 한쪽만 머리카락이 없는 것도 영 이상하길래 한가운데 말고 전부 다 밀어버렸는데……뭔가 묘하게 해방감이 있어서 좋단 말이지. 빠져든다고나 해야 할까. 뭔가 히얏하―, 하는 느낌도 있고.”

 

뭔가 더더욱 오랑캐 같은 느낌이 되긴 했지만 싸울 수만 있으면 충분하겠지?

 

 

하지만 군단 전체로 봤을 때 손실은 적지 않았을 겁니다. 어째서 이렇게 남진을 고집하는 건지…….”

무슨 말 했습니까, 강간마?”

 

옆에 서 있던 야코프가 세리아의 날카로운 시선을 보고 슬쩍 뒤로 물러났다.

세리아는 야코프가 여기사를 억지로 강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품고 있었고, 그 탓에 태도가 극도로 날카로워졌다.

 

여기사에게 설명을 부탁했으면 될 일이긴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녀는 좋은 환경을 제공해줄 것, 그리고 무사히 돌려보내주겠다는 조건 아래 나와 야코프에게 안길 것을 승낙했으나 반드시 사정만큼은 밖에다 하라고 일러 두었다.

그런데 세리아에게 걷어차이면서 야코프는 그녀의 안에 잔뜩 싸버리고 말았다.

 

여기사는 약속과 다르다며 울음을 터트렸고 야코프를 계속해서 욕해댔다.

지금도 포로들을 운반하는 마차 안에서 계속 우는 중이라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이걸 보고서 세리아가 야코프를 더 날카롭게 쳐다봤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야코프한테는 나중에 벌을 주기로 하고, 지금은 눈앞에 닥친 전투에 집중하자고.”

……네. 저희가 가고 있는 도시 [칼리신]까지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순조롭게 갈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만.”

 

세리아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도시까지 남은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단지 걱정거리가 많을 뿐이다.

 

척후기병 중의 절반이 미귀환 상태, 강력한 방해 공작에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근에 적 부대가 있는 건 틀림없는 일이죠.”

격파한 적이 얌전히 물러난 것도 신경 쓰이는군. 괴멸시킨 것도 아닌데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도망친 것도 부자연스러워.”

후속 부대가 있다는 얘기겠지요.”

 

다시 야코프가 나와 보폭을 맞췄다. 세리아가 날카롭게 노려봤지만 이번엔 반걸음만 뒤로 물러나 따라왔다.

 

놈들도 병사 숫자는 우리랑 비슷한 수준, 10만 정도였지. 그런 놈들이 믿을만한 후속 병력이라 치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도시를 제압한 뒤 파괴, 얼른 돌아갔으면 이런 고생은 안 했을 텐데 뭘 이렇게 억지로 남진 중인 건지.

 

일단 백도 총사령부에도 작금의 상황에 대해선 전달해 뒀습니다만 시간에 유예가 없는 부분이 뼈아프군요.”

안개가 걷힌다고 바로 적 함대가 온다고 단정 지을 순 없긴 하다만…….”

그런 부분을 적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게 괴로운 거죠.”

 

안 좋은 생각만 계속 난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여차할 경우엔 이 몸이 너 하나만큼은 데리고 가줄 테니.”

 

슈바르츠 위에 올라타며 그렇게 말한 인물은 브륜힐데였다.

일단 갑옷을 입어줄 수 없겠냐고 물어봤지만 『땀냄새 나니까 필요없다』며, 사복 차림 그대로다.

화려한 금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동시에 엄청난 위화감을 느끼게 만드는 중이다.

 

하하하, 대장님도 이런 미소녀가 지켜주신다면 든든하시겠지요.”

 

야코프는 당연히 농담인 줄 알겠지만, 브륜힐데는 정말로 나를 짊어지고 적진을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세리아도 같이 부탁 좀 할게.”

피피도 버려선 안 됩니다.”

나티아도 같이 갈 거다!”

