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화『도둑 소동』
심야 새 저택
달이 없는 밤, 새까만 로브를 머리까지 뒤집어쓴 남녀가 하드릿 새 저택 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들은 저택의 측면, 사람이 지나갈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경사진 면을 기어올라온 것이다.
두 사람은 경사면을 다 기어오른 뒤 호흡을 가다듬고 눈앞에 펼쳐진 저택의 벽……높이 총 4m는 되어보이는 그것에게 달라붙었다.
“드로우, 준비는 됐지?”
“물론이지. 그건 그렇고 참 대단한 솜씨구만. 역시 고양이발 트티파 님이라 이건가?”
드로우라고 불린 거구 남성의 목소리에 트티파라고 불린 작은 여자가 불쾌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왼눈을 가린 검은 안대를 가볍게 고쳐썼다.
“쓸데없는 소리 마. 하드릿 저택 안에 침입하는 거니까 실수 한 번이라도 했다간 우리 둘 다 교수대 행이야.”
여자는 마른 잎을 문지르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면서 커다란 돌이 박힌 잿빛 밧줄을 드로우에게 건넸다.
“괜찮다니까. 새 저택은 아직 쓰지 않고 있으니까 경비병은 별 거 없을 거야. 그런 데에 산더미 같은 금화를 쌓아뒀으니까 이건 영주님이 우리한테 준 거나 마찬가지다 이거지.”
드로우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안 들리게끔 천천히 커다란 돌을 빙빙 돌리더니 저택 벽을 넘겨 안쪽으로 던져넣었다.
쿵, 하고 안뜰에 돌이 떨어지는 소리는 조용한 한밤중이니만큼 한층 더 크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한동안 숨을 죽이고 아무 반응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 몸을 일으켰다.
“가자.”
트티파는 밧줄을 붓잡고서 능숙하게 벽을 타기 시작했다.
“진짜 몸놀림 한 번 끝내주게 가볍구만…….”
아무리 안쪽에 던진 돌이 무겁다고는 해도 몇십kg 정도 되는 거대한 돌을 던질 수 있는 건 아니다.
트티파의 체구가 작다고는 해도 평범하게 벽을 타면 돌이 움직여서 떨어질 게 뻔하다.
그녀는 두 발을 다리에 살짝 벌어진 틈 사이에 걸고서 최대한 체중을 줄이며 벽을 타는 중이다.
이런 작업에 익숙하다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쉿!”
그때, 횃불을 손에 쥔 두 명의 경비병이 걸어왔다.
드로우는 다시 땅바닥에 엎드렸고 트티파는 로브를 재빠르게 끌어당겨 튕겨나가지 않게끔 벽으로 잡아당겼다.
“간 건가…….”
경비병들은 다음 휴식 시간 얘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멀어져 갔다.
벽과 같은 색으로 물들인 로브는 딱 달라붙어 있으면 밤중엔 어지간해서 발견되지 않는다.
“……됐어.”
트티파는 정원 근처에 있는 나무에 로프를 걸고서 작게 신호를 보냈다.
그걸 확인한 드로우가 로프를 올라타기 시작했다.
근육질의 사내는 트티파처럼 무게추만 가지고 체중을 전부 버틸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수순을 밟은 것이다.
“끄윽! 흡!”
서투르게 힘으로만 벽을 올라가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트티파는 한숨을 내쉬었다.
‘드로우는 완전히 걸리적거리네……어지간히 잘 하는 게 아니면 들키겠어’
남자가 은밀 행동에 적합하지 않다는 건 누가 봐도 명백했다.
하지만 가벼운 몸놀림이 특기인만큼 체구도 작고 몸무게도 가벼운 그녀는 로프를 짊어지고 절벽 같은 경사면을 벽을 타거나 무게추가 달린 돌을 던지기엔 너무 힘이 모자라다.
