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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130화『맹수 돌진』

제130화『맹수 돌진』

 
전날
 
“적 거점 포위, 완료했습니다.”
 
모든 지휘를 맡고 있는 레오폴트의 지휘 아래, 토벌군은 반란군이 숨어있는 언덕을 크게 포위하는 데에 성공했다.
병력 문제 때문에 밀집도가 높은 포위망은 아니지만 설령 반란자들이 전력을 집중시켜 포위망을 돌파한다 하더라도 곧장 궁기병의 집요한 추격과 함께 놈들을 괴멸시킬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궁병 부대, 놈들을 유인해라.”
 
레오폴트의 지시와 함께 충분히 훈련받은 부대가 신속한 움직임으로 명령을 따른다.
 
“일제 사격 2연발, 발사!”
 
적의 거점은 커다란 언덕 위에 있고 그 주변엔 숲이 펼쳐져 있다.
아무리 봐도 병사를 잠복시킬 수 있는 부분은 숲 안쪽이다.
 
“2번 쏘고 나면 확인해라. 목표물이 움직이는 것 같으면 다시 두 발을, 반응이 없을 경우엔 다른 지점을 쏘도록.”


각 궁병이 차례차례 숲에 화살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끄억!” “으악!”
 
계획대로 비명소리가 들린 곳에는 한 번 더 집중적으로 화살이 쏟아져내렸고, 적의 복병은 진형 붕괴와 동시에 위치 또한 들통나게 되었다.
 
 
“우리쪽에 집중해서 병사를 매복시키고 있는 것 같네요.”
 
지켜보고 있던 마이라가 얘기했다.
지휘권은 없지만 말을 하는 것 정도의 자유는 있다.
 
“보병대, 적 진지 정면을 공격, 반격이 거셀 경우엔 교놈들과 교전하면서 후퇴해라.”
 
레오폴트가 다시 지시를 내렸고, 이번엔 화살이 멈추더니 보병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위력 간파용이군요. 뭐, 타당한 판단이죠.”
“척후병의 말에 따르면 적의 병사는 많아봤자 1000 정도, 잘만 하면 이대로 제압 가능할 겁니다.”
 
400명의 보병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들이 숲에 발을 들이자마자 곧바로 격렬한 전투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작전도 없이 최단거리에 방어 병력을 배치해 뒀던 모양이네요.”
 
얼마 안 있어 400명의 병사가 뒤로 물러나면서 숲을 빠져나왔다.
형세 자체는 패주하는 모양새지만 레오폴트와 마이라, 그리고 지휘관 중 그 어느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예상했던 행동이다.
 
빈약한 장비를 쓰고 있는 농민병들이 잘 훈련받은 정규군을 몰아내기 위해선 튼튼한 진지 혹은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
숲 안에 그 정도로 뛰어난 방어 설비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진 않으니 최소한 병력의 2배인 800명이 정면에 있는 것이리라.
이것은 미리 예상해뒀던 적의 병력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준이고, 반대로 말하면 정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텅 비었다는 뜻이다.
 
“창기병, 뒤쪽으로 돌아가서 거점으로 돌입하라.”
 
순식간에 창기병 200명이 달려나갔다.
놈들의 안식처, 지켜야 할 마을만 불태우면 반란은 거기서 끝이다.
아무리 싸울 수 있는 인원이 남아있다 한들 제대로 된 저항은 불가능하다.
 
모든 이들이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언덕에선 불이 피어오르지 않았다.
그 대신 나온 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였다.
 
“언덕 뒷편에서 적의 주력 부대와 조우했습니다! 대략 1000명, 압도적 불리입니다!”
“알겠다. 후퇴를 허가하지.”
 
레오폴트는 냉정하게 지시를 내렸고 경기병은 본진으로 돌아왔다.
어느 정도 손해가 발생하긴 했지만 중요한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후방에서 1000명이라구요?”
 
마이라가 신음하듯이 얘기했다.
 
“이동시켰다……아니, 속도도 빠르고 위치도 너무 정확해. 처음부터 그만한 병력이 있었다는 건가?”
 
레오폴트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적의 병력은 예상했던 수치의 2배, 상황은 단숨에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아직 목적은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
적이 2배라 한들 농민과 전사의 차이는 크다. 장비 차이를 고려해 보면 충분히 압도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적의 숫자가 많다면 병력을 분산시키는 건 의미없는 짓이다. 궁기병 절반과 보병 부대, 창기병은 정면으로 공격을 집중, 궁병과 궁기병 절반은 그 뒤를 원호해라.”
 
병력을 집중시키고서 강행 돌파,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가장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정면에서 직접 병사들을 통솔하고 있는 이리지나의 호령 소리와 함께 공격이 시작되었다.
 
“전력 발사! 돌격!!”
 
방금 전 보였던 공격은 마치 애송이 장난이라고 느껴질만큼 엄청나게 많은 화살이 쏟아져내리더니, 뒤이어 고함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돌격이 시작됐다.
숲 안으로 병사가 파고든 뒤, 처절한 전투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걸까요?”
 
 
“보고 드립니다! 숲 정면에 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간단한 진지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쯤 되니 주변 인물들의 안색이 바뀌었다.
 
“이동했다고? 이렇게 신속하게……그렇다면 후방에 있던 건 맨 첫 번째…….”
 
아군의 움직임을 완전히 읽혔다.
 
“전 부대, 후퇴하라.”
 
하지만 너무 늦었다.
 
“매복입니다! 공격 부대 양 측면 포위, 적 숫자는 알 수 없습니다! 협공당하는 중입니다!”
“뭐!? 매복 공격!? 우리가 공격할 곳을 알고 있었단 건가!”
 