 

머릿속에 브륜힐데가 나, 세리아, 피피, 나티아를 거북이 등껍질마냥 짊어지고 달려가는 광경이 떠올라 웃음이 번졌다. 가장 크기가 작은 브륜힐데라는 부분이 참 우습군.

 

, 그렇게 되지 않게끔 만전을――.”

 

마지막까지 말을 꺼내기 전에 나팔 소리가 울려퍼졌다. 전군 경계 신호다.

 

――기하는 수밖에 없겠군. 전 부대에게 전투 태세를 알려라.”

 

야코프와 세리아가 말 위에 올라탔다.

나도 슈바르츠 위에 올라타려고 고삐를 잡다가 그만뒀다.

『안 탈 거냐?』 라고 말하듯이 슈바르츠가 히힝거렸다.

 

도중에 쓰러졌다간 큰일나니까.”

 

슈바르츠의 부상은 깊지 않지만 살짝 움직임이 어색했다.

내가 무거운 무기를 들고 그 위에서 휘둘렀다간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피피는 슈바르츠를 타고 와라. 너 정도로 가벼우면 문제 없을 테니.”

알겠다!”

 

폴짝 하고 슈바르츠 위에 올라타는 피피. 슈바르츠는 한숨을 내쉬고 뒤쪽으로 물러났다.

힐끔 뒤를 바라보니 확실히 걸음걸이가 이상해져 있었다.

나를 태우고 있는 동안엔 허세 부리고 있던 거로군.

 

, 변태말 주제에.”

 

나는 장검과 듀얼 크레이터를 확인해 보았다. 둘 다 생채기 하나 없다.

 

듀얼 크레이터는 여전히 살짝 진홍빛을 띄며 빛나는 중이고, 드래곤 장검도 지금까지 겪은 전투로 인해 적의 피를 머금어 살짝 붉게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앞으로도 한참 더 물들이게 될 것 같군.”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럼에도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멈출 줄을 몰랐다.

 

◇◇◇◇◇◇◇◇◇◇◇◇◇◇◇◇◇◇◇◇◇◇◇◇◇◇◇◇◇◇◇◇◇◇◇◇◇

전날  알벤스  가랜드 제국군  총사령부

 

전령과 참모들이 진영 안에서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브레라에 상륙한 연방군은 10만 규모! 본격적인 역상륙으로 보입니다!”

도시 탈환을 시도한 제6군단이 격파당했습니다. 주력 적룡 기사단도 큰 피해를 입고 패퇴, 재편성을 하는 데엔 시간이――.”

적은 더욱 남쪽으로 진군하여 칼리신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야만인 집단이 있다고? 쓸데없는 보고는 하지 마라!”

 

제국군 최고 사령관 다프네스는 눈을 감은 채 팔짱을 끼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참모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0만이나 되는 병력을 상륙하게 내버려 두다니, 세크리트 장군님께선 무얼 하신단 말이냐!”

적이 안개가 짙은 시기를 노려 강을 넘어온 것 같소. ……지리적으로는 적에게 유리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이미 상륙한 이상 어쩔 수 없소. 한시라도 빨리 처리해야 하오.”

6군단 편성을 서두르시게!”

 

참모들이 떠들어대는 와중 다프네스가 눈을 떴다.

 

동부 방면군이 칼리신 서쪽까지 내려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만.”

 

참모들이 술렁였다.

 

, 확실히 남부 연안까지 내려간 동부 방면군이라면 지금부터 명령을 내릴 경우 늦지 않게 도착할지도 모릅니다만.”

그 군대는 전력을 온존한 뒤 봄을 기다리고서 재침공 작전에 사용할 예정 아니었습니까? 지금 여기서 전력을 소모하면 춘계 반격 때 지장이 발생합니다. 칼리신 같은 도시는 포기하더라도 전체 전략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춘계 공격이 개시된 이후, 제국은 계속해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다.

연방의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기엔 제국병의 장비 수준이 너무 열악했고, 기후 상황에도 아는 게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소모된 전력으로 인해 이제 와선 정규병의 규모만 따져봤을 때 연방과의 전력 비율은 오히려 역전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그러한 약점을 보완해야 할 전노병들도 열악한 장비 탓에 급속도로 약해졌다.

