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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106화『왕과의 교섭』

제106화『왕과의 교섭』

 
벌써 중앙 평원에서 몇 번인가 맞이하고 있는 겨울이 다가오는 중이다.
전쟁은 끝났다.
 
트리에아 왕국, 유레스트 연합은 지도에서 사라지고 고르도니아의 일부가 되었으나 마그라드 공국은 고르도니아의 수군을 격파하고 강을 넘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고르도니아는 마그라드에 대한 침공 수단을 상실하게 되었으나, 마그라드 또한 정예 원정군의 뼈아픈 패배로 인해 강가 동쪽 기슭에 상륙하여 고르도니아와 전투를 벌일만한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두 나라는 서로를 완전히 적국이라 인식하면서도 무역로를 박살내는 것과 같은 치졸한 전투는 취하지 않고, 1년이라는 기간이 정해진 휴전 협정을 맺기로 했다.
 
군대에서 할일을 끝마친 나는 그대로 영지로 돌아가려 했으나, 날 기다리고 있던 건 역시나 개선식이었다.
 
“너 말이다……「끝났으니까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을 거 아니냐…….”
 
에이리히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며 내 옆에 섰다.
개선식은 아크랜드 전쟁 때 이미 했잖아.
똑같은 짓거리를 두 번 해봤자 지겨울 뿐인데.
난교라도 시켜 준다면야 몇백 번이든 환영이지만.
 
“애초에 마지막 전투 때 패배는 상당히 뼈아프지 않았습니까? 그런 건 무시하고 개선식을 열어도 되는 겁니까?”
 
에이리히가 어깨를 추욱 늘어트렸다.
 
“뼈아프지……엄청나게 아파. 그래서 더더욱 지난번보다 크게 열 게 분명해. 이런 것까지 어중간하게 했다간 민중들은 승리했다는 실감을 얻기 힘들 거다.”
 
에이리히는 푸념하듯이 말을 덧붙였다.
 
“1개 병단 1만 5천명이 통째로 강에 빠져 죽었어. 내가 그 병력을 편성하고 훈련시키느라 얼마나 시간을 들였는지……. 병사는 또다시 처음부터 인원을 모아 훈련시킨다 쳐도 지휘관은 대체가 안 돼. 이 부분은 시간을 들여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지휘관 육성은 병사 훈련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고, 최소한의 교양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소용이 없다.
필연적으로 그들의 출신은 귀족, 기사 자제가 대부분일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도 군대에 잘 맞는 사람을 훈련시켜야만 한다.
1만 5천 명분의 지휘관을 한꺼번에 잃은 에이리히는 아주 많이 속이 쓰릴 게 분명했다.
나는 대부분 레오폴트한테 떠넘기고 있어서 신경 안 쓰이지만 말이야.
 
병사를 끌고서 궁전 앞 광장으로 향하던 도중,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환호성을 받게 되었지만 무언가 열기가 부족한 느낌이다.
지난번엔 아크랜드가 악역이라는 확실한 위치에 있어 이해하기 쉬웠지만, 이번 전쟁의 적국은 트리에아와 유레스트. 둘 모두 오랫동안 우호국이었다.
승리했다고 해도 영토가 늘어났다는 것 말고 별다른 달성감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리라.
 
“폐하께서 직접 민중들 앞에서 어떠한 성과가 있었는지 연설을 하셨다 듣긴 했다만……. 마지막 그 패배까지 포함하면 사상자도 상당한 편이지. 어쩌면 앞으로 한바탕 소동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에이리히가 냉정하게 얘기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길을 지나가자 환호성이 한층 더 커졌다.
어차피 우리의 전과를 상당히 과장해서 떠벌렸을 게 틀림없다.
영웅 취급받는 건 썩 나쁘지 않지만 뭔가 내 소문은 좀 이상한 게 섞여있단 말이지.
 
“하드릿 자작님이다!” “전광석화 같은 진군으로 적 요새를 박살냈다던데!”
“마그라드도 격파했다고 들었어!”
 
여기까진 괜찮다.
 
“적의 중장보병을 손으로 찢어버렸다더라.” “투석기랑 같이 서서 커다란 돌을 날렸다는 소문도 들었어!”
“적의 여장군을 붙잡아서 육노예로 삼았다던데.” “여자를 한꺼번에 100명 세워두고 하룻밤 사이에 전부 다 임신시켰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아!”
 
