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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380화『중앙 평원 통일 전쟁 ⑤ 제2차 잔 드라 합전, 초토화 끝에』

380화『중앙 평원 통일 전쟁 ⑤ 제2차 잔 드라 합전, 초토화 끝에』

 

도시벽이 공성 병기에 무너진 뒤, 흙먼지가 걷히자마자 적의 기병이 파손된 부분으로 뛰어들었다.

 

나도 그에 대항하듯 장검과 방패를 손에 쥔 채 슈바르츠의 속도를 높였다.

호위대와 세리아, 이리지나, 세크리트도 내 바로 뒤를 따라오는 중이다.

 

이까짓 도시, 한 주먹거리도 안 된다! 단숨에 처리해라!”

얼른 도시를 함락시키고 시외전을 도우러 가야 한다. 여기서 시간 낭비 하지 마라!”

 

어지간히 얕잡아 보는군.

잔 드라 정도 되는 도시의 벽을 무너트렸으니, 이미 함락한 것처럼 발언하는 그 심정도 이해는 간다만.

 

세상 만사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주지.”

 

적은 1 5, 우리 쪽은 3. 숫자만 보면 절대적 불리지만 그 부분은 이 도시 지형을 활용해서 어떻게든 메꿀 생각이다.

 

실제로 지금도 돌입 중인 적의 기병도 길목 한번에 들어올 수 있는 건 다섯 명 정도다.

도시벽이 무너졌다 해도 애초에 잔 드라의 도로가 그리 넓지 않다.

 

이 정도라면 호위대만으로도 충분해. 그렇지?”

물론입니다, 족장님!”

 

기드는 힘차게 답했고, 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순간 크리스토프가 보인 것 같기도 한데, 기분 탓이었다.

놈은 이미 하늘의 별이 됐으니.

 

정면에 적 중기병!”

겁먹지 마라! 고작 100 정도밖에 안 되는 기병이 뭘 할 수 있겠나.”

, 야아. 저기 정면에 있는 커다란 말……존나 큰 검……설마!”

 

적이 내가 선두에 있단 사실을 눈치 챈 모양이다.

대열이 살짝 흐트러진 것처럼 보였는데 지휘관처럼 보이는 사내가 나를 향해 창을 겨눴다.

 

대장이 선두에 서다니, 훌륭한 마음가짐이로구나! 승부다!”

그래, 덤벼라.”

 

서로 마주본 채 돌격 중이기에 거리는 단숨에 좁혀진다.

상대방이 창을 치켜들자 나도 장검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강적을 쓰러트려 폐하께 내 충성심을 증명하겠다! 받아라――!!”

 

상당히 근성 있는 훌륭한 지휘관이었다.

 

적의 창은 정확하게 내 가슴을 노렸다.

나는 몸을 틀어 방패를 든 왼손으로 찌르기를 튕겨낸 뒤, 오른쪽 손에 쥐고 있던 장검을 내질렀다.

 

크헉!”

 

두 사람 분량의 속도가 실린 카운터 공격에 용감했던 사내는 반응하지 못했다.

손에 쥐고 있던 내 장검이 놈의 배 위에 꽂혀 등 밖으로 길쭉하게 튀어나왔다.

 

잘 가라.”

 

한 마디 건네고 검을 하늘 위로 휘두르자 쑥 하고 빠져나간 남자가 천천히 공중을 맴돌더니 민가 지붕 위로 떨어졌다.

 

지휘관 님…….”

, 겁먹지 마라. 적장이 눈앞에 있는 상황이라고!”

 

한 순간 발이 멈춘 적들이 자기들을 고무하듯 소리치면서 다시 달려들었다.

 

족장님께 보여드릴 기회다!”

돌격해라!”

 

호위대도 이에 질세라 큰 소리를 외치며 뛰어들더니 순식간에 난전이 벌어졌다.

 

에잇!”

 

기드가 적의 참격에 마찬가지로 검을 날려 막아낸 뒤, 텅 빈 옆구리를 베어냈다.

세리아의 기술이랑 비슷하긴 하지만 힘이 더 센만큼 기드가 더 거세게 나설 수 있는 모양이다.

 

흐아압!”

 

맥이 전투 망치를 내리쳤다.

방패로 막아낸 적은 방패째로 머리가 쪼개졌고, 몸을 비틀어 피한 적은 말이 망치에 당해 바닥을 굴렀다.

괴력밖에 없는 공격이지만 대개의 경우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역시 적들이 가장 많이 노리는 건 바로 나다.

 

오오오오오!”

엿차.”

 

적의 참격을 피하고 장검으로 투구를 쪼갠다.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투구와 머리가 깔끔하게 쪼개졌다.

정밀도가 모자랐군.

 

흐라압!”

어이쿠.”

 

몸통을 노리고 들어온 적의 창을 왼손으로 움켜쥔 뒤 억지로 끌어당겨 장검을 목구멍에 쑤셔박았다.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쏟아내며 말에서 떨어지는 적.

속도가 부족하군.

 

으아아!”

.”

 

목을 노리고 들어온 횡베기를 장갑으로 튕겨낸 뒤 반대로 장검을 휘둘렀다.

