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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262화『마그라드 내전② 독립파』

262화『마그라드 내전② 독립파』

 

오드로스 마그라드 총독부

 

잘 오셨습니다, 하드릿 경. 마그라드 총독 뒤누아입니다.”

폐하의 명령을 받들어 반란 진압을 위해 찾아왔습니다.”

 

마그라드 총독부가 있는 옛 수도, 오드로스에 도착한 우리를 총독 뒤누아가 맞이했다.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는 이 남자가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야, 예전엔 적이었던 우리가 협력하게 될 줄이야 세상살이는 참 알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짧게 답했다.

흘끗 표정을 살펴보니 이 노인의 눈에선 희번뜩 빛나는 광기가 느껴졌다.

 

 

원래 트리에아의 재상이었던 이 사람은 전쟁 도중 트리에아 왕가에 의해 일족이 전부 처형당했다.

그 후 전쟁 재판에서 트리에아 왕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심지어는 미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언젠가 버림받을 것을 전제로 마그라드 총독 자리에 오르게 된 남자다.

 

이런 남자와 계속 이야기를 나눌 생각은 없었다.

미친 남자 옆에 있어봤자 재밌을 건 아무것도 없다.

광기에 찌든 여자라면 육봉이랑 애무로 구해줘야 할 테지만 말이야.

 

 

뒤누아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반란은 자주 발생했으나 전부 협조적인 영주들과 총독부군에서 잘 막아내고 있었다고 한다.

 

상황이 바뀐 건 지난달부터, 총독부에 순종했던 한 대영주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였다.

그에 맞추듯이 전역에 단숨에 반란이 터져나와 이들의 대응 능력을 넘어서게 됐다고 한다.

 

각 지역의 총독부군과 협조적인 자들이 각자 개별적으로 담당하고 있긴 합니다만 쉽사리 수습이 되질 않아……한심하게도 왕국군에게 출정 요청을 보내게 됐지요.”

흐음, 그럼 그 대영주를 쓰러트리면 반란은 사그라들 수도 있겠군.”

 

전역에서 발생 중인 반란을 하나하나 제압하다간 몇 달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어느 정도 정리를 해 두면 나머지는 총독부에 맡길 수도 있으리라.

 

그건 그렇고 「협조적인 귀족」이랑 「냉대받는 귀족」이라 부르는 건 구분하기가 힘들군요.”

 

비트먼 병단장이 말했다.

 

우리를 돕는 귀족들은 총독파, 적대하는 자들은……불경한 줄 알긴 하지만 놈들은 스스로 독립파라고 자칭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걸로 불러. 총독파랑 독립파란 말이지. 구분하기 쉬워서 아주 좋군.”

 

이름 정도야 부르면 그만이지.

 

폐하께서 내린 명령서도 있다. 총독부군은 반란이 진압되기 전까지 내 지휘 아래 있게 된다.”

 

나는 품 속을 뒤졌으나 명령서가 없었다.

떨어트린 건가 싶어 당황했으나 세리아가 조심스레 내게 내밀었다.

맞아, 받자마자 세리아한테 맡겨뒀었지.

 

이견 없습니다.”

 

뒤누아는 미소를 지은 채 승낙했다.

말로는 형용하기 힘들지만 참 기분 나쁜 반응이다.

 

그래서 현재 병력은 어떻게 됐지?”

오드로스에 있는 총독부의 주력 부대가 1, 나머지 1만은 각 지역에 퍼져 있습니다. 나머지는 총독파의 영주들이 독자적으로 병사를 모으고 있고 그게 총 2만 정도입니다.”

 

흐음, 그 정도인가.

 

적의 병력은 농민병까지 포함해서 5만 정도로 보입니다.”

 

숫자상으로는 거의 비슷한 수준인가?

그렇다면 정예 왕국군을 동원할 수 있는 우리 쪽이 유리하다 볼 수 있다.

 

전황은?”

각지에서 충돌 상황은 대개 길항 상태입니다만 [칼디아] 주변에선 유감스럽게도 독립파의 우세로 보입니다.”

거기가 아까 말했던 대영주의 거점인가?”

 

다시 한 번 지도에 장기말을 놔두어 확인해 보았다.

칼디아는 오드로스의 북서쪽에 있고 북쪽엔 노스테리에스 강이 인접해 있었다.

