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논나의 폭주』
대책 회의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집무실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이 있었다.
참가자는 나와 레오폴트, 아돌프, 트리스탄, 마이라, 그리고 세리아다.
“우선 제국의 연방 침공이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주 전장은 대륙 반대편, 지리상으로도 너무 멀리 위치해 있기 때문에 중앙 평원으로 병력을 진군시킨 뒤 양동 작전을 펼칠 가능성도 지극히 낮다고 봐야 할 겁니다. 혹시 모르니 남부 소국에 보내둔 간첩에게 단순 정보는 보내두겠습니다.”
“확실히 이곳을 지나가서 연방으로 가는 건……너무 우책이네요.”
제국 서부에서 중앙 평원으로 군대를 진군시키는 데에 반년, 거기서 변경지를 지나 다시 연방 서부 전장으로……이런 식으로 갔다간 1년 단위 행군, 병사들은 지쳐 나가떨어질 게 분명하다.
심지어 겨울이 되면 변경지는 눈지옥 그 자체, 결코 진군할 수 없는 상황이 되리라.
그렇게 고생해서 양동 작전을 펼친다 해도 오르가 연방 쪽은 배를 써서 손쉽게 반격할 수 있다.
찔끔찔끔 병력을 옮기는 건 자국 병력을 쓸데없이 놀리는 것밖에 의미가 없다.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은 생각해도 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하지만 간접적인 영향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이라가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지?”
“고르도니아는 틀림없이 오르가 연방의 우호국이죠. 가랜드 제국 입장에서 보기엔 전 병력을 움직인 사이 연방의 요청을 받은 우리가 중앙 평원을 진군하고 동부를 위협할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을 겁니다.”
“남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라도 있겠다 그런 짓을 했다간 나중에 지독한 꼴을 보게 될 테지만 말이야.”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입니다. 아주 약간의 가능성을 없애버리기 위해 남부 국가들에게 요청한 다음 반대로 고르도니아에 군사적인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죠. 우리가 연방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는 거랑 마찬가지로 남부 국가들도 역시 무역 같은 것들을 통해 제국과 관계를 갖고 있을 테니까요.”
“흐음……그렇다면 남부 국가들이 우리한테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인가?”
나는 슬쩍 트리스탄 쪽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있길래 이번엔 레오폴트 쪽을 바라보았다.
“남부 국가의 첩보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만 현 시점에서 그러한 징후는 보고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반드레아 민연방과 알테일 신국의 관계는 악화되어가는 중이라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서로를 탓하고 계속해서 충돌하는 중입니다. 두 나라 모두 북부 쪽으로 침공할 여력이 있을 것 같진 않군요.”
“리버티스는?”
민주제……라 했던가? 기묘한 정치 체제를 취하고 있는 나라였던 걸로 기억한다.
“침략 활동을 통해 거대해진 고르도니아와 그 영향 아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몰트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국경을 침범하지만 않으면 교전할 의지는 없다고 선언한 상태이지요. 그 나라는 국민이 국가의 방침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기도 하고 시민들 사이에서 전쟁을 기피하는 감정이 있는 이상 군사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렇군. 그런 거니까 현 시점에서 걱정할 건 없겠어. 뭔가 수상쩍어지면 그때 대응해도 늦지 않을 거야.”
마이라는 납득했다는 듯이 얌전히 물러났다.
다시 말해 현 시점에서 군사적으로는 딱히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경제적인 영향은 군사적인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제야 자기 순서가 돌아왔다는 것마냥 아돌프가 여러 서류를 갖고 나왔다.
내게도 건네주려고 하길래 그대로 세리아한테 넘겨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면 철 같은 품목의 가격이 또 올라가나?”
“그것도 있긴 합니다. 우리나라도 만들기 힘든 생산품 관련은 연방에서 수입해 오는 중입니다. 전쟁 여부에 따라서 생필품이 군사 물적 자원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죠.”