물론 맨 처음엔 드로우가 벽 앞에서 대기, 그녀만 혼자서 잠입할 걸 상정했으나…….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도 되는데.”
“헤헤헤, 들고 튀려는 수법에는 안 당한다고.”
들고 튀는 수법을 경계한 드로우가 계속 따라오겠다며 집요하게 고집을 부린 것이다.
이들은 신뢰할 수 있는 동료라기보다는 뒤쪽 세계를 통해 알게 된 지인으로 이번 작업을 위해서만 손을 잡은 느낌이었다.
따라서 누구 하나가 배신하지 않는지 조심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또한 이번 목표물이 대량의 금화인 이상, 힘없는 그녀 혼자서는 들 수 있는 양 자체가 크지 않다.
힘이 좋은 남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위험도에 비해 크게 벌기가 힘들다.
“작업이 끝나면 뒤쪽에 있는 배수로로 뛰어드는 거야. 시내 수로를 통해 시외로 나갈 수 있어. 도중에 경비병한테 들키면 바로 도망가고, 쓸데없이 죽이는 건 논외야.”
“이미 귀가 닳도록 들었수다. 얼른 가자고.”
드로우는 제대로 저택 안에 침입한 사실에 콧김을 거칠게 내뿜고 있었다.
지금부터가 진짜 큰일인데, 하고 트티파는 머리가 아파왔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다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심야이긴 하지만 경비병의 숫자는 적지 않다.
저 멀리서도 횃불의 빛이 몇 개 정도 보였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은 경계병의 위치와 숫자를 정확히 가르쳐 주었다.
“가자.”
그녀는 안대를 풀고서 감고 있던 왼쪽 눈을 떴다.
사흘 전부터 밤낮 구분없이 안대로 가리고 있던 눈은 빛이 없는 암흑 속에서도 저 멀리까지 둘러보는 게 가능하다.
미끄러지듯이 심야 속을 질주하는 트티파는 일직선으로 저택 뒷문으로 향했다.
저택의 커다란 구조는 건설을 맡은 직공 중 한 명에게 술을 먹이고서 이미 정보를 받아놓았다.
뒷문 앞에는 당연히 경비병이 있다……하지만 한 사람뿐이다.
보물 창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주가 살고 있지 않은 새 저택의 경비 수준은 그렇게까지 높지 않다.
이미 받은 정보대로였다.
그녀는 병사가 쥐고 있는 횃불이 자신을 밝히기 두 발 정도 전에 멈춰 서고는 품 안에서 생쥐 한 마리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자기들이 있는 곳과는 반대편으로 던졌다.
갑자기 땅바닥에 떨어진 생쥐는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트렸고 낙엽을 뒤섞었다.
“누구냐!”
뒷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는 짤막하게 소리치고서 횃불을 움직였고 생쥐가 날뛰는 풀밭으로 다가갔다.
동시에 트티파도 달려나갔다.
그녀는 병사의 발소리에 자기 발소리를 겹치게 만들어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도 달려갈 수 있었다.
이게 그녀가 고양이발이라 불리는 근간이었다.
그녀는 문에 다가가자마자 가느다란 바늘을 꺼내 자물쇠 구멍을 헤집었다.
“여기 근처에서 들렸는데……젠장, 어둡잖아.”
병사가 소리가 들린 풀밭을 뒤적거리고 있던 찰나 드로우도 서투른 발놀림으로 문까지 다가갔다.
남자가 문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이 작업을 끝내는 데에 고작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쳇, 생쥐잖아!”
경비병이 욕짓거리를 내뱉으면서 돌아왔을 땐 두 사람은 이미 저택 안으로 침입한 상태였다.
신발을 천으로 만든 것으로 갈아신은 뒤 돌로 된 복도를 소리 없이 달려간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만큼 저택 안은 쌀쌀하다.
경비병 숫자도 바깥보다 적은 듯했다.
“이미 우리 거라고 봐야겠구만.”
