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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18화『새로운 동행자』

제18화『새로운 동행자』

 
나는 슈바르츠를 타고서 숲길을 걸어가는 중이다.
뒤쪽에선 세리아가 필사적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라며 소리치고 있지만 달리는 내내 입에서 거품을 물면서 충혈된 눈으로 말해봤자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처음엔 세리아를 태워줄 생각이었으나
 
“주인님과 함께 말을 탈 수는 없습니다. 뒤쳐지지 않을 테니 타고 가 주시죠.”
 
그 결과가 이것이다.
슈바르츠가 푸르르 하고 울면서 얼른 태우라는 듯이 몸짓했다.
나한테는 죄악감이, 세리아한테는 고통이, 슈바르츠한테는 남자의 엉덩이가.
3명 모두 아무것도 득 보는 게 없었기 때문에 세리아를 집어들어 내 앞에 태웠다.
 
“저까지 탔다간 말이 지쳐서 느려질 겁니다!”
 
 세리아는 그렇게 소리쳤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가벼운 네가 슈바르츠 위에 타봤자 녀석한테는 아무런 문제도 없고, 애초에 너를 신경 쓰느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거든.
그녀가 타자마자 슈바르츠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젓더니 한층 더 속도를 올렸다.
속도가 올라간 슈바르츠를 보고 세리아도 오히려 자신 때문에 늦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의기소침해졌다.
 
세리아한테는 내가 클레어한테서 빼앗았던 강철검과 원래 내가 갖고 있던 방패를 주었다.
그녀한테는 조금 큰 느낌이 있지만 한 번 사용해 보도록 시켜 본 결과 생각보다 괜찮게 다루길래 그대로 쓰도록 허락해 주었다.
기량은 없지만 검술 센스만큼은 비범한 듯했다.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곳은 고르도니아의 북쪽, 중앙 평원의 북쪽 끝이자 연방과의 국경이 펼쳐져 있는 대산림 지대를 관통하는 도로다.
직선 거리 100km가 넘는 이 산림은, 연방과 중앙 평원을 연결하는 중요한 길이기 때문에 도로가 아주 잘 정비되어 있다.
다만 좌우 모두 시야 확보가 상당히 까다로운 숲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도적 혹은 습격자로 인한 피해가 종종 보고되는 곳이기도 하다.
 
“여차할 땐 저도 싸우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콧김을 내뿜는 세리아를 내 다리 위에 올려두고 그녀의 귀여운 엉덩이 감촉을 즐겼다.
슈바르츠는 등 위에 씌워둔 모피 너머로 느껴지는 소녀의 다리 감촉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문득 나랑 슈바르츠가 닮은 건 아닐까 하는 망상이 떠올랐으나, 그럴 리가 있겠냐며 웃어 넘겼다.
 
끝없이 이어진 도로를 나아간다.
역시 중앙 평원과 연방을 이어주는 유일한 도로다 보니 낮 시간 동안 곧잘 사람들과 마주쳤다.
갓길에는 중간중간 숙박실도 보였는데, 그 안에는 소박하게나마 침대와 물, 그 외에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서 여행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우연히 방문하게 됐던 실라 마을 쪽 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연방과 고르도니아의 국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면목이군.
 
해가 지기 시작하자, 우리는 가장 근처에 있던 숙박실을 찾아 오늘 여행을 마무리했다.
숙박실에는 우리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몇 명 정도 있었는지, 작은 마구간에 말 몇 필과 짐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빈 침대 있나?”
“오오, 오늘은 많군 그래! 당신들이 마지막이야. 운이 좋았어.”
 
숙박비를 지불하고서 로비에서 밥을 먹는다.
평범한 숙박실의 경우 따로 밥은 나오지 않고, 침대도 한 방에 전부 모여있는 경우가 많아 편히 쉬기 힘들기 때문에 잠들기 직전까지 로비에서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숙박 손님들끼리 나누는 대화 도중에도 유용한 정보가 끼어있는 경우도 있다.
 
나도 세리아를 데리고서 대화에 끼어들어봤으나, 딱히 좋은 정보는 없었다.
 
“너도 용병인가? 꽤 커다란 창을 갖고 있다만 허풍쟁이 버릇은 목숨을 잃게 되는 원인이지! 나처럼 오랫동안 전장을 누벼온 용병은~.”
 
