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밤을 걷는 자들』
“안 오는군…….”
“네…….”
라펜에서 살짝 떨어진 위치에 우리는 매복해 있었다.
바위도 많고 척박한 지역이다보니 방치되어 있는 땅이다.
동성애자들의 구멍 노예로 변해버린 노예 상인으로부터 들은 비밀 장소에 세리아와 마이라, 소수의 경기병을 데리고서 매복 중이었는데 놈의 정보에 따르면 횃불도 피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밤중에 그런 식으로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신기하게 쉽사리 만날 수 있다고 놈은 얘기했다.
“벌써 날짜가 바뀔 시간입니다. 놈들이 눈치챈 건 아닐까요?”
“여기서 끊겨버리면 반쪽짜리 결과가 되겠군요.”
공급처를 아무리 박살낸다 한들 수요가 있으면 또다시 누군가가 팔기 시작할 것이다.
한밤중 겨울이라 추위도 느껴지는 상황이다보니 슬슬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던 그때.
“잠깐만요! 뭔가 들립니다!”
세리아의 목소리에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바위 뒤쪽으로 숨었다.
덜그럭덜그럭 달려오는 마차 소리, 도로에서 한참 벗어난 이런 곳까지 온 시점에서 9할 정답이다.
하지만 놈들은 이쪽으로 오지 않았다.
“들켰나?”
“설마, 이런 한밤중에요? 소리를 내거나 아주 근처까지 오지 않는 이상 아무도 눈치챌 수 있을 리가…….”
“아니, 눈치챈 모양이다.”
마차에서 채찍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히힝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퀴 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계획 변경이다! 놈들을 쫓아라!”
당초 계획은 비밀 장소까지 찾아온 놈들을 기습해서 체포한 뒤 어디가 본거지인지 심문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만약 여기서 놓쳤다간 놈들은 당분간 라펜에 오지 않을 것이다.
감춰두고 있던 불씨로 횃불에 불을 붙인 뒤 경기병이 차례차례 말을 타고서 달려나간다.
“오늘밤은 달도 안 뜨는 날입니다. 저놈은 횃불도 없이 어떻게 우리가 있다는 걸 눈치챈 걸까요?”
“글쎄다. 엄청나게 밤눈이 좋은 걸 수도 있지.”
“먼저 도망쳤다고는 해도 상대방은 마차입니다. 경기병이라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예요.”
라고 생각했었으나.
“끄아아아악!”
“쳇! 또 실패인가?”
경기병 중 한 명이 중간에 있던 바위에 말과 함께 부딪쳐 넘어졌다.
거친 땅바닥 때문에 다리가 걸려 말에서 떨어지는 사람과 넘어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에이길 님, 이렇게 장애물이 많은 땅 위에서 전력 질주로 쫓아가는 건 무모한 짓입니다. 속도를 낮추시죠.”
“어쩔 수 없나……그런데 저놈들은 전혀 속도를 늦추질 않잖아.”
기병보다 훨씬 더 지형의 영향을 크게 받는 마차, 심지어 놈들은 횃불조차 켜고 있지 않은 상태인데도 말이다.
“끄엑!”
옆에 있던 병사가 가슴에 화살을 맞고서 뒤집어졌다.
놈들이 쏜 듯한데, 한밤중에 횃불을 들고 있는 이상 과녘과 다를 바가 없다.
반격하려고 해도 우리 쪽에선 마차 소리밖에 들리질 않았다.
“이리 줘, 세리아, 해보거라.”
“네!”
병사가 쥐고 있던 횃불을 빼앗고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있는 힘껏 내던졌다.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간 그것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마차 뒷편이 슬쩍 보였다.
“지금!”
세리아가 온몸을 가지처럼 꺾은 뒤 나이프를 던졌다.
땅바닥에 떨어진 불빛은 금세 사라지긴 했으나 말의 비명소리와 마차가 옆으로 쓰러지는 굉음이 터져나왔다.
세리아의 나이프가 순식간에 놈들의 말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놈들을 몰아세웠다! 전원, 포위해라!”
마이라가 소리치자 경기병이 쓰러진 마차를 포위했다.
이제 끝났겠군.
“…….”
마차에서 기어나온 인물은 정보대로 3명이었다.
그 정도로 체구가 크진 않아보이는데 머리 위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다보니 성별 구분조차 힘들었다.
“도주를 포기하고 아지트까지 안내해 주면 목숨은 보장하겠다. 어떠냐?”
“…….”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는다면 두 명 정도는 이 자리에서 처형시킬 수밖에 없겠군.”
“…….”
“위험해요!”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뛰쳐가더니 포위망을 뚫고 나가려 했다.
“흡!”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기 때문에 내 쪽으로 달려든 놈 하나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검을 들고서 달려드는 놈의 얼굴에 손잡이로 강렬한 일격.
“크헉!”
“응?”
확실히 머리를 쪼갠 줄 알았는데 남자는 땅바닥을 굴면서 자세를 고치려하고 있었다.
“정말 끈질기군.”
방금 전보다 더 큰 힘을 주고서 창을 내리쳐 머리부터 가슴께 부근을 박살냈다.
“끄윽…….”
남자는 몇 차례 부들부들 떨다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우왓! 이 자식 힘이 엄청난데!?”
“조심해라!”
