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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188화『정통 마그라드 소탕 작전② 협곡의 100인』

188화『정통 마그라드 소탕 작전②  협곡의 100인』

 

아레스 도시 바깥

 

몇 명 모였지?”

아들이 없는 남자와 장남을 제외하고서 300!”

 

길드레스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레스의 전사들은 왕의 앞에서도 엎드리지 않을 뿐더러 격식으로 가득 찬 말투를 쓰지도 않는다.

전투를 최고로 치는 전사가 비굴한 태도를 취하는 것 자체가 반대로 아레스와 왕에 대한 무례이기 때문이다.

 

“300……이라고.”

 

길드레스는 처음으로 자기 뒤를 따르는 남자들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 보이는 것은 모두 다 우락부락한 체격의 남성들, 우뚝 솟은 근육덩어리의 벽이었다.

 

남자들의 손에는 두껍고 무겁지만 길지는 않은 검, 마찬가지로 무게가 상당하고 튼튼해 보이는 방패가 쥐여져 있었다.

몸에는 칠흑빛 망토를 두르고 아래쪽엔 급소만 보호하는 갑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언뜻 보면 나체처럼 보인다.

왕의 증거인지 홀로 진홍빛 망토를 입고 있는 길드레스는 그 안에서 붕 뜬 것처럼 보였다.

 

……이름과 나이는?”

 

길드레스는 한 젊어보이는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크란델스! 21!”

 

왕은 미간을 찌푸리고서 일갈했다.

 

젊군! 내 산책에는 나이 제한이 있다! 30이 되지 않는 자는 떠나라!”

 

일동에 약간의 술렁거림이 느껴졌다.

 

왕이시여, 우리는 젊다 한들 아레스의 전사, 그 어떠한 적이라 한들 질 리가 없습니다.”

끈질기군! 젊은이는 아레스와 여자 아이를 지키도록 해라.”

 

젊은이들은 살짝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떡하니 서 있는 길드레스의 모습에서 결코 양보하지 않을 거라는 분위기를 느낀 건지 한 차례 절을 하고서 그 자리를 떠났다.

 

미래는 너희가 만드는 것이다! 정진하라!”

 

등 뒤에서 말을 건네는 왕에게 젊은이들이 하늘에 울려퍼질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제 몇 명이냐.”

“100명입니다.”

 

길드레스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딱 좋은 숫자로군. 이 정도로 해 두지 않으면 고르도니아 놈들이 불쌍하니까 말이야.”

 

과연 그 말이 맞군!”

아레스의 전사가 너무 많이 모였다간 땅이 갈라질 게 분명해!”

 

남아있는 남성들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제서야 길드레스는 미소를 지우고 모든 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는 이번 전투에서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날뛰며 우리의 용감한 모습을 보여주고 고르도니아의 진군을 저지한다……그리고 전멸하게 될 것이야.”

 

다른 남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들도 30살이 넘을 때까지 계속해서 싸워왔던 사내들, 절대적인 숫자의 차이, 그리고 원군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결말 정도는 알고 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이건 산책이다. 배가 아플 수도 있고 마음이 내키지 않을 수도 있지. 중간에 돌아간다 해도 책망할 사람은 없다.”

 

그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한 남자가 길드레스에게 말을 건넸다.

 

왕이여, 이번 전투는 아레스를 위한 전투인가?”

 

길드레스는 즉답했다.

 

아니다.”

그럼 무엇을 위한 전투인 것인가?”

 

길드레스는 가슴을 폈다.

 

나의 개인적인……사나이끼리 맺은 약속을 위한 전투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들의 표정이 풀어지더니 이윽고 입을 크게 벌리며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약속이라!” “사나이끼리 맺은 약속이라면 어쩔 수 없지.” “목숨을 버리기에 충분한 이유로군!”

 

남자들은 소리쳤다.

 

왕이여, 이해했다! 그렇다면 가지, 전사로서 싸우다 마지막까지 가는 것이다!”

좋아! , 한 명이 100명을 쓰러트리면 이길 수 있을 거다.”

 

모든 이들의 표정에 망설임은 없다.

활짝 웃은 표정으로 우락부락한 근육을 과시하는 중이다.

