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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140화『탈출』

제140화『탈출』

 
“전진해, 전진!!”
 
내 뒤를 따라오는 중장기병 200, 호위대와 경비대 정예들이다.
궁기병은 강력하지만 방어력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이런 강행돌파 작전 때 운용을 했다간 적지 않은 희생이 발생할 것이다.
이번 작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원래 속도로는 뒤쳐지는 중기병이지만 평소 행군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마치 급사라도 되는 것 같은 속도로 달려나가는 중이다.
데리고 가는 병력 자체가 적다 보니 교환용 말도 충분히 데리고 올 수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무리해서 갈 수 있는 것이다.
 
“발을 멈추지 마라! 느긋하게 갔더니 이미 궁전이 함락당해 있으면 우린 그냥 광대가 되고 말 거다.”
 
평소 속도대로 가면 라펜에서 거기까지 가는 데에 일주일은 걸릴 테지만, 그랬다간 요새가 아닌 일반적인 궁전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고르도니아 병사!?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셀레스티나 여왕의 요청으로 왔다! 인장을 봐라!”
 
무장한 중장기병이 달려오자 도시에 있던 모든 경비대가 허둥지둥 달려나왔지만 셀레스티나가 쓴 편지를 들고 있던 사자가 먼저 나와 편지를 보여주니 얌전해졌다.
 
“이, 이 유치한 문장은 확실히 폐하께서……그런데 무슨 일이 있던 것입니까?”
 
아무래도 사태는 왕도 근처에서만 일어난 일이라 떨어진 곳에 있는 영주나 도시 쪼엔 아직 정보가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곧 알게 될 거다.”
 
하던 말을 자른 사자를 멍하니 바라보는 경비병들, 궁전이 먼저 함락되고 왕이 바뀌게 될 경우엔 이들도 전부 적으로 돌아설지도 모른다.
도시째로 박살내면서 전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썩 좋은 책략도 아니다.
아무튼 지금은 계속해서 달려나가야 했다.
 
경기병이라 한들 사흘, 중기병의 경우엔 하루는 더 걸릴만한 거리. 하지만 말을 바꿔타면서 이틀 동안 강행군을 진행했다.
마치 날아가는 듯한 속도로 전진한 덕분에 몰트 왕국의 왕도 비아드가 시야에 들어왔다.
 
“약간 연기가 피어오르긴 했다만……불타고 있는 것 같진 않군.”
“그렇다는 건 아직 궁전이 버티고 있다는 뜻일까요?”
 
마이라의 질문에는 대답해 줄 수 없다.
그저 잿더미가 되지 않았을 뿐 이미 사태가 끝났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문이 닫혀 있습니다.”
“쯧…….”
 
세리아가 벌레를 씹은 것처럼 말했다.
문을 여는 데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적에게 정비 태세 시간을 주고 말 것이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대로 전진해 주시죠!”
 
하지만 앞장서서 나아가고 있던 사자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함정일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마이라는 의심 중이지만 여기서 시간을 잡아먹혔다간 어차피 목적은 달성할 수 없다.
믿는 것 말고 달리 선택지가 없다.
 
사자는 속도를 높여 도시벽으로 다가가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사랑하는 여왕님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다! 문을 열어라!”
 
화살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아무런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도시벽 정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건…….”
“그대로 들어가라!”
 
우리는 두 줄로 대열을 짠 채 빠른 걸음으로 정문을 돌파해 나아갔다.
문지기는 다들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저들은 일단 왕도 경비대, 취급은 파블로 전하의 부하로 반란군 소속이긴 합니다. 하지만 전하를 셀레스티나 폐하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상사한테는 거역할 수 없지만 그냥 못 본 척을 해주기로 한 모양이다.
우리가 지나가자 가볍게 창을 위로 들어올렸다.
당연한 얘기지. 귀여운 어린아이보다 오만방자한 무능력 남자를 좋아하는 놈이 더 이상하잖아.
 
 
도시벽 문을 빠져나오니 단숨에 궁정까지 연결된 부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궁정은 주변에 온통 수천 명의 병사들이 포위 중이었으며 주변에서 칼이 부딪치는 소리도 들린다.
아직 안 늦었군. 포위당해 있다는 뜻은 아직 함락당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전원, 돌격 진형을 짜라!”
 
