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마굴』
마물한테 습격받은 마을에 도착한 다음날, 습격해 오는 고블린 놈들의 둥지가 있는 곳으로 파악되는 남쪽 숲으로 향했다.
“정말로 가깝군요. 이래선 아무리 놈들을 퇴치해도 아무 소용이 없겠습니다.”
세리아가 말한대로 마을과 숲 사이의 거리는 걸어서 가도 아주 잠깐, 말을 타고 갔다간 밥을 먹을 시간도 없을 수준이다.
고블린이 서식하기 전엔 나무를 잘라 목재를 구하거나 행상인한테 장작으로 팔아넘기는 둥 마을 입장에서 중요한 장소였다고 한다.
“이렇게 코앞에 둥지가 있는데 그렇게 숫자가 불어날 때까지 눈치를 못 챘다고?”
“갑자기 확 늘어난 걸까요……?”
정찰병으로 보이는 고블린이 가끔씩 풀밭에서 고개를 내밀고는 허둥지둥 도망치려 했으나 피피가 쏜 화살에 맞아죽고 말았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늑대와 사슴을 사냥해 왔던 피피 입장에서 게다리로 꼴사납게 달려대는 고블린쯤이야 별것도 아니다.
“세 마리째다!”
“훌륭해, 돌아가면 쏴죽인 숫자만큼 쓰다듬어 주지.”
피피의 활약 덕분에 놈들의 집단이 튀어나오기 전에 숲에 도착하는 데에 성공했다.
“에이길 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울창한 숲도 아니니 말을 타고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습니다만…….”
평원이랑 다르게 위아래 굴곡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장소인 이상, 말을 타고 있는 상황에선 대응력이 뒤떨어진다.
아무리 나무가 적은 숲이라고는 해도 군데군데 나무가 있기 때문에 전력질주도 쉽지 않아보인다.
“아니, 이대로 가자. 상대는 고블린이니까 말이야. 말을 타고 있으면 그것만 해도 유리해.”
고블린들의 키는 1m 정도다.
이 정도라면 나무 위에서 날아오는 공격 쪽만 조심하면 어지간해선 병사들한테는 피해를 주지 못한다.
말이 다친다 해도 보병전은 가능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전원, 말을 탄 채로 숲으로 진입해라! 종대로 빠르게!”
고작 50명이라고는 해도 말발굽이 울려퍼지는 소리는 상당하다.
감각이 그렇게 날카롭지 않은 고블린이라 한들 이 소리를 듣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당장에라도 대군이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딱히 변화는 없다.
“숲 안엔 온통 고블린들이 잔뜩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도 않군.”
방금 전부터 몇 마리가 우리를 발견하고서 허둥지둥 도망치고 있긴 하지만 촌장이 말한 것처럼 몇백 마리가 있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네, 확실히 조용하군요.”
“이상하다. 새도 짐승도 없다……이곳은 마치 죽은 땅처럼 보인다.”
피피가 불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슈바르츠가 다른 말보다 큰 탓에 내 얼굴에 뚜둑 하고 나뭇가지가 닿았고, 그 소리에 당황한 세리아가 검을 뽑아들었다.
그녀도 진정이 안 되는 모양이다.
“아프군……. 슈바르츠, 좀 더 몸을 낮춰서 걸어라.”
슈바르츠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이 푸르르 하고 짖었다.
나 원, 이 녀석도 나랑 알고 지낸지 상당히 오래 됐으니까 슬슬 조금 신경 써줘도 될 텐데 말이야.
이번 봄에 저택에 있던 짐마차 암말을 잉태시킨 거, 너 아니냐?
요즘에 이상하게 달라붙어 있다 싶더니만 참 빠르다니까.
“키익!!”
갑자기 더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나무 위에서 검은 덩어리가 떨어져내렸다.
잘 보니 단순히 대나무를 잘라서 만든 창을 손에 쥔 고블린이었다.
“소리를 내주니까 참 편하단 말이지.”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그 녀석을 공중에서 꼬챙이로 만들어 버린 뒤, 뒤쪽으로 홱 하고 던져버렸다.
