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화『움직이는 세계』
왕도 고르도니아 궁전
“폐하, 하드릿 경이 독단으로 벌인 남부 분장이 겨우 진정되었나이다.”
대신 중 한 명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미 들은 얘기이니라. 나도 대외 전쟁은 바라는 바가 아니었노라. 마무리되어 마음이 놓이는구나.”
대신은 한층 더 거세게 얘기했다.
“하오나 전투는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으로 끝났을 뿐이옵니다. 심지어 하드릿 경은 빼앗은 영투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다루고 있다 들었나이다. 이러한 행위는 폐하께서 변경백 작위를 임명받은 귀족으로서 있을 수 없는…….”
왕은 일부러 소리가 들리게끔 컵을 요란하게 탁자 위에 놔두었다.
대신의 말이 멈췄다.
“이미 들었다 하였느니라. 그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냐? 하드릿에게 벌을 주라는 것이냐?”
왕의 분위기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신은 살짝 당혹스러워했다.
팽팽해진 긴장감 때문에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배신을 경계 중인 지금의 왕이라면 절호의 기회라 생각해 따지고 든 것이었건만……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 물러날 수는 없지!’
주변에는 중신들이 몇 명이나 있다.
자기가 하드릿 변경백의 험담을 했다는 사실은 순식간에 퍼질 것이다.
여기서 아무런 소득도 보지 못하고 끝냈다간 전귀라는 별명으로 두려움을 사고 있는 남자의 복수가 기다린다.
“아무리 전쟁의 영웅, 무적의 맹장이라 하여도 왕권을 무시하는 것은 있어선 안 되는 일이옵니다. 무언가 벌을 주어야 할 따름이라고 아뢰옵나이다.”
왕은 몸을 내밀고서 가볍게 웃었다.
“하여, 어떠한?”
대신은 왕이 웃은 걸 보고 한층 가벼운 분위기로 얘기했다.
“변경백은 광활하고 비옥한 토지를 소유 중이옵니다. 그 토지 중 다수를 몰수하여 왕령으로 삼은 뒤 폐하께 더욱 충실한 자들에게 조금씩 배분하면 권위 또한 올라갈 것이옵니다.”
에이리히가 무심결에 이견을 토할 뻔했으나, 왕의 표정을 보고 돌아섰다.
왕의 미소는 결코 눈앞에 있는 남자를 좋게 보고 있지 않았다.
“흐으음……그런데 한 번 가정을 해보자꾸나.”
“예?”
왕이 갑작스레 화제를 바꾼 걸 보고 대신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끊었다.
“어느 곳에 도둑이 들었다. 이 녀석은 잘 숨어있었다만, 언제 붙잡힐지 몰라 두려워하기도 하였느니라.”
“예, 예에…….”
“이 녀석이 안심하려면 어쩌면 좋겠느냐? 쥐구멍 속에라도 숨어있으면 될 것 같으냐?”
도통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왕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대신은 가볍게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계속 숨어있더라도 언젠가는 들통이 나는 법이옵니다. 그보다는 죄를 남에게…….”
거기까지 말하던 대신은 할말을 잃어버렸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왜 그러느냐? 끝까지 말해보라. ……어쩔 수 없구나, 내가 대신 말해 주도록 하마.”
왕은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왕좌의 뒤쪽에서 필두 정보관인 레베카가 곧장 종이 뭉치를 건넸다.
왕은 그 종이 뭉치를 펄럭펄럭 넘기고서 대신을 노려보았다.
“예를 들어 새롭게 개척한 장원을 보고하지 않게끔 세금 징수관한테 금화 30닢을 뇌물로 준 죄인이……조사의 낌새를 눈치 채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정보를 늘어놓아 더욱 큰 죄인을 만들려 한다거나.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그……그것은…….”
끝났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의 생각이 일치했다.
“이 배신자를 데리고 가라!”
대신은 저항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연행당했다.