마이라가 당황하듯이 소리쳤다.
 
레오폴트가 취한 공격 지점은 최선의 수였다. 따라서 더더욱 같은 수준의 전략가가 있을 경우엔 반대로 이용할 수 있다.
 
“레오폴트 공! 이대로 가만 두고 보다간!!”
 
 
레오폴트는 냉정하게 사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동하기 힘든 숲 안에서 마주한 측면 공격, 이 상황은 부대의 숙련도와 장비 차이를 충분히 메꿀 수 있다.
방치했다간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부대를 나누어 두 방향에서 들이닥친 적을 대응한다 하더라도 숲 안에선 제대로 움직일 수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적이 얼마나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외부 원군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궁기병 부대, 숲으로 돌격해서 공격대를 원호하라. 포위당해 있을 경우엔 포위망을 뚫고 도우러 가라.”
 
활로 원호하기 위해 남겨두었던 궁기병의 절반은 유효한 예비 병력이었다.
앞뒤에서 마주치게 된 방어 전력이 적의 기동성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면 그 인원은 맨 처음 예상했듯이 1000명이다.
500명의 궁기병이 돌격할 경우엔 상황을 충분히 타개할 수 있다.
 
“긴급 사태입니다. 지휘에는 관여하지 않을 테니 저도 가보겠습니다.”
 
마이라도 말 위에 올라타 궁기병과 함께 돌격을 시작했다.
이제 조금이라도 상황을 타개할 수 있게 되든지, 최소한 큰 타격을 입기 전에 공격대를 구출해서 태세를 정비할 수 있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 믿고 있을 때였다.
 
 
“보고 드립니다! 정면에서 방어 진지 발견! 공격대 후방에서 대 기병용 방어 진지 발견! 돌파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공격대가 한 번 지나쳤던 곳에 방어 진지가 있을 리 없다.
만약 정말로 있는 거라면…….
 
“처음부터 여기까지 간파하고 있었던 건가.”
 
미리 구멍 같은 데에라도 약간의 병사를 매복시켜두고서 끝까지 절대로 이동시키지 않는다.
그렇게 정면으로 집중시킨 병력이 길을 지나감과 동시에 구멍에서 빠져나와 미리 감춰두었던 목책 같은 것들을 끄집어내 진지를 세워두는 전략.
맨 처음부터 진지를 구축하기 쉽게끔 고려된 것이리라.
 
 
그런 식의 간이 진지는 오래 버티기도 힘들고 이대로 밀어붙여도 궁기병 500기가 언젠가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공격대가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
 
우득, 하고 이빨이 박살나는 소리.
옆에 있던 병사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 소리가 무표정한 레오폴트의 입에서 새어나온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수, 후퇴 신호다.”
“예?”
“어서 해라.”
“예!!”
 
염료가 발린 천이 붙어있는 불화살, 쓰는 염료로 인해 바뀌는 불의 색깔은 모든 부대에게 알리는 전달 신호다.
지금 날린 화살은 사수가 처음으로 쏘게 되는 색깔, [전면 후퇴하라] 라는 신호의 물건이었다.
 
“…….”
 
적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해 남아있던 궁병대한테 지시를 내리면서 레오폴트는 입에서 무언가를 뱉어냈다.
그것은 침이 아니라 박살난 어금니 조각이었다.
 
◇◇◇◇◇◇◇◇◇◇◇◇◇◇◇◇◇◇◇◇◇◇◇◇◇◇◇◇◇◇◇◇◇◇◇◇◇
지금  산 드라 도시
 
“그렇군, 처음부터 다 간파당했다고.”
 
도시로 패주한 토벌대로부터 상황을 전해들었다.
 
“예, 적병의 숙련도는 결코 높지 않았습니다. 병력도 처음에 예상했던 것처럼 1000명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겁니다. 그 정도의 병력으로는 임기응변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정해두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완전히 풀이 죽은 마이라와 이리지나에 비해 레오폴트는 죄송하다는 태도도, 억울함도 표정에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더 다루기 쉽긴 하다.
이미 지난 일을 반성해 봤자 의미는 없다. 중요한 건 이 다음이다.
 
“아무튼 적은 상대하기 버겁다 이거군.”
“정확히 말하면 적의 지휘관이 버겁습니다. 병력과 숙련도, 장비 모두 우리 쪽이 우세했으니까 말이죠.”
 
레오폴트가 그렇게 말하자 동시에 이리지나가 웬일로 고개를 숙이더니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
다시 말해 지휘관의 질 하나만 가지고 모든 게 뒤집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굴욕감을 느끼고 있을 레오폴트는 완전히 무표정이었다.
 
“놈들은 지형을 잘 이용합니다. 제 실수로 인해 병력도 상당히 손실을 입었으니 현 상태에서 놈들을 격파하는 건 힘들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다음번엔 나도 나갈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외람된 말씀인 줄은 알지만 지휘 능력으로는 제가 하드릿 경보다 뛰어납니다. 출전하신다 한들 저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실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뭐라고!? 패주한 주제에 뭘 그리 뻔뻔하게!!”
 
세리아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호통쳤다.
뭐, 너무 화내지 말라고. 이 녀석한테 배려심을 기대하는 것부터 잘못됐으니까.
게다가 지휘 능력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이다.
아마 내가 지휘를 했었더라면 더 끔찍한 결과가 나왔으리라.
 