주변 중요 도시는 전부 독립파가 장악했고 그 안에는 애초부터 총독파 귀족의 땅이었던 장소도 적지 않다.

 

좋아, 우선 칼디아를 함락시켜야겠군. 그러면 독립파의 사기도 떨어지겠지.”

 

항복하면 그걸로 해결, 안 될 경우엔 두더지 잡기를 하는 수밖에.

 

 

나는 레오폴트를 힐끗 쳐다보았다.

 

큰 방침은 그걸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하지만 허를 찔리지 않게끔 우선 이곳과 이 거점을 처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레오폴트가 지도로 가리킨 반란군의 거점은 두 곳.

하나는 오드로스와 거리도 가까워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나머지 한 쪽은 좀 멀지 않나?

 

거리가 꽤 떨어져 있긴 합니다만 그 사이에 병력이 쌓인 아군의 거점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우수할수록 속도가 빠른 부대로 오드로스를 급습하거나 최소한 우리 쪽 병력을 위협하려 들 것입니다.”

 

그런 거군.

요새 도시의 역할도 수행 중인 오드로스는 경비병력으로도 상당한 방어력을 자랑할 테지만 어찌 됐건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 우리 쪽 보급망이 끊겨버린다.

 

좋아. 그럼 우선 두 거점지를 박살낸 뒤에 칼디아로 간다.”

 

내 결정에 참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다들 준비를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이상하군요.”

 

군사 회의가 끝난 후 세리아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적과 아군이 섞여있다고 해도 오드로스에는 1만명의 병력이 있었습니다. 그럼 주변에 있는 적의 거점 정도는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두 거점에 있는 적은 기껏해야 3천 정도였고 총독부군은 특별히 큰 손해를 입은 것 같지도 않았다.

 

좋은 징조는 아니겠지.”

 

트리스탄이 이제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아니, 방금 전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입을 벌리고 있긴 했지만.

 

처리할 수 있는 적을 아무 이유없이 처리하지 않았다는 건 지휘관이 무능했다는 뜻이고……시도했는데 실패한 거라면 병사의 능력이 낮다는 뜻이야.”

 

안 좋은 소리 마.

 

계산할 수 있는 병력은 우리가 데리고 온 1 5천뿐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레오폴트가 덧붙였다.

 

괜찮아, 나한테는 세리아가…….

세리아를 쓰다듬으려고 한 찰나 살짝 뺨을 부풀린 마이라가 시야에 들어왔다.

 

마이라도 있으니까 말이야.”

 

마이라를 끌어당기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덤으로 가슴도 주물러 두었다.

오오, 세리아의 뺨이 단숨에 부풀었잖아.

 

뭘 하시는 겁니까! 정말, 지금부터 출격해야 하는 상황인데!”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떨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목덜미에 얼굴을 들이대니 키스하기 쉽게끔 내게 고개를 돌렸다.

 

세리아가 열심히 사이에 끼어들려고 상하좌우로 고개를 내미는 것도 귀엽군.

 

그럼 출격 준비를 시작해.”

 

나는 마이라와 세리아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며칠 뒤

 

공략 대상인 두 거점 중 더 멀리 있는 쪽을 우리가, 오드로스에서 가까운 쪽을 총독부군이 공략하게 되었다.

이것은 왕국군 쪽이 더 통솔력이 뛰어났기에 그랬다기보다는 이동 속도가 더 빠르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참고로 총독부군의 지휘는 총독인 뒤누아가 직접 맡는다고 한다.

 

 

목표 지점까지는 딱히 독립파와 마주치는 일 없이 순조롭게 나아갔다.

 

저게 적의 거점이로군.”

 

멀리서 봤을 땐 그냥 작은 마을처럼 보였는데 점차 다가가면서 목제 울타리와 정찰탑, 거칠게 파인 해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적은 농성하기로 결정한 것 같군요.”

 

레오폴트가 말한대로 적의 병력은 하나도 나와 있지 않았다.

급경사가 진 진지에서 머뭇머뭇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게 보인다.

가죽 갑옷에 조잡한 창, 전형적인 반란군 장비로군.

 

 

항복 권고를 하시겠습니까?”

 

마이라가 형식적으로나마 내게 물어보았다.