도시 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좁은 종렬진을 짜야하긴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지금 상황엔 알맞은 진이다.
 
“적은 얼추 보기에도 우리 숫자의 10배가 넘게 있습니다. 이대로 돌진하실 겁니까?”
“이것 말고 달리 방법이 있나?”
 
마이라는 잠시 생각하고서 미소 지었다.
 
“적은 전체 범위를 포위 중이니 병력은 분산되어 있을 겁니다. 심지어 설마 우리 쪽이 성문을 그대로 빠져나가리라곤 생각하지 못할 테니 완전 기습이 되겠죠. 돌파는 가능해 보입니다.”
 
좋아,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라면 틀림없겠지.
 
“하지만 궁정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도 포위당하게 될 텐데요…….”
 
그건 들어가고 나서 생각하는 게 어떨까?
어떻게든 되겠지.
 
거리가 좁혀지고 궁정을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도 그제야 우리의 존재를 발견했다.
 
“돌격!”
“오오오오오오오――!!”
 
호령과 동시에 다들 함성 소리를 내지르며 창을 앞으로 내민 채 말을 타고 전력으로 달려나간다.
반란군에게는 창진을 짤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았다.
 
“고르도니아!? 대체 어디서!! 정문이 돌파당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대체 왜 이 녀석들이!?”
“우와아아, 왔어어어!!”
 
충돌하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금속음과 함께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비명에 섞였다.
정면에 있던 적은 곧장 창에 꿰여 꼬챙이가 되거나 말에 튕겨 날아갔다.
 
“전진해라, 전진! 앞을 뚫어!”
 
그 중에서 가장 미친듯이 날뛰고 있는 건 바로 이리지나였다.
그녀는 말 위에서 벼락 같은 찌르기를 내지르며 차례차례 적 병사들을 찔러 죽이고 있었다.
창진을 짜지 못한 보병대 따위 몇 천 명이 있다 한들 무서울 건 없다.
속도만 계속해서 유지하면 일방적으로 유린 가능하다.
 
“하앗!”
 
나도 이에 질세라 함께 창을 크게 휘둘렀다.
튕겨날아간 적병이 한층 더 멀리 날아가더니 궁전 벽의 높은 위치와 맞부딪쳤다.
특히 칼날에 맞닿아 몸통이 찢겨나간 적은 마치 하얀 벽에 꽃잎으로 색을 물들이듯이 새빨간 흔적을 남기고서 밑으로 떨어졌다.
 
“한 데 모여라! 방패로 막아!”
 
전방에서 적 병사들이 한 데 모여 방패를 손에 쥐었다.
장창이 없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우리 쪽 돌격을 막아내려는 모양이다.
 
“슈바르츠, 달려라.”
 
방패로 된 벽을 향해 슈바르츠가 한층 더 속도를 높인다.
 
“속도를 안 줄인다고?” “그냥 들이받을 생각이다!”
 
정답, 슈바르츠는 전력 질주 상태 그대로 방패를 든 적의 집단과 충돌했다.
일반적인 말이라면 다리에 부상을 입고서 쓰러질 테지만 이 녀석은 평범한 말이 아니다.
 
“““끄아아아아아악!!”””
 
충돌과 동시에 다섯 명 정도 되는 적 병사가 날아갔고, 나도 동시에 창을 내리쳐 3명 정도 한꺼번에 때려 죽였다.
슈바르츠의 속도는 거의 줄어들지 않고서 앞으로 날아간 적을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에이길 님, 어디로……쉭! 가실 겁니까?”
 
대화 도중 스쳐 지나간 적의 목을 베어낸 세리아가 내게 물었다.
 
“당연한 소리를. 정면이지.”
 
전방위 포위상태인 이상 어디서 들어가든 결국 똑같다.
그렇다면 당당하게 정면으로 돌진하는 게 답이지.
 
 
“문을 열어라! 어서!!”
 
