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작은 여왕』
“그럼 이야기꾼이 했던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구나!? 고작 혼자서 성문 앞에 서서 수천명의 적을 쓰러트렸다니!”
나는 몰트 왕국의 왕녀, 셀레스티아와 알현 중……일 텐데.
“땅속에서 기어나온 거대 거미라고!? 어느 정도로 큰 것이냐? 어젯밤 변소에서 봤던 거미는 이 정도 크기였느니라.”
왕좌에 몸을 깊숙이 묻은 그녀의 다리는 바닥에 닿질 못한 채 이야기를 듣고 흥분한 것마냥 파닥파닥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알현이 아니라 아이한테 동화를 들려주는 느낌인데.
“폐하, 이야기꾼이라 하시면, 또 그런 아랫것들을 궁정으로 부르신 것입니까? 아니 되옵니다, 필요하다면 이 할아범이 얘기해 드릴 터이니…….”
“싫다! 할아범의 이야기는 느리고 재미가 없지 않느냐. 그런 걸 듣고 있다간 나까지 할멈이 되고 말 것이니라.”
“그럴 수가…….”
가정집 한켠에서 들었으면 소녀와 할아버지가 나누는 흐뭇한 광경의 한 장면이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여긴 궁정이다.
때마침 화제가 바뀐 김에 필요한 얘기는 꺼내놔야겠군.
“그런데 폐하, 이번에 저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은 평화와 교역을 위해서라고 사자 분께서 말씀해 주셨사옵니다.”
나는 할아범이라고 불린 남자한테 시선을 보내면서 소녀한테 말을 건넸다.
이 소녀한테 실권이 없는 건 누가 봐도 명백, 그렇다면 이곳에서 가장 왕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이 노인이 진짜 실권자이리라.
“으음,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할아범과 하도록 하라.”
“제가 대리인으로 나서도록 하지요.”
할아범이라고 불렸던 남자는 자기를 섭정 [라보이] 후작이라 밝혔다.
역시나 섭정이 있었던 거로군.
“우리나라는 트리에아 왕국과 상호불가침 협정을 맺은 상태였습니다. 그 협정은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었습니다만…….”
“트리에아는 사라졌지요.”
“사라졌다? 어디로 갔단 말이냐?”
“폐하, 과자 드실 시간이옵니다.”
“오오, 설탕 과자라니 참으로 좋구나!”
나와 섭정이 나누는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진 건지 중간에 끼어들려던 셀레스티나한테 메이드가 과자를 나누어주었다.
“그래요, 트리에아 왕국은 사라지고 귀국이 새로운 이웃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웃이 바뀌었다 한들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한 상황, 몇 번 정도 불가침 조약 신청을 보내봤습니다만 썩 좋은 답변이 돌아오질 않더군요.”
받을 이유가 없다.
애초에 상호 불가침 조약이라는 건 서로를 위협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성립되는 것이다.
간단히 박살낼 수 있는 상대와 대등한 조약을 맺어야 할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의 왕은 그렇게 어설픈 인물이 아니다.
“달콤해―! 좀 더 먹고 싶구나.”
“폐하, 너무 많이 드시면 이빨이 썩을 것이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귀공이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하니 우리 쪽도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순찰 때 확실히 병력을 움직이긴 했지.
하지만 기껏해야 2000명, 국가가 위협을 느낄만한 숫자는 아니었을 텐데.
“하드릿 경의 무용담은 음유시인을 통해서 남부 국가 쪽에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 강력한 장군이 군대를 움직였다 하니, 마음 편히 잘 수가 없지 뭡니까.”
“그에 관해서는 사과 한 마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후 처리를 위한 관행과도 같은 행사였을 뿐, 침략 의도가 없었다는 것쯤은 이미 병력을 돌려놓은 걸 통해 확인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예, 하지만 조약이라고 하는 물리적 증거가 있으면 더더욱 안심될 겁니다.”
흠, 결국 어떻게 해서든 불가침 조약을 맺고 싶어하는 눈치다.
레오폴트하고 이미 상담도 했겠다 딱히 상관은 없지만 일단 트리스탄 쪽을 힐끔 바라봤다.
“이 정도로 평화 조약에 집착하다니……’무서워, 싸우고 싶지 않아.’ 라고 소리치고 있는 거랑 다를 바가 없네요. 괜찮을 것 같은데요? 어차피 쳐들어올 여력도 없고. 이런 수준 낮은 교섭 상대쯤이야 별다른 위협이 될 일도 없을 것 같네요.”