마이라 쪽으로 달려간 한 놈은 공격에 실패한 뒤 다리를 베여 땅바닥을 굴렀다.
곧바로 말에서 내려온 병사들이 떼지어 달려들었지만 남자는 검을 휘둘러 저항하고 있었다.
훈련받은 병사와 궁지에 몰린 일반인, 순식간에 끝날 줄 알았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했다.
“카아아아악! 으아아아아!!”
남자가 달인급의 기량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단순히 마구잡이로 한손검을 휘두르고 있을 뿐인데 그 공격에 맞은 병사가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로 힘이 셌던 것이다.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 보일 법한 동작이다.
그 사이에 마지막 한 사람이 병사들을 뚫고서 포위망을 탈출해버리고 말았다.
날뛰고 있난 남자를 상대하고 있는 시간 자체가 아깝다.
“비켜라, 내가 처리하마.”
“크아아아아!!”
제정신을 잃은 것처럼 절규하는 남자의 가슴팍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창은 정확히 남자의 가슴 깊숙이 박혔다.
“큭! 끄윽!”
그럼에도 남자는 창을 붙잡아 억지로 빼내려고 날뛰고 있었다.
“잠깐만……이거 맞아?”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이상 명백한 치명상, 하지만 남자의 힘은 크게 빠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대체 이놈은 뭔데…….”
병사들도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얼른 해치워야겠군.
날뛰던 남자를 꿰어버린 채 창을 들어올리고 옆에 있던 바위에 때려박았다.
“크힉!”
남자의 대가리가 완전히 박살나자 손발이 축 늘어졌다.
이쯤 되면 죽었겠지.
“한 놈 도망쳤다. 어서 쫓아가라.”
“그것이…….”
남자를 쫓아가고 있던 경비병이 말을 흐렸다.
“무슨 일이냐?”
“노, 놓쳐버렸습니다……확실히 처음엔 보였습니다만……달려서 말을…….”
“엉?”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사람의 속도로 도망치는 상대방을 기병이 놓칠 리가 없다.
“야, 너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냐? 얼른 말 위에……우와아아악――!!”
도망친 사내가 떠밀었던 병사를 일으키려던 아군 중 한 명이 비명을 내질렀다.
“무슨 일이지?”
“이 녀석……그냥 밀쳐졌을 뿐인데……주, 죽었어.”
얼굴이 짓눌린 채 쓰러진 병사의 목은 뚝 부러져 있었다.
그냥 부러진 게 아니라 등쪽까지 달라붙을 기세로, 사실상 꺾이기 직전이라 해도 될 수준이었다.
“……얼굴도 엉망진창이군. 전투 망치로 때리지 않는 이상 이렇게 될 리가 없을 텐데.”
아아, 이제야 진상이 뭔지 알겠군.
“이상하게 밤눈이 밝고, 믿기지 않는 신체 능력……들어본 적 없나?”
“엄청난 숫자의 노예를 모으고 있던 것도 설마…….”
병사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뱀파이어…….””
모든 이들의 목소리가 한 데 겹쳤다.
“하드릿 경, 설마 아니라 믿고 싶긴 합니다만…….”
마이라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내게 다가왔다.
“여긴 북서쪽이었지? 남서쪽이 아니라.”
거리가 너무 멀다보니 아니라 생각하긴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녀와 연관된 사건이라면 이번 건은 최대한 빠르게 없던 일로 치부해야만 한다.
“네? 그렇긴 한데요.”
“그럼 됐어.”
내 생각이 너무 과한 거겠지.
그녀는 계속 나랑 둘이서 지냈을 뿐 달리 지인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
나는 고개를 숙이고서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하드릿 경? 떨고……계신 겁니까? 그럴 수 있죠, 정말 흡혈귀의 소행이라면 이 인원수로는 도저히…….”
마이라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얘기했다.
“에이길 님, 라펜으로 돌아가서 군대를 데리고 오시죠. 수천명을 데리고 포위하면 놈들이라 한들 방법이 없을 겁니다. 고개 숙이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있으니까요!”
“괜찮아, 겁먹은 건 아니니까.”
뱀파이어라는 단어를 듣기만 했을 뿐인데 발기가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놈들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크게 솟아오른 그것은 당장에라도 바지를 터트릴 듯한 기세였다.
자칫 잘못했다간 이 자리에서 사정해버릴 수도 있을만큼.
“쫓아가자.”
“예? 하, 하지만 이 인원수로는…….”
“괜찮아, 소굴을 발견해 낸 뒤엔 내가 혼자서 이야기하고 올 테니.”
뱀파이어라 해도 여자다,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아예 피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뱀파이어는 그렇게 자주 피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니야. 특히 이번 상대는 사람을 덮치려하지도 않고 들키지 않게끔 교활한 책략을 썼지. 식욕에 몸을 맡기고서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놈은 아닐 거다……그런데도 불구하고 반년 동안 50명……라펜 말고 다른 곳에서도 모으고 있을 가능성까지 생각하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하나 혹은 둘……아니, 열 놈이 넘는 숫자가 있을지도 모르지.”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병사들이 비명을 터트리고 마이라와 세리아도 얼굴을 굳혔다.
이런, 몇십명의 뱀파이어랑 함께 노는 광경을 상상했더니 살짝 정액이 새어나왔잖아.