현재 상황에서 정면에서 맞붙는 건 치명적인 패배를 불러일으킬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할 상황이었다.

 

따라서 다프네스 밑에 있던 사령부는 전면 충돌을 회피하면서 비교적 따뜻한, 강의 남쪽 연안으로 후퇴하고서 봄을 기다린 뒤 재침공할 전략을 취하고 있던 것이다.

 

다행히 세크리트 휘하의 함대는 여전히 건재한 덕에 연방의 반격을 막아내는 중이었고, 그들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서 강을 건너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지금까지는.

 

영향이 없다고? 멍청한 것들! 반격 계획의 전제는 우리가 남부 연안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것이다. 상륙해서 놈들이 깊숙이 들어왔다간 모든 게 망가진다. 무엇보다 병사 사기를 유지할 수 없어.”

 

듣고 보니…….”

병사들이 그나마 사기를 유지할 수 있던 건 강이 가로막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만.”

 

가혹한 환경에 연전연패까지 거듭하다 보면 병사의 사기는 순식간에 붕괴된다.

그걸 막아낼 수 있던 건 『함대가 건재한 덕에 강의 남쪽 연안까지 연방군은 오지 못한다』, 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병사들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부 연안에 적을 놔둘 수는 없다. 투입할 수 있는 최대 전력을 이용해 적을 처리한다. 동부 방면군에게 최대한 빠르게 연락해라. 적의 규모는 10, 동부 방면군 20만으로 박살을 내라!”

“““알겠습니다!!”””

 

다프네스는 위엄 있게 명령한 뒤,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세크리트……너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네가 진 순간 나도 끝장이다.”

 

◇◇◇◇◇◇◇◇◇◇◇◇◇◇◇◇◇◇◇◇◇◇◇◇◇◇◇◇◇◇◇◇◇◇◇◇◇

칼리신 부근  상륙 군단

 

, 에이길 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세리아를 쓰다듬었다.

 

야코프, 병사를 어떻게든 고무시켜라.”

……기대는 하지 말아주십쇼.”

 

그 부분을 어떻게든 해내는 게 네 역할이다.

 

나티아는 자브레라로 돌아가도 돼. 아니, 웬만하면 돌아가라.”

 

솔직히 나티아는 돌아가 줬으면 하는데 그녀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설득하고 있을 시간은 없을 듯하다.

 

전방에는 시야를 가득 메운 적군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병단장들도 다들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건……적의 동부군이군. 여기까지 돌아와 있던 건가?”

 

한 병단장이 군기를 확인하고서 쥐어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부군이 전부 있다고 가정하면 병력은 20만이 훌쩍 넘을 텐데!”

 

최소 병력만 봐도 우리 쪽의 2배인가.

심지어 우리 쪽은 도시 주변에서 전투할 것을 상정하고 있었기에 야전용 장비가 충분하지 못했다.

 

세리아, 네가 군단장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

 

시험 삼아 물어보기로 했다.

 

……적의 숫자를 분명히 알아내기 전까진 판단을――.”

척후병의 보고! 적 숫자, 정규병 20만 이상! 또한 5만명의 전노병을 정면에 앞세우고 있습니다!”

 

세리아의 말을 척후병의 보고가 가로막았다.

 

――철수입니다. 2배나 되는 적과 야전을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적에겐 원군의 가능성이 있고, 우리에겐 없습니다.”

그렇지. 나도 그럴 거다……하지만 힘들겠지.”

 

동부군이라는 이름이 붙은만큼 적은 동쪽에서 왔을 것이다. 남하 중인 우리의 왼쪽으로 쳐들어 오는 중이다.

적진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우리 쪽 후방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었다.

 

기병이 우리 쪽 후방을 차지한 것이다.

대항을 하려 해도 배에서 삭륭한 우리는 기병을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싸울 수밖에 없겠어. 전력을 다한다.”