방금 전부터 내게 용병에게 필요한 마음가짐 같은 소리를 얘기하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곤드. 자칭 역전의 용병이라고 한다.
전장을 누볐던 자신의 영웅담을 계속해서 늘어놓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지명과 나라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는 신기한 남자다.
종종 격전을 벌이다 부상을 입고 기적적인 생환을 반복하고 있다는 모양인데, 몸에는 상처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오오오! 엄청나군요! 대단합니다! 그야말로 귀신의 솜씨!”
 
곤드의 이야기에 과장스럽게 반응하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루그, 상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방 구석에는 세 명의 여자와 덩치 큰 남자 하나가 앉아있었다.
그 사람들은 전부 목에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고 덩치 큰 남자는 팔에 낙인까지 찍혀 있었다.
그러니까 저 상인이라는 사람은 노예상, 저 사람들은 그의 상품이라는 뜻이다.
 
노예제는 오르가 연방……고르도니아 왕국 모두 합법이기 때문에 루그가 하고 있는 짓이 위법인 건 아니다.
 
루그는 연방에서 고르도니아 쪽으로 상품을 팔러 가는 도중이었다고 한다.
 
“루그라고 했나? 너는 내 실력을 잘 알아보는 모양이구나!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만, 네가 갖고 있는 노예 여자들 꽤나 괜찮군. 나는 조만간 거물이 될 거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 내게 투자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만…….”
 
에둘러 자신에게 여자를 달라고 말하는 곤드한테 루그가 또다시 과장스럽게 반응했다.
 
“이야! 곤드 님의 무용담, 정말 훌륭했습니다! 다만 오늘 데려온 여자들은 지금 보고 계신대로 상품성도 좋고 전원 처녀입니다. 왕도 쪽으로 가면 금화 100닢은 할 법한 비싼 여자들이랍니다.”
“금화 100닢이라고! 그런 가격이 말이 될 리가 있나!”
“아뇨아뇨, 특히 이 상등품이 처녀라 하면 귀족 분들께서도 움직이실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루그가 자랑하듯이 한 여자를 일으켜 세웠다.
나이는 17살, 노예라고는 해도 겉모습을 꾸미는 데 힘을 들이고 있는 건지 허리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칼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키는 평균 정도에 전체적으로 슬림한 체형.
전시품마냥 다른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운 건지 고개를 숙이고 있긴 했으나 틀림없는 미인, 그것도 상당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눈을 끄는 부분은 거대한 가슴, 옷을 찢어낼 듯한 기세로 솟아올라 있는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봤던 것들 중에서도 가장 큰 사이즈였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덜렁덜렁 흔들리는 말도 안 되는 사이즈의 가슴이었다.
그녀 옆에 있는 두 여자도 나쁘진 않다.
오히려 미인 쪽에 속하는 얼굴상인데 이 여자 옆에 있으니 다소 부족해 보였다.
 
“다른 여자들도 꽤나 품질이 좋으니 말이지요. 여기서 맛을 보시게 내드렸다간 상품성이 떨어지다 보니……물론 이 여자한테 금화 100닢, 다른 여자한테 금화 50닢을 내주신다면야 당장에라도 건네드리겠습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일개 용병이 그 정도로 큰 돈을 들고 다닐 리 없다.
곤드는 투덜투덜거리면서 끝내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다. 훔치는 건 물론이고 상처라도 입혔다간 배상해야 할뿐만 아니라 위병한테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루그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는 듯했다.
 
“아무튼, 다들 이렇게 좋은 상품이다 보니 여러 해충놈들이 득시글대는 경우가 많은지라, 이 남자한테 감시를 시키는 중입니다.”
 
덩치 큰 노예 남자가 저 아가씨들을 지키는 역할인 모양이었다.
남자는 아직 포기하지 못한 기색을 내비치는 곤드를 힐끔 노려보았다.
역전의 용병님께선 아무 무장도 없는 남자의 시선에 겁을 먹고 머뭇머뭇 침대로 향했다.
 
“그런데 이쪽에 계신 분께서도 상당히 아리따운 소녀를 데리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관계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곤드를 떨쳐낸 루그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리아는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내 종자다.”
“오호, 사랑스러운 종자로군요! 여행을 함께하기엔 최고일 테지요.”
 
