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남겨진 화근』
트리에아 왕국 왕도 트리스니아
궁전 안에서 시끄러운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 분쟁은 국민 입장에선 동부 지역에서 벌어진 한정적인 분쟁. 별 일 아닌 충돌 사건으로 전해졌기에 각 도시의 자칭 현자들이 이에 대해 찬찬히 분석하는 수준으로 별다른 화젯거리라 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 분쟁의 결말은 군 관계자와 궁전 안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왕국군이 일개 영주를 상대로 두 번이나 격파당했다」
이 사실은 군의 위신을 크게 실추시킨다.
이것은 반란자들의 기세를 높이고 주변국의 착각을 사게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관 귀족들이 군 조직에 개입할 여지를 주게 되는 게 크다.
이번 사실 그대로를 전달할 순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발생한 피해는 숨길 방도가 없다.
트리에아는 현재 상비군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인원은 궁전 측에서 파악하고 있다.
전사자의 숫자와 사라진 장비 보충 등, 이러한 사항을 감추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군은 적의 숫자를 속이기로 했다.
포로로 잡혔던 자들의 증언을 통해 발레올라를 함락시킨 건 2000조차 되지 않는 기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으나, 그들의 보고는 기병 2000과 보병 4000, 총합 6000명 규모로 인한 침공인 것으로 올라갔다.
적어도 격파당한 군대와 같은 규모가 아닌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해 그들은 중앙부까지 침공했다는 이번 사태의 본질, 경이적인 진군 속도에 대한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고르도니아는 우리의 적이오! 역으로 침공해야 할 것을 주장하는 바요!”
“아니오, 몹쓸 농민들을 먼저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소!”
“그걸 위해서라도 당장은 대립을 피하고, 피해를 입은 군대를 수복하는 게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겠소?”
귀족들은 저마다 주장을 하겠다며 소리를 높였다.
군정에 밝지 못한, 단순히 지위가 높기만 한 귀족까지 시끄럽게 구는 탓에 회의는 점차 시끄러워지가만 했고, 지식이 있는 일부 귀족과 왕은 머리를 쥐어싸매고 있었다.
“조용히 하시오! 이곳은 이후 국가의 방침을 토의하는 자리이지, 시정잡배가 드나드는 술집이 아니란 말이오!”
그렇게 소리친 인물은 바로 트리에아 왕국의 재상, 뒤누아 후작이었다.
군사 쪽에 조예가 깊은 인물은 아니었으나 그의 견실한 통치 방법은 국토에 안정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난번 아크랜드 전쟁 참전 때에도 반대를 하던 입장이었다.
현재 모든 게 원활히 굴러가고 있으니 스스로 혼란 속으로 빠져들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엔 무관들의 압박에 못 이겨 움직인 왕의 결단으로 인해 그의 의견은 철회되었으나, 이번 사태로 인해 그의 선견지명은 어느 정도 증명되었다 할 수 있었다.
“뒤누아 후작! 그럼 귀공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계시는 것이오!!”
“그렇소, 귀공의 뛰어난 의견을 부디 들려주셨으면 하오.”
국왕……트리스니아 3세의 걱정스러운 시선에도 재상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앞으로 걸어나왔다.
일단은 왕을 제외하면 최고 권력자 자리에 있는 그가 앞으로 나온 순간부터 소란은 잠잠해졌다.
“우선 고르도니아가 우리 영토에 야심을 품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 이번 일도 겉으로는 영주와의 충돌이지만 우리의 전력을 파악하고 국내를 혼란시키려는 의도를 지닌 고르도니아 왕의 입김이 있었단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소.”
“그렇소!” “고르도니아를 척결해야 하는 바이오!”
재상은 시끄러운 소리를 무시했다.
“하나 고르도니아에 침공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 그것이야말로 놈들이 원하는 것이오. 전력에서 열세인 우리는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할 테고, 주변국들도 선제 공격에 나선 우리를 도와줄 리 없소.”
시끄럽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던 귀족들은 고개를 숙이곤 결국 입을 다물었다.
“따라서 당장은 정전 협정을 엄수하고, 우선은 국내에 있는 반란군을 소탕하는 것이 중요하오. ……베르도 백작, 경이 고르도니아와 격렬한 교섭을 한 끝에 가지고 돌아온 정전 조건을 다시 한번 더 알려주시오.”