이 부근부터 좀 내용이 이상하다.
 
나는 슈바르츠 위에서 뛰어내려와 직접 민중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환호성 도중 몇 사람 정도 악수를 나누었지만, 그런 건 솔직히 관심없다.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밖에 나와있던 젊은 아가씨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한 것이다.
 
“우와, 우리 쪽으로 오고 있어!” “미쳤다! 에리스, 너 저 분 좋아한다며!? 가봐, 얼른!”
 
꺄아악, 하고 소리치는 아가씨들. 그 중 한 명의 어깨를 붙잡아 키스를 해주었다.
 
“어!? 읍!”
 
순간 여자가 당황했지만, 혀를 밀어넣으니 힘을 풀고 나를 받아들여 주었다.
10초 정도 농밀한 키스를 하고서 옆에 있던 아가씨로 옮겨갔다.
 
“나도!? 으읍!”
 
길에 서 있는 아가씨들과 차례차례 혀를 집어넣는 입맞춤을 나누었다.
 
“대단해……소문이 진짜였구나.” “하아하아……엄청난 키스……젖어버렸어…….”
 
마지막으로 키스한 여자는 내게 동경심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키스를 하고 난 뒤 허리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다섯 명의 아가씨들과 전부 키스를 하고서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슈바르츠 위에 다시 올라탔다.
이제 왕과 교섭할 때 필요한 양분은 다 보충했군.
 
“……경은 여전히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군.”
 
에이리히의 차가운 신경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내게는 등 뒤에서 필사적으로 주소를 부르고 있는 아가씨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리아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날 노려보는 중이다.
신경 안 써도 오늘밤은 정신이 아득해질만큼 안아줄 테니 걱정 마라.
 
 
 
그렇게 궁전에 도착한 우리는 왕과 따로따로 알현하게 되었다.
대기실에는 평소처럼 세리아와 이번엔 특별히 마이라를 데리고 왔다.
약속한대로 해줘야 하니까 말이야.
 
“하드릿 경……적의 장군인 제가 왕과 알현할 때 같이 있으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는 것 아닙니까?”
 
마이라가 걱정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해 주는 건가? 괜찮아.”
“아니에요! 당신이 아니라 우리 가문을 걱정하고 있는 거라구요!”
 
뭐야, 실망이군.
나한테 반한 줄 알았더니.
 
“애초에 당신이 제게 한 짓은 억지로 처녀를 빼앗고 씨를 뿌린 게 전부 아닌가요!? 대체 뭘 해야 당신한테 반할 수 있다는 겁니까?”
“기분 좋은 거 아니었나? 아주 즐기는 것 같았는데.”
“윽! 여자의……그, 기분 좋은 곳을 자극하면 어쩔 수 없는 법이죠! 마음까지 넘어간 건 아니라구요.”
““크흠!!””
 
세리아와 대기실에 있던 문관이 동시에 헛기침을 했다.
마이라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에이리히 녀석, 얼른 끝내줬으면 좋겠군.
빨리 돌아가서 멜리사와 마리아를 마구마구 안고 싶다.
 
“하드릿 자작, 들어오시지요.”
“드디어……마이라, 가자!”
 
아직까지 저항하는 마이라의 팔을 잡아당기고 알현실로 들어갔다.
 
 
“하드릿 경……알트버그에서도 얘기했으나 이번 성과는 달리 견줄 자가 없을만큼 대단하노라. 나는 그에 대해 내가 내릴 수 있는 최대의 찬사로 이를 칭찬할 것이야.”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귀공의 사군은 격전을 몇 차례나 거듭한 끝에도 경미한 손해로 전투를 마무리 지었다 들었느니라.”
 
그러고 보니 그런 건가……?
그렇다 해도 궁기병 수백 명을 잃었다.
솔직히 말해서 뼈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차이가 제법 상당하구나. [아빈튼] 자작.”
 
왕이 차가운 시선으로 내 대각선 뒤쪽에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마치 구경거리라도 되는 것마냥 귀족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귀공은 나의 전투함을 잃고서 장수와 병사들을 물 속에 수장시킨 것 말고 달리 한 것이 있었느냐?”
“……면목 없사옵니다.”
 
아무래도 이 남자가 수상군을 이끌고 있던 모양이다.
계속 이곳에 놔두고 있었다니, 뒤끝도 대단하군.
 