매일밤 즐기시고 계신가 보죠? 소녀가 취향에 맞으시나 보군요? 라며 천박한 미소를 짓는 루그.
무시해도 상관없긴 하지만 조만간 세리아가 폭발할 것 같으니 이쯤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자.
 
“당신이 갖고 있는 아가씨들은 다들 상당한 미인이라 구경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만, 이 아이가 슬슬 잘 시간이라 말이야. 이만 실례하도록 하지.”
“그거 안타깝군요! 당신께서도, 혹시 금화 100닢…….”
 
나는 손을 저어서 거절의 의사를 보인 다음 세리아와 함께 침실로 향했다.
나는 금화 100닢을 갖고 있긴 하다.
저 정도 거유라면 그 돈을 쓰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노예를 샀다간 세리아의 시선이 따가워질 게 분명하다.
나를 따르는 소녀 앞에서 짐승 같은 모습을 보이는 데에도 저항감이 있고, 고개를 푹 숙인 여자를 돈으로 사서 내 마음대로 다루는 것도 시시하게 느껴졌다.
 
침대는 큰 방 안에 전부 모여 있기 때문에 노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방 안에서 자게 된다.
여행 도중엔 좀처럼 여자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보니 세리아한테 슬쩍 손을 대려는 어리석은 놈이 튀어나올 가능성도 존재한다.
 
“세리아, 내 침대에서 자겠느냐?”
“예? 아,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열심히 안 해도 돼.
 
날씨가 살짝 쌀쌀하길래 세리아를 정면에서 끌어안았다.
아직 아이라 그런 건지 그녀의 체온이 높은 편이라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꽉 끌어안으면 좀 더 따뜻해지는 것도 좋았다.
 
내가 품 속에 느껴지는 따뜻함을 즐기는 사이, 세리아가 머뭇머뭇 내 등에 손을 둘렀다.
 
“에이길 님…….”
 
가슴 쪽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세리아. 남자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다니 내 입장에선 그저 기분 나쁜 행위에 불과했으나, 세리아는 기쁘다는 듯이 얼굴을 비벼댔다.
가슴팍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세리아가 가슴에 키스를 한 모양이다.
 
상당히 오랫동안 여자를 안지 못했던 탓에 빈약한 소녀의 몸에도 반응하여 고간 쪽에 피가 쏠려버렸다.
 
“너무 딱 달라붙으면 따먹어 버린다?”
“…….”
 
세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트를 입에 넣더니 꽉 깨물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새어나오지 않게 하려는 건가……? 농담인데.
 
그때, 슈바르츠가 히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녀석은 한밤중에 대체 뭘 하는 거야, 하는 생각과 함께 몸을 일으켰으나 곧바로 다른 말들의 울음소리도 연속해서 들렸다.
나와 세리아는 서로 눈을 마주치다가, 곧장 무기를 손에 쥐었다.
갑옷을 입고 있을 시간은 없다.
 
이변을 눈치 챈 남자들이 제각각 무기를 준비 중이다.
이 도로는 정기적으로 순찰을 도는 사람들도 있어서 비교적 안전한 편이지만 밤에는 상황이 다르다.
밤에 습격한 다음 아침이 오기 전에 숲에서 도망친다.
그렇게 하면 경비병한테 들킬 일도 없다.
도적, 혹은 오랑캐 놈들의 집단인 경우도 있다.
놈들은 숲 안을 통해 들이닥치기 때문에 군사 병력도 어지간해선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다들 무기를 손에 쥐고 로비로 나가던 도중, 전설의 용병만이 홀로 숙면을 취하고 있길래 머리를 발로 걷어차 주었다.
이딴 놈이라도 고기 방패 정도로는 쓰임새가 있겠지.
 
나는 슬쩍 창문 바깥을 훔쳐봤다. 습격이 아니라 단순한 말도둑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문 밖에는 10명이 넘는 사람 그림자가 보였고, 숙박실 주변을 에워싸는 진을 치고 있었다.
이미 이곳을 포위한 시점에서 말도둑일 가능성은 사라졌다.
저들의 목적이 우리들이라는 사실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도 바깥 상태를 알린 다음, 전투에 대비하라고 재촉했다.
 