 
“아무튼 이대로 가만 둘 수는 없겠군요. 패배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치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아돌프 입장에선 반란군 자체보다는 영지 내부의 전체 치안을 신경 쓰는 중인 것이리라.
 
“승리를 따내려면 뭐가 필요하지?”
 
물어볼 필요도 없는 얘긴 하지만 마이라와 레오폴트한테 일단 의견을 물어보았다.
 
“대량의 병력이죠. 놈들의 병력이 1000명 정도가 한계인 이상, 숫자로 밀어붙여서 전방위 동시 공격을 가하면 대처할 수 없을 겁니다.”
“궁기병과 라펜 민중을 소집해서 5000 정도 모으면 처리할 수 있습니다.”
 
뭐,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걸린다. 멜의 출산 시기에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시간이 문제군.”
“그렇죠. 소문이 퍼지지 않으려면 신속하게 제압하는 게 바람직하니까요.”
 
아돌프는 내 의견에 찬성인 모양이다.
한편 마이라는 문관이 전쟁에 참견하는 게 불쾌한 건지 뺨을 부풀리고 있다.
하지만 패배해서 돌아온만큼 제대로 된 발언은 하기 힘든 듯했다.
 
“일단 병사들을 휴식시켜야겠어. 부상한 놈들은 빼고 다시 출격한다.”
 
아돌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이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패주한, 심지어 병사 숫자까지 줄어든 부대로 다시 공격을 하러 가다니 현명한 전술이라 보긴 힘들다.
 
“이건 명령이야. 당장 준비해라.”
 
반론을 들어줄 생각은 없다.
뭘, 다음번에도 지게 되면 꽁무니 빼면 그만이지.
이쪽은 몇 번 지든 다음이 있지. 반면에 놈들은 한 번만 지면 끝이고.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유리한 전투였으니 마음 편하게 가면 되는 거야.
 
“할일 없는 놈들은 자고 있어라. 지친 머리로 생각해 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니 의외로 레오폴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하급 지휘관들에게 무어라 정보를 전달한 뒤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재미없는데 재밌는 놈이라니까.
 
“대체 뭡니까, 저 인간은! 애초에 패배한 책임은 자기한테 있으면서!”
 
격분하는 세리아를 달래주었다.
자기를 나무랄 거면 내 마음대로 좌천을 시키든 잘라버리든 하라는 것이리라.
부대 내 자신의 위치를 정하는 건 그 녀석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다.
그 녀석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지금도 피로 때문에 작전에 지장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그리고 말이지, 어금니를 자기가 직접 박살낼 정도면 힘이 좀 많이 들어갔다는 거거든.”
“네?”
“아무것도 아니야. 세리아는 참 귀엽다니까.”
“와앗!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구요!”
 
세리아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고 나서 밖으로 내보냈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세리아를 쉬게 놔둬야 하기 때문에 안을 수 없단 말이지.
 
“저기…….”
“아아, 너는…….”
 
누군가 나를 불러 뒤를 돌아보니 유부녀 메이드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성교로 내게 반해버린 모양이다.
 
“온정을 받고 싶어요……피임도 필요치 않아요. 어젯밤 남편한테 안기고 왔으니까 뭐든지 원하시는대로……임신해도 괜찮으니까요.”
“귀여운 여자로군. 침대로 따라와.”
 
어깨를 끌어안고서 방으로 들어간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몸보신을 좀 해야겠어.
메이드의 옷을 벗기지 않고서 따먹으면 흥분된단 말이야.
 
 
“안에다 싸주지, 자! 임신해라!!”
“뜨거워! 양도 엄청나……여보오, 뛰어난 아기씨를 받아버렸어……분명 튼튼한 네 번째 아이가…….”
 
◇◇◇◇◇◇◇◇◇◇◇◇◇◇◇◇◇◇◇◇◇◇◇◇◇◇◇◇◇◇◇◇◇
며칠 후  반란군 거점 근처
 
군대를 재편성하고 그대로 다시 행군해서 목표 지점으로 향한다.
패배한 다음이라 그런지 병사들의 사기는 낮았지만 내가 직접 출전한 덕분에 눈에 띄게 축 늘어지는 놈들은 없었다.
특히 궁기병의 사기는 단숨에 올라갔다.
역시 이들은 내가 없으면 좀 애매한 모양이다.
 
 
 
 
“여긴가……확실히 공격하기 힘들어 보이긴 해도 못 밀어붙일 건 없을 것 같은데.”
“숲 안 전역에 꼼꼼히 준비된 함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보기보다 더 돌파하기 힘든 곳입니다.”
“흐음, 그렇군.”
 
전역이란 말이지.
 
“함정이라면 구멍 같은 거라도 있는 건가?”
“그런 고정식 함정 같은 게 아니라, 나무 사이에 밧줄이나 울타리를 치고 간이 토대를 박아서 세워두는 함정이다…….”
 
직접 백병전을 해보았던 이리지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쉽게 말해 어디서든 순식간에 만들 수 있다 이거군.”
“동향을 파악당하면 그 말이 맞습니다.”
 
흐음, 그렇다면야 이야기는 간단하지.
그래도 마지막으로 확인해 둬야겠어.
 
“레오폴트, 네가 생각하기에 이 병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뭐라고 보지?”
“……부대를 2개로 나눠서 오른쪽 측면과 왼쪽 측면에 병사를 내보내 협공하는 겁니다. 숫자가 줄었다고는 해도 절대 총량으로는 아직까지 우리가 우세하니까요. 완벽히 동시에 공격하기 시작하면 적도 그 행동을 동시에 대처해야 할 겁니다.”
“문제점은?”
“적한테는 진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움직임이 간파당하면 2:8 비율로 병력이 분할될 거고, 2할은 진지를 이용해서 방어에 전념, 8할은 병사를 매복시켜 기습을 시도할 경우 한쪽 진형이 불리해집니다. 도우러 가려 해도 바깥쪽으로 우회하는 우리보다 안쪽에서 돌아다니는 적의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결국 손실만 발생한 채 이점은 사라지게 될 겁니다.”
 