돌격 때문에 정면에 있던 적이 다 사라진 걸 보고 궁전 정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저쪽에서도 환영해 주고 있군. 자, 가보실까?”
 
정면에 약간 남아있던 적병을 궁전 안으로 밀어넣듯이 끌고 가면서 단숨에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궁전 안으로 들어간 걸 보고서 다시 천천히 정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뭘 하고 있나! 적의 뒤를 따라 우리도 들어가야 한다! 단숨에 궁전을 점령 가능한 기회다. 내 뒤를 따라라!”
 
문이 열린 걸 보고 기회가 왔다 판단한 대장 중 한 명이 부하 몇십명을 데리고서 뒤쪽에서 따라붙었다.
문을 닫지 못하도록 막아 후속 부대까지 안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과연 생각대로 될까?”
 
허리에 힘을 주고 창을 내지르는 강렬한 횡베기, 놈들의 대열째로 병사를 두동강 냈다.
뒤이어 이리지나가 정문 앞을 막아서더니 뒤따라 들어오려고 하는 적 병사를 막아냈다.
피피, 루나, 루비, 기드가 날린 화살도 하나둘씩 놈들에게 명중해 문을 고정하려고 하는 병사를 쓰러트렸다.
 
“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문을 붙들던 손이 전부 다 떨어지더니 정문은 다시 굳게 잠겼다.
이 안에는 우리 병력 200기와 궁전을 지키던 병사, 그리고 용맹한 반란군 제군이 10명 있었다.
 
“…….”
“이, 이것은……그게…….”
“운이 없었구나.”
 
나는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궁전 안쪽, 셀레스티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뒤쪽에선 비참한 비명소리와 살육의 소리가 울려퍼졌다.
 
 
 
“하드릿 경! 설마 정말로 원군을 보내줄 줄이야.”
“제때 오지 못할 거라 포기하고 있었으나……역시 소문은 과장이 아니었군.”
 
섭정 라보이와 선왕 디에고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원군으로 온 생각은 아니기 때문에 입은 다물고서 가볍게 꾸벅 인사만 했다.
 
“솔직히 이제 이틀도 못 버틸 줄 알았네.”
“반란이라 들었습니다만?”
 
내가 아는 정보는 어디까지나 셀레스티나의 편지 내용 하나뿐이어야 한다.
사실은 간첩을 통해 대부분의 사정은 다 들은 상태지만.
 
“그래……그 멍청한 아들놈들이! 귀여운 셀레스티나를 질투한 나머지 둘이서 동시에 반란을 일으켰단 말일세! 심지어는 브루터스까지 끌어들여서……놈도 대체 왜 그런 멍청이 두 놈한테 낚였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더군.”
 
아니, 틀림없이 주범은 브루터스고 그 아들 두 명이 낚인 것이다.
그 멍청이 놈들이 주도한 계획이라면 병사의 과반수가 여왕을 따라갔을 테니까.
병사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그 녀석이 주동자로 움직였기에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눈치를 챘을 땐 병사들 대다수가 반란에 가담, 결국 남은 건 여기 있는 500명의 병사뿐일세.”
 
디에고는 내가 데리고온 병사가 200명 정도인 걸 보고 약간 실망한 눈치였다.
 
“이 병력으로 돌파한 건 정말 대단하긴 하네만……솔직히 전황은 뒤집기 힘들겠군…….”
“안타깝게도.”
 
다시 공간을 지배한 어두운 분위기를, 어떤 밝은 목소리가 튕겨냈다.
 
“에이길~!”
 
터벅터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셀레스티나가 달려오더니 폴짝 하고 내 가슴 위로 뛰어들었다.
 
“기쁘구나! 정말로 와주다니! 무서웠다……너무나 무서웠단 말이니라.”
 
내게 얼굴을 파묻고서 울먹이는 셀레스티나.
디에고가 부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지금 그럴 상황은 아닐 텐데.
 
“엉겨붙을 사람이라면 라보이 공이나 아버님 분이 계실 텐데요.”
“할범은 나이 때문에 달라붙으면 허리가 다친다. 아버니은 냄새나.”
 
디에고가 풀썩 무릎을 꿇었다.
 