“에이길. 용병이다.”
“브루노, 마찬가지로 용병.”
“~~다, 이곳의 주인이지. 창 정도는 쓸 수 있다.”
“――입니다. 행상인이라 싸움은…….”
“나는 싸움 따위 못하오! 그 대신 이 노예가!!”
“맥이다.”
“소개가 늦었군! 나의 이름은 곤드!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셀 수 없는 무공을 꾸엑!”
 
곤드를 발로 걷어차서 자기소개를 짧게 끝마치도록 만들었다.
다음에도 쓸데없는 짓을 했다간 한 방 크게 먹여주마.
저 노예의 이름은 맥인가 보군. 체격도 좋고 제법 잘 싸울 것 같이 생겼지만 문제는 맨손이라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전투가 가능한 건 세 사람,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으려나.
사실 나는 세리아랑 내 몸 하나만 잘 간수하면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아까 본 초거유를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었다.
그 사이즈의 가슴은 인류의 보물이니까, 음.
 
“적의 숫자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10명 이상일 겁니다. 숫자로 봐선 이쪽이 불리하군요. 일단 안에서 농성하면서 동이 틀 때까지 버팁시다!”
 
행상인이었던 아무개가 그렇게 소리쳤으나, 그리 간단한 상황은 아니다.
내가 바깥에 있는 놈들이라면 불을 피워서 우리들을 밖으로 유인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적은 빠르게 그 작전을 실행 중인 모양이었다.
이미 곳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명이 터져나오는 사이, 맥이 주인의 명령에 따라 바깥 문을 열어보려고 했으나,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서 그 행동을 제지했다.
불을 피운 다음 매복해 있는 사람들 상대로, 이곳의 유일한 출구를 통해 나가는 건 너무 어리석은 행동이다.
검을 쥔 브루노와 창을 든 가게 주인에게 신호를 보내 곤드를 걷어찬 다음, 문 밖으로 날려보냈다.
 
순식간에 곤드한테 화살이 박히더니, 뒤늦게 창 여러 자루가 그의 몸에 꽂혔다.
역전의 용병은 추악한 비명을 내지르며 목숨을 잃었다.
 
“지금이다! 가라!”
 
나와 점주, 그리고 브루노라는 이름의 용병은 고슴도치처럼 변한 곤드의 옆을 지나쳐 달려나갔다.
곤드한테 창을 겨누고 있던 남자들은 넷. 그 중 브루노와 점주가 각각 하나씩, 내가 두 사람을 쓰러트렸다.
 
“궁병을 쓰러트려라!”
 
브루노가 소리쳤다.
정답이다. 전장에선 화살이 날아오는 이상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적은 활을 들고 겨눴으나, 다들 곤드한테 화살을 이미 써버린 건지 곧바로 발사할 수 있는 상태의 적은 없었다.
내가 단숨에 놈들한테 접근하자 허둥지둥 활을 버리고 검으로 무장을 바꾸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두 사람을 두 동강 내고 나머지 두 사람의 머리를 박살낸다.
이걸로 궁병은 처리했다.
하지만 적의 숫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던 모양이다.
 
뒤쪽에서 비명이 터져나와 뒤를 돌아보니 브루노와 숙박실 아저씨가 제각각 두 명을 상대로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으나, 적의 숫자는 아직도 많았다.
겁먹은 비명소리를 내지른 행상인이 땅바닥에 질질 끌린 채 적들한테 마구 찔리는 중이었다.
다섯 명 정도 되는 남자가 브루노와 아저씨를 돌파하더니 여자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제때 갈 수 있을까!?’
 
나는 전력으로 달렸지만 놈들이 더 빨랐다.
하지만 그때 생각지 못한 원군이 등장했다.
 
3명의 노예 여자 앞에 들이닥친 적을 상대로 벽이 나타났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나무로 된 벽. 맥이 테이블을 쥐어들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도저히 무기라고 부르기 힘든 물건이지만 어쨌든 맞았다간 즉사할 가능성도 있는 무게를 가진 테이블이다.
게다가 테이블 다리를 붙잡고서 몸통을 앞에 세워둔 채 휘두르고 있다 보니 맥한테 공격이 닿질 않는다.
 
“잔머리 한 번 잘 굴리는데!”
 
하지만 위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2:1로 싸우고 있던 아저씨가 끝내 힘을 다했는지, 가슴에 창이 꽂혔다.
브루노는 한 사람을 베어넘겼으나 곧장 두 사람이 들이닥쳐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엔 힘들어 보였다.
맥 앞에 다섯 명, 브루노 앞에 세 명.
누굴 먼저 도와줄지 한 순간 망설인 그때, 상황이 바뀌었다.
 