“다 이긴 전쟁에 먹칠을 칠한 네놈을 당장에라도 목매달고 싶은 심정이지만……승전을 교수형으로 마무리 짓는 것도 불길한 법. 하드릿과 라드할데에게 감사하라.”
“폐하의 온정, 드릴 말씀도 없사옵니다.”
“흥, 배신자라면 모를까 무능한 놈은 달리 책망할 길이 없구나. 네놈에게 기대하고 있던 나에게 주는 벌이라 생각하고 포기하렸다!”
 
투덜투덜 푸념을 늘어놓는 왕의 모습은 논나가 좋아하는 연극의 시누이 같았다.
설마 에이리히 때도 계속 이랬던 건가?
 
 
왕은 한참동안 아빈튼을 괴롭힌 후, 다시 나를 보며 칭찬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야기가 드디어 포상 이야기로 바뀌었다.
 
“지난번에 무공을 상쇄하겠다 말하긴 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트리에아 국경을 돌파하는 것까지. 마그라드의 원군을 격파하고 유레스트를 격파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한 무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야. 따라서 그대를 승작, 백작 지위를 주겠노라!”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조금 더 잘난 사람이 된 모양이다.
 
“본디 남부 국경을 그대에게 맡기고 변경백으로 올릴 심산이었으나, 문관과 대신 놈들이 시끄럽게 굴어서 원. 그대도 작위에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닐 터. 한동안 참고 있거라.”
“잠시, 작위 말고 다른 포상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만.”
 
왕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년 남자, 저 사람이 분명 케네스 볼드윈이라고 했던가?
에이리히가 항상 불평만 늘어놓던 놈이다.
확실히 외무경이라는 직책에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왕의 심복이기에 여러모로 조언을 하는 모양이다.
 
“하드릿 경만큼 뛰어난 장군을 내륙 지방에 놔두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옵니다. 지금은 그의 영지에서 더욱 남쪽에 있는 트리에아 땅을 나누어 주고 남부 소국들에 대한 대비책과 산의 민족 평정 임무를 맡기는 것이 어떠하겠사옵니까?”
“흠……그대에게 맡겨두면 두 가지 위협을 막아낼 수 있겠구나.”
 
산의 민족은 이미 평정해 두었다.
남부 소국 쪽에 관해선 전혀 아는 게 없긴 하지만 땅이 늘어나서 나쁠 건 없겠지.
땅이 늘어난 수고는 아돌프가 처리할 테니 내게는 영향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송구하오나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응? 왜 그러느냐?”
 
왕은 내가 포상에 관해 의견을 꺼낸 게 의외였던 모양이다.
지금까지는 딱히 아무런 말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포상에 관하여……두 가지 정도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사옵니다.”
“두 가지라, 욕심쟁이로고. 말해보라.”
 
왕은 껄걸 웃으면서 옥좌에 깊이 몸을 맡겼다.
 
“한 가지는 트리에아 본국에 있는 에르그 숲……그 숲을 받고 싶나이다.”
 
왕은 지명을 파악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말없이 케네스를 보았다.
케네스는 왕의 발밑에 지도를 펼쳤다.
 
“트리에아 안에선 저주받은 숲이라 유명한 곳이옵니다. 따라서 개발된 부분도 전혀 없고, 길조차 나있지 않다 들었사옵니다.”
“그러한 숲을 가져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을 터. 무언가 특별한 것이라도 있느냐?”
“요새를 우회할 때, 적의 허를 찌르기 위해 그 숲을 빠져나왔사옵니다. 제게 있어선 행운의 숲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부디 제 손에 두고 싶나이다.”
“그러한 불모의 숲을 원하는 녀석은 따로 없을 테지. 딱히 상관은 없으나 영지와 연결시키려 하면 그대에게 주어야 할 영역이 너무 거대하구나…….”
 
그렇다면 그냥 그 부분만 툭 잘라서 내주어도 상관없었다.
그곳을 이용해서 수익을 올리려는 생각 자체는 애초에 없었다.
다른 놈들이 망가트리지 않게끔 지켜야 할 필요가 있었을 뿐이다.
 
“괜찮지 않겠사옵니까? 넓다고는 해도 인구가 모여있는 중심부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영지 자체가 변경지이옵니다. 백작……조만간 변경백이 되리란 걸 고려해 보면 큰 문제는 아니리라 생각하나이다.”
“다른 어중이떠중이 놈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구나……. 자칫 잘못 나누어줬다간 또 성가신 연줄이 생길 테니.”
 