깔끔하게 날아간 대가리가 몇 차례 회전하면서 공중을 맴돌았다.

손에 저린 느낌도 없군. 힘이 너무 부족해.

 

, 야아아아압!”

어이쿠, 위험해라.”

 

소리치면서 내게 여기병이 하나 달려들었지만 돌진과 공격 타이밍이 어긋났다.

슈바르츠가 슬쩍 앞으로 나와 몸통 박치기를 날리자 말은 넘어졌고 여자는 바닥을 크게 굴러 민가에 처박혔다.

머리가 부족했군.

 

다음엔 뭐가 부족하려나?”

 

주변 적을 노려보자 적들이 슬쩍 뒤로 물러나며 다른 호위대원들을 상대하러 떠났다.

근성이 부족한 모양이다.

 

 

승부다!”

와하하하!! 승부라, 좋지!!”

 

크게 소리치면서 이리지나한테 적이 달려갔지만, 이리지나가 몇 배는 목소리가 더 컸다.

 

타앗! 야압!”

 

적은 가슴과 목을 노리며 재빠르게 찌르기를 내질렀지만 이리지나의 창이 모든 공격을 튕겨냈다.

 

! 흐읍흐읍흡흡흡!!”

 

그리고 이리지나의 반격이 시작된다.

얼굴, 가슴, , 배에 날아가는 태풍과도 같은 연속 찌르기. 심지어 그냥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이리지나의 괴력이 그대로 실린 탓에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적의 자세가 무너져내렸다.

 

끄악!”

 

적의 몸이 흔들린 순간, 빈틈이 생긴 허벅지에 창이 꽂히며 적이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이러면 끝났군.

 

흐라압!”

 

난전 중에서도 벼락처럼 울려퍼지는 이리지나의 고함소리, 그리고 동시에 적이 창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이리지나는 완전히 꼬챙이가 되어버린 적을 들어올린 뒤 땅바닥에 내던졌다.

 

와하하하하!! 잡았다―!!”

 

기분 좋게 창을 휘두르면서 이리지나는 다음 적을 향해 움직였다.

믿음직스럽긴 하지만 다치진 말라고.

 

 

, 빠르다!”

네가 느린 거다.”

 

세크리트의 쌍검이 숨 쉴 틈도 없이 적을 덮쳤다.

방패와 검을 이용해 열심히 막아내던 적은 끝내 속도가 부치기 시작했다.

놈의 방패가 튕겨 날아가고, 검이 손에서 날아간 뒤에 오른손, 왼손 모두 잘려나가더니 마지막엔 목이 떨어졌다.

 

늘 그렇긴 하지만 세크리트는 쓸데없이 적을 지나치게 해체한다.

 

너한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진 않군.”

 

딴청을 피우고 있던 내게 적이 달려들었다.

물론 주의는 기울이고 있었기에 허를 찔리진 않는다.

 

!”

 

장검을 내리치자 머리가 박살나며 오른손이 날아갔다. 뒤이어 몸통이 절반으로 쪼개지며 다양한 것들이 주변에 튀었다.

 

내 쪽은 그냥 멋대로 상대방이 터져나가는 거라고.”

 

 

반면 세리아는 굉장히 깔끔하게 싸운다.

 

야압!”

 

세리아는 적의 참격을 흘려보내고 겨드랑이 쪽에 검을 꽂아넣었다.

 

커흑…….”

 

가느다란 검이 겨드랑이와 가슴을 관통하자 적은 작게 신음하며 목숨을 잃었다.

 

이년이!”

 

또다시 공격을 날린 적의 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한 뒤 손목을 찢어버린다.

철철 흐르는 피를 보고 허둥대는 적의 목덜미를 스쳐지나가듯 그으며 경동맥을 베어버렸다.

 

하앗!”

 

세리아의 활약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품에서 꺼내든 단검을 눈앞에 있던 적에게 던지고 놈이 황급히 공격을 튕겨낸 틈을 타 투구 빈틈……눈구멍 안에 검을 찔러넣었다.

 

매끄러운 전투법이다.

우리랑 다르게 피도 전혀 묻지 않았다.

 

어떠냐는 듯이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는 세리아.

 

멍청한 놈, 딴청 피우지 마라.”

 

이겼다는 듯 뒤에서 덮치려던 적의 목을 세크리트가 힘차게 날려버리자 세리아는 정수리 부근부터 몽땅 피를 뒤집어 써서 새빨갛게 변하고 말았다.

 

…….”

불만이라도 있는 거냐?”

 

목숨을 빚졌는데 불평할 수도 없는 노릇, 그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뺨을 부풀리는 세리아.

서로 지켜주면서 싸운다면야 나도 안심이지.

 

 

숫자는 적지만 실력이 뛰어난 호위대를 앞에 두고 적은 일방적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적의 공세가 완만해졌다.

 

고작 이 숫자를 못 뚫는다고!?”

어쩔 수 없지, 기병을 뒤로 빼라! 길이 좁아서 제대로 싸울 수가 없군.”

