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마그라드 전쟁⑤ 여러 개의 음모』
포트란델 포위망 마그라드 진지
포트란델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언덕 위에 설치된 천막 속, 포위망에 참가한 마그라드 군 사령관들이 회의라는 명목 하에 서로 고함을 치고 있었다.
“적은 안개 속을 뚫고서 이미 1만가량을 상륙시켰소. 사실상 공격은 와해된 상황, 포위망을 해제하고 방위선을 구축해야 하오.”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으로 포트란델 도시를 내려다보니 부서진 도시벽 파편을 쌓아올린 토대 위에 거대 석궁이 설치된 게 시야 안에 들어왔다. 심지어는 각 집 방 안에 궁병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더 이상 단순한 밀어붙이기 공격으로는 함락이 불가능한 상황이란 건 명백했다.
“무슨 소리요! 우리가 물러서면 동쪽 연안에 있는 수만의 적들이 단숨에 올라올 거란 말이오! 야전에서 우리보다 더 많은 숫자의 적들……심지어 하드릿 경이 이끄는 군대를 격파할 수 있단 말이오!?”
“후속 부대의 상륙은 수군이 막고 있는 게 아니었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놈들이 포트란델 안에 갇혀 있는 건 우리가 있기 때문이오. 뒤쪽으로 후퇴하면 순식간에 수군의 거점을 불태우러 갈 게 분명하오. 그 후엔 놈들은 얼마든지 건너올 거요.”
“남부 방면에서 상륙은 계획대로 선봉을 고립시켜 격멸하는 데까진 성공했다고 들었소. 하나 그럼에도 기후가 회복됨에 따라 현재는 간신히 상륙을 저지하고 있는 게 고작이오. 더 이상의 증원은 기대할 수 없소…….”
“애초에 약 1만 정도의 적을 상대로 3만의 병력을 쏟아부었는데 해결하지 못하고서 원군을 부르다니, 우리의 무능함을 광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소!”
“어쩔 수 없는 일이오……점차 붕괴 중이라고는 해도 포트란델은 도시벽이 있는 도시이니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중장보병이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지 않소.”
“포위망을 계속 유지하다보면 식량과 화살도 바닥을 보이지 않겠소?”
“시내에는 충분한 양의 식량이 남아있을 것이오. 게다가 수군은 대규모 운송까진 저지할 수 있으나 밤길을 뚫고서 보급하는 나룻배 몇 척까진 저지할 수 없소. 계속 강 위에서 머무를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오.”
회의는 한순간 기분 나쁜 정적에 휩싸였다.
“……이대로 교착 상태를 계속 유지하다 강화 조약을 맺는 건 불가능한 것이오?”
강화라는 단어를 꺼낸 한 사령관은 순식간에 매도의 폭풍에 휩쓸렸다.
“개전 직전의 증세와 징병으로 민중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잊었소? 그리 간단히 강화를 했다간 우리가 먼저 처형당할 거요.”
“애초에 고르도니아가 받을 리 없소. 그 나라의 왕은 냉혹하고 탐욕스럽지. 우리를 병합하기 전까진 멈추지 않을 것이오.”
“어쨌거나 손가락만 빨고 있어도 별 수 없는 건 마찬가지. 아무튼간 소규모 공격을 되풀이하면서 적들의 약점을 찾아내시오, 기회가 있으면 야습도 실행하시오.”
“그것밖에 없겠소…….”
“분하긴 하나…….”
결국 회의는 현재 제대로 된 수단이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최선이라는 걸 확인하고서 종료되었다.
전황은 파국적이라 보기엔 힘들지만 결코 좋은 상황이라 하기에도 힘든, 아주 사소한 계기 하나로 모든 게 박살날 수 있는 상황이란 걸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다.
◇◇◇◇◇◇◇◇◇◇◇◇◇◇◇◇◇◇◇◇◇◇◇◇◇◇◇◇◇◇◇◇◇◇◇◇
몰트 왕국 왕도 비아드
궁전 복도를 거구의 남성이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근육질의 탄탄한 신체는 보는 이가 힘들 것만 같이 연약하게 벽을 짚으면서 천천히, 불안정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남자를 알아본 경비위병이 깜짝 놀라더니 차렷 자세를 취했다.
“브루터스 각하! 돌아오신 것입니까!?”