“그런 거라면 에이길 님께서 혼자서 이야기를 하고 오신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분명 살해당하실 거라구요!”
“맞습니다. ……그건 그렇고 자세히 아시는군요.”
뭐, 좀 일이 있었거든.
겁먹은 병사들을 데리고 한 놈이 도망친 방향을 탐색하니 생각보다 그곳은 간단히 발견됐다.
황야에 뻥 뚫려있는 동굴, 주변에는 비가 새어들어오지 않게끔 돌로 막아뒀고 말까지 묶여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적으로 생긴 광경은 아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도로에선 떨어진 곳이니까 말이야. 불만 안 피우면 들킬만한 위치는 아니지.”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말 위에서 내려왔다.
“역시 이곳은 감시 대상으로 지정만 하시고 군대를 불러오시죠!”
“맞습니다! 영주가 혼자서 안으로 직접 들어가다니 미친 짓이에요!”
“괜찮다고 말했잖아? 너희는 일단 여기서 대기해라.”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오시는 겁니까…….”
세리아가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나를 바라보길래 머리를 쓰다듬고 나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아, 분명 서로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내 주변엔 검과 창을 손에 쥔 집단이 다가와 있었다.
설마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건가 중간까지는 무난하게 나아갈 수 있었지만, 동굴 안에 만들어진 커다란 공간 안에 도착한 순간 놈들에게 발각되어 순식간에 포위당한 것이다.
“너희가 뱀파이어라는 건 알고 있다.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다.”
전 방향에서 느껴지는 살의를 무시하고서 말을 걸자 로브를 둘러쓴 몇 명이 나타났다.
“인간이 감히 우리 앞에 서는구나.”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동요심을 감출 수 없었다.
“먹잇감과 대화를 나눠봤자 아무런 소용없다.”
여기도 마찬가지잖아……이럴 수가.
“하등 생물 같으니.”
“감히…….”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뭣이?”
“감히 나를 속였구나아아아!!”
내가 생각하기에도 엄청난 표정으로 상대방을 노려보자 놈은 무심결에 뒷걸음질을 쳤고 그 탓에 로브가 미끄러져 얼굴이 엿보였다.
예상대로 피처럼 새빨갛게 물든 눈, 병적으로 하얀 피부, 그리고…….
놈들은 전부 다 남자였던 것이다.
잘 생각해 보니 뱀파이어가 전부 여자라고 단정 지을 순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뱀파이어라는 단어를 듣고서 포용력 있는 거유의 미녀라고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불합리하다는 사실은 이해하고 있지만 새어나오는 분노가 잦아들질 않는다.
“네놈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내 말을 따라라!”
끓어오르는 분노에 감정을 싫어 노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한 순간 공기가 얼어붙더니 흡혈귀들의 눈이 한층 더 붉게 번뜩였다.
“인간 주제에 잘도 지껄이는군! 놈을 해체해버려라!”
주변에서 또다시 검과 창을 손에 쥔 남자들이 나타났다.
다들 눈은 붉은색이지만 광채가 탁하다.
“구울인가…….”
구울은 좀비의 상위종에 해당하는 개체로 시체에서 태어나는 몬스터 중 하나다.
좀비와 다르게 지능을 갖고서 자아를 갖고 있는 개체도 많다.
하지만 흡혈귀를 통해 만들어진 구울은 부모 개체에게 속박되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는 놈들이다.
또한 흡혈귀 개체가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구울의 힘도 결정된다고 한다.
루시는 외견상 역겨운 기분을 지울 수가 없어서 만들지 않았다고 했지만.
“……!”
말없이 내게 달려드는 구을들, 나는 창을 고쳐쥐고서 놈들한테 휘둘렀다.
흐음, 확실히 힘은 강하군.
하지만 전투 경험 없는 놈들을 바탕으로 만든 것들인지 완력으로 밀어붙이는 게 전부다.
“이야아아아압!!”
두 놈을 한꺼번에 베어내고선 한 놈의 두 다리를 짓뭉갰다.
그걸 보면서 떨어진 곳에 있던 흡혈귀 사내가 날 비웃었다.
“흥, 조금 실력은 있는 모양이다만 하등한 권속이라 한들 제아무리 인간 따위가…….”
땅바닥에 쓰러진 한 놈의 머리를 짓밟고 한 놈을 세로로 두 동강냈다.
그리고 세 번째 놈을 꼬챙이처럼 꿰어버리고 흡혈귀들이 있는 쪽으로 날려버렸다.
놈들은 가볍게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동굴 벽과 부딪친 구울은 온몸의 뼈가 박살난채 땅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죽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온몸이 박살나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살아있다 한들 문제없다.
“나는 라펜의 영주다. 만약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수만명의 병사를 데리고서 이 동굴을 통째로 불태워주마.”
사실 그렇게 많은 병사는 없지만 말이야.
“헛소리를……사실이라 하여도 우둔한 인간 집단이 우리를 잡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겠지. 군대를 움직이면 패배할 일은 없더라도 도망치는 이놈들을 붙잡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흡혈귀는 야수와는 다르다.
실제로 이 동굴도 단순히 살고 있다는 표현으로 말하기엔 너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입구에는 비막이, 동굴 안쪽에도 깔끔하게 정돈된 길이 있고 어디서 사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구처럼 보이는 물품까지 갖춰져 있었다.
