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에 이르는 길

왕국에 이르는 길 제379화『중앙 평원 통일 전쟁④ 제2차 잔 드라 합전 개시』

왕국길 번역 2025. 5. 10. 20:27

379화『중앙 평원 통일 전쟁④ 제2차 잔 드라 합전 개시』

 

야습을 끝마친 우리는 추격대가 없단 사실을 확인하면서 진지로 돌아와 있었다.

 

크윽.”

아흐윽!”

 

나는 눈앞에 있는 여체를 끌어안고 절정을 맞이했다.

천막 안에 끈적거리는 물소리와 내 거친 숨, 그리고 여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끄……으…….”

크으윽……흐윽……오오오오…….”

 

우리는 지금 가부좌를 틀며 앉은 내 위에 세크리트가 올라탄 모습으로 서로의 허리를 딱 붙인 채 몸을 섞는 중이었다.

 

내 손은 그녀의 땀에 젖은 갈색 엉덩이를 강하게 움켜쥐는 중이고 그녀는 두 손의 손톱으로 내 어깨를 깊숙이 박는 중이다.

 

남근은 그녀의 질 안쪽 깊숙이 박힌 채 격렬하게 꿈틀대며 진한 씨를 토해내고 있었다.

 

크으, 여전히 많군……다 싼 거냐?”

 

움직임이 멈추자 세크리트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들어올리려 했다.

하지만 전투 이후에 깃든 성욕은 이 정도로 해소되지 못했는지 대량으로 싸낸 이후에도 남근은 여전히 단단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허리를 붙들고 단숨에 뽑아내자 세크리트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로 젖히고 쓰러졌다.

 

미안. 아팠지?”

그래, 배가 찢어지는 건가 싶은 격통이더군. ……그러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단단한 상태로 단숨에 빼내라.”

 

뭔 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축 늘어져 엎어진 세크리트의 흑발을 손으로 쓸었다.

 

잔뜩 싸냈군. 개운해졌나?”

그래, 허리가 가벼워졌어.”

 

야습이 끝난 뒤, 천막으로 돌아가자 세크리트가 알몸으로 날 바라보며 가랑이를 벌리고 있었다.

 

『몸이 달아오르는군. 따먹어라――최대한 거칠게』

 

전투 이후 성욕이 들끓는 상황에 이런 소리를 들으면 저항할 수 없다.

사랑이나 상냥함과는 거리가 먼, 성욕끼리 충돌하는 교접을 하고 말았다.

최소한 후희 정도는 제대로 해줘야지.

 

체중이 실리지 않게끔 조심하면서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어깨부터 등쪽에 상냥하게 키스를 해주었다.

동시에 다른 쪽 손으로 아직까지 살짝 경련 중인 엉덩이를 조심스레 다루듯 쓰다듬었다.

 

으음……꽤나 신경 써주는군.”

짐승처럼 다룬 답례지.”

 

아무리 친한 여자라 해도 성욕을 쏟아내기만 하면 미움을 사는 법이다.

가끔씩은 이렇게 말과 행동으로 확실하게 애정을 보여줘야 한다.

 

큭큭, 어중간한 여자라면 그것도 괜찮겠지만 나한테 그런 배려심은 필요 없다. 목을 조르면서 얼굴을 얻어맞아도 나름대로 흥분되거든. 앞으로는 여자한테 거칠게 대해야 하지 않나?”

무슨 소릴, 그런 식으로 거칠게 대할 생각은 없어.”

 

신경 쓰지 않고 상냥한 애무를 이어나갔다.

 

그건 그렇고 7만의 적을 상대로 2만으로 막아내다니, 제법이군.”

 

이제야 자리에서 일어난 세크리트가 몸을 돌리며 내 품 속에 들어왔다.

가만히 있는 걸 보아하니 후희는 계속 해주길 바라는 모양이다.

 

생각보단 잘 싸웠지?”

그래, 적의 공격은 정석 그대로라 지루하긴 하지만 그렇게 서툴지도 않았지. 그걸 절반 이하로 격파했으니 대단하다 볼 수 있겠어.”

 

세크리트는 데굴 몸을 돌리며 훌륭한 몸매를 아까워하지도 않고 드러냈다.