창병을 투입해라. 길에 한데 서서 창진을 짜라!”

 

적 기병이 물러나고 그 대신 창병이 길을 한가득 메우며 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병력이 창을 앞으로 내지르면서 전진하는 중이라 그리 쉽사리 막아설 순 없다.

 

일단 막아내긴 했군.”

 

우선 기병은 막아냈다.

창병들은 속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단숨에 유린당할 걱정은 없다.

 

전부 다 말에서 내려라.”

 

여기까진 정석대로다.

애초에 시가전에서 말은 쉽사리 쓰기 힘들다.

 

창진을 짜라!”

틈을 벌이지 마라. 창끝으로 길을 뚫어야 한다.”

 

길을 한가득 메운 적들이 튼튼한 창진을 짠 채 앞으로 다가온다.

수많은 창날이 우리를 겨눈 상황. 병사 숫자가 많기도 하고 앞뒤 두께도 꽤 두꺼워서 쉽사리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말에서 내린 호위대가 방패를 손에 쥔 채 맞섰으나, 압력을 느끼고서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단순히 좁은 길일 때 얘기지만 말이야.”

 

내가 슬쩍 손을 들었다.

 

신호다.”

일제히 가라.”

 

큰 도로 양옆에 있던 상점, 민가 지붕 위에 매복 중이던 아군이 일어나 돌과 통나물을 일제히 떨어트렸다.

 

위쪽이다! 위쪽을 조심해라!”

대열을 무너트리지 마라――끄엑!”

 

적의 진형이 흐트러지며 압력이 약해졌다.

장창병은 두 손으로 무기를 드는 탓에 방패를 들 수 없다.

위쪽에서 물건을 던져대도 막아낼 수단이 없다는 뜻이다.

 

좋아, 적이 겁 먹었다! 밀어붙여!”

 

밀리고 있던 호위대가 반대로 적을 다시 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팔을 치켜든 채 잠시 동안 움직임을 멈추고 여운을 맛봤다.

 

에이길 님?”

방금 그건 지혜로워 보였지?”

 

손을 들어 책략 신호를 주는 게 이토록 기분이 좋을 줄이야.

 

준비한 건 트리스탄이라는 놈이지만 말이야.”

 

세크리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도 같이 가야겠군.”

 

상황을 스윽 둘러보았다.

 

정면 도로에선 호위대와 적이 한 데 뭉쳐 싸우는 중이다.

그쪽 지붕 위에 있는 아군이 돌멩이나 창 같은 걸 던져대고 있긴 하지만, 방패를 쥔 적의 보병이 장창대를 돕기 시작하면서 첫 충돌 때만큼 효과가 나오진 않는다.

 

평범하게 생각해 보면 정면에서 맞서야 할 상황이지만…….”

 

저렇게 꽉 끼어있는 상황에서 힘껏 검을 휘둘렀다간 아군까지 통째로 죽어버릴 것 같다.

소극적으로 싸울 거면 내가 갈 의미는 없다. 오히려 방해될 게 뻔하다.

 

따라서 지붕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미리 준비해 둔 사다리를 이용해 지붕 위로 올라간 나는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갑니다!”

 

세리아가 단검과 미리 준비해 둔 돌멩이를 던졌다.

 

적은 이미 지붕에서 날리는 공격을 방어하는 중이었기에 대부분은 소용이 없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적의 집중력이 우리 쪽에게 쏠리는만큼 정면에 있는 아군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 무슨 도적 같은 전투법이군.”

 

세크리트는 창과 어디서 갖고 온 건지 알 수 없는 나대 같은 것들을 계속해서 던졌다.

 

그녀의 투척술은 세리아보단 정밀도가 떨어지지만 관절이 반대로 꺾인 게 아닌가 착각하게 될만큼 구부러진 팔이 힘껏 날리기 때문에 위력 자체는 차원이 다르다.

 

방패로 막아내도 자세가 무너지면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적은 한층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실제로 회전하면서 날아오는 커다란 나대가 적의 목을 날려버리고 그 안쪽에 있던 적 창병의 얼굴에 꽂혔다.

 

나는 여기다!!”

 

이리지나는 투척을 잘 못하기 때문에 창을 쥔 채 지붕 난간에 섰다.

구석에 있는 적을 창으로 노리며 이쪽으로 올라오려 하는 적들을 꿰어 죽인다.

 

나도 보여주도록 하지.”

 

이에 질세라 나도 투창을 있는 힘껏 던졌다.

 

빗나갔군.”

 

창이 회전한 탓에 손잡이가 적한테 맞고 말았다.

 

이번엔 단검을 던졌다.

 

또 빗나갔잖아.”

 

적이 방패를 단단히 쥐고 있던 탓에 튕겨나가고 말았다.

적이 방패랑 같이 뒤집어지긴 했지만, 검 자체가 워낙 가벼워서 내 힘으로도 뚫진 못한다.

 

제기랄!”

 

혼신의 힘을 실어 돌을 던졌다.

하지만 열받아서 던진 탓에 손이 미끄러져 돌이 수평으로 날아가더니 반대쪽 지붕에 맞았다.

 

우왓!”

