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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161화『트리스니아 재판』

제161화『트리스니아 재판』

 
트리스니아 옛 궁정
 
“마그라드 왕, 구지스 2세 본인이 맞나?”
“……틀림없는 본인이다.”
 
화려한 복장 차림으로 법정 안에 나선 마그라드 왕은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그의 앞에는 고르도니아의 왕, 함대 안에 같이 머무르고 있던 오르가 연방의 대사, 그리고 에이리히와 케네스가 서서 마치 위압감을 내뿜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정면은 아니지만 옆에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세리아는 들어올 수 없다고 하길래 대신 마이라를 보좌역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방금 전 허벅지를 가볍게 쓰다듬었더니 마치 적을 보는 듯이 나를 바라보길래 자중하고 있는 중이지만.
 
“귀공은 고르도니아, 그리고 오르가 연방한테 도의를 저버린 전쟁을 선포하고 그 과정에서 병사와 무고한 시민들을 죽였다. 틀림없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먼저 전쟁을 선포한 건 고르도니아 아니었나!?”
“그 발단은 트리에아와의 전쟁에 개입한 것에 기인한다!”
 
마그라드 왕한테 큰 소리로 외친 것은 바로 사법장관의 뭐시기 백작이었다.
원래 타국이라고는 해도 공적인 자리에선 왕족에게 사납게 말하는 건 금지되는 게 정상이다.
 
“심지어 귀공은 국민에게 타국에 대한 적개심을 불어넣고 무의미한 저항을…….”
 
확실히 마그라드가 트리에아와 고르도니아 전쟁에 참견을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단 정전 협정을 맺었던 이상 이후 벌어진 전쟁과 직접적인 요인이 있다고 볼 수는 없으리라.
정상적인 재판이라면 마그라드 측에도 확실히 변명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또한 스투레 공화국에 대해서도 야만적인 폭력을 배경삼아 횡포와도 다를 바 없는 합병을 진행하여…….”
 
하지만 이것은 공평한 재판이 아니다.
모든 책임은 마그라드 왕족에 있다고 결정짓기 위한 연극, 교수형에 불과하다.
 
“따라서 본 법정은 귀공의 죄를 추방으로도 면할 수 없다 보는 바, 사형을 선고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판결하겠다!”
“무엇이 죄란 말이더냐! 네놈들이야말로 모조리 지옥에 떨어져야 하거늘!”
“구지스 2세를 사형에 처한다!”
 
사법장관과 당사자 외엔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는 와중, 버둥거리던 왕은 양 옆구리를 위병한테 붙들려 끌려나갔다.
바깥에 있던 병사들한테도 곧장 결과가 발표된 건지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내가 데리고 온 병사들이 법정으로 쓰이고 있는 궁정을 에워싼 채 매도와 야유를 퍼붓고 있는 중이다.
 
“이거 참 끔찍하네요…….”
 
옆에 앉아있던 마이라가 속삭였다.
동감이군.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이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건 세상의 이치이긴 하지만 어차피 사형시킬 거라면 그냥 바로 목을 날려버리면 그만일 것을.
 
“잠들지 마세요. 주변엔 백작 계급 이상의 주요 인물들만 모여 있으니까요.”
“피곤하구만.”
 
 
한동안 재판은 계속됐고 왕의 친척부터 정군 중책임자까지 계속해서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그들은 각자 저주를 퍼붓고는 위병에게 끌려갔다.
처형식은 곧바로 집행된다고 한다.
 
“이제 얼마 안 남았겠군. 있지, 마이라. 끝나면 근처 술집에서 잠깐 한 잔 하는 거 어때?”
“……어차피 그 후에 절 2층으로 끌고갈 속셈이시겠죠.”
“가끔씩은 너하고도 단 둘이서만 사랑을 나누고 싶거든.”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끔 밀담하는 척을 하면서 그녀의 손을 붙잡아 물건을 손에 쥐여주었다.
 
“벌써 커지신 겁니까?”
“이걸로 잔뜩 안을 헤집어주지.”
 
화를 내면서도 마이라는 내 제안을 받아들일 뻔했으나.
 
 
“이어서 옛 트리에아 왕국, 트리스니아 3세의 재판을 집행하겠다.”
 
“…….”
“이건 일단 나중에 해야겠네요.”
 
