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북부 동란⑪ 물의 벽』
아침해가 떠오른다.
가랑이가 아주 가벼워졌군.
어젯밤 전투 땐 방해가 될만큼 불알이 무거웠는데 지금은 모든 걸 다 토해낸 느낌이다.
“에이길 님, 실례하겠습니다! 포로 심문은…….”
세리아는 천막에 들어오자마자 두 번 깊게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른이 됐구나.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참상은 끔찍하군요.”
“행복해 보이지 않으냐?”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흐히이……박아줘……커다래……두꺼워……임신……씨뿌리기…….”
마이라는 침대 위에 엎드린 채 허리를 위로 치켜올리고 있었다.
의식은 없을 텐데 엉덩이는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에이길 님은 비상식적으로 절륜하신 분이니 조금 힘조절을 하셔야 합니다. 물웅덩이가 생길만큼 싸실 필요는…….”
흠, 질 안에 사정했을 때 반응이 좋다보니 계속해서 그 안에 싸버렸단 말이지.
“이 사람, 약은 쓴 겁니까?”
“아니, 안 쓴 것 같던데.”
세리아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또 아기가 늘어나겠군요.”
그렇게 간단히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생기면 책임지고 돌봐줘야지.
어차피 마이라는 이미 내 여자니까 말이야.
살랑살랑 흔들리는 엉덩이를 쓰다듬어 주니 내게 대답하듯이 더러운 소리와 함께 씨앗이 흘러넘쳤다.
그 후, 세리아와 레아를 안아주고 나서 행군을 재개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지점, 발레라를 가로막는 자는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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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유레스트 연합 대표 도시 발레라 평의회
“그럼 지금부터 정전 협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정전?”
내가 발언자를 노려보자 남자가 등을 둥글게 말고서 의자에 앉았다.
“그대들은 대등한 교섭을 치를 생각인 것인가?”
헬겐 병단장도 어이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어, 어디까지나 이것은 평화를 위한 교섭이다 보니…….”
발레라까지 진군한 후, 공성전 준비를 시작하려 했으나 곧바로 문이 열리더니 사자가 찾아왔다.
평의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길래 항복이라 판단하고 찾아온 거였는데.
아직까지도 「정전」 교섭 운운하다니 배짱이 있는 건지, 현재 상황도 판단하지 못하는 멍청이인 건지.
마이라의 이야기를 들어보건대 후자겠군.
“우리는 만장일치로 마그라드와 단교할 것을 결정했소. 앞으로는 고르도니아와 동맹을 맺고 함께 싸울 생각이고. 마그라드 쪽에서 같이 싸우자는 요청이 나왔으나, 그것들은 전부…….”
이런 멍청한 논리를 끝까지 들어줄 필요는 없다.
“착각하지 말아줬으면 하는군. 우리는 당신들이 주는 모든 것을 직접 손에 넣을 수 있다. 반대로 우리 쪽이 원하는 걸 전부 내어주는 게 정전 조건이다.”
“그, 그럼 우리에겐 무엇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까?”
나는 무표정 상태로 대답했다.
“당신들의 생명과 안전, 그것말고 보장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들이 저항하겠다면야 그것도 상관없다.
연합군이 패퇴한 지금, 발레라 바깥에 흩어져 있는 각 영주들에게 남아있는 병력은 한정되어 있다.
놈들의 도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태우면 그만이다.
“횡포요!!” “애초에 그쪽이 먼저 조약을 파기해 놓고서 이 무슨 오만한 태도란 말이오!”
“정확히는 당신들과 가족들은 고르도니아로 이주시키고 그곳에서 먹는 데엔 궁하지 않게끔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습니다.”
레오폴트가 덧붙여 말했다.
그러고 보니 왕이 보낸 사자가 그런 말을 했었나?
영주들이 한동안 소동을 피우다, 그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듣기로 하드릿 경은 고르도니아 소속 자작이라 들었는데……괜찮겠소? 나를 포함하여 이곳에는 고르도니아와 인연이 있는 자들도 많소. 당장 대신직을 맡고 있는 아무개 후작은 우리를 도와줄지도 모르는 일이오.”
아무개라 해봤자 나는 대신의 이름은 그 누구 하나 기억하고 있는 게 없다.
애초에 그 아무개 대신이 여기로 와서 도와준단 말인가?
이래서 교섭은 영 성미에 안 맞는다니까.
