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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378화『중앙 평원 통일 전쟁③ 상호 야습』

378화『중앙 평원 통일 전쟁③ 상호 야습』

 

우익 부대에 큰 타격을 입힘으로써 적은 일단 잔 드라에서 거리를 벌리고 부대를 다시 정비하려 하는 중이다.

한편 우리는 손해가 적었던 점과 레오폴트의 빠른 처리 덕분에 빠르게 태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지금, 해가 저문 걸 확인한 우리는 천천히 행동을 시작하는 중이다.

 

전투가 끝난 후, 레오폴트가 곧바로 야습이 올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적의 목적은 우리를 격파한 뒤 잔 드라를 함락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둘 중 하나도 해내지 못하고, 반대로 큰 손해를 입었습니다.”

 

전장은 적의 시체로 가득 찼다. 결코 작은 손해는 아니리라.

 

적이 우리에게 대군을 이끌고 온 건 우리를 쓰러트리기 위한 게 전부가 아니라, 잔 드라부터 라펜, 그리고 동쪽에서 고르도니아를 침공할 것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적은 더 이상 낭비할 수 있는 시간도 병력도 없습니다. 약간의 무리를 감수하더라도 우리를 격파하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마침 오늘은 초하루기도 하고 말이야.”

 

마이라랑 루나는 어둠 속, 적이 있는 곳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남유글리아군은 합리적인 사고로 움직입니다. 야습은 부대의 손해와 병력의 피로도를 고려해 보면 전술적으로 비합리적입니다만, 전략 전체를 고려해 보면 합리적입니다.”

 

뭐가 됐건 야습이 있는 모양이다.

쳐들어 온다면 막아내야지.

 

말에서 내린 궁기병과 보병을 데리고 천천히 진지를 빠져나간다.

물론 횃불은 없다.

 

잔 드라부터 몇km 떨어진 위치에 있는 적진도 딱히 달라진 건 없는 듯 보였다.

물론 환하게 횃불을 켠 채 습격해 올 리도 없을 테지만.

 

정말로 오고 있는 거 맞아? 만약 아무것도 없으면 쓸데없이 병사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뿐인데.”

 

레오폴트한테 건넨 속삭임에 대답한 건 놈이 아니라 브륜힐데였다.

 

온다, 라는 건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슬쩍슬쩍 움직이고 있는 얼간이 놈들을 말하는 것이냐?”

 

브륜힐데는 붉은 눈을 살짝 움츠리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물론 나한테는 어둠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공격 준비.” “공격 준비다.” “와하하――으그극!” “조용히 해주세요!”

 

동시에 궁기병들이 속삭이거나 어깨를 두드리는 둥, 무언가를 전하고 있는 모양이다.

 

저쪽에는 그 여자를 보내두었다.”

 

감시역으로 키필이 따라오고 있는 모양이다.

흡혈귀의 눈으로는 초하루 밤도 대낮이랑 다를 바 없다.

 

참고로 키필의 이름은 거칠게……발로 걷어차면서 물어봤더니 기어다니면서 가르쳐 주었다.

듣기로는 거칠게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가르쳐 주지 말라고 브륜힐데한테 명을 받았다고 한다.

앞으로 키필한테 무언가 시킬 때는 이렇게 늘 거칠게 다뤄야 하는 건가? 곤란하구만.

 

발사.”

 

작은 명령 소리가 들렸다.

나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위가 퉁기는 소리가 들리는 걸 봐선 활을 쏜 것이리라.

 

끄악!” “끄엑.” “소리 내지 마……진정해라.”

 

어둠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하지만 적이 뛰쳐나오진 않았다.

 

빗나간 건가?”

 

브륜힐데한테 물어 보았다.

 

아니, 얼추 놈들이 있는 곳에 떨어졌구나. 몇 사람 정도 죽긴 한 것 같다만……. , 이거 놀랍군. 저놈들, 대열을 무너트리지 않은 채 진로를 바꾸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놀라운 내용이다.

야습을 간파당해 화살을 맞았는데 혼란에 빠지지 않는 병사는 거의 없는 법이다.