그냥 그만해라, 전부 다 사형시키면 되잖아.
한꺼번에 모아두고 “사형!” 한 마디면 충분하잖아. 어차피 그것 말고 다른 형벌을 줄 생각도 없으면서.
 
“본인은……나는……아무것도 나쁜 짓을 한 게 없소. 전쟁이란 건 늘상 있는 일 아니오!”
“귀공에겐 전쟁 책임 외에도 민중에 대한 죄가 있다. 첫째, 새롭게 얻은 옛 아크랜드 민중에게 가혹한 통치를 시행해 반란을 유도했고 민중을 학살하는 만행!”
“그것은……본인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왕이 그런 변명을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는 법이지.
 
“둘째, 전쟁의 여파가 왕도까지 미친 순간 자기가 먼저 지켜야 할 민중을 버리고 측근들과 자신만 도주를 꾀하고 그 결과 강화가 늦어져 두 군대에게 쓸데없는 희생을 만들어낸 죄!”
“그, 그것은! 본인이 붙잡이면 왕국이 멸망할 테니 도망쳤을 뿐, 민중들은 자연히 항복할 것이라…….”
 
트리에아 왕은 마그라드 왕과 다르게 기가 약하군.
누가 봐도 죽음을 두려워하며 우물쭈물하는 중이다.
 
“트리스니아 3세의 소행에 관해선 증인이 있다……나오라!”
 
위병에게 끌려나온 남자가 하나 법정으로 걸어왔다.
 
“이보쇼, 거렁뱅이를 데리고 온 거 아니오?”
 
어디선가 그런 야유소리가 들렸지만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푸석푸석한 머리칼에 정돈되지 않은 수염, 공허한 눈은 정장을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좋게 표현해 줘야 거렁뱅이, 나쁘게 표현하면 미치광이 그 자체였다.
 
“재상!? 그대, 살아있었…….”
“정숙……증인, 이름과 과거의 신분을 얘기하라.”
 
남자는 사법장관이 아니라 오로지 트리에아 왕을 노려보면서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안세름 뒤누아……트리에아 왕국 후작, 재상을 맡고 있었습니다.”
“좋아, 그럼 귀공이 이 자리에서 재판을 받지 않게 된 이유를 얘기하라.”
“왕의 명에 따라 마그라드 군과 공투, 패배하여 부상을 입고 근처 마을에서 기거하던 동안 전쟁이 끝났습니다.”
“흐음……하여 귀공은 무엇을 증언할 것인가?”
“트리스니아 3세의 비겁함과 잔학성에 관하여.”
“무슨 소리인가!?”
“말해보라.”
 
그 전까지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던 뒤누아 후작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트리스니아 3세의 비겁한 행위가 국가의 존속뿐 아니라 개인적인 자기 보호를 위함이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 이유로 저 사람이 가지고 갔던 재산은 군자금으로 쓰일 법한 금화와 보석뿐 아니라 거대한 초상화와 골동품 등등 사실상 국가 존속과는 상관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군.”
 
지금까지 마그라드 귀족들한테 쏟아지던 매도 소리에도 반쯤 웃으며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알렉산드로 왕이 처음으로 입을 뗐다.
 
“심지어 제가 부상을 입고 왕도에 없단 사실을 깨닫자마자 배신이라 판단, 제 가족……어린 손자까지도 전부 다 몰살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뒤누아, 1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확실히 그런 기분 나쁜 광경을 봤던 기억이 있다.
 
“재상, 그대가 먼저 한 말 아니었나! 이제 와서 내 책임으로 돌릴 셈인가!?”
“폐하! 이 불쌍한 노인이 거짓말을 뱉을 이유는 하등 없사옵니다!”
 
뒤누아가 폐하라 부른 건 트리에아 왕이 아니라 고르도니아 왕 쪽이었다.
이야기만 들어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뒤누아 편을 들어주고 싶어진다.
 
가족과 재산을 갖고서 나라를 버린 왕과 열심히 싸우다 돌아와 보니 배신자로 낙인 찍혀 모든 가족이 살해당한 남자.
후자에게 동정심이 드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이 비겁한 놈 같으니!” “열심히 싸웠던 부하를 배신자라 칭하다니!” “재판 따위 필요없소, 어서 처형을!”
 