심지어 교섭 때 혈연이니 인맥이니 남에게 의존하는 놈들이 있으면 더더욱 최악이다.
“이 교섭은 폐하로부터…….”
반론을 하던 헬겐한테 더 이상 말할 필요 없다고 손짓했다.
호위대 인원들에게 지시를 내려 굳게 닫혀 있던 회의장의 창문을 전부 열어젖혔다.
“무, 무슨…….” “이것은…….”
창문이 열린 게 신호라도 되는 것마냥, 규칙적인 소리가 울려퍼지며 회장을 뒤흔들었다.
이것은 회의장 주변을 몇 겹이나 둘러싼 채 행진하는 병사들의 발소리와 말발굽 소리다.
목소리마저 집어삼키는 군화 소리, 내가 한 마디라도 했다간 30분도 안 돼서 발레라는 불길 속에 사라질 게 뻔하다.
나는 원탁에 앉아있는 대표 영주자들을 둘러보면서 가장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책상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휘었군, 미안하다.
“무조건 항복, 받아들이겠나 말겠나?”
더 이상 입을 여는 자는 그 누구도 없었다.
이리하여 유레스트 연합을 무조건 항복이라는 형태로 합병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들의 무장 해제 및 점령 통치는 예정대로 고르도니아에서 찾아온 정무관과 제3병단한테 맡기고서 나와 사병단은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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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후
“남쪽으로 갔다가 북쪽으로 갔다가, 참 바쁘구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 작전은 폐하께서 직접 지휘하신다고 하니까요.”
세리아가 말한 것처럼,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도시 [알트버그]는 고르도니아 본국에 있는 항구 도시로 연방과의 무역 거점으로 유명한 곳이다.
왕은 왕도를 나와 근위대까지 데리고서 이 도시에 이미 들어와 있다고 한다.
“공격 목표는 말할 것도 없이 마그라드일 겁니다.”
알트버그의 반대편 기슭에는 당연히 마그라드 공국이 있다.
그 사이에는 강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이 항구 도시로 병사를 모으는 이유는 아마 상륙 작전을 치르기 위해서일 게 분명하다.
“그런데 마그라드에는 수군이 있다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었습니까?”
요 몇십년간엔 작은 분쟁을 제외하면 타국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전투를 벌인 국가는 아크랜드 말고 달리 없었다.
그러한 위협 요소가 강 너머에 있었던 마그라드는 상당한 규모의 수군을 보유 중이다.
한편 고르도니아는 무력으로 대항하길 포기했기 때문에 해적 퇴치는커녕 제대로 된 수군도 없었다.
강을 이용한 무역 자체는 활발했다보니 배 자체는 여러 대가 있었지만 아무 무장도 없는 민간선에 병사를 태워서 돌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직접 가봐야 알겠다만……왕도 그렇게 멍청하진 않을 거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만.”
“그렇지요……그런데 앞에 태워두신 레아 말씀입니다만.”
“왜 그러지?”
나는 지금 세리아와 나란히 말 위에 앉아 대화를 나누면서 그 앞에는 레아를 태워두고 있었다.
“레아, 살짝 허리가 떠 있는 것 같은데요?”
“뭐, 그렇지.”
“하반신이 보이지 않도록 일부러 망토를 두르고 계신 거죠?”
“예쁘잖아?”
“말이 흔들리는 것 치고는 더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가?”
“레아는 지금 얼굴도 빨갛고 스스로 입도 막고 있는데요.”
“그럴지도 모르지.”
“……넣으셨군요?”
“너무 큰 소리로 말하면 안 된다?”
“흐그으으윽!!”
레아가 자기 손가락을 깨물며 몸을 뒤로 젖혔다.
사정하는 소리는 행군하는 소리에 섞여 주변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다음엔 제가 그쪽에 올라타겠습니다.”
“그래, 올라와.”
“피피도!”
행군은 즐겁게 계속됐다.
알트버그에 도착한 우리를 맞이한 건 바로 왕 본인이었다.
“하드릿 경, 기다리다 죽는 줄 알았느니라! 이번 활약은 그 누구도 견줄 자가 없느니! 최고의 전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병사를 통솔하는 데에 있었어도 이 정도일 줄이야, 나의 눈을 칭찬하면 좋을는지 아닐는지 모르겠구나.”