 

105병단 인원들도 이쯤 되니 떠는 게 눈에 보였다.

야코프가 필사적으로 병사들을 고무하는 중이지만 별로 효과는 없는 듯하다.

 

 

이러니 저러니 하는 사이에 군단장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105병단은 좌익에 위치, 적 전노병과 맞서 싸워라!! 전노의 숙련도는 낮고 장비도 별볼일 없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데다가 숫자가 많다. 조심해라!”

알겠다.”

 

아무래도 지난번 전투 때 방어진 구축을 하는 데에 애먹던 걸 눈여겨 봤던 보양이다.

난전을 벌일 수 있는 상대와 맞춰주려는 듯하다.

군단장은 분명히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인물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두 군대가 점차 붙기 시작했다.

숫자의 차이로 인해 우리는 반쯤 포위당하는 느낌, 어쩔 수 없이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허접해 보이는 집단, 전노병의 정면과 맞섰다.

 

 

적을 쓰러트려 황제 폐하께 보낼 충성심을 표해라! 돌격――!!”

 

전노병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맞춰 고함소리를 내질렀고 우리를 향해 돌격했다.

방어구는 반라처럼 보일 정도로 빈약하고 무장도 작은 방패와 한손검뿐이다.

 

저게 전노병……버림말 부대군요.”

 

야코프가 숨을 삼켰다.

 

놈들은 일단 옆으로 길게 늘어진 대열을 짜면서 일직선으로 달려왔다.

5만에 육박하는 숫자가 달려오는 소리가 엄청난 탓에 아군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지. 또 북돋아주는 수밖에. 잘 못하는데 말이야.

 

잘 들어라!”

 

병사들이 나를 바라봤다.

 

놈들은 5만이라고 한다! 많군……몇 할이 여자인 것 같으냐?”

 

제국병의 여성 비율은 연방보다 높다. 아군들이 헉, 하고 고개를 들었다.

 

“1할이라 쳐도 5000! 그리고 잘 봐라, 놈들은 이 추운 날씨에 반쯤 헐벗었다.”

 

참 용케 동사하지 않는단 말이지. 아군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반쯤 헐벗은 여자가 5000! 복창해라!”

 

반쯤 헐벗은 여자가 5000!”

여자가 5000!”

우리의 여자가 5000이다!”

 

적이 결국 코앞까지 닥쳤다.

적에겐 원호도 없는 건지 활도 대포도 날아오지 않았다.

 

붙잡아서 너희의 몸으로 덥혀줘라! 가자!”

오오오오오오오오!!”

 

돌격하는 순간, 아군은 일제히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적의 전위병이 튕겨나갔다.

쓰러진 전위를 짓밟듯이 적이 더욱 밀려들었다.

들어 본 적이 있긴 했다. 전노병은 이런 식으로 아군의 손해를 신경 쓰지 않는 전투 방식으로 적의 대열을 격파한다고.

하지만 놈들 마음대로 하게 놔두진 않는다.

 

공격 개시!”

 

내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아군은 방어 태세를 무너트리고 검을 휘두르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적 병사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설마 공격에 공격으로 반격할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리라.

예상 밖의 사태에 전노들의 고함소리가 작아지더니, 기세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간다!”

아앗, ! 이제야 레오폴트 씨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이해가 가네요!”

 

나도 방패와 장검을 손에 쥐고 전선으로 뛰쳐나갔다.

방패를 쥐고 있던 아군 병사를 발판 삼아 적 안쪽으로 튀어들었다.

 

흐압!”

 

착지와 동시에 검을 얼굴 높이에서 휘둘렀다. 일부러 칼날을 옆으로 돌린 그 일격은 적의 몸통에 박히는 일 없이, 마치 곤봉처럼 주변 적을 날려버리고 그에 뒤따라 주변 적들까지 쓰러졌다.

 

그렇게 한 데 뭉쳐있으면 내 먹잇감 되기 딱 좋다.”

 

그렇게 말했을 땐 이미 난 검을 한 번 더 휘두른 뒤였고, 이번엔 같은 높이긴 하지만 칼날이 서 있는 쪽이었다.

