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종자 소녀』
나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여관의 한 방 안에서 계속해서 자고 있었다.
상처가 생각보다 깊었다. 간신히 내장에 닿지 않았던 이유는 두꺼운 근육과 갑옷의 성능이 뛰어났던 덕분이리라.
약을 바르고 고기를 먹은 다음 잔다.
이미 여기 오고 나서 사흘간 이 행위를 되풀이했고, 이제서야 간신히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반쯤 슈바르츠한테 몸을 맡기고서 북쪽으로 나아가 아크랜드와 북쪽에 인접해 있는 나라, [고르도니아 왕국]에 들어왔다.
고르도니아는 중앙 평원에 난립해 있는 국가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국으로, 인구 150만을 보유하였고 그에 걸맞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같은 이름의 [왕도 고르도니아]는 인구 6만명을 보유한 중앙 평원 최대의 도시였다.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는 고르도니아 왕국이지만, 북쪽은 중앙 평원의 끝임을 알리는 대산림을 경계로 오르가 연방과 국경이 맞닿아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정치 체제는 봉건제에 가까운 왕정으로 각 귀족의 권력이 강하여 왕이라 한들 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었다.
현 국왕 [휴벨 2세]의 평화적인,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한 정책 덕분에 주변 국가와의 충돌은 적었고 국내 정세도 어느 정도 안정된 상황이었다.
내가 있는 곳은 고르도니아 왕국의 왕도 고르도니아다.
부상을 입었던 난, 말 위에 올라탄 채 적당한 숙소를 찾아 곧바로 뛰어들었고, 지금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여관 주인은 나를 걱정하면서도 귀찮은 일은 피하려는 듯한 태도였다.
이곳에 마리아가 있었더라면 훨씬 빠르게 나았을 텐데.
상처도 어느 정도 낫기 시작한 나흘째 밤, 나는 삐그덕 하고 울린 바닥의 삐걱이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에 누운 채 실눈을 뜨고 무슨 상황인지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창문을 통해 침입한 모양이다.
발소리를 죽이고 내 짐을 조심스레 뒤지는 중이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체구가 상당히 작은 걸로 보아 어린아이거나 작은 여자인 듯했다.
“지갑은 거기 없다.”
“윽!!?”
작은 그림자, 달빛에 비춰진 그 얼굴을 보아하니 10살 정도 되는 소녀인 것일까? 더럽긴 하지만 보기 힘든 은발의 소유자였다.
아이는 펄쩍 뛰듯이 자리에서 튀어오르더니 창가에 자리를 잡고서 내 움직임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부에 느껴지는 통증도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
“!!”
소녀는 품에서 칼날 10cm 정도 되어보이는 작은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들킨 이상 나를 죽여서라도 빼앗을 심산인 모양이다.
“재활 운동으로 삼기엔 딱 좋겠군……오거라.”
소녀는 말없이 자세를 낮추고서 내게 달려들었다.
생각보다 빠르군, 찌르기도 날카롭고.
이 아이는 전투에 상당히 뛰어난 재능이 있어 보인다.
방심했다간 어른이라 한들 목이 찢겨나가는 결말도 있을 법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녀의 나이프를 쳐서 떨어트리고, 침대 위로 밀어뜨렸다.
소녀는 날뛰었으나, 나이프를 잃은 이상 체격이 압도적으로 큰 나를 떨쳐내는 건 불가능하다.
“윽! 으윽!!”
이대로 범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있긴 했으나, 아직 너무 어렸다.
내겐 아이를 범하고서 즐기는 취향도 없다.
나는 소녀의 두 손을 꽉 억누른 채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최근에 여자랑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던 탓에 굶주려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너, 이름은? 왜 여기로 숨어든 거냐?”
이유 따윈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일단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게 먼저다. 물어보기로 하자.
“………….”
“이야기 정도는 해도 될 텐데? 아니면 끝까지 말 안 하다가 이대로 위병한테 끌려가는 게 더 좋을 것 같나?”
“검댕.”
“검댕? 이름이 검댕이라고?”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된 이름이 아닌데.
“머리카락이 검댕투성이였으니까. 목적은 돈.”
정말 직설적이군.
“왜 돈이 필요했지?”
“명령받았으니까.”
오오? 이건 좀 재밌어지기 시작했는데.
“누구한테? 뭘 위해서?”