흠, 받아들여도 된다는 건가.
“방금 전 말씀드린대로, 우리도 불가침 조약을 맺는 데에 이견은 없습니다.”
오오, 하는 탄성과 함께 분위기가 단숨에 누그러졌다.
“훌륭한 일입니다. 하여……고르도니아 왕가 쪽도 똑같은 생각이라 봐도 되겠습니까?”
“약조는 어디까지나 저와 귀국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일입니다만, 고르도니아 왕국도 그에 반대할만한 이유는 없을 겁니다.”
“오오! 그럼 어서 체결하시지요!”
「지금은」, 말이지. 왕의 심정 따위 내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나와 불가침 조약을 맺어도 왕이 말 한 마디만 꺼내면 순식간에 날아갈 게 뻔한데, 그 부분은 잘 이해하고 있는 건가?
“눈치가 없다 해야 하나 뭐라 해야 하나.”
같은 의견이긴 하다만 입 밖으로 내뱉지 마, 트리스탄. 다 들린다고.
내 앞에 탁자와 의자가 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 둔 걸로 보이는 조약문까지 꺼내왔다. 준비성도 철저하셔라.
“폐하, 서명을…….”
“음……됐다!”
섭정은 셀레스티나가 서명한 그 문서를 내 앞까지 가지고 왔다.
악필이로군……심지어 과자를 먹은 손으로 만져서 그런지 설탕이 묻어있잖아.
혹시 몰라 세리아가 한 번 확인한 후, 서명을 했다.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 없는데. 어차피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으면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침략을 저지할 수 있는 건 군사와 성벽이지, 이런 종이 쪼가리가 아니다.
“호오, 특이한 글씨군요.”
시끄러워.
요즘 이런 건 전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써주는 중이란 말이야.
특히 비좁은 공간 안에 빽빽하게 적으라고 강요당하면 영 자신이 없다.
“다음은 교역에 관해서입니다만.”
셀레스티나 쪽을 바라보니 왕좌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제 슬슬 낮잠을 주무실 시간인지라…….”
시중을 들던 메이드가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폐하께는 나중에 승인만 받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자, 폐하. 가시죠.”
“흐으……일어나면 또 얘기 들려줘…….”
그 말만 남기고서 작은 여왕은 메이드의 등 위에서 잠에 들고 말았다.
그 나이에 잘 어울리는, 단순한 응석받이 어린아이에 불과한 소녀다.
“그럼 장소를 바꾸시죠.”
좋지, 좀 더 편하게 앉고 싶은 참이었거든.
되도록이면 미인 메이드도 같이 따라왔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안내받은 장소는 깔끔한 회의실이었다.
방 안에는 같이 따라온 재상과 두 명의 남자가 자리에 앉아있었다.
안타깝게도 예쁘고 가슴이 큰 메이드는 없었다.
“데리고 왔습니다, 디에고 님.”
“그래, 수고 많았노라.”
라보이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한 남자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해가 안 되는군. 저 사람은 분명 섭정이었을 텐데, 그렇다면 저 사람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건 현 국왕인 그 소녀 말고 달리 없지 않나?
“소개가 늦었군. 나는 [디에고 2세] ……지금은 단순히 디에고라 말하는 게 더 낫겠군. 셀레스티나의 아버지일세.”
“호오…….”
일단 선왕한테도 예의를 갖춘다.
오늘은 계속 예절을 갖추느라 숨이 턱 막힐 것만 같다.
분명 나는 부모님이 둘 다 죽고 어쩔 수 없이 소녀가 왕위를 계승한 거라 생각했는데, 선왕은 아직도 멀쩡했잖아.
확실히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늙은 것까진 아니다.
최소한 소녀를 왕으로 내세우는 것보단 자기가 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그 아이도 어린 나이에 즉위를 했다보니 편히 이야기를 나눌 상대조차 없네. 하인의 경우엔 황송하다며 오랫동안 이야기할만한 위치가 아니고, 라보이의 이야기는 지루하다며 도망가버리더군.”
“소인이 미숙한 탓이옵니다.”
디에고는 잠깐 먼 산을 바라보다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피를 나눈 오빠들도 셀레스티나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질 않으니……그대처럼 눈치 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건 거의 없는 일일세.”
눈치라면 충분히 보고 있었는데 그걸로도 부족했단 건가?
그런 걸 걱정할 수준이라면 딸한테 왕위를 물려주지 말고 자기가 직접 하면 될 텐데.