어째서인지 케네스가 은근슬쩍 나를 도와주는 중이다.
설마 내 엉덩이라도 노리고 있는 건가?
 
트리에아 점령 때 에이리히는 기존 귀족들에게 일절 소유령을 넘겨주지 않았고, 그에 대해 불만을 품고서 항복하지 않았던 영주들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불살라 죽였다.
다시 말해 트리에아 쪽 국토는 통째로 왕의 통치령이 되어 있기에 마음대로 주는 게 가능했다.
 
“좋다. 그대에겐 에르……그? 라 하였느냐. 그 숲까지 이어진 영토를 전부 내어주겠노라.”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하여, 또 하나는 무엇이냐? 트리스니아라도 원하는 것이냐?”
 
왕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다.
아직 억지를 부릴 수 있을 것 같군.
 
“이 자에 관해서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유레스트 연합군 단장 마이라 휴티어……송구하오나 하드릿 경의 지위를 빌어 이곳까지 함께 찾아왔사옵니다.”
 
생각보다 더 태도가 당당하다.
분명 허둥대다가 혀라도 깨물 줄 알았는데, 역시 여자 된 몸으로 한 군단을 통솔한만큼 배짱은 있는 편이다.
 
왕의 주변에 있던 문관들이 저도 모르게 탄식하는 게 들렸다.
 
“……하드릿 경, 애인이라도 데려온 줄 알았더니 설마 적의 장수였을 줄이야. 솔직히 말해 허를 찔렸구나.”
 
왕의 시선이 날카롭다.
어쩌면 사전에 말해뒀어야 하나 싶기도 하군.
 
“이 여자는 전장에서 항복하여 지금은 순종적인 상태이옵나이다. 이곳에 들이기 전에도 전부 조사해 두었으니 위험은 없사옵니다.”
 
여자의 비밀 주머니는 단단히 조사해 두었다.
 
“뭐 됐다……그래서 그 여자가 대체 뭘 어쨌다는 것이냐?”
 
입을 떼려던 마이라를 제지했다.
 
“이 여자가 항복한 것이 승리의 요인으로 작용했나이다. 그 이후 점령전에서도 이 여자와 그 일족이 미친 역할이 크다보니……아무쪼록 이 가문을 존속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하옵니다.”
 
사실은 이미 승부가 다 정해진 뒤에 붙잡고서 따먹은 데다가 마이라의 가족 중에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항복 교섭 땐 힘으로 굴복시켰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게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지.
 
“아니 된다. 협력적이었다 하여 옛 영지를 내어주었다간 끝이 나질 않을 것이야. 안 그래도 유레스트는 우리나라의 귀족과 혼인 관계를 맺은 자가 많노라. 너나 할 것 없이 물밀려 올 것이 뻔하구나.”
 
왕은 제법 거세게 내 부탁을 거절했다.
 
“옛 영지를 나누어 주지 않으셔도 무언가 직함을 내주어 귀족 가문으로서 남을 수 있게 해 주십사…….”
 
왕이 한 번 더 내 말을 부정하기 전에 케네스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왕에게 귓속말을 한 뒤, 내 사이에 끼어들어 능청스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괜찮지 않겠사옵니까 폐하, 남작위라도 내려주어 교역로 경비장 정도의 직책을 맡겨 두면 원만히 해결될 것이옵니다.”
“그랬다간 친척 관계에 있는 귀족놈들이 시끄럽게 굴지 않겠느냐?”
“폐하께 충성심을 내비치면 무언가 직책과 약간의 영토도 하사받을 수 있다. 이것을 보여주시면 시덥잖은 잔꾀를 부리는 놈들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옵니다.”
“영토를 받고 싶으면 그에 걸맞은 충성심을 내비치라는, 다른 자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줄 수 있다는 뜻이로고…….”
“예. 이번 유레스트 침공은 우리 쪽에서 조금 강하게 나선 것도 있었지 않사옵니까?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보단 저들에게 살길을 남겨두는 것이 더 좋을까 하옵니다.”
 
왕은 한동안 눈을 감고서 생각에 잠겼으나, 후우 하는 한숨 소리와 함께 표정을 풀었다.
 
“……알겠다. 나의 이름 아래 마이라 휴티어에게 고르도니아 왕국 남작 작위를 부여한다. 영토에 관해선 일단 전부 반납한 후, 이쪽에서 다시 어느 정도 내어주도록 하마.”
“화,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마이라는 왕에게 고개를 숙인 후 촉촉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건 오늘밤 무슨 짓을 해도 거절하지 않을 눈빛이다.
조금 억지라도 한 번 부려볼까?
 