 

어두워서 잘은 모르겠다만 이쪽 손실은 거의 없을 거다. 숫자에서 밀리는 병력이 이 정도로 일방적으로 이기는 건 보기 쉽지 않아.”

 

땀에 젖은 갈색 피부가 꿈틀대며 그녀의 손이 내 가랑이 사이로 뻗어나오다――음모를 뽑아냈다.

짧게 웃음을 터트리며 세크리트가 말을 이었다.

 

낮부터 연속으로 3연패를 했으니 슬슬 아프다 느낄 테지. 정석대로라면 일단 물러난 다음 공격법을 바꾸는 게 맞다만.”

 

답례로 나도 그녀의 가랑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애무하는 척 엉덩이 구멍을 찔러주자 세크리트는 조그맣게 떨고 나서 심호흡을 한 뒤 엉덩이 구멍의 힘을 풀었다.

그 타이밍에 몸을 떼어놓고 물을 마셨다.

 

……칫. 하지만 이후 전개는 서쪽에서 결정될 거다.”

 

세크리트는 혀를 차고 아주 약간 컵에 남아있던 물을 뿌렸다.

 

남유글리아는 고르도니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당연히 이곳 말고도 전장은 또 있을 거고, 트리스니아의 함락을 고려해 보면 전체적으로는 열세라 볼 수 있다.

 

에이리히라면 어떻게든 하겠지. 왕국국은 20만에 육박한다고.”

 

나는 알몸으로 떡하니 선 채 주전자로 직접 물을 마셨다.

 

세크리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말했다.

 

글쎄, 어떨까. 제정신이 아닌 왕, 분산되어 있는 병력, 귀족 놈들의 고집, 네 상사는 다리에 족쇄가 채인 채 싸워야 할 거다.”

 

남일처럼 비웃으면서 말하던 세크리트는 풍만한 몸을 내게 더 딱 붙였다.

 

너무 달라붙으면 또 따먹는다.”

당연히 그러길 바라는 중이지.”

 

나는 세크리트의 입술을 훔치고 책상에 손을 짚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안에 밀어넣기 위해 갈색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하드릿 경. 급한 용무이기에 실례하겠습니다.”

 

분위기를 깨부수는 차가운 목소리는 레오폴트였다.

말을 끝마치자마자 천막을 걷고서 정말로 실례를 저질렀다.

 

!”

 

세크리트는 크게 혀를 차고서 레오폴트를 노려봤지만 당연히 반응은 없다.

 

평범한 여자라면 여기서 비명이라도 한 번 질러야 정상일 텐데, 그녀는 몸을 감추지도 않고 흐트러진 옷을 내게 던져준 다음 자기는 알몸으로 뾰로통하게 구석에 주저앉았다.

 

좀 더 기다릴 수 없는 거냐……? 솔직히 적들도 오늘은 더 이상 공격 안 할 텐데.”

기다릴 수 없습니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레오폴트는 알몸인 세크리트한테 힐끔 시선을 던졌다.

욕정을 느끼는 시선은 아니다. 세크리트한테 들려줘도 되냐고 내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상관없어.”

 

옷을 입으면서 말했다.

세크리트한테도 담요를 건네줬지만 정작 몸은 안 감추고 바닥에 깔아 뒹굴어버렸다.

늘 그렇듯 호탕한 녀석이다.

 

그래서?”

군무총감에게서 긴급 사자가 도착했습니다. 긴급 사항이었기에 제가 대리로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안 좋은 예감밖에 안 든다.

세크리트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눈을 감고 누워있긴 하지만 확실히 이쪽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중이다.

 

뭐라고 말했지?”

우선 가능하다면 사군을 이끌고 왕국군에 합류하라고 합니다.”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지금조차 적보다 적은 병력으로 간신히 버텨내는 중이다.

반대로 병사를 이쪽으로 보내줬으면 할 정도다.

 

군무총감도 기대는 하고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이겠지요.”

에이리히는 얘기가 잘 통하니까 말이야.”

 

무능한 놈이라면 『닥치고 빨리 와라』라고 말했을 게 뻔하다.

 

로레일이 격전 끝에 함락됐습니다.”

뭐라고?”

