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6화『음모는 진행된다』
“다녀 오셨습니까.”
마차가 저택에 도착하자 마중 인원이 대기 중이었다.
그 사이에 아돌프의 얼굴이 있는 걸 보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돌아와 있었던 거냐.”
딱히 아돌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역병이 퍼지고 있는 위험한 남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상황이니 수고한다는 말 한 마디 정도는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좋지 않았다.
애초에 아돌프는 평소 나를 마중 나오지 않는다. 마중을 나올 땐 귀찮은 볼일이 있을 때뿐이다.
그 볼일이란 금화 2만닢 벌금 외에 달리 없으리라.
“세리아한테 맡겨두고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내용은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구요.”
반드시 도망쳐 주마. 이놈은 레오폴트랑 달리 창관에 쳐들어오는 일은 없으니까.
“우선은 남부 상황에 대해 보고해 드리려고 합니다.”
아델라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었더니 논나와 세리아가 날 앞으로 밀어냈다.
“얘기는 집무실에서 계속 하도록 할까요.”
아돌프는 그렇게 말하고서 말을 도중에 잘랐다.
평소엔 싫다고 말해도 계속해서 보고하는 놈인데 웬일이래. 시선을 쫓아가 보니 밀쿨라와 시선이 마주쳤다.
진지한 시선으로 한쪽 손에 메모장을 쥔 채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감시역이 온다고 듣긴 했지만 같은 마차에 태워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단 말이죠…….”
밀쿨라는 그 후 한 번 더 집으로 와서 며칠 뒤에 라펜으로 갈 테니 거주 준비를 해 달라고 내게 말해 두었다.
이것은 어명이기에 거부할 권리는 없다느니, 위해를 가하는 건 허락할 수 없다느니 뭔가 사무적인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라펜으로 돌아갈 건데 따로 가는 게 귀찮다 싶어 같은 마차를 타기로 한 것이다.
마차는 넓기도 하고 이번엔 동행 중인 가적도 적기 때문에 아주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이게 남자 감시역이었으면 그냥 대충 오라고 말했을 테지만 밀쿨라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성이니까 말이지.
곁에 있는 여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왜 그러시죠? 저는 폐하로부터 임명받은 감시역 임무를――.”
미소 지으면서 밀쿨라를 바라보자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에 대항하듯 세리아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작은 신체에 가녀린 체형은 아무리 봐도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본인도 알고 있는 건지 조금이라도 성인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복장을 차려입고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오히려 더더욱 어른인 척 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덤으로 입을 벌릴 때마다 흘끗 보이는 덧니와 단발머리는 말 그대로 노린 듯하다.
“귀여워…….”
“예!?”
“!”
나도 모르게 입 밖에 내뱉고 말았다.
밀쿨라의 가늘고 날카로운 눈매가 크게 치켜뜨였다.
그와 동시에 세리아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장난은 거기까지 하시죠! 저는 일단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마차에서 큰 짐을 꺼내더니 객실로 안내하는 메이드의 뒤를 따랐다.
뒤쪽에서 보면 짐이 걸어다니는 느낌이군.
“들어드릴까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여기에 익숙해질 생각은 없으니.”
신경을 써주는 메이드한테 그렇게 말한 다음 그녀는 터벅터벅 떠나버렸다.
“귀엽구만.”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더니 눈 앞에서 은빛이 흔들렸다.
밀쿨라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방해하기 위해 세리아가 깡총거리고 있는 중이다.
그래그래, 너도 귀여워.
“자 이제 방해꾼은 사라졌군요.”
아돌프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귀여운데 방해꾼이라 부르는 건 불쌍하잖아.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감시역을 집 안에 들이는 건 벌금보다 성가신 일이라구요.”
“맞아요! 저런 여자는 하루 빨리 내쫓아야 합니다!”
아돌프의 말에 세리아가 맞장구를 쳤다.
뭐, 어명이니까. 그리고 딱히 들키면 안 되는 짓을 한 적은 없다.
“아니, 제가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하지만 들키면 안 되는 짓 엄청 많은데요?”
그랬던가? 그럼 그 부분은 전부 맡길 테니까 알아서 해 둬.
집무실에서 평소와 똑같은 회의가 시작됐다.