 

아군 병력이 쫓아오지도, 횃불도 켜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위협 사격용에 대충 맞은 거라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쪽 방어 진을 우회해서 야습을 지속하려는 모양입니다.”

 

대단한 숙련도이긴 하지만 오히려 불쌍해지는군.

왜냐하면 놈들이 우회한 그 너머에는…….

 

쏴라.”

 

키필이 위치랑 타이밍을 지시한 모양이다.

어둠 속에 설치된 전차에서 거대 화살이 일제히 발사됐다.

 

끄악!” “히극!”

 

맞으면 즉사인 거대 화살이 쏟아지자 이제 적도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일부러 대포를 쓰지 않았던 건 포화를 보여주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 쪽 위치가 들통나면 적이 이판사판으로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으니까 말이지.

반면 활이나 거대 석궁으로 횃불도 켜지 않고 공격당하면 적은 누가 어디서 쏘는지 알아낼 수 없다.

 

, 우리 위치가 들켰나? 다 보이는 건가!?”

말도 안 돼, 초하룻날 밤에 횃불도 안 켰는데? 들켰다 쳐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냥 대충 어림짐작으로 쏘고 있는 거야! 횃불은 켜지 말고 흩어진다.”

 

안타깝게도 다 보인단 말이지.

 

이번엔 두 갈래로 나뉘었구나. 한쪽은 천천히 앞으로, 또 다른 쪽은 서쪽에서 우회하는 중이다.”

 

구태여 절반을 남겨둠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유도한 뒤 나머지 절반이 쳐들어 오려는 심산이리라.

물론 레오폴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조준!”

 

아군 병력 측에서 감출 생각도 없는 커다란 호령 소리가 터져나왔다.

동시에 작은 수많은 불이 나타났다. 불씨를 붙여 불화살을 쏠 준비를 하기 위한 불이다.

 

, 역시 완전히 간파당한 거였나!? 다들 서라! 완전 실패다!”

 

적 지휘관이 소리쳤을 땐 이미 늦었다.

수많은 불화살이 어둠을 찢어발기고 적을 향해 쏟아졌다.

 

끄아아아악!” “젠장, 방패는 없나!?” “, 야습이었다 보니 소리가 나는 무거운 무구는…….”

 

작은 불씨가 일면서 우리도 그림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적은 검은 천을 벗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 다시 화살비가 쏟아졌다.

지금까진 키필의 지시를 받으며 대충 어림짐작으로 쏘고 있었지만 이번엔 다르다.

궁기병들은 자기 눈으로 적을 포착하고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당연히 정밀도도 단숨에 올라간다.

 

그리고 적은 은밀성을 중시하고 있던 탓에 방패를 막아낼 대방패를 소지하고 있지 않다.

그저 화살에 맞는대로 계속해서 숫자가 줄어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적진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나를 따르라!”

 

일부의 용감한 지휘관들이 검을 뽑아들고 불화살을 쏜 탓에 모습이 드러내게 된 아군 병력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기다.”

 

레오폴트의 호령과 동시에 활을 쏘던 아군과 돌격해 오던 적들 사이의 땅이 치솟았다.

검은 천을 벗어던지고 아군 보병이 나타난 것이다.

 

돌진――!!”

 

아군 보병이 소리치면서 적에게 달려들었다.

 

적은 죽을 각오로 돌격을 시도하려던 찰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역공을 받아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끝내 붕괴되어 뿔뿔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좋아, 공격 중지!” “쫓지는 마라! 쫓지는 마라!”

 

지휘관들이 계속 쫓아가려던 병사를 말렸다.

 

사실은 쫓아가서 조금이라도 더 숫자를 줄이고 싶지만 말이야.”

어쩔 수 없습니다. 적의 본진이 야습 부대를 도우러 오지 않았던 건 이렇게 어두운 밤중에는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아깝긴 하지만 별 수 없지.

세리아의 엉덩이를 만지면서 참는 수밖에.

 

족장님……그건 제 엉덩이입니다.”

 

기드 녀석 맨날 헷갈리는 장소에 있네. 어두워서 잘못 만졌잖냐.

슬슬 안 비키면 뭐라도 쑤셔박는다?