그가 이용하려고 했던 왕의 심리, 하지만 상황이 반대로 굴러가버린 이상 변명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정보관, 수고 많았노라.”
“황송할 따름이옵나이다.”
레베카는 왕에게 꾸벅 절을 하고 다시 왕좌 뒤쪽으로 물러갔다.
배신자가 쫓겨난 개운한 전개,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하드릿은 성미가 급하고 힘에 기대는 부분도 있느니라. 하지만 옹졸하게 무언가를 숨길 수 있는 남자는 아니니라.”
왕의 말을 듣고서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왕이 들으면 화가 날만한 정보를 어느 정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정보를 내밀어도 그녀 또한 의심스러운 시선을 받게 될 게 뻔하다.
‘지금은……잠자코 흘려보내는 게 정답이야.’
그렇게 왕은 그 자리를 해산했다.
“군무총감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부패한 구석이 남아있다. 철저하게 뿌리 뽑아야지.”
에이리히는 교류가 있는 신귀족 중 한 명과 대화를 나누면서 알현실을 뒤로 했다.
케네스 파벌의 문관이나 그 어느 파벌에도 속해있지 않은 자들도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에이리히의 집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다른 사람의 눈과 귀가 사라졌다.
“군무총감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금화 300닢 정도밖에 안 되는 속임수다. 심지어 늘어난 분량을 보고하지 않은 게 전부야. 이 정도로 대신을 처형했다간 인재가 하나도 안 남을 거다.”
“그 남자는 음침하고 잔꾀를 부리는, 영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이긴 했습니다만…….”
“하지만 일은 그럭저럭 잘 하는 편이었지. 게다가 놈은 가랑이가 콩알만한 겁쟁이 녀석이다. 에둘러 위협하면 두 번 다시 나쁜 짓을 저지를 놈이 아니야. ……폐하께서도 그걸 알고서 대신직을 맡겼을 텐데.”
“예전의 폐하와는 뭔가 사고 방식이 바뀌신 것 같습니다.”
에이리히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왕은 능력이 있는 자들한테도 시덥잖은 죄나 변명거리에도 투옥하는 사람이 됐어. 청렴결백한 귀족은 욕심이 없는 상인과 비슷할 정도로 찾기 힘든데 말이지.’
“우리 파벌에서도 루드니와 알라그가 투옥당했습니다. 군의 인사 평가에 참견을 하고 지인의 출세를 도모했다……라는 용의입니다.”
“몹쓸 짓이지. 하지만 고작 그게 전부. 몇천명 규모의 사령관은 전부 내가 보고 있다. ……기껏해야 100명 정도 되는 지휘관일 뿐이니 불러내서 호통이라도 한 번 치면 끝났을 것을.”
“한편, 정무총감……아니, 케네스의 파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으로 부른 남성은 에이리히의 안색을 엿보고서 말을 고쳤다.
“저쪽은 문관이 주체니까 말이지. 뇌물이나 재산 은폐 쪽에는 더 끼어들 여지가 많아. 놈이 고생하는 표정이 눈에 선하군.”
에이리히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부하도 웃었으나, 한숨을 내쉬는 것과 동시에 웃음기가 가시고 말았다.
“하지만 이러한 밀고가 자주 일어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해. 언젠가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거다.”
궁정 귀족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 경쟁자를 함정에 빠트리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요즘엔 그게 너무 자주 일어나는 데다가 같은 파벌 안에서조차 밀고가 일어나는 중이다.
“정보관이 활약하면서 사소한 소문까지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전처럼 나 아니면 케네스, 혹은 중립……그런 단순한 얘기가 아니게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군.”
에이리히는 요즘 새로 이중으로 바꾼 창밖을 바라보았다.
표면상의 이유는 만에 하나라도 타국 간첩이 최고 기밀 정보를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보관이 창 밖에서 귀를 기울여도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끔 하기 위한 조치였다.
“나도 그 녀석처럼 영지에서 마음대로 살고 싶어지는군 그래. 미녀를 불러모아 매일밤 난교라…….”