그렇군. 연방에 여력이 없어지는 사태가 벌어질 경우 연방에서 수출이 힘들어지겠군.
그렇게 될 경우엔 배나 고급 마차, 소형 물품 중엔 장식품 같은 것들의 가격이 치솟는다.
“또한 급격하게 가격이 치솟는 품목이 약이랑 식량입니다. 전장에선 약은 아무리 많더라도 부족한 품목이니 주변국에서 사들이게 되겠죠. 또한 식량에 관해선…….”
아돌프는 납득한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이상하게 밀 가격이 올라갔다 싶었거든요. 연방 상인이 모으고 있어서 그랬던 거군요.”
“하지만 클라라 쪽 정보가 더 빠를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겠죠. 올라간 거라면 이미 다 올라간 상황 아닙니까?”
세리아도 요즘엔 경제와 물가에 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기 시작한 듯했다.
이번에 클레어한테 부탁해서 선물……뭐시기를 해볼까 하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뇨, 연방 상인이 직접 고르도니아까지 와서 밀을 사가는 건 아닙니다. 순서를 따져보면 그쪽 상인이 연방 내부의 밀을 사모은다. 그 결과 우리나라로 수출할 분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간다. 지금은 이 단계네요.”
흐음, 하고 열심히 얘기를 듣는 세리아.
신경 쓰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레오폴트, 하지만 이 녀석은 확실하게 듣고 있다.
반대로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이라는 경제 쪽 이야기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방귀를 뀌어 냄새와 소리로 졸고 있는 트리스탄을 불쾌하게 깨울 생각이다.
“따라서 정보가 우리나라의 일반 상인들한테까지 전달된 단계에서 국내 쪽 매입이 시작되고 그에 따라 한번 더 가격이 올라갈 겁니다. 현재 계절은 가을, 조만간 수확 시기죠. 이 시기가 되면 대륙 전역에 전쟁 이야기가 퍼져있을 테니 영주님은 가격이 오를 게 확실한 밀을 평소 가격대로 팔지 마시고 모아두세요……더 가격이 오를 테니까요.”
“……그랬다간 민중들의 식량 사정이 한층 더 악화되지 않을까요?”
마이라와 세리아가 걱정된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맞습니다. 농촌과 도시, 궁정 귀족과 영주 귀족들 사이에서 대조적인 결과가 나오겠죠.”
큰일이 나겠다며 얼굴을 찌푸린 세리아였으나, 어느 사실을 눈치 챈 듯했다.
“어라? 근데 그렇게 따지면…….”
아돌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리 쪽 영지는 오히려 득을 보는 게 더 크죠. 애초부터 연방에서 화려한 장식품 같은 걸 사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내 아내를 잊었잖아.
논나는 연방 물건을 애용 중이란 말이야.
내가 전쟁에 나가 있는 사이에도 거실에 푹신푹신한 커다란 소파가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돌프는 말을 이었다.
“이게 연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발품을 뛰어 확인해 온 현재 밀의 상황입니다.”
세리아가 가리키고 있는 부분을 바라보았다.
마을 밭마다 칸이 있고 그 모든 곳에 숫자가 적혀 있었다.
숫자 옆에는……이건 +라고 들어있는 건가?
“지금까지 정비가 되지 않았던 남부 부분까지 포함해서 거의 모든 농지가 면적당 수확량이 증가, 이유를 따져 보면 치수 및 토지 개선 영향도 당연히 있습니다만 기후와 기온도 적절하면서 농민에 대한…….”
“이론은 나중에 세리아한테 설명해 줘. 쉽게 말하면 어떻게 됐다는 거야?”
아돌프는 가만 내버려 두면 이야기가 길어지니까 말이야.
“우리 영지 모든 지역에서 이상적인 수치에 가까운 대풍작이 일어났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지난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수확량을 기대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곡물 가격이 치솟았다는 건?”