 

바보같은 놈, 적은 1 3천이라 들었다. 1명이 100명을 쓰러트리면 3000명이나 남지 않나.”

 

왕은 커다란 소리로 외치는 남자들 속에서 한층 더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그렇다면 그 3000명은 내가 맡도록 하지!”

 

다같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들었나! 왕이 3000명을 쓰러트리겠다고 선언한 걸!”

끝내주는군. 이번 일이 끝나면 다같이 통 한가득 술을 헌상하자고!”

 

왕은 웃으면서 검을 뽑아들고 방패를 내세웠다.

모든 남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오른손에 있는 것은 무엇이냐!”

“““적을 베어낼 승리의 검!”””

왼손에 있는 것은 무엇이냐!”

“““조국을 지켜낼 수호의 방패!”””

그것을 쥐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굳세게 단련한 강철 육체!”””

가자꾸나, 아레스의 사나이들이여!!”

“““오오오오오오오!!”””

 

왕이 달려가기 시작하고 그 뒤를 따르듯이 모든 이들이 달려갔다.

도시 국가는 면적상 제약이 크기 때문에 말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목적지인 협곡까진 자신의 다리를 이용해 달려가는 것이다.

 

◇◇◇◇◇◇◇◇◇◇◇◇◇◇◇◇◇◇◇◇◇◇◇◇◇◇◇◇◇◇◇◇◇◇◇◇◇

 

하드릿 군  토고르 협곡  근처

 

저게 토고르 협곡인가……꽤 깊어보이는군.”

척후병의 보고에 따르면 내려갈수록 상당히 좁아지는 모양입니다. 내부에는 일단 왕래가 가능한 길이 갖춰져 있습니다만 가로로 길게 퍼지긴 힘듭니다.”

여기서 매복이라도 하고 있다간 성가실 텐데……아트로아 놈들은 정말로 도망친 건가?”

, 추적개를 풀어봤습니다만 협곡에는 들어가지 않은 걸 보아 양쪽으로 갈라져 전속력으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우리도 우회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레오폴트와 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세리아가 끼어들었다.

나도 그 생각은 했지만 토고르 협곡으로 나뉜 좌우 방향에는 각각 다른 도시 국가가 존재하는 중이다.

그리고 협곡 주변은 그들의 농경지로 쓰이고 있었다.

진입을 허락했다고는 해도 그들 입장에서 우리는 타인, 만약 농지에 진입하거나 시민과 싸움이라도 붙으면 적대 행위로 판단하겠다고 경고를 받았다.

 

얌전히 저 좁은 길을 지나가는 수밖에 없겠어. 중앙 평원에선 웬만해선 보기 힘든 지형이야. 집에 있는 여자들한테 얘기로 한 번 들려주자고.”

 

세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뾰로통해져 있던 표정이 히죽 풀어지곤 눈웃음을 지었다.

 

네……레아한테도 들려줘야겠어요.”

 

요즘 세리아랑 레아는 묘하게 사이가 좋다.

나이도 비슷한 수준, 성격이 급하고 고지식한 세리아와 부드럽고 온화한 레아는 상성이 좋은 모양이다.

 

레아는 손이 많이 가는 여동생 같은 느낌이죠.”

 

레아도 예전에 세리아는 천방지축 여동생 같아.”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진군을 시작했다.

전장에 있기는 해도 이미 적은 격파했기 때문에 병사들한테도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남은 건 아트로아 도시까지 가면 끝이라는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긴급 보고! 토고르 협곡 출구 부근에 군대처럼 보이는 집단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레오폴트와 마이라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아트로아가 막아선 건가?”

아뇨, 깃발이 다릅니다. 유감스럽게도 자세한 사항은…….”

 

척후 기병이 모른다는 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깃발이라는 뜻이다.

주변 폴리스가 방해를 하러 온 것이리라.

 

숫자는?”

“100명 정도로 보입니다.”

흐음…….”

 

나와 레오폴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숫자가 적다. 이걸로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

 

병사를 매복시켜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길 이외엔 너무 급경사가 심한데. 이런 절벽에 매복을 하고 있을 것 같진 않다만…….”

 

병사를 매복시키는 건 간단해 보이지만 매복시킨 병사가 열심히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건 우스울 뿐이다.