좆될 뻔 했네!”

 

아군이 깜짝 놀라며 뒤집어지더니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이쪽을 쳐다봤다.

 

아깝군, 맞출 수 있었는데.”

에이길 님을 약올리지 마세요!”

 

일일이 세크리트가 딴지를 걸 때마다 점점 화가 치솟는다.

 

오늘은 뭘 해도 안 풀리는 날이군.

아니, 애초에 무기가 너무 작은 게 문제인가?

 

통나무는……처음 공격할 때 전부 떨어트렸군. 그럼 밑에 있는 민가에 더 좋은 무기는 없나?

――있잖아.

 

 

흐그아아아아악! , 뭐야 이게……아궁이!?”

왜 이런 게 날아오는 거냐고!”

 

고속으로 날아간 바위 아궁이가 적을 일렬로 죽 쓸어버렸다.

 

이게 말이 돼!? 끄악!!”

아궁이는 던지라고 있는 게 아니라고!”

 

목제로 된 대형 장롱이 적의 한가운데에 떨어져 파편이 흩어졌다.

 

허둥대지 마라! 가구를 던진다는 건 적이 괴로워하고 있다는 증거――끄윽.”

지휘관 님이 찌부러지셨다!”

 

높아 보이는 아저씨의 동상이 말 위에 타고 있던 남자한테 부딪쳐 으깨진 고깃덩이로 바뀌었다.

 

……어이가 없네요. 그래도 굉장합니다.”

적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중이다!”

 

세리아와 이리지나의 칭찬을 들으면서 더욱 여러 물건들을 집어던졌다.

 

엄청난 무게의 물건이 훅훅 날아가고 있어서 그런지, 적이 지붕에만 온 신경을 쏟아붓는 덕에 호위대는 편하게 싸우고 있는 모양이다.

 

참고로 세크리트는 동상을 던지기 시작했을 즈음부터 웃음을 터트렸다.

너도 싸워, 뭐하려고 따라온 건데.

 

 

적이 흐트러지고 있습니다. 공간이 생겼습니다!”

 

세리아가 말한대로 길 한가득 퍼져 있던 적은 난잡한 덩어리처럼 바뀌며 군데군데 빈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장검을 두 손으로 쥔 채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 , 안 돼요!”

 

세리아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운 나쁜 적의 머리통을 군화로 짓밟으며 착지, 그와 동시에 장검을 옆으로 휘둘러 또 한 놈의 배를 찢어버렸다.

 

내려왔다!”

마음이 급해졌구나, 머저리 같은 놈!”

 

지붕 위에 있던 내가 손이 닿는 곳까지 내려온 걸 보고 죽일 수 있겠다 생각한 모양이다.

10명 넘는 적이 눈을 시뻘겋게 뜬 채 이쪽으로 달려왔다.

 

고립할 겁니다, 도와드려야 해요!”

지금 간다!!”

 

세리아와 이리지나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글쎄, 마음이 급해진 건 누구일까?”

 

적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앞다투어 달려오는 중이다.

인원 자체는 많지만 연계가 전혀 안 이뤄진다. 뿔뿔이 흩어져서 다가오고 있을 뿐이다.

 

!”

 

달려오는 적을 향해 나도 달려갔다.

 

첫 번째 놈은 거리를 잘못 재서 검을 치켜드는 게 늦었다.

몸을 웅크려 놈의 몸통을 베어 두 동강 내주었다.

 

몸을 자른 기세 그대로 도신을 다시 돌려 두 번째 놈의 얼굴에 검을 꽂아넣었다.

 

그대로 힘을 실어 놈의 목을 통째로 검과 함께 들어올린 뒤, 세 번째 놈이 치켜든 검을 막아냈다.

적의 검은 장검과 맞닿자마자 부러졌고, 그대로 도신은 어깻죽지부터 옆구리까지 쭉 내려갔다. 끝부분에 달려있던 목도 저 멀리 날아갔다.

 

받아라!”

안 받으련다.”

 

내리치는 것과 동시에 땅에 엎드리듯이 몸을 낮춰 한 바퀴 회전하자, 머리 위에 창이 지나치는 바람이 느껴졌다.

 

회전 속도를 이용해서 다리 아래쪽부터 장검을 휘둘렀다.

네 번째 놈의 오른발은 발목 위, 왼발은 허벅지 아래쪽부터 땅바닥을 굴렀다.

 

옛다.”

 

황급히 방어한 다섯 번째 놈의 방패를 발로 걷어차며 넘어트린 뒤, 여섯 번째 놈의 목을 날려버렸다.

 

물론 곧장 방향을 반대로 돌려 엉덩방아를 찧은 다섯 번째 놈의 머리통도 쪼개버렸다.

 

, 강――.”

 

7번째 놈이 말을 끝마치기 전에 목을 꿰뚫고 도신을 회전시켜 숨통을 끊어버린 다음 뽑아냈다.

 

순식간에 일곱을……악마…….”

사람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건가……?”

 

적이 점차 뒤로 물러났다.

내 주변에 커다란 공백이 생긴 덕에 정면에 있는 호위대는 점점 더 유리해질 것 같다.