“에이길, 우리를 구해다오. 다들 난폭해진 게 무섭다…….”
 
미안하다, 아마 우리가 제일 난폭할 텐데.
 
그 대화를 듣고서 디에고와 라보이가 서로를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에선 무언가 결심한 듯한 게 느껴졌다.
 
“하드릿 공, 더 이상 반란을 진압하는 건 불가능할 테지만 주변 포위망을 뚤고 밖으로 나가는 건 가능합니까?”
 
갑자기 디에고가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지 않았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셀레스티나를 부탁드리지요. 여왕이라는 지위를 잃게 된다 한들 귀여운 딸이라는 사실엔 변함없으니, 이곳에서 죽게 놔둘 순 없소!”
“전원, 셀레스티나 폐하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나?”
 
예! 하고 주변 병사들도 대답한다.
아무것도 못하는 왕이긴 해도 제법 평판이 좋은 모양이다.
 
“응? 응?? 무슨 소리더냐? 에이길이 왔으니 이제 괜찮은 것 아니냐?”
 
디에고는 셀레스티나를 끌어안았다.
 
“잘 듣거라, 귀여운 셀레스티나. 너는 아직 어리단다. 앞으로 괴로운 일, 즐거운 일도 잔뜩 있을 것이야.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이제 너를 돌봐줄 수 없을 것 같구나.”
“그게 무슨, 아버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하드릿 공이라면 너를 지켜줄 거다. 그 사람을 아버지라 생각하고서……아니, 아버지 자리는 양보할 수 없지. 그 사람을 오빠라 생각하고서 하는 말을 잘 따르도록 하거라.”
 
디에고는 셀레스티나의 머리를 쓰다듬고서 몸을 떼어내더니 검을 뽑아들었다.
 
“모든 문을 열어라, 밖으로 나간다!!”
“예!”
“하드릿 공, 셀레스티나를……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으로 온 것이다.
 
“난전이 벌어지겠군요.”
“하지만 좋은 방법이야.”
 
모든 문을 열어버리면 적이 단숨에 안으로 밀려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병력은 문이 있는 곳마다 분산된다는 뜻이다.
우리 쪽의 목적은 셀레스티나를 피난시키는 것뿐, 그렇다면 모든 방향에서 밀려오는 적 중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찔러 탈출구로 쓰면 된다.
 
“전원 말에 올려태워라. 처음 왔을 때보다 힘들 거다. 부상자는 갑옷을 벗고서 둘이서 타고 가라, 버려서 갈 생각은 없다.”
“예!”
 
처절한 각오를 끝마친 병사들과 후련한 표정의 디에고, 그리고 격전에 대비해 각오를 다지는 내 병사들.
그 중에서 셀레스티나만이 홀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당혹스러워하는 그녀를 붙잡아 들고서 슈바르츠에 태웠다.
 
“문을 열어라―――!!”
 
정문과 뒷문, 비상시 탈출용 문까지 전부 다 열렸다.
군에 정통한 브루터스가 배신한 시점에서 탈출용 문에 가치는 없다.
 
 
“뒷문이 약하다!”
 
라보이가 소리쳤다.
방금 전 돌파 때문에 정문에 병력이 집중된 결과 뒤쪽이 약해진 모양이다.
 
“달려나가라!!”
 
말에 탄 채 궁전 안을 달려나가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적의 병사를 향해 반대로 돌격해 나아간다.
돌격 중에 돌격으로 반격당해 혼란에 빠진 적을 단숨에 문쪽까지 되돌리고서 바로 탈출할 생각이었으나, 선두가 보우건의 집중 사격을 맞고서 쓰러졌다.
 
 
“제일 약한 부분을 찔러 올 줄 알고 있었지.”
 
그 앞에 서 있던 건 브루터스와 파블로였다.
그들은 일렬로 나란히 선 수십명의 보우건 부대를 이끌고 있었다.
중장기병이라고는 해도 코앞에서 날아온 보우건은 막아낼 수 없다.
심지어 궁전 안의 좁은 공간이다보니 단숨에 밀어붙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여왕을 받아가도록 하겠다.”
“그 무능한 놈은 반드시 죽여주마!”
 