 

어차피 안 할 거다. 저쪽에서 먼저 그렇게 말하면 받는 걸로 하지.”

 

우리 쪽에서 먼저 방문 상인마냥 말해줄 필요는 없다.

 

 

 

작은 마을을 순식간에 포위한 우리들은 궁병대를 앞으로 내밀었다.

일렬로 선 궁병대는 일제히 불화살을 활시위에 겨눴다.

 

비트먼이 어떠냐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확실히 진을 짜는 속도도 공격 준비 속도도 빠르다.

하지만 내 병사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빠르단 말이지.

 

발사.”

 

비트먼의 명령과 함께 마을을 향해 수많은 불화살이 쏟아져내렸다.

 

적도 반격하듯이 활을 쏘았으나 그 숫자는 몇 되지 않았다.

애초에 병력부터 차이가 나는 데다가 궁병대의 비율은 더더욱 차이가 난다.

 

 

 

화살 숫자로 보아 10:1 정도 느낌인 듯 합니다.”

이 정도 놈들을 상대로 버거워할 리가 없죠.”

 

레오폴트와 마이라가 말하는대로다.

일단 공성전 느낌이 되긴 할 테지만 웬만하면 하루 안에 끝내고 싶다.

 

트리스탄, 넌 뭐 없나?”

 

뭐라도 물어두지 않으면 이 녀석은 잠드니까 말이지.

 

그러자 트리스탄이 가볍게 하품을 죽이며 말했다.

 

없네요. 왜냐면 이대로 싸워도 그냥 이길 걸요.”

그건 그렇지.”

 

 

비트먼은 궁병대가 다섯 번째 불화살을 날렸을 때 일단 사격을 중지시키고 적들의 사정거리 밖으로 후퇴시켰다.

우리 쪽 피해는 거의 없다.

 

반면 급경사 쪽 진지는 여기저기서 불이 피어오르는 중이고 적의 병사는 열심히 불을 끄는 중이다.

 

시작할까요?”

 

비트먼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곧바로 도시를 둘러싼 보병대가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숫자는 대략 2000 정도, 작은 마을이다보니 이보다 더 많은 병력으로 공격을 시작했다간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 아고르 쪽 대대도 있는 모양이군.

 

 

저항은 거세지 않습니다. 이대로 안쪽으로 돌입시키겠습니다.”

 

불을 끄는 데에 열중해서 그런지 우리 쪽으로 날아오는 화살 숫자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적었고 덕분에 보병대는 아무 문제없이 문과 벽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설치된 울타리, 말뚝을 도끼로 쓰러트리고 문을 망치로 깨부숴 파괴한 뒤 벽에는 사다리를 세워 올라간다.

훌륭한 공성 수순이다.

 

 

공성전을 두고 보면 우리 병사보다 몇 단계 급이 더 높은 듯합니다.”

 

레오폴트가 비트먼한테 들리지 않게끔 내게 귓속말로 말했다.

 

확실히 그래. 내 병사는 야전에는 강해도 공성전은 좀…….”

 

대포를 설치해서 마구잡이로 쏴대거나 힘으로 밀어붙이는 공격 방식밖에 취한 적이 없는 기분이다.

 

하드릿 경께서 공성전을 좋아하시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는 거 아닙니까?”

 

마이라가 말했다.

그 말이 맞지.

 

찔끔찔끔 쩨쩨하게 괴롭히는 건 싫어한단 말이야.”

나도 싫다!!”

 

이리지나가 동의해 주었다.

그녀는 방금 전부터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참가하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대포는 안 쓰는군.”

 

비트먼한테 물어보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병단에 대포는 아직 6문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발사를 하면 금세 고장이 나는지라……웬만하면 좀 더 커다란 요새에 쓰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만.”

 

지금 원하신다면 꺼내오겠습니다, 하고 덧붙이는 비트먼.

 

아니, 됐어. 그냥 물어본 것뿐이니까.”

 

우리도 대포가 곧잘 부서져서 꽤 애먹었지.

신형 대포로 바꾼 뒤엔 파손률이 상당히 낮아졌는데, 이건 왕국 측에도 제조법을 가르치는 게 더 나으려나?

레오폴트가 쓸데없는 소리 말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아 그만두는 게 낫겠군.

 

 

공격은 처음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싶었으나 예상과 달리 쉽사리 결판이 나지 않았다.