“그래, 계속 누워만 있을 순 없으니 말이야.”
브루터스는 벽에서 손을 떼어내고는 등을 쭉 폈다.
그것을 본 병사는 그가 회복됐단 사실을 확신하고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볼일이 있으니 이만 가겠다. 직무에 힘쓰도록!”
“예!”
병사가 자리를 떠나자 브루터스는 다시 벽에 손을 짚고서 거친 숨을 몰아내쉬었다.
“각하! 무리하셔선 아니 됩니다!”
어깨를 부축한 것은 그의 비서관이었다.
자기 간호까지 해 준 그녀에겐 몸 상태를 감출 수 없다.
“내장까지 다치신 부상입니다. 원래 같으면 앞으로 1달 정도는 안정을…….”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파블로 전하가 병사를 모으는 중인데……그 멍청이는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는 생각인 건지.”
자기가 먼저 추켜세워 반란 주동자로 내세운 파블로이긴 하지만 그만큼 더더욱 무능하단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조국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이용한 것뿐, 존경심도 경애심도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진짜 바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으니까요.”
그렇게 두 사람은 파블로의 개인실 앞에 도착했다.
“전하! 그만두시옵소서, 아야!”
“시끄럽다! 내 고귀한 씨를 뿌려주겠다는 것이니라. 기쁘게 생각해라, 이 망할년아!”
“꺄아아악―!! 안 돼애애애애!!”
“전하, 실례하겠습니다.”
실내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무시하고서 브루터스가 살짝 강하게 문을 두드렸다.
욕설을 내뱉는 목소리가 들리고는 방 안이 조용해지더니 메이드가 밖으로 나왔다.
옷은 찢어졌고 얼굴은 얻어맞은 건지 부풀어 있었다.
심지어 드레스 가랑이 부분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처녀혈 같은 그런 수준의 핏자국이 아니라 좀 더 직접적인, 날붙이 때문에 생긴 핏자국처럼 보인다.
메이드는 울면서 바닥을 구르듯이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쯧……한창 좋을 때에……오, 브루터스. 드디어 일어났느냐? 허약한 녀석 같으니.”
“미숙한 몸이온지라 면목 없나이다.”
“그래서 무슨 볼일이냐? 내 즐거움을 방해한 이상 그에 걸맞은 이유가 필요하단 건 알고 있겠지?”
브루터스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분노란 무릇 기대가 배신당했을 때 일어나는 법이다.
“예, 전하의 이름 아래 왕도에 군사가 집결 중이고 심지어는 농촌 마을에서 징병까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길래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가르쳐 주십사 하여 찾아왔사옵니다.”
곧바로 파블로의 표정이 반짝였다.
“그래, 아주 잘 물어봤구나! 실은 얼마 전 마그라드로부터 사자가 왔느니라.”
“마그라드? ……말씀이옵니까?”
마그라드는 북부, 심지어 몰트와 땅으로 이어진 국가도 아니기 때문에 관계가 매우 희박하여 국민들은 대부분 서로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 네놈도 침상에 있었다고는 해도 고르도니아와 마그라드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을 테지? 그 전쟁에서 고르도니아가 첫 전투에서 대패, 패배하는 건 시간 문제라더구나.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이번이 영토를 확장시킬 수 있을 절호의 기회! 북쪽에 있는 가증스러운 하드릿의 영지를 내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이야!”
브루터스는 한순간 머리가 새하얘지는 감각을 느끼고서 정말 백발이 된 건 아닌지 확인해 보았다.
“하하하! 너는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종군할 수 없을 테지! 내가 직접 지휘를 다뤄서 놈들을 박살을 내주도록 하마. 전과를 올리면 다른 놈들도 일라리오보다 내가 더 왕에 걸맞은 인재라는 걸 인정할 터!”
“전하,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 마그라드 자신이 말하는 고르도니아의 대패라는 정보를 그대로 믿어도 될 리가…….”
전쟁 당사국의 발언을 그대로 믿다니.
브루터스는 파블로가 얼마나 저능한지 그 정도를 얕보고 있었다.
그리고 초조한 마음 때문에 무심코 정론을 내뱉고 말았다.
“시끄럽다! 하드릿……그놈이 자리를 비운 건 확실한 정보란 말이다! 지금 공격하면 모든 걸 집어삼킬 수 있을 것이야! 부상 때문에 마음마저 약해졌느냐, 브루터스!”