“우리 영지를 한정해서 볼 경우엔 좋은 요소라고 말씀드릴 수 있죠. 심지어 거대 곡창지대 중 하나인 몰트 왕국하고도 우선적인 무역 협정을 맺었죠. 고르도니아에 미칠 경제적 영향은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우리 입장에선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에요."
모든 이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풀어졌다.
아니, 레오폴트만큼은 변함이 없군.
트리스탄은 뭔가 불안해 보이는데. 너, 홍차 너무 많이 마셔서 화장실 가고 싶은 거지?
안 보낸다.
“그럼 셀레스티나한테도 한 마디 해둬야겠군.”
“……쓸데없는 얘기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이 녀석, 세리아. 너무 못살게 굴면 못 써.
그렇게 착한 아이를 속여서 값싸게 사들이기라도 했다간 마음이 아프잖아.
“애초에 몰트 입장에서도 우리에게 긴급하게 밀을 팔아넘겨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겁니다.”
레오폴트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실제로 밀 가격이 치솟으면 몰트의 광활한 농지는 황금빛 땅으로 변할 겁니다. 몰트가 전부 다 갖고 있기엔 그 나라 주변에 위협적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 거지. 얼른 사자를 보내야겠어.
“어쨌든 곡물 가격은 금세 치솟을 겁니다. 영주민들의 생활도 고려해 보면 현재 자금이 적다고는 해도 그렇게 간단히 팔아넘겨선 안 될 상황입니다. 대상인들 사이에선 이미 정보도 퍼져있을 테니 사들이기 시작했을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모든 이들이 해산했다.
레오폴트와 마이라는 손실이 발생한 군대 재편성, 아돌프는……할 게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뭘 할지 모르겠다.
그럼 세리아한테 물건이라도 한 번 빨게 시킬까 싶어 어깨를 끌어안은 순간, 뒤쪽에서 갑자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주인님,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와앗!”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 있던 건 세바스찬이었다.
회의하는 동안 계속 있던 건가……? 기척이 없어서 눈치를 못 챘잖아.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것이 집사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뭐, 이 녀석이 회의 내용을 다른 곳으로 떠벌릴 일도 없을 테지.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지?”
세바스찬이 내 시간을 빼앗으면서까지 얘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노인은 볼일을 끝마칠 때까지 공기처럼 서있는 사람이다.
“예, 실은 사모님 건으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아아…….”
세리아가 풀썩 하고 어깨를 떨궜다.
나도 또 무슨 일을 벌인 건가 싶어 무심결에 힘이 쭉 빠지는 게 느껴졌다.
“논나가……무슨 짓이라도 벌였나?”
집사는 크게 고개를 숙였다.
“사모님에 대한 무례한 발언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요즘 많은 하인들 사이에서 논나 님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는 중입니다. 일부 인원은 노골적으로 험담을 늘어넣는 상황인지라……전부 제 역량 부족이 불러일으킨 일이긴 합니다만 이대로 가다간 생각지 못한 문제를 일으키는 자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예전부터 논나가 하인들한테서 미움을 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세바스찬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나를 찾아올 정도로 문제가 커진 건가?
“저와 무엇보다 카라 님께서 도와주고 계신 덕분에 어찌저찌 수습은 되어 있습니다만 무슨 계기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드릿 가문을 위해서라도 주인님께 말씀드려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했습니다."
본디 집사가 정실의 행동을 일러바치는 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순수하게 논나와 우리 집안에 수치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배려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이리라.
“크나큰 무례를 저지른 점, 어떠한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세바스찬한테 무슨 짓을 할 리가 없지.
게다가…….
“죄가 논나 씨한테 있다는 건 다 알고 있단 말이죠.”
세리아도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카라조차 해결 못했나?”
“유감스럽게도.”
논나에 대한 불만은 카라가 어떻게든 해주고 있었는데, 하인들 입장에선 역시 논나가 카라보다 입장상 더 위쪽이다.