“끼이이익――!”
마치 그게 신호라도 되는 것마냥 나무 위에서 고블린들이 순식간에 떨어져내리더니 사방에서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대열을 유지하라! 속도는 빠른 걸음, 전방 10인대는 앞쪽, 나머지는 교차로 좌우 쪽 전황에 대처해라!”
숲에서 기습해 오는 것쯤이야 충분히 예상 범주 내의 사태이기 때문에 허둥댈 필요는 없다.
제자리에 멈춰서면 포위당해서 불리해지지만 말을 탄 채 계속해서 이동하면 고블린의 속도로 포위망을 짜는 건 불가능하다.
부대의 선두는 앞을 막아서는 개체를 짓밟으면서 이동하고 대열의 중간에 있는 병사는 접근해 오는 놈들을 차례차례 찔러죽이고 있어다.
“대충 봐서 100하고 조금 정도 되는 건가? 전혀 부족한데.”
“네, 이 녀석들은 우리의 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튀어나온 놈들로 보입니다. 대부분은 둥지에 있을 겁니다.”
세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검을 휘두르고는 고블린의 머리를 쪼개고 배를 갈랐다.
피피도 코앞에서 재빠르게 화살을 쏘았다.
겉모습은 아리따운 미소녀지만 전장에 익숙한 인물이라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영차.”
고블린의 머리에 창을 박아넣고 들어올린다.
뒤이어 나타난 또 다른 놈 하나도 마찬가지로 꼬챙이로 만들어서 처치.
마지막으로 나타난 살짝 몸집이 큰 방패병 고블린은 방패째로 뚫어버려 사이 좋게 세 놈이 한꺼번에 매달린 꼬치가 완성되었다.
“족장님, 이렇게 숫자가 많은 걸 보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홉고블린도 있다…….”
“그런 대단한 개체가 있다고?”
피피는 도중에 말을 멈추었고, 세리아가 뒤이어 말했다.
“아마, 창 제일 앞부분에 꽂혀있는 게 그것으로 보입니다만…….”
“이 녀석이었군? 다른 놈보다 크기도 크고 방어구를 갖고 있는 게 좀 이상하다 싶긴 했었는데.”
방패를 손에 쥔 채 숨이 끊어져 있는 놈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몸집이었다.
창을 휘둘러 세 마리 모두 내던져버렸다.
기껏해야 고블린이라는 거로군.
아군 측 피해는 거의 없고 고블린들의 시체는 산처럼 쌓이기 시작한다.
평소에 습격하고 있는 사냥꾼이나 마을 사람하고는 무언가 다르단 걸 느낀 건지, 살아남은 개체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좋아, 놈들을 쫓아가라. 둥지로 도망치고 있다.”
“따라잡지 않게끔 속도를 줄여라. 도망치게 놔 둬라!”
전화위복이라는 게 바로 이거로군.
습격당한 덕분에 오히려 숲 안을 찾아다녀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편하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어깨를 축 늘어트린 내 앞에 튀어나온 것은 깊이가 꽤 돼 보이는 동굴이다.
두 눈으로 똑똑히 고블린들이 이 안쪽으로 도망치는 것도 확인했다.
“이 숲에선 멀쩡한 둥지를 짓기엔 너무 개발이 많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군요…….”
동굴 안에선 당연히 말도 탈 수 없고, 창을 다루기도 힘들어진다.
심지어 고블린이 우글대고 있을 걸 생각해 보면 무조건 냄새 날 테고 더러울 것이다.
“하아……전원, 말에서 내려라. 걸어서 간다.”
하지만 둥지를 방치하고서 돌아왔다간 아무런 의미도 없다.
산더미 같은 양의 기름이 있다면야 안으로 흘려보내고 불이라도 붙여줄 텐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상 안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선두는 횃불을 들어라. 창은 다루기 힘들 거다. 놈들이 달라붙으면 당장 검도 뽑아둘 수 있게끔 준비하도록!”