아델라가 옆으로 따라오려던 걸 보고 세리아한테 쫓겨나간 것 말고는 평소와 똑같다.
트리스탄이 마이라한테 질질 끌려온 것도 당연히 평소와 똑같은 점이다.
“우선 저부터……제가 키사트에서 돌아온 걸 보고 눈치 채셨을지도 모르지만 역병 쪽 대책은 마무리가 됐습니다.”
“그거 잘 됐군. 잘 했어.”
아돌프는 남쪽에서 유입되는 난민들 사이에 퍼진 역병, 『염두병』 대책에 힘쓰고 있었다.
그 탓에 다른 작업에 여러모로 지장이 발생했지만 역병 대책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할 사항이었다.
“그렇게 얼추 마무리가 됐을 즈음 벌금이랑 감시역 얘기를 듣게 됐죠.”
그런 식으로 비꼬지만 않으면 순순히 칭찬해 줄 텐데.
“감염자 숫자는 이미 최고치를 찍은 뒤 이제는 감소 추세에 있습니다. 새로운 마을과 도시로 퍼지는 경우도 사라졌죠.”
흠, 그렇다면 종식까지도 얼마 안 남았겠군.
“물론 저랑 레오폴트 씨가 취한 격리 대책 효과도 있었고 나티아 씨의 특효약도 컸지만……기후 변화도 영향을 주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기후?”
“네, 최근엔 더위도 가셨고 밤엔 쌀쌀해지기 시작했죠. 위치에 따라선 수확까지 시작되면서 계절은 이제 가을로 접어들어가는 중입니다.”
당연히 여름이 끝나면 선선해지겠지.
“염두병은 여름에 제국에서 퍼진 병입니다. 아마 이 역병한테는 더위가 중요한 거겠죠.”
중앙 평원도 여름엔 덥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곧바로 쌀쌀해지고 겨울이 되면 눈도 내린다. 코트를 걸치지 않으면 얼어죽을 정도로는 추워진다.
그에 비해 제국은 가을에도 더운 편이고 눈도 잘 내리지 않는 지역이 많다.
제국에서 퍼진 역병이 추위를 버티지 못한다 한들 이상할 건 없다.
“아직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더위가 가시면서 기세가 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평원 남부는 온난 기후이기 때문에 한동안 더 위세를 떨칠 테지만 겨울이 찾아오면 얼추 종식되지 않을까 싶군요.”
그렇군. 그럼 일단락 됐다 이거로군.
“수많은 사망자와 그에 따른 혼란, 수확 쪽 영향도 이미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래, 나중에 살펴보지.”
나는 아돌프한테 건네받은 서류를 확실히 받은 다음 그대로 세리아한테 건넸다.
“……약간은 보는 게 어떨까요?”
“구석까지 다 살펴본 다음 의견이라도 내주랴?”
아돌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뇨, 성가시기만 할 테니까 괜찮습니다.”
“그렇지. 그렇고 말고.”
세리아한테 맡기는 게 모든 이들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란 말이지.
“역병은 머지않아 종식될 겁니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돌프가 물러나고 레오폴트가 앞으로 나왔다.
“남부 반란, 가칭으로 포르포/알테일 연합이라 부르겠습니다――의 갑작스러운 확대입니다.”
“그래, 빌헬미나가 날뛰고 있단 말이지.”
내가 들은 정보는 알테일을 흡수하고 그 기세 그대로 반드레아를 공격했다는 부분까지다.
“간첩들이 보낸 보고에 따르면 반드레아는 열세, 계속해서 후퇴를 거듭하여 이미 수도 반드라 근처까지 밀렸다고 합니다.”
“……호오.”
솔직히 놀랐다.
나도 지난번에 반드레아군과 싸워봤지만 결코 약하진 않았다.
나 때는 놈들이 상당히 무모한 전진을 시도 중이었고 애초에 알테일과 전쟁을 벌이던 중이라 이중 전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적은 단 하나이기에 전력으로 맞서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걸 보아 빌헬미나의 군대가 상당히 강력하다는 뜻이리라.
“아니면 반드레아가 역병 때문에 지나치게 약해진 건가?”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상황은 알테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상황에 포르포의 약소 병력이 추가된다 한들 이 정도로 일방적인 전개는 불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반드레아와 알테일의 전력은 비등비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결판을 내지 못하고 싸우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둘 모두 약체화된 상황이라면 조건은 동일, 비등비등한 상황을 무너트릴만한 조건은 포르포군의 합류밖에 없다.