“오라버님……훌쩍.”
 
끝까지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브루터스와 거칠게 소리치는 파블로.
나는 브루터스 하나하고만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반란군이 하는 말을 들어줘야 할 이유는 없다만.”
 
“넘겨주면 귀공의 병사를 죽이진 않겠다.”
“병신 새끼! 다 죽여주마!”
 
냉정한 말투, 반란군이 그녀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니 브루터스한테 나쁜 인상을 받진 않았다.
파블로는 논외지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에이길…….”
 
꾸욱 내 허리춤에 매달리는 셀레스티나.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셀레스티나를 말 위에 남겨두고서 슈바르츠에서 내려왔다.
 
“교섭할 여지없음, 검으로 와라!”
 
창을 치켜들고서 웃었다.
세리아를 포함한 다른 여자들도 임전 태세를 갖췄다.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그렇군……어쩔 수 없지.”
“죽여주마! 여자는 반쯤 죽이고서 희롱해주지!”
 
땅을 박차 단숨에 속도를 붙이고 보우건 부대와의 거리를 좁힌다.
 
“발사!”
 
발사 직전에 땅바닥을 굴러 볼트를 피한다.
동시에 두쪽에서 기드 일행이 날린 화살이 차례차례 적을 쏘아 죽였다.
 
보우건의 위력과 정밀도는 위협적이지만 발사 속도만 따져보면 활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그 빈틈을 타 재장전 중인 대열을 향해 뛰어들어 창을 휘둘렀다.
 
“우왓!” “끄악!!”
“보우건을 지켜라!”
 
무방비 상태가 된 보우건 부대를 지키기 위해 검과 방패를 손에 쥔 병사가 밀어붙이듯이 달려들었다.
 
“재밌군, 나를 한 번 막아봐라!”
 
전력으로 휘두른 내리치기, 곧바로 방패를 치켜든 병사를 방패째로 두동강 내버린 뒤 그 기세를 그대로 살려 날린 회전 발차기가 적 병사 두 사람을 날려버렸다.
 
앞으로 내질러진 검을 붙잡아 휘어버리고는 그 보답으로 박치기를 먹여 얼굴을 함몰시켰다.
 
동요해서 움직임이 멈춘 적병을 창으로 꿰뚫고서 내던져 주니 뒷문 위에 있던 뾰족한 장식에 날아가 꽂혔다.
귀를 가르는 단말마가 울려퍼졌다.
 
“뭐야 이 자식은……그냥 괴물이잖아! 가라, 다같이 한꺼번에 가서 죽여버려!”
 
파블로가 병사들을 발로 걷어차는 중이다.
정말이지 바닥에는 더한 바닥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녀석이군.
 
적들은 겁을 먹으면서도 일제히 달려들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그쪽이 수고가 덜어서 더 편하긴 하지.
 
“크아아아아아!!”
 
기세와 함께 있는 힘껏 옆으로 휘두른 창, 3m가 넘는 범위에 있던 자는 전부 두 동강 나든지, 혹은 뒤로 튕겨날아가 그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주변에 적이 없어진 걸 보고 바닥에 쓰러진 적의 숫자를 세어 보았다.
대충 15, 상당한 숫자로군.
 
내가 보병과 싸우고 있는 사이 다른 일행이 보우건 병사를 정리한 모양이다.
최대 위협 요소가 배제됐군.
적이 혼란에 빠진 지금이라면 돌파 가능해 보인다.
 
“물러나지 마라!”
 
상황을 파악한 브루터스 자신이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외쳤다.
동요 중이었던 적이 질서를 되찾았다.
상당히 뛰어난 장군이긴 하군.
 
“이 녀석은 내가 처리하겠다! 파블로 전하도 도와주십시오.”
“뭐!? 아, 나도? 어? 알겠다…….”
 
새삼스레 내 몸을 살펴보니 온몸이 피투성이, 어깨에는 내장이 튀어 있었다.
방해되니까 손으로 붙잡아 파블로한테 던져 주었다.
 
“우왓! 그만해애애애애!!”
 
아주 훌륭한 실전파로군.
 