세리아의 지시 아래 병사들이 차례차례 동굴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동굴 안에서 숫자가 늘어나서 눈치를 못 챘던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보아하니 억지로 파서 만든 동굴처럼 보이진 않으니, 운 좋게 천연 동굴을 발견하고 둥지를 튼 것 같습니다.”
참 성가신 곳에 둥지를 트는구만.
덧붙여 말하자면 들어가자마자 바로 옆에서 고블린 하나가 튀어나와 반사적으로 때려 죽였더니 이상한 즙이 튀었다.
고블린은 불결한 놈인 데다가 체액도 냄새가 고약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레오폴트한테 맡겨둘 걸 그랬군.
동굴은 크기가 크긴 했지만 구조가 단순해서 길을 잃을만한 곳은 아니었다.
입구부터 계속 이어지는 좁은 통로, 사람이 옆으로 섰다간 지나갈 수 없을만큼 비좁은 통로를 내려와 가보니 지하에서 등장한 원형 공간. 그 빈 공간 옆에 마치 방이라도 있는 것마냥 작은 구멍이 나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빈 공간 안에는 우리가 기다리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대충 봐서……500, 나무가 없는 곳이라 다행이군요.”
세리아와 병사 모두 놈들의 숫자를 보고 살짝 압도되어 있었다.
“끼끼―――!!” “키이이이이이익!!”
더러운 목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퍼지는 게 굉장히 불쾌했다.
“족장님……이건 너무……숫자가 많다…….”
피피가 활시위를 겨누면서도 내 옆에 달라붙었다.
에이, 이 정도가 딱 적당하지.
열심히 찾아내서 가봤더니 막상 기다리고 있던 게 100마리, 한 명씩 두 마리를 죽여버리면 끝나는 상황이어서야 너무 심심하잖아.
“피피, 뒤로 물러나서 활로 원호해라. 세리아는 피피를 지켜주고.”
“하지만, 그랬다간!”
창을 있는 힘껏 위로 쳐들었다.
천장 높이도 그럭저럭 되는 걸 보아하니 마구 휘둘러도 스칠 일은 없어 보인다.
“전력으로 휘두를 거다. 거리를 벌리도록.”
씨익 웃으며 창을 두 손으로 쥐니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허둥지둥 거리를 벌렸다.
적한테 등을 내비치면서까지 나를 피할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야.
“한 사람당 10마리다. 가라! 섬멸해라!!”
“오오오오오――!!”
병사들이 고함을 내지르고, 고블린들도 그 소리에 맞춰 한층 더 커다란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선두에 서서 돌진한 내가 제일 먼저 적한테 창을 크게 휘둘렀다.
“이야아압!!”
두 손으로 전력으로 휘두른 횡베기.
앞에 뭉쳐서 달려오고 있던 고블린 놈들 중 다섯 마리 정도가 부품이 되어 흩어졌다.
커다란 크기로 찢겨나간 부품은 뒤쪽까지 날아가 다른 고블린한테 명중했고 놈을 쓰러트렸다.
엄청난 숫자의 아군들이 돌진하는 상황 속에서 넘어진다는 것은 죽음과 마찬가지, 분명 원형도 알아볼 수 없을만큼 짓밟혀 있을 게 분명하다.
공격 한 번에 목표치 열 마리, 달성해 버렸을지도 모르겠군.
휘둘렀던 창을 다시 한번 휘둘러 횡베기, 이번엔 몸까지 크게 회전시켜 전방에 있던 적을 날려버렸다.
내 코앞까지 달려든 적도 있긴 했지만 발로 걷어차주니 움직이지 않게 됐다.
1m 정도 되는 고블린한테 있어서 나의 발차기, 심지어 철판까지 박힌 부츠로 날린 일격은 치명상이다.
“그래도 좀 많긴 하군!”
내 주변에는 100마리 정도 되는 고블린이 무리지어 있었다.
힘도 속도도 별볼일 없지만 혼자서는 역시 손이 부족하다.
“이걸 써볼까?”
창을 한손으로 쥐고서 나머지 한쪽 손으로 한쪽 팔을 잃은 채 버둥대고 있는 고블린의 다리를 붙잡았다.