“……보물 창고가 가장 강적이야. 애초에 관련된 인간이 다들 유명인들뿐이라 술기운으로 물어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거든. 직접 부딪혀 봐야 알아.”
“네 자물쇠 따기 솜씨라면 순식간이라니까. 게다가 여차하면 내 검으로 문을 통째로…….”
드로우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드는 걸 보고 트티파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도둑질을 하는데 커다란 검을 갖고 오는 멍청이가 세상 천지에 어딨겠냐구)
대조적으로 그녀는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고 무게도 거의 없는 예리하고 작은 나이프 하나만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저게 보물 창고, 병사가……넷!”
두 사람은 무심결에 얼굴을 찌푸렸다.
(기습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게 둘……한 명은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고 시간 차이로 쓰러트린다 해도 네 명 동시엔 힘들겠네)
한 명이라도 처리를 못하고 소리라도 질렀다간 경비병들이 순식간에 모일 것이다.
“조금 지켜보자. 한 명이 화장실이라도 가면 기회는…….”
트티파는 근처 방 안에 숨어 기회를 기다리려고 했으나 금화를 눈앞에 둔 드로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아니, 넷이면 어떻게든 할 수 있어! 내가 옛날에 용병을 했다는 얘기는 이미 했었잖아!”
“머, 멍청아!”
검을 뽑아들고 달려가는 드로우.
트티파는 말리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도 몸을 낮추고 달려나갔다.
“응……? 뭐, 뭐냐 넌, 끄엑!”
암흑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트티파의 모습에 병사가 깜짝 놀라면서 허둥지둥 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녀의 발차기가 가랑이에 꽂히고는 병사는 신음하며 뒤집어졌다.
“무슨……끄악!”
드로우도 검을 뽑지 못한 병사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졸도시켰다.
“이 자식! 우와앗!”
세 번째 병사는 검을 뽑으려다가 횃불을 떨어트렸다.
밝은 데에 익숙해진 눈은 암흑 속을 뛰어다니는 트티파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고 결국 회전 발차기가 목덜미에 박혀 기절하고 말았다.
“제기랄! 도망쳤잖아!”
네 번째 병사는 뒤를 돌아보고는 미친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물론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다.
가만 놔뒀다간 금세 저택 안에 있는 병사가 모일 게 분명하다.
“안 돼! 드로우!!”
“이 새끼가아아!!”
드로우는 병사를 붙잡으려 했으나 닿지 않았고 결국 검을 치켜올려 등 쪽을 베어냈다.
“끄아아아아악!!”
어깻죽지부터 깊숙한 상처를 입은 병사는 단말마를 내지르며 제자리에 쓰러졌다.
아무리 봐도 치명상이다.
“왜 죽이는 거야!?”
“시끄러워! 얼른 자물쇠나 풀어!”
비명소리가 울려퍼지자 저택 밖에 있는 경비병도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비명소리, 그것도 고작 한번뿐이었다 보니 정확한 위치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얼른 열어! 아니면 이대로 아무것도 못 얻고 도망자 신세가 될 거냐!?”
“……너 같은 걸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트티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보물 창고 자물쇠에 바늘을 쑤셔넣었다.
드로우는 그 옆에서 짜증이 난다는 듯이 걸어다니는 중이다.
“아직 멀었어!?”
“뒷문 자물쇠 같은 거랑 똑같이 보면 안 돼! 이건……스프링식 10단 이중 장치야. 시간이 걸린다구!”
“비명소리는 저택 안에서 들린 거 아닌가!?”
“말도 안 돼, 입구 쪽엔 이상 없었다고!”
“저거 봐! 로프가 걸려있잖아! 칩입자가 있다!!”
뒷문에서 병사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은 한층 더 초조해졌다.
“얼른 좀 하라고!!”
“재촉하지 마! 첫 번째 건 열었어! 두 번째…….”