하지만 포르포의 병력은 1만도 채 안 된다. 그런 병력이 참가한다 한들 그 정도로 영향력을 끼칠 것 같진 않다.
“어쩌면 빌헬미나가 미녀라서 병사들이 더 열심히 싸운 걸지도 모르지. 나도 미인 여왕 밑에서 싸우면 2배는 강해질걸.”
그렇게 공적을 세워 마음에 든 다음 여왕의 구멍을 노릴 것이다.
“아무튼 이대로 반드레아까지 합병당했다간 성가신 사태로 이어집니다.”
레오폴트 자식, 무시했군.
“알테일/반드레아를 병합한 국가가 탄생하면 커다란 위협 요소가 될 것입니다. 심지어 역병도 종식됐고 산에서 떨어진 재의 영향력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두 나라는 급속도로 국력을 회복할 겁니다.”
괜찮아. 나한테는 세리아의 부드러운 뺨이 있으니까.
“적대 중인 두 나라를 흡수하면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리 쉽게 강대국이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세리아까지 회의에 참가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마이라의 엉덩이를 만져야겠군.
“일반적으로는 그렇겠죠. 하지만 빌헬미나 여왕은 광신적인 알테일을 휘어잡은 실적이 있어요. 이번에도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마이라까지 진지하게 회의를 하길래 엉덩이를 만지러 움직인 손이 허무하게 돌아왔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군비 증강을 우선시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선 우리들만으로는 대처하지 못할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이후로도 상황을 주시해 둘 필요가 있겠네요. 간첩을 늘리죠.”
“맞는 말이네요.”
“이견 없어.”
“자금적인 문제는 나중에 협의하도록 할까요.”
“좀 더 병력을 훈련시켜야겠군요.”
마이라, 트리스탄, 아돌프……세리아까지 서류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혼자 남았군.”
석연치 않은 기분이라 쌓여있는 서류 중 하나에 적당히 도장을 찍어주도록 하지.
아니, 잠깐만.
살인죄를 저지른 여자 죄수를 처형하도록 허락한다고? 이런 거에 도장을 찍을 리가 있나.
이 여자 죄수와 유족을 저택으로 부르도록 적어야겠군.
문득 문 반대편 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문으로 다가가 열쇠구멍 사이로 슬쩍 밖을 엿보았다.
“……으으음, 안 들리네.”
밀쿨라가 문에 달라붙어 있었다.
집무실 문은 두껍게 제작되어 있기에 소리는 새어나가지 않는다.
훔쳐들으려면 확실히 귀를 딱 붙이는 수밖에 없지만 메이드라도 지나갔다간 단숨에 들통날 텐데.
그리고 회의는 이미 끝난 상황이라 이제 와서 귀를 붙여도 의미없을 텐데.
한 번 장난이나 쳐볼까?
나는 열쇠 구멍을 엿보면서 아주 그럴듯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런데 밀쿨라 정보관에 관한 의견을 묻고 싶군.”
움찔, 하고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훌륭한 미녀라고 생각하지 않나? 나는 그런 미인을 본 적이 없거든.”
“무, 무슨 얘기를…….”
당혹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리는 밀쿨라.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뭐라고? 그 여자는 틀림없이 미의 여신이라고? 생각이 통하는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처음 본 순간 무릎을 꿇고 발을 핥고 싶어졌을 정도야.”
그녀의 어깨가 후들후들 떨리더니 표정이 살짝 불그스름해져 있었다.
뭔가 재밌는데.
“한 번 프로포즈를 해볼까? 아니면 밤에 덮치러 가는 것도 괜찮지.”
“덮!?”
그 순간 문을 홱 열었다.
문에 귀를 맞대고 있던 밀쿨라는 아쉽게도 방 안으로 넘어지진 않았고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었다. 아직 살짝 뺨은 붉지만.
“하드릿 경, 안녕하신지요. 이 방은 무슨 방이죠?”
아주 멋지게 연기하는군. 대단해.
좀 더 놀려줄까?
“밀쿨라 정보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두 손을 붙잡았다.
“헉!? 서로 입장이라는 게 있잖아요! 이렇게 갑자기 구혼――.”