끝내는 도시 안으로 돌입한 부대가 교전하면서 천천히 뒤로 후퇴, 문 밖으로 밀려나왔다.

 

호오, 역으로 밀렸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비트먼이 초조해하는 듯이 거칠게 소리쳤다.

너무 긴장 안 해도 돼.

결국 이기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굴드 대대가 밀리고 있습니다! 아고르 대대는 버티고 있긴 합니다만 적의 숙련도가 높아 밀어붙일 수가 없습니다!”

 

전령이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보고를 했다.

어깨에 화살이 박혀 있는데 괜찮은 거 맞아?

뽑아내주지.

 

끄아악!”

 

미안하다, 생각보다 깊었던 모양이군.

 

 

반란군 놈들을 상대로 뭘하는 거냐! 2대대, 원호를 시작해라!”

 

천 명 정도 되는 규모의 병력이 새롭게 앞으로 나아갔다.

 

이들이 공격 중인 부대를 도우면서 다시 우리 쪽의 우세를 되찾고 전장은 또다시 도시 안쪽으로 바뀌었다.

 

반란군이라길래 더 손쉬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사기도 높군 그래.”

 

농성전에선 병력이 안으로 쳐들어간 순간부터 단숨에 무너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 일인데 말이야.

 

 

이번엔 정말 끝일 줄 알았는데, 도시 안에서 전투음이 멈추질 않는다.

적이 상당히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모양이다.

 

꽤 성가시군.”

죄송합니다……마을에 불을 질러 불태우는 게 낫겠습니까?”

 

비트먼은 첫 전투에서 멋지게 승리를 거머쥐지 못해서 그런지 살짝 침울해 보였다.

 

글쎄다.”

 

마을 안에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민중도 있을 것이다.

전투에 휘말려 죽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전부 다 불태우는 건 좀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젊은 여자도 있을 거고.

 

 

레오폴트도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제가 보기에 왕국군의 문제는 아닙니다. 저들은 잘 훈련받은 채 행동 중이었고 통솔력도 훌륭한 듯 보입니다. 오히려 적에 대한 평가를 바꿔야 할 상황입니다. 농민 반란병이 아니라 정규군끼리 맞붙는 교전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호오, 재밌잖아.

 

그럼 잠깐 보러 가볼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레오폴트와 세리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반면 이리지나는 밝은 미소를 보였다.

 

호위대랑……가나안 자작, 극피입 남작은 따라와라.”

또 최전선으로……그리고 묘하게 이름이 다릅니다.”

 

세리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호위대한테 명령을 내렸다.

 

드디어 우리가 활약할 때인가!” “나의 애창, 궁피입마루도 기뻐하고 있소!”

 

가난 2인조도 기뻐 보인다.

 

 

? 하드릿 경께서 직접 나서시는 겁니까!?”

 

반면 비트먼이 허둥지둥 내게 물었다.

그래.

 

우리 대장은 늘 이런 사람이니까 말이지!”

선두에 나서는 것이 대장의 역할입니다.”

 

기드가 검을, 크리스토프가 투구와 갑옷, 장갑과 장화를 꼼꼼히 확인하고서 말했다.

 

하지만 총대장이 직접 적진으로 돌격한다니 들어본 경우가……아니, 그러고 보니 하드릿 경의 소문은…….”

 

문제없다.

어차피 지휘는 레오폴트가 맡을 테니까.

마이라도 있으니 내가 있지 않더라도 지휘 능력에는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괜찮아, 잠깐 찔러서 적의 사정을 보고 오는 것뿐이니까.”

 

나는 뽑아든 장검을 어깨 위에 짊어졌다.

역시 도신이 2m가 넘으니 균형 잡기가 힘들군.

 

한쪽만 칼날이 서 있는 게 다행이야.

양날검이었으면 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괴물 같은 검이로군요……그걸 휘두르시는 겁니까?”

그래, 실전에서 쓰는 건 처음이거든.”

 

나는 검을 가볍게 휘둘러 오른손에 쥐고 하늘을 찔렀다.

 

, 가보실까?”

 

 

나를 선두로 호위대가 가난조가 돌입을 시작했다.

놈들의 측근 일부를 제외하면 전원이 말을 타고 있기 때문에 공성전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문을 돌파한 지금이라면 손쉽게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문을 지나는 것과 동시에 전투 소리가 단숨에 커다래졌다.