“미겔한테서. 돈을 갖고 가야만 하니까.”
이 소녀는 [미겔]의 노예 같은 존재인 모양이다.
어렸을 적에 유괴당한 다음, 각종 범법 행위를 저지르도록 명령받았고, 그 돈을 전부 건네주었다고 한다.
“너는 지금 이 생활에 아무런 의문도 없는 거냐?”
도둑질이나 강도짓으로 살아가는 삶.
타인이 어떻게 살아가든 내가 딱히 참견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소녀가 말했던 “명령받았으니까 그렇게 해야만 한다.” 는 대답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다.
어렸을 적의 나 자신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가져가지 않으면 먹을 게 없어. 얻어맞아.”
이 소녀는 얻은 돈을 가지고 스스로 쓰는 것.
혹은 다른 삶을 고르는 것.
그 둘 중 어느 것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리라.
아무한테도 배우지 않으면 사람은 자신한테 의사 결정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 자라는 것이다.
“너는 지금 이 상태로도 괜찮다 느끼고 있는 거냐? 지금보다 더 좋은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나?”
“모르겠어. 하지만 그런 건 불가능 “가능해. 네가 불가능하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야.”
“네 머리로 생각해라. 난 지금 불가능한가, 가능한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고 싶은가, 하고 싶지 않은가를 얘기하고 있는 거다.”
“나한테 지금 이런 인생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는 거야?”
“있지. 인생의 선택지는 무한정 있다. 너한테 보이지 않을 뿐.”
“…….”
소녀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너는 지금부터 나한테 범해지고 싶나?”
“싫다. 당하고 싶지 않아.”
“그거면 돼. 나를 떨쳐내라. 그게 안 된다면 나를 설득해라. 큰 소리로 비명을 질러도 좋겠지.”
“……싸우라는 거야?”
“자기가 그러고 싶다면야.”
내가 침대에서 떨어지자 소녀는 펄쩍 뛰어올라 창가로 구르듯이 이동했다.
소녀의 머리에서 몇cm 떨어진 곳에 강철제 나이프가 박혔다.
방금 전 소녀가 꺼내든 것과는 다른, 도신 30cm 정도 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쓰는 나이프다.
“그 녀석을 주마. 나한테 한 번 더 덤벼들든지, 팔아넘겨서 돈으로 바꾸든지, 아니면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사슬을 끊어내든지. 네 머리로 직접 생각해서 골라라.”
소녀는 나이프를 손에 쥐고 한동안 침묵했으나, 결국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버렸다.
적어도 나한테 달려드는 선택지는 고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기서 한 번 방심시킨 다음 한 번 더 침입할 배짱이 있다면 당하겠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 소녀는 제대로 된 목욕도 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아까 눕혔던 침대에 냄새가 배었다.
내가 간신히 잠에 들었을 때, 또다시 창문이 열리더니 삐그덕삐그덕 소리가 들렸다.
설마 또 다시 온 건가 하고 놀랐지만, 방금 전과 달리 숨을 생각은 없는 건지 발소리가 크게 들렸다.
애초에 숨을 생각으로 왔다면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내가 눈치 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냐…………그래, 그런 건가………….”
소녀의 복장은 방금 전 그대로, 내가 건네준 나이프도 칼집에서 뽑아둔 상태로 들고 있었다.
다른 점은 온몸에 피가 묻어있다는 것, 그리고 나이프가 피로 흠뻑 젖어있다는 것 정도.
“사슬은 끊어냈나?”
“생각보단…………무른 쇠사슬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옭아매던 사슬을 끊어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왜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지?”
“나는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을 모른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다.”
“뭘 말이지?”
“나한테 가치는 있는 건가? 당신은 나를 갖고 싶나?”
어휘력이 부족한 건지, 너무 돌직구 같은 질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뜻은 전해졌다.
“그야 물론. 너는 상당히 좋은 움직임을 가졌고, 무엇보다 귀여운 여자라는 건 그것만 가지고도 가치가 있으니까.”
“그렇군. 그럼 나를 지배해 줬으면 한다.”
“뭐라고?”
“내게 저항하는 방법, 선택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건 당신이다.”
“그거랑 지배하는 거에 무슨 연관성이 있다는 거지?”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박살냈다. 당신은 내게 새로운 삶을 가르쳐 줄 의무가 있다.”