전적으로 신용하고서 모든 것을 얘기할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 내가 말하는 수밖에 없겠군. 마침 잘 됐어. 출산이 끝나고 몸도 어느 정도 괜찮아졌겠다 약간 벌을 주도록 하지. 케이시, 거기 있나?”
(여기요, 여기―)
내가 이름을 부르자 날아오는 유령 케이시, 너한테 역할을 하나 주도록 하마.
논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내이기 때문에 설령 세바스찬이 말했다 한들 실제로 확인하지 않고 나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녀석이 문제를 일으킬 경우엔 내게 알리러 와 줘. 실제로 현장을 보고 판단할 테니까.
(알겠어 그치만 분명……오늘 안에라도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을 거야)
“그렇겠죠……임신 중에도 끔찍했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로부터는 정말이지…….”
너무 뭐라고 하진 마. 내가 사랑하는 아내라고.
좋은 점도 잔뜩 있단 말이야.
“에이길 님……그 돼지 여자도 그렇지만 억지를 부리는 여자를 좋아하신단 말이죠.”
글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걸.
탐정 유령을 보내두고 나서 술이라도 한 잔 하려고 했더니 벌써 케이시가 돌아왔다.
(문제 발생― 테라스야)
“30분도 안 지났네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세리아와 케이시의 뒤를 따라간다.
테라스 근처로 다가가니 논나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당신! 이 과자 젖었잖아요!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아, 아뇨 사모님, 이건 원래 이런 과자인지라…….”
“거짓말 마요! 예전에 먹어본 적 있다구요. 어차피 오래 놔뒀던 물건을 가지고 온 거겠죠!”
“사, 사모님……저는 그런 짓은…….”
논나가 젊은 메이드를 나무라는 중이었다.
메이드는 바꿔 오라는 논나의 말에 울상을 지으면서 식당으로 돌아갔다.
확인을 위해 나도 식당을 향했고 논나가 먹고 있던 과자를 손에 쥐어봤다.
“뭐야, 막 꺼낸 것도 살짝 눅눅하잖아.”
“이거 밀크 롤이죠? 원래부터 무드럽고 축축한 느낌이 드는 과자예요.”
결국 논나의 착각이라는 뜻이군.
테라스로 돌아가니 논나가 또다시 메이드한테 화를 내고 있었다.
“또 축축하잖아요! 괴롭히는 건가요? 저한테 뭐 안 좋은 마음이라도 품고 있는 건가요!?”
“으, 으에엥……으에엥…….”
메이드는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정면으로 걸어나갔다.
“에이길 님! 회의 끝나셨군요. 어머, 당신은 왜 그렇게 울고 있는 건가요?”
논나는 확 하고 표정을 바꾸었다.
나는 그녀의 손 안에 있던 과자를 집어 입 안에 집어넣었다.
“이 과자는 축축한 느낌이 맛있단 말이지.”
“예, 예에, 맞아요. 무척 맛있답니다. 자, 이제 물러나세요.”
안타깝게도 유죄로군.
자, 어쩌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던 찰나 다시 케이시가 보고를 하러 들어왔다.
(멜리사 씨하고도 싸우는 중이야―)
이번엔 멜리사라……대체 무슨 일이람.
서둘러 슬쩍 방을 엿보니 멜리사와 논나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돈은 왕도로 보내서 아이들을 위해 쓰겠다고 에이길 씨한테서 허락도 받았단 말이야.”
“지금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물건이 있단 말이에요!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요!”
“안 돼, 장신구는 얼마든지 있잖아.”
“아이들한테도 생활비는 주고 있잖아요!”
“그건 그냥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돈일 뿐이지, 과자나 조금 좋은 음식을 먹는 날도…….”
아무래도 멜리사가 왕도 아이들한테 보내려돈 돈을 논나가 찾아낸 모양이다.