 

세크리트의 한쪽 눈이 뜨이더니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지도 갖고 와.”

 

내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레오폴트는 책상에 놓인 주전자와 잡동사니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지도를 펼쳤다.

 

로레일은 마리아의 고향이기도 하고 내게도 친숙한 도시다.

 

왜 이렇게 쉽게 함락됐지?”

 

목소리가 살짝 날카로워졌다.

트리스니아 때는 기습 효과도 있었고, 이미 어느 정도 태세를 가다듬었을 거라 생각했다.

 

왕국군은 로레일에 3개 병단, 5만을 집결시켰습니다만 그럼에도 숫자에서 밀리는 데다가 트리스니아에서 향하는 적과 남쪽에서 진격 중인 두 진영의 적을 상대하기엔 여력이 없었다……라고 합니다.”

 

남유글리아는 대규모 우회, 혹은 포위망을 자주 사용한다.

이곳에 있는 적은 기병이 적기 때문에 움직임에 제한이 생기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다른 곳에 기병이 모여 있다는 뜻이다.

 

세크리트가 옆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알몸으로 서 있는데도 그럭저럭 위엄이 느껴진다. 역시 전 대장군이다.

 

그래서 손실은?”

 

두 방향에서 공격을 입고 패주한 거라면 상당히 상황이 나빠 보인다.

여기서 왕국군이 큰 손실을 입었다면 이후 전황까지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

 

왕국군은 로레일 함락 이후, 아크랜드까지 후퇴했습니다. 적은 추격을 시도했습니다만 급히 도우러 온 두 병단이 측면에 전개하여 견제했기 때문에 치명적인 손해는 입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두 개 병단을 추가로 말이지……제때 도착했다 봐야 할지, 아니라 봐야 할지.”

 

만약 로레일 쟁탈전 전에 도착했으면 지켜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여기서 하나는 확실히 해둬야겠군.

 

너는 전체 전황을 어떻게 보고 있지? 밀리고 있는 건 나도 알겠는데, 얼마나 위험한 거냐?”

로레일 함락으로 인해 전선은 아크랜드까지 후퇴하게 됩니다. 이것은 왕국 입장에서 커다란 손실로, 상당수의 인구가 적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됩니다.”

 

역시 위험한 건가.

 

하지만 군사적으로는 약간의 열세에 불과합니다. 전력 손실은 허용 범위 안이며, 전선이 왕도와 가까워짐으로써 병참은 한층 더 튼튼해질 테지요.”

 

, 일시적으로 영지를 크게 잃게 돼도 군대가 건재하다면 어떻게든 된다 이건가.

 

결론은 『열세이긴 하지만 회수 가능한 범위 내』, 전략 한 가지의 결과 여부에 따라 흐름은 바뀔 것입니다.”

 

레오폴트는 말을 이었다.

 

군무총감도 같은 견해일 것입니다. 설령 측면에서 원호가 있었다 한들, 기동력이 뛰어난 적의 추격을 막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로레일 방위 부대는 끝까지 싸우는 것보단 전력을 온존하는 데에 집중하도록 명령을 받은 게 아닐지 추측하고 있습니다.”

지키지 못한다면 후퇴한다, 당연한 거지.”

 

세크리트도 동의했으나 겉으로 드러난 커다란 가슴과 연한 색깔의 젖꼭지가 신경 쓰여서 못 참겠다.

그녀 자신과 레오폴트도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 탓에 나 혼자만 광대가 된 느낌이다.

 

아무튼 처음부터 로레일 함락은 상정 범주 내였던 건가.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지점은 어디지?”

 

레오폴트의 손가락이 지도를 가리켰다.

 

아크랜드. 지방의 중심부이자 요새 도시 역할도 수행 중인 이곳의 상실은 고르도니아 남부 전역의 함락을 의미합니다. 모든 전력을 활용해서 막아내야만 합니다.”

 

결전은 아크랜드에서, 라는 거군.

 

하지만 우리한테는 다른 문제가 있지.”

 

세크리트가 웃으면서 지도를 툭툭 두드렸다.

 

로레일 함락은 우리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이대로 잔 드라에서 싸우고 있다간 측면 공격을 받게 될지도 모르거든.”