 

경계 정도는 해 두시지요. 전위를 200명씩 3번에 걸쳐서 행군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일단 사자를 보내서 치워 봐. 연락이 닿지 않은 대장이 당황해서 튀어나온 거일 수도 있으니까.”

 

이윽고 우리가 협곡을 지나 출구 경계면이 보이기 시작했을 즈음, 보고받은 대로 100명 정도 되는 군대가 팔짱을 낀 채 우뚝 서 있었다.

이들은 협곡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다.

 

흐음……사자는 보냈겠지?”

예……하지만 좋은 대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 직접 얘기를 나누는 수밖에.

 

나는 놈들 앞으로 나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고르도니아 소속 군대다! 아트로아에 진을 치고 있는 불순분자를 배제하기 위해 행군하는 중이다. 어째서 길을 막는 것이냐!”

 

곧바로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아레스 왕 길드레스! 산책을 나와 멋진 풍경을 즐기는 중이다!”

 

왕……말입니까?”

 

레오폴트가 무언가 서류를 뒤적거리는 중이다.

도시 국가군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어찌저찌 진군로에 해당하는 폴리스에 관해선 최소한 조사를 하긴 했지만 애초부터 폐쇄적인 국가가 많다보니 나머지 폴리스에 관해선 거의 아는 게 없다.

 

길드레스……확실히 아레스 왕의 이름입니다. 서쪽에 위치한 폴리스로 특별히 아트로아와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닙니다.”

 

이건 좀 성가셔질 것 같군.

 

길드레스 왕! 내 이름은 고르도니아의 변경백 하드릿이다. 산책이라 하였는데 우리 군이 지나간 뒤에 마음껏 즐기는 게 어떻겠나!?”

거절한다! 1만명의 군대가 짓밟고 떠난 길을 바라봤자 풍경은 즐길 수 없을 테니!”

 

, 그렇겠지.

하지만 정말로 산책을 나왔을 리는 없다.

 

레오폴트, 어떻게 생각하지?”

아레스는 왕의 힘이 강력한 군사적인 국가입니다. 설마 100명 정도의 병사밖에 준비하지 못했던 건 아닐 겁니다만……왕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을 거라고 추측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렇군……알 수 없는 걸 생각해 봤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길드레스 왕이여, 우리는 아트로아 진군에 관련해서 주변 폴리스의 승인을 받아둔 상황이다. 그걸 아레스는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건가?”

그것도 아니다. 아레스는 고르도니아와 적대할 생각은 없다! 여기에 있는 건 함께 산책을 나온 내 친한 벗일 뿐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세리아가 중얼거렸다. 검과 방패를 손에 쥐고서 산책을 나왔다니, 얼토당토 않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남자는 싫어하지 않는다.

 

왕이여,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얼마나 기다리면 되지?”

 

길드레스는 기간은 생각해 두지 않았던 건지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말했다.

 

눈이 내리고 추워지면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왕의 뒤쪽에 있던 병사들이 무심결에 웃음을 터트렸다.

 

고작 100명이서 뭘 그리 잘났다는 듯이!”

 

길드레스의 도발적인 말투에 마이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교섭은 완전히 결렬됐다.

우리 쪽도 여기서 예 알겠습니다, 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왕이여……우리도 아레스와 적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당신이 계속해서 비키지 않겠다면 힘으로 치울 수밖에 없는데, 괜찮나?”

물론 상관없다. 우리는 지금 조국을 등에 지고 온 건 아니지만 아레스의 남자들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도록 하마.”

 

이들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더 이상 교섭을 해봤자 의미가 없다.

뒤쪽으로 물러나 공격을 시작하기 위해 진형을 갖추었다.

 

고작 100명이다, 단숨에 격파해.”

 

호탕하게 말한 것까진 좋지만 1 3천대 100명은 안 봐도 뻔하다.

 

놈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에 전개할 수 있는 병력은 한줄에 20명 정도일 겁니다. 경사도 심하긴 합니다만…….”

 

트리스탄도 딱히 긴장감은 느끼지 않는 듯했다.

이 녀석은 평소에도 없지만.

 

저렇게 당당하게 헛소리를 늘어놓는 걸 보아 병력의 숙련도에는 자신이 있을 게 분명해. 정면에서 부딪치면 희생이 커질 거다. 활부터 쏴서 놈들한테 피해를 줘라.”