 

쫓아가는 건 불가능합니다만 적에게 피해를 줄 수단은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직 뭔가 더 계획이 있는 건가? 이미 낮이랑 밤까지 연속으로 싸워서 병사들은 지칠대로 지쳤는데.”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 덕에 다들 덜 피곤해 보이긴 하지만 피로는 확실히 쌓여 있었다.

오래 버틸 생각이라면 여기서 병사를 더 혹사시키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아뇨, 활용하는 병력은 방금 전에 활약할 기회가 없던 기병뿐입니다. 지금부터 적에게 야습을 시도합니다.”

? 야습?”

 

나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적도 설마 격퇴한 직후에 반대로 야습을 시도할 거라는 생각은 못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이라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중이다.

애초에 큰 소리가 들리는 기병은 야습에 부적합하다.

오늘 같은 초하루날에는 발밑도 제대로 확인이 안 돼서 기병의 장점인 속도도 발휘하기 힘들다.

 

그 부분은 미리 생각해 뒀어. 잘 안 굴러가면 레오폴트 씨한테 뭐라고 해. 나는 그냥 도운 것뿐이니까.”

 

또다시 사라졌던 트리스탄이 고개를 내밀었다.

낮잠을 못 자서 그런지 이상하게 졸려 보인다.

 

, 그럼 한 번 봐보도록 할까?”

책임은 못 지지만 말이야. 나는 이제 할 게 없으니까 미리 돌아가서 잘래.”

 

성공하면 트리스탄의 침대로 음란한 여자를 몇 사람 보내주도록 하지.

실패하면 음란한 남자를 몇 사람 보내주마.

사실 트리스탄은 여자보단 그쪽 계열의 남자한테서 인기가 더 많다. 연약한 느낌이 지배욕을 자극한다고 한다.

 

 

야습에 실패한 적이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적진에 돌아가자 크고 작은 횃불이 일렁였다.

30분 정도 뒤에, 혼란이 잦아들었을 즈음 작전이 시작됐다.

 

넘어지지 마라, 거리를 유지해라.” “불빛은 필요한 때에만 짧게.” “말이 소리를 못 내게 해라!”

와하하하! 팔이 근질거리는군.” “이리지나 씨, 시끄러워요!”

 

기병대는 조용히……자기들 딴에서는 그렇게 움직이며 적진으로 향했다.

 

우와, 여기 패여있잖아!” “잠깐 불 좀 켜자.” “푸엣취!”

 

처참하네요…….”

 

마이라가 말한대로다.

 

말들끼리 부딪치며 짧게 히힝거리질 않나, 그 위에 탄 병사는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소리를 지르질 않나, 발밑을 확인하기 위해 잠깐이나마 횃불을 켜질 않나. 이게 야습 부대가 맞는지 비웃음을 사도 이상할 게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것도 전부 레오폴트의 책략 중 하나다.

 

우리는 천천히 적진 쪽으로 향했으나 딱히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횃불이 일렁일렁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적진까지 거리가 얼마 안 남은 찰나,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좋아, 돌격이다!!”

“““오오오오오오―――!!”””

 

기병이 일제히 소리치며 횃불에 불을 밝혔다.

커다란 말발굽 소리가 적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적진도 마찬가지로 단숨에 밝아졌다.

 

멍청한 놈들! 안 들킨 줄 알았나!?”

처음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다 새어나오더라, 허접한 놈들아!”

방금 전 빚을 바로 갚아줄 수 있겠구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완벽히 준비된 장창 부대와 그 뒤에서 자리를 잡은 크로스보우병들이다.

불쌍한 말들은 그대로 꼬챙이처럼 꿰였고, 몇 개나 되는 크로스보우에 당해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먹혀들었군.”

.”

 

몸이 창에 꿰뚫리고 얼굴에 볼트를 맞은 당나귀가 힘차게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등에 쌓은 통이 부서지며 기름이 적에게 쏟아졌다.

 

? 말밖에 없잖아?”

병사가 없어…….”

우웩, 이거 기름인가? 게다가 뭔가 모래 같은 게…….”

 

등에 횃불이 달린 말과 당나귀가 차례차례 쓰러진다.