“너희야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또다시 살 곳을 하나하나 뒤져야 할 텐데? 그 전까진 어쩔 거냐? 아하, 구멍이라도 파서 사람의 시체라도 뜯어먹으려는 건가? ……고블린이랑 다를 바가 없군.”
“뭐라고!?”
“그렇게 되기 싫으면…….” “애송이! 더 이상은 못 참겠구나!”
되기 싫으면……뒤에 할말이 많았는데 참 성질 급한 흡혈귀다.
체온은 없는데 머리는 잘만 뜨거워지나보군.
“뿔뿔이 해체해주마!”
“아니, 구울로 만들어서 영원히 노예로 삼아주마!”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구울을 날려버리고 흡혈귀 세 사람이 내 주변을 둘러쌌다.
잘못된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다.
만약 놈들이 루시랑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갖고 있다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다.
“각오해라!”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달려드는 사내한테 창을 휘둘렀다.
손과 커다란 창, 평범한 상황이라면 손이 찢어지고서 끝날 테지만 있을 수 없는 금속음과 함께 내가 뒤쪽으로 튕겨날아갔다.
손이 찌릿찌릿 저린다. 창이 부러지지 않은 게 더 놀라울 지경이다.
“쉭!”
또다른 사내가 내리친 손톱을 종이 한장 차이로 피하고서 다리 쪽으로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완전히 자세가 무너져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남자는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이건 어떠냐!”
세 번째 놈이 약 4m 정도 펄쩍 뛰고서 두 손을 크게 치켜올려 내게 공격을 날렸다.
예비 동작이 컸던만큼 가볍게 피할 수 있었지만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박살난 돌과 모래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다.
흙먼지 속을 뚫고 날아온 흡혈귀의 발차가기 내 복부를 노렸다.
곧바로 창으로 막아냈지만 그 충격 때문에 동굴 벽쪽까지 날아가게 되었다.
숨이 턱 막히고 쇄골이 삐걱인다.
“크헉…….”
“흥, 주제 넘는 말을 뻔뻔하게도 내뱉더니 이게 인간의 한계라는 거다.” “포기하면 좀 더 빠르게 해체해 주마.”
흐음, 역시 인간의 힘을 초월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 정도인가?”
““뭣이!?””
나는 뱀파이어라 하면 루시밖에 아는 게 없었다.
그녀랑 몇 번 정도 장난삼아 대련을 한 적도 있었는데 이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루시는 웃으면서 날 10m 넘게 날려보냈고 공격을 피한 뒷편 공간에는 내 키 정도 되는 커다란 구멍이 뚫리기도 했다.
방금 전 구멍을 생각해 보면 기껏해야 발목이 들어가는 수준이다.
이 녀석들은 흡혈귀지만 생각보다 강하진 않다.
3대1로 싸워야 하는 게 곤란하지만 말이야.
“와라, 다음엔 좀 더 잘 상대해 주지.”
“헛소리를!”
내게 달려드는 남자에게 창을 내리친다.
놈은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튕겨내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내가 먼저 일부러 한손을 떼어내어 한층 더 크게 튕겨나간 창을 커다랗게 휘둘렀다.
아무리 강력한 힘에 튕겨나간다 한들 회전 운동으로 바꿔버리기만 하면 튕겨나갈 일은 없다.
“뭣이?”
그리고 여유가 생긴 한쪽 손으로 놈의 얼굴을 두들겨 팼다.
아프네……딱딱하잖아, 이 자식들.
“큭, 네이놈!”
물론 이런 건 그냥 눈속임에 불과하다.
열에 뻗친 남자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내게 달려들었다.
그 공격을 피한 다음, 튕겨나간 기세를 이용했던 창을 놈의 후두부에 때려박았다.
“커흑!”
자기 힘이 그대로 실렸던 일격을 얻어맞은 남자는 땅바닥에 얼굴을 쳐박은 채 쓰러졌고 그대로 쭉 미끄러져 벽이 있는 곳까지 날아갔다.
“감히!”
내게 달려드는 흡혈귀, 나도 마찬가지로 놈에게 달려들면서 삼단 찌르기를 날렸다.
첫 번째 찌르기는 피했고, 두 번째 찌르기는 손등으로 막아냈으며, 세 번째 찌르기에선 아예 창이 튕겨날아갔다.
나는 이놈도 두들겨 패려고 했지만 놈은 맨손의 공격 따위 맞아봐야 아플 것 없다 생각했는지 히죽거리면서 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옛다.”
나는 맨손……이 아니라 바닥을 굴렀을 때 움켜쥐고 있던 돌로 콧등을 때려주었다.
“컥!!”
역시 이건 아픈가 보지?
무심결에 눈을 감은 놈의 팔을 붙잡고 허리에 힘을 실어 내던진다.
자기가 달려오던 힘이 그대로 실린 채 날아가게 된 남자는 눈도 제대로 뜨고 있지 않았던 탓에 낙법을 취하지 못했고, 그대로 힘차게 정수리 쪽부터 땅바닥에 떨어져 신음했다.
나는 곧장 바닥에 떨어진 창을 주워들고 마지막 한 놈에게 겨눴다.
“……너는 강하군. 하지만 여기에 혼자 온 게 실수였다.”