“하하하, 의아해 보이는군. 내가 셀레스티나한테 왕위를 물려준 것이 그렇게 뜻밖이었나?”
“흥미는 있사옵니다.”
“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교섭을 시작하기 전에 여흥 겸…….”
디에고는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건지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나서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것까지 이야기하는 거군요…….”
트리스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세리아도 놀란 눈치였다.
내용은 이렇다.
디에고한테는 셀레스티나 말고 두 아들이 더 있었다.
둘 다 이미 20대 중반, 완전히 성인이지만 두 사람의 사이가 굉장히 나쁘다.
장남은 심성이 올곧지 못하고 음험한 성격, 차남은 오만방자하고 난폭한데 성격도 나빠서 심지가 곧은 디에고하고는 성격이 맞질 않았던 모양이다.
반면 셀레스티나는 어머니가 병에 걸려 죽고 난 이후에도 아버지를 잘 따르는 귀여운 막내딸이었다고 한다.
그때, 디에고는 생각했다.
이대로 자기가 죽었다간 후계자 쟁탈전이 반드시 일어날 테고, 자칫 잘못했다간 귀여운 셀레스티나가 살해당하거나 정쟁 도구로 쓰일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자기가 아직 멀쩡한 시기에 셀레스티나를 왕으로 즉위시켜버리면 오빠 두 사람은 손도 댈 수 없을 것이라는 기책을 떠올란 것이다.
이리하여 소녀는 왕이 되었다.
잘 됐네, 잘 됐어.
“멍청하기 그지없군요. 민중이 불쌍할 지경이야…….”
트리스탄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나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지만 말이야. 어차피 다른 나라 이야기니까.
“국가의 대소동을 타국 사람한테 이렇게 쉽게 얘기해주는 것도 믿기질 않네요.”
어이없어하는 우리의 모습을 힐끔 쳐다본 디에고는 여전히 기분 좋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 딸은 정말 심성이 착한 좋은 아이라네. 그대한테 사자로 보냈던 무르니 후작도 원래는 남작가였지만, 겨울 강가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스스로 뛰어들어 구해냈다더군. 그 이야기를 들은 그 아이가 무척이나 감동하여 후작 칭호를 주었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아이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걸어봤자 별 소용도 없으니까.
“그 후에도 여러 일이 있어 우리나라에는 후작가문이 어느새 8개나 생기고 말았지만, 그것도 전부 그 아이의 상냥함 탓이라 할 수 있지.”
엉망진창이다. 이제 그냥 작위라 부르기에도 힘든 수준이다.
그런 어린 여왕을 꼭두각시처럼 내세우는 게 아니라 진짜 실권까지 줬단 말이야?
디에고 나름대로는 딸을 소중히 여기고 있을 생각인 것이리라.
하지만 이 사람은 분명 나중에 후회할 것이다.
착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건 주변 인물들이 전부 착한 사람들일 때뿐이다.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말이야.
자, 교역 얘기나 계속해야겠군.
“교역이라 해도 우리나라에서 줄 수 있는 물건은 밀과 술뿐일세.”
그렇겠지, 이미 조사는 해두었다.
내 영지에서도 치수와 개간 공사 등등 여러가지 일에 힘쓰고 있긴 하지만, 상업이나 공업보단 농지 쪽이 발달하는 게 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식량 확보처가 많아서 나쁠 건 없다.
세세한 부분은 나중에 아돌프한테 조정시킨다 치고서 일단 교역을 개시하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좋아, 이제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있겠군. 나도 편안히 여생을 보낼 수 있겠구나.”
“하하…….”
내 경직된 미소를 보고 착각한 건지, 디에고는 또다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정 및 외교 정도라면 라보이나 내가 도와줄 수 있지만 군사 쪽 관련으로는 완전히 까막눈일세……내 어리석은 아들도 한껏 잘난체하고 있긴 하지만 부모의 콩깎지 씌인 눈으로 봐도 그쪽 재능은 전혀 없네. 그대와 전쟁이 벌어졌다간 어찌해야 할지 가늠도 안 잡혔던 상황일세.”
그 말을 듣고서 내가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침공해 올 경우 이 남자는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졌다.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야. 가을에는 마그라드와 맺은 정전 협약 기간도 끝나니까.
“하나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장군은 있다네.”
그렇게 말하더니 디에고는 뒤쪽에 있던 남자한테 시선을 옮겼다.
이 녀석은 처음부터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차렷자세로 서 있었다.
단순한 호위치고는 복장이 화려하다 싶긴 했었는데.