그런 건 없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확실히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을 박살내도록 선동한 건 나다.
받아들이는 데에 문제는 없었으나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그러면 지금까지랑 별반 차이 없는 거 아닌가?”
사슬을 끊어낸 다음 또다른 사슬에 묶이려 하다니,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다.
“다르다.”
그 말투엔 확실한 의사가 담겨있었다.
“당신한테 지배당하는 것.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건 내 의사다. 내가 결정한 것이다. 자신의 의사에 지배당하는 것, 이건 내가 살아갈 삶을 선택한 게 아니게 되는 건가?”
소녀는 스스로 사슬을 감고서 자물쇠를 채우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그것도 괜찮겠지.
언젠가 세계를 깨닫고 멀리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자물쇠를 풀어주면 그만인 것이다.
그 전까진 내 곁에 두도록 하자.
그리고 좀 더 자라면 맛을 보도록 하자.
“나는 여기에 정착할 생각은 없는데. 따라왔다간 죽을지도 모른다고?”
살짝 위협하듯이 말해보았으나 소녀한테는 더 이상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듯했다.
“상관없다. 여기 있어도 어차피 똑같으니까. 나는 당신을 따라가고 싶다. 어디까지고 함께, 같이 가고 싶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지배할 생각이었던 그 손을 앞에 두고 소녀는 몸을 낮춰 키스를 했다.
지배당한다는 것은 이런 걸 의미하는 모양이다.
“그럼 나는 당신을 따르는…………그게.”
“에이길이다.”
“에이길 님.”
님 자는 필요 없다고 말했으나 그녀는 도통 듣질 않았다.
자신은 당신한테 삶을 배웠고 같이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극존칭을 쓰는 건 당연한 이야기, 라는 듯하다.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게 좀 기분이 좋진 않았으나 이것도 그녀의 뜻이니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네 이름은?”
“검댕.”
“그건 본명이 아니잖아.”
그런 이름, 내가 인정할까 보냐.
“검댕 외엔 [너][네놈][이 녀석] 같은 걸로 불렸다.”
아무래도 이름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그건 사람이 쓰는 이름이 아냐. ……그래, 네 이름은 [세리아]. 오늘부터 너는 세리아다.”
“세리아……세리아……오늘부터 나는 세리아.”
소녀, 세리아는 몇 번이나 곱씹듯이 이름을 중얼거렸다.
사실은 예전에 봤던 길거리에서 고기를 팔던 여자의 이름이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가슴이 엄청나게 커서 결국 참질 못하고 꼬셔봤던 적이 있었다.
네 가슴이 크게 자라길 바라는 염원이 담긴 이름이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세리아는 아직 더 얘기하고 싶은 게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떻게 있으면 되나?”
“응? 그게 무슨 소리지?”
“나는 에이길 님한테 어떤 식으로 지배당하면 되지? 정부? 아니면 노예?”
자신의 입장이 신경 쓰이는 건가?
이상한 부분에서 고지식한 녀석이로군.
정부 쪽이 좀 더 끌리긴 하지만 세리아는 아직 발육이 부족하다.
내 가슴 부분까지도 안 닿는 키인 걸로 보아 밤일을 즐기는 것도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카라나 밀레 같은 동료로 두기에도 좀 뭔가 다른 듯한 기분이 든다.
“너는 내 종자다. 내 지시에 따라 날 도와줘라. 그 대신 난 네가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종자…………알겠습니다. 온 힘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말투가 존댓말로 바뀌었다.
세리아 안에서 종자의 이미지는 그런 느낌인 듯했다.
“그럼 곧바로 너한테 지시를 내려주마.”
세리아가 등을 똑바로 편 채 내 지시를 기다렸다.
“우물로 가서 물을 퍼와! 그리고 그 물로 몸을 씻어라! 머리카락 쪽도 잊지 말라고.”
계절은 이미 겨울, 찬물로 몸을 씻기엔 힘들지도 모르지만 세리아는 너무 더러웠던 것이다.
아침이 되면 뜨거운 물을 부탁해서 구석구석 몸을 씻어줘야겠다.
깔끔해진 세리아의 은발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
세리아와 만나게 된 건 내게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
식재료 조달과 목욕용 물을 세리아가 준비해 준 덕분에 나는 부상을 치료하는 데에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여기 도착하고 나서 열흘째, 세리아와 만나고 나서 6일째 되는 날에 내 상처도 거의 다 아물었다.