네가 그 정도로 복잡한 짓을 생각하고 있는 걸 보니 괜찮겠군.
 
“네 지휘관은 너보다 뛰어난 놈인가?”
“……큰 우열은 아닐 거라 봅니다.”
 
좋아, 이걸로 가야겠어.
 
“전군을 정면으로 전개해라. 궁기병과 창기병을 선두에 세우고 보병은 뒤쪽에, 궁병은 적당히 원호 사격해라.”
“정면엔 적의 성가신 함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아. 그럼 어디서 들어가든 마찬가지야.”
 
깜짝 놀란 마이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돌격진을 짜라.”
““네에!?”” “좋아, 가자!”
 
세리아와 마이라는 깜짝 놀랐고, 이리지나는 의욕적으로 대답했다.
루나는 재빠르게 준비하는 중이다.
 
“갑자기 정면 돌격이라구요? 상황 파악도 못했는데?”
“어차피 봐도 몰라. 이 녀석의 전략을 꿰뚫어보는 수준의 놈이라고. 내가 머리를 써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레오폴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움직이지 않았다.
전략을 간파당했다는 소리를 들어서 조금 열이 받은 게 확실하군.
 
“너는 내가 돌격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예측은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하드릿 경의 성격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만약 항간에 나도는 소문밖에 갖고 있는 정보가 없다면, 그런 어리석은 정면 돌격보다 대응해야 할 전술이 더 많아지겠죠.”
 
그럼 됐어.
적이 싫어하는 짓을 하는 게 전쟁이니까.
 
부대는 끝부분이 적 쪽으로 향하는 날카로운 삼각형 모양새의 진형을 취했다.
이 진형을 짠 이상, 적들도 돌격이 오리란 것은 눈치 챘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은 병사 숙련도나 능력이 뛰어난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수한 지휘관의 명령을 따르며 싸운 덕분에 선전하는 중인 것이다.
 
숙련도가 낮은 부대는 지휘관부터 말단 부하한테까지 지시가 전달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혹은 초조함 때문에 정보 전달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저놈들은 강력한 리더 아래 모여있는 약골들, 난전 상태로 끌고 가면 우리 쪽 병력의 숫자가 절반이라도 이길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치밀한 계획이 아니다. 속도와 압력만이 필요할 뿐.
 
 
“돌격――!!”
“오오오오오오오――――!!”
 
서둘러 짜도록 시켰기 때문에 빈말로도 깔끔한 진형이라 말하긴 힘들다.
울퉁불퉁한 삼각형 모양 그대로 모든 부대가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그 선두에는 나와 호위대가 위치해 있었다.
말발굽 소리 때문에 고함소리조차 들리질 않는다.
 
“하드릿 경.”
 
어느새 레오폴트가 내 옆에 와 있었다.
이 녀석답지 않게 앞으로 나오다니.
 
 “놈들은 결국 농민에 불과합니다. 그런 놈들의 통솔력을 박살내기 위해선 공포, 되도록 공포심을 줄 수 있는 전투 방식을 취해 주십시오.”
 
뭐야 그게.
 
“살아있는 채 적들을 찢어발기고 내장을 끄집어내시거나, 피를 흠뻑 뒤집어쓰면 완벽합니다.”
“헛소리하지 마.”
 
너는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래도 뭐, 의도는 알겠군. 레오폴트는 그 말만 남기고서 뒤로 물러났다.
최대한 화려하게 싸워줘야겠어.
 
숲 안에서 일제히 화살이 날아왔지만 숫자도 적고 기세도 볼폼없다.
이 정도로는 우리를 멈추기엔 한참 역부족이다.
 
숲에 뛰어든 순간, 슈바르츠가 갑자기 펄쩍 뛰었다.
잘 보니 나무와 나무 사이에 밧줄이 묶여 있었다.
오호라, 돌격하는 걸 보고서 바로 준비한 건가? 이런 간단한 함정이라면야 몇십 초 안에 준비할 수 있다.
슈바르츠는 그 함정을 보고서 뛰어넘은 모양이다.
 
“미안하군, 이 녀석은 특별해서 말이야.”
 
멍하니 내 쪽을 올려다보는 적병 두 사람한테 창을 휘두른다.
복장만 보면 완전히 농민이다.
 
두 사람은 나무 사이로 빠져나가 도망치려했지만, 드워프제 창은 나무와 함께 통째로 놈들을 두 동강냈다.
 
“밧줄이 있다!!”
“우와앗!” “와아아악!!”
 
뒤쪽에서 따라붙는 호위대와 궁기병 몇 기가 뒤집어졌다.
허둥지둥 뒤쪽에 있던 기병이 속도를 낮추고 밧줄을 피하려 했지만,
 
“속도를 늦추지 마라! 그냥 달려! 뒤집어지면 운이 없다고 생각해라!!”
 
내 노성에 병력이 다시 속도를 높였다.
그래, 그거면 돼. 최소한 적진 안에서 발밑을 신경 쓰면서 전진하는 것보단 더 승산이 높다.
 