청중석에 있던 귀족들도 매도를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좀 그렇단 말이지…….”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라도?”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마이라가 살짝 불만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녀도 뒤누아의 이야기를 듣고서 왕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앞뒤 이야기도 맞고 있을 법한 내용이긴 한데 말이야. 마치 극장에서 보는 가극을 보는 느낌이거든.”
 
논나가 좋아할 법한 비극, 그녀라면 이런 장면에서 분노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지 않을까?
근거는 없지만 무언가 수상쩍다.
하지만 사법장관들은 나와 같은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혹은 이미 적혀 있던 각본대로였든지.
그들은 왕과 잠시 말을 섞은 뒤 판결을 내렸다.
 
“트리스니아 3세의 비겁함, 패악함은 명백한 사실! 따라서 본 법정은 왕권, 귀족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킨 이 자에 대한 형벌은 사죄 말고 달리 없음을 선고한다!”
“아, 아니오! 뒤누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 본인은……나는……나는!! 싫어―! 죽고 싶지 않다고! 아무나, 아무나 살려주시게!!”
 
마그라드 왕과는 다른 모습으로 울부짖으면서 트리에아 왕은 질질 끌려나갔다.
잘 가라, 더 이상 만날 일도 없을 테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꼴사납군요…….”
“불합리하다 한들 이게 패배자의 말로라는 거지.”
 
패배하는 진영에 속하고 싶진 않다.
정말 위험해지면 여자들을 데리고 땅 끝쪽으로 도망쳐야 하려나?
……대충 떠올리기만 했을 뿐인데 마차가 몇 대나 필요한지 가늠도 안 가는군.
 
그 후, 도망쳤던 트리에아의 중진들이 차례차례 판결을 받았다.
이제 진짜 졸려서 몸이 휘청거리던 그때였다.
 
“이상, 왕족으로서 왕 주변에 있었음에도 그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사치스럽게 생활한 것이야말로 하늘에 대한 배신이라 할 수 있으니, 사형으로써…….”
“아아……부디 자비를……정치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불쌍한 아낙네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 부디 목숨만큼은…….”
“어머님…….” “부디 자비를…….” “으으으으…….”
 
아름다운 여자 목소리에 확 하고 눈이 뜨였다.
심지어 여러 명이다!
 
“저 여자들은 뭐지?”
 
마이라는 갑자기 내가 부른 걸 보고 당황한 것처럼 나를 보았다.
 
“정말 잤던 겁니까!? ……트리에아 왕의 아내, 그리고 딸 세 명이에요. 마찬가지로 사형이라고 하네요.”
 
재판장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왕의 아내라고 하는 여자는 아직 40대 중반인 듯했다.
약간 나이를 먹고 마음 고생 때문에 살짝 시들긴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미숙녀라 부를만한 외모다.
딸들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붉은 기가 감도는 금발이 아름답다.
 
장녀는 20대 중반 정도 되려나? 고개를 숙이고서 울고 있지만 충분히 미녀다.
차녀는 2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군, 여자로서 충분히 성숙한 나이인데도 약간 풋풋한 느낌이 난다.
필사적으로 공포심을 버텨내고 있는 느낌이지만 후들후들 떨고 있다.
셋째는 아직 어린아이와 성인 사이 언저리……16, 7살쯤 될 것이다.
소리까지 내면서 엉엉 울고 있다.
 
“그럼 전 트리에아 왕비 [마르스린느], 그 딸 [스테파니] [브리짓] [펠리시] 이상 4명에게 사형을……”이의 있소!” ……뭐라구요!?”
“하드릿 경!?”
 
당황하는 마이라. 하지만 미녀가 네 명이나 죽는다니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하, 하드릿 경!?”
 
갑자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걸 보고 사법장관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외쳤다.
왕과 케네스도 떡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에이리히만 혼자서 머리를 쥐어싸매는 중이다.
 
하지만 이미 입에 담은 이상 어쩔 수 없다.
개똥 논리라도 내뱉어서 어떻게 하는 수밖에.
일단 내게는 발언권이 있다고 들었으니까 말이야.
 
“방금 전 그 얘기, 왕이 진정한 쓰레기였을 경우 아내와 딸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 같습니까? 아니, 애초에 자신의 극악무도한 행위조차 가족들에겐 들키지 않게끔 행동했을 겁니다.”
 
왕비 마르스린느는 이것이 자신과 딸을 구해낼 마지막 기회라 판단한 건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단순히 도망쳤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서 사형은 너무 무겁지 않습니까? 심지어 싸우지도 못하는 여자의 몸입니다.”
 