즉사하는 말, 도망치려고 날뛰어대는 잡종 말, 끌고 다니던 마차랑 통째로 쓰러져 마른 풀을 주변에 날려대는 당나귀까지……그 위에 병사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나와 기병대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중이다.

 

아무리 기병이 야습에 어울리지 않는다 해도 진심으로 숨기려 들면 그 정도로 끔찍하진 않다.

처음부터 전부 사기극이었을 뿐이다.

 

흡혈귀의 눈이라도 쓰는 게 아니면 한밤중에 군마와 잡종 말, 짐마차용 당나귀의 차이는 알아볼 수 없다.

등에 횃불이라도 달아주면 딱 보기에도 멍청한 기병이 달려오는 것처럼 보일 게 뻔하다.

 

말한테는 미안하게 됐지만 말이야.”

 

이기는 데에 필요한 일이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비통한 울음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나보다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까 싶어 슈바르츠를 바라보니 태연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암말은 없는 모양이다. 머릿속에 든 게 여자밖에 없냐? 이 변태 말아.

 

슬슬 적기로군요.”

그래 보이는군.”

 

우리 말에 답한 건 아닐 테지만 등에 대나무와 횃불을 짊어지고 있던 말이 창에 찔려 뒤집어졌다.

 

다음 순간, 눈이 부실만큼 강렬한 빛이 터져나오면서 폭발의 충격이 가슴을 때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커다란 불기둥이 적진 한복판에서 솟구쳤다.

 

뒤이어 불타오르는 화염 밑에서 기어가듯 불씨가 퍼지기 시작했다.

미리 뿌려둔 기름과 주변에 흩어진 마른 풀이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 뭐야 이게!!”

이거 설마 화약인가!? 근데 이렇게 갑자기 불타다니――모, 몸에 불이! 끄아아아아악――!!”

기름을 뿌린 건 이것 때문이었나!? 젠장, 마른 풀도 여기저기 뿌려져 있어서……주변이 몽땅 불타겠어!”

 

뒤이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적의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꽤 거리가 떨어져 있는 여기까지도 열기가 느껴질 지경이다.

근처에 있는 적들은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리라.

 

제대로 불이 붙은 것 같군요.”

그래, 밤에 보니까 한층 더 화려한걸.”

 

나랑 레오폴트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세크리트가 끼어들었다.

 

내가 가르쳐 준 특수 화약인가. 이렇게 많은 양을 말에 실어서 내보낼 줄이야.”

 

세크리트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미소를 짓고서 불에 타 버둥대는 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

……후.”

 

엉덩이를 만져 보니 바지에 얼룩이 생길 정도로 젖어 있었다.

역시 위험한 여자이긴 하지만, 그런 부분도 마음에 든다.

 

슬슬 가자.”

얼마든지.”

 

나는 듀얼 크레이터를 치켜들었다.

단순히 화염빛을 반사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후 찾아올 살육에 흥분한 건지 도신은 평소보다 붉었다.

 

따라와라.”

 

지옥처럼 불타오르는 적진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시야 문제는 없다. 주변은 마치 대낮처럼 환하다.

 

장창으로 이루어진 벽은 없다. 지금 주변은 온통 불타오르는 중이라 한 데 일렬로 서서 무기를 쥘 수 있는 위치는 없다.

 

얼른 불을 꺼라! 그리고 적의 감시를――.”

 

어떻게든 통솔력을 되찾으려 하는 지휘관의 목을 듀얼 크레이터로 날려버렸다.

슈팟,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목은 회전하면서 공중을 맴돌았다.

 

.”

 

공중에서 회전 중인 목이 한 마디 내뱉었다. 말 그대로 마지막 한 마디군.

 

이놈이!” “죽여라!”

 

장창병과 크로스 보우병이 이쪽을 바라봤다.

 

나는 검을 치켜올려 크로스 보우 병의 턱을 위쪽으로 찢어버린 뒤, 슈바르츠의 속도에 몸을 맡겨 장창병을 발로 걷어찼다.

 

크헉!”

 

장창병은 피를 토하면서 땅바닥을 미끄러지더니 불타던 마른 풀 덩어리 사이에 처박혔다.