왕은 영주관에 임시로 설치된 옥좌에서 달려내려와 내 손을 붙잡았다.
“아직 적이 남아있어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그 누구보다 막대한 포상을 내어줄 것은 확약하겠노라.”
그건 고맙군.
전쟁 비용도 크게 날아갔으니 지금쯤 아돌프는 팔짝 뛰고 있을 게 뻔하다.
“마그라드 상륙 작전……그것이 마지막 과제이옵니까?”
왕은 내 손을 놓고서 강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수트레도 일단 적이긴 하나 그 나라는 용병이 주력, 우리나라와 싸운다는 걸 아는 이상 용병도 모이질 않을 것이야.”
용병들도 멍청이는 아니다.
패색이 짙은 진영에 참가할만큼 판단력이 흐려진 놈들은 손에 꼽을 수준이다.
“수트레 정부 쪽에서도 중립으로 남고 싶다는 서신이 왔노라. 사실상 적은 마그라드 하나뿐이다만……그대가 타격을 준 덕분에 병력상으로는 우리가 우세, 상륙만 성공하면 이겼다 봐도 될 것이야!”
이미 항구에는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트리에아를 모두 평정하고 돌아온 중앙군 병사들이 차례차례 승선 중이다.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적은 강력한 수군을 가졌다 들었사옵니다. 우리 쪽은 그런 것이 없지 않사옵니까?”
왕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하, 나는 장군으로서 그대에게 미치진 못할 테지만 그렇게 멍청하진 않노라. 마그라드 수군 놈들 따위 한주먹 거리이니라!”
왕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에는 30척의 대형선이 선박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민간선과는 전혀 다른 가느다란 형태에 옆부분에는 엄청나게 많은 깃발이 튀어나와 있었다.
닻도 달려 있는 걸로 보아 바람의 힘을 빌려 항해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무엇보다 선박의 갑판 위에는 투석기와 거대 석궁 같은 병기들이 놓여 있었다.
“연방에서 구입한 전투함이니라! 이것들이 도착한 이상, 마그라드 놈들의 수군 따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
“과연, 이것은…….”
나는 수군에 관해선 전혀 아는 게 없었지만 딱 보기에도 강력해 보였다.
이 배가 있으면 마그라드의 수군을 해치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내일에라도 이 배를 선두에 내세우고 강을 건널 것이야. 경의 병사도 지쳐있긴 할 테지만 마그라드에서도 가장 선두에 서서 그대의 무용을 한층 더 뽐내보는 건 어찌 생각하는가?”
이 상황에서 왕의 요청을 거절할 이유도 없다.
곧바로 승낙하려고 했으나, 그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기다려 주시옵소서, 폐하!”
끼어든 것은 제후군으로 참가해 있던 전통 귀족들이었다.
“하드릿 자작의 군대는 이미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였사옵니다. 그에 비해 저희 군대는 요새전에 참가하였을 뿐……저희와 병사들 모두 활약할 기회를 찾아 불타오르고 있나이다. 반드시 이 투지를 불살라 막대한 전과를 올리겠사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은 트리에아가 버리고 달아난 옛 아크랜드 영지를 점령하고 나서부턴 요새를 공격하는 것 말고는 한 게 없다.
요새도 정면 돌파로 함락시켰다 보기엔 힘들다 보니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는 모양이군.
“……흠, 그대들에게도 선봉이 상륙하고 나면 강을 건너도록 시킬 예정이었다만…….”
아무리 고르도니아에 수많은 운송선이 있다고 해도 5만, 6만을 동시에 강 건너편으로 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중앙군 병단이 이미 승선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남은 칸에 태울 수 있는 인원은 수천명 정도, 내게 그 자리를 내어준다 하면 궁기병이라도 태워보낼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기 싸움이라도 벌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사이,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강가 근처 마을에서 얻은 조개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긴 했었지.
신경 안 쓰고 먹었었는데 조금 배탈이 난 것 같기도 하다.
내일 출격이라 하면 지금부터 해야 할 준비도 있을 테니까 설사하는 상태로 출정하긴 힘들겠군.
“폐하, 우리 군대는 충분히 싸웠다고 할 수 있겠사옵니다. 선봉은 다른 이에게 맡겨주시옵소서.”
굳이 첫 번째로 적진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애초에 병사는 죽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선두에 서고 싶어하는 건 신분이 높은 자들뿐이다.