그건 그렇고 케네스 이 사람, 정말 내 엉덩이를 노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저렇게 나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하드릿 경……이번 일은 그대가 특별한 무공을 세웠기에 내린 특별한 배려이니라. 두 번은 없다 알라.”
“마음에 새겨두겠사옵니다.”
“이보다 더 많은 포상은 다른 자들과 비교해 봤을 때 균형이 무너질 것이야. 따라서 이것이 포상의 전부이니라. 알겠느냐?”
 
아돌프의 난처한 표정이 스쳐지나갔지만 이런 상황에서 “돈도 갖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는 건 솔직히 불가능하다.
나는 그저 고개를 깊숙이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대의 사군도 충분히 규모가 커진만큼 더 이상 동방군을 놔둘 필요도 없을 터. 필요할 경우엔 군부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지휘권을 주겠노라.”
 
이것도 이견 없다.
솔직히 왕이 준 동방군은 처치 곤란 상태였던 것이다.
산의 민족의 위협도 없겠다 그렇게 필요하지도 않다.
 
그렇게 알현은 종료, 대기실에서 세리아와 합류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를 쫓아왔다.
내 엉덩이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케네스다.
 
“하드릿 백작, 꼭 좀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만…….”
 
왔다. 이렇게 빨리 행동으로 옮길 줄이야, 역시 무공도 없이 대신직을 맡은 인물이로군.
하지만 그리 쉽게 엉덩이를 내어줄 수는 없지.
 
“볼드윈 백작은 다른 귀족들의 알현 자리에 동석하셔야 하시는 거 아닙니까?”
“무얼, 라드할데 백작, 하드릿 백작 외엔 겉치레 같은 느낌이니 다른 문관들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케네스는 무슨 짓을 해서든 내 엉덩이를 탐낼 생각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 녀석에겐 빚도 졌겠다, 그냥 내쫓아버릴 순 없다.
 
“그 얘기라는 건 둘이서만 해야 합니까?”
“가능하면 그게 바람직합니다만…….”
 
어쩔 수 없지. 둘이서만 얘기하더라도 엉덩이는 절대 내어주지 않으리.
 
“세리아, 마이라. 밖에서 레오폴트 쪽에서 기다려라.”
 
케네스가 없으면 농밀한 키스와 포옹도 함께 해줬을 텐데 아쉽군.
세리아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쫓아낸 케네스를 가증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내 명령을 듣고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났다.
 
케네스의 안내를 받으며 궁전 안에 있는 방 중 하나로 들어가자마자 놈은 방의 커튼을 쳤고, 그 안에 있던 의자에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동시에 나도 온 힘을 다해 항문을 틀어막았다.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이번 일에 관해 꼭 좀 드리고 싶었던 얘기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엉덩이 얘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이번 일……말씀이십니까? 그건 그렇고 방금 전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은 고맙다는 말을 해둬야겠군.
 
“무얼요, 하드릿 경께서 새로운 영지를 손에 넣는 건 바람직한 일입니다. 유레스트 귀족들에 관해서도 조금 구제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게다가……하고 케네스는 목소리를 낮췄다.
음모를 꾸미는 인간은 레오폴트 한 명이면 충분한데.
 
“저는……현 상태에 조금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반모라도 꾀하려는 건가?
 
“현재, 고르도니아의 주력은 누가 뭐라 한들 중앙군입니다. 이번 전투 때 적지 않은 희생이 발생했다고는 해도 제후군이 약체화한 지금 그 병력 숫자는 압도적이지요.”
“그것은 뭐……폐하의 뜻이기도 하셨으니까요.”
“제후군의 힘을 줄이고 폐하의 힘을 강화하는 것. 이에 관해선 아무런 이견도 없습니다. ……제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그 강력한 군대를 한 사람의 인물이 전부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
 
에이리히를 말하는 건가.
 
“이것은 망상, 저의 어리석은 악몽일 뿐입니다만……만약 라드할데 백작이 왕국에 반기를 들었을 때,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없지.
중앙군은 지금조차 5만이 넘는 병력을 지닌 군단이다.
제후군은 왕의 방침으로 인해 약체화, 다른 군대는 도시 수비를 맡고 있는 경비군 정도밖에 없다.
애초에 상대가 안 된다.
 