 

로레일에서 동쪽으로 쭉 달려오면 라펜과 잔 드라를 가로지른다.

 

완전히 싹둑 잘리는군. 레오폴트, 서쪽에 있는 적이 이쪽에 전력을 할애할 거라고 보나?”

가능성은 낮을 것입니다. 적의 서부 군단이 고르도니아 왕국군을 앞에 두면서 이동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아크랜드 결전을 앞에 두고 병력을 소모하는 것 또한 우책입니다.”

……지금까지 적의 머리가 보인 행동들을 고려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군. 나라면 여기서 분단을 노릴 테지만 말이야.”

 

세크리트는 콧방귀를 뀐 뒤 지도에 나이프를 꽂았다.

참 마음에 안 들어 보이는 눈치지만, 지금은 레오폴트를 믿고 정면에 있는 적만 신경 쓰기로 해야겠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아직도 있는 거냐?”

 

안 좋은 소식만 잔뜩이군.

 

적의 네 번째 군단이 출현, 몰트 왕국에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진군 속도는 눈에 띄게 느리고 진형도 불완전한 것으로 보아 숙련도에 문제가 남아있는 2급 부대인 것으로 추측 가능합니다.”

그걸 제일 먼저 말해.”

 

나도 모르게 소리쳤지만 레오폴트는 태연한 표정이다.

그리고 세크리트, 웃지 마. 가슴이랑 가랑이 좀 가려.

 

“2급 부대를 우리 쪽에 보내봤자 병참에 부담만 생길 뿐입니다. 적은 그 정도로 어리석지 않습니다.”

몰트가 당할 거 아니야.”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차피 원호는 불가능합니다.”

 

짜증이 나긴 하지만 레오폴트는 원래 이런 놈이었지, 라면서 마음을 달랜다.

애초에 몰트만 멀쩡히 넘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너무 희망적 관측이었다.

 

너무 짜증내지 마라. 가슴이라도 주무르면서 진정하도록 해.”

아무튼 셀레스티나한테는 바로 알려라. ……어명으로 빠르게 항복하는 게 더 낫겠지.”

 

나는 갈색 거유를 있는 힘껏 주무른 다음 말했다.

 

몰트의 군사력은 있으나 마나한 수준이다. 섣부르게 저항하다 불타는 것보단 처음부터 순순히 항복하는 게 낫다. 나중에 우리가 빼앗으면 그만이다.

 

이미 알려는 두었습니다.”

상냥하게 적어뒀겠지? 네 생각을 그대로 적었다간 셀레스티나가 울 게 뻔하다고.”

 

 

으음―, 내가 적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뜨악!”

 

노크도 없이 천막이 걷히더니 굽은 등의 남자가 엉거주춤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트리스탄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나타났다.

나른해 보이지만 졸려 보이진 않는다.

설마 이 녀석 야전하는 동안 진짜로 자고 있던 건 아니겠지?

 

손해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세리아와 마이라도 뒤를 따랐다.

아무래도 이 녀석들도 에이리히가 보낸 정보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 냄새! 피곤하신 에이길 님이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힘을 쓰게 만들다니!”

얼른 옷을 입으세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겁니까!”

 

……뭐, 늘 있는 일이지. 그것보다 병사들이 그냥 자고 있던데 괜찮은 거야? 동 틀 때까지 얼마 안 남았어.”

세 번이나 연달아 졌으니 내일 정도는 얌전히 있지 않을까 싶다만.”

 

그렇게 있어주길 바라는 희망적 관측과 함께 말해 보았다.

 

하지만 트리스탄은 한숨을 내뱉으면서 부정했다.

 

아니, 안타깝게도 바로 올 거야. 내일 또 올 거라구.”

 

트리스탄이 이 정도로 확언하는 건 처음 들었다.

 

이유는?”

 

나는 다시 의자에 고쳐 앉았다.

 

로레일 함락 소식은 당연히 정면에 있는 적들한테도 전해졌겠지?”

 

그야 그렇지.”

당연한 얘기죠.”

 

나와 마이라의 목소리가 겹쳤다.