기병대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숲 안으로 돌격했고, 전속력으로 나아갔다.
함정에 걸리는 사람도 가끔씩 있는 데다가 숲 안에서 전력으로 달리는 건 제아무리 궁기병이라 해도 난이도가 있는 기술인지 나무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체 양상으로 보면 큰 손실까진 아니다.
 
적의 경갑 보병은 앞뒤 신경쓰지 않고 달려드는 우리 병력을 보고 거품을 물며 도망치려 했지만, 당연히 따라잡혀 목숨을 잃게 되었다.
 
“너희들, 발을 멈추지 마라! 대장님께서 선두에 계신다!!”
“어물쩡거리다간 대장님한테 집안 여자들 다 뺏길 거다!”
 
모든 이들이 충혈된 눈으로 아군 측 피해는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달려나간다.
특히 산의 민족으로 구성된 궁기병은 애초부터 내가 참전한 덕분에 사기는 정점에 가까웠다.
 
“위대한 족장님께 패전을 안겨드릴 수는 없는 법! 죽어서 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커다란 영광인 줄 알라!!”
 
입구를 지키고 있던 적을 해치우거나 추월한 다음, 순식간에 숲의 절반 정도까지 도달한 순간 또다른 문제가 고개를 내밀었다.
 
“마방책이군.”
“지난번에도 저게 갑자기 나타나서…….”
 
전방에 나타난 것은 2m가 넘는 나무 울타리, 평소엔 기틀로 쓰일 일부 나무 기반 외엔 바닥에 방치해 위장하고 있던 모양이다.
이쯤 되니 슈바르츠라 하더라도 뛰어넘긴 힘들어 보였다.
우회라는 선택지는 놈들도 간파하고 있을 테고 시간도 걸린다. 심지어 방향 전환 중엔 놈들의 과녘으로 쓰이기 딱 좋은 상황이 펼쳐진다.
근처로 다가가 울타리를 부숴볼 생각도 해봤지만 뒤쪽에 병사가 대기 중인 걸로 보아 그리 쉽진 않을 듯하다.
 
하지만 루나는 당황하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위대한 족장님께서 출전하신 이상, 계속해서 지고만 있을 수는 없나이다. 저희의 각오를 봐주시옵소서.”
 
궁기병은 루나의 말을 뒤따르듯이 검을 뽑아들고는 다같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산의 신령이시여, 우리의 전투를 지켜봐 봐주십시오!”
 
마방책에선 적병의 창이 튀어나와 있었고 심지어 바로 앞에는 땅바닥에 설치된 나무 가시까지 있었다.
급조품이긴 하지만 기마 돌격으로 상대하기엔 버거운 상대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울타리 건너편에 있던 적병들한테서도 동요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충돌하기 직전 그들은 다같이 말에 눈가리개를 씌우더니 그대로 울타리로 몸을 들이박았다.
 
말의 눈을 가린 궁기병의 선두는 속도를 하나도 줄이지 않은 채 마방책과 부딪쳤다.
나무가시와 창에 꿰뚫리며 치명상을 입은 말과 사람이 차례차례 죽어나간다.
 
하지만 목숨을 잃었음에도 전력으로 달리고 있던 말의 몸뚱아리가 바로 그 자리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가시에 몸을 들이박고 비명을 내지르는 말은 다리가 엉켜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그 무게만 해도 사람과 말을 모두 합쳐 몇백 킬로그램, 급조된 울타를 박살내기엔 충분하다.
 
“히익!”
“뭐야 이 자식들, 미친 거 아냐!”
“말도 안 돼!!”
 
말의 눈을 가린 이유는 충돌하는 순간까지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하나둘씩 울타리가 박살나더니 바닥을 구르는 말의 시체가 적병을 휩쓸었다.
 
“말도 안 되게 무리를 하는군……우리도 따라간다. 뒤쳐지지 마라!”
“그래!”
 
궁기병의 처절한 전투를 눈앞에서 목격한 덕에 함정에 대한 공포심도 흐려진 모양이다.
보병대, 창기병, 모든 병사들이 박살난 틈 사이로, 그리고 창에 꿰뚫리면서도 억지로 울타리를 무너트리며 길을 뚫는다.
 
나도 뒤쪽에서 몸을 사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창을 두 손으로 쥐고서 머리 뒤쪽까지 치켜든다.
 
“하이얍!”
 
전력으로 휘두른 횡베기에 울타리 위쪽 절반이 날아갔다.
철판으로 덧댄 울타리가 아니라서 다행이군.
 
높이가 절반으로 줄어들면 충분하다.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데도 슈바르츠는 펄쩍 뛰어올라 울타리를 넘어갔다.
 
“끄엑!”
 
일부러 반대편에서 창을 겨누고 있던 적 병사의 머리 위로 착지하는 걸 보아하니 이 녀석도 성격은 더럽단 말이지.
돼지 멱 따이는 소리가 들렸잖아.
 
“힉……이 자식……설마……?”
“하, 하드릿!”
 
“잘 부탁한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서 창을 한 번 휘두르니 두 사람의 목과 어깨 부근이 날아갔다.
운 좋게 칼날이 아니라 손잡이에 맞은 남자는 힘차게 나무 쪽까지 날아가더니 ㄱ자로 몸이 부러졌다.
 
최대한 사납게 싸우라 그랬지.
잡졸들을 농락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지만 어차피 죽는 건 똑같으니까 뭐.
 
“끄엑!”
 
