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부인 날다』
왕도 고르도니아 궁전 대강당
“그대들이여, 지난 승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고르도니아의 적은 일망타진되었다 말하긴 힘든 상황이니라. 나는 그대들로부터 한층 더 성실한 충성심과 헌신을 기대하겠노라.”
궁전 바로 옆에 설치된, 거대한 석조 구조의 대강당.
국빈과 함께하는 대규모 무도회 혹은 이런 식으로 귀족들을 모을 때마다 쓴다고 한다.
대국의 위엄 중 하나라 볼 수 있으리라.
“지난 승리를 통해 영지를 얻은 사람도 많을 것이야. 하나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 토지 또한 고르도니아 왕가의 비호 아래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왕의 연설이 계속된다.
몇백 명 정도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이 귀족이라 치면 작위도 은근히 헤픈 법이군.
나도 모르게 커다란 하품이 터져나왔지만 나는 우글우글 몰려있는 귀족들 사이에 파묻혀 뒤쪽에 있기 때문에 들킬 걱정은 없다.
“하아, 정말 대충 사는 분이시군요.”
옆에 서 있는 마이라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비난하더니 어깨로 툭 하고 찔렀다.
보답으로 엉덩이를 움켜쥐니 손을 꼬집혔다.
세리아라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만지게 내버려뒀을 텐데.
“왕국에 대한 충성심은 전시 땐 용맹함으로! 평상시엔 세금을 거둬들임으로서 증명되는 법!”
왕의 연설이 계속되는 와중, 우리 둘은 작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애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괜찮으신 겁니까? 이렇게 뒤에 있어도.”
“괜히 앞으로 나갔다간 하품도 제대로 못하고 네 엉덩이도 못 만지잖아.”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엉덩이 쪽으로 손을 뻗자 마이라가 손톱으로 할퀴기 시작해다.
아프잖아.
옆에 있던 귀족이 나를 노려봤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허둥지둥 시선을 피했다.
사실은 왕의 연설이 시작되기 전, 줄을 서는 순서로 묘한 분쟁이 있었던 것이다.
듣기로는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앞에, 왕과 가까운 위치에 서는 법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작위만 가지고 결정된다기보단 맡고 있는 직책이나 전쟁 때 받은 포상 등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특히 전통 귀족과 신귀족은 오랫동안 쌓아온 공헌과 최근 있었던 전과를 두고 다툼을 벌였고, 문관과 무관들끼리 또다시 싸웠다.
서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다르다보니 제대로 된 결판이 나질 않았고, 인맥과 친족 신분까지 꺼내서 어떻게든 자리 순서를 정했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후에도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귀족들도 있었다.
“하드릿 경은 백작, 심지어 전쟁 때 받은 공적도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따져보면 제일 앞줄에 있어도 이상할 건 없는데 말이죠.”
“그 공적 중 하나는 너를 위해 썼었지.”
“……으음.”
참고로 마이라는 전쟁 이후 적국 인원에서 등용된 사례이기 때문에 순서는 최후열, 자칫하면 기사작이나 준남작보다 더 뒤로 밀려나야 할 테지만 내가 옆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귀족들과 교류를 거의 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주변을 둘러봐도 정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여자도 없는데 얼른 끝내주면 안 되나.
“……따라서, 영지를 가진 자는 왕국에 공헌한다는 증거로 전쟁 비용의…….”
아차, 방귀가 나와버렸다.
소리는 없지만 요즘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냄새가 심하다.
망토를 은근슬쩍 펄럭여서 주변에 퍼트려야겠군.
결국 왕의 새해 인사말은.
“이기긴 했지만 아직 적이 있으니 방심하지 마라.”
“국고에 돈이 없으니까 협력 좀 해다오.”
“여유 있는 영지에는 세금 징수인을 보낼 수도 있다.”
정도로 요약이 가능하다.
오랜만에 왕도로 왔겠다 에이리히랑 술이라도 마시고서 안드레이와 아고르도 한 번 만나봐야겠군.
칼에 찔려서 무덤 안에 있는 거 아냐?
왕의 인사가 끝나고서 각 귀족들은 왕이 사라진 대강당 안에서 군데군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어쨌거나 평소엔 영지에서 나오질 않는 영지 귀족도 많이 있으니 이번 기회에 친목을 다지려는 것이리라.
분명 만찬회 초대나 아이들 결혼 얘기가 나오고 있을 것이다.