그녀는 한 순간 기쁜 표정을 지었지만, 알몸인 세크리트가 비웃고 있는 걸 보고 다시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적의 서부 군단이랑 중앙 군단은 트리스니아를 함락하고 1개 병단을 소멸시켰어, 그리고 3개 병단을 격파하고 로레일도 함락했고, 아크랜드도 노리는 중이지.”

 

추격은 성공 못했지만 말이야, 라고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에 비해 정면……동부 군단은 어때? 첫 전투 이후 야습까지 포함하면 3연패, 7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서 소규모 도시 하나 함락하지 못하고 질질 끌리는 중인데 계속 손해만 늘어나고 있지.”

 

, 그렇지.”

그렇네요.”

네요!”

 

다시 나랑 마이라의 목소리가 겹쳤는데, 이번엔 세리아가 억지로 끼어들었다.

 

잔 드라는 내 영지 내에선 큰 도시에 속하지만 고르도니아 전체를 고려해 보면 별로 크지 않다.

지방의 중심부인 트리스니아와 비교해도 훨씬 작다.

최소한 7만의 대군이 가로막혀도 될만한 위치는 아니다.

 

자기가 적의 군단장이라고 생각해 봐. 다른 군단이 쾌진격하는 와중에 고작 2만명을 상대로 한 걸음도 못 나아갔다구. 지금쯤 로레일 함락 소식을 듣고 우리보다 훨씬 더 식은땀을 많이 흘리고 있을걸?”

 

그렇구만.”

큭큭, 예전의 그 녀석이 떠오르는군. 커다란 몸뚱어리로 당황하던 모습이 웃겼지.”

 

트리스탄이 말한 그대로일 것이다. 애초에 이 얘기가 틀렸으면 레오폴트가 곧바로 끼어들었을 테고 말이야.

세크리트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듯하다.

 

내일은 병사들이 얼마나 지쳤든, 피해가 얼마나 커지든 죽을 기세로 덤벼 올 거야.”

하지만 놈들은 무작정 덤비지 않는데. 정석에서 벗어난 전략은 안 쓰잖아.”

 

이건 남유글리아의 특징 중 하나다.

기본적으로 묘책이나 상식 밖의 전투법은 사용하지 않고 논리적인 전략으로 승리를 쟁취하려 한다.

 

그렇지. 확실히 정면에 있는 적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내일 아침 공격을 감행하는 건 말도 안 되고 상식 밖의 행동이야. 그치만.”

 

트리스탄은 지도를 들어올리고 파라락 넘겼다.

 

전황을 전체적으로 따져보면 동부 군단의 무모한 공격은 상식 밖의 행동이 아니야. 적은 아크랜드로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되도록이면 라펜, 최소한 잔 드라는 함락시켜놔야 하거든.”

 

아하, 지도를 보니 알겠군.

 

잔 드라를 함락시키지 못한 채 아크랜드를 공격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다 만약 내가 영지 방어를 포기하고 전 병력을 동원하면 아크랜드 공격에 나선 적들은 동쪽에서 옆구리를 찔리게 된다.

 

심지어 우리가 기병을 잔뜩 갖고 있다는 건 상대방도 알고 있을 거야. 적은 동부 군단이 우리를 처리할 때까지 편안히 움직이지 못해. 본국에서는 분명 계속 전진하라고 재촉 중일걸.”

 

나는 트리스탄의 눈을 바라보면서 딱 한 번 더 물어보았다.

놈은 평소처럼 의욕 없는 시선을 보냈으나, 세크리트가 시야에 들어오자 불편하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오는 거냐.”

올 거야.”

 

그럼 어쩔 수 없지.”

 

병사들을 깨워라. 생각보다 중요한 국면이 빠르게 와버렸군.”

!”

 

세리아가 뛰쳐나갔다. 그녀도 계속 싸웠는데 기운이 넘치는군.

조금이라도 재워주고 싶었다만.

 

하드릿 경.”

 

방침이 정해진 그때, 레오폴트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적이 앞뒤 안 가리고 공격에 나서기 시작할 경우, 방어전은 불가능하거나, 설령 성공한다 한들 커다란 손해가 발생할 것입니다.”

전쟁에서 손해는 감수해야 하는 법……이라 말하고 싶긴 하다만 여기서 큰 손실은 안 좋단 말이지.”