도망치려고 하는 적을 등 뒤에서 찔러버리고 그대로 들어올려 다음 상대방을 향해 내던진다.
나무와 부딪치면서 휘둘러서 그런지 창에 박혀있던 남자가 박살이 난 채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
 
이번엔 깔끔하게 목을 날리지 않고 일부러 조준점을 비틀어 머리 한가운데나 왼쪽 절반 부분을 날려버렸다.
일반적인 무기의 경우 칼날이랑 두개골이 맞부딪치면 날이 상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이 창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당연히 선혈이 사방에 튀었고 나와 주변 모두 피로 흠뻑 젖게 되었다.
더럽군. 여긴 목욕할 데도 없으니까 이제 그만해야겠어.
 
오른손에 짊어진 창에는 두 명이 꼬챙이처럼 꿰인 채 계속해서 비명을 내지는 중이었고, 그 빈틈을 찔러 튀어나온 또다른 한 사람을 왼손으로 붙잡아 머리를 움켜쥐었다.
 
“뭐야 저거…….”
“괴물이잖아…….”
 
나는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에 미소로 회답하면서 일부러 보여주듯이 내 왼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아극……그만……끄극!”
 
으드득, 하고 머리가 짓뭉개진다.
이어서 창에 꽂혀있던 두 사람도 하늘 높이 내던졌다.
 
“마……마왕이다…….” “악귀를 상대로 어떻게 이겨!!”
 
 적들은 끝내 울타리 방어를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려는 모양이다.
아군들도 차례차례 돌파하는 중이다.
 
한 번 기병이 진을 돌파한 이상, 보병 입장에선 도망칠 수밖에 없다.
 
“쫓아라, 철저하게 도륙을 내버려!”
 
아군 기사가 도망치는 적의 등에 화살을 박아넣고 머리를 검으로 쪼개버린다,
 
“그, 그만해! 끄아아아악!!”
“히이이이이이익!!”
 
상당한 손실이 발생한 이상, 지휘관과 병사 모두 눈이 시뻘개진 채 쫓아가는 중이다.
항복하겠다고 소리치는 적의 두 눈알을 두 자루의 검이 동시에 꿰뚫고 엎드린 채 벌벌 떠는 사람을 가차없이 말발굽으로 짓밟는다.
전장에선 이런 식으로 과해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얼른 승리해서 끝내버리고 싶다.
 
“놈들을 학살하는 건 나중에 해라. 울타리를 뛰어넘은 자부터 내 뒤를 따라라, 전진이다!”
 
다시 슈바르츠의 속도를 높여 숲을 내달린다.
눈앞에 있는 적병은 뒤를 돌아보고 있기 때문에 내 뒤를 따라붙는 녀석들을 위해서라도 하나하나 찔러 죽이고 짓밟아두었다.
이미 적병의 통솔력은 붕괴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대로 끝날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든다.
 
그 후에도 뜨문뜨문 나타나는 함정 탓에 피해자가 속출했지만, 억지로 길을 뚫고 나아갔다.
울타리를 넘어간 뒤부턴 대규모 방어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 농민병이라 그런지 한 번 돌파당하니 다같이 통제력이 무너져 흩어지기 시작했다.
가만 내버려 둬도 다시 한 데 모여 우리의 등 뒤를 찌를 걱정은 없어 보인다.
 
“이 건너편이 놈들의 거점입니다!!”
 
숲을 빠져나온 그 앞에 펼쳐진 것은 경사가 가파른 언덕이었다. 그래도 바위로 구성된 건 아니라 올라갈 수는 있어 보였다.
 
“적의 궁병입니다!”
 
하지만 그 능선 위에는 궁병이 산개해 있었다.
이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던 정석적인 산개 방식이다.
 
후두둑 화살이 쏟아지더니 아군 몇 명이 시체가 되었다.
하지만 방패를 쥔 병사를 효과적으로 쓰러트릴만큼 정밀도가 높은 것도, 위력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숲을 빠져나온 궁기병이 대응 사격을 시작하자 고저차의 우위는 마치 없다는 것마냥 순식간에 적병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정면에서 검으로 맞붙거나 화살을 쏘기 시작하면 우리 쪽이 우세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언덕만 넘어가면 우리의 승리다!!”
 
보병 지휘관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기어올라가듯이 언덕을 올라간다.
하지만 상당히 경사가 가파르다보니 목소리에 비해 속도는 별볼일 없다.
 
나도 그 뒤를 따를 생각이긴 하지만 말을 타고 있는 이상 속도를 내서 가는 건 불가능하다.
기어가는 듯한 속도로 천천히 언덕을 올라가던 그때, 전방에서 몇 사람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수많은 바위와 통나무가 갑판을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악!!”
 
앞다투어 달려나가고 있던 병사가 차례차례 으깨졌다.
허둥지둥 돌아가려던 자가 가파른 언덕 때문에 발이 미끄러져 가장 밑쪽까지 구르고 말았다.
 
“큭, 여기까지 왔는데!”
 
세리아가 벌레 씹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궁병이 화살을 쏴서 원호 사격을 해주고 있긴 하지만 반대편에 있는 적이 보이질 않다 보니 효과적이진 못했다.
 
“여기선 싸울 수 없다! 일단 잠깐 뒤로 물러나 완만한 곳에서…….”
 
이리지나도 자칫하면 아래쪽으로 구르게 되는 언덕 밑부분에서 공격을 시도하는 건 좋지 못하다 판단한 듯했다.
 
“에이길 님, 위험해요!”
 
세리아가 소리쳤다.
언덕 위에서 거대한 통나무가 굴러오고 있었다.
이런 커다란 나무를 어디서 구했담.
 
“세리아, 이리지나. 옆으로 뛰어라.”
 