 

한 줄에 20명이라고는 해도 궁병대의 경우 세로로 전개해서 화살을 쏠 수 있다.

그걸로 결판을 내는 게 가장 좋다.

 

이미 하고 있습니다.”

 

레오폴트는 이미 궁병대를 앞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보건대 적은 전원이 검과 방패를 든 상황……반격은 하지 못하리라.

 

발사!”

 

몇백개나 되는 화살이 적의 머리 위로 쏟아져내렸다.

적은 순식간에 풀썩하고……쓰러지지 않았다.

 

방어 자세!”

 

적은 순식간에 철 상자로 변해버렸다.

화살은 비처럼 쏟아져내렸으나 전부 다 방패에 가로막히고 있었다.

박히지 않고 튕겨나간다는 뜻은 저 방패가 금속제……상당한 무게일 텐데 방패를 들고 있는 모든 이들이 매우 간단하게 다루고 있었다.

 

……대단한 담력이로군.”

.”

 

잘 보니 적은 방패를 쥐고 있는 왼손으로 옆에 있는 병사를 지키는 중이다.

자기 자신은 오른쪽에 있는 병사의 방패가 지켜내는 것이다.

쏟아져내리는 화살 속에서 옆에 있는 남자에게 목숨을 맡기는 것……오랫동안 훈련을 받고 동료를 믿지 못하면 불가능한 짓이다.

 

다시 발사!”

 

다시 화살이 쏟아졌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틈 사이로 몇 자루는 박혔을 텐데 방패 중 단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발사!”

 

지휘관이 그렇게 소리친 순간이었다.

 

돌격―――!!”

 

화살이 발사됨과 동시에 적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계산하고 있던 건가?

 

……거리를 너무 좁혔군.”

 

적이 너무 쓰러지지 않은 탓에 궁병대가 초조한 나머지 거리를 너무 좁혔던 것이다.

방어 태세에서 돌격 태세로 바뀔 때까지 1초도 걸리지 않는다.

호령과 동시에 적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중이다.

저건 명령을 듣고 반응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미리 어떻게 움직일지 모든 이들이 파악하고 있던 것이다.

 

“! 엄청난 속도…….”

 

게다가 빠르다. 마치 멧돼지가 달려오는 것마냥 남자들이 달려오는 중이다.

 

예비 부대, 발사!”

 

하지만 우리 쪽도 단순히 실수만 되풀이하고 있던 건 아니다.

혹시 몰라 준비해 둔 100명 정도의 궁병대가 화살을 장전해 둔 채 대기 중이었다.

그 병사들이 후두둑 하고 화살을 발사했다.

방어 태세를 해제한 지금이라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이다.

 

치워라!”

 

남자들은 날아오는 화살을 검으로 일제히 떨쳐냈다.

화살 대부분이 가로막혔고 명중한 것은 고작 몇 발……심지어 팔에 화살이 박힌 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마냥 소리치면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숙련도……설마 일개 졸병까지?”

 

궁병대는 더 이상 사격을 시도할 수 없기 때문에 호위를 맡고 있던 보병이 반격을 시작했다.

 

궁병대를 후퇴시켜라! 보병대는 시간을 벌면서 후퇴…….”

아레스의 남자가 얼마나 강한지 알려주마아!!”

 

아군 지휘관이 지시를 내릴 틈도 없이 새빨간 망토를 두른 길드레스가 선두로 나서 달려들었다.

격돌한 순간, 적은 방패를 앞으로 내세운 채 일격, 휘청거린 아군 보병이 순식간에 쓰러지고 말았다.

 

약하군! 약하구나! 네까짓 놈들은 아레스에 오면 취사병으로도 못 써먹을 것이야!”

 

진형을 짜는 숙련도도 높은 수준이었으나 그보다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아군 보병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쓰러졌다.

가끔씩 시도한 반격도 방패에 간단히 가로막혀 아군이 역으로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게 강한 것이 길드레스……선두로 나서 아군 진영 한복판으로 뛰어들더니 방패로 한 사람을 때려죽이고 두 사람은 검으로, 한 번 더 몸을 회전시켜 한 사람의 목을 날렸다.