“감시역으로서 제 군대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지요. 내일 훈련을 할 테니 그때 찾아오시죠.”
동요 중이던 그녀의 움직임이 멈췄다.
“…….”
내 등 너머로 집무실 안을 들여다보는 그녀. 물론 나 말고 그 안에는 아무도 없다.
“……끙.”
속았다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이리라.
거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뒤, 나를 날카롭게 노려본 다음 표정을 고쳤다.
“왜 그러시죠?”
“아무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여러모로 물어볼 일이 있을 텐데, 어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딱 봐도 화가 났다는 분위기를 티내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밀쿨라.
하지만 애초에 크기가 작아서 귀엽기만 하다.
“…….”
입 밖에 내뱉은 건가?
밀쿨라는 뒤를 돌아보고 다시 나를 노려본 다음 떠나갔다.
레오폴트와 아돌프는 물론이고 저택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밀쿨라를 환영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감시하겠다고 알린 채 들어왔으니 당연한 얘기긴 하지만, 그건 너무 불쌍하다.
“나 하나 정도는 아군이 되어줘야지.”
그렇게 하면 그녀가 유일한 아군인 내게 반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애초에 앞으로 그녀는 여기에 계속 살 거고 나를 감시할 예정이다.
매력을 보여줄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후후후, 저 작은 신체를 맛볼 날도 머지 않았군.”
상상만으로도 육봉이 커다래졌다.
창관이라도 다녀와야겠어.
“작은 신체라니, 누구일까? 새로 들어온 메이드인 토토르를 말씀하시는 건가?”
“아니, 그 애 이미 따먹혔으니까 아니야. 분명 몰트의 여왕님일걸.”
“어쩌면 자기 딸일지도……나으리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히에에에엑.”
메이드들이 뭔가 소근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밀쿨라는 성이란 말이지.
그녀의 이름을 아직 듣지 못했군. 자기 소개를 할 때도 말하지 않은 걸로 기억한다.
“언젠가 내 여자가 될……아니, 이미 내 여자나 다를 바 없으니까 물어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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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레아 영지 내부
“폐하! 반드레아 제3병단을 투항시켰나이다!”
한 젊은 남성이 빌헬미나 앞에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보고했다.
하지만 일동은 비교적 차가운 눈길로 사내를 지켜보고 있었다. 유일한 예외는 빌헬미나 하나뿐이다.
“아아……대단해요. 당신의 재능과 충성심에 감사하겠어요. 이제 불필요한 전투를 하나 피할 수 있게 되었군요.”
빌헬미나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그 남자의 손을 붙잡았고, 남자도 기쁜 듯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당신이 없었더라면 저는 분명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계속 제 곁에 있어주시길.”
“화, 황송한 말씀입니다! 충성심으로 보답하겠나이다!”
빌헬미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붉히며 말했고 쑥스러움을 감추듯이 머뭇머뭇 자리를 뒤로 했다.
남자는 어떠냐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이야, 목숨을 바칠만한 인물이라는 것은 바로 폐하를 두고 말하는 것일 테지요. 여러분들도 충성심으로 보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혀를 차는 소리와 콧방귀를 뀌는 소리가 사내의 말에 답했다.
‘후후후, 기껏해야 혀밖에 못 차는 멍청한 놈들. 폐하의 총애를 받고 있는 나한테는 아무 말도 못할 테지.’
남자는 일부러 가슴을 펴고 천천히 걸으며 방을 빠져나갔다.
‘그건 그렇고 나는 행운의 별자리에서 태어난 건가? 최근엔 무슨 짓을 해도 잘 굴러가는군.’
빌헬미나의 명령을 받으며 행동하게 된 뒤로부터 그에게는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
‘이만한 공적을 쌓으면 조만간 대신도 꿈은……아니, 어쩌면 폐하는 내게 반하신 걸지도 몰라. 그 다프네스라는 남자가 폐하의 애인이 아니냐는 소문이 있었는데, 역시 어디서 굴러온 건지 모를 남자보단 오랫동안 포르포에 힘써온 내게 매력을 느끼신 걸 테지.’