 

전쟁은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첫 전투에서 큰 손실을 입는 건 피하고 싶었다.

 

손해를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잔 드라 시내 전투를 제안 드리겠습니다.”

!? 도시 안에는 민중도 남아있다구요!”

 

마이라가 레오폴트를 노려보았다.

트리스탄도 떨떠름한 표정이다.

 

시가전…….”

 

세크리트만 홀로 기쁘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도시는 불탈 것입니다만 최종적인 승리를 노리기 위해서는 최선책으로 보입니다.”

 

없는 머리를 몇 초 정도 싸맨 뒤 결단을 내렸다.

 

할까. 마이라, 넌 주민을 최대한 도시 밖으로 내보내라. 레오폴트, 넌 지금 당장 방어 준비를 시작해라.”

하아, 시가전……이라. 내가 불을 지핀 거나 다를 바 없긴 하지만 참 싫다.”

 

남아있던 트리스탄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에서 지면 전부 끝장이니까 우선 이기는 것부터 생각해. 애초에 책임은 전부 내가 지는 거라고. 너는 한숨만 쉬고 있으면 되니까 불평 불만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도록 해.”

하아……알겠어. 도시를 불태우기까지 했는데 지면 안 되니까 말이지. 최소한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

몇 시간 뒤  잔 드라 부근

 

적이 왔습니다! 역시 왔습니다! 일직선으로 잔 드라를 향해 오는 중입니다!”

 

세리아가 흥분한 듯 소리쳤다.

 

네 예측대로였군. 대단해.”

 

나는 레오폴트를 칭찬했으나 답변은 없었다.

대답 정도는 해줘도 될 텐데.

 

지난번과 다르게 우리는 잔 드라를 지키듯이 진을 치고 있었다.

로레일 함락 소식을 듣게 된 적이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걸 관두고 우선 도시를 노릴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 예측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숫자는……4만하고 조금 더!”

 

곧장 정찰병이 적의 숫자를 계산하고 보고했다.

 

“4? 적군.”

 

적은 3번의 패전으로 인해 상당한 손해를 입긴 했으나, 그럼에도 3만이나 줄어들진 않았을 것이다.

5만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틀 동안 연전 중입니다. 피로가 극심하게 쌓인 부대는 기동하지 못한 것이겠지요.”

 

레오폴트가 억양 없이, 하지만 잘 들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직 우리 쪽의 2배입니다만, 어제처럼 싸우기만 하면…….”

 

세리아가 그렇게 말하려던 그때, 적이 어제와는 다른 움직임을 취했다.

 

적이 산개합니다! 둘……아니, 10……더 많습니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적은 갑자기 대열을 무너트리고 200명씩 뭉친 소규모 집단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거기서 또다시 수십명 정도의 집단으로 나뉘어 말 그대로 뿔뿔이 흩어졌다.

 

마치 대열이 망가져 패주하는 순간의 모습을 보는 듯했으나, 적의 발길은 망설임 없이 일직선으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적은 궁기병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집중 사격을 피한 뒤 충돌, 난전으로 끌고 갈 생각으로 보입니다.”

그렇구만.”

 

궁기병의 집중 사격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직접 체감한 것이리라.

확실히 뿔뿔이 흩어지면 화살을 왕창 맞을 일은 없다.

 

궁기병이 난전을 기피해 후퇴하면 다른 부대를 포위할 생각인 것이겠지요. 그리 하면 활은 맞지 않게 됩니다.”

 

, 의도는 잘 알겠군.

 

그래서……어쩔 거냐?”

 

세크리트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날 바라봤다.

레오폴트는 평소처럼 무표정, 마이라도 평소처럼 날카로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루나가 희번뜩 눈을 빛내고 있었다.

 

어쩌긴 뭘 어째. 멍청한 놈들이군.”

 

그러고 보니 저놈들은 대열을 짠 궁기병의 모습밖에 모르겠군.

조금 인식을 고쳐줄 필요가 있겠어.

 

루나. 궁기병들한테 자유롭게 흩어져 적들을 상대하라고 해라. 난전은 벌이지 말고 희생을 최소화하도록 해.”

!”

 

기쁘게 답한 것과 동시에 루나가 달려가더니, 금세 궁기병이 움직였다.