지위와 상관없이 남자가 조국을 버리고서 도망치는 건 매우 비겁한 행위이지만 아내와 자식을 도망치게 만드는 건 그렇지 않다.
왕족이라는 입장을 고려해 보면 칭찬받을만한 일은 아니지만 사형시킬만큼 심각한 죄도 아니다.
 
“아, 아니 그것은……그렇지만 말입니다…….”
 
사법장관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역시 방금 전 뒤누아의 증언도 전부 각본대로 쓰인 내용이었던 모양이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방해꾼이 끼어들어서 당황하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고서 왕과 케네스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하다.
 
“……어째서 저들의 목숨을 살리려 하는 것이지?” “모르겠소……하드릿 경과는 별로 교류가 없다보니.”
 
귀족들이 소근소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말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나는 미녀를 구할 테니.
 
“하드릿 경, 그대는 그리 말하였으나 이 사람들은 적국의 왕족이니라. 방치해 두면 쓸데없는 난을 일으킬 수도 있는 법.”
 
사법장관을 대신하여 왕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물론 이 도시에 두자는 뜻은 아니옵니다. 변경으로 보내 가명을 지워버리면 평범한 부모 자식으로 살아가다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나이다. 이 여자들한테도 수상한 꿍꿍이속은 없을 듯하니…….
 
마르스린느를 슬쩍 쳐다보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사자가 그렇다 한들 트리에아의 잔당도 남아있지 않느냐. 놈들이 이 녀석들을 추켜세울 불씨가 남을 터인데.”
 
좋아, 이거면 되겠군.
 
“그렇다면 제가 이 자들을 거둬들이겠나이다. 이상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끔 책임을 지고서 감시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주변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런 성가신 일을 어찌하여 자처해서?” “설마 아니라 생각하긴 하지만 트리에아와 내통하고 있던 것 아니오?”
“설마……트리에아와 전쟁 원인은 하드릿 경한테 있는 걸로 아는데.”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사내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왕은 불쾌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한층 더 키웠다.
 
“……내게는 그대의 진의가 가늠이 안 되는구나. 가늠이 안 가는 이상 쓸데없는 의심도 불러일으키는 법. 그대가 이 자들을 거둬들여야 할 이유를 말하라.”
“이번 전쟁,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나이다. 더 이상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 불편한지라…….”
 
왕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방금 전 재판까지 자고 있었으니 이 변명은 통할 리가 없지.
내 평판과 소문을 알고 있는 귀족들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중이다.
저들 속에서 나는 사람의 목숨 따위 코딱지 수준으로밖에 안 보는 그런 인간인 것이리라.
확실히 가족과 지인들 외엔 비슷한 느낌이긴 하다만.
 
“……라는 이유도 있습니다만 진짜 이유는.”
 
왕과 귀족들의 시선이 전부 내게 집중됐다.
좋아, 들려주마.
거짓 하나 없는 내 진정한 본심을 말이야.
 
“저 여자들은 보시다시피 미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저 미녀들을 제 수중에 놔두고 싶을 따름이옵니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푸흡!”
 
지루하다는 듯이 재판을 지켜보고 있던 오르가 연방의 대사가 차를 뿜었다.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웃음이 멈추질 않는 듯하다.
 
왕과 케네스는 넋이 나갔고 에이리히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둥켜안은 채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귀족들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후하하하, 그래, 미녀란 말이지. 확실히 이 여자들은 전부 미녀들이로고. 그래, 수중에 두고 싶었던 것이더냐? 이거 대단하군. 하하하하하하!”
 
왕이 웃음을 터트린 걸 보고 나서야 귀족들도 웃기 시작했다.
 
“하하, 납득이 갔소.” “확실히 하드릿 경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 들었소.”
“영지에도 백명가량의 여자가 있다던데.” “납득할 수 있는 이유로군요.” “옆에 앉아있는 여자도 애첩이라는 소문이…….”
 
으음, 조금 수치스러운 경험을 한 것 같기도 한데.
 
“납득이 가는군! 그렇다면 이 자들의 처우는 그대에게 맡기겠노라. 이 자들도 그 자식들도 직책을 얻는 것, 혹은 직책이 있는 자와 혼인할 것은 허락하지 않겠느니라. 또한 영지에서 내보내서도 아니 된다. 알겠느냐?”
“알겠사옵니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르스린느, 장녀 스테파니는 얼굴을 붉혔고 차녀 브리짓은 나를 노려보는 중이다.
셋째 펠리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럼……큭큭, 재판을 계속하지.”
 