아무래도 아군은 마을의 절반 정도까지 쳐들어간 듯한데, 그 이후로 쉽사리 진입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잘 보니 마을에 있는 모든 민가가 나무 방패와 말뚝을 세워 바리케이드처럼 쓰고 있었다.

 

마을 안 사람들끼리 협력하고 있는 건가? 이건 그냥 불태워도 어쩔 수 없을 수도 있겠어.”

저길 봐 주십시오. 저게 적의 주력 부대인 듯합니다!”

 

 

세리아가 가리키는 쪽에선 아고르 대대와 적군이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밖에서 보이는 적은 가죽 갑옷과 간이 창밖에 없는 농민병 그 자체였으나 지금 보고 있는 적은 금속 갑옷을 장비한 중장비병이었다.

 

독립파 귀족의 병사가 그대로 참전 중인 듯합니다.”

 

이런 수준이라면 같은 수로 맞붙어도 쉽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심지어 집들도 전부 간이 방어진처럼 쓰이고 있는 중이니.

 

내가 검을 치켜들자 호위대가 삼각형진을 짰다.

 

이리지나도 기쁜 모습으로 창을 마구 휘둘렀다.

조심 안 하면 크리스토프한테 맞는다?

 

돌격해라.”

 

내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모든 병력이 고함을 내지르며 돌격을 시작했다.

 

검과 방패가 맞부딪치는 전투 소리를 말발굽 소리가 지워버렸다.

 

 

비켜라, 비켜!”

 

아군 보병대가 허둥지둥 길을 트자 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적이 보이기 시작한 이후 돌격까지 고작 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표정은 확실히 보였다.

 

기병 돌격이 코앞에 닥치자 느껴지는 두려움.

하지만 놈들의 필사적인 표정은 무너지지 않았다.

포기하기는커녕,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엿보였다.

 

 

이러니 상대하기 버겁지.”

 

이런 표정을 지은 적은 그리 쉽사리 무너지지 않거든.

하지만 나도 질 수는 없다.

 

뚫고 지나간다!”

 

나는 반대로 꽂힌 말뚝 저편에서 창을 내지르는 적병을 향해 크게 위로 치켜든 장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무겁고 단단한 뼈 검은 바닥에 박혀 있던 말뚝을 그대로 후두둑 베어냈고 뒤쪽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적 병사 두 놈도 찢어버렸다.

심지어 반으로 꺾이며 이리저리 튄 나무 파편이 상당한 속도로 주변 적들을 향해 쏟아졌다.

 

곧바로 옆으로 휘두른 검을 위로 치켜 올려 넋이 나간 한 놈의 머리 위에 내리쳤다.

 

히익! ……끄엑!”

 

곧바로 방패를 치켜들어 막은 것까진 좋지만, 내 검의 무게를 생각해 보면 좋지 못한 선택이군.

장검은 적의 방패와 투구를 한꺼번에 쪼개버렸고 그대로 가랑이 끝까지 내려갔다.

 

한 박자 뒤늦게 불쌍한 적 병사가 장작마냥 세로로 쪼개지더니 좌우로 각각 갈라져 쓰러졌다.

 

, 뭐야 이거!” “괴물이다!” “꺄아아아아악!”

 

몸안에 있는 모든 걸 쏟아내고 쓰러진 병사를 보고 주변 적들이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허둥지둥 뒤로 물러나려던 한 사람의 목을 뒤쪽에서 날려버리고 또다른 놈의 등에 검을 꽂은 뒤 내던져버렸다.

이 검은 길이도 상당해서 창처럼 쓰는 것도 가능하군.

 

마지막 한 놈은 주저앉아 소변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목소리로 보아 틀림없는 여자이기에 봐주기로 했다.

 

 

옆을 보니 이리지나와 다른 자들도 날뛰어대는 중이다.

 

받아라, 받아! 흐압!”

 

이리지나는 말뚝째로 날려버리는 짓까진 힘들어도 자기한테 날아오는 창날을 튕겨내고 반대로 자기 창을 찔러넣고 있었다.

가죽 방어구를 입은 사람은 완력에 몸이 꿰뚫렸고 금속 갑옷을 입은 사람은 날카로운 찌르기에 빈틈을 찔려 죽어나갔다.