 

적의 병력이 눈앞까지 닥쳤을 즈음, 궁기병의 대열이 사라졌다.

 

적보다 훨씬 더 적은 숫자, 열 명 정도에서 몇 명으로 구성된 집단으로 나뉘어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각각 흥분에 찬 고함소리를 내지르면서 돌진 중이다.

 

상대방이 진을 안 짜고 오면 오히려 편하단 말이지.”

궁기병은 애초부터 소수 단위로 움직이는 게 가장 편하다고 하니까요.”

 

산의 민족은 원래 평소부터 사냥으로 먹고 사는만큼, 가족들끼리만 활동할 때 가장 활력이 넘친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면 대기병진, 혹은 대방패와 궁병을 배치한 적의 대열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에 힘들게 대열을 가르쳐 둔 것이다.

 

적이 대열을 흐트러트린 채 온다면 그것만큼 편한 건 없지.”

명령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싸우도록 시키면 됩니다.”

 

 

근처에서 벌어진 공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30정도 되는 적에게 다섯 명의 궁기병이 달려들었다.

 

다섯 명은 총 한 가구로, 아버지와 아들 둘에 딸이 하나,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애인이 있다.

참고로 딸의 처녀는 지난달에 내가 받아갔다.

 

일단 한 발.”

 

적을 사정 거리에 담은 다섯 명이 우선 일제 사격, 화살이 운 좋게 방패가 닿은 한 사람을 제외한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돌격.”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검을 뽑아든 채 뛰어들었다.

창으로 반격하려던 적 두 사람이 활로 겨누고 있던 딸과 애인의 화살에 맞아 쓰러지자, 나머지 남자 세 명의 검도 스쳐지나가듯 적 둘을 해치웠다.

 

마지막으로 확인 사실.”

 

검을 휘두른 남자들은 속도를 유지한 채 달려나가면서 무기를 활로 바꾸고는, 뒤쪽으로 활을 쏴 나머지 적 둘을 쓰러트렸다.

 

고작 10초만에 열 명을 잃은 적은 완전히 멈춰서 버리고 말았다.

 

그때 다른 집단이 덮치기 시작했다.

젊은 남자 셋과 젊은 여자 셋, 이쪽도 본 기억이 있는 일족이다.

사실은 여자 넷인데 한 명은 내 아이를 임신해서 휴양 중이다.

 

이들도 고작 몇 초만의 습격으로 다섯 명을 처리했고, 적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 부대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가자!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

물론이지 형!! 우리 셋이 같이 있으면 무적이야!”

나도 갈게, ! 사랑의 힘을 보여주자고.”

 

마무리를 하려는 듯 남자 셋이 달려들었다.

이들은 사실 친형제는 아니지만 일족이라고 한다.

한밤중에 엄청난 목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있긴 하지만 나는 알지도 못하고 셋이서 이어진 광경은 알고 싶지도 않다.

 

수상쩍은 3인조도 몇 명을 처리했다.

뒤이어 다른 궁기병도 적 부대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남유글리아 병사들은 이상할 정도로 끈질긴 편이지만 전 방향을 경계하면서 화살을 맞으면 어쩔 수 없는 건지 금세 무너져 정말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적이 흩어지면서 궁기병의 기승 기술이 빛을 보는 중입니다. 완전히 악수였군요.”

 

마이라가 말한대로 내가 보던 놈들 외에도 비슷한 결과가 벌어지는 중이다.

여기저기서 궁기병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는 탓에 남유글리아군은 그저 도망치기 바쁘다.

 

슬슬 적기입니다.”

그래, 다녀오도록 하지.”

 

레오폴트의 말을 듣고 나는 슈바르츠 위에 올라탔다.

 

, 가볼까.”

당신은 안 와도 됩니다.”

 

세크리트가 말 위에 올라타고, 투덜거리면서 세리아도 말 위에 올라탔다.

 

나머진 맡겨두마.”

.”

 

커다란 나팔 소리가 들린다.

적은 산개 전술의 실패를 깨닫고 진형을 재구축하려는 모양이다.

 

궁기병은 그 뒤를 쫓아 화살을 마구 쏴댔지만 모든 병력을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진형이 완성되면 지금 전술로는 오히려 당하게 된다.