맥이 휘두르는 테이블 밑에서 데굴데굴 구르듯이 뛰쳐나오는 그림자.
체구가 작은 세리아가 제대로 공격해 오지 못하는 적들의 발목을 기어가는 듯한 자세로 베어냈다.
적 중 두 사람이 쓰러지고, 정신이 팔린 한 사람은 테이블에 떠밀려 날아갔다.
나머지 두 사람은 목표를 바꿔서 작은 그림자를 베어버리려고 했으나.
 
“잘 했구나.”
 
이미 내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위로 치켜든 버디슈를 전력으로 휘둘러 한 사람을 두 동강. 옆으로 베어낸 것이 아니다.
정수리부터 가랑이 끝까지 가로로 두 동강 내버렸다.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양의 피 분수가 터져나오고 몸 속에 있던 모든 내장을 주변에 흩뿌리면서, 축축한 장작은 완전히 두 갈래로 갈라졌다.
나머지 한 사람은 완전히 마음 꺾인 건지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려 했으나, 발밑에서 들이닥친 검격에 목이 꿰뚫려 목숨을 잃었다.
 
한편 브루노도 드디어 마지막 적을 베어넘겼고, 세리아한테 다리를 베여 기어가듯이 움직이고 있던 두 사람은 맥이 테이블을 내리찍어 짓뭉개진 과일처럼 만들어 버렸다.
브루노라는 사람은 제법 하는군. 1:3 상황에서 적을 전멸시킬 줄이야.
시체를 조사해 보니 아무래도 이놈들은 평범한 도적단이 아니라 동쪽에서 온 오랑캐 같은 듯했다.
창과 검으로 무장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 올 때까지 도적이나 개척민 같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습격했기 때문이리라.
원래 오랑캐들은 금속 제품을 갖고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여자 노예 세 명은 다치지 않았고 세리아도 땅바닥을 굴렀을 때 무릎에 생채기가 난 정도였다.
브루노와 맥도 사실상 피해 0, 아저씨와 행상인 아무개가 죽긴 했지만 인원수를 생각해 보면 선전했다고 볼 수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루그는 어디 갔지?
 
“여기 쓰러져 있는데.”
 
브루노가 맥 뒤쪽에서 기절해 있던 루그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아무래도 맥이 휘두르던 테이블에 얻어맞아 기절했던 모양이다.
 
“………….”
 
맥의 안색이 나쁘다.
주인한테 손을 댄 노예는 대부분의 경우 처형된다.
불가항력을 인정해 주는 주인은 많지 않다.
 
“너는 이 녀석한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나?”
 
가끔씩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는 노예와 주인도 있는 법이다.
 
“……없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지.
맥은 용감하게 싸워서 인류의 보물을 지켜냈다.
이런 추잡한 남자 때문에 목숨을 잃기엔 아까운 남자다.
 
브루노와 나는 루그를 붙잡아 이미 불이 번져 활활 타오르고 있는 숙박실 안으로 내던졌다.
전혀 수요 없는 돼지 통구이의 완성이다.
 
“저 사람은 오랑캐의 습격에 깜짝 놀란 나머지 머리를 부딪쳐서 기절했다.”
“그리고 그대로 불타 죽었지. 비통한 최후군 그래.”
 
나와 브루노는 악수를 나누었다.
꽤 마음이 잘 맞는 녀석이다.
세리아가 옆에 가만히 서 있는 걸 보고 그녀도 칭찬해 주었다.
생각보다 전투 센스가 뛰어난 듯하다.
사람한테 검을 휘두르는 데에 저항이 없었던 걸 보아 그런 일도 명령 받았던 것이리라.
 
“이제 문제는 뒷처리로군.”
 
브루노가 그렇게 말했다.
루그가 오랑캐한테 살해당한 이상 그 소지품은 유족한테 넘어가는 게 법률로 정해져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 그가 잃어버린 소지품은 오랑캐한테 빼앗긴 취급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여자 노예 3명과 맥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문제시되는 것이다.
게다가 숙박실이 오랑캐한테 습격당했다는 사실도 알려야만 한다.
 
“숙격실 습격 건은 내가 전달하지.”
 