놈은 나를 경계하고서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위험한데…….
“큭……이 자식.”
“네이놈…….”
뒤집어져 있던 두 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이라면 둘 다 죽든지 재기불능 상태였을 텐데, 놈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세 명이서 동시에 간다. 갈기갈기 찢어버려주마.”
역시나 이렇게 됐구만. 자, 여기가 진짜 고비다.
기합을 다지고서 창을 손에 꽉 쥔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란이냐!”
종이 울리는 듯한 카랑카랑한 목소리, 허리까지 뻗은 아름다운 금발, 그리고 병적으로 하얀 피부, 미칠듯이 아름다운 얼굴.
아아……이걸 기다리고 있었다고.
“브륜힐데…….”
“이 인간이 우리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이 녀석은 예를 갖추고 있다만?”
나는 무심결에 창을 집어넣고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신분과 인종과는 관계없이, 미녀……그것도 절세의 미녀에겐 예를 갖춰야하는 법이다.
“네이놈! 방금 전까지 “닥쳐라! 물러가라!”
[브륜힐데]라 불린 미녀의 일갈을 듣고 흡혈귀 삼인방은 곧바로 물러났다.
잘 보니 그들의 시선은 팔짱을 끼고 있는 그녀의 뒤쪽, 로브를 깊숙이 둘러쓴 커다란 남자 쪽에게 모여 있는 듯했다.
“그래, 이 몸의 거처를 찾아온 어리석은 인간이여. 네놈이 우리에게 먹히고 싶어 찾아온 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일로 온 것이냐?”
브륜힐데는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모양이다.
역시 미녀는 훌륭하군.
“원래는 도시에서 불법적으로 판매된 노예를 쫓아 이곳까지 도착했다.”
“식사 조달 방법에 관해서 이 몸은 아는 바가 없느니, 고작 그게 이유라면 네놈은 곧바로 식탁 위에 오르게 되겠구나.”
“아니, 그건 계기에 불과해. 너희를 원한다. 나를 따라줄 수 없겠나?”
정확히는 브륜힐데를 원한다.
덤으로 인간 사냥도 그만둬줬으면 하고 말이야.
아름다운 그녀는 몇 초 동안 몸을 굳히고 있었다.
“흐, 흐하하하하! 들었느냐 [지크프리트], 이 녀석 지금 우리보고 따라달라 하였구나! 아하하하하!!”
“…….”
지크프리트라 불린 거구의 남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브륜힐데, 하지만 그 눈동자는 새빨갛게 물들어 분노를 비치고 있었다.
“네놈이 오늘밤 만찬으로 쓰일 것은 확정되었다. 나머지 말은 유언으로 삼아주지. 어찌하여 우리를 복종시키려 드느냐?”
“나는 영주거든. 당신들한테 내 민중이 마구잡이로 잡아먹히는 건 난처하단 말이야. 그리고…….”
분노로 물든 눈동자를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신은 아름다워. 아름다운 여성을 내 것으로 삼고 싶다 생각하는 건 사람의 업이다.”
“……그런가, 지크프리트. 되도록 내장이 튀지 않게끔 하라. 좋아,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를 따르게 되면 그 대가는 무엇이냐? 아니면 아무런 조건도 없이 따르라는 것이냐?”
지크프리트가 양손에 검을 쥐었다.
엄청난 위압감이다. 앞서 상대했던 세 놈과는 격 자체가 전혀 다르다.
식은땀을 감추고서 나는 대답했다.
“식사에 문제없게끔 만들어주지. 그리고 당신 같은 미녀한테라면 내 피를 나눠줘도 좋다만.”
“호오.”
브륜힐데는 두 손으로 검을 쥔 지크프리트를 손으로 제지했다.
그리고 폴짝 하고 가볍게 뛰어오르고는 5m 정도 떨어져 있던 나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너는 건강해 보이는구나. 식탁 위에 올라가기 전에 잠깐 맛을 보는 것도 괜찮을 테지.”
미녀는 사악한 미소를 짓고서 등골을 쭉 펴고 내 목덜미 쪽에 입을 들이댔다.
나는 저항하지 않고 몸을 굽힌 뒤 목을 비스듬하게 기울였다.
작은 턱이 벌어지더니 송곳니가 목에 꽂혔다.
피가 뿜어져나오는 게 느껴지더니 그녀가 꿀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목덜미에 살짝 느껴지는 콧김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꿀꺽, 꿀꺽, 꿀꺽…….”
“크윽…….”
피가 점점 빨려나가는 감촉, 갑자기 허리가 후들후들 떨리고는 정액이 터져나오더니 바지를 축축하게 적시고 발밑까지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흡혈을 할 때 먹잇감이 절정을 맞이하는 경우는 꽤 많이 있다고 루시도 말한 적이 있었다.
브륜힐데도 딱히 신경 쓰지 않고 내 피를 마셨다.
근데 조금 많이 마시는 거 아닌가?
슬슬 의식이 멀어지는데.
이대로 죽어선 안 된다 싶어 그녀의 작은 머리를 치워버리려고 했지만 커다란 돌을 움직일 때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아……여기까지인가?
하지만 미녀에게 죽는다면야 그것도 운명이라 할 수 있겠지.
마지막으로 가슴을 주무르기 위해 그 주변을 움켜쥐었지만 허무하게 미끄러졌다.