귀족들의 표정에 희색이 감돌고, 왕은 살짝 시시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한가……그렇다면 내가 할 말은 없겠구나. 그럼 선봉을 맡겨둠세, 밴드 백작, 올드리엔…….”
어쩔 수 없지.
세리아마냥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싸지를 순 없으니까 말이야.
다음날
후속 부대 자리에서 천천히 준비를 시작하던 우리들 앞에서 수백척의 배가 일제히 반대편 기슭을 향해 나아갔다.
강의 흐름을 계산해서 살짝 비스듬하게 나아가고 있다보니 거리는 좀 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2시간 안에 상륙할 것이다.
우리는 도시의 높은 지형 쪽에 진을 치고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
“수상전을 보는 건 처음인데. 기대되는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다!! 아주 박력 넘칠 것 같구나!!”
세리아와 이리지나도 눈을 빛내는 중이다.
참고로 피피와 루나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강 그 자체에 압도돼서 지금도 넋이 나가있었다.
이곳에 마이라를 데려올 수는 없다보니 방을 빌린 민가 쪽에 두고 왔다.
레아는 전쟁에 관심이 없는 건지 내게 애교만 부릴 뿐, 강은 보고 있지 않았다.
“에이길 님! 시작합니다!!”
“드디어 시작이군.”
목표로 삼았던 반대편 기슭의 항구 도시에서 마그라드 측의 전투선이 튀어나왔다.
거리가 있다보니 잘 보이진 않지만 우리 쪽 전투선보다 상당히 크기는 작아도 숫자는 많아 보였다.
“닻이 4개……아군은 8개네요.”
“그 위에 병사가 20명씩 올라타 있다!”
아군선에서 차례차례 불덩이가 날아갔다.
불에 달군 돌을 투석기로 날리고 있는 모양이다.
대부분이 강 안쪽으로 떨어지긴 했으나, 그 중 하나가 배 한 척에 명중하여 적을 침몰시켰다.
거리가 좁혀지면서 거대 석궁도 발사하기 시작했는지 불타오르는 적 함선의 숫자가 늘어갔다.
적도 반격을 하고 있는 듯 보이긴 하지만 별로 효과는 없없었다.
“이건……끝났군요.”
“해치웠나!?’
아무리 봐도 일방적인 전개에 세리아와 이리지나 모두 승리를 확신한 듯했다.
하지만 상황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적 함선이 강의 물살을 거스르듯이 아군선을 우회하고는 뒤쪽에 있는 운송선을 노리는 진로를 차지한 것이다.
“운송선이라도 처리해 두려는 심산일 걸까요?”
글쎄, 나는 아는 게 없어서.
수군에 관해서는 이겼다, 졌다 하고 떠들어 대며 관전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적 함선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아군 전투선이 방향키를 돌리자마자 적이 일제히 진로를 변경, 서로가 마주보는 형태로 단숨에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아군은 곧장 투석기과 거대 석궁으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지만 하천 위에서 내려오는 적들은 물살을 타고 내려와 속도가 빨랐고, 반대로 아군쪽은 물살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에 속도가 느렸다.
서로가 스쳐지나가는 순간, 적 함선이 갑자기 불타는 무언가―아마도 기름통 같은―를 아군 쪽에 던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10척에 가까운 아군의 전투선이 불타올랐다.
“당한 건가!?”
“하지만 놈들이 빠져나가기만 하면 그 다음부턴 우리 쪽이 하천 위쪽입니다. 상황이 바뀌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세리아의 말과는 달리 적은 완전히 아군을 빠져나가기 전에 진로를 바꾸어 아군과 달라붙은 상태로 주행하기 시작했다.
잘 보니 아군은 물살을 맞고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데에 비해 적은 아무 문제없이 민첩하게 움직이는 중이다.
“크기가 문제군요.”
레오폴트, 있었던 거냐!?
“아군선은 크기가 큰만큼 물살의 영향을 받기 쉽고 방향을 돌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연방의 전투선은 강의 하류……커다란 하천과 느릿느릿한 물살 속에서 싸우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 강은 폭이 좁고 물살이 빠른 게 문제군요.”
적들과 아군이 딱 달라붙은 상태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중이다.
피피가 말하길 서로 배에 올라타 검까지 휘두르고 있다는 모양이다.