놈의 비명을 신호로 내가 달려들었고, 브루터스와 파블로가 양손검을 손에 쥐었다.
 
“브루터스! 놈의 창이 더 길다, 검을 쓰면 불리하다고!”
“전하, 조금 뒤로 물러나겠습니다. 뒷뜰엔 나무가 많아 창을 자유롭게 다룰 수 없습니다. 빈틈을 찔러야 합니다!”
 
확실히 뒷문 근처에 있는 뒷뜰은 장소도 비좁고 나무도 많다.
원래는 창을 휘두르기엔 적합하지 않은 장소이긴 하지만……이 정도 두께라면 문제는 없다.
 
“그거 잘 됐군!”
 
힘을 실어 휘두르는 창은 브루터스가 말한대로 나무에 방해를 받긴 했지만 정작 박살나는 건 나무 쪽이다.
나무 뒷편에 숨으려 했던 병사 중 하나가 나무째로 두 동강이 나 쓰러졌다.
 
“큭……소문에 걸맞은 괴력이로군.”
 
브루터스만 처리하면 이곳에 있는 병사는 통솔력을 잃을 것이다.
일격에 처리하기 위해 창을 대각선 위에서 전력으로 내리쳤다.
정통으로 막아냈다간 놈의 검은 박살이 날 테고, 뒤쪽으로 피한다 한들 그대로 찔러 죽일 수 있다.
 
“흠!”
 
하지만 브루터스는 내 창에 검을 맞부딪쳐 그대로 땅바닥으로 몸을 낮췄다.
기세가 너무 세게 붙어 도중에 멈출 수가 없다.
 
“쯧!”
 
창은 크게 땅바닥을 때리고는 흙을 사방으로 온통 튀겼다.
당연히 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서 내 정수리를 향해 양손검을 내리치려 하고 있었다.
 
자세가 무너진 이상 창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이럴 땐 억지를 부리는 수밖에 없지.
 
땅바닥에 꽂힌 창을 한층 더 밀어넣어 놈의 발밑까지 후벼파버렸다.
일반적인 창이라면 휘어질 게 뻔하지만 이 창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뭣이!?”
 
땅바닥 안을 파고들고서 발밑을 뒤흔드는 창의 위력에 브루터스의 검격이 느려졌다.
기세를 잃은 검을 장갑으로 튕겨내고서 땅바닥에 박힌 창을 뽑아내 어깨 위에 짊어졌다.
 
“깜짝 놀랐잖나.”
“내가 할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브루터스의 표정엔 식은땀이 번져 있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거리가 벌어진 이상, 창을 상대로 하는 브루터스 쪽이 더 불리하다.
제일 중요한 원군은……
 
“자, 가라! 브루터스를 도우러 가라!”
“전하, 지금이야말로 그토록 자랑하시던 무용을 보여주셔야 할 때이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저런 걸 어떻게 이기겠느냐! 아니, 이길 수 있긴 하다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란 말이다!”
 
멍청한 아군을 둬서 참 불쌍하군.
반면 내 아군들은 일대일 승부에서 우위를 점하면서도 다른 병사를 해치우고 문으로 가는 길을 터주는 중이다.
이곳만 마무리 지으면 금방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포기할까.”
“와라.”
 
브루터스의 검술은 파블로와 달리 진짜다.
꼭 거리를 좁혀서 싸울 필요는 없다.
 
창을 단단히 쥐고서 연속으로 내지른다.
가능한 빠르게, 날카롭게.
 
“크, 윽, 이 자식!”
 
브루터스는 필사적으로 막아냈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강렬한 일격을 막아내진 못하고 허벅지, 어깻죽지 부근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 피가 뿜어져 나왔다.
거리가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전개가 계속되었다.
 
“비겁하다 생각하나?”
“시끄럽다!”
“이건 어떠냐.”
 
이리지나를 보고서 익힌 3단 찌르기, 가랑이, 배, 가슴팍까지 찌르는 3연격.
브루터스는 2연격까지는 흘려보냈지만 가슴팍으로 오던 일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푹, 하고 사슬 갑옷을 꿰뚫은 감촉이 손에 느껴졌다.
 