엄청난 단말마가 터져나왔지만 나는 못 들은 걸로 하고 다음 놈에게 향했다.

 

우리도 간다!”

 

단말마에도 밀리지 않는 이 커다란 목소리는 이리지나다.

그녀가 이끄는 기병대도 불타오르는 적진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불이 난 탓에 대기병진을 짤 여유조차 없는 적에게 기병대가 힘차게 달려들었다.

속도를 높여 적진에 뛰어든 기병은 이리저리 도망치는 병사들을 하나둘씩 창으로 꿰기 시작했다.

 

와하하하하하!! 흐읍! 흡흡흡!”

 

특히 눈에 띄는 인물은 역시나 이리지나로 말 위에서 계속해서 적을 꼬챙이로 만들어 버리는 중이다.

세크리트처럼 살육을 즐긴다는 느낌보다는 순수하게 날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흐아압―!!!”

 

오오 두 사람을 동시에 뚫었잖아. 하지 마.

 

일방적인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만.”

 

옆에서 세크리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려보니 어둠 안에서 적의 기병이 뛰쳐나오는 게 보였다.

문제가 생긴 걸 느끼긴 했나 본데, 급하게 나온 탓에 숫자가 적었다.

 

반격한다.”

그래.”

알겠습니다.”

 

세크리트 말고도 한 명 더, 옆에 키필이 와 있었다.

브륜힐데가 내 호위도 맡겼다고 말했었지. 밤이라 나온 건가?

그녀는 말을 탈 수는 없지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오오오――!!”

 

창을 손에 쥔 채 달려드는 적과 스쳐 지나간다.

몸을 왼쪽으로 기울여 내 목을 노리고 들어온 창날을 피한 뒤, 듀얼 크레이터를 휘둘러 겨드랑이 아래쪽부터 가슴 부분을 베어넘겼다.

서로 달리고 있는 중이라 가볍게 맞대기만 해도 충분하다.

 

네놈이 지휘관이냐? 간다!”

 

다음 적은 검과 방패를 쥐고 있는 놈이다.

 

네가 와도 상관없지.”

 

놈이 내리치는 검을 간파하고서 공격을 피했다.

빈틈없이 날아오는 방패 타격은 주먹을 날려 막아냈다.

 

우왓!”

 

방패를 얻어맞은 적이 충격 때문에 뒤로 몸을 젖혔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목덜미를 가볍게 베어냈다.

 

목은 날아가지 않았지만 대량의 피를 철철 흘리면서 적은 땅에 쓰러졌다.

 

이제야 몸이 좀 풀리는군.”

 

세 번째 놈은 적이 크게 위로 무기를 치켜드는 걸 보고 곧장 말을 옆에 붙여 선제 공격으로 팔을 베어냈다.

 

네 번째 놈을 상대할 땐 내게 날아온 창을 움켜쥐어 말에서 떨어트린 뒤, 낙하 중인 얼굴에 주먹을 날려 으깨버렸다.

 

다섯 번째 놈한테는 머리 위쪽부터 듀얼 크레이터를 내리쳤다.

이번엔 놈이 방어하려고 내민 방패와 검을 찢어발겼지만 곧바로 몸을 뒤로 뺀 덕분에 놈은 치명상을 입진 않았다. 하지만 직후 훤히 드러난 얼굴에 손잡이로 타격을 먹인 뒤, 놈의 코를 얼굴 깊숙한 부분까지 쑤셔박아버렸다.

 

영차.”

 

아무래도 말을 타면서 싸우는 건 여기까지 해야겠다 싶어 슈바르츠 위에서 뛰어내렸다.

 

내려왔다! 지금이다!”

, 이 녀석 설마…….”

 

나를 가리키며 동료를 불러온 여섯 번째 놈의 두 다리를 베어내고 무언가 말하려던 일곱 번째 놈의 앞에 주저앉아 놈의 목에 검을 꽂아넣어 뚫어버렸다.

 

, 나왔구나 악마가! 하드릿이다! 하드릿 본인이 있다!”

 

여덟 번째 놈이 말을 끝마치기 전에 몸을 회전시켜 횡베기로 크게 주변을 휘둘렀다.