이리지나한테 창을 맡기고서 두 손으로 자세를 취한 뒤 자세를 낮게 낮추었다.
 
“말도 안 돼요!”
“흐읍!!”
 
굴러오는 통나무를 두 손으로 받아냈다.
솔직히 엄청나게 무겁기도 하고 위에서 내려오던 힘이 있어 발이 질질 뒤로 밀렸다.
어떻게든 강철 부츠를 땅바닥에 꽂아서 힘을 죽이긴 했지만, 상당히 아래쪽까지 내려오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통나무는 무겁다. 지금까지 손에 쥐어본 그 어떤 무기보다 무거워서 들어올리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그냥 굴리는 것 정도라면 비교적 간단히 할 수 있다.
 
통나무를 밀면서 개미 기어가는 속도로 한 발자국씩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땅바닥에 엎드리듯이 주저앉아 있던 병사들이 나를 보고 눈을 치켜뜨더니 곧바로 뒤에 딱 달라붙어 따라오기 시작했다.
 
“이런 통나무를 사람 한 명이서 움직일 수 있는 거였구나.”
“멍청아, 영주님이 사람처럼 보이냐?”
 
이 자식들이 사람을 놀리고 자빠졌네? 나중에 네 아내 따먹으러 갈 줄 알아.
 
“뭘 하고 있느냐! 너희도 밀어라!!”
 
지휘관이 제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내 옆에 아군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살짝 편해지긴 했는데 반대로 답답해지고 말았다.
 
위에서는 아직도 돌과 통나무가 굴러오고 있었지만 우리가 밀고 있는 엄청나게 커다란 통나무에 튕겨나가 옆으로 빗겨나갔다.
적은 허둥지둥 활을 쏘려했지만 능선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언덕 아래쪽에서 노리고 있는 궁기병이 정확히 얼굴을 꿰뚫었다.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통나무를 밀어 앞으로 나아갔고, 끝내 언덕 위쪽까지 올라오는 데에 성공해다.
 
“으엑!”
“말도 안 돼…….”
 
돌을 떨어트리려던 적병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정말로 무겁네, 이 분을 좀 풀어야겠어.
 
통나무를 손에서 놓고 검을 뽑아든다.
뒤쪽에 따라붙고 있던 병사도 일제히 옆으로 산개하기 시작했다.
적의 뒤쪽에 마을이 있는 걸로 보아 더 이상 책략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밟아버려라!”
“죽여어어!!”
 
오랫동안 피해를 입어온 아군들의 사기가 끓어오른다.
이제 표적과 먹잇감은 정반대가 되었다.
자, 마무리 시간이다.
 
◇◇◇◇◇◇◇◇◇◇◇◇◇◇◇◇◇◇◇◇◇◇◇◇◇◇◇◇◇◇◇◇◇◇◇
조금 전  반란군 거점
 
“처음부터 정면으로 전력으로 돌격해 왔다고?”
 
전체 양상을 둘러볼 수 있던 장소에 자리를 잡은 트리스탄이 가벼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저 녀석들 바보 아니냐? 갑자기 한가운데로 달려들다니.”
 
옆에 있던 남자들이 비웃음을 흘렸지만 트리스탄은 웃지 않았다.
 
“하아……제일 바라지 않던 전개인데. 이러면 제대로 된 책략도 쓸 수가 없으니까 말이지.”
 
곧바로 주변에 있던 남자들의 안색이 바뀌었다.
 
“야, 괜찮은 거냐?”
“안 괜찮아. 일단 준비는 해뒀지만 말이야.”
“어, 숲 입구로 달려들었다……밧줄 함정을 준비해 뒀던 걸로 기억하는데…….”
“신경도 안 쓰고 들어오는구만……. 대단하네, 엉망진창이야.”
 
트리스탄의 말을 듣고서 주변 남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적은 확실히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승리주를 준비해 둬야겠군 그래.”
“으음, 그건 좀 기다리는 게 더 낫겠어. 솔직히 상당히 위험해……정면에 있던 진지에 울타리를 세워두라고 말해둘 수 있을까?”
“울타리 말이지. 알겠다.”
 
트리스탄의 지시는 단순 명쾌하다.
그것은 트리스탄이 선호하는 방식이거나 그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반란군이 복잡한 명령을 실행할만한 능력을 갖춘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농민이었던 사람이 대부분, 지휘관 중에 병졸 경험자가 있는 수준인 이상 명령이 길어지면 수행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전진해라.” “후퇴해라.” “~을 해라.” “숨어라.”
명령은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복잡한 이동이나 지시를 실행하기 위해선 사전에 동향을 정해두고 몇 번 정도 연습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데, 그랬다간 내릴 수 있는 명령이 한정된다.
모든 상황을 미리 꿰뚫어 보지 못하면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그런 전술을 취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돌격이 위험한 거지? 맹수랑 다를 바 없는 거 아닌가?”
“그래서 그렇지. 나는 명장 하드릿 백작을 상대할 생각이었으니까 말이야. 맹수용 함정을 준비한 적은 없다구.”
 
준비해 둔 책략의 9할이 엉망이 됐다며 트리스탄은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책략끼리 부딪치면 좋게 굴러갈 경우 희생을 최소화시키면서 적을 쫓아낼 수 있지만 정면에서 맞붙으면 적과 아군 모두 손해가 커질 수밖에 없어. 저쪽은 또다시 병사를 보충해 오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고 말이야.”
 
이래서 반란 같은 거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불평을 가로막은 것은 반란군이 갖고 있던 몇 안 되는 말을 탄 전령의 보고였다.
 