“세리아. 네 덕분에 치료에 전념할 수 있어서 살았구나.”
“제가 에이길 님의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보다 제 지식 부족으로 민폐를 끼쳐 죄송했습니다.”
세리아는 마을 안에서 살아왔던만큼 어느 정도 지식은 갖고 있는 듯했으나, 노예 생활 때문인지 약간 상식이 부족한 경향이 있었다.
첫날 피투성이가 된 옷을 입고 다닐 수는 없었다 보니 “새로운 옷을 사와.” 라는 명령과 함께 내 옷과 돈을 건네주었는데, 주인의 옷을 입을 수는 없다며 전라로 옷을 사러 가겠다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던 것이다.
소녀를 성노예로 삼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첫째날에 묵고 있던 여관에서 쫓겨났다.
다음에 가게 된 숙소 쪽이 설비랑 방 모두 더 좋았던지라, 결과적으로는 좋게 흘러갔지만.
“어찌 됐건 고맙다. 이 마을에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군. 여행 준비는 다 됐나?”
드디어 내일, 오르가 연방을 향해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겨울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 상태가 유지되는 중앙 평원과 달리 극한의 오르가 연방에 들어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하다.
“에이길 님께선 제게 옷과 담요 같은 여러 물건들을 사주셨습니다. 반드시 견뎌내 보이겠습니다.”
본인은 의욕이 충만한 듯했다.
“어디, 기운도 북돋을 겸 술이라도 한바탕 마시러 가볼까.”
“함께 하겠습니다.”
이 하드 보일드 여관은 2층 부분이 여관, 1층이 식당 겸 주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르도니아는 풍요로운 도시이니만큼 술 종류도 풍부하고 맛도 좋다.
나는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들이켰고, 세리아는 벌꿀을 섞은 약한 술을 찔끔찔끔 마셨다.
세리아는 표정이 전혀 변하지 않는 것 치고는 술이 세진 않다.
나와 같은 술을 마셨을 땐 딱딱한 표정 그대로 푹 쓰러져 위에 있던 내용물을 그대로 토해냈다.
마스터와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짝 얼굴이 붉어진 세리아를 바라보았다.
“이 시기에 연방에 가다니, 당신도 참 별종이군 그래.”
“겨울의 오르가 연방이라는 것도 한 번 보고 싶어서 말이지.”
“어떻게든 가고 싶다면야 노스테리에스 강을 따라서 가도록 해. 그 지역이라면 그나마 추위도 견딜 수 있는 수준일 테니까. 게다가 배도 사용할 수 있어서 빠르지.”
오호라, 배를 쓰는 것도 방법이로군.
하지만 나는 연방의 북부도 봐두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북부 쪽도 가보고 싶은데 말이야.”
마스터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겨울에 북부 쪽으로 가다니, 제정신으로 할 짓이 못 돼. 마을과 마을 사이의 간격도 넓고 눈보라도 자주 일어나거든. 그런 데에 휩쓸렸다간 사람도 동물도 산 채로 얼어서 조각이 되어버린다고.”
거긴 얼음 지옥이야, 라고 중얼거리는 마스터.
마스터는 원래 연방 북부 출신인데 젊은 시절에 고르도니아로 이주했다고 한다.
연방은 아주 굳건히 확립된 봉건제가 있다 보니 농민이 고향을 버리고서 이주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국경을 넘어 중앙 평원으로 건너온 다음, 맨몸 하나로 이 여관을 세우고 가정을 가졌다고 한다.
맨 처음엔 존경스러운 마음도 들었으나 그의 아내가 올해 17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 단숨에 식어버렸다.
참고로 그의 이름은 [안드레이]. 올해 40살의 몸집이 커다랗고 멋진 수염을 가진 댄디한 남성이다.
결혼한 건 3년 전, 마찬가지로 연방 출신인 [나탈리]를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해 프로포즈 했다고 한다.
나탈리는 확실히 미인이긴 하지만 키가 내 가슴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데다가 가슴도 엉덩이도 마치 어린아이 같은 여성이다.
13살 정도로 보이는 세리아와 비교해 보아도 키는 비슷한 수준에 가슴하고 엉덩이는 세리아가 좀 더 클 지경이다.