남자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언젠가 폐하를 침상으로 부르기라도 한 다음……그렇게 되면 나는 여왕의 배우자, 아니 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포르포/알테일/반드레아를 통합한 강대국의 왕이라. 꿈만 같은 이야기군. 커다란 권력과 아름다운 여자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니 역시 세상은 나처럼 유능한 남자를 위해 있는 거로군.’
히죽대는 표정을 손으로 감춘 남자는 한층 더 망상에 빠져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흠, 무슨 소리지?”
안쪽으로 들어간 빌헬미나의 표정에 방금 전과 같은 쑥스러움과 미소는 흔적도 없었다.
“뻔한 걸 물어보는군. 그 멍청이 말이다. 그런 애송이를 왜 그렇게 치켜세우는 거냐?”
다프네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적을 세운 부하를 치하하는 건 지도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빌헬미나가 엷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으나 다프네스는 진지한 표정을 무너트리지 않았다.
“뭐가 공적이란 거냐. 반드레아 제3병단은 이미 완전 포위당한 상태, 사실상 죽은 놈들이었다. 그대로 쓰러트리는 것도 손쉬운 일이었고 아예 방치하더라도 위협이 될 요소는 아니었다. 꼬맹이를 보냈어도 항복했을 게 뻔해.”
빌헬미나는 “그래서?” 라고 다음 말을 꺼내도록 부추겼다.
“놈의 공적이라고 떠벌리는 젤리스타스 도시의 무혈 입성도 마찬가지다. 우리 군대가 우회에 성공한 시점에서 그 도시의 운명은 다한 거였지. 굳이 교섭하지 않더라도 편지 한 통만 보내면 영주는 도시를 열어줬을 텐데.”
다프네스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스투레 상인 쪽 교섭도 놈의 공적인 걸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네가 전부 꾸민 짓이겠지? 놈은 단순한 전령에 불과해.”
“글쎄, 어떨는지.”
엷은 미소를 지은 채 빌헬미나가 건넨 술을 다프네스가 살짝 거칠게 빼앗은 다음 단숨에 들이켰다.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민중과 병사, 내 부하들 사이에서까지 소문이 퍼지는 중이다. 그게…….”
다프네스가 말을 흐리자 빌헬미나가 스스로 말을 이었다.
“『폐하랑 그놈은 그렇고 그런 관계가 아닌가?』일 테지.”
“……멍청한 소문이긴 하지만 병사와 부하들의 사기에 영향을 주거든. 연심으로 공적을 받게 되면 반발을 사게 되지.”
다프네스는 빌헬미나가 당연히 부정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녀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부정은 안 하지.”
“뭐라고!? 설마 정말 놈이랑 연인 관계라도 된다는 거냐?”
다프네스가 책상을 내리쳤다.
“그놈은 내게 있어 필요한 남자다.”
“그런 삐쩍 마른 멍청이가 뭐가 좋단 거냐. 그럴 바에는 그나마 내가 더――.”
빌헬미나의 시선이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
“놈의 빈약한 재능 따윈 필요없다. 필요한 건 『내게 중요한, 연인 관계가 아니냐 하는 소문이 돌고 있는 남자』다.”
다프네스는 움직임을 멈추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나는 너만큼 권략술수에 재능이 있진 않아. 설명해 주면 좋겠군.”
“그래. 남자의 질투심을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거든.”
말문이 막힌 다프네스를 흘끗 쳐다보고 빌헬미나는 한 통의 종이를 내밀었다.
“이건 뭐지?”
“반드레아와 극비리에 진행한 평화 교섭이다. 얼추 이런 조건으로 정리가 됐지.”
다프네스는 경악하며 뒤집어질 기세로 종이를 펼쳤다.
글자를 따라 읽으면서 그의 눈이 한계치까지 치켜뜨였다.
“평화 조약 이후 10년간의 불가침 조약……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국경 부근 몇 개의 마을과 강의 이용권……그리고 쥐똥만한 수준의 배상금뿐……어이, 이건 무슨 농담이지!?”
이미 수도 목전까지 밀어둔 진영이 건넬만한 조건은 아니다.
만약 이런 조건으로 평화 교섭이 이뤄지면 외교상 크나큰 패배라 할 수 있다.
“농담은 아니지만 거짓이긴 하지.”