왜냐하면 현재 금고엔 돈이 없고 논나에겐 돈을 빌려주지 못하게끔 상인들에게 연락을 해두었기 때문에 자금이 없는 상황이다.
애초부터 사이가 나쁘지 않은 두 사람이라 처음엔 논나의 억지를 멜리사가 잘 타이르는 느낌이었으나 점차 말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럼 고아가 저보다 더 중요하단 건가요!”
“논나는 맨날 사치 부리고 다니잖아! 아이들이 쓸 용돈까지 노리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리고 결국 논나가 말을 꺼내버리고 말았다.
“뭐라구요! 당신은 원래 창부였던 주제에!”
방 안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멜리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논나는 한순간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고개를 휙 돌리고 말았다.
“거기까지 해.”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몸이 움직여서 방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아……에이길 씨…….”
멜리사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웃었지만 눈은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으, 저는 그게……아무것도……아닌 건 아닌데요.”
논나는 평소처럼 태연한 척하는 건 불가능한지 후들후들 허둥대고 있었다.
최소한 멜리사한테 그런 말을 해두고서 태평한 표정은 못 짓나보군.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직 분노가 남아있다.
“멜리사, 나가 있어.”
세리아가 뭔가 말하고 싶어하는 듯한 멜리사의 손을 끌고서 방을 빠져나갔다.
“멜리사한테 뭐라고 말했지?”
“들으셨던 건가요!? 진심이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만…….”
나는 논나의 어깨에 손을 올려두고……뺨을 때렸다.
짝, 하고 메마른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가 치켜뜨였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으……엥…………흐에에에에에에엥!!”
그렇게 터져나온 울음소리, 저택 안을 온통 뒤흔들 커다란 목소리로 울면서 방을 뛰쳐나간 논나는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너는 몸이 둔한 편이니까 너무 빨리 달렸다간……거 봐, 넘어졌잖아.
그럼에도 논나는 울면서 다시 달려나갔다.
“쫓아가지 않으셔도 됩니까?”
방 밖에서 멜리사와 세리아가 안으로 들어왔다.
“멜리사, 저 녀석도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니야. 좀 분위기에 휩쓸려서 자기도 모르게 말했을 뿐이지. 신경 쓰지 마.”
멜리사를 끌어당기고서 상냥하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응, 조금 충격이긴 했지만 괜찮아. 사실이니까…….”
역시 신경 쓰고 있잖아.
이건 본인이 사과하는 수밖에 없겠군.
“위병을 보내서 찾아오는 게 낫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어. 논나가 엉겨붙을 사람은 나 말고 다른 한 명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나는 천천히 걸어 카라의 방으로 향했다.
문도 두드리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그 안에 있었다.
소파에 앉아있는 카라, 논나는 그녀의 위에 올라타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보기에 따라선 대면좌위 느낌이군.
논나는 내가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고개를 전혀 돌리지 않고 가끔씩 으흑 으흑 하고 훌쩍거릴 뿐이었다.
카라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손질 잘 된 아리따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엉엉 울면서 뛰어오더니 이러더라. 대체 무슨 일이야?”
“좀 일이 있어서 혼을 냈거든.”
사정을 설명하자 논나는 훌쩍이는 걸 멈추고 카라한테 한층 더 깊숙이 달라붙었다.
마치 나쁜 짓을 하고서 벌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모양새군.
“하아……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이 바보야.”
찰싹, 하고 뒷머리를 손가락으로 튕기는 카라.
논나의 어깨가 움찔 하고 떨렸다.
“이렇게 된 거 말해두겠는데. 너, 하인이나 저택 사람들 대부분이 싫어해.”
“훌쩍……그럴 리가 없어요……시녀 사리 같은 경우엔……저를 얼마나 잘 따르는데…….”
“너는 정실이니까 거스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시녀는 다른 사람보다 대우도 좋은 편이니까 당연히 네 눈치를 보겠지. 너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저택 안에 거의 없다구.”