“설령 지금 그렇다 한들 전쟁이 끝나면 고르도니아와 맞붙게 될 것이옵니다!”
“시끄럽다, 시끄러워! 전쟁에서 중요한 건 기세라 하지 않았느냐! 지금이 바로 그때, 겁쟁이는 침대에 가서 누워있기나 하라!”
파블로는 끝내 브루터스를 방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그와 비서관이 방 밖으로 나간 뒤, 방 안에서 물건을 때려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박살내고 싶은 건 정작 우리 쪽인데…….”
비서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헬비], 큰일났구나.”
“네, 확실히 하드릿 경도 종군하고 있을 테니 취약한 건 맞습니다. 잘만 하면 라펜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죠……하지만.”
“하드릿 경은 고르도니아의 중진이자 대귀족, 운 좋게 영토를 확보한다 한들 마그라드와 전쟁이 끝나면 불처럼 화가 난 그놈과 고르도니아 군이 쳐들어올 거다.”
“고르도니아 군은 상비군만 해도 10만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나라와 비교하는 게 잘못된 수준이죠.”
몰트 왕국의 군대는 2000, 비상시엔 1만까진 모을 수 있을 테지만 어중이떠중이 집단에 불과하다.
“게다가……아마 셀레스티나 님께서도 계실 테지.”
헬비와 브루터스 모두 셀레스티나가 가증스러웠던 건 아니다.
단지 이대로 가다간 조국이 멸망한다는 생각에 배제하기로 결단한 것뿐이다.
병사들 중에선 아직까지 셀레스티나한테 죄악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병사들의 눈앞에 다시 그녀가 나타나면 어찌될지, 심지어 이번엔 조국을 바로잡겠다는 대의명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병사들한테 소집을 걸어서 되도록 저지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고르도니아와 싸웠다간 나라가 멸망할 거다.”
마그라드 사자가 직접 말하는 전쟁의 승리라는 단어를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었다.
오히려 이 먼 나라의 소국까지 사자를 내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한 전조라고 볼 수도 있었다.
“최선은 다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노력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며칠 후, 파블로의 이름으로 부상 치료를 위해 브루터스는 왕도 밖에서 장기 요양을 지낼 것, 그리고 그의 밑에 있는 군 부대의 직함이 일시 정지됐음을 발표한 것이다.
◇◇◇◇◇◇◇◇◇◇◇◇◇◇◇◇◇◇◇◇◇◇◇◇◇◇◇◇◇◇◇◇◇◇◇◇◇
개전 초두 노스테리에스 강 유역
“[리드] 선장님, 여기가 물살이 느립니다. 닻을 내리고 대기하시죠.”
“그래, 그게 좋겠군.”
마그라드 수군의 중형 전투선 카지스는 닻을 내리고서 제자리에 정지했다.
되도록 전방에서 배를 눈치채지 못하게끔 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정말 오긴 하는 겁니까?”
“본국에서 온 연락에 따르면 이 정보는 틀림없다더군.”
고르도니아와 전쟁이 이어지는 와중, 본래는 한 척의 전투선도 가만 놔두고 있을 여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지스가 적의 상륙 예상 지점에서 떨어진 곳에 와 있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지난번엔 귀중한 고성능 보우건과 함께 금화 몇천닢을 약탈했지.”
“전쟁이 벌어져서 당당하게 고르도니아의 상선을 노릴 수 있게 됐으니 말이죠.”
마그라드는 상륙 전력에서 우세하다고 보긴 힘들지만 강 위에선 고르도니아를 압도하는 중이다.
당연히 고르도니아의 하천을 이용한 무역로는 전부 사라졌지만, 아직까지도 육로를 이용한 무역은 이익을 크게 내기 힘들다 생각한 상인들이 몰래 하천으로 드나드는 경우도 있다.
귀중한 무역품을 통째로 입수할 수 있다면야 전투선을 파견하는 것도 충분히 이유 있는 선택이었다.
카지스는 전년도 전투 때도 고르도니아의 대형 전투선을 해치운 배다.
원래 선상을 약탈하기엔 좀 과분한 전력이지만 이번 임무는 그만큼 특별하단 뜻이다.
“전쟁 땐 미친듯이 돈을 쓰게 되는 법이지. 고르도니아보다 빈곤한 우리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더 돈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선장이 웃었다.