조금 짧긴 하지만 곤봉 대신 써먹을 순 있겠군.
박살나 버려도 대용품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간이 곤봉을 손에 바꿔쥐면서 한동안 고블린 놈들을 날려버리듯이 날뛰어댔다.
세 번째 놈의 다리가 손에서 찢겨나갔을 즈음 적은 정면에서 돌격해 오는 걸 그만두기로 한 듯했다.
“키익!”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반응하여 몸을 비틀고 내게 들이닥친 창을 피했다.
끝부분에 돌이 달린 원시적인 무기를 붙잡아 꺾어주니, 못생긴 고블린의 얼굴에 명확한 공포심이 서려있는 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지능이 높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꺾어버린 창을 정수리에 꽂아넣었다.
다시 한번 달려든 고블린을 피한 뒤 놈의 다리를 걸어 앞으로 고꾸라지게 만들었디.
그 녀석의 머리 위에 다리를 올려두고 주변을 둘러본다.
내가 앞으로 너무 많이 나가버린 탓에 병사들과는 좀 떨어진 장소에서 포위당한 모양이다.
세리아가 날 걱정하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긴 한데, 나는 생각보다 재밌게 싸우는 중이란 말이지.
전체 전황도 그리 나쁘지 않다.
부상자가 몇 사람 정도 발생해는지 입구 쪽으로 이어지는 통로 방향으로 살짝 밀리긴 했지만 놈들한테 포위당해 있는 상황임에도 진형이 붕괴되어 있지는 않은 듯했다.
2m가 넘는 창을 일렬로 세워 방어진을 짜 막아내고 있는 모양이다.
발밑에 쌓여있는 상당한 숫자의 시체를 보아하니 이대로 한동안 더 버티면 점점 전황은 유리해질 것이다.
“키익――!! 키익―――!!”
어이쿠, 한놈의 머리 위에 다리를 올려두고 있던 걸 까먹었네.
다리에 체중을 실어 머리를 박살내고 주변을 둘러본다.
고블린은 위협하듯이 키익거리긴 했지만 내게 달려들진 않았다.
시험 삼아 창을 내질러 두 마리 정도를 찔러 죽였지만 포위망의 넓이를 넓힐 뿐이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세리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에이길 님! 정말! 혼자서 무리하지 마시라고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난 멀쩡해. 전황은?”
“부상자 여덟, 그 중 위험한 자는 2명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당했군.
하지만 적의 숫자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좀만 더 힘내면 되겠어.
“살아남은 놈들한텐 전부 창부를 붙여주마. 가장 적을 많이 처리한 놈한테는 고급 창부를 여럿 상대시켜 주마!!”
오오오! 하는 환호성과 함께 피로 때문에 살짝 후퇴하던 창의 진형이 기운을 되찾은 자지마냥 각도를 되찾기 시작했다.
“전진 개시! 놈들을 밀어붙여!”
밀어라, 당겨라, 하는 호령에 맞춰 창이 움직이고 정면의 적들이 계속해서 쓰러지기 시작한다.
맨 처음 위치에서 밀려나갔던 거리를 순식간에 복구하고 심지어는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간다.
고블린들은 숫자가 줄은 것 때문에 한층 더 밀려나는 추세였다.
하지만 도망치질 않는 걸 보아하니 우리 뒤쪽에 있는 입구가 유일한 탈출구인 모양이다.
“흡!” “이얍!”
정면에서 밀리고 있는 적들 중에 가끔씩 아군을 발판 삼아 펄쩍 뛰어오더니 우리 쪽의 창 진형을 뛰어넘어 안으로 파고들려고 시도하는 놈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세리아의 나이프, 혹은 피피의 화살을 맞고 쓰러져 더러운 시체가 되어 낙하할 뿐이었다.
전세가 이쪽으로 완전히 기울고 이제 남은 건 잔챙이 처리뿐이라 생각한 순간, 커다란 창이 나타나 창 진형을 박살내고 병사들이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
“크다…….” “이놈이 보스인가!” “그렇다 해도 엄청 커!”