“으에에엥……흐에에에에에엥!”
이런,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니까 또 울기 시작했잖아.
“괜찮아. 그게 이 애를 위한 거니까……자각은 있을 거야. 네가 불렀을 때 기쁜 듯이 달려가는 하인이 있긴 했어? 너 귀도 좋잖아. 그 중에 너를 칭찬하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어? 너를 감싸주는 건……내가 말하는 것도 우스울 정도지만 나랑 멜리사 정도라구.”
“훌쩍……흐윽……으에에엥…….”
계속 울고 있는 논나를 끌어안으면서 카라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인은 그렇다 쳐도……멜리사한테는 제대로 사과해 둬. 애초에 너도 비슷한 환경에서 에이길이 구해준 거잖아. 네가 할말은 아니라구.”
“네……멜리사한테는 사과할게요……그치만 그렇게 심한 말을 한 뒤에 뭐라고 하면 좋을지…….”
“내가 따라가 줄게. 마음을 확실히 담아서 사과하면 돼.”
논나한테는 약하다니까, 하고 카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멜리사는 논나가 진심으로 사과하면 용서해 줄 것이다.
따귀 한 번 정도는 각오해 둬야겠지만.
그리고 나는 따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논나, 대체 왜 쓸데없이 돈을 쓰거나 억지를 부리는 거지?”
“네헥!?”
“돌직구로 물어보네……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단순히 비싼 물건을 엄청나게 갖고 싶은 거라면야 사줘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논나가 단순히 사치를 부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다.
내가 작위를 받고 난 직후엔 귀족으로서 체면이니 그에 걸맞은 생활이니 하는 내용에 고집을 부리긴 했지만 이제 와선 단순히 돈을 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듯한 느낌이 드는 상황이다.
매번 억지를 부리는 그 태도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예전엔 이렇게 남한테 억지를 부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생활에 여유가 생겨 진짜 성격이 드러났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는 말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엔 논나가 무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그게…….”
“혼을 내려는 게 아니야. 사치를 부리고 싶은 거라면야 어떻게든 손을 쓰면 돼. 하지만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거라면……돈만 써봤자 해결이 안 되잖아? 지금 여기서 한 번 말해봐.”
“으으~.”
논나는 한동안 신음한 뒤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외로웠어요.”
“외로워?”
논나는 카라를 휙 하고 떠난 다음 이번엔 내 가슴팍 안으로 뛰어들었다.
“에이길 님은 자주 원정을 떠나시구……오늘도 집에 계시는데 회의 때문에 안 와주시구……외롭다구요!!”
몸에 느껴지는 폭력적인 가슴의 감촉, 지금은 물건을 세워도 될만한 분위기가 아니니까 근성으로 버텨냈다.
“돈을 써서……화려한 물건을 쌓아두면 그걸 볼 때마다 제가 있다는 걸 아실 거 아니에요! 너무 도를 넘으면 화라도 내주실 거구요. 억지를 부리면 에이길 님이 절 봐주신단 말이에요!”
아하……더 신경 써줬으면 했던 거구나.
논나는 열심히 귀여워해주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원체 응석을 잘 부리는 이 녀석한테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내 신경을 끌고 싶어서 이것저것 하고 있던 건가? 귀여운 녀석.
“하지만 실은 사치 부리는 게 버릇 들었던 것도 있지?”
“그, 그것도 있어요.”
역시 있긴 한 거구만.
“하여간 어쩔 수가 없는 여자라니까, 너는.”
논나는 꽉 끌어안고서 목덜미에 키스를 해주었다.
“앞으로는 그런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외로워지면 신경 써 달라고 말하러 오면 돼.”
“정말인가요? 바쁘신 때라도 언제든지 봐주실 건가요?”
“그래, 회의 중에도 키스나 포옹 한 번 정도는 해 줄게. 그러니까 너무 억지 부리면 안 된다?”