가슴은……작군.
그런 생각을 끝으로 내 의식은 어두워졌다.
◇◇◇◇◇◇◇◇◇◇◇◇◇◇◇◇◇◇◇◇◇◇◇◇◇◇◇◇◇◇◇◇◇◇◇
“깨어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래, 무심결에 너무 많이 마셨더구나.”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듯하다.
침대 옆에 있는 건 브륜힐데 한 명뿐이었다.
“좋아, 나는 식탁 위에 올라가진 않게 된 것 같은데. 이유가 뭐지?”
“…….”
“이유가 뭐냐니까?”
“맛있었다…….”
“엉?”
“네 피는 맛있다. 지금까지 맛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말이야……마신 순간 허리힘이 풀릴 것 같더구나. 그래서 정신없이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마시고 말았다만…….”
“그거 고맙네, 웬만하면 요리로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래, 너를 다른 어중이떠중이 놈들에게 맛보여 주는 것 자체가 아깝구나. 그리고 아예 죽였다간 이번이 끝……어떠냐, 이 몸의 장난감이 되지 않겠느냐? 오랫동안 길러주마.”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게다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마이라와 세리아가 군대를 끌고 올 것이다.
“그럴 순 없겠어. 하지만 협력하는 건 가능하지. 내게 따르는 게 굴욕적이라면 계약을 해도 좋아. 나는 너희에게 안전한 식사와……미녀 한정이라면 내 피를 나눠줘도 돼. 너희는 내 영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먹지 말아줬으면 하고.”
“그것뿐이냐?”
“아니, 그리고……브륜힐데, 당신을 안고 싶어.”
“큭큭큭, 이 몸의 구멍에 네놈의 천박한 육봉을 넣고 싶다는 것이냐? 그 오물은 네가 기절해 있는 동안에도 계속 우뚝 서 있더구나.”
브륜힐데는 겉으로 드러난 내 육봉을 가볍게 손으로 퉁겼다.
“그 계약이라면 좋다. 너는 참으로 이 주변 일대의 영주인 듯하니 말이야. 섣부르게 죽였다가 이곳이 박살나면 또다시 불쾌한 장소까지 찾아가야 할 테지. 먹잇감 조달은 본디 미천한 것들과 구울이 하는 짓이니 이 몸이 알 바 아니다만 놈들을 편히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주인의 책무라 할 수 있을 것이야.”
단, 하고 새빨간 입술이 내 귓가까지 다가왔다.
“주에 한 번, 이 몸에게 네 피를 나눠주어라. 감미로운 그 맛을……온몸에 울려퍼지는 그 독특한 맛을 말이다.”
눈을 치켜뜬 채 내게 올라타듯이 목덜미 부근부터 얼굴을 천천히 핥는 브륜힐데.
차가운 감촉이 팔에 느껴진다. 잘 보니 브륜힐데의 가랑이는 실금한 것처럼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루시도 흡혈을 한 후엔 느끼기 쉬워했다. 밀어붙이려면 지금밖에 없다.
“당신도 젖었고, 나도 이렇게 됐잖아. 서로 욕구를 해소할 좋은 방법이 있을 텐데.”
“네놈들은 고작해야 식사, 몸을 섞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몸을 섞으면서 피를 빨면……좀 더 맛있어진다고 들어본 적이…….”
“인간인 그대가 피 맛을 어찌 안단 말이냐! 시덥잖은 소리를 했다간 이 자리에서 피를 전부 빨아 죽여주마.”
아무래도 안 되는 모양이다.
미련은 남았지만 포기하는 수밖에 없겠군.
“당신을 안는 건 나중에 있을 즐거움이라 생각하고 지금은 포기하지. 그러니까 하나만 부탁해도 되나?”
“응? 말해보라.”
“너희에 대해 알고 싶다.”
“……어째서냐?”
“그냥 관심이 가서 말이야. 어쨌거나 뱀파이가 이렇게나 많이 있으니 관심도 가는 법이지.”
브륜힐데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건 확실했다.
“이 몸과 지크프리트는 저주받은 왕가의 후예다. 옛날엔 여기 있는 자들이 모두 다 그러했으나 하나둘씩 사라져서……지금 남아있는 건 단지 피를 빨기 위해 남아있는 어중이떠중이 집단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우아한 말투가 흐트러지고 살짝 말이 빨라졌다.
“그것뿐이다, 달리 할 말은 없겠구나.”
그것을 끝으로 브륜힐데는 더 이상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거북한 침묵을 애써 지우려는 듯이 조약을 서류화하기 시작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나는 옷을 갈아입고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계약은 여기 적힌대로지만 뭔가 중요한 일이 있으면 내 저택까지 찾아와 줘. 아, 이야기는 해둘 테니 심야가 아니라 낮에 와도 상관없어.”
“……그대, 흡혈귀한테 대낮에 오라고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군.”
루시는 태양을 싫어하긴 했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정도까진 아니었다.
중요한 볼일이 있으면 와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 몸이나 지크프리트라면 어찌저찌 버티고서 움직일 수 있을 테지만……나이 100살 정도의 애송이라면 불타죽을 것이야. 네놈, 흡혈귀에 관해 알고 있는 듯하면서 잘 모르는구나.”
그런 거였나?