지금 와서 이 수준이니 3년 전엔 대체 어땠을지…….
“충고 하나 하지. 아가씨도 있으니 안전한 강가에서 배를 타고 가도록 해. 그리고.”
이 녀석을 써라, 라며 푹신푹신한 모피 코트를 두 벌 내게 건네주었다.
언뜻 보기엔 내가 입어도 발밑까지 내려올 것 같은 후드가 달린 롱코트인데, 안쪽이 이중 구조로 되어 있는 데다가 그 안에는 깃털까지 들어있는 모양이다.
당연히 무겁기 때문에 평소에 쓰기엔 힘든 코트지만 겨울의 오르가 연방을 가기 위해선 이 정도는 필수로 입어줘야 하고, 연방 북부 사람들은 다들 갖고 있는 옷이라고 한다.
“이 녀석은 내가 쓰던 물건이다만. 나는 이제 북쪽에 갈 일이 없으니 쓰도록 해.”
마스터는 먼 산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과 함께 자신도 술을 약간 들이켰다.
코트가 두 벌 있는 사실을 나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먼 산을 보는 듯한 그 눈에는 약간의 애환도 깃들어 있었다.
그 모습은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으며, 그 광경을 지켜본 웨이트리스 여자는 얼굴을 붉힌 채 넋이 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닿지 않는다.
여타 다른 사나이를 포로로 만드는 훌륭한 가슴과 살집이 풍만한 육체 때문에 말이다.
“아가씨가 동상이라도 당했다간 불쌍하니까 말이야. 물론 돈은 받겠지만.”
“그래. 험난한 여행이 될 것 같으니 잘 쓰도록 하지.”
한동안 술을 마시다가, 한창 밤도 깊어지고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손님들도 다 사라졌을 때 마스터가 “오늘은 폐점이다. 다 마시면 돌아가도록 해.” 라는 말을 남기고서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탈리가 이제 슬슬 아이를 갖고 싶어한다는 모양이다.
분명 그 현장은 산적에게 범해지는 불쌍한 소녀 같은 광경처럼 보이리라.
“에이길 님. 우리도 이제 그만 돌아가죠.”
그래,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건넸다.
“한밤중에 잠시 실례하지.”
두 명의 남자, 무장은 하지 않았으나 행색이 좋고 움직임에 빈틈이 없다.
세리아는 허리 뒤쪽으로 손을 둘러 나이프를 손에 쥐었다.
“우리는 딱히 수상쩍은 사람들이 아니오.”
“자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오.”
“이 심야에 갑자기 사람을 불러낸 것만 해도 충분히 수상쩍다만.”
“그 건에 관해선 사과하도록 하겠소. 지금이 아니면 자네를 만날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요.”
그들은 우리가 내일 이 마을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수상쩍음 1.5배다.
“짧게 부탁하지.”
그래도 이야기를 듣는 것 정도는 상관없겠지.
그냥 맘대로 떠들도록 놔두면 될 뿐이다.
세리아한테 눈으로 신호를 줘서 얌전히 있도록 시켰다.
“우리들은 용병단, [여명의 날개] 쪽 사람이오.”
“그리고 그대의……에이길 공의 능력을 높게 사고 있지.”
수상쩍음이 한계를 돌파했다.
용병단 사람한테 이름을 댔던 기억 따위 전혀 없다.
“지금, 고르도니아에선 용병단을 모집 중이오. 주변 지역에 우글대는 도적단 괴멸 및 오르가 연방에 대항하기 위한 전력 증강을 위해서 말이지.”
“우리 용병단도 왕국과 계약해서 단원 증강을 위해 힘쓰는 중이오.”
그렇군, 트리에아 왕국에서 퍼진 내 소문을 듣고 권유하러 온 건가.
하지만……하고 그들은 말을 덧붙였다.
“도적단 토벌 따위 군사 병력만 가지고도 충분하고, 오르가 연방과의 관계도 양호한 상태요.”
뭐야 그게? 갑자기 영문을 모르겠는데.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우리들은 어떤 고귀한 분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소.”
“방금 얘기했던 건 표면상의 이유, 사실은 어떤 일에 대비하는 중이오.”
“그럼 어째서 그걸 나한테 알려주는 거지?”
“그대처럼 특히 평가가 높은 사람한테는 표면상의 이유를 배제하고 얘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오.”