그때, 정찰병이 소리를 질렀다.
“전방, 배가 보입니다! 대형 선상……*흘수가 깊습니다! 무거운 짐을 잔뜩 싣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흘수: 흘수 또는 끽수는 선박이 물 위에 떠 있을 때에 선체가 가라앉는 깊이 즉, 선체의 맨 밑에서 수면까지의 수직 거리를 가리킴)
“온 건가! 깃발이다, 깃발을 먼저 확인해라!!”
“……깃발은……오르가 연방기! 돛대뿐 아니라 함수와 함미에도 두 개씩 달려 있습니다!”
“쓸데없이 많은 깃발……틀림없군, 저 배다.”
일반적으로 국적을 구별하기 위해 쓰이는 깃발은 돛대에, 그것도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하나만 두는 법이다.
함수와 함미까지 깃발을 세워두다니 그냥 이상할뿐이다.
카지스는 이번에 오로지 이 배 한 척을 사냥하기 위해서 이곳까지 찾아왔다.
전쟁 비용으로 쓰기 위해 연방 상회에 맡겨두었던 금화를 고르도니아 본국으로 옮기는 수송선, 그 안에 탑재되어 있는 건 수십만닢 분량의 금화와 금덩어리일 게 분명하다.
습격을 회피하기 위해 오르가 연방의 깃발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틀림없는 고르도니아의 배다.
“정보대로군. 틀림없다……호위선이 한 척, 이것도 미리 들은 정보대로야.”
“본국의 정보망은 훌륭하군요.”
기분이 좋아보이는 선장을 보며 부관이 웃음 섞인 말투로 말했다.
“듣기로는 고르도니아의 중핵까지 파고들은 간첩이 있다더군. ……아마 탐욕스러운 상인쯤 되는 위치일 테지만, 굳이 그걸 알려고 하는 건 우리의 임무에서 벗어나 있지.”
“맞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단 하나, 조국의 승리를 위해 적을 처단하는 것뿐입니다!”
“아니지 아냐, 이번엔 처단하면 안 돼. 배는 멀쩡히, 선원만 전부 죽이는 거다. 돈이 바다에 빠졌다간 엄청나게 아깝거든.”
막대한 금화를 빼앗는다는 건 고르도니아에게 먹일 커다란 타격이기도 하지만 그대로 약탈에 성공하면 의미가 2배로 커진다.
“제자리를 사수하라! 단숨에 옆을 찔러서 놈들의 허를 찌른다!”
“투석기와 거대 석궁을 준비해라! 단, 불은 사용하지 마라! 불탔다간 걷잡을 수 없을 거다.”
선원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카지스는 순식간에 속도가 붙었다.
맨 처음엔 맨눈으로 아주 간신히 보이던 상선이 순식간에 커져가기 시작했다.
“저놈들, 도망치지도 않는구만. 얼빠진 놈들이야!”
“가짜 깃발을 내세워서 안심한 게 틀림없어. 자, 놈들한테 우리의 힘을 보여줘라!”
카지스가 코앞까지 다가가자 상선에서 승무원이 얼굴을 내밀고는 떡하니 입을 벌렸다.
“발사!”
투석기에서 철구가 날아가고 화살이 상선 갚판을 후두둑 하고 덮쳤다.
“우왓! 진짜 쐈잖아!”
“어째서!? 우리는……끄악!!”
공황 상태에 빠진 승무원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흥, 고르도니아 놈들은 전부 몰살이다. 적한테 전의는 없는 걸로 보인다, 올라타라!”
“오오오오오―――!!”
순식간에 밧줄을 내걸더니 카지스에 승선해 있던 병사들이 적의 배 위로 올라탔다.
호위선처럼 보이던 배도 카지스를 방해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할뿐이었다.
“나도 따라가마! 병사가 금화를 슬쩍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하하하, 그럼 선장님께서 전부 다 받아가신 다음 나중에 한 턱 쏘시죠.”
리드는 병사들보다 훨씬 익숙한 모습으로 밧줄을 사용해 적의 배 위로 올라탔다.
오랫동안 갈고닦은 기량은 선장이 된 지금도 전혀 녹슬지 않았다.
옮겨탄 배 위에선 이미 학살이 시작되어 있었다.