“드디어 보스가 튀어나온 모양이군.”
세리아한테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는 경멸 어린 시선으로 보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추잡한……오물 놈!!”
보스의 크기는 나와 비슷한 수준이다.
살짝 커다란 홉고블린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수준으로 경악할만큼 커다란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철제 갑옷을 입은 놈의 가랑이에 있었다.
그곳에는 커다란 물건이 덜렁덜렁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평범한 고블린들도 가랑이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니다보니 훤히 다 드러나 보이긴 하지만, 이 녀석은 그 중에서도 확연히 커다랬다.
세리아가 그 추악한 광경에 버티질 못한 건지 나이프를 던졌지만 그 중 한 자루는 갑옷에, 또 하나는 도끼에 맞고 튕겨나갔다.
이 녀석은 실력으로 봤을 때도 보스, 단순히 물건이 커다란 고블린은 아닌 듯했다.
힘으로 밀어붙였다간 병사 중에 사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오오…….”
보스는 자신에게 나이프를 던진 세리아를 쳐다보더니 물건을 크게 부풀리기 시작했다.
세리아는 확실히 따먹고 싶어지는 좋은 여자인 건 사실이지만 그 행위는 만 번 죽어 마땅하다.
“내가 처리하지. 물러나 있어라.”
“기껏해야 어린아이 팔뚝 정도입니다! 성인 팔뚝 정도 되는 에이길 님의 물건으로 압도해 주세요!”
여기서 물건을 꺼내라고?
세리아는 한바탕 소리친 다음에서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물건을 평소에도 계속 보고 있다는 듯이 얘기한 사실을 깨닫고서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잡졸 고블린들은 더 이상 내게 달려들 용기는 없는 모양인지 보스 뒤쪽에 몸을 숨긴 채 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놈을 쓰러트리면 나머진 섬멸만 하면 되겠군.
“흡!”
“그극!”
마물을 상대로 이름을 댈 필요는 없다.
단숨에 달려들어 목덜미를 향해 창을 내질렀는데, 이 녀석은 창을 옆으로 돌려 공격을 막아냈다.
연속으로 가슴께, 복부를 노려보았으나 전부 도끼로 막아냈다.
방패도 없는 주제에 재주도 좋군.
이 못생긴 외모 치고는 대단하군.
내가 그런 생각과 함께 감탄하고 있는 사이, 이쪽이 겁을 먹은 거라 생각한 건지 놈이 도끼를 쳐들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나도 창을 쳐들어 공격을 막아냈다.
그 순간, 놈은 뒤쪽으로 미끄러져 자세를 무너트렸다.
창의 휘두르기 공격은 찌르기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힘이 실린다.
심지어 내 창은 아마 놈이 들고 있는 거대 도끼보다 더 무겁다.
힘겨루기를 시도한 게 운이 나빴군.
빈틈을 주지 않고서 2연격, 3연격을 날려주니 놈은 어떻게든 공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그때마다 점점 뒤로 거리를 벌리게 됐다.
전력으로 휘두른 네 번째 일격에서는 도끼가 부러지더니, 그와 동시에 놈도 무릎을 꿇었다.
“끄그으으으으윽!!”
놈은 서둘러 허리에 차고 있던 곤봉을 손에 쥐었지만 나무로 된 무기로 내 일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곤봉은 두 동강, 오른팔의 중간 부분 언저리가 공중을 맴돌았다.
“가아아아아아아아악!!!”
끝났군.
이미 싸울 수 없는 놈을 굳이 죽여야 하나 싶긴 했지만, 아직 고블린 놈들의 숫자는 많이 남아있었다.
자기네들 보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놈들을 혼란 상태에 빠트릴 필요가 있었다.
찢겨나간 팔 부분을 붙들며 비명을 터트리는 보스의 정수리에 전력으로 창을 내리찍는다.
텅, 하고 창이 땅바닥에 박히는 소리와 함께 잠시간 정적이 흐른 후, 보스가 세로로 두 동강 났다.
온몸의 체액과 장기가 전부 땅바닥으로 흘러내리더니 엄청난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보스 뒤쪽에 있던 고블린들은 비명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는 중이다.