브루노는 고르도니아 왕국으로 가는 중이다.
다음 숙박실까지 남은 거리를 고려해 보았을 때 그러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고르도니아, 에이길은 연방으로 가는 중이다. 너희들은 어느 쪽으로 가고 싶나?”
 
네 사람에게 물었다.
 
“저는……연방으로…….”
“저도요!”
“에이길 님과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지.
루그가 연방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연방에서「납품」된 것이리라.
어떠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한들, 조금이라도 더 고향 가까이에서 지내고 싶어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나는 세리아를 데리고 다니는 중이니, 여자를 난폭하게 다룰 것 같지도 않은 인상을 줬을 것이다.
심한 꼴을 당할 가능성도 적을 것이라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고르도니아 왕국으로 가고 싶다.”
 
맥은 고르도니아 쪽으로 간다는 모양이다.
브루노가 살짝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야 그렇겠지. 나한테는 미녀 세 사람, 자기한테는 덩치가 산만한 근육질 남자 하나니까.
 
“그럼 루그가 갖고 온 마차는 네가 써라. 여자 세 명을 걸어다니게 둘 수도 없지 않나.”
 
다행히 마구간은 화재에서 무사했던 덕분에 루그가 갖고 온 말 두 필이 묶여있는 중형 짐마차와 행상인의 당나귀가 남아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황이 나한테 너무 형편 좋게 굴러간 느낌이라 루그의 지갑 속에 있던 금화 40닢을 전부 브루노한테 넘겨주었는데, 브루노는 다시 나한테 절반을 던져 주었다.
 
“한 사람이 다 챙겨가는 건 좋지 못해. 이제 너도 공범이야. 그 대신 놈들이 갖고 온 무기는 내가 받아가지.”
 
꽤나 멋진 남자군. 인기 많겠어.
방금 전부터 맥이 존경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중이라고.
 
“게다가 여자가 있는만큼 더 수고스러울 테니까 말이야. 마차도 나한텐 필요없는 물건이고.”
 
여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에 그 말엔 동의할 수 없었으나 확실히 마차도 필요하고 이 금화 20닢도 이 녀석들한테 써주면 될 것 같았다.
속도는 떨어지겠지만 추위가 예상되는 상황 속에서 지붕 딸린 마차를 얻은 건 행운이었다.
 
“브루노, 너는 고르도니아에 뭘 하러 가는 거지?”
“나는 용병이다. 당연히 용병단에 들어가야지.”
 
아, 뭔가 연결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크게 한 탕 벌 수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야, 자세한 건 말 못하지만…….”
 
신기하게도 내게도 짐작 가는 부분이 있는데 말이야.
여명의 날개는 상당히 광범위하게 사람을 모집하고 있는 모양이다.
 
“만약 연이 있으면 또 보자고.”
 
브루노의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몇 번이고 귓가에서 되풀이되었다.
 
우리들의 준비도 끝났다.
슈바르츠 위에는 세리아를 태워두고, 마차에는 나와 세 아가씨가 올라탔다.
마차를 운전할 수 있는 게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 있던 용병단에서 잠깐 다뤄본 정도긴 하지만, 운전해 보면서 차츰차츰 익숙해져 보기로 하자.
슈바르츠가 마차를 끌고 있는 암말한테 뜨거운 시선을 보내는 중이다.
정말 가리는 게 없는 녀석이군, 말한테까지 흥미를 가질 줄이야…………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데?
 
슈바르츠 위에 올려두었던 짐들도 마차 쪽으로 실었다.
우리가 갖고 있던 짐은 전부 다 불타기 전에 세리아가 꺼내 주었던 것이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히죽히죽 미소를 지으면서 출발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새벽녘이 다가옴과 함께 브루노와 맥은 남쪽으로, 우리들은 북쪽으로 출발했다.
어차피 또 만날 수 있겠지.
 
앞으로 한동안은 뒤쪽에 있는 여자들이랑 같이 다니게 될 테니, 친목을 다져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처럼 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모양새는 좋지 못하다.
 
“너희들의 이름을 물어봐도 되나?”
 
“알리사입니다. 주인님.”
“코렛트예요……….”
“논나라고 합니다.”
 
알리사는 또렷한 목소리로, 코렛트는 누가 봐도 겁먹은 기색으로, 그리고 논나……초거유 여자는 치맛자락을 들어올리는 깔끔한 인사를 하며 대답했다.
 