 
 
“정면에 있던 마방책, 돌파! 저놈들 미쳤어. 말의 눈을 가리고서 달려들더니 울타리를 박살내버렸다니까.”
“우와, 진짜 큰일났네. 완전 다 뚫리겠어. 언덕 위에 있던 사람들한테 준비시켜 둬.”
 
전령은 말을 더욱 이어나갔다.
 
“개중에 한 명 미친 놈이 있더라. 아군을 몇 사람이나 창으로 찔러죽이더니 완전 갈기갈기……그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야!”
 
짐작 가는 인물은 하나밖에 없다.
 
“하아……무조건 하드릿 백작 본인이잖아. 완전 싫다, 영주가 나온 이상 간단히 후퇴하진 않겠지? 큰일났네,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용서해 주려나……?”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 우리는 반란군이라고, 여기서 졌다간 너랑 나 둘 다 교수형이야! 아니, 죽이기만 하는 거라면 자비로울 지경이지. 한참 동안 고문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되지 않게끔 기도하자. 나는 말도 못 타니까 도망 못 간단 말이야.”
 
이극고 숲 입구 쪽에서 노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상대방이 숲을 빠져나온 것이다.
 
궁병이 반격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역으로 당해버렸다.
 
“말도 안 돼……왜 우리가 더 높은 쪽에서 쏘는데 지는 거지?”
“그만큼 숙련도랑 장비가 다르단 거지. 토끼를 상대로 훈련하고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말이야.”
 
트리스탄은 손을 들어 신호를 주었다.
사람드링 마을에서 언덕 끝부분을 향해 마치 길을 까는 것마냥 가느다란 통나무를 깔아두더니, 그 위에 커다란 돌과 한층 더 두꺼운 통나무를 밀기 시작했다.
이 덕분에 여자와 노인들도 돌과 통나무를 운반할 수 있게 되었고, 공격 또한 끊임없이 퍼부을 수 있게 되었다.
 
“저 가파른 언덕은 위에서 물건을 계속 던지면 올라올 수 없을 테니까 적은 아마 경사가 완만한 동쪽으로 우회해 올 거야. 낙하 함정이랑 불은 준비되어 있지?”
“그래, 완벽해! 다 통구이로 만들어주겠어!”
“자, 이제 어떻게든 밤이 될 때까진…….”
 
트리스탄은 도중에 말을 자르더니 멍하니 언덕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말이 돼……? 저 통나무를 언덕 아래쪽에서 밀어붙이면서 오다니.”
“말도 안 돼……저건 10명이서 밀어야 움직일 수 있는 거라고!”
 
한꺼번에 적을 짓뭉갤 생각으로 굴렸던 커다란 통나무가 반대로 아군 측의 화살과 돌을 막아내는 방패로 쓰이고 있었다.
평지에서조차 10명이 붙어야 간신히 굴릴 수 있는 무게의 그것을, 가파른 언덕에서 굴리며 올라오다니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간 서쪽에서 돌파당할 거야. 동쪽으로 보내뒀던 예비 병력을 이쪽으로 다시 보내.”
 
“말을 타고 있는 전령은 어딨지!?”
“방금 동쪽으로 가버렸어!”
“다시 불러! 아니, 누가 달려서 전달하러 가!!”
 
전령은 대체 어디로 간 건지, 명령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사태를 만회할 기회는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트리스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어불성설, 이들과 자기 또한 평범한 농민이었던 이상 제대로 된 전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아, 사실은 어느 한적한 도시에서 조용히 서점이라도 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말이야. 고양이라도 무릎 위에 올려두면서.”
 
아무래도 그 소원은 이뤄질 수 없는 모양이다.
 
이윽고 통나무를 맨앞에 두고 언덕을 다 올라탄 적병이 아군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숫자 자체는 적지만 엄청난 패기로 순식간에 아군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커다란 창을 휘두르는 한 남자가 엄청난 모습으로 아군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있었다.
8명이서 달려들었는데도 그 모든 인원이 상반신만 남아버린 그 광경에 아군의 사기는 완전히 붕괴했다.
 
그리고 날릴 돌이 다 떨어진 그때, 언덕 아래쪽에서 미친듯이 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트리스탄! 놈들이 다 올라와버렸어! 다음은 어떻게 할 거냐!!”
“하아…….”
 
커다란 한숨 한 번과 함께 트리스탄은 두 손을 좌우로 벌리고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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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2살 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백작  고르도니아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휘하군: 사군 1850
궁기병 650  보병 280  궁병 200  창기병 140  호위대 80  라펜 대기조 500
 
재산: 금화 14300닢 노역(200)
빚 2만닢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드워프의 창  보석 방패  고급 강철 한손검
 
가족: 논나(정실) 카라(측실) 멜(측실 임신) 쿠우(애첩) 루우(애첩) 밀레(애첩) 레아(자칭 육노예) 케이시(요괴) 미티(애첩) 알마 크롤(비동정) 멜리사(애첩) 마리아(애첩)
리타(메이드장) 카트린느(애첩) 요구리(개과천선 중) 피피(종자) 세바스찬(집사)
도로테아(애첩, 왕도)
아이: 스우 미우 예카테리나(딸) 안토니오 클로드(아들) 로즈(의붓딸)
 
부하: 세리아(부관) 이리지나(지휘관) 루나(지휘관) 루비(루나 종자 겸 지휘관) 마이라(치안관)
레오폴트(참모) 기드(호위) 아돌프(내정관) 클레어&롤리(전용 상인) 슈바르츠(말)
릴리안느(여배우)
 
경험 인수: 114명  자식: 1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