좌우에서 날아오는 창과 검은 전부 방패로 튕겨내는 중이다.

붉은 망토가 나부낄 때마다 피분수가 튀어오르고 아군이 쓰러졌다.

 

나의 무용을 보았느냐! 이것이 아레스의 남자다!!”

 

터져나오는 커다란 함성에 적들은 환호성으로 부응했고, 아군은 점차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적이긴 하지만 이런 사나이를 호걸이라 부르는 것이리라.

 

 

무슨……말도 안 되는…….”

 

세리아가 넋 나간 듯이 중얼거렸고, 보병대가 점차 뒤로 밀린 탓에 궁병까지 밀리기 시작했다.

지휘관은 필사적으로 후퇴하라고 소리쳤으나 길이 좁은 탓에 생각만큼 빠르게 이루어지진 않았다.

혹시 몰라 후퇴를 위한 공간을 비워두었으나 이 정도로 심하게 괴멸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궁병대한테 일단 닥치는대로 화살을 쏘라고 전해라. 닿기만 하면 돼.”

상당히 뒤쪽에 있습니다. 아군 오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알고 있어, 루나.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손실이 엄청 커질 거다. 오사해도 상관없으니까 쏴.”

 

내 지시가 떨어지자 수백개의 화살이 하늘을 갈랐다.

걱정한대로 적뿐만 아니라 아군의 머리 위에도 화살이 쏟아졌으나 적은 난전 속에서 화살을 맞으면 불리하다 판단한 건지 곧바로 진형을 바꾸곤 뒤쪽으로 물러났다.

 

부상자를 후방으로 옮겨라!” “고작 100명이잖아……대체 뭐냐, 이 피해는!”

 

압도적 소수의 적, 순식간에 해치워버릴 생각이었던 병사가 동요하는 중이다.

세리아가 필사적으로 돌아다니며 어찌저찌 수습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예상 밖이로군.”

 

안타깝게도……정예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 정도일 줄이야.”

거 봐요, 이 세상엔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니까요. 나도 대체 왜 이런 곳에 있는 건지…….”

 

트리스탄을 마이라가 노려봤지만 아군끼리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번 전투를 통해 알아낸 건 놈들의 무시무시한 숙련도다. 집단 행동도 엄청난 수준이지만 병사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 한 명 한 명이 달인이라 해도 될만큼 강력해.”

맞습니다. 심지어 포위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그렇지. 20명씩 나란히 서서 싸우다 보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거다.”

 

나는 레오폴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알고 있습니다. 적 중에 장창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병 돌격으로 해결하시죠.”

 

그래, 다음은 우리 쪽이 공격을 시작할 차례다.

 

 

쭉 늘어선 총 200의 창기병, 지형 때문에 가로 숫자는 10명 정도지만 그래도 기다란 창을 내지르고서 시작된 돌격을 보병이 막아내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아무리 아레스의 병사가 강력하다고 해도 말의 질량을 버텨낼 수 있을 리는 없으리라.

 

하드릿 공! 짓밟고 오겠다!”

 

선두에 나서는 건 이리지나다.

 

부탁하마.”

간다, 돌격이다! 궁병대의 원수를 갚아라!”

 

오오! 하는 함성소리가 터져나왔으나 순식간에 말발굽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 말 상대로는 어떻게 나오려나?

 

 

평범하게 생각하면 방패를 손에 쥐고서 방어 태세를 취하고 그 사이로 말의 다리를 노리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힘이 세도 달려오는 말이랑 부딪히면 방패째로 날아가 버릴 겁니다. 그 후엔 말발굽에 짓밟히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적은 기병이 등장했음에도 전혀 허둥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더 당당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선두에 서 있던 길드레스가 소리쳤다.

 

돌격――!”

뭐라고!?”

 

무심결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무려 놈들은 돌격해 오는 기병을 향해 방어조차 하지 않고 반대로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말도 안 돼, 말이랑 정면에서 부딪치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이제 끝났네요, 엉망진창이야.”

 

마이라와 트리스탄 모두 어이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레오폴트는 어딘가로 가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격돌의 순간이 찾아왔다.

 

, 날았다!?”