바늘을 꽂은 순간 트티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첫 번재 거랑 구조가 전혀 달라! 완전히 다른 방식의 자물쇠야!’
복도를 달려오는 병사의 발소리가 한층 더 트티파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영주의 저택에 침입한 뒤 병사까지 죽인 상황이다.
붙잡히면 끝장이다.
“이제 글렀어, 늦었다구! 도망치자.”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여기까지 온 이상 그렇게는…….”
“침입자인가.”
소리를 치려던 드로우가 갑자기 트티파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
시선을 쫓아가니 190cm 정도 되는 거구의 남성 드로우가 비현실적으로 날아가더니 복도 끝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논나, 카라. 내 뒤에 있어.”
““네!””
“흐에?”
그녀의 앞에 서 있는 건 근육 덩어리였다.
키 자체는 드로우와 별반 차이 없지만 근육의 부피가 다르다.
140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트티파 입장에선 고기벽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 알몸?”
남자는 맨손, 아니 정확히는 알몸이었다.
드로우는 주먹질 한방에 복도 끝까지 날아가버린 듯했다.
잘 보니 남자 뒤쪽에 있는 여자 두 명도 반라 상태, 그리고 보물 창고 근처에 있던 방문이 열려 있었다.
아무래도 한밤중 저택 안에서 정사를 벌이고 있던 모양이다.
“크윽!”
하지만 그런 건 자기 운명과는 상관없다.
트티파는 나이프를 뽑아들었으나 눈앞에 있는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녀석, 강해……제대로 맞붙으면 못 이겨!’
그럼에도 트티파에겐 승산이 있었다.
‘근육질 남자는 힘이 세긴 해도 속도는 느릴 거야. 드로우가 그랬잖아. 위협한 다음에 창문을 깨고 도망치는 거야. 높이는 2m……나라면 멀쩡히 탈출할 수 있어!’
전략은 정해졌다.
“야압!”
트티파는 힘차게 소리를 내지르며 나이프를 위로 치켜든 뒤 창문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근육의 벽과 부딪쳐서 뒤집어졌다.
“어, 어째서!?”
실수는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도약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것보다 더 빨랐을 뿐이다.
“……도둑질에 살인까지 하다니.”
남자는 쓰러져 있는 병사를 보고 어깨를 움츠렸다.
트티파는 나이프를 역수로 고쳐쥐었다.
‘다리를 베어내고서 창문 밖으로 도망치는 거야. 다행히 상대방은 맨손에 몸집도 커, 키가 작은 내가 몸을 웅크리면 발차기밖에 닿지 않아. 게다가 알몸이니까 작은 나이프라도 공격은 통할 거야.’
“저항하지 마라. 얌전히 안 있으면 아무리 여자라고 해도 다칠 수…….”
“하압!”
기합 소리와 동시에 트티파는 몸을 낮추고 돌진했다.
곧바로 주변 시야가 어두워졌다.
‘해냈어, 깜짝 놀라서 뒤에 있던 여자가 횃불을 떨어트렸잖아! 이제 내가 유리해.’
남자는 한 순간 트티파를 시야에서 놓쳤다.
여자는 기회라 생각해 크게 오른쪽으로 파고들어 허벅지를 노렸으나…….
찰싹, 하고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의 머리에 충격이 느껴졌다.
‘얻어맞았어! 분명 다리는 안 올라왔는데……어째서…….’
카운터로 공격을 맞은 트티파는 한 순간 의식이 날아가 균형을 무너트리고 벽에 부딪혔다.
그 틈을 노리고 남자 뒤쪽에 숨어 있던 여자가 뛰쳐나왔다.
“나이프 잡았어! 논나, 위에 올라타!”
“에, 에잇!”
누군가가 나이프를 발로 걷어차더니 자기 위에 여자 두 사람이 올라탔다.
거대한 가슴이 트티파의 머리를 억눌렀다.