 

뿔뿔이 흩어져서 가니까 그런 거다. 놈이 아무리 강해도 손은 두 개, 한꺼번에 가라!”

 

그때 적 지휘관이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적들은 고개를 마주본 다음 나를 반쯤 포위하듯 둘러싸며 일제 공격 태세를 취했다.

 

흐음.”

 

나는 발밑을 가볍게 군화 밑창으로 두드려 보았다.

거리가 넓은만큼 튼튼하게 돌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방금 전 난전 때문에 상당히 피해를 입었는지 돌이 붕 떠 있었다.

 

가라――!!”

“““오오오오오!!”””

 

호령소리와 함께 적이 일제히 뛰어들었다.

 

!”

 

나는 허리를 낮춰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물론 적은 횡베기 참격을 경계하고 있을 게 뻔하다.

 

하지만 내 검은 적을 노린 게 아니다.

장검이 때린 곳은 돌로 포장된 길이다.

 

혼신의 일격은 바닥을 쪼개버리고 주변에 파편과 모래, 돌멩이까지 적을 향해 날려버렸다.

 

우왓!?” “, 눈이!” “앗 따까!” “멍청아, 멈추지 마!”

 

적의 움직임이 한 순간 멎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처음 휘두른 일격의 힘을 그대로 이용해 회전한 나는 우두커니 서 있는 적을 정확하게 날려버릴 수 있는 궤도로 검을 휘둘렀다.

 

목소리인지, 그냥 숨을 내쉰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소리가 몇 번이나 들렸다.

확실한 손맛이 느껴졌다.

 

……뭐냐 이건.”

히이이익!”

 

적 지휘관이 멍하니 중얼거리고, 곁에 있던 여자 병사가 뒤쪽으로 쓰러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눈앞에 있는 건 배 아래쪽 부분만 우두커니 서 있는 다섯 개의 시체였다.

 

시체는 몇 초 동안 서 있다가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지며 내용물을 쏟아냈다.

 

나는 시선을 지휘관 쪽으로 옮겼다.

하지만 지휘관이 움직임을 보이기 전에 놈의 목에 단검이 꽂혔다.

 

하앗!”

!”

 

그와 동시에 내 뒤쪽으로 돌아가려던 적이 이리지나의 창에 꿰뚫렸고, 크로스 보우로 이쪽을 노리고 있던 적의 가슴팍에 세크리트가 던진 단창이 꽂혔다.

이제 등 뒤는 걱정 안해도 되겠군.

 

적이 무너졌다, 밀어라 밀어――!”

 

우리의 분투가 도움이 됐는지, 호위대가 정면을 밀어낸 듯하다.

 

적이 강을 역류하듯 도망치기 시작했다.

 

적한테 둘러싸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죽여라.”

 

!”

그래!”

.”

 

우리는 길 구석으로 다가가 퇴로가 막히지 않게끔 움직이면서 계속해서 적을 쓰러트렸다.

 

내 장검이 적을 날려버리고, 세리아의 검이 적의 다리나 목덜미를, 이리지나의 창이 꼬챙이를 만들었다.

세크리트도 바닥을 구른 적을 확실하게 처리했다.

 

자비를 베풀라는 말은 아니지만, 왜 다리 쪽부터 차례대로 베어버리는 겁니까? 급소를 노리십시오.”

그렇게 하면 더 울어대서 재밌잖냐.”

 

세크리트의 성격은 아무래도 바뀔 것 같지가 않다.

 

 

정면에 있던 적이 문 근처까지 물러났을 즈음, 전령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트리스탄 님께서 지시를 보내셨습니다.”

왜 트리스탄이 에이길 님께 지시를 내리는 겁니까!”

 

세리아가 전령의 멱살을 붙잡았다.

 

잔 드라 시가전 전체를 지휘하고 있는 건 확실히 트리스탄이긴 하지만, 내가 놈에게 지시를 받겠다 한 기억은 없다……하지만 전령을 두들겨 패도 달라질 건 없고 여기서 불평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전투가 끝난 이후 이리지나한테 엉덩이나 한 번 걷어차라고 하면 되겠지.

세리아랑 다르게 힘이 세니까 치질 걸릴 각오나 해두라고.

 

계속 얘기해라.”

. 호위대는 지금 당장 큰길을 포기하고 제2작전으로 이행하라, 라는――히익!”

『하라』? 에이길 님께 『하라』란 말입니까!? ……으브븝.”

 

고생해서 지켜낸 길을 포기해야 한다는 소식에도 반발심은 없다.

호위대 인원들도 전혀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들도 작전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2작전……병사가 흩어져 각 골목길과 민가 건물에 틀어박힌 직후, 대로변에 적의 포탄과 투석기로 날린 바위가 쏟아졌다.

 

포장된 도로가 완전히 박살나고, 2층 구조로 된 상점이 무너지고, 목제 민가 지붕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우리는 그걸 남일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장난 아니군.”

섣불리 지키려 했다간 큰 손해가 발생했겠군요.”