 

아레스의 병사 중 선두 20명이 갑자기 제자리에 서서 허리를 낮추더니 뒤에 따르던 병사가 그 등을 발판 삼아 차례차례 기병을 향해 도약했다.

무기를 약간 낮은 방향으로 겨누고 있던 창기병은 그 움직임에 대응하지 못하고 적병의 검에 맞고서 쓰러지기 시작했다.

곧바로 반격에 성공한 자도 있었으나 적은 펄쩍 뛰면서 방패로 창을 막아내고는 말과 병사를 베어냈다.

 

선두가 갑자기 정지한 탓에 후속 인원들도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돌진력이 사라지고 말았다.

제자리에 멈춰서 버리면 약간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는 해도 기병한테 그리 큰 우위는 없다.

터져나오는 비명소리는 전부 다 아군 쪽에서 나오는 것, 말도 여기저기서 쓰러지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오!”

끄아아아아아악!”

 

한층 더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친 진홍 망토가 말의 목을 끌어안고 부러트렸다.

그 위에 타 있던 기병은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맨손으로 말의 목을 꺾어버리다니 무지막지한 사내다.

 

……쯧.”

 

짜증이 솟구친 나머지 혀를 차자 세리아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알고 있어. 혼자서 돌격하진 않을 테니 걱정 말거라.

 

! 이놈들이!”

 

이리지나도 말을 잃은 건지 보병이 되어 창을 휘두르고 있지만 평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오히려 밀리는 수준이었다.

 

이리지나 씨가 졸병을 상대로 밀리고 있다니…….”

 

세리아가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오늘은 안 좋은 의미로 계속 놀라기만 하는군.

 

그녀는 필사적으로 싸우고는 있지만 한 명도 쓰러트리지 못한 데다가 약간 불리해 보인다.

이대로 가다간 자칫 당할 가능성도 있다.

 

 

후퇴해라……이대로 싸워봤자 이길 수 없어.”

 

어쩔 수 없겠군요…….”

뭔가 본 기억이 있는 전개인데……힘으로 밀려난다는 점에서.”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지휘관이 소리쳤고 기병대는 적의 추격을 받으면서 후퇴했다.

그 등 뒤에서…….

 

보았느냐, 하드릿이라는 녀석아! 이것이 아레스! 이것이 아레스의 사나이들이다! 와하하하하하!!”

 

주인을 잃은 말 두 필 위에 제각각 다리를 올려둔 길드레스가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저 남자……피피! 쏴서 죽일 순 없겠습니까!?”

한 번 해보겠다.”

 

피피가 당긴 활시위를 손으로 붙잡아 막았다.

전투는 끝났다. 여기서 저놈만 혼자 쏴죽여도 기분만 나빠질 뿐이다.

그리고 만약 그 공격을 막아내기라도 했다간 아군의 사기가 단숨에 떨어질 것이다.

 

조만간 해도 저물 거다. 오늘은 우리의 패배다. 얌전히 내일 전투를 대비해라.”

 

병사들의 동요도 상당한 수준이다.

고작 100명밖에 안 되는 적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고전하고, 전장 바닥에 굴러다니는 건 온통 아군의 시체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 참, 엄청난 복병이 튀어나왔군.

 

무언가 뒤쪽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던 레오폴트와 눈이 마주쳤다.

 

레오폴트, 내일은 이길 수 있나?”

틀림없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럼 됐어. 오늘은 그냥 자야겠군.

 

나는 이만 자야겠다. 세리아, 나중에 몸 좀 닦아주거라.”

, 예에. 물론 밤시중도 들어드릴 테니…….”

아니, 됐어. 저 녀석을 쓰러트린 다음 미친듯이 안아주지. 그 전까진 참아두마.”

 

나는 그 말만 남기고서 혼자서 내게 주어진 천막 안으로 들어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다음 빈 통을 발로 걷어찼다.

 

실은 상당히 화나셨네요…….”

그야 도발을 그렇게나 당했으니…….”

애초부터 얌전한 사람도 아니니까 말이지.”

 

시끄러워, 다 들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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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3살 여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영주민 160000  중심 도시 라펜 23000 린트브룸 4000

 

사군: 12100 -500

보병: 6500 기병: 850 궁병: 750 궁기병: 4000

대포: 18

 

재산: 금화 300 

 

경험 인수: 202  자식: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