 

으악!”

, 무슨 일이지!?”

 

머리를 잃은 두 사람이 바닥에 쓰러지고, 칼날이 닿지 않은 운 좋은 적은 홀로 멍하니 서 있었다.

 

베인 거다.”

 

검을 치켜들어 운이 좋은 그 놈의 배를 헤집고 몸을 돌려 주변 적을 한 번 더 베어냈다.

방패가 닿은 적의 머리는 쪼개지고, 검에 베인 자는 허리춤 아래쪽 몸통을 잃고서 쓰러지더니 짐승 같은 단말마를 내질렀다.

 

, 대체 무슨…….”

갑자기 괴물이 이쪽으로 날아왔다고!”

, 무서워…….”

 

누가 괴물이란 거냐!”

 

나는 눈을 치켜뜨고서 적 병사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검을 내질러 한 놈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손잡이까지 박혀서 빠지지 않는 장검에서 손을 떼어놓고 또 한 놈을 주먹으로 휘둘렀다.

 

크헉!”

 

전노병은 투구를 쓰고 있지 않기에 내 주먹이 제대로 들어갔고 주먹을 맞은 놈은 코가 으깨지며 두 눈이 튀어나왔다.

 

오오오!”

 

무기를 쥐지 않은 오른쪽에서 검을 치켜든 적 하나가 달려들었다.

있는 힘껏 내리치던 그 검을 가볍게 피한 나는 적이 헛손질을 친 순간 놈의 손을 붙잡아 검을 빼앗았다.

 

아……아아…….”

 

낡긴 했지만 일단은 검이다. 나는 그 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빌려주는 거지? 고맙다.”

, 별말씀을……끄아아아악!!”

 

검으로 남자의 목덜미를 찢어버렸다. 뒤이어 뒤쪽에서 다가오던 적의 검을 막아낸 다음 머리를 쪼갠 순간 검이 부러졌다.

역시 낡아빠졌구만. 전노병도 이런 걸 들고 싸워야 한다니 고생이 많아.

부러진 검을 또 다른 놈의 목덜미에 억지로 박아넣었다.

 

다른 적이 내 쪽으로 오질 않길래 지금까지 박혀 있던 드래곤 장검을 움켜쥐고 천천히 뽑아냈다.

 

무지막지한 놈이다.”

, 하지만 도망쳤다간 가족이…….”

무서워…….”

 

적 병사 세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고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제히 소리치며 내게 달려들었다.

 

!”

 

나도 세 사람을 향해 달려가 장검을 휘둘렀다.

 

위로 치켜든 검이 적의 손과 함께 공중을 맴돌았고, 내게 내질러진 검은 내 어깨를 스쳐 지나가며 헛손질, 반격으로 내지른 박치기가 적의 얼굴을 박살냈다.

마지막 한 놈은……눈을 감은 채 달려들었다. 뭐야 이게.

 

……헛차.”

 

그 검을 가볍게 피한 나는 놈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꺄아아악!”

 

귀여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여자로군.

 

장비를 버리고 우리 쪽 대열로 들어와라. 그러면 안 죽을 거다.”

 

사실은 상냥하게 달랜 다음 설득하고 싶었지만 적이 너무 많아서 여유가 없다. 거친 말투라서 미안하다.

그 대가로 침대 위에선 상냥하게 대해줄 테니 걱정 말라고.

 

, 네헥!”

 

전노병 여자는 무기를 버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반쯤 헐벗은 방어구까지 전부 벗어버리고 정말 알몸 차림으로 아군 대열로 뛰어들었다.

물론 적이라 해도 알몸 여자를 공격하는 놈은 105병단 안에 없다. 그렇게 교육했다.

하지만 장비가 아니라 무기를 버리라고 말할 걸 그랬군. 감기에 안 걸리면 좋을 텐데.

 

, 나는 여자를 하나 손에 넣었다. 너희도 얼른 가라!”