“하드릿 경.”
내 쪽에도 온 건가, 하고 뒤를 돌아보니 에이리히였다.
“오랜만입니다……라고 말씀드릴 정도까진 아닌 것 같군요.”
전승식 이후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난 것도 아니다.
“그렇지……시간 좀 있나?”
시간이라면 무한히 있지만 제가 쓸 수 있는 몫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논나 손에 이끌려 보게 됐던 연극 대사라도 말하면 똑똑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으나, 시비 거는 거라고 착각할 수도 있으니 그만두기로 했다.
“있습니다.”
“그럼 잠시 따라와 주게.”
에이리히를 따라 대강당을 빠져나와 그가 사용 중인 것으로 보이는 궁전 안의 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이라는 어쩌면 좋을지 가늠을 잡지 못하다 일단 따라오기로 한 모양이다.
“궁전 안에 방이 있다니, 출세하셨군요.”
궁전 안에 집무실이 있는 건 대신 이상의 직책을 맡고 있는 자들 한정이라고 들었다.
“흠, 휴티어 남작은 잠시 자리를 비켜주게.”
이런, 역시 마이라는 안 되나?
하지만 그녀가 없으면 대체 누가 이 대화 내용을 기억한단 말인가?
그제서야 깨달았다. 세리아를 대기실에 두고 왔다는 걸.
“라드할데 경, 괜찮습니다. 휴티어 남작은…….”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은 바로 얼마 전까지 적이었으니까 통하지 않겠군.
「우리의 아군」, 당연한 말이잖아. 적일 리가 있나.
으음―.
“휴티어 남작은 제 여자입니다. 문제없습니다.”
“헉!!”
마이라는 깜짝 놀랐지만 부정했다간 내쫓길 거라 판단했는지 참아낸 모양이다.
“……휴티어 남작은 폐하로부터 작위를 받은 귀족이다. 그런 귀족을 자기 여자로 삼아서 어쩌자는 건가?”
에이리히는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아다.
역시 역전의 남자는 다르군. 마음을 다스리는 수준이 달라.
“이번 건은 내 마음에 담아둘 테니 입 밖에 거론하지 말도록. 정말이지, 문제를 안 일으키는 날이 더 적군 그래.”
에이리히는 마이라 앞에도 물잔을 하나 놔두었다.
동석해도 된다는 뜻이다.
“잠시 이야기가 엇나갔군.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만, 너는 내 아군인가?”
이상한 말을 하는군.
“예에, 단 한 번도 적이 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에이리히는 그럼에도 진지한 표정을 무너트리지 않았다.
“볼드윈 백작……이렇게 부르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군. 나와 케네스가 세력 귀족 전원을 두고서 여러모로 대립 중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모르는데.
하지만 모른다고 말했다간 설명이 길어질 것 같으니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케네스 그 자식이 경, 자네와 친하다며 떠들어대고 있더군. 별로 모습을 비추지 않는 경을 언제든지 무도회로 부를 수 있다느니, 부인한테 선물을 줬더니 난폭한 소문과는 다르게 정중한 답장이 돌아왔다느니 말이야.”
아아, 그러고 보니 다음번에 왕도로 오면 뭐시기 저시기 하라고 편지가 오긴 했었지.
기본적으로 답장은 전부 세바스찬이 적어주는 중이다.
나보다 몇 배는 더 정중하게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나는 직접 적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그의 글씨가 내 필체라고 착각 중인 걸 수도 있겠군.
“물론 그 녀석이 하는 말을 믿고서 경한테 뭐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놈이 선물로 준 마차를 타고서 온 걸 보아하니 아주 쌩뚱맞은 말은 아닌 것 같더군.”
마차까지 알고 있었군.
그 마차는 난방도 되고 흔들림도 적어서 쾌적하단 말이지.
침대도 준비되어 있어서 여자도 편안히 맛보는 게 가능하다.
“내 파벌 중에는 네가 케네스한테 넘어간 게 아니냐며 동요하는 자들도 있더군. 그래서 더더욱 확인해 두고 싶은 거다. 너는 지금도 내 아군이냐?”
군인이라고는 해도 궁전에서 일하다 보면 문관이나 할법한 권력 투쟁 때문에 바쁘구만.
내게는 힘들어 보인다.