이렇게 된 이상 힘이 없는 트티파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제 여기까지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고 힘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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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나, 위에 올라타!”
“에, 에잇!”
쓰러진 침입자 위에 논나와 카라가 올라타고는 움직임을 막았다.
잘 보니 피피와 비슷할 정도로 체구가 작은 여자다.
혹시 몰라 두 손을 붙잡아 억누르고 있긴 하지만 이미 저항할 마음은 없는 듯했다.
“재빠른 여자야. 세리아보다 더 빨라.”
논나가 횃불을 떨어트리고 시야가 사라진 한 순간, 나는 이 녀석을 놓쳤다.
뒤로 돌아가는 기척이 느껴져 허둥지둥 몸을 비틀었는데, 그때 육봉에 무언가 단단한 물체가 부딪쳤다.
카라가 허둥지둥 횃불을 바닥에서 주워보니 여자는 벽에 부딪힌 채 뒤집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육봉으로 여자를 때려버린 모양이다.
사정까지 얼마 안 남은 상태라 우뚝 솟아있던 게 좋게 굴러갔군.
하지만 아무리 체구가 작은 여자라고는 해도 날려버릴 줄이야……내 육봉이지만 무서울 지경이다.
“보물 창고에 금화를 넣자마자 도둑이라…….”
“경비병은 뭘 하고 있던 건가요!”
논나는 무척이나 화가 난 듯했다.
그 부분은 나중에 마이라가 잔뜩 시정을 하겠군.
“우리가 있던 게 운이 좋았군.”
“맞아, 내 덕분이라구.”
카라가 가슴을 폈다.
나와 논나, 카라는 새 저택의 방 안에서 정사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방이라고는 해도 침대까지 포함해서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야외에서 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다.
소리를 죽이고 몸을 섞으며 병사한테 들킬지도 모른다는 스릴을 맛보고 있던 것이다.
이걸 제안한 건 당연히 카라다.
놀이를 즐기는 사이 갑자기 범상치 않은 비명소리가 들려 허겁지겁 뛰쳐나온 것이다.
“뭐가 그렇게 자랑스럽다는 건지, 그냥 변태인 거잖아요.”
“너도 같이 즐겼으면서!”
말다툼을 벌이는 두 사람, 밑에 깔린 여자는 우리의 변태 행위 때문에 붙잡혔다는 걸 깨닫고 분하다는 듯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침입자――! 여, 영주님!?”
이제야 경비병이 찾아왔다.
“너무 늦어! 침입자는 이 여자랑 남자가 하나 더 있다. 찾아내라.”
내가 날려버린 남자의 모습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도망친 모양이군.
“그리고 이 녀석들을 치료해라.”
보물 창고 앞을 나뒹구는 네 사람.
그 중에 등이 베인 남자는 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 녀석은 못 살아남겠군요.”
괜찮아, 방법이 있으니까.
다음날 아침.
“몸 상태는 어떻지?”
“저도 믿기질 않습니다! 영주님의…….”
계속해서 날 칭송하려던 병사를 손으로 제지했다.
등이 베인 병사의 상처……누가 봐도 치명상이었던 그것을 깔끔하게 치료한 건 린트브룸에서 갖고 온 전리품, 드래곤의 피였다.
병사는 내 여자는 아니지만 새 저택에서 바로 사람이 죽는 것도 기분이 영 찝찝하니까 말이지.
아직 양도 충분하니 쪼잔하게 굴 필요는 없다.
소중한 여자들한테 쓰기 전에 부작용이 없는지 시험해 본다는 의미도 있었다.
“자, 마이라랑 세리아가 부르더군.”
“으…….”
경비병들이 일제히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크나큰 질타, 경우에 따라선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명백했다.
재밌어 보이니 슬쩍 보러 가야겠군.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지?”
마이라가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녀 앞에 서 있는 건 새 저택의 경비 임무를 맡고 있던 20명의 병사다.
“이 멍청한 놈들이!!”