재상은 경멸이 담긴 시선과 함께 턱으로 신호를 보냈다.
지금까지 방구석에서 움츠러들어 있던 베르도는 한 차례 움찔하더니, 머뭇머뭇 앞으로 나왔다.
그가 옆을 지나갈 때마다 귀족들이 조그맣게 악담을 퍼부었다.
“…………우선, 고르도니아는 우리나라의 영토로부터 즉각 철수합니다. 이것은 이미 실행되고 있습니다.”
베르도는 유일한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작은 목소리로 읊었다.
하지만 귀족들은 그 누구도 그를 칭찬하지 않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확인했소. 다른 조건을 말해보시게.”
“우발적인 전투를 피하기 위해 동부 국경선에 서로의 군대가 개입할 수 없는 완충 지대를 설치할 것…….”
“놈들이 먼저 쳐들어왔는데 완충 지대가 웬말이오!” “실질적으로 영토에 손실이 발생한 것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완충 지대에는 마을, 도시, 그 어느 것도 없는 곳이기에 별다른 지장은 없습니다!”
베르도의 변명에 한 무관이 조용히 그의 숨구멍을 조이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우리는 반란군이 완충 지대로 도망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 아니겠소?”
회의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하지만 재상은 가차없었다.
“그게 끝이 아닌 걸로 알고 있소.”
“예……화근을 남기지 않게끔, 전시에 발생한 손해에 관해선 서로 불문에 부치기로 하였습니다.”
베르도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머뭇머뭇 그렇게 말한 순간, 노성이 터져나왔다.
“매국노!” “무능한 놈,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더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미 정전 조건은 다들 알고 있는 정보, 이곳에서 거론할 필요는 없다.
재상은 그저 베르도를 희생양으로 매달기 위해 이곳에 세운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분노의 대상을 베르도 한 사람으로 좁혀 자신의 방침을 감정적으로 반대할 세력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이제 된 것 같소. 베르도 백작, 이제 물러가시오.”
재상은 베르도를 내쫓듯이 뒤로 물리곤 다시 입을 뗐다.
“이처럼 상당히 불리한 정전이긴 하오만, 이미 지나간 과거를 따지고 있어봤자 별 수 없소. 우선은 현 병력을 이용해 반란군을 철저하게 탄압, 놈들의 저항을 근절시키는 것이 우선이오. 동시에 본국에선 고르도니아에 대항하기 위한 징병제를 실시할 것이오.”
당혹감과 의문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트리에아는 각 영주의 사군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는 모병에 의한 상비군이다.
민중을 징병한 것은 과거 아크랜드와 전쟁을 펼치다 전국이 악화됐을 때 등등,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와 동시에 용병을 고용해 병사 숫자를 단숨에 불리겠소.”
그때 귀족 중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병사를 모으는 데에 이견은 없으나 고르도니아의 중앙군이라는 것들은 이미 4만 이상, 조만간 5만 정도까지 증강될 것으로 알고 있소. 우리는 징병을 한다 하여도 3만이 최선일 것이오. 아무리 생각해도 놈들과 단독으로 맞붙는 건 힘들다 생각하오만?”
옆에 있던 자들이 겁쟁이라느니 비겁하다느니 험담을 늘어놓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귀족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트리에아는 아무리 병력을 모아도 최대 3만, 용병을 대량으로 고용한다 쳐도 재정 문제로 오랫동안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에 비해 고르도니아는 인구를 고려해봤을 때 10만 정도라면 문제없이 소집이 가능하다.
이래선 승부가 되질 않는다.
“나는 군사적 소견에는 밝지 못하오만, 그래도 정면으로 맞붙으면 전력 차이 탓에 승기가 거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소. 하나 병력 차이를 메꾸는 수단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소.”
“성이로군…….”
재상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소, 우리 본국 북부와 점령지 사이에 성채를 짓는 것이오. 다행히 오랜 기간 아크랜드와의 방위선 위치였던 이곳엔 이미 요새가 있소. 그것을 한층 더 증강하여 수비를 굳건히 하는 것이오.”
“그렇군……그 요새는 오랫동안 아크랜드의 공세를 막아낸 나라의 방패, 한층 더 강화될 것을 고려해 보면 제아무리 고르도니아라 하여도 돌파하긴 쉽지 않겠소.”
“점령지는 당장엔 결국 짐덩어리, 빼앗긴다 한들 국력에 그리 큰 지장은 생기지 않을 것이오.”