소리치면서 기울어지는 상반신과 제자리에 남아있는 하반신이 서로 분리됐다.

 

어이, 여기저기서 온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지켜드리겠습니다.”

 

세크리트와 키필이 경고해 주었다.

 

지금 그 고함소리에 반응한 건지 적들이 우글우글 몰려오기 시작했다.

, 재밌어졌군.

 

나는 듀얼 크레이터를 왼손에 고쳐 쥐고 장검을 오른손에 쥐었다.

 

내가 하드릿이다. 쓰러트리면 너희의 승리지.”

, 좋아! 전부 다 하드릿을 노려――.”

 

대답을 기다려 줄 이유는 없다.

나는 말을 끝마치기 전에 전속력으로 뛰어들어 장검으로 지휘관의 목을 날렸다.

 

주변에서 터져나오는 비명소리가 끊기기 전에 듀얼 크레이터로 한 명의 몸통을 찢어발기고 몸을 회전시켜 장검으로 곧바로 두 놈을 베어넘겼다.

 

후후후, 끝내주는군.”

 

자기한테 뛰쳐든 적을 본 세크리트가 쌍검을 하나씩 이용해 적의 목을 꿰뚫고는 한 바퀴 돌려 상처를 크게 벌어지게 만들고서 뽑아냈다.

두 명의 분량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만큼 엄청난 양의 피분수가 바닥에 흩어졌다.

 

이 녀석은 하드릿의 여자인가!? 죽여라!”

악마의 창부 같으니!”

 

큭큭, 아직 즐길 게 많구나!”

 

자기한테 무기를 휘두른 적 두 사람의 검을 코앞에서 쌍검으로 막아내는 세크리트.

세크리트의 완력은 역시 여자의 그것이라 보기엔 힘들다. 남자 둘과 맞붙는데도 전혀 밀리는 기색이 안 보인다.

 

!”

 

세크리트는 힘을 주는 것과 동시에 뒤로 펄쩍 뛰고는 있는 힘껏 다리를 치켜들었다.

 

끄악!”

 

강철제 장화가 남자의 턱에 꽂혔다. 뼈가 박살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받아라.”

 

하늘이라도 난 것처럼 펄쩍 뛴 세크리트의 발이 나머지 적을 덮쳤다.

하지만 그 발차기는 어깨에 가볍게 맞닿는 게 고작이었다.

 

?”

 

너무나 가벼운 충격에 적이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눈치를 못 챘으면 이미 늦었군.

 

자기가 남자라는 증거랑 작별 인사나 나누시지.”

 

세크리트의 검이 적의 가랑이에 꽂혔다.

거세당하는 돼지 같은 소리가 전장에 울려퍼졌다.

 

이년 강하다!”

역시 악마의 창부라 이건가?”

다른 쪽부터 쳐라, 체격도 더 작군.”

 

세크리트한테서 거리를 벌린 적이 키필한테 모였다.

현명한 선택이라 보긴 힘들군.

 

여자를 여럿이서 해치운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악마의 여자가 된 자기 처지를 원망해라!”

 

세 사람의 검이 꽂혔다.

 

키필은 한 자루를 검으로 튕겨내고, 또 한 자루는 방패로 튕겨내고, 마지막 한 자루는 얼굴로 막아냈다.

 

으……으?”

……끄틴가효?”

 

키필은 마지막 검을 이빨로 막아낸 것이다.

 

이상한 광경이긴 하지만 무표정으로 우물우물 얘기하는 키필은 생각보다 귀엽다.

 

.”

 

키필이 반격에 나섰다.

 

끄엑!”

 

키필이 내지른 검은 갑주의 한가운데에 박혔고, 휘어지긴 했지만 적의 몸통 부분에 손잡이까지 꽂혔다.

 

!”

 

그녀가 날린 방패는 적의 얼굴에 그대로 꽂혀 놈의 귀, , 입을 전부 파괴하고 말았다.

 

흐그아아아아악!”

 

무기가 사라진 키필은 적을 끌어안고 목덜미를 깨물어 경동맥을 뜯어버렸다.

분수처럼 피를 터트리면서 목숨을 잃은 적을 흘끗 쳐다보고 입가를 핥은 키필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 이년도 악마다…….”