움찔, 하고 경비병들의 어깨가 치켜올라갔다.
세리아가 수갑, 족쇄를 채우고 정좌시키고 있는 침입자, 트티파라고 하는 여자를 가볍게 밀쳤다.
여자는 이미 포기한 건지 범행 내용을 자백했다.
“……서쪽 경사면에서 침입했습니다. 바깥쪽에 로프를 걸어서.”
서쪽 경비 담당이었던 경비병의 어깨가 떨렸다.
“……뒷문에서 저택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생쥐를 던져서 그 사이에 자물쇠를 따서…….”
모든 이들의 시선이 뒷문을 감시하던 병사에게 쏠렸다.
“고, 고작 10초 정도 눈을 뗐을 뿐인데 자물쇠까지……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병사는 변명을 하려다 마이라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원래 같으면 너희는 전부 다 해고다!”
쾅, 하고 마이라가 발을 굴렀다.
“히익!” “저는 올해 막 결혼한 참인데…….” “집을 사서…….” “조금만 더 하면 창부를 제 걸로…….”
“……하지만 하드릿 경의 온정으로 그건 봐주도록 하지. 단, 서쪽 경비병과 뒷문 경비, 놈들에게 당한 보물 창고 담당인 너희는 봄까지 라펜 도시벽 경비 임무를 실시한다!”
“으으으…….”
찬 바람이 들이닥치는 겨울의 도시벽 경비는 따뜻한 저택 경비 임무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하지만 불평을 늘어놓을 순 없으리라.
“다른 놈들도 비명소리가 들린 뒤에 달려오는 속도가 너무 느려! 심지어 일당 중 하나를 놓치다니 기강이 해이해졌군! 전원 감봉!!”
작은 한숨소리도 모이면 커다래진다.
그렇다 해도 저택에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큰 실수이니 불평할 순 없겠지.
모든 이들의 불만은 실제로 서쪽과 뒷문을 경계 중이던 병사들한테 쏠렸다.
이걸 가만히 놔뒀다간 내부 균열을 발생시킬 테고 경비병의 불만이 우리 쪽한테 돌아서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다음 수를 쓰기로 했다.
나는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한 뒤 경비병들 앞으로 걸어나왔다.
병사들이 눈에 띄게 떨기 시작했다.
딱히 화난 건 아닌데. 평소부터 내가 호통을 친 적도 없을 거고 말이야.
“너희 급료는 겨울 동안 월급 금화 2닢으로 감봉이다. 도시벽 경비 임무를 맡고 있던 사람은 금화 1닢.”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일 텐데 마이라 때와 다르게 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딱히 한숨 쉰다고 해서 죽이진 않는다고.
애초에 저택 경비는 도시 경비병보다 급료는 훨씬 더 높다.
금화 2닢으로 줄이는 건 상당한 감봉이지만 뭐 사치만 안 부리면 괜찮은 수준이다.
반면 금화 한 닢은 상당히 빡빡하다. 가족까지 있으면 먹는 것만 해도 상당히 힘들어진다.
아내랑 자식한테 꽤 집요하게 한소리 들을 테지만 봄까지는 버티라고.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그리고 너희에겐 한 가지 역할을 추가로 부여하겠다.”
아직도 뭔가 더 남은 거냐며 침울해하는 표정.
“이 여자, 내 저택에 침입하고 병사까지 베어버린 이상 당연하 사형이어야 정상이다.”
병사들은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트티파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마이라와 세리아 둘만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 여자는 트티파라고 하는 유명한 도둑이라더군. 너희가 앞으로 침입자를 막아내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이 여자한테서 많이 얻어낼 수 있을 거다.”
침입자를 막아내는 방법은 침입을 잘하는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이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병사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그냥 감봉만 당하는 건 너희도 불쌍하니까……봐라, 이 녀석은 몸집이 작긴 해도 꽤 미인이지 않나?”
“엥?”