“크아아아아악!”
 
선혈이 흘러내리더니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은 브루터스.
하지만 손맛으로 보아 그리 깊진 않았다. 치명상까진 아닐 것이다.
 
마무리를 지으려고 창을 크게 휘둘러 횡베기를 날렸다.
하지만 브루터스는 가슴팍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곧장 허리춤에 찬 한손검까지 뽑아들어 두 자루의 검을 교차시켜 창을 막아냈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검이 두 자루 모두 부러지더니,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왼팔도 부러진 듯했다.
튕겨날아가듯이 바닥을 구른 브루터스는 벽에 부딪혔지만 피를 토하면서도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장에서 가만 누워있다간 금방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군.
 
하지만 눈의 초점도 안 맞고 한쪽 손도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무기도 쥐지 못한다.
더 이상 어린아이의 일격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이 녀석을 죽이기만 하면 뒤쫓는 병력도 없을 거란 생각에 마무리를 지으려 했던 그 순간…….
 
“디에고 2세, 해치웠다―――!!”
 
궁전 반대쪽에서 커다란 함성 소리가 들렸다.
 
“!! 안 돼애애애애애!! 아버니이이이이임!!”
 
셀레스티나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디에고가 죽은 이상 아군은 단숨에 붕괴할 것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출구가 완전히 틀어막힌다.
 
“가자.”
 
피투성이로 비틀대는 브루터스를 방치하고서 뒷문을 돌파한다.
앞에선 파블로가 검을 겨누고 있었지만.
 
“비켜라.”
“넵!”
 
파블로는 곧장 진로를 양보했다.
목숨은 건졌군.
 
“라펜으로 후퇴한다! 서둘러라!”
 
뒷문을 빠져나온 우리는 말의 속도를 높였다.
도시벽의 문은 아까 그랬던 것처럼 은근슬쩍 열려 있었기 때문에 고맙게 지나가기로 했다.
 
 
“흐에에에에에엥……아버님……할아버지……대체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이냐…….”
 
내게 엉겨붙은 채 계속 울고 있는 셀레스티나.
일단은 반란군 취급인 문지기들이 미안하다는 듯이 창을 내려두고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개중에는 엉엉 울면서 땅바닥에 엎드리는 병사까지 있었다.
 
“에이길 님, 우리 병력의 피해는 경미한 상황, 적의 추격은 없습니다.”
 
세리아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성문을 빠져나온 곳에 놔두었던 환승용 말에 올라타 한층 더 속도를 높였다.
중장기병은 평범한 기병보다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도망치는 기병을 쫓아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궁전에서 난전을 벌인 직후 그럴만한 여유도 없을 것이다.
속도만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면 더 이상 전투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지만 계속해서 울음을 터트리는 셀레스티나를 데리고서 뭐라 형용하기 힘든 기분으로 라펜까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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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2살 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백작  고르도니아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영주민 142000  중심 도시 라펜 16000
 
휘하군: 3500(궁기병 제외)
 
재산: 금화 47400닢 신규 소집(600)
빚 2만닢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드워프의 창  보석 방패  고급 강철 한손검
 
가족: 논나(부인) 카라(측실) 멜(측실 임신) 쿠우(애첩) 루우(애첩) 밀레(애첩) 레아(자칭 육노예) 케이시(요괴) 미티(애첩) 알마 크롤(비동정) 멜리사(애첩) 마리아(애첩)
리타(메이드장) 카트린느(애첩) 요구리(개과천선 중) 피피(종자) 세바스찬(집사)
도로테아(애첩, 왕도) 셀레스티나(망명 여왕) ←new
아이: 스우 미우 예카테리나(딸) 안토니오 클로드(아들) 길버트(아들) 로즈(의붓딸)
 
부하: 세리아(부관) 이리지나(지휘관) 루나(지휘관) 루비(루나 종자 겸 지휘관) 마이라(치안관)
레오폴트(참모) 기드(호위) 트리스탄(종자 임시) 아돌프(내정관) 클레어&롤리(전용 상인) 슈바르츠(말)
릴리안느(여배우)
 
경험 인수: 128명  자식: 3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