“또한 이번에 우리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동쪽의 영주, 하드릿이라는 작자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만 할 것이오. 놈이 갖고 있는 군대의 강점은 강력한 기병 부대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오. 따라서 동쪽에도 방어 진지를 구축하겠소……하지만 이곳엔 울타리와 땅굴을 파는 것 정도면 충분할 것이오. 기병만 막아내면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을 터이니.”
“오호라……역시 재상은 다르시군.” “과연, 요새전이라면 우리에게도 이점이 있소.”
“고르도니아를 몰아세우고 놈들의 병력을 묶어둔 뒤, 도움을 요청하면 마그라드, 유레스트 모두 우리편에 붙을 것이오. 그리 되면 고르도니아는 병사를 무를 수밖에 없게 될 테지.”
고르도니아의 비옥한 영토는 모든 나라가 군침을 흘리는 요소다.
대의명분이 있고, 심지어 병력이 남부에 집결되어 있다는 점을 내세우면 주변국들은 틀림없이 달려올 것이다.
“역시 재상의 안건은 훌륭하오. 하나 기존 요새들을 강화하는 것 말고도 동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해야 할 경우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해질 것이오. 아무리 생각해도 징병과 동시에 양립시키긴 힘들 것 같소만.”
토목 공사와 징병 모두, 가장 필요한 요소는 젊은 남자다.
쌍방 모두 동시에 진행시키기엔 트리에아 왕국엔 젊은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걱정 마시게. 노동력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으니……. 반란 진압 때 놈들의 항복을 인정하고 처형을 중지하도록 명하겠소. 놈들을 노동력으로 부리면 될 것이오.”
애초에 반란에 가담했던 놈들을 병사로 모집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사용처에 망설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처형을 금지하면 반란자한테 너무 빈약한 처벌을 주게 되는 꼴이 되지 않겠소?”
재상은 자기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지적에 슬쩍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도 않소. 어차피 놈들은 전부 일하다 죽게 될 거요. 교수형보다 효과적이라 생각하오만.”
트리에아 왕이 의견을 꺼내기도 전에 로레일의 북쪽에 있는 요새를 강화할 것, 동부 지역에서 방어 진지를 구축할 것, 그리고 일반 시민들을 징병할 것이 결정되었다.
트리에아 왕국은 고르도니아 왕국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상정하고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
라펜
“꽤 많이 모였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제각각 다른 방어구――대부분이 트리에아 왕국의 물건인 게 우습긴 하지만――을 장비한 병사들이 정렬해 있는 모습이었다.
이번 분쟁의 원인이 된 대규모 농민 반란, 내가 중간에 개입한 덕에 상당한 숫자가 살아남아 우리 영지 안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특히 가족이 없는 자들은 상당수의 비율로 농민보다는 병사가 될 것을 선택한 것이다.
“영지 안의 인구 균형이 무너질 정도의 숫자입니다. 치안 쪽이 불안해지지 않겠습니까?”
세리아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돌프가 작성한 주민표를 전부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이번 건만 해도 4000명 정도가 유입됐을 것이다.
원래 인구 2000 정도밖에 없던 영지, 그 이후 유입민들을 받아들였다는 걸 고려해봐도 같은 숫자, 혹은 그 이상의 숫자가 한 번에 밀려들어왔다는 뜻이 된다.
이건 사실상 받아들여줬다기보단 합류했다고 말하는 게 더 나을 지경이다.
폐쇄적인 환경이던 변경에 갑자기 엄청난 숫자의 인원이 유입된 상황.
원래 같은 국민이었다고는 해도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걸 해결하는 것도 아돌프의 일인 걸로 해 두자.
“산의 민족에 원래 있던 영주민, 그리고 유입된 농민이라. 정말 여러 인원들이 모이기 시작했군.”
“하지만 그들은 고르도니아 왕실의 동향과 상관없이 움직일 수 있는 전력입니다. 궁기병과 함께 이쪽을 주력 인원으로 생각해 둬야 할 겁니다.”
레오폴트는 독자적인 군대를 중점으로 군단을 구성할 생각인 듯했다.
참고로 새롭게 사군에 들어온 자들은 개인의 적성에 맞춰 병과를 결정해 주겠다는 명목 아래, 같은 고향에서 온 자들을 되도록 뿔뿔이 흩어놓은 채 부대에 배치해 두었다.