예상치 못한 전개에 트티파가 놀란듯이 소리쳤다.
좋아, 여기서 말하면 되겠군.
“네 형벌이다! 봄이 될 때까지 앞으로 3개월 동안 여기 있는 스무 명의 아내가 되어서 밤상대를 맡도록!”
“뭐어――!?”
병사와 여자 모두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면서 점차 병사들의 표정이 욕정으로 물들었고 트티파는 점점 새파랗게 질렸다.
“원래 같으면 사형이니까 더 낫긴 하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하지만 아내라니, 그건!”
“아내라는 건……우리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거지?” “이 작은 여자한테 우리가 전부 다……괜찮으려나?”
“이 자식 때문에 감봉된 거잖아. 벌을…….” “크흑, 드디어 소인도 동정 졸업을…….”
20명이 자신을 핥는 듯한 시선을 내비치자 트티파는 뒤로 물러났으나 족쇄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단! 때리거나 발로 차는 건 물론이고 이 녀석을 다치게 했다간 벌을 줄 거다. 어디까지나 아내라는 입장에서 귀여워해주도록.”
“““옛!”””
“잠깐만! 귀여워하라니, 20명이나 있는데!? 안 돼, 무리라구!”
“자, 연행해라. 침대에서 도둑질 기술을 물어보는 것도 잊지 말고.”
트티파는 병사들의 어깨에 실려 끌려가고 말았다.
“와앙―! 왜 이렇게 된 거야!”
“사형보단 낫잖아.” “나는 동정이니까 여러모로 가르쳐 달라고.” “창부 15명을 상대한 허리놀림으로 앙앙대게 만들어 주지.” “너한테 걷어차인 불알의 복수다. 임신시켜주마!” “부탁이 있는데……나를 밟아줬으면 해.”
“이걸로 만사 해결이군.”
“전혀 해결된 것 같지 않거든요……하여튼, 늘 그렇지만 여자한테는 너무 물러요.”
마이라와 세리아가 비난하듯이 날 바라봤다.
어쩔 수 없잖아. 나쁜 짓을 했어도 여자는 웬만하면 죽이고 싶지 않다고.
“게다가 저 녀석의 특기는 꽤 재밌더라고.”
경비병은 딱히 놀고 있던 것도 군기가 해이해져 있던 것도 아니다.
20명의 경비병을 쉽사리 돌파하고서 보물 창고까지 도착한 그 수완은 확실히 대단하다.
심지어 보물 창고에 걸어둔 자물쇠 중 한 개까지 뚫어낸 것이다.
“병사들이 그렇게 큰 실수를 한 건 아니야. 너무 엄하게 굴면 반대로 안 좋아.”
돈에 눈이 멀어 도둑과 손을 잡는 병사의 이야기는 다른 영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괜찮지 않을까요? 병사가 에이길 님께 거역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충성심이라고 해야 할까요……그, 공포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소문이랑 전과를 듣게 되면 솔직히…….”
나는 병사한테 못살게 군 적이 없는데 말이야.
뭐, 아무튼 이걸로 트티파의 형벌과 병사들한테 줄 벌, 그리고 저택 경비 개선까지 할 수 있게 됐으니 잘 됐다 이거지.
걱정거리는 하나 정도밖에 없겠군.
“나머지 한 명, 남자는 아직 못 찾아냈나? 병사는 해자로 뛰어든 이후로 못 봤다고 하던데.”
““아아……그 건 말입니다만.””
마이라와 세리아가 얼굴을 마주보고 목소리를 낮춘 채 내게 귓속말을 했다.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뼈만 남아서 발견됐다고?”
“해자 구석에서 뿔뿔이 흩어진 뼈가……저녁에는 없었기도 했고 뼈의 형태로 보아 거구의 남성 것으로 추측 중입니다. 하인들이 불길하게 여길 테니 비밀로 하긴 했습니다만.”