“그래서 너희들은 어떻게 하고 싶지?”
 
예? 하고 여자들이 전부 고개를 들었다.
 
“너희가 스스로 노예가 되고 싶다면야 어디 마을에 들러서 팔아치우거나 이대로 내 소유물로 삼을 텐데, 그렇게 하고 싶나?”
“아, 아뇨! 아니에요!” “저도요!”
 
알리사는 작은 도시, 코렛트는 농촌 마을 출신으로 조금 멀리 떨어져 나왔을 때 도적한테 유괴당해 그대로 노예 상인한테 팔려나갔다고 한다.
연방의 치안도 수준이 별볼일 없는 건지, 아니면 애초에 이 두 사람이 미녀라서 표적이 되어 있었던 건지는 의문이다.
 
“우리 고향은 동쪽이라 치안은 그리 좋지 못하거든요.”
 
라고 한다.
 
“그래서 너희들이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면야 내 여행 도중에 바래다줘도 되는데, 장소는 알고 있나?”
 
두 사람의 눈이 반짝인다. 장소는 숲을 빠져나온 다음 그대로 북부로 올라가면 바로 보이는 데에 있다고 한다.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나온다 하니 도중에 들르게 될 도시나 마을에서 이름을 물어보면 언젠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연방은 중앙 평원과는 넓이가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북쪽으로 가기만 해도 1개월 단위의 시간을 각오해야만 한다.
눈도 심하게 내릴 테니 생각보다 빠르게 가긴 힘들 것이다.
 
그럴 경우엔 또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아직 어린 세리아한테까지도 요즘 들어 욕정을 느끼는 수준인데, 19살과 16살이라는 알리사와 코렛트, 그리고 두 사람보다 2배는 더 미인인 논나를 근처에 두고서 버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고향에는 확실히 돌려보내 주마. 그러니까 여행하는 동안, 너희들을 내가 안아도 되겠나?”
 
믿기지 않는 전개에 웃음꽃이 피어 있었던 코렛트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그럴 수가……싫어……싫어어!”
 
갑자기 발작하는 코렛트를 알리사가 억눌렀다.
 
“죄송해요! 코렛트는 지금까지 남자들한테 말로 하기 힘든 끔찍한 짓들을 당했다 보니 그게 떠올랐나 봐요. 제가 상대해 드릴 테니 이 아이는 봐 주세요…….”
“아뇨,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거의 얘기를 나누지 않았던 논나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하고 대답을 흐리면서도 알리사는 무언가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면부지의 남자한테 처녀를 빼앗기는 게 무서웠던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한편 논나는 등을 한껏 쭉 펴고 똑바른 자세로 앉은 채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살짝 흔들리는 게 엿보였고 무릎 위에 얹어둔 손도 떨리는 중이었다.
 
“사양하도록 하지. 당신은 확실히 엄청난 미인이지만 그런 어두운 눈을 가진 여자를 안는 취미는 없거든.”
 
무엇보다 신경 쓰였던 건 바로 논나의 눈.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눈을 갖고 있었다.
다른 두 사람과 달리 고향에 돌아갈 수는 있지만 남자한테 덮쳐지는 게 무서운 그런 느낌의 시선이 아니었다.
마치 자신이 돌아갈 장소 따위 이미 아무 데에도 남지 않은 듯한 눈이었다.
 
빼어난 용모에 거대한 가슴. 그녀를 안고 처녀를 빼앗는다면 극상의 쾌감을 얻을 수 있을 테지만, 그 짓을 해버렸다간 영원히 그녀는 그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어두운 관계는 사양이다.
 
“뭔가 여러모로 사정이 있나보군.”
 
3명이 눈을 내리깔았다.
도적한테 유괴당한 다음 노예 상인한테 팔려나간 것이다.
당연히 무사했을 리가 없다.
 
“약속하지. 오늘 하루 동안은 절대로 너희들한테 손을 대지 않겠다. 그러니까 나한테 후련하게 사정을 다 토해내라고.”
 
어차피 오늘 하루 동안은 계속해서 길을 나아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천천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다음, 스스로 가랑이를 벌려오길 기다려 보자.
 