“하지만 중앙군 안에서도 당신에 대한 경외심은 상당히 높은 편입니디. 심지어 강력한 사군도 갖고 계시지요.”
 
쉽게 말하면 그런 건가.
 
“라드할데 백작은 이번 포상으로 어느 정도 금화를 받긴 했습니다만 작위에 변화는 없습니다. 하드릿 경과 같은 계급이라는 뜻이지요.”
 
케네스는 나를 에이리히의 대항책으로 삼고 싶은 것이다.
 
“귀공은 라드할데 백작이 거둬들인 신귀족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요. 애당초 광활한 영지를 갖고 계신 상황이니까요.”
“죄송하지만 에이리히……라드할데 경과는 옛날부터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적대할 이유가 없습니다만.”
“하하하, 물론이고 말고요. 현재 고르도니아의 창이라고도 볼 수 있는 두 분이 적대하다니 그야말로 악몽이지요! 하나 귀공에겐 라드할데 백작을 뛰어넘을만한 기량이 있습니다. 만약……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저는 언제든지 당신의 아군이라는 걸 알아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케네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한층 더 줄이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폐하께선 결코 기분 나빠하신 게 아닙니다. 영토와 작위로 포상이 끝난 것을 다행이라 여기고 계시지요.”
“무슨 뜻입니까?”
“이번 전쟁, 특히 강 안으로 사라진 전투선은 상당한 지출이었습니다. 아무리 고르도니아가 강국이라 하여도 돈이 무한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양의 금화가 빠져나간만큼, 앞으로 징수관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수도 있겠군요.”
 
그 대화를 끝으로 케네스와 나는 방을 빠져나왔다.
 
케네스와 에이리히가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상당히 질척질척하군.
하지만 그 대립 덕분에 나는 케네스의 조력을 받을 수 있었고, 왕이 돈 때문에 난처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낼 수 있었다. 산의 민족 영역에서 개발 중인 철광산, 조금 더 신경써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겠어.
 
 
이번에야말로 궁전 바깥으로 나오니 세리아와 이리지나, 루나와 마이라까지 잔뜩 모여 있었다.
피피는 내 어깨 위에 올라탔다.
 
“좋아, 일단 피로를 씻어낼 시간이 필요하겠군. 우리도 집으로 돌아가자.”
 
왕도 저택에서 한동안 숨 좀 붙이고 나서 영지로 돌아갈 생각이다.
병사들한테도 개선식 이후 휴식은 귀중한 시간이다.
어쨌거나 승리에 들떠있는 민중, 특히 젊은 아가씨는 전쟁 영웅인 병사들한테도 쉽사리 가랑이를 벌리게 된다.
잘생긴 사람이라면 쉽사리 받아들여질 테고 조금 못생겼다 해도 기회는 있다.
나도 오랜만에 멜리사와 마리아를 안아주고 싶다.
 
“좋아, 돌아가서 마구 박을 시간이다!!”
 
기뻐하는 이리지나와 루나, 이미 가랑이를 적시고서 내 손을 잡아끄는 레아, 살짝 부끄러워하는 세리아, 약간이나마 저항하는 마이라, 내 어깨 위에서 몸을 흔드는 피피……너, 또 안 입었구나.
 
자, 난교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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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1살 겨울(세는 나이)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백작  고르도니아 동부 영주 산의 왕
휘하군: 동방독립군 2000 사군 3000 궁기병 6000
재산: 금화 -200닢(노역비 800)(저택 유지비 200)(극장 시설(논나) 500)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거대창
가족: 논나(정실) 카라(측실) 멜(측실) 리타(메이드)  카트린느(음란) 세바스찬(집사) 루비(루나 종자) 요구리(???) 케이시(요괴) 마이라(미정) 레아(자칭 육노예)
 
아이: 스우 미우 예카테리나(딸) 안토니오(아들) 쿠우 루우 로즈(의붓딸)
왕도: 멜리사 마리아 미티 알마 크롤
부하: 세리아(부관)  이리지나(지휘관) 피피(종자) 레오폴트(참모)  슈바르츠(말)  아돌프(내정관) 클레어(전용 상인)
 
경험 인수: 87명 
자식: 9명
 
 
축 라펜 극장 완성
 
변경 동부 지역의 유일한 극장은 연극을 보는 게 취미인 백작 부인의 주도 아래 완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