그러는 게 낫겠어. 해자에 뛰어들었다가 뼈만 돼서 돌아왔다니 엄청나게 불길하잖아.
으음, 수수께끼가 늘었군.
“그렇다는데, 미루미 너는 뭐 본 거 없어?”
나는 저택 해자를 들여다보고는 인어인 미루미와 말을 나누었다.
미루미와 아이들의 연못과 이 해자가 수교로 이어진 뒤 제법 종종 드나드는 편이기도 하니까 뭔가 본 게 있지 않을까?
평소처럼 미소를 짓고 있는 미루미, 주변에는 몇십명 정도 되는 아기 인어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 녀석들은 전부 내 씨로 태어난 아이들이니 내 자식이라 해도 되는 녀석들이다.
“몰라―. 그래도 나쁜 사람만 아니면 걱정할 필요 없지 않을까?”
“없는 거다―.” “없어―.” “없어없어―.”
미루미 흉내를 내는 아이들,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더 성장한 게 눈에 띄었다.
가슴이 부풀기 시작한 아이도 있군.
인어는 성장이 빠른 모양이다.
“나쁜 사람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맞아―. 칼을 들이대고 나를 인질로 삼으려 하는 나쁜 사람만 아니면 괜찮아.”
“맞아―.” “맞는 거다―.” “괜찮아―.”
그렇군. 해자 안에 있던 이 녀석들이 말하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겠어.
“그래, 고맙다. 그런데 오늘은 돼지 스테이크가 메뉴인데, 먹고 가는 게 어때?”
인어들은 고기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들어서 기뻐할 줄 알았는데.
“으음, 오늘은 밥 안 먹어도 돼. 나중에 부탁할게.”
“배불러―.” “고기 먹었어―.” “잔뜩 먹었어―.” “나쁜 놈 먹었어―.”
그래?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사건이 종결될 느낌이다.
◇◇◇◇◇◇◇◇◇◇◇◇◇◇◇◇◇◇◇◇◇◇◇◇◇◇◇◇◇◇◇◇◇◇◇◇◇
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3살 늦은 가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아레스 왕의 친구 용살의 영웅
영주민 174000명 중심 도시 라펜 25000 린트브룸 5000 반드레아 특별 도시 9000명
가족
논나(평범한 논나) 카라(측실) 멜(측실) 쿠우(애첩) 루우(애첩) 밀레(애첩) 레아(애첩) 미티(측실 임신) 마리아(측실 임신) 카트린느(음란한 측실 임신) 케이시(유령) 리타(메이드장) 요구리(도주) 피피(애첩) 앨리스(마법 소녀)
말스린느(애첩 임신) 딸 스테파니(의붓딸) 브리짓(의붓딸) 펠리시(의붓딸)
세바스찬(집사) 도로테아(애첩, 왕도) 멜리사(애첩 왕도) 알마(왕도)
아이
스우 미우 예카테리나 아마타 아나스타샤(딸) 안토니오 클로드 길버트 라이너 바르톨로메이(아들) 로즈(의붓딸)
인외
라미(애인 뱀) 미루미(인어) 알라우네(육성 중)
부하
세리아(통통) 기드(호위대) 크롤(허무 승려) 이리지나(지휘관) 루나(약간 돼지) 루비
마이라(치안관) 포르테(연수 감독) 그레텔(내정 연수)
레오폴트(참모) 아돌프(내정관) 트리스탄(참모B)
클레어&롤리(전용 상인) 슈바르츠(말) 릴리안느(여배우) 트티파(20명의 아내)
군: 7000명
보병: 1200 기병: 800 궁병: 500 궁기병: 900 경보병 (장비 불충분): 3600(궁기병/예비역 해산)
예비역: 3000(장비 불완전)
대포: 10문 대형포 16문
재산: 금화 35840닢 감봉 분량 x 3개월(+140)
경험 인수: 288명 자식: 54명+555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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