왕이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옆에서 연방 대사가 고개를 숙인 채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리는 걸 보고 분위기가 상당히 누그러진 듯했다.
 
“……!! ……!?”
 
마이라가 작게 소리치면서 내 허벅지와 옆구리를 찔러대는 중이다.
하하하 그만하라고, 서버리잖아.
 
 
이리하여 트리에아 진영 재판도 전부 끝을 맞이했고 마지막으로 내가 데리고 온 몰트의 멍청이 형제, 파블로와 일라리오 그리고 브루터스 일당이 끌려나왔다.
국경에서 거의 진출하지 못했다고는 해도 일단 왕국의 영토를 침범하고 왕국군이 격파한 병력이기 때문에 이들은 마그라드 왕족과 똑같은 취급을 받을 필요가 있었던 것인데…….
 
“좋다, 그럼 나는 이만 퇴실하겠노라.”
 
재판이 열리기 직전에 왕과 케네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서 연방 대사도 자리에서 일어나 왕을 뒤따라나갔다.
뭐야, 전혀 관심이 없잖아?
 
“큭!”
 
대사는 내 얼굴을 보고서 또다시 웃음이 터져나온 건지 고개를 숙여버렸다.
실례되는 놈이구만.
 
“그럼 일라리오 벨제이, 파블로 댈러스, 멜두스 브루터스 세 명에 대한 판결은…….”
 
“나, 나는 형님 말에 따랐을 뿐이다!”
“나야말로……아니, 브루터스다. 그놈이 전부 악의 근원이야!”
 
이놈들한테 깔끔한 퇴장을 기대한 적은 없다.
기대한 적도 없기 때문에 실망감도 없다.
 
“하드릿 경에게 일임한다. 또한 몰수한 재산을 통해 왕국군의 손해, 경비를 보충할 것. 이상!”
 
진짜 아예 관심도 없네 이거.
 
“역시 왕은 몰트 같은 나라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더 편하긴 하다만.”
 
셀레스티나가 왕과 케네스를 상대로 맞붙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야.
무관심이야말로 희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이만 돌아가볼까?”
“돌아가는 길에……들르실 겁니까?”
“그래, 내 바지가 터지기 전에 즐기자고.”
“정말! 변태! 음란마귀!”
 
마이라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가 번져 있었다.
 
 
 
한참 동안 즐기다 마이라와 팔짱을 끼고서 바깥으로 나와보니 세리아가 콧물을 흘리면서 서 있었다.
아무래도 혹한 속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이리지나도 같이 있긴 했지만 이쪽은 완전 멀쩡해 보인다.
그렇겠지, 이리지나가 감기에 걸릴 리가 있나.
 
삐진 그녀에게 가볍게 키스를 해주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혀까지 집어넣더니 침을 섞는 격렬한 키스로 이어졌다.
 
“야 저거 봐……미친 거 아니냐?”
“젠장, 저딴 놈이 여자를 전부 가로채가는 거라고!”
 
행상인들이 욕설을 퍼붓길래 상황을 확인해 보았다.
마이라와 팔짱을 끼면서 세리아와 키스를 하고 있는 나, 심지어 원하는 것 같길래 이리지나의 엉덩이로 쓰다듬어주는 중이다.
 
이 다음은 돌아가고 난 다음에 해야겠군.
 
 
 
 
그날밤
 
침실 소파에 걸터앉은 채 혼자서 술을 마신다.
연방 대사 환영용으로 준비된 고급품을 가져왔기 때문에 맛이 훌륭하다.
 
그때 조그맣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헬비입니다. 약속을 잡아뒀습니다.”
“그래,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온 흑발여자의 이름은 헬비라고 한다.
브루터스의 비서관을 맡았다고 하는데 신분도 없고 침공 시기엔 상사와 함께 연금되어 있었기 때문에 관계없는 인물로 치부되어 무죄방면으로 풀려났다.
 
겉모습은 키 170 중반 정도 되는 여자로 여성치고는 키가 크지만 몸의 굴곡 자체는 크지 않다.
이리지나처럼 튼실한 체격인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얼굴은 상당한 미녀, 그래서 날 만나고 싶다는 요청에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준 거지만.
 