가슴팍에서 고개를 든 논나는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울상을 짓는 것보단 이게 훨씬 좋군. 원래 미모가 한층 더 돋보여 무심코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아름답다.
“앞으로는 에이길 님께 확실히 상담한 뒤에 사치 부릴게요.”
“그렇게 해. 그리고 하인들을 너무 못살게 구는 것도 안 돼. 상냥하게 대해 줘.”
“물론이죠. 그 대신 저택에 계실 땐 아침 저녁으로 반드시 포옹이랑 키스를 해주세요.”
“그래, 하지만 고작 그걸로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
우리는 뜨거운 포옹과 키스를 나누었다.
“결국엔 물러터짐 그 자체 판결이잖아. 뭐, 낭비하지 않는 논나가 오히려 더 기분 나쁘긴 하지만.”
카라한테도 신세를 지게 됐군.
다음번엔 너를 잔뜩 귀여워해주지.
자, 대충 마무리되긴 했지만 전부 끝난 건 아니다.
지금까지 논나가 거듭해온 횡포 탓에 하인들한테 쌓인 반감을 해소해야 할 상황이다.
남편으로서 사랑하는 아내가 미움을 사고 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논나의 허리춤에 손을 두르고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안았다.
그녀는 한 순간 깜짝 놀란 듯했으나 기쁜 듯이 내 손에 목을 둘렀다.
“앗……지금부터 시작되는 건가요?”
“그래, 바로 말이야. 빠르게 하는 게 더 낫겠지.”
하인들 앞에서 내가 논나한테 벌을 주면 분노도 사그라들 것이다.
할 거라면 빠른 편이 낫다.
“출산 후 처음이에요……상냥하게 부탁드릴게요.”
“글쎄, 상냥하게 할 수 있을진 모르겠는데.”
임신 중에 벌을 줄 순 없으니까 말이지.
“이대로 침실로?”
“아니, 거실이야.”
논나의 침실로 하인을 모을 순 없지.
“그, 그런 거 부끄러워요.”
“참아. 필요한 일이니까.”
하인들 앞에서 벌받는 건 확실히 부끄럽긴 하겠지.
그러니까 더더욱 하인들에 대한 사과의 마음도 전하기 쉽다는 뜻이다.
“아앙, 에이길 님 변태.”
하인들한테 다 모이도록 명령을 내려야겠군.
벌을 줄 시간이다.
◇◇◇◇◇◇◇◇◇◇◇◇◇◇◇◇◇◇◇◇◇◇◇◇◇
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3살 여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영주민 159000 중심 도시 라펜 23000 린트브룸 4000
재산: 금화 0닢
가족
논나(정실 개과천선) 카라(측실) 멜(측실) 쿠우(애첩) 루우(애첩) 멜리사(애첩) 밀레(애첩) 레아(애첩) 미티(혼약) 마리아(혼약) 카트린느(혼약) 케이시(요괴) 리타(메이드장) 요구리(극작가) 피피(애첩) 앨리스(엉덩이) 알마(눈물)
세바스찬(집사) 도로테아(애첩, 왕도)
아이
스우 미우 예카테리나 아마타 아나스타샤(딸) 안토니오 클로드 길버트 라이너 바르톨로메이(아들) 로즈(수양딸)
부하
세리아(부관) 기드(호위대) 크롤(웃음) 이리지나(지휘관) 루나(지휘관) 루비
마이라(치안관) 포르테(학생 감독) 그레텔(강아지)
레오폴트(참모) 아돌프(내정관) 트리스탄(군사?)
클레어&롤리(전용 상인) 슈바르츠(말) 릴리안느(여배우)
어머니 말스린느 딸 스테파니 브리짓 펠리시(인질 수용)
타국
셀레스티나(몰트 여왕) 모니카(시녀) 클라우디아(부인) 클라라
경험 인수: 206명 자식: 4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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