풀썩, 하고 다프네스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반드레아 놈들은 당장이라도 그 조건을 받아들일 거다. 조만간 수도 반드라 근처에서 나와 네가 놈들의 지도자 놈들과 직접 교섭을 하면서 도장을 찍게 될 테지.”
다프네스도 얼추 무슨 느낌인지 감을 잡은 듯했다.
“물론 도장은 필요없다. 지도자 놈들……쓸데없는 수뇌부를 거기서 배제하고 반드레아는 내가 탈취한다.”
“암살인가……그런데 과연 그게 잘 될까? 놈들도 멍청이는 아닐 텐데. 어디서 도장을 찍는다 한들 경계는 삼엄할 테고 무엇보다 수뇌부가 죽었는데 아래쪽……민중과 병사들이 순순히 우리의 말을 들을 것 같진 않다만.”
다프네스는 빌헬미나의 눈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살짝 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내가 생각하지. 너는 계속해서 공격해라. 놈들이 한 시라도 빨리 교섭을 진행하고 싶어지도록 말이야.”
“그래, 알겠다……그런데 아직 첫 번째 의문에 답을 주진 않았잖아. 그 멍청이를 치켜세우는 이유는 뭐냐?”
빌헬미나는 거울로 옷 매무새를 확인하면서 말했다.
“놈들만 전부 다 죽었다간 딱 보기에도 내가 꾸민 음모다. 내 쪽도 최소한 중요 인물을 죽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지. 그런 상황에 나랑 연인 사이가 아니냐는 소문이 도는 남자가 죽으면 적임이지 않나?”
“그러려고 지금까지 준비를 하고 있던 건가.”
빌헬미나는 “그래.” 하고 짧게 답했다.
“역할만 보면 너라도 괜찮았을 테지만 정말로 유능한 사람을 죽게 놔두기엔 아까우니까 말이지. 반면 그 녀석은 하나도 아깝지 않아.”
“무서운 말은 하지 마.”
머리를 다 정리한 빌헬미나는 확인하듯 표정을 바꾸다 나이에 걸맞는 쑥스러운 미소로 고정했다.
“그럼 그 남자를 저녁 식사에 부르도록 하지. 조금 더 소문을 부풀려야 할 필요가 있거든.”
그렇게 말하며 빌헬미나는 방을 빠져나가려 했으나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다프네스. 그 녀석의 이름은 뭐였지? 깜빡 잊어버렸군.”
“불쌍한 놈이군.”
영주민 185500 난민 24000명
중요 도시: 라펜 32000명 린트브룸 5000명 반드레아 특별 개척지 지구 13000명
잔류군 8650명
보병 6000 기병 1000 궁병 900 궁기병 450 포병 350
대포 35문 대형포 20문 드워프포 16문 전차 27대
남부 출병 2200명
난민 경비(경보병) 2200
그 외
예비역 2000명 치안대 150명
가족
논나(가슴) 카라(측실) 멜(맨들) 미티(측실) 마리아(공) 카트린느(수)
멜리사(애첩 임신) 쿠우(애첩) 루우(애첩) 밀레(애첩) 레아(애첩) 케이시(귀환) 리타(메이드장) 요구리(청탁) 피피(궁기?병) 앨리스(엉덩이 애첩)
말스린느(애첩) 딸 스테파니(애첩) 브리짓(애첩) 펠리시(애첩)
나티아(절호조) 소피아(애첩) 세크리트(황홀)
세바스찬(곤란) 도로테아(왕도 저택 관리) 클라우디아(폭식) 클라라(시녀)
셀레스티나(여왕) 모니카(시녀) 아델라(프로 애인)
인외
브륜힐데(휴식) 라미(라미아) 알라우네(도시의 식물) 미루미(인어 배부름)
애완동물
멍멍이(거대 도마뱀) 메서 슈미트(똥개) 슈바르츠(교미)
펠테리스(행방불명)
부하
세리아(개선 질투) 마이라(부상) 마타(시종)
이리지나(지휘관) 루나(지휘관) 루비(개선)
기드(개선 행복) 포르테(난민 담당관)
레오폴트(심문 중) 트리스탄(참모) 아돌프(역병 대책)
클레어&롤리(상인) 릴리안느(여배우) 크롤(하인) 알마(하인)
밀쿨라(감시역)
재산: 금화 16100 군비 증강(1900)
경험 인수: 555명 자식: 66명+555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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