“볼드윈 경한테는 여러모로 도움을 받긴 했습니다. 그래도 여차할 땐 당신한테 붙을 겁니다. 저는 처음부터 계속 당신 편이었을 텐데요.”
에이리히의 표정이 풀어졌다.
이 한 마디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케네스한테는 말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마차는 편리하기 때문에 돌려주고 싶지 않다.
“그래, 그럼 괜찮아. 하지만 너무 놈이랑 가까이 지내면 내 부하랑 세력 자식들이 동요할 거다. 놈의 초대를 거절하라고 말하진 않겠다만 적어도 비슷한 수준으로 우리 쪽 모임에도 참가했으면 하는군.”
이런, 쓸데없는 수고가 늘어버렸잖아.
크롤이나 기드를 변장시키고서 나 대신 나가라 할 수 없나?
안 되겠군. 물건이 너무 작아.
그 후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에이리히와 담소를 나누었다.
“경은 이미 고르도니아에서 손에 꼽히는 대귀족이지. 주변에 있는 귀족들과 교류는 하고 있나?”
“아뇨, 거의 없습니다.”
“흠……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경과 얼굴을 비추고 싶어할 거다. 가끔씩은 라펜에서 무도회라도 열어보는 건 어떻겠나?”
에이리히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주변 영주 중에는 전통 귀족들도 많지. 네 편으로 삼아주면 우리 세력도 늘어날 거다. 솔직히 나는 케네스의 말재간을 이길 수가 없다보니 전통 귀족 대부분이 놈한테 넘어가고 있거든.”
전통 귀족은 원래 에이리히와 케네스 모두 신참 취급하며 경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버 후작의 실각으로 인해 궁전의 권력이 이 두 명한테 나누어진 지금, 싫어도 둘 중 한 명한테는 붙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둘 중 어느 쪽에도 붙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귀족은 얼마 안 될뿐더러 그런 놈은 출세할 수 없다.
양자택일의 경우, 난폭한 군인 출신 신귀족을 중심으로 출세한 에이리히보단 비교적 자기들 방식과 비슷하고 교묘하게 혀를 놀려 회유하는 케네스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궁전 안에서의 이야기일 뿐, 영주 귀족들 입장에선 상황이 달라진다.
1년에 한 번, 혹은 2번 정도 가는 게 고작인 왕도 사정보다 자기 영지가 더 중요하다.
근처에 있는 대영주와 다른 진영에 속해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은 거의 없다.
“특히 너는……평판이 대단하니까 말이야. 근처에 있는 놈들은 어떻게든 우호 관계를 쌓으려 들 거다.”
지난번 트리에아와 전쟁을 벌였을 때, 사건의 시발점은 바로 얼마 전 내가 그 나라와 일으킨 분쟁이라는 것이 귀족들 사이의 인식이라고 한다.
한 나라를 상대할 때도 먼저 공격에 나서고 군대를 이끌고서 도시를 약탈, 무사히 귀환한 장군.
말로 표현하면 그게 맞긴 한데 그것 말고도 달리 소소한 사정이 이것저것 있었는데 말이지.
아무튼 나를 묘하게 두려워하고 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알겠습니다. 영지로 돌아가면 주변 귀족들한테 말은 한 번 해보죠.”
“그래, 그땐 나한테도 알려 달라고. 내 진영 쪽에서도 누군가를 보낼 테니.”
논나한테 알려주면 기꺼이 새 드레스를 사러 갈 게 분명하다.
슬쩍 산 루비 목걸이, 아돌프가 손해액으로 계산하고 있던데.
“정치 얘기만 하고 있으니 피곤하군요.”
“그래, 사실은 나도 이런 건 잘 못하거든.”
에이리히가 쓴웃음을 지으며 기지개를 폈다.
이 녀석도 원래 군인인지라 궁전 안에서 벌어지는 세력 투쟁엔 그리 밝지 못하다.
쓸데없이 유능한 탓에 어떻게든 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케네스한테 밀리는 중인 것이다.
“중앙군 재건 쪽은 순조롭습니까? 강 안으로 제법 많이 사라져버렸습니다만.”
에이리히가 풀썩 하고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정말 보기 힘든데.
“넌 정말 거침없이 말하는군……. 병사는 둘째 치고 지휘관이 부족해. 그래, 내가 할 얘기가 그거다.”
그렇게 말하더니 에이리히가 서류를 꺼냈다.