“소개하지. 우리나라 최고의 장군, [브루터스] 변경백일세. 우리나라의 군사 관련은 전부 이 남자가 맡고 있네. 일부러 왕도에서 떨어진 거처에 살면서 외적을 감시하고 있는 충신이기도 하지!”
“소인의 목숨은 몰트 왕가와 함께 있사옵니다.”
정중하게 예절을 갖추는 브루터스, 평화로운 나라의 명장이라 해도 영 미심쩍긴 하지만, 뭔가 형용하기 힘든 분위기가 느껴지는 남자다.
“하드릿 백작, 잘 부탁드리겠소.”
“이쪽이야말로.”
악수를 한 순간, 이 녀석은 살기와 함께 강하게 손을 붙잡았다.
그냥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나도 날카롭게 노려보며 손을 옥죄었다.
“으윽…….”
뼈가 삐걱이더니 브루터스가 먼저 손을 떼어놓았다.
이겼군.
“뭘 하고 있는 건가요……?”
트리스탄의 한숨소리는 흘려들으면서 승리에 취하기로 했다.
“아버님~손님은 이쪽에 있는 것이옵니까?”
낮잠을 다 자고 온 건지 셀레스티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음엔 무슨 얘기를 해줄지 생각해 둬야겠군.
셀레스티나는 계속해서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고,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밤이 되어 있었다.
저녁 만찬을 즐긴 후, 우리는 궁정 안, 그것도 여왕의 침실 바로 옆에 있는 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주변 인물들은 말리려 했지만 어리다고는 해도 여왕이 명령을 내려버리면 그것을 어기는 건 불가능하다.
어린아이의 응석이 그대로 통용되는 세계인 것이다.
이걸 막을 수 있는 건 선왕 한 명뿐일 테지만, 디에고는 딸한테 무척이나 약해서 화를 내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 것이니라. 재밌지 않느냐?”
“예, 재밌는 얘기이옵니다.”
내게 주어진 침실 안에서 잠옷 차림을 한 셀레스티나는 방 안을 걸어다니면서 이것저것 계속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별볼일 없는 일이었지만 궁정에서 거의 나올 일이 없는 그녀 입장에선 귀중한 경험이었던 것이리라.
“하드릿 경은 상냥하구나. 마치 친오빠 같느니라.”
그야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해도 한 나라의 왕을 상대로 “이제 귀찮으니까 얼른 자라.” 라고 말할 순 없단 말이지.
게다가 아직 한참 어리긴 해도 용모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어른이 되면 눈이 휘둥그레질법한 미인이 될 게 틀림없다.
미인 후보한테 차갑게 대할 이유가 없단 말이지.
“폐하께는 친오빠 두 분이 있다 들었사옵니다만?”
내 이야기에 셀레스티나의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일라리오] 오라버님도 [파블로] 오라버님도 싫다. 겉으로만 굽신굽신대는 주제에 뭔가 터졌다 하면 나를 가증스럽다는 듯이 쳐다본단 말이다.”
셀레스티나는 소파에 앉아있는 내 위에 폴짝 올라탔다.
시중을 들던 메이드 두 사람이 짧게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허둥지둥 그녀를 손으로 받아낸 다음 천천히 일으켜 세워다.
“힘도 장사로구나, 팔도 근육질에 울끈불끈하고.”
그녀는 싱긋 웃으며 침대 위에 올라타 다리를 파닥파닥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대의 이름은……에이길이라 하였느냐?”
“예, 에이길 하드릿이라 하옵니다.”
“그럼 에이길이라 불러도 되겠느냐? 하드릿은 부르기가 힘들구나.”
왕한테 이름으로 불려도 되나 싶긴 했지만 어차피 어린아이가 하는 짓이다.
“저는 상관없사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다! 에이길, 드워프 얘기를 계속해 주거라!”
“알겠사옵니다. 드워프는 여자도 전부 털이 많고, 겨드랑이와 가랑이 쪽까지 마치 밀림처럼…….”
어느새 밤이 깊어졌을 무렵,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셀레스티나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처음엔 여기서 자겠다며 억지를 부렸지만 너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시중을 들던 메이드와 함께 돌려보냈다.
자칫 잘못했다가 구멍에 손가락이라도 넣었다간 전쟁이 벌어질 테니까 말이야.
여왕이 돌아간 것을 보고 침실 옆에 있는 하인용 대기실에서 세리아, 카트린느, 트리스탄이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 돌보느라 수고 많으셨네요.”
트리스탄은 아돌프나 레오폴트보다 두려움이 없군.