하드릿은 악마 같은 게 아니야……마왕이다! 악마 놈들을 다스리는 마왕이다!!”

 

적들이 일제히 거리를 벌렸다.

 

그때 여러 개의 불화살이 날아왔다.

레오폴트랑 미리 정해둔 철수 신호다.

 

이번 야습은 어디까지나 적을 혼란시키고 소모를 늘리기 위한 것일 뿐, 적 전체를 격파할 수 있는 수준의 규모가 아니다.

상대가 태세를 가다듬기 전에 철수하지 않으면 포위당한다.

 

물러난다.”

 

나는 심심하다는 듯 적들을 깔아뭉개고 있던 슈바르츠를 불러들이고 그 위에 올라탔다.

 

네가 타라.”

 

말이 없던 키필을 세크리트가 자기 말 위에 태웠다.

둘이서 같이 타면 속도가 떨어져서 위험하다고 말하기 전에 세크리트가 슈바르츠 위에 옮겨탔다.

 

이러면 문제 없겠지.”

 

, 문제 없군.

그리고 슈바르츠, 여자 엉덩이에 흥분하지 마라. 이건 내 엉덩이니까.

 

철수하는 내 시야 끝에 힐끔 붉은 군복이 비쳤다.

화염이 잦아드는 중이라 잘은 안 보이지만 저건 혹시 고급 지휘관인 게 아닐까?

 

노리고 싶긴 하지만 다시 돌격할 시간은 없겠어.”

 

이리지나가 커다란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게 느껴진다.”

아군 기병은 철수를 시작했다. 여기서 더 머무를 순 없다.

 

그럼 여기서…….”

 

나는 투척용으로 슈바르츠 위에 실어뒀던 검을 꺼냈다.

이걸 던져서 처리해 봐야겠군.

 

투척용? 일반 한손검으로 보인다만.”

 

세크리트의 말소리는 무시하고 표적을 조준했다.

 

!”

 

검은 회전하면서 포물선을 그리듯 날아갔고 짧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해치웠나!”

 

하지만 잘 보니 검은 지휘관의 어깻죽지에 박혀 있었다.

저걸로 죽지는 않겠군. 역시 나한테는 이런 소질이 없는 모양이다.

 

끄극……악마 자식, 감히……끄악!”

 

포기하려던 그때, 지휘관의 가슴팍에 단검이 꽂혔다.

 

이건 어떻습니까!”

 

옆에 있는 인물은 세리아다.

내가 영 돌아오질 않아서 보러 와준 모양이다.

 

확실히 이거라면 처리했을지도 모――.

 

으브븝!”

 

지휘관의 얼굴과 목에 또다시 두 개의 단검이 꽂혔다.

세크리트가 추가로 던진 건가? 이 정도면 정말――.

 

흐악!!”

 

죽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어디서 갖고 왔는지 절반만 남은 적 병사가 놈한테 명중하더니 그 이후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됐다.

 

…….”

 

키필이 던진 모양이다.

주변을 보니 근처에 적의 상반신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방금 막 뜯어서 던져버린 듯하다.

 

……철수한다.”

 

뭔가 불쌍한 감정을 느끼면서 나는 진지로 돌아갔다.

 

적의 야습을 격파하고 우리 쪽 야습은 완벽히 먹혀들었다.

오늘은 대승이라 봐도 되겠군.

 

이대로 잘 되면 좋을 텐데 말이야.”

 

나는 자리를 두고서 다투는 세크리트와 세리아를 지켜보면서 말했다.

 

뭔가 잘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쁜 예감은 적중해서 의기양양하게 잔 드라로 돌아간 우리는 에이리히가 보낸 급사를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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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5살 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변경백 동부 대영주 산의 전설 드워프의 친구 아레스 왕의 친구 용살의 영웅

엘프의 중개자 백도의 성왕

 

 

호위대 150

 

보병 13000 기병 1350 궁병 1500 궁기병 6000 포병 450

총합 인원: 22500

 

대포 60문 대형포 30문 드워프포 16문 야전포 20문 전차 50

 

재산: 금화 200000

경험 인수: 775명 자식: 68+565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