이제 더 이상 놈들한테 전의는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놈들을 처리해라.”
“전원 돌격! 전부 죽여버려라!!”
세리아의 호령 소리와 함께 돌격하는 병사들과 도망치는 고블린, 전황이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불 보듯 뻔했다.
도망칠 곳 없는 지하 안에서 술래잡기를 하듯이 병사가 고블린을 쫓아다니고 시체로 바꾸어버린다.
순식간에 이 안에서 움직이는 마물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대부분 처리한 것 같긴 하지만 일단 옆으로 이어지는 동굴도 확인해 보자고. 일부러 더러운 냄새까지 맡으면서 정리해 뒀는데 반년 안에 또 원래대로 돌아오면 귀찮잖아.”
“네, 분담해서 찾아라! 남은 놈이 있으면 알려라!”
병사들은 몇 사람씩 나뉘어 다른 곳을 확인하러 움직였다.
대부분은 썩은 고기가 쌓여있는 저장고나 화장실로 쓰이던 곳인 듯했으나, 또다시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악!!” “불이이이이이이!!”
병사 두 명이 불에 붙은 채 커다란 동굴 안으로 데굴데굴 굴러나왔다.
“뭐야, 등불이라도 잘못 떨어트렸나?”
다른 병사들이 떼지어 달려들어 불을 꺼주긴 했지만 두 명은 꽤 심각한 화상을 입고 말았다.
“안에 고블린이! 마법을 쓴다고!!”
마법을 쓰는 고블린?
그런 이상한 생물이 있단 말인가?
세리아와 피피를 쳐다봤지만 둘 다 고개를 저었다.
병사들이 머뭇머뭇 나를 쳐다봤다.
내가 최고 지휘관이니까 뭐, 마법사하고는 딱히 좋은 추억이 없지만 어쩔 수 없지.
“실례하마!”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인사와 함께 작은 방처럼 쓰이던 구멍 안으로 들어가니, 그와 동시에 불구슬이 날아왔다.
마법으로 된 그 불은 내……가 창에 꽂아둔 고블린을 불태웠다.
무언가가 닿은 듯한 감촉도 느껴지지 않는 게, 단순히 화염만 이쪽으로 날아온 듯했다.
그러면 작전대로 갈 수 있겠군.
입구 쪽에서 마법을 날린 것으로 보인 고블린과 나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기 때문에 이대로 직잔해서 달려가면 놈을 베기 전에 나한테 불이 붙을 듯했다.
창을 던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찔러죽인 고블린을 빼낼 때 번거로워진다.
따라서 나는 반대쪽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던져주었다.
무게는 창과 비슷한 수준, 바닥에 굴러다니던 못생긴 돌이긴 하지만 맞기만 하면 상당한 위력이 있을 게 분명하다.
돌은 목표를 향해 수평으로 날아갔다.
고블린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돌을 막아내려고 두 손을 앞으로 내질렀으나, 두 손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박살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마법사를 투석으로 죽이다니 참 우스운 이야기군.
일단 확인해 보았는데 두 손과 두 다리 모두 움찔움찔 경련하는 걸 보아 확실히 죽은 듯했다.
“……이렇게 원시적으로 안 하셔도 저나 피피가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너희의 깨끗한 피부에 화상 자국이라도 생겼다간 큰일이잖아.
“그나저나 이건……책인 건가? 고블린이 책을 읽는다고?”
“마법도 그렇고, 상당히 지성이 있던 개체인 것 같습니다. 이런 건 들어본 적이 없어요.”
생각해 봐도 별 수 없지.
얼른 동굴 안쪽을 확인한 다음 이 더러운 장소를 나가야겠어.
하지만 이상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 여기를 봐주세요!!”
“이봐! 괜찮나!?”
제법 커다란 공간, 그 안에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끔찍해…….”
“………….”
더러운 동굴 안쪽에서도 한층……마치 코가 삐뚤어질 것 같은 맹렬한 악취가 풍기는 그곳 안에는 대충 보기에도 100명은 훌쩍 넘어보이는 여자들이 누워 있었다.