교수형 당해도 안 도와준다?
“언제 육봉을 꺼내드실지 몰라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나한테 어린아이를 안는 취미는 없어.
“그것보다 오늘 있던 일 중에 얘기할 거라도 있나?”
“그게 말이죠……곡물 교환 비율이 좀 싸게…….”
세리아의 말을 가로막듯이 트리스탄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 부르터스라고 하는 남자, 조만간 반란 일으킬 걸요.”
다들 움직임을 멈췄다.
세리아도 입을 벌린 채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근거는?”
“소거법이죠. 선왕의 쓸데없는 얘기 때 듣게 된 그 사람의 무용담과 경력, 그리고 의심받지 않기 위한 위장으로 보이는 행동을 소거해 봤더니 반란에 필요한 준비 행동이 남아있었거든요.”
“조만간이라는 건 정확히 무슨 뜻이지?”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최근 행동에 어색함에 눈에 띄던데요. 전부 감추질 못한 건지, 감출 필요가 없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시기가 조만간이라는 거죠.”
나는 세리아한테 시선을 보내봤지만 그녀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 알겠다, 그걸 전제로 행동하도록 하지.”
“의심하지 않는 건가요?”
“내가 너를 밑에 들이겠다고 결정했으니까 말이야. 네가 한 짓은 내가 한 짓, 내 행동을 의심해야 쓰나. 그 말이 틀렸다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그만이야.”
“예에……그거 참 결단력이 뛰어나시군요.”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지금 배신을 벌였다간 상황이 곤란해진다.
돌아가려고 마음먹었더니 왕도가 이미 포위되어 있는 그런 상황이 펼쳐지면 농담거리로도 못 써먹는다.
“그건 괜찮을 걸요. 당신까지 함께 죽여버리면 고르도니아와 전쟁이 벌어질 테고, 그땐 반란이 문제가 아니게 될 테니까 최소한 우리가 돌아갈 때까진 미뤄둘 거예요.”
그건 안심이군. 하지만 여왕의 운명이 안타까운데.
“왕이 된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죠. 불쌍하다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그 아이는 엄청난 미인이 될 것 같거든. 앞으로 5년 정도 지나면 끝내주는 여자가…….”
“이제 그만 자죠.”
“그러게요.”
“침상 준비를 하고 올게요.”
너희들 웬일로 죽이 잘 맞는군.
그런데 트리스탄, 너는 어쩔 생각이지?
“아뇨, 하인용 방보단 저기 있는 소파가 더 편해보였거든요.”
“눈치 못 챈 거냐?”
세리아는 잠옷 차림이 되어 트리스탄을 노려보고 있었고, 카트린느는 시트 위에 올라타 옷을 다 벗고 있었다.
“지금부터 우리 셋은 몸을 섞을 건데, 거기 계속 있을 거냐?”
“봐, 봤다간 죽일 겁니다!”
세리아의 노성 소리와 함께 트리스탄은 오늘 본 한숨 중 가장 커다란 걸 내뱉더니 이불을 들고서 하인용 방 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셋이서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며 밤을 보낸 것이다.
◇◇◇◇◇◇◇◇◇◇◇◇◇◇◇◇◇◇◇◇◇◇◇◇
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2살 봄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백작 고르도니아 동부 대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영주민 140000 중심 도시 라펜 15000
휘하군: 1800(궁기병 제외)
재산: 금화 49300닢 노역(200) 군 소집(300) 선물(500)
빚 2만닢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드워프의 창 보석 방패 고급 강철 한손검
가족: 논나(부인) 카라(측실) 멜(측실 임신) 쿠우(애첩) 루우(애첩) 밀레(애첩) 레아(자칭 육노예) 케이시(요괴) 미티(애첩) 알마 크롤(비동정) 멜리사(애첩) 마리아(애첩)
리타(메이드장) 카트린느(애첩) 요구리(개과천선 중) 피피(종자) 세바스찬(집사)
도로테아(애첩, 왕도)
아이: 스우 미우 예카테리나(딸) 안토니오 클로드(아들) 길버트(아들) 로즈(의붓딸)
부하: 세리아(부관) 이리지나(지휘관) 루나(지휘관) 루비(루나 종자 겸 지휘관) 마이라(치안관)
레오폴트(참모) 기드(호위) 트리스탄(종자 임시) 아돌프(내정관) 클레어&롤리(전용 상인) 슈바르츠(말)
릴리안느(여배우)
경험 인수: 122명 자식: 1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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