 

큰길에서 벗어난 위치에서 매복 중인 우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투석기에서 날아온 바위가 이 부근에선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던 무역소를 산산조각내 버렸다.

 

……으으, 손실이 엄청나네요.”

하아, 어차피 내가 아돌프 씨한테 잔소리를 듣게 될 테지만 말이야.”

 

세리아가 슬프다는 듯 얘기했다.

트리스탄의 불평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제 와서 신경 써봤자 별 수 없지.”

 

부수겠다고 결심한 이상, 아까워 할 필요는 없다.

마음을 고쳐먹고 보고 있으니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걸.

 

.”

 

포탄이 분홍빛 건물을 반쯤 박살냈다.

저건 이 도시 유일의 고급 창관이다.

 

끄응……도시가 파괴되는 광경은 각오를 해도 차마 보기 힘들군.”

“““…….”””

 

창관까지 노리다니, 무정한 놈들.

 

공성 병기 공격이 멈추자 다시 적의 기병이 달려나왔다.

 

기병은 방금 전 공격 때 지긋지긋하게 당했는지, 처음엔 천천히 전진하다가 대로변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자 점차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당황해서 도망쳤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지킬 필요가 없는 것뿐이란 말이지.”

 

트리스탄이 휙, 하고 신호를 보냈다.

 

순식간에 병사 몇 명이 건물 뒤편에서 뛰쳐나와 대로변에 설치된 튼튼한 건물로 달려갔다.

 

길 쪽에 설치된 기둥을 절단한 다음, 통나무로 대충 지지해 둔 거야.”

그걸 빼버리면…….”

 

마치 주춧돌이 무너진 것처럼 계속해서 건물이 무너진다.

 

이렇게 되지.”

 

튼튼했던 건물은 굉음과 함께 큰길을 감싸버리듯이 계속해서 쓰러졌다.

길은 순식간에 벽돌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이제 멀쩡한 길은 좁은 골목길뿐, 기병은 쓸데가 없어졌어.”

 

적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 지금쯤 길길이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2작전이 시작됐다.

아군 병력은 몇 명씩 분산해서 골목길과 각 민가 안에 틀어박혔고, 필사적으로 도시 중심부로 들어오려 하는 적과 소규모 전투를 펼쳤다.

 

이런 상황에서 수적 우위는 사실상 없는 수준이고, 심지어 좁은 골목길에 내몰린 지금은 한층 더 좋지 않았다.

 

기병이 속도를 낼 수 있는 거리도 없고, 기어가는 속도로 전진하며 아군이 매복 중인 집 하나하나와 전투를 벌이며 빼앗든가, 파괴하면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심지어 요충지나 시야가 트일만한 장소에는 기둥이 부러져 있거나, 기초 공사가 완전히 박살난 건물을 준비해 두었다. 그렇게 적이 열심히 빼앗은 건물 안으로 들어간 순간, 불쌍한 적 병사들과 함께 통째로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어차피 승부의 행방은 도시 밖에서 결정될 테니까 말이지. 우리는 여기서 시간을 벌고 적들을 짜증나게 만들면 그만인 거야.”

 

트리스탄은 그렇게 말하면서 적의 사소한 동작에 맞춰 지시를 계속해서 내렸다.

 

나도 뚫릴 뻔한 위치로 달려가 적을 베어넘겼다.

 

모든 상황이 얼추 예상대로 흘러갔지만, 그럼에도 적은 조금씩 도시 중심부로 다가오는 중이다.

 

내 예상에서 벗어난 건 공성 병기의 숫자야. 우리한테는 제대로 된 요새 도시 같은 것도 없는데 대체 왜 이렇게 많이 들고 온 건지……하여간 뭐든지 완벽하게 되는 게 없다니까. 애초에 내 인생 자체가 그런 느낌이지…….”

 

트리스탄이 투덜거리는 말의 내용엔 관심이 없지만 적의 공성 병기 물량은 확실히 성가셨다.

골목길 전투에서 아군이 유리해지기 시작하면 곧장 포탄과 바위가 날아왔다.

 

방어 진지가 계속해서 박살나는 탓에 어쩔 수 없이 계속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어느 진지가 함락됐을 때, 트리스탄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결국 저기 있는 초소가 함락됐네. 여기까지겠어.”

항복은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만큼은 끝까지 싸워서 죽을 각오나 하십시오.”

 

대체 왜……아무튼, 여기까지 밀렸으면 평범한 방법으로는 지킬 수 없다. 그러니까 제3단계로 갈 수밖에 없겠네. 이건 돌이킬 수가 없는 작전이라……사실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트리스탄은 그렇게 말하며 내 얼굴을 바라보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돌프 씨한테 뭐라 말해야 하나.”

 

끝까지 투덜거리면서 트리스탄은 시내에 흩어져 있던 부대한테 전령을 보냈다.

그러자 금세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부대는 일사불란하게 후퇴를, 어떤 부대는 다른 부대와 합류하여 적들 사이에 고립됐다.

그리고 또 어떤 부대는 억지로 길을 뚫어 거점을 확보했다.

 

모든 부대가 준비를 끝마쳤다는 연락이 들어오자 트리스탄이 내 얼굴을 바라봤다.