이 지역에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까진 동향인을 서로 떼어둠으로써 반란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 번 반란을 일으킨 사람은 영주를 배반하는 데에 저항감이 사라져 또다시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모양이다.
“가능하다면 사람들이 가정을 만들고 마을이나 도시에 그 가족들을 놔두게 만들면 그럴 걱정도 없긴 합니다만.”
“유입들 중에도 독신이 많다고 들었는데. 남자랑 여자는 조만간 서로 알아서 묶이겠지. 그것보다 놈들의 숙련도는 어떠냐?”
“문제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있던 사군들보다 훨씬 우수하더군요.”
역시 옛 아크랜드 군 소속이었던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장비는 별로여도 움직임은 정돈되어 있다.
어쩌면 정규군인 동방 독립군보다 더 규율이 잘 잡혀있을 수도 있다.
“1년간의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이 정도입니다. 지난번 전쟁, 만약 아크랜드가 멀쩡한 상태에서 싸웠더라면 승패는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순조로워 보이는군. 규모가 커지면 이리지나한테는 좀 힘들어질지도 몰라. 네가 적극적으로 지켜보고 있으라고.”
이리지나는 군인으로서는 문제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10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의 부대를 지위해 본 경험이 없다보니 현재 역량으로는 전선 지휘관의 역량을 벗어나지 못한다.
레오폴트 없이는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것이다.
“병사 말고 다른 민중들은 문제없나?”
반대편에 있는 아돌프한테 말을 건넸다.
“이렇게 숫자가 많으면 쉽사리 녹아드는 건 힘들죠. 다른 세력으로 취급해 마을을 짓게 만들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사람은 라펜으로 이주시키는 중입니다.”
이쪽은 동향인을 되도록 같이 뭉쳐두는 중인 모양이다.
연계가 필요한 농작업에서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라는 건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기 쪽은 일절 소지를 금지하고 있다.
“도구 직공이나 간단한 대장간까지 라펜에 둬버리면 마을에서 생활하는 데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닌가?”
“맞습니다. 이들은 정말로 간단한 물건을 제외하면 괭이와 물병까지도 전부 라펜에 와서 조달해야 하죠. 마을 안에서 물물 교환하는 것 말고도 농작물을 팔러 나오거나 노역을 통해 돈을 벌고서 라펜에서 쓰는 것, 이러한 환경이 상업 활성화를 촉진시켜 결국엔 더욱 커다란 상업권이~.”
후반부엔 별로 듣지 않고 있었지만 쉽게 말해 각 마을에서 자급자족하게 만들어 버리면 상인은 상업으로 돈을 벌기가 힘들어진다.
라펜을 중심으로 물건을 매매함으로써 상인을 불러들일 심산이라고 한다.
상인이 많이 와주면 와줄수록 물건은 비싸게 팔아치울 수 있고 살 때는 싸게 살 수 있어 이득이라는 모양이다.
“상인 운운하는 얘기는 난 모르겠군. 너한테 맡겨두긴 할 텐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집을 준비하는 것만 해도 힘들겠어.”
“예, 노역 활동 중 하나로 집 건설과 도시벽 건축도 진행 중입니다만 아직도 일손이 부족하네요.”
시골 깡촌, 심지어 군대가 근처에 주둔 중인 라펜에 누가 쳐들어오기라도 할까 싶긴 하지만 도시벽은 방어 진지 역할과 동시에 치안의 상징, 영주의 위신을 나타내는 물건이기도 하다.
벽이 없으면 주민은 불안해할 테고, 상인도 가게를 세우는 데 망설인다고 한다.
“군대 안에도 진지 구축 부대를 만들어 두셨다고 들었는데 그쪽도 쓰도록 하겠습니다.”
레오폴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 수에 여유가 생겨서 예전에 중앙군 때 편성했던 공병 부대를 소규모 인원으로 재현해냈다고 한다.
공병 부대 입장에서 땅굴 파기나 울타리 건설은 좋은 훈련거리다.
“문제는 결국 돈이 깨진다는 겁니다만…….”
세리아가 날카롭게 시선을 날리길래 엉덩이를 쓰다듬어 진정시켰다.
“올해만 넘기면 내년부터는 세금도 걷을 수 있을 텐데? 돈이 다 떨어질 것 같으면 막으마. 그 전까진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그러고 보니 물자 자금 얘기 때문에 생각난 게 있다.