다들 실 한오라기 걸치지 않은 알몸인 데다가 누구 하나 우리 쪽을 눈치 채지 못할만큼 눈이 죽어 있었다.
바닥에 온통 묻어 있는 저 오수는 아마 고블린들의 정액인 듯하다.
직전까지 범해지던 건지 가랑이에서 액체를 뚝뚝 흘려대는 여자도 적지 않았다.
“……전 병력을 불러와. 여자들을 구하러 간다.”
병사들이 일으켜 세워도 온몸이 온통 오수 투성이인 여자들은 공허하게 눈을 뜨고는 반사적으로 가랑이를 벌릴 뿐이었다.
“내, 냄새가…….” “엄청나게 끔찍하군.”
배설물은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더러운 고블린한테 계속해서 윤간당했던 여자들의 모습은 워낙 처참했던지라 병사들도 욕정을 느낄 여유는 없어보였다.
“일단은 밖으로 내보내라. 10명 정도 선발대를 조직한 다음 주변 일대를 경계하고……내천이나 연못을 찾으면 보고하도록.”
그때, 한 여자가 배를 부여잡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아파! 아파, 아파!! 싫어……낳기 싫어! 싫다구우우우우!!”
듣기 힘든 비명소리와 끈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 방금 전부터 귀에 익은 키익키익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고블린의 아기를 낳고 있었다.
심지어 그 울음소리에 반응하듯이 더 안쪽 방에서 똑같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누더기로 구분해 둔 그 안을 들여다보니 100 정도 되는 고블린 아기,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작은 고블린이 기어다니는 게 보였다.
“우웨에에에에엑!!”
병사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시작했다.
고블린의 숫자가 갑자기 늘어난 건 이것 때문이었나.
“여자들을 서둘러 밖으로 내보내라……그리고 이 방 앞에 무언가를 쌓아서 막아라. 여자들을 밖으로 내보내면 불을 지를 거다.”
나도 이 정도로 기분 나쁜 광경을 본 건 오랜만이다.
발밑에 있는 작은 고블린을 방 안쪽까지 걷어차 밀어넣은 다음, 두 어깨에 여자를 짊어지고서 밖으로 나왔다.
방금 전까지 승리감에 도취해있던 병사들도 표정을 지운 채 입을 다물고 묵묵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은 채 가증스러운 동굴 입구가 마치 굴뚝마냥 엄청난 양의 연기를 뿜어내는 걸 지켜보는 중이다.
동굴 안 모든 곳에 불을 질렀으니, 안쪽은 지옥도를 방불케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특히 번식용으로 쓰이던 방은 기름까지 들이부은 다음 불을 질렀다.
“한동안 감시하고 있어라. 아무것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말이야.”
병사들한테 명령을 내린 다음 나는 방금 전 구출해 낸 여자들이 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자들은 숲의 향기와 어렴풋이 느껴지는 태양빛 덕분에 조금씩 이성을 되찾고 있었다.
“어때, 얘기 좀 할 수 있겠나?”
“대부분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몇 사람 정도는…….”
괜찮은 걸로 보이는 여자한테 말을 걸었다.
“고블린 놈들은 전부 다 죽였다. 얘기할 수 있겠나?”
“……응, 응, 괘, 괘, 괜찮아. 가, 가, 간신히.”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조심스레 물을 넘겨주었다.
그제서야 여자는 조금 진정된 듯했다.
“고마워……이제 괜찮아…….”
“좋아, 너희는 왜 그곳에 붙잡혀 있던 거지?”
“나는……기아 때문에 도망치는 도중에 습격을 받았어……남자는 죽었고…….”
“다른 여자는?’
“모르겠어! 그곳에 끌려간 다음부터 계속 범해지고 쉴 새도 없어서! 난……다섯 마리나! 다섯 마리나 낳았다구!!”
더 이상 물어보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겠군.
일단은 마을로 옮겨서 휴식시킨 다음에 해야겠어.