“갑자기 그런 짓을 했다간 반란 혐의를 뒤집어쓰실지도 모르지요.”
에이리히의 기다란 한숨소리가 다시 들렸다.
왕은 직무를 끝마치고 식사를 하러 자리에 앉았다.
지금까지는 회식을 하지 않는 이상 오직 홀로 식사를 할 뿐이었으나, 요즘엔 다르다.
“로사리오,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 모아왔노라. 얼마든지 맛보거라.”
“황송하옵나이다, 폐하.”
[로사리오]. 왕이 데리고 다니는 유일한 여자로 절대적인 총애를 받는 여자이기도 했다.
본디 애첩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식사 동석부터 혼욕, 밤시중까지 왕의 사생활은 언제나 그녀와 함께하는 중이다.
요리를 나눠주려던 하인을 손짓으로 제지하고 왕은 자기가 직접 여자의 그릇에 요리를 놔두었다.
하인들은 왕이 마치 부하라도 된 것 같은 흉내를 냈다는 사실에 얼굴을 마주보았으나,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감사히 받겠나이다, 폐하.”
로사리오는 스프에 손을 대려다가 미끄러져 스프를 흘리고 말았다.
스프가 완전히 뒤집어져 왕이 입은 옷까지 더러워지고 말았다.
여자가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와중, 주변 하인들은 뒤따를 호통 소리에 대비해 어깨를 움츠렸다.
같은 짓을 하인이 했다간 그 자리에서 죽음을 선고받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왕은 반대로 표정을 풀면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하여간 칠칠맞은 여자로고. 다친 덴 없느냐?”
“예, 어찌 사죄를 드리면……앗.”
왕은 로사리오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쩔 수 없는 것, 너는 몸재주도 없고 머리도 나쁘지 않느냐.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여자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어리석은 네가 무슨 짓을 하여도 화내지 않을 것이니라. 너는 그저 내 말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어 줄 테니.”
“영광이나이다, 폐하. 멍청하고 어리석은 여자이옵나이다만 오랫동안 길러 주시옵소서.”
왕에게 안긴 채 눈을 감는 로사리오의 눈동자에는 역시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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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 주변 제국군 진지 겨울의 시작
눈은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뒤로부터는 거의 그칠 줄을 몰랐다.
모든 것을 하얗게 물들이고 천천히 쌓이기 시작한다.
제국 사령관들은 다들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연방의 겨울이 춥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습니다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사실상 전노는 무용지물입니다. 반쯤 헐벗은 그놈들은 추위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본국병 중에서도 너무 추운 나머지 몸 상태가 안 좋아진 자들이 속출 중입니다.”
연방의 겨울이 춥다는 정보는 있었다.
따라서 제국 본대에선 거의 쓸 필요가 없는 모피도 정규병이 쓸 분량은 갖춰 왔었고 모닥불에 쓸 장작도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속주병이나 전노 같은 경우엔 그냥 버티라고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하지만 전노 놈들은 걷어차이든 때리든 추위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몸이 약한 자들 중에선 목숨을 잃는 자들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병사들 사이에서 화상……포로한테 물어보니 동상……에 걸리는 사람이 속출 중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뿜는 무언의 압력을 느끼고 한 남자가 걸어나왔다.
“다프네스 각하, 백도 공략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현 상황에선 제대로 된 전쟁을 벌일 수 없습니다. 일단 남쪽으로 후퇴한 뒤, 겨울이 지난 뒤에 다시 침공을…….”
“멍청한 것!!”
다프네스가 호통을 쳤다.
“연방은 우리 손이 닿지 않는 북부와 동부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전력을 회복하는 중이다! 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간 놈들은 모든 준비를 끝낼 테지. 그렇게 된 이후에 백도를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것은 그렇습니다만…….”
참모와 사령관들이 머리를 싸맸다.
끊임없이 이어진 공격도 결국 백도의 수비를 돌파하는 데엔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추위까지 닥친 지금, 백도를 함락시키는 건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다프네스의 말도 일리 있었다.