그대로 옆으로 건네주려다가 마이라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고서 깨달았다. 아아, 세리아가 없었지.
어쩔 수 없지, 내가 읽는 수밖에.
“왕립……교육 기관입니까?”
“그래. 병사를 이끄는 재능 이전에 좀 더 기초적인 교육이 필요하니까 말이야. 평민 자식을 교육시켜서 장래 지휘관을 육성할 거다. 군인 체질이 아닌 사람도 있을 테지만 교양만 갖추면 내정관이나 대관이 될 수도 있지.”
오호라, 평민들을 교육시키면 각 귀족의 분위기에 물들지 않은 지휘관을 얻을 수 있다 이거군.
“하지만 그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몇 년 후에 있을 인재도 필요하긴 합니다만, 지금 당장 부족한 상황이니까 말이죠.”
“그래, 그래서 아이들 말고도 이제 막 성인이 된 자들한테 고등교육을 가르치는 장소도 설치할 거다. 기사 자제나 평민 중에서도 유복하게 자란 자식은 기초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으니까 말이야.”
귀족 자제는 안 올 테지만, 하고 에이리히가 덧붙인 뒤 웃었다.
흐음, 아이를 처음부터 교육하는 장소랑 어느 정도 배운 사람한테 지휘관 교육을 가르치는 장소 두 개를 동시에 설치한다 이건가.
그렇다면 후자의 경우엔 1년 정도 지나면 지휘관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배운 사람은 우선적으로 군대 지휘관으로 등용, 승진도 빨라질 거다. 주요 인원은……기사 가문의 차남이나 셋째, 혹은 출세를 노리는 상점 가문의 자식이 되겠군.”
썩 재밌군.
처음부터 이런 게 있었으면 세리아라도 보내서 교육시켰을 텐데, 이미 세리아는 군대 지휘 경험도 있고 교양도 쌓았으니까 말이지.
“이미 숫자는 적긴 하지만 교육 기관……국립 학교는 기동 중이다. 너도 군 소속 사람이니 약간은 수업을 해도 돼.”
왜 그런 귀찮은 짓을.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마이라를 바라보니 눈이 빛나고 있었다.
사람한테 가르쳐 주고 싶은 성격인가 보군.
“기회가 있으면 들르겠습니다.”
일단 가능성 정도는 남겨두도록 하지.
“그러고 보니 저는 아직 군대 소속 사람입니까?”
에이리히가 다시 탁자 위에 고개를 처박았다.
“……방금 전 폐하께서 한 말을 안 듣고 있었나!? 너는 정식으로 예비역 군사령관으로 임명받았다. 전시 상황에선 병단을 여러 개 맡게 될 거라고!”
예비역이라길래 난 그냥 명예직인 줄 알았는데.
1개 병단이 총 15000명이라는 걸 고려해 보면 상당한 숫자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전쟁은 아직 시작되려면 멀었다.
그때가 오면 생각해야겠군.
그 후, 한동안 에이리와 대화를 나누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한동안 왕도에 있을 테니 꼭 오늘 붙잡아 둘 이유는 없지.”
남자 둘이서 수다 떠는 것도 재미없지.
궁정 안에 있는 집무실에서 술을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야.
“조만간 우리 쪽 무도회나 만찬회 초대장을 보낼 거다. 반드시 오도록. 케네스 쪽으로 먼저 가지 말라고. 또 문제가 일어날 테니까.”
“알겠습니다.”
영지도 받길 잘했군.
매일 이런 정쟁을 하고 있다간 정신이 미쳐서 병에 걸리거나 일찌감치 도피해서 색정광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후자는 이미 늦었군요.”
오랜만에 입을 떼나 싶었더니 첫 말이 그거냐?
벌을 줘야겠군.
“꺄앙!!”
억지로 가랑이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더니 실수로 엉덩이 구멍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상한 목소리를 듣고서 복도에 있던 하인들이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투덜대는 마이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저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참고로 계속 방치되어 있던 세리아는 완전히 삐진 모습으로 대기실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주저앉아 있었다.
얼굴을 주물러서 기분을 풀어줘야겠군.
저택으로 돌아가니 난처한 표정의 도로테아와 기분이 나빠 보이는 논나의 모습이 보였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입을 떼는 논나.
“에이길 님……저택을 고아원으로 만드실 생각이신가요?”
“너한테 말한 적 없던가?”