루시는 생각보다 특별했던 거로군.
◇◇◇◇◇◇◇◇◇◇◇◇◇◇◇◇◇◇◇◇◇◇◇◇◇◇◇◇◇◇◇◇◇◇◇◇◇
“에이길 님!!”
바깥으로 나가자 세리아가 내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흐에에에엥! 벌써 새벽이라구요! 에이길 님께서 놈들한테……죽……흐윽, 그런 건가 싶어서……으에에엥…….”
품속에서 울음을 터트린 그녀, 실신해 있는 동안 새벽녘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걱정하지 마. 멀쩡히 살아있으니까.”
“다행이다……아아아아아아아아앗!!”
세리아가 귓가에서 절규를 내질렀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잖아.
“목! 목에에!!”
내 목덜미에는 브륜힐데한테 깨물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흡혈귀한테 물린 사람이 흡혈귀로 변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힘도 쓰게 되고 귀찮아져서 거의 안 한다고 하지만 말이야.
“에이길 님! 보여주세요!”
세리아가 내 입에 손을 집어넣고 억지로 벌렸다.
어금니를 확인한 다음 이번엔 눈을 들여다보았다.
“흡혈귀가 된 건 아니야. 괜찮아.”
“하, 하지만 그럼 방금 그 깨물린 자국은…….”
으음……, 어떻게 설명하면 좋으려나.
“이건 흡혈귀로 만들기 위해 깨문 자국이 아니라……어떻게 설명하면 좋으려나.”
세리아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했다.
그리고 내 가랑이 부근, 불알을 가볍게 쥐었다.
“가벼워……들어가셨을 때보다 훨씬 더……싸신 거죠? 잔뜩!!”
“뭐, 그렇지.”
실제로는 흡혈당했을 때 그냥 싼 거지만 말이야.
“어찌저찌 안에 있던 놈들하고는 이야기가 끝나…….”
거기까지 말한 순간 병사들 중 몇 명이 풀썩 하고 쓰러졌다.
피와 내장이 튀어나오는 끔찍한 최후였다.
“……너희들이냐, 이야기는 끝났을 텐데?”
“알 바 아니다.”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지.” “죽여버리기만 하면 브륜힐데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거다.”
어둠을 뚫고 나타난 건 나와 싸웠던 흡혈귀 삼인방이었다.
놈들의 주인으로 보이는 브륜힐데를 무시하고서 나온 거니까 무슨 말을 하든 소용없을 것이다.
나는 세 놈에게 창을 겨눴다.
병사들을 겁먹으면서 나를 지키려 했지만 방해되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 있으라고 명령했다.
아마 놈들의 힘으로는 고기 방패조차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명, 내 지시를 따르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에이길 님은 제가 지킬 겁니다!!”
“멈춰라, 세리아!”
“방해된다.”
눈앞의 광경이 천천히 움직인다.
세리아가 내리친 검이 남자의 팔과 맞닿아 부러졌다.
흡혈귀는 세리아를 발로 걷어찼고 곧바로 부러진 검으로 방어한 세리아는 마치 마른 가지처럼 튕겨날아갔다.
제대로 된 낙법도 취하지 못하고 데굴데굴 바닥을 구른 세리아는 일어나지 못했다.
“아아아아아아아, 아파……팔이……팔이이…….”
세리아의 두 팔이 부러져 제각각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눈앞이 시뻘개졌다.
“네놈들……전부 죽여주마.”
내가 보기에도 깜짝 놀랄만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돌진한다.
세리아를 발로 걷어찬 놈에게 달라붙고서 있는 힘껏 창을 내리쳤다.
당연히 놈은 막아냈지만 내 혼신의 일격에 자세가 무너진 건 상대방 쪽이었다.
하지만 너무 안쪽으로 파고들어 거리가 좁아진 탓에 창을 휘두를 수 없게 된 순간 놈에게 붙잡혔다.
“하하하, 멍청한 놈, 네놈은 내 종복으로 삼아주마!”
입을 벌리고 내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넣으려고 하는 남자.
하지만 그게 꽂히기 바로 직전, 나도 입을 벌리고 사내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끄윽! 무슨 짓을…….”
“카아아악!!”
놈의 목을 물은 채 이리저리 목을 흔들어 살점을 뜯어낸다.
설마 자기가 깨물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남자는 두 손으로 목덜미를 억누르며 뒤로 물러났다.
시선은 내게서 벗어났고 두 손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입으로 뜯어버린 살점을 토해내고 한층 더 돌진한 나는 크게 도약해 반쯤 벌어져 있는 남자의 입 안으로 창을 꽂아넣었다.
“커흑!!”
창이 입 안에서 목 뒤쪽까지 꿰뚫고서 그대로 땅바닥에 꽂혔다.
“!!!!!!―――!?”
튼튼한 흡혈귀는 그런 부상에도 죽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드워프 특제 창으로 땅바닥에 꽂힌 남자는 마치 못질을 당한 바퀴벌레처럼 버둥거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을뿐이다.
저 자세에선 제대로 된 힘이 들어가지 않아 혼자서는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두 번째 남자는 벼락 같은 속도로 내게 달려들었다.
서둘러 듀얼 크레이터를 뽑아들려고 했지만 제때에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죽어라!”
남자의 손톱이 내게 닿기 직전, 무언가가 날아와 꽂혔다.