 

나는 그렇게 병사들을 북돋았고, 아군은 그에 호응하듯이 고함을 내지르며 맹돌진을 시작했다.

 

 

기세와 장비 모두 우리 쪽이 더 높기도 하고, 돌격을 부르짖기만 하는 적 지휘관과 달리 세리아는 멋지게 지휘하는 중이다.

반 포위망에 당하지 않게끔 재주 좋게 후퇴 및 전진을 반복하면서 적의 공격을 흘려보내고 적이 힘들어하는 걸 본 순간 단숨에 공세를 밀어붙인다.

덤으로 나도 전선에 나서 검을 마구 휘두른 덕분에 조금은 전황이 나아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숫자가 많았다.

적의 공격은 쓸모없는 동작도 많고 마냥 노는 병사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5만의 병력에 휩쓸리듯이 싸우고 있기에 쉽사리 결판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여간 아무리 베어도 끝이 없구만.”

 

커다란 검을 휘둘러 한 데 모인 10명 정도 되는 적을 찢어버렸다.

 

정말로 귀찮기 짝이 없군요!”

 

야코프도 검을 휘둘러 제자리에서 세 사람을 베어넘겼다.

 

화살이 부족해진다!”

비장의 수도 쓰겠습니다.”

 

피피의 화살은 아까부터 끊임없이 확실하게 한 발에 한 명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티아의 화살……이라기보다는 유리병이 적 한복판에 떨어졌다.

그러자 근처 적 병사가 구역질을 내뱉으면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나티아는 정말 다양한 걸 만드는군.

 

그럼에도 적은 끊임없이 쳐들어왔다.

낯익은 광경……그래, 좀비 무리랑 싸웠을 때 느낌이로군.

 

, 조금 베어넘기면 쓰러지기도 하고――.”

 

팔을 베어버린 적 병사가 바닥에 엎어진 채 절규한다.

 

가끔씩 당첨도 있으니까 좀비보단 낫다고 할 수 있지.”

 

여자 전노의 검을 튕겨버린 다음 아군 대열 쪽으로 가라고 호통을 쳤다.

 

, 알겠습니다! 죽이지 마세요!”

 

울면서 전노는 알몸이 된 채 달려나갔다.

그러니까 전부 벗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잖아. 감기 걸린다?

 

끝이 없긴 하지만……저쪽보단 낫네요.”

 

 

세리아의 시선 끝에는 다른 병단이 있었다.

 

저건 엄청나군.”

 

중무장 병사들이 충돌하는 그곳에선, 머리 위에 화살뿐 아니라 대포탄까지 날아다니고 있었다.

잘 보니 대포에 갈기갈기 찢겨나간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이 안 되는 파편이 이리저리 튀어 있었다.

적 중기병 무리를 상대로 아군이 장창을 늘어놓은 대기병 방어진으로 막아내는 중이다.

숫자 비율만 보면 적이 우리보다 낫긴 하지만 우리 쪽은 완전 무장한 정규병이기에 상대하기 버거운 듯하다.

 

 

죽어라―!”

싫어.”

 

딴청을 피우는 사이 날 노리고 온 적병에게 카운터로 발차기를 먹였다.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적의 가슴팍에 발을 올려두고 체중을 실어 갈비뼈를 부러트려서 숨통을 끊었다.

 

이쪽도 마냥 지켜볼 순 없겠군. 눈앞에 있는 적에게 집중해야지.”

 

힘든 전투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었다.

 

◇◇◇◇◇◇◇◇◇◇◇◇◇◇◇◇◇◇◇◇◇◇◇◇◇◇◇◇◇◇◇◇◇◇◇◇◇

여담  도망기③  심야  에스텔 책 대여점

 

틀렸어, 완전히 포위당했어…….”

 

에스텔은 창 틈 사이로 밖을 들여다봤다. 밖에는 수많은 횃불이 보였다.

 

……으음, 아마 레오폴트 씨가 나선 거겠지. 이제 정말 여기까지인가?”