코렛트와 알리사는 유괴당한 후, 도적들한테 처녀를 빼앗기는 것 외에 모든 짓을 다 당했다고 한다.
게다가 노예 상인한테 팔리고 나서도 더 비싸게 팔릴 수 있도록 남자한테 봉사하는 법을 배우도록 강요받았다.
매일같이 노예 상인이나 그 지인들한테 계속해서 입봉사를 강요당했고, 그 오물을 삼키는 신세였다.
다른 남자 노예들 앞에서 여자 둘이서 서로를 애무하도록 강요받은 적도 있었고, 온몸에 그들이 자위해서 내보낸 정액을 뒤집어쓰게 되었다고 한다.
 
코렛트는 울면서, 알리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고향에 돌아간다 한들 자신들은 이미 더러워졌다는 이야기와 함께.
 
“너희 신세가 불쌍하긴 하다만, 난 더럽다고 생각 안 한다.”
 
나는 마차를 세우고서 마부 칸에서 마차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을 두 손으로 끌어안은 다음, 살짝 강하게 힘을 주어 포옹했다.
 
“그딴 것쯤 씻으면 별거 아니다. 너희가 배운 건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써 주면 돼.”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어나간다.
 
“밤기술이 좋은 여자를 보고 화내는 남자는 없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경 쓰는 놈이 있다면 그딴 속 좁은 놈하고는 헤어져라.”
 
두 사람은 갑자기 나한테 끌어안긴 탓에 몸이 굳은 듯했으나, 점차 힘이 빠지더니 내 등에 손을 두르고 큰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논나는 쓸쓸하다는 듯이, 세리아는 슈바르츠의 털을 뿌득뿌득 잡아뜯으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만하는 게 좋을 텐데. 슈바르츠는 온몸이 새까만 색이라 털이 비어있으면 눈에 띄거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지만, 이번엔 마부 자리에 세리아가 앉아있었다.
나는 두 사람한테 안긴 채 마차 안에 앉아있었다.
뭐든지 해내는 세리아의 재능도 놀라웠지만 아무도 위에 타지 않았고 고삐도 끌지 않았는데 자기 멋대로 따라오는 슈바르츠가 더더욱 놀라웠다.
저 녀석 진짜 말 맞나? 무슨 저주로 인해 말이 된 변태 남자 같은 건 아니겠지?
 
그리고 내 양 옆에 있던 알리사와 코렛트는 방금 전까지 큰 소리로 엉엉 울고 있던 탓에 지쳤던 건지 어느새 잠에 들어 있었다.
지금 떼어냈다간 깨어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무엇보다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이대로 가만히 두는 중이다.
 
“19살에 울다 지쳐 잠드는 모양새도 꽤나 귀엽구만.”
 
알리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마 안심했던 거겠죠.”
 
논나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나이는 17살이라는데, 마치 어머니 같은 시선인 게 무언가 달관한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지금까지 계속 끔찍한 일들이 이어졌던 것 같은데, 당신 품 속에 있는 지금은 더 이상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안심한 것 같습니다.”
“논나……라고 했었지. 너는 괜찮나?”
“후훗. 저는 도적한테 유괴당한 게 아니니까요. 각오도 하고 있었고요.”
 
논나는 빚이나 무슨 다른 사정 때문에 팔려나간 건가?
그렇다면 더 이상 돌아갈 장소도 없다.
결국엔 주인이 바뀌었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괴로울 땐 언제든지 내가 꽉 껴안아 주마.”
“네. 언젠가 부탁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엄청난 감촉도 맛볼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야.”
 
“밝히는 분이시네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로 보아 화가 난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눈동자 속에 있는 어두운 빛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세리아가 마부석에서 호들갑을 떨길래 몸을 내밀어 보자, 양쪽에 펼쳐져 있던 숲이 끝을 보이고 전방에 지평선이 드러난 광활한 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드디어 우리들은 오르가 연방에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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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에이길
지위: 개인 용병
재산: 금화 150닢(은화 이하 제외)
(돈은 여행 경비 등으로 작중에 나오지 않더라도 제멋대로 줄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감각으로만 봐주세요)
무기: 대형 버디슈  강철 나이프 X 1
방어구: 가죽 갑옷, 가죽 장갑, 가죽 부츠 검은 망토 (저주받음) 모피 코트
동료: 슈바르츠(말)  세리아  알리사  코렛트  논나
경험 인수: 1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