 

마지막 명령은 내가 할 수 없어. 나는 그 책임을 질 수도, 질 의무도 없으니까 말이지. 이건 변경백님의 역할이야.”

 

그야 그렇지.

 

좋아, 3단계를 시작해라!”

가볍네에…….”

 

딱히 가볍진 않다.

도시를 불태우겠다고 결정했는데 어중간하게 망설이는 게 더 문제지.

여기서 망설일 정도면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어.

 

내 명령과 동시에 도시에 일제히 불이 질러졌다.

 

지금까지 벌인 전투와 공성 병기의 공격 때문에 많이 부서져 있던 잔 드라 도시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이걸로 끝이네.”

 

트리스탄이 말한대로, 이걸로 끝이다.

 

불길은 적과 아군 구별 없이 끝없이 불타――오르지 않고, 아군 쪽을 피해 적들이 있는 곳만을 휩쓸었다.

 

적과 아군 모두 전투를 중지하고 불을 피해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아군은 그냥 연기 때문에 기침을 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에 비해, 적이 숨어있는 위치는 완전히 화염에 휩쓸려 불에 탄 적들이 버둥거리거나, 바닥에 뒹굴다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그 광경은 마치 화염으로 된 괴물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듯했다.

 

호오……재밌군.”

 

세리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세크리트도 조금 놀란 것처럼 트리스탄을 바라봤다.

 

무슨 생물처럼 움직이는군.”

내 노력의 결정체야. 정말로 시간이 촉박했다구.”

 

화염을 우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던 트릭은 간단하다.

잔 드라 도시에는 나무로 된 집과 돌로 된 집이 섞여 있었다.

나무로 지어진 집은 불타고, 돌로 된 집은 부서져도 불타지 않는다.

 

아군은 불타지 않는 구획에 진을 치고, 적은 불타는 구획에 진을 치게 만든다. 그뿐이다.

 

아니, 전혀 다르거든. 그렇게 쉽게 구분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아군 위치에 있는 목조 건물에는 진흙을 펴발랐고, 불길이 안 퍼지게 집을 부숴버렸어. 적이 진을 칠만한 건물에는 잘 타는 것들을 은근슬쩍 놔뒀고. 지도를 보면서 예상되는 진형이랑 자세하게 비교하면서……낮잠은 무슨 한숨도 못 잤다구.”

 

아무튼 아군은 불타지 않는 진형에, 적은 불타는 진형에, 그런 거다.

 

그렇죠. 이론은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와하하하하하!! 이기면 그만인 거다!!”

 

내 노력을 좀 더 칭찬해 달라구……이미 3년 몫 정도는 일했단 말이야…….”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트리스탄의 머리를 세크리트가 쓰다듬었다.

 

, 너는 제법 재밌군. 관심이 생기는걸.”

 

뭐라고.

 

아니, 그런 시선으로 날 보지 마. 그보다 세크리트 씨가 날 건드리면 목이 찢겨나갈 것 같아서 무서운데.”

큭큭큭.”

 

한 순간 질투심이 불탈 뻔했지만, 아무리 봐도 나비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 같은 모습이니 봐주도록 하지.

 

이제 더 이상 적은 못 움직이겠군.”

맞아. 이렇게 되면 대처 방법은 둘밖에 없어. 하나는 일단 도시 밖까지 도망치는 거.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불이 잦아들 때까지 공격은 못할 거고, 이미 손해도 커졌어……다시 말해 우리 쪽의 예측대로라는 거지.”

또 하나는?”

 

답한 건 트리스탄이 아니라 정찰병이었다.

 

모든 적이 일제히 공격에 나섰습니다! 화염을 뚫고 억지로 공격하려는 모양입니다!”

……그런 거지. 불을 피하려면 우리 쪽 진지로 뛰어들면 돼.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 이어질 테지만, 어떻게든 도시를 함락할 수 있다면 이것도 답이라 볼 수 있어. 논리만 따져보면 맞는 얘기지만 진짜로 할 줄이야.”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트리스탄한테 얘기했다.

 

갔다 오마.”

그래요. 나는 여기서 지휘나 맡을게.”

 

고개를 든 순간 열기가 느껴졌다.

당연한 거지. 직접 불길에 휩싸이진 않았어도 도시가 온통 불타는 중이니까.

 

나는 망토에 물을 뿌린 뒤 몸을 감쌌다.

 

세리아도 머리 위에 떨어진 불똥을 황급히 떨쳐낸 뒤 천과 아름다운 은발을 물로 잔뜩 적셨다.

 

사람이 불타는 훌륭한 냄새구나.”

 

세크리트가 황홀한 표정으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역시 이 사람 이상해…….”

준비 끝났다!!”

 

이리지나는 입에 한가득 빵을 밀어넣고는 창을 손에 쥐었다.

 

 

불길 속에서 전투가 이어진다.

적은 불타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밀어붙였고, 아군도 마찬가지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은 채 놈들을 내쫓았다.

우리도 적을 베고, 찌르고, 불길로 던져넣으며 날뛰었다.