 

트리스탄은 읽고 있던 책에게 조심스레 책갈피를 끼우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변명도 못 해……이 사람이 억지로 쳐들어왔다고 말하면 나는 무죄방면으로 풀려날지도.’

 

에스텔은 그렇게 말하고서 입을 뗐다.

 

……화장실 창문을 통해 뒷골목으로 나갈 수 있어. 서둘러.”

 

하아, 결국 이렇게 되는 거구나. 미안해, 아빠. 가게는 여기서 끝인 것 같아.’

 

으음, 레오폴트 씨가 나선 이상 그런 빈틈은 없을 것 같은데.”

 

트리스탄은 화장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들여다봤다. 뒷골목에 횃불은 보이지 않았다.

 

…….”

 

가볍게 창문을 움직여 소리를 내 보았다. 바람 소리로 착각할 수 있을만큼 작게.

곧바로 뒷골목 안쪽에서 사람이 움직였다. 하지만 창문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 다시 조용해졌다.

 

역시나. 일부러 뒤쪽을 비워서 뛰쳐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거야. 도망칠 길은 없는 것 같아.”

 

트리스탄은 쓴웃음을 짓고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안타깝지만 여기까지인 것 같아. 이야, 편해서 좋았어.”

아……그럴 수가…….”

 

치안대가 이렇게 많이 나서다니, 분명 붙잡히면 그냥 끝나지 않을 거야! 감옥에 오래 갇혀있게 되거나 어쩌면…….’

 

에스텔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는 트리스탄을 바라봤다.

치안대를 상대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논리적으로 행동한 건 아니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건지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치안대다! 내부를 수색하겠다! 지금 당장 문을 열어라!”

 

“!?”

그래요 그래, 지금 나간다구요.”

 

트리스탄이 탄탄하다고 보긴 힘든 자물쇠를 열었다.

문이 열리고 치안대의 튼튼한 병사가 트리스탄한테 다가간 그때였다.

 

안 돼애!”

 

에스텔이 치안대 병사한테 달려든 것이다.

맨손의 아가씨가 달려든다 한들 병사는 쓰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갑자기 달라붙은 에스텔을 보고 병사는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무슨 짓이냐!? 이거 놔라! 놓으라 했잖나!”

도망쳐! 트리스탄, 도망쳐어!”

 

떼어놓으려는 병사와 휘둘리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엉겨붙는 에스텔.

 

으음, 뭐라 설명하면 좋으려나. 그런 짓 안 해도 괜찮――.”

이런 짓을 해봤자 절대 도망칠 수 없어, 그래도 눈앞에서 이 녀석이 끌려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필사적인 에스텔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갈피를 못 잡는 트리스탄. 하지만 병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적당히 해라! 말해도 듣지 않겠다면――.”

 

에스텔이 엉겨붙은 병사 뒤쪽에서 나타난 또 다른 병사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들었다.

 

“!? 안 돼! 그만――.”

 

, 베인다……그래도 뭘까. 후회는……없네.’

 

에스텔의 눈동자에 날카롭게 빛나는 검의 광채가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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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VS 제국 전쟁 병력 비교(현재+손해 = 동원 한계치입니다. 부족한 경우엔 아직 여력이 있는 겁니다)

 

오르가 연방「역상륙 작전 개」

병사 숫자: 현재 119  동원 한계치: 255  기존 손해: 136  민간 희생: 97

가랜드 제국

병사 숫자: 현재 148(그 중 전노 48)  동원 한계치: 310  기존 손해: 210(전노병은 포함 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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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4살 초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아레스 왕의 친구 용살의 영웅

엘프의 중개자

 

휘하군 : 105 임시 편성 병단: 7500

 

 

동행 세리아(호위/보좌) 마타(시종/밤시중) 나티아(종자 임시) 레아(대기)

피피(사수) 메서 슈미트(똥개) 브륜힐데(주인공 감시중) 슈바르츠() 미루미(잠수 중)

야코프(부관)

 

트리스탄(포박)

재산: 금화 13000

경험인수: 450명 자식: 55 +555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