“도로테아 씨한테 저택을 맡긴다는 말씀은 들었지만 아이들을 전부 다 집안에 들이다니!!”
“……도로테아 엄마, 우리 여기 있으면 안 돼?”
“……에헴, 그게, 가구나 여러모로 비싼 것들이 있는데 이런 어린아이들이 흠집이라도 냈다간 큰일이잖아요.”
아이가 울상을 지은 걸 보고 논나의 노기가 사그라들었다.
이 녀석도 매정한 여자는 아니라니까. 그냥 귀족의 상식으로 매사를 판단할 뿐이지.
“딱히 더럽지도 않잖아. 깨끗하구만 뭘.”
오히려 카라나 이리지나가 있는 게 훨씬 더 위험하다.
그 녀석들은 부수는 데엔 일가견이 있으니까 말이야.
꽃병을 떨어트린 카라는 그렇다 쳐도 이리지나가 문짝에 돌진해서 박살을 낸 이유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당장 돈도 궁한데.”
“네가 할 말이야?”
카라가 옳은 말 하는군.
도로테아와 아이들 모두 돈낭비와는 연이 없고, 아이들도 다같이 저택을 청소해 주고 있기 때문에 관리비까지 포함해서 매달 금화 몇 닢 정도밖에 비용이 안 든다.
이건 매달 논나가 마시는 차랑 과자값 수준이다.
“그것보다 방금 전에 에이리히랑 얘기하고 왔는데 주변 영주들이랑 교류 어쩌구하는 얘기가 나왔거든. 라펜으로 돌아가면 적당히 만찬회라도 열어볼까 싶어.”
논나의 눈이 반짝였다.
“돈은 줄 테니까 지금 유행하는 드레스라도 사오는 게 어때?”
역시 문화의 중심은 왕도, 아무리 라펜이 발전하는 중이라 해도 옷, 특히 비싼 것들의 품질은 왕도와는 비교조차 안 된다.
“미티! 갑시다!”
논나는 예상대로 도로테아 문제는 빠르게 인정한 뒤, 미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서는 짐을 전부 들고 돌아올 수 없을 거라 판단한 미티가 아이들을 몇 명 더 끌고 나갔다.
“에이길, 또 너무 풀어준다.” “어떻게 되도 저는 모릅니다?”
카라와 세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때, 더 귀여워지는 건데.
“너희도 뭐 좀 사오는 게 어때? 모처럼 왕도까지 왔으니까 돈은 신경쓰지 말고.”
“……그럼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레아도 데리고 갈게요.”
세리아랑 레아는 아마 과자가게를 둘러보러 가겠군.
“음, 그럼 난 밀레를 안내해 줄래.”
“와, 왕도라……복장은 이거면 되나?”
왕도라 해봤자 왕부터 거렁뱅이까지 여러 사람이 있으니까 아무 옷이나 입고 나가.
마이라와 기드도 외출, 저택 안은 조용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이 잔뜩 있긴 하지만 내 앞이라 긴장한 건지 말을 안 하고 있었다.
“자, 오거라.”
10살 정도 되는 여자애를 끌어안아 무릎 위에 올려태웠다.
맨 처음엔 무서워하는 듯했지만 입 안에 달콤한 과자를 집어넣어주니 곧바로 표정이 풀어졌다.
과자를 먹으려고 다른 과자들도 와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달콤한 음식이나 사치품과는 연이 없어 보이지만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게 된만큼 발육도 순조롭게 진행 중인지, 비쩍 마른 아이는 없었다.
좀 더 자라서 성인이 된 여자애한테는 사랑을 속삭여봐야겠군.
“어머나, 죄송합니다.”
도로테아가 허둥지둥 고개를 숙였다.
그녀도 40살을 넘긴 것치고는 젊어 보인다.
역시 제대로 먹지 못해서 야윈 탓에 더 늙게 보였던 거로군.
“저쪽에는 과일 음료가 있지. 원하는만큼 마시고 와.”
무릎 위에 있던 소녀를 내려놓았다.
도로테아의 허리와 가슴을 바라보다 보니 커지고 말았다.
어린 소녀의 가랑이에 물건을 갖다댈 수는 없지.
자 어디, 도로테아랑 술이라도 마시다가 기회를 노려서 침대로 끌고 가보실까?
때마침 그녀한테 말을 걸려던 그 순간이었다.