 

 

우리도 질 수 없소!”

 

가난 2인조는 말 위에서 뛰어내려 걸어서 싸우는 중이다.

 

가나안 자작은 적의 창을 튕겨낸 뒤 거리를 좁히고 적의 목덜미에 검을 꽂아넣었다.

곧바로 검을 뽑아내는 것과 동시에 몸을 회전시켜 주변 적을 위협했다.

그걸 보고 멈춘 적 병사를 향해 그의 측근들이 달려들더니 하나둘씩 죽이기 시작했다.

 

잡았다!”

 

궁피입 남작은 말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동시에 적의 지휘관을 노리고 창을 휘둘렀다.

첫 번째 공격은 막혔으나 막힌 기세를 역으로 이용해 창을 옆구리에 깊숙이 창을 박아넣었다.

 

늘 돈이 부족하다는 인상 말고는 딱히 느끼는 게 없었는데 제법이군.

에이리히의 사람 보는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도 가만 두고 볼 순 없지.”

 

슈바르츠를 타고서 적진 깊숙이 들어가 검을 휘두른다.

 

아아, 정말! 적의 상황을 지켜보는 게 끝 아니었습니까?”

 

허둥지둥 뒤따라 오는 세리아, 이런 곳에서 그런 순진무구한 말을 믿으면 안 되지.

 

적은 민가 안에 틀어박힌 채 현관문은 창병이, 창문에선 활과 보우건을 내밀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저런 비좁은 곳에서 싸울 생각은 없다.

 

나는 슈바르츠의 속도를 유지한 채 검을 위로 치켜들었고 달려가는 모양새 그대로 있는 힘껏 돌로 된 민가를 때렸다.

 

루칠리가 두 동강 났다!” “말도 안 돼, 돌벽을 동강냈다고!?”

 

굉음과 함께 민가의 벽이 박살났다.

안에서 대기 중이던 보우건 병사도 몸통째로 두 동강이 난 듯하다.

 

이 장검은 듀얼 크레이터처럼 날카롭진 않지만 압도적인 강도를 자랑하기 때문에 난폭하게 휘둘러도 문제가 없다.

 

일대일 전투보다는 전장 속 난전에서 더 잘 어울리는 무기라 할 수 있으리라.

 

이놈!”

 

장검의 완성도에 만족하던 사이, 옆에서 내게 누군가 창을 휘둘렀다.

어이쿠, 위험해라.

 

그 창을 가볍게 붙잡아 적을 끌어당기고 팔을 위로 치켜올려 뒤로 내던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호위대한테 맡길 생각이었으나 운 나쁘게 말뚝 위로 떨어져 버린 모양이다.

꼬챙이처럼 변해버린 적병은 한순간 버둥대다 이윽고 말뚝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히이이이익…….” “, 물러나라. 엄청난 게 튀어나왔다!”

 

내 주변에 있던 적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게 방어진 안으로 파고든 모양새가 된 우리는 양측 적의 측면을 찌르는 위치에 서 있었다.

 

 

이거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세리아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깐 맞붙을 생각이었는데 이대로 승기를 거머쥘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장은 기세에 타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야.

 

호위대 쪽 소모는?”

 

기드가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크리스토프 씨가 기절한 게 끝입니다!”

 

손해가 없다니, 갑옷의 효과인 건가?

그렇다면 여기서 끝장을 봐야겠군.

 

우측 적의 측면을 찌른다. 아고르를 도와주러 가보자고.”

 

아군 측 소모가 거의 없던 덕분에 사기도 높다.

 

사투를 벌이는 아고르 대대를 돕기 위해 우리는 다시 돌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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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4살 겨울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아레스 왕의 친구 용살의 영웅

엘프의 중개자

 

영주민 175000명 난민 900

중요 도시 라펜 26000 린트브룸 5000 반드레아 특별 도시 9000

 

동행

레오폴트(참모) 트리스탄(참모) 세리아(부관) 마이라(부장) 이리지나(지휘관)

기드 크리스토프(호위대원) 비트먼(왕국군 병단장)

 

휘하군

왕국군 제4병단 1 5천명

호위대 100 3인조 최측근 100

 

재산: 금화 19599

경험 인수: 406명 자식: 55+555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