“지난번에 가지고 온 약탈……전리품 매각 건은 어떻게 됐지?”
보석 같은 건 갖고 있어봤자 별 소용이 없다.
논나가 아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던 목걸이는 미리 챙겨놨으니 문제없지.
“스투레 상가 쪽 몇 군데에 말해보는 중입니다. 날짜를 지정해 부른 다음 매매 가격을 비교해서 가장 비싼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이랑 거래할까 싶군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맡겨두지.”
거래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상인이 오면 만나달라는 뜻인 모양이다.
미인이 있으면 그 녀석으로 정해야겠군.
“족장님! 피피도 할 얘기가 있다!”
피피가 폴짝 내게 뛰어들어 품에 안겼다.
원피스 같은 복장을 입고 있긴 한데 허벅지에 닿는 가랑이의 감촉이 부드럽다.
속옷을 안 입고 있는 모양이군.
“와앗! 피피, 당신 엉덩이가!! 천박한 짓은 그만 하세요!!”
세리아도 겉으로 드러난 엉덩이를 보게 된 모양이다.
난리법석 시끄러운 세리아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피피가 말을 이었다.
“족장님의 말은 굉장하다| 여름 전에 교배했던 암말이 전부 임신해 있었다.”
“아아……그거 말이지.”
산의 민족은 적극적으로 말을 교배시켜 개체수를 늘리는 중인데, 품종 문제 때문에 비교적 크기가 작다 보니 평원에서 달리는 속도는 고르도니아의 군마보다 조금 뒤쳐진다.
그만큼 회전력이 좋아서 황야나 거친 길을 이동할 땐 뛰어나다고 볼 수 있긴 하지만, 산의 민족의 장들이 이렇게 된 거 커다란 말도 갖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그때 나이를 많이 먹거나 다친 군마를 그쪽으로 건네주고 분쟁이 일어나기 전 잠깐 동안이나마 슈바르츠한테도 교배를 시켜본 것이다.
그러자 그 색정마는 하루에 10필이 넘는 말에게 자기 씨를 뿌려댔다.
일반적으로는 하루에 몇 번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끝난 직후 다른 암말한테 달라붙었다고 한다.
하루가 끝날 즈음엔 완전히 핼쓱해져 있었는데, 그래도 그때까지 교미를 하고 있었다는 모양이다.
“슈바르츠는 대단하다! 피피도 말의 교미는 자주 보는 편이지만 그런 건 처음 본다. 통에서 뿌려던 것처럼 씨앗이 나오더군! 암말한테 걷어차여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단지…….”
피피가 살짝 말을 흐렸다.
“단지, 슈바르츠는 수컷의 물건 크기도 너무 커서 작은 암컷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게다가 교미가 너무 격렬해서 끝나면 암말이 뻗어버려서 큰일이다.”
“거대 자지에 절륜이라, 말도 안 되는 변태 말이군.”
“………….”
세리아가 나를 반쯤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냐?”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앞으로도 전장에서 썩 죽이 잘 맞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씨를 받은 암말이 전부 잉태했다! 그렇게 우수한 숫말은 본 적이 없다! 분명 아기들도 엄청난 게 태어날 거다.”
태어난 말이 쓸만해지려면 아직 몇 년이나 더 걸릴 텐데, 피피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중이다.
언젠가 이런 식으로 생산된 말이 도움이 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슈바르츠는 마치 족장님같다! 엄청난 수컷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역시 피피는 아직 한참 어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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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0살 가을(세는 나이)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자작 동방 독립군 사령관 병사 숫자 2000
아크랜드 남동부 영주 사군 1200 산의 민족 약 1000
재산: 금화 5400닢 (군비 내정으로 지속 소비 -500)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거대창
장비: 검은 망토(저주받음) 황금 갑옷(웃음)
가족: 논나(아내) 카라(측실 임신) 멜(측실 임신) 스우(딸) 쿠우 루우 리타(메이드) 세바스찬(집사) 요구리(식객)
왕도: 멜리사 마리아 카트린느 안토니오(아들)
미티 알마 크롤
부하: 세리아(부관) 이리지나(사군 지휘관) 피피(산의 민족) 레오폴트(독립군 부사령관) 슈바르츠(변태 말) 아돌프(내정관)
경험 인수: 49명
자식: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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