마을과 그렇게 멀리 떨어진 숲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여자가 거의 없던 탓에 말에 올려태우기에도 공간이 부족했다. 결국엔 병사들이 등에 짊어져 여자들을 옮긴 끝에 마을에 도착했을 땐 밤이 되어 있었다.
“여자들의 상태는 어떻지?”
“쥐 죽은 듯이 잠들어 있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 크게 지친 모양입니다.”
맨 처음엔 엄청난 악취 탓에 받아들이길 꺼리던 마을 사람들이었으나 내가 한 번 날카롭게 노려주니 입을 다물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보니 우물 물을 받아 그대로 씻기긴 했지만 아주 깔끔하게 씻는 게 아닌 이상 그 냄새는 가시지 않는다.
게다가 여자들은 몸을 씻는 것보다 잠에 들고 싶었던 모양인지 마치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버렸다.
“돌아오던 길에 냇가가 있던데. 거기서 그 여자들을 전부 목욕시켜라. 지금 이 상태로는 더러운 게 문제가 아니고 병에 걸릴 테니까.”
“맞습니다……. 정확히 세어 보니 150명이나 되더군요. 이렇게 잔뜩 모은 것도 대단합니다.”
여자들한테서 조금씩 정보를 모아본 결과 그녀들은 한 번에 납치당한 건 아니었다.
트리에아에서 내 영지로 소규모로 도망치던 도중, 고블린들의 습격을 받은 여자가 많은 듯했다.
“여자가 고블린의 번식에 쓰이는 경우도 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일반적으로는 몇백 명이나 모으는 건 불가능합니다. 여자가 호위병 없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경우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잔뜩 납치당한 여자들이 계속해서 임신당한 탓에 고블린들의 숫자가 단숨에 불어났다는 뜻이다.
고블린의 아기는 임신 이후 1달도 지나지 않아 태어나고, 아기도 2주 정도면 성인이 된다고 한다.
임신시킬 수 있는 여자가 100명이나 있으면 순식간에 1000 단위로 불어난다.
이번에 몇백 마리 정도밖에 없었던 건 식량 부족으로 인한 동족 포식과 집단 내 서열 투쟁 살육전이 원인이다.
“지금도 임신해 있는 여자가 상당수 있습니다. 도시로 데려가기 전에 무언가 처리를 해야 할 겁니다.”
“정보를 알리고 이에 관해 자세히 아는 놈을 데리고 오도록 해. 고블린의 아기를 낳았다간 도시에서 갈 데가 없어질 테니까.”
“에이길 님께선 저 여자들을 데려가실 생각입니까?”
그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잖아.
이곳으로 올 때 같이 왔다던 남자들은 전부 고블린한테 죽었다.
가족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죠……어쩔 수 없군요.”
“걱정 말래도. 몸 상태만 회복되면 내가 달래주러 갈 테니까.”
“그게 걱정인 겁니다!!”
“족장님, 드디어 여자를 100명 안는 건가! 피피도 껴줬으면 한다!”
갑자기 시끄러워진 두 사람을 꼭 끌어안았다.
내가 지켜보는 한, 이 녀석들은 내가 지켜줘야지.
◇◇◇◇◇◇◇◇◇◇◇◇◇◇◇◇◇◇◇◇◇◇◇◇
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1살 봄(세는 나이)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자작 아크랜드 남동부 영주 산의 왕
휘하군: 동방독립군 2000 사군 3000 궁기병 5000 최대 6000
재산: 금화 6900닢(5800) (내정 재료 100) (노역비 200)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거대창
가족: 논나(아내) 카라(측실) 멜(측실) 리타(메이드) 카트린느(음란) 세바스찬(집사) 루비(루나 종자) 요구리(식충이) 케이시(망령)
아이: 스우 미우 예카테리나(딸) 안토니오(아들) 쿠우 루우 로즈(의붓딸)
왕도: 멜리사 마리아 미티 알마 크롤
부하: 세리아(부관) 이리지나(지휘관) 피피(종자) 레오폴트(참모) 슈바르츠(말) 아돌프(내정관) 클레어(전용 상인)
경험 인수: 53명
자식: 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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