“물론, 진정한 이유에 관해선 지금 여기서 얘기할 수 없소. 우리들과 함께 와 주겠다고 결단해 준다면 그때 얘기해 주도록 하지.”
“우리가 내일 이 나라를 떠난다는 사실은 이미 조사했던 거 아니었나?”
그들의 정보 수집 능력은 확실한 듯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게 의문점이었다.
“물론 알고 있소. 우리들 입장에선 지금 바로 참가해 주는 게 가장 좋지만, 여명의 날개도 이제 막 생긴 참이라 완성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테지.”
“에이길 공에겐 우리들이 그대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해서 접촉한 것이오.”
“그럼 여행을 끝마친 후에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오라고 권유하는 건가?”
그게 사실이라면 상당히 내게 형편 좋은 이야기인지라 더욱 더 수상쩍게 느껴졌다.
“시기를 놓치면 전부 다 소용없어질 거요. 우리들은 왕도 교외에 거점을 두고 있으니 되도록이면 빠르게 와주면 좋겠소.”
이야기는 끝이오, 라는 말과 함께 사내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세리아를 데리고서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뒤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는 우수한 전사요. 하지만 이것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면 이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란 사실, 잊지 마시오!”
내 목적은 자신의 왕국을 손에 넣는 것, 그리고 루시를 손에 넣는 것이다.
확실히 어느 시점부턴 육체적 강함뿐 아니라 권력 쪽 힘도 필요해지리라.
이게 그 계기가 되어줄 수 있을까?
“신경 쓰이시는 겁니까?”
세리아가 침대에 누워있는 내게 말을 걸었다.
침대는 별개로 사용 중이지만 사실상 거의 붙어있는 수준이다.
“저는 당신이 가는 길, 그 어디든지 따라갈 생각입니다.”
세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부끄럽다는 듯이 몸을 움츠렸다.
“밤시중을 들어드릴까요? 아직 다 자라진 않았습니다만 일단 여자이니,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내가 여자에 굶주렸단 사실을 눈치 챈 것이리라.
세리아가 내 침대에 들어오려고 했으나, 이마에 손가락을 튕긴 다음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아직까지 세리아하고는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옷 갈아입을 때 보였던 전혀 부풀지 않은 가슴에 젖꼭지만 있는 몸뚱어리는 안아봤자 별 감흥도 없을 게 분명했다.
수상쩍은 남자들이 말했던 것도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기껏 고민했더니 연방에서 얼음 조각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행 도중에 무언가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잠에 빠진 세리아한테서 손을 떼어놓고 나도 눈을 감았다.
다음날 우리는 하드 보일드 여관을 뒤로 했다.
뒤쪽에선 마스터가 우리를 배웅해 주는 중이다.
“무사히 돌아오면 또 와라. 아가씨도 데리고 말이야. 언젠가 반드시, 자라기 전에 돌아오라고!”
또 올 때는 세리아 보고 내 옆을 떠나지 말라고 말해둬야겠군.
슈바르츠는 두꺼운 모피를 뒤집어쓴 탓에 더워보였으나 오랜만에 여자가 함께 하고 있는 덕분에 기분은 좋은 듯했다.
두 사람과 한 마리는 북쪽으로 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
이름: 에이길
지위: 개인 용병
재산: 금화 130닢(은화 이하 제외)
(돈은 여행 경비 등으로 작중에 나오지 않더라도 제멋대로 줄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감각으로만 봐주세요)
무기: 대형 버디슈 강철검(클레어한테서 빼앗음) 강철 나이프 X 1
방어구: 가죽 갑옷, 가죽 장갑, 가죽 부츠 가죽 방어구와 쇠사슬 방패
검은 망토 (저주받음)
동료: 슈바르츠(말) 세리아
경험 인수: 12명
'왕국에 이르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국에 이르는 길 제19화『몰락한 푸른 피』 (0) | 2024.03.21 |
---|---|
왕국에 이르는 길 제18화『새로운 동행자』 (1) | 2024.03.20 |
왕국에 이르는 길 제16화『가는 것은 한 사람』 (0) | 2024.03.18 |
왕국에 이르는 길 제15화『도적단』 (1) | 2024.03.17 |
왕국에 이르는 길 제14화『마을 순회』 (0) | 2024.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