“그래서 무슨 일이지?”
 
이 녀석은 이미 무죄 판정이 나 방면된 사람이다.
더 이상 내게 무언가를 부탁할 필요는 없다.
 
“브루터스 각하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술잔을 옮기던 손이 멈췄다.
 
“각하의 남부 추방 건에 관해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헬비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일라리오, 파블로, 브루터스 이 세 명은 남부의 모국으로 영구 추방……그렇게 말했을 텐데? 원래 사형에 처해야 하지만 셀레스티나 여왕께서 직접 목숨을 살려달라는 탄원서까지 내셨거든. 오빠라는 것들은 별 생각도 없는 모양이지만 말이야.”
“모국이라는 게 대체 어느 나라란 말입니까? 남부 국가들과 하드릿 경 사이에 관계가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그건 말 못하지. 관계를 끊어내기 위한 추방이니까.”
 
헬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쳤다.
 
“저는……무식한 바보가 아닙니다. 행선지가 저승이라는 건 저도 알고 있다구요.”
“…….”
 
레오폴트한테는 그들에 처벌에 관하여 길거리에서 적당히 판단한 다음 처리하라고 말해 두었다.
셀레스티나의 눈앞에서 처형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들을 살려두는 것도 불가능하다.
 
“각하는 제게 있어서 전부입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각하만큼은 제발……살려주세요.”
“……어려운 부탁이군. 멍청한 형제놈들은 불쾌하긴 해도 그게 전부인 놈들이지만 브루터스는 아주 위협적인 존재거든.”
“각하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나서신 것뿐입니다! 그것도 이뤄내지 못한 지금 의미없이 분쟁을 일으키실 분이 아니십니다!”
“너는 브루터스를 잘 알고 있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 그 녀석은 단순한 반란분자야. 믿어줄 순 없다 이거지.”
“그럴 수가…….”
“그것보다 네 미래에 관해서 얘기를 해보자고. 만약 괜찮다면……어이!”
 
헬비가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상반신에 이어서 하반신까지 전부 벗어던지더니 바닥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는 내게 성기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자기 손가락으로 그곳을 한계 끝까지 벌려 안쪽까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드릿 경께선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제 몸을 장난감으로 삼으셔도 상관없어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저를 망가트리거나 목졸라 죽여도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각하만큼은, 각하만큼은 살려주세요.”
 
참 심지가 곧은 여자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조금 생각해 주긴 해야겠군.
하지만 그 전에.
 
“괜찮겠나? 진심으로 안을 텐데.”
“폐하를 살려낼 수만 있다면야 얼마든지.”
 
나는 컵에 술을 붓고서 헬비에게 건넸다.
그녀는 곧장 내 의도를 파악하고서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침대 위로 올라가라, 이야기는 거기서 계속하자고. 각오해라, 앞으로 브루터스 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될 수도 있으니까.”
“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나도 옷을 벗어볼까. 얼른 안 벗으면 바지가 터져버릴 테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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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2살 겨울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백작  고르도니아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영주민 150000  중심 도시 라펜 18000 린트브룸 3000
 
 사군: 8600  
 
재산: 집계 중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드워프의 창  고급 강철 한손검
 
가족: 논나(정실 임신) 카라(측실) 멜(측실 임신) 쿠우(애첩) 루우(애첩) 밀레(애첩) 레아(자칭 육노예) 케이시(요괴) 미티(애첩) 알마 크롤(비동정) 멜리사(애첩) 마리아(애첩)
리타(메이드장) 카트린느(애첩) 요구리(개과천선 중) 피피(종자) 세바스찬(집사)
도로테아(애첩, 왕도) 셀레스티나(몰트 여왕) 모니카(시녀)
아이: 스우 미우 예카테리나(딸) 안토니오 클로드(아들) 길버트(아들) 로즈(의붓딸)
 
부하: 세리아(부관) 이리지나(지휘관) 루나(지휘관) 루비(루나 종자 겸 지휘관) 마이라(치안관)
레오폴트(참모) 기드(호위) 트리스탄(종자 임시) 아돌프(내정관) 클레어&롤리(전용 상인) 슈바르츠(말)
릴리안느(여배우)
 
마르스린느 스테파니 브리짓 펠리시(인질 수용)
 
경험 인수: 140명  자식: 3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