 

그럼에도 적의 손해 대부분은 우리 쪽 공격보단 불길에 휩쓸려 죽는 게 더 많았다.

 

엄청난 열기 속에서 이어진 전투는 사실상 30분도 채 되지 않았으나, 병사들한테는 거의 반나절은 넘게 이어진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그리고 기나긴 체감 시간과 약간의 시간이 지나간 뒤, 끝내 적은 완전히 무너졌다.

 

쫓아갈 필요도 없이 체력의 한계를 맞이한 적들은 불길 속에서 순식간에 목숨을 잃거나, 혹은 도망칠 길을 찾지 못해 불에 휩쓸렸다.

 

불길이 잦아든 뒤, 전장에는 아주 약간의 부상자와 끔찍한 소사체만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손해 상황을 보고해라.”

아군 측 손실은 중간 수준, 적의 손실은 막대……잔 드라의 8할이 소실됐습니다.”

좋아.”

 

나는 검을 치켜든 채 소리쳤다.

 

크게 소리 질러라. 밖에서 싸우고 있는 아군들한테 다 들릴 정도로.”

 

시가전과 화염은 인상이 나쁘다.

잔 드라가 함락되지 않고, 우리가 이겼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오오오오오오오!!”””””

 

병사들이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

 

세크리트와 이리지나의 목소리는 여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무슨 짐승의 포효 같군.

 

우오오――입니다!”

 

세리아는 열심히 거칠게 소리치고 있긴 한데, 귀엽다는 인상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오―, 콜록콜록, 푸엣취.”

 

트리스탄은 의욕이 없다.

 

내 고함소리로 마무리 지어야겠군.

아주 엄청난 포효소리를 보여주마.

 

있는 힘껏 숨을 들이쉬었다.

 

――――――!!”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만큼 짐승 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히익!” “우왓!” “방금 그거 오크 아냐!? 드래곤인가!?”

 

아군 병사들이 일제히 어깨를 움츠리고 무기를 손에 쥔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의를 모르는 놈들이군.

 

삐익!”

 

뒤이어 불탄 민가의 잔해에서 적의 여자 병사가 바닥을 구르듯 튀어나왔다.

날 저격하기 위해 들고 있던 걸로 보이는 크로스 보우도 떨어트린 듯 보였다.

 

황급히 도망치려 했으나 허리 힘이 풀렸는지 버둥거리기만 할 뿐, 끝내 세리아의 발뒤꿈치에 얻어맞고 기절해버렸다.

 

설마 내 포효 때문은 아닐 테지만, 낭보는 아직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알려드립니다!! 시외에서 치러지고 있던 전투는 아군의 승리입니다! 적은 후퇴를 시작했고, 레오폴트 님께서 전면 추격을 시도하는 중입니다.”

우리도 합류해서 추격하겠다. 지쳤을 테지만 지금 상황이 가장 중요해. 조금만 더 힘내라.”

 

 

이렇게 두 번째 잔 드라 합전은 끝을 맞이했다.

 

나는 시내, 시외 양측에서 적을 격파하고 그 후에도 집요한 추격전을 벌여 동부 군단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레오폴트, 트리스탄은 적의 동부 군단은 진군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단언했다.

 

“2만으로 7만으로 격파했습니다. 대승리군요.”

그래.”

 

나는 잔 드라 도시를 바라봤다.

좋게 말하자면 괴멸, 그냥 평범하게 말하자면 초토화 상태다.

 

멍하니 도시를 바라보는 주민을 마이라가 북쪽으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서는 못 살 테니까 말이지.

 

에이리히가 힘 좀 써줘야겠어.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이겨도 결국엔 질 테니까 말이야.”

 

우리는 아직까지 검은 연기를 내뿜는 잔 드라에 불탄 군기를 세웠다.

 

 

어디, 기분이 상했으면 포로로 잡은 여자라도 따먹을 테냐?”

 

세크리트가 말했다.

그 포효 때문에 당황한 여자 말인가?

 

그런 건 안 좋아해.”

 

마이라와 이리지나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안 따먹는 거냐?”

 

세크리트가 시시하다는 듯 채찍과 과도를 버렸다.

 

하지만 그 여자하고 얘기를 나누긴 해야겠지.”

 

귀중한 포로다. 뭔가 유익한 정보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 그래?”

 

마이라랑 세리아가 말없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중이다.

, 신경 쓰지 말고 가야겠군.

……뭔가 걷기가 힘든데.

 

그건 가랑이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영차.”

 

세크리트가 채찍을 다시 주웠다.

그건 필요 없다고 말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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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5살 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 동부 대영주 산의 전설 드워프의 친구 아레스 왕의 친구 용살의 영웅

엘프의 중개자 백도의 성왕

 

 

호위대 130

 

보병 11500 기병 12000 궁병 1400 궁기병 5800 포병 450

총합 인원: 20480

 

대포 60문 대형포 30문 드워프포 16문 야전포 20문 전차 50

 

전과: 적 동부 군단 분쇄

손해: 잔 드라 괴멸

 

재산: 금화 200000

경험 인수: 776명 자식: 68+565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