우리 쪽도 진형을 갖춰 보병과 연계하면서 싸워야 하리라.

 

그건 마이라랑 레오폴트한테 맡기도록 하지. 우리의 역할은――.”

 

울려퍼지는 경종 소리를 들으면서 살짝 벌어진 잔 드라 문을 통해 시내로 들어갔다.

뒤쪽에서는 적의 부대……1만에서 1 5천 정도 되는 병력이 도시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우리가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문은 소리를 내면서 꽉 닫혔다.

 

산개 작전으로 난전 상황을 이끌어 내면서 별동대가 도시에 돌입한다라. 이것도 레오폴트의 예상대로야.”

난전 중에 도시를 점거해서 우리 쪽 사기를 무너트릴 생각이었던 거겠죠.”

 

글쎄, 나는 레오폴트가 아니니까 그 정도로 자세히 알진 못해.

 

하지만 점령하게 놔둘 순 없지. 설령 불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야.”

 

장검을 한 바퀴 회전시켜 손에 쥐었다.

 

물론입니다. 반드시 지켜내야죠!”

시내전이라, 주민이 남아있었으면 좀 더 재밌었을 텐데.”

 

세리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세크리트의 엉덩이를 때려주었다.

주민은 이미 떨어진 위치로 피난시켜 두었다.

최악……아니, 아마 도시가 사라질 테니까 말이지.

 

적이 도시 앞에 전개했습니다! 조만간 공격이 올 겁니다!”

아군은 현재 다른 집단과 교전 중! 도우러 올 순 없습니다.”

 

전부 예상대로다.

잔 드라에 쳐들어오는 적은 내가 소수 정예병을 이끌고 지리적 이점을 살리면서 방어한다.

그리고 산개 작전을 포기한 적은 레오폴트가 남아있는 모든 병력을 이용해 정면에서 맞선다.

 

레오폴트가 지면 나는 적에게 포위당하고, 내가 패배하면 도시가 함락당해 병사의 사기가 무너진다.

둘 중 하나가 패배하면 끝장이다.

 

족장님께 패배란 없습니다!”

 

기드를 포함한 호위대들도 다들 여기 있다.

숫자는 30 정도지만 정예병이 가득찬 도로 한복판에서 싸우게 될 테니, 적의 숫자가 많아도 충분히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좋아, 우선 도시벽 위에 궁병대를 배치한다.”

 

요즘 방어전을 많이 겪은 덕에 얼추 방식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내 지혜로운 면모도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줄 때가 됐군.

그냥 돌격하는 재주만 있는 건 아니라고.

 

회피합니다!!”

 

하지만 명령을 전달하기 전에 정찰병이 정찰탑 위에서 뛰어내렸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인 걸 보고 받아내 주었다.

 

그렇게 멋지게 내려오지 말고 사다리를 써.”

영주님, 고개를 숙이세요! 포격이――.”

 

말이 끝나기 전에 정찰탑이 날아가더니 돌로 된 도시벽이 붕괴되며 나무로 된 성문이 완벽하게 박살났다.

작은 파편이 위로 쏟아지길래 세리아를 뒤쪽으로 감춰 지켜주었다.

 

……궁병대한테 내린 명령을 취소한다.”

굳이 취소 안 해도 이미 도시벽은 없다만.”

 

세크리트, 쓸데없이 딴지 걸지 마.

나는 아무래도 지혜로워질 수 없는 모양이다.

 

내 품에 안겨있던 정찰병이 홱 몸을 일으키고 민가 지붕 위로 올라갔다.

역시 정예병이라 그런지 마냥 넋 놓고 있지 않는군.

 

공성 병기 다수, 대포 12, 거대 석궁 35! 기병을 선두로 파괴 부분을 통해 돌입 중입니다!”

 

그녀의 프로 정신에 감탄하고 있을 여유는 없어 보인다.

 

적을 박살낸다. 전원 돌격!!”

““““오오오오!!””””

결국 돌격인가?”

 

세크리트의 엉덩이를 때려준 뒤 슈바르츠 위에 올라타 다가오는 적을 향해 달려갔다.

잔 드라 합전, 다시 시작이군.