현관 앞에서 여러 마리의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돌바닥을 갉아내는 듯한 마차 바퀴 소리.
말발굽 소리가 많은데. 대형 마차인가?
그제서야 생각나는 게 있었다.
왕도에 온다고 했었잖아.
그녀가 나보다 늦게, 천천히 여행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
서둘러 현관을 열어젖힌 그 순간.
“사랑하는 분!!”
눈앞에 새빨간 벽이 펼쳐졌다.
“사랑하는 분! 저의 남자! 당신의 클라우디아가 왔답니다!!”
마차에서 뛰어내린 클라우디아.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나를 향해 도약했다.
여자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대단한 도약력, 말 그대로 날아서 오는 중이다.
피했다간 머리부터 땅바닥에 처박힐 수도 있기 때문에 손을 벌려 받아냈다.
“으윽!”
클라우디아는 내게 손뿐만 아니라 다리까지 써서 달라붙었다.
“아아, 너무 감격스러워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요! 2년……2년은 참 길었답니다. 사랑스러워라, 아아, 사랑스러워라!! 옷이 거슬려, 이 몸도 거슬려요. 모든 걸 다 없애고서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어요, 녹아버리고 싶어요, 당신을 먹어버리고 싶어요……아뇨, 제가 먹히고 싶어요, 당신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싶어요!!”
숨 쉴 틈도 없이 아주 잘 말하고 있잖아.
하지만 내가 신음한 원인은 그 말 때문이 아니었다.
단순히 무거웠던 것이다. 아마 이리지나보다 더 무겁다.
“이렇게 안겨있으면 키스도 제대로 못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클라우디아가 곧장 내려와 키스를 해주었다.
아무런 망설임없이 들이닥치는 찐한 키스. 평소엔 내가 먼저 여자한테 혀를 집어넣는 편인데 클라우디아는 목구멍까지 핥을 기세로 혀를 밀어넣었다.
“푸핫……대낮부터 사람들한테 보여줄 것도 없지. 자, 집으로 들어와.”
“네, 실례하겠어요!!”
마차에선 간단한 짐만 챙긴 클라라가 내려와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지난번에 안았을 땐 아직 어린애였는데, 2년만에 못 알아볼만큼 아름다워졌는걸.
“자, 자, 자, 자! 침대로 가시지요!! 거대한 물건을 빨아드리겠어요. 제 음란한 구멍도 마음껏 희롱해 주시지요!”
살짝 나이가 많은 아이가 어린아이들의 귀를 막았다.
다른 여자들이 없는 게 다행이군.
돌아오기 전에 진정시키면 되겠어.
“도로테아 엄마~붉은 돼지가 하늘을 날았어~.”
“요, 욘석! 조용히 하렴!”
클라우디아한테는 다행히 안 들렸던 모양인데, 나와 클라라는 무심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힐끔 시선을 교환한 우리는 은근슬쩍 가벼운 입맞춤을 나누었다.
클라라 또한 오랜만에 만나게 된 나의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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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이길 하드릿 22살 겨울
지위: 고르도니아 왕국 백작 고르도니아 동부 일대 영주 산의 왕 드워프의 친구
휘하군: 사군 1800(궁기병 1000)
재산: 금화 6240닢 (노역 100) 여성진 쇼핑(100) 논나 쇼핑(100)
빚 2만닢
무기: 듀얼 크레이터(대검) 드워프의 창
왕도 동반: 논나(정실) 카라(측실) 밀레(애첩) 레아(자칭 육노예) 케이시(요괴)
미티(애첩) 알마 크롤(비동정) 세리아(부관) 기드(호위) 마이라(치안관)
클라우디아(초중량급 숙녀, 욕구불만 사양) 클라라(하인)
가족: 멜(측실 임신) 쿠우(애첩) 루우(애첩) 멜리사(애첩) 마리아(애첩) 리타(메이드장)
카트린느(애첩) 요구리(개과천선 중) 피피(종자) 세바스찬(집사)
아이: 스우 미우 예카테리나(딸) 안토니오(아들) 로즈(의붓딸)
부하: 세리아(부관) 이리지나(지휘관) 루나(지휘관) 루비(루나 종자 겸 지휘관) 마이라(치안관)
레오폴트(참모) 기드(호위) 아돌프(내정관) 클레어&롤리(전용 상인) 슈바르츠(말)
경험 인수: 104명 자식: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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