혼란이 계속되던 와중, 일부 적이 전장을 빙 돌아 강가 상류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위에서 물살을 타면서 노까지 저어 한층 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들이박을 셈인가!?”
“*충각 돌격입니다!!”
(*충각: 선박의 선수와 선미에 장착하여 적 선박과 충돌할 시 상대 선박을 부수는 데 쓰인 무기)
밀집 전투 속에서 원하는대로 방향을 돌리지 못하는 아군선의 측면을 향해 적들이 차례차례 돌격을 개시했다.
가속이 붙은 돌격 공격에 박살이 난 전투선은 하나 둘씩 기울어 강 안으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아직 강에 떠 있는 배도 불이 붙어 제대로 된 전투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여기까지로군.”
“예, 패배했습니다. 어서 병사들이 올라탄 배를 후퇴시켜야 하는 상황입나다만……이미 늦은 것 같군요.”
전투선을 무력화시킨 적 선단이 뒤쪽에서 전투의 행방을 지켜보고 있던 운송선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운송선은 허둥지둥 도망치려고 움직이긴 했지만, 몇백 척이 한 군데 뭉쳐있는 묵직한 그 선단은 재빠르게 움직이지 못한다.
병사들은 화공이 날아올 것이란 걸 예측하고서 통 안에 물을 퍼나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 진영의 배는 전면 돌격을 택하지 않았다.
그저 배 몇 척만이 아군 운송선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저건 뭐지? 왜 한꺼번에 안 가는 거냐.”
“……저도 수상전은 전문 밖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금방 알게 되었다.
노를 있는 힘껏 휘저으면서 다가오고 있던 배가 갑자기 불길에 휩싸였다.
자기네들이 직접 기름을 들이부어 불을 지른 게 분명했다.
승무원들은 강가로 뛰어들고, 불구덩이가 된 무인선이 아군 쪽 선단으로 돌진해 온 것이다.
기름병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을 테지만 불타는 배 그 자체가 들이닥치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주변에 있던 배들은 순식간에 불타올랐고, 그 불길은 근처 배한테까지 옮겨붙기 시작했다.
도망칠 장소가 없는 강 위에서 불길에 휩싸인 선단, 그 안에서 병사들이 하나둘씩 뛰어내리기 시작한다.
개중에는 불길에 쫓겨 갑옷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뛰어든 사람도 있었고, 당연히 두 번 다시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적은 선단이 공황 상태에 빠진 걸 확인하고서 불에 닿지 않을 거리까지 접근한 뒤 불화살을 날렸다.
그것 자체가 불타는 횃불이 된 운송 선단은 밤이 된 시각에도 계속해서 불타올랐고, 불길하게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왕의 자신감이었던 대형 전투선 30척은 고작 5척만을 남기고서 강 속으로 사라졌고, 그 뒤를 따른 2만명의 병사들 중 살아서 땅을 밟은 자는 고작 2천 정도에 불과했다.
강을 넘어갈 수단을 잃은 고르도니아는 마그라드에 대한 공격 수단을 잃게 되었고, 중앙 평원 북부 전역을 지배하겠다던 왕의 야심은 마지노 요새보다도 더욱 단단한 물의 벽에 가로막혔다.
전체적 양상으로 보면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 대전쟁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찝찝한 결과를 남기고서 마무리되었다.
“그나저나 위험했군. 만약 우리가 먼저 출격했더라면 지금쯤 죽었겠어.”
나 대신 선두를 나선 귀족들은 그 누구 하나 돌아오지 못했다.
내 설사에 고마워해줬으면 좋겠군.
“설사……말이군요……으으으으…….”
세리아는 그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으, 응! 주인님이 바란다면……나, 할 수 있어! 사랑하는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더럽혀지는 것도 괜찮아!”
레아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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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길 하드릿 21살 가을 전시 상황(종료)
예하 부대 9400
보병 2000 기병 1200 궁병 700 공병 200 궁기병 5300
군대 부하: 레오폴트(참모 겸 부총사령관) 세리아(부관, 호위대장) 이리지나(지휘관)
루나(궁기병 지휘관) 피피(마스코트) 레아(밤의 종자)
마이라(성교 포로)
현재 지점: -------
전과: 트리에아 동방 수비대 괴멸(항복), 로레일 탈취, 마그라드 군 격파, 트리에아 근위군 섬멸
마지노 요새 함락(공동), 유레스트 연합군 격파, 유레스트 무조건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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