맨손, 혹은 아주 약간의 무장밖에 갖고 있지 않던 선원들은 순식간에 베여죽어나갔다.
“리드 선장님! 금방 끝날 겁니다.”
“그래,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돈이다. 놈들이 배에 불이라도 질렀다간 큰일이다. 어서 찾아내라!”
“예! 지금 몇 사람과 함께 배 아래쪽을 탐색 중입니다!”
“맡겨두지. 나는 여기서 한바탕 벌이고 있겠다!”
그렇게 말하면서 리드는 검을 쥔 선원 중 한 명을 서걱 하고 베어냈다.
“고르도니아 개자식들, 살아서 육지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마라!”
“이 새끼들……이딴 짓을 하고서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하느냐! 난 긍지 높은 알렌스키 일족이다!”
“아직도 헛소리를 지껄이는군, 거짓말 치지 마라!”
살짝 좋은 옷을 입은 선원을 베어냈다.
상황이 불리하다고는 해도 다른나라의 배로 위장을 하는 건 불법입과 동시에 뱃사람으로서의 긍지마저 더럽히는 행위다.
평생을 뱃사람으로 살아온 리드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갑판에선 한동안 지옥도가 펼쳐졌고, 거의 대부분의 선원들이 죽고서 피바다가 생겼다.
“얼추 마무리됐군. 그나저나 배 밑으로 간 놈들은 뭘하고 있는 거지? 얼른 끝내지 않으면 해가 저물 텐데.”
리드는 방금 베어낸 선원의 시체 위에 걸터앉고서 지루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폈다.
그때, 배 밑으로 이어지는 계단 위를 다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끝났나……너희 대체 뭘 그리 꾸물대면서 “큰일났습니다, 선장님!!”
선원들은 다들 엄청난 뱃멀미에 시달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지? 설마 금화가 없었던 건…….”
“배 아래쪽에 적재되어 있던 건 와인통입니다! 흘수가 깊었던 건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수병이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내밀었다.
리드는 그 종이를 펼쳤다.
“관세서……벨스크발……미실행…적재 화물……와인통.”
리드는 종이를 내던지고 선장실로 보이는 방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실내를 한참 뒤지더니 자물쇠가 잠긴 서랍을 책상째로 박살낸 뒤 내용물을 헤집었다.
“여기 있다! 선주 증명서! …………좆됐다. 좆됐다고! 씨발!!”
갑자기 불어온 돌풍에 휩쓸려 종이는 하늘 위로 날아갔다.
[증명서 오르가 연방 상선 선주 알렌스키 남작 배 이름 루시타니아]
호위병이라 생각했던 그 배는 이미 선수를 나부끼며 점점 멀리 떨어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미 넋이 나간 카지스의 선원들에겐 그 배를 쫓아갈 여력 따위 남아있지 않았다.
◇◇◇◇◇◇◇◇◇◇◇◇◇◇◇◇◇◇◇◇◇◇◇◇◇
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2살 봄
제3군단 사령관
휘하 부대: 42700
포트란델
왕국군: 6400
동쪽 연안
사군: 8000(실전 부대만)
보병: 2500 기병: 500 궁병:700 공병: 300 궁기병: 4000
대포: 10문(정규품 1문)
왕국군: 2개 병단 20300
인근 제후군: 8000
엄밀히 말하면 주인공 지휘하에 있는 건 아님
별동대: 라펜 방위대 1000
군 부하: 레오폴트(부사령관) 세리아(부관) 마이라(지휘관) 이리지나(지휘관)
루나(궁기병 지휘관) 피피(임산부 배) 트리스탄(파수꾼) 기드(위중)
현재 지점: 포트란델
전과: 포트란델 함락
'왕국에 이르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국에 이르는 길 제155화『마그라드 전쟁⑦ 노르 평원 결전』 (0) | 2024.08.13 |
---|---|
왕국에 이르는 길 제154화『마그라드 전쟁⑥ 하얀 함대』 (1) | 2024.08.12 |
왕국에 이르는 길 제152화『마그라드 전쟁④ 지옥의 72시간』 (2) | 2024.08.10 |
왕국에 이르는 길 제151화『마그라드 전쟁③ 열화의 48시간』 (2) | 2024.08.09 |
왕국에 이르는 길 제150화『마그라드 전쟁② 시작의 24시간』 (0) | 2024.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