제국이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던 건 첫 전투의 승리 이후 그 기세를 그대로 이어왔기에 가능한 것이다.
태세를 가다듬고 다시 싸우기 시작하면 자기 영토에서 싸우는 연방이 힘을 되찾기 시작할 게 분명하다.
‘시간이 지나면 적한테 유리…….’
‘겨울이 더 혹독해져도 결국 적한테 유리…….’
“제군들이 하는 말도 이해는 간다만, 공격을 늦췄다간 적에게만 좋은 꼴이다. 예정대로 지금부터 공격을 실시한다!”
““옛!””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괴로워지리란 건 명백하다.
공격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출격 준비다―――!!”
“이놈들, 얼른 일어서라! 움직이기라도 하면 조금은 따뜻해질 거다!”
지휘관이 소리치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전노들을 억지로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부대는 명령을 들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언덕 위, 가장 추운 바람이 부는 위치에 진을 친 놈들이었다.
“네놈들, 명령 불복종은 처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떨지 말고 일어서라!”
거기까지 말하다 지휘관은 이빨이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떨고 있지 않잖아. 그럼 어서…….”
그는 채찍을 들어올리고 놈들에게 다가갔으나……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이, 이놈들 전부 다 죽은 건가……이 무슨…….”
불쌍한 전노들은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고 땅바닥에 판 구멍 안에 몸을 비집고 들어가 어떻게든 바람을 피하려던 자세 그대로 추위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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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도중 ???
“힘들어요, 비좁아요!!”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주변이 온통 눈 때문에 새하얘진 광경 속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천막 마차 안에 한 살찐 부인이 대자로 누워 큰 소리로 힘들다며 징징대고 있었다.
그녀들은 마차를 타기까지 상당한 거리를 직접 걸어왔으나 그것은 다른 승객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기를 끌어안은 종자 여자가 열심히 사과 중이었다.
“뭐, 확실히 방해되긴 하는데…….”
“그리고 당신들이 타고 나서부터 마차 속도도 상당히 줄어들었거든. 대체 얼마나 무거운 거냐고.”
부인은 체력이 다 떨어진 건지 대자로 뻗어 잠들어 버렸다.
무신경하게 뻗어나온 손발은 비좁은 마차 안에선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다른 손님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모님! 이제 제발……앗!”
종자 여자가 부인을 흔들자 동시에 커다란 방귀 소리가 들리더니 마차 안에 악취가 퍼졌다.
승객들의 표정이 한층 더 사나워졌다.
“……죄송합니다.”
“평소 같으면 바로 내쫓을 참인데 말이지…….”
한 남자가 코를 골고 있는 부인한테 천천히 다가갔다.
“뭐, 이용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니까.”
또다른 남자가 윗옷을 벗어던지고 부인한테 다가갔다.
다른 승객들도 부인을 둘러싸듯이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부인과 종자 여자는 힘든 능욕을……당하지 않았다.
“따뜻하구만.”
“그래, 윗옷도 필요없을 수준이야.”
“이 녀석, 몸에서 전체적으로 증기가 나오고 있잖아?”
“낡아빠진 마차가 난방 기구가 딸린 고급 마차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약간 불편한 것 정도는 참을 수 있지.”
바람막이 천막이 달려 있다고는 해도 원래 이런 겨울에는 몸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견뎌야 한다.
궂은 길을 달려가는 마차 안에선 서로 몸을 끌어안아 어떻게든 버텨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금 마차 안은 마치 봄날의 날씨 같은, 하지만 동시에 살짝 눅눅한 온기가 유지되는 중이다.
그리고 그 온기의 중심에 있는 건 바닥에 누워 땀을 흘리는 살찐 부인이었다.
“사모님, 매일 쓸데없이 길러왔던 지방이 우리를 돕고 있답니다.”
“더, 더워요오……땀이 멎질 않아요……부히이…….”
여자 두 사람과 아기 한 명은 동쪽으로 향한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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