“나이프? 이까짓 것……끄악!!”
가볍게 남자의 옆구리를 찌른 나이프, 크기가 작은 그것은 흡혈귀를 상대로 너무나 보잘것없는 공격이었으나 찔린 부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세리아!”
“하아하아……흡혈귀한테는……은이…….”
세리아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통증 때문에 정신을 잃었다.
부러진 손으로 억지로 던진 모양이다.
힘없이 날린 나이프가 어떻게 잘 꽂힌 게 대단한 수준이다.
잘 보니 그녀의 손 안에는 깎여나간 은화가 있었다.
그녀는 특별한 과자를 찾아냈을 때를 위해서 평소에도 늘 은화를 한 닢 품속에 두고 다닌다.
그 은화를 입에 문 나이프로 깎아낸 다음 은가루가 묻은 채로 날린 것이다.
은 덕분에 힘없이 던진 투척 나이프가 꽂히긴 했지만 가루 정도로는 잠깐 움츠러트리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흡혈귀는 분노에 가득찬 모습으로 다시 내게 달려드는 중이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잘 가라.”
위로 높게 치켜든 듀얼 크레이터를 전력으로 내리친다.
방어한 오른손, 왼손, 머리, 몸통을 가르고, 세로로 완전히 두 동강을 내버렸다.
듀얼 크레이터는 마를 없애는 금속 미스릴제, 두 동강난 흡혈귀는 곧바로 불타오르더니 재가 되어 사라졌다.
처음부터 이걸 쓰면 됐는데 말이야, 잊고 있었잖아.
“네이놈……감히…….”
마지막 한 놈이 욕설을 퍼부었지만 나도 놈을 놓칠 생각은 없다.
“너는 살아서 못 돌아갈 거다.”
내 소중한 세리아의 뼈를 부러트린 너희 세 놈은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주마.
그때, 듀얼 크레이터의 위력을 보고 경계 중이던 남자가 펄쩍 뛰어오르더니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그곳에는 두 손에 각각 검을 쥐고 있는 칠흑의 남성, 지크프리트가 서 있었다.
“지, 지크프리트! 이, 이것은…….”
“명령을 어겼구나.”
처음으로 지크프리트의 목소리를 들었다.
마치 어둠 저편에서 울려퍼지는 듯한 낮은 목소리다.
“아니야, 먼저 공격한 건 이놈들…….”
변명을 하던 남자에게 더 이상 아무 할말도 없다는 듯이 지크프리트가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그, 그만!”
그렇게 지크프리트의 모습이 한 순간 사라지고, 눈치를 챘을 땐 내 옆에 있었다.
“아……아……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못 봤지만 결과는 명백하다.
시끄럽게 울부짖고 있던 남자의 머리통이 코 위에서 비스듬하게 어긋나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뒤이어 목과 오른쪽 어깨가 떨어지고는 왼손은 세로로 갈라졌고, 몸통이 네 동강이 나 허벅지와 무릎, 종아리가 떨어져나갔다.
“…….”
지크프리트는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사죄하고 있는 것이리라.
“어리석은 놈은 흡혈귀든 사람이든 어디든 있는 법이지. 이번 일이랑 상관없이 약속은 지키겠다.”
여기서 싸워봤자 좋을 게 없다.
그것보단 통증 때문에 기절해버린 세리아를 어서 데리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야, 야아, 저 흡혈귀가 완전히 박살이 났는데?”
“저 남자도 흡혈귀 아니야? 심지어 훨씬 더 강한.”
“그런 놈이 영주님께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영주님은 대체 정체가 뭐지!?”
병사들이 술렁거리는 소리에 대답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마이라, 병사 쪽은 맡겨두마. 더 이상 위험 요소는 없을 거라 생각은 한다만 혹시 모르니까 경계해라! 나는 세리아를 데리고서 돌아가야겠어.”
“예, 예에!”
눈앞에서 일어난 사태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던 마이라가 제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어그극, 어극…….”
창으로 땅바닥에 꽂아뒀던 남자는 아직 살아있다.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지평선에서 아침해가 떠오르더니 땅바닥에 달라붙은 흡혈귀를 비추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끄럽군.”
엄청나게 거대한 단말마, 남자의 얼굴에서 증기가 뿜어져나왔다.
피가 끓고 있는 건가? 흐음, 약한 흡혈귀가 태양빛에 맞닿으면 이렇게 되는 거로군.
이윽고 전신에서 증기를 내뿜으면서 흡혈귀는 불타 사라졌고 남은 재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버렸다.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보니 나는 창을 마이라에게 맡겨두고 세리아를 끌어안은 채 말 위에 올라탔다.
“슈바르츠, 최대 속도로 달려가라. 단, 절대로 흔들려선 안 돼.”
히힝―, 하고 한 번 울부짖은 슈바르츠는 세리아를 끌어안은 나를 태우고 질풍 같은 속도로 달려나갔다.
브륜힐데와 약속한 조건에 관해서 살짝 조정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세리아가 최우선이다.
“힘내라, 금방 돌아갈 테니까 말이야.”
고통 때문에 일그러진 세리아의 표정이 살짝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3세 겨울 신년
세리아(두 손 골절)
변동 없